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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2012. 3. 13. 08:17

장하성 고려대 교수·경영학

입력 : 2012.03.12 22:47 조선일보 

위기 속 자본주의 지속, 더 나은 체제 위한 변화 때문
富의 분배를 정하는 것은 시장 아닌 민주주의의 역할
공정한 경쟁 체제 세우고 고용과 복지 확대 나서야

장하성 고려대 교수·경영학

미국발(發) 금융 위기에 이어 유럽 국가의 재정 위기로 세계경제가 다시 휘청거리고 있다. 부채 탕감을 받은 그리스가 국가 부도 사태를 모면하기는 했지만 다른 유럽 국가의 부채 문제는 아직 화약고로 남아 있다. 지난 몇 년간 이런저런 대응책으로 버텨오고 있기는 하지만 세계경제가 다시 침체하는 더블딥 위험은 상존한다. 당장 관심은 성장세 회복에 있을 터이지만, 세계는 위기 과정에서 중요한 지혜를 모아가고 있다. 즉 세계경제 회복에 필요한 것은 단기 부양 정책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라는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 지난 20년 동안 자본주의는 체제 경쟁 없이 독주해왔다. 승리감에 도취한 자본주의는 시장은 항상 효율적이며 체제 내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시장근본주의의 오만과 오류에 빠져버렸다. 가장 교과서적인 자본주의를 해온 미국에서조차 성장할수록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어 1%가 성장의 과실을 독식(獨食)하고 99%가 소외되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적인 회의가 제기되었다. 금융 위기 초기에는 지금의 위기가 자본주의 종말의 시작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런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과거 위기 때마다 나오던 것이다. 그럼에도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이유는 자본주의가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대안적 경제 체제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며, 또한 자본주의 자체도 더 나은 체제를 만들기 위한 변화를 꾀하여 왔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에서 보수와 진보 모두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 체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자본주의'를 모색하고 있다. 논의의 출발점은 시장에 모든 것을 의존하는 시장만능주의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이 작동하지 않는 시장 실패의 영역뿐 아니라, 공동체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시장이 개입해서는 안 되는 영역에서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도 대체로 동의한다. 다른 한편으로 북유럽 국가의 복지국가 모델 또한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는 것과 남유럽 국가의 재정 위기를 겪으면서 정부가 감당하지 못할 너무 많은 책임을 지는 체제에 대한 반성도 대두하고 있다. 결국 시장과 정부 역할의 균형점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논쟁으로 모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선진 자본주의 국가와 배경이 다르긴 하지만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한 방황을 20여년간 해왔다. '개발연대(年代)'라는 국가자본주의 체제가 더 이상 성장과 삶의 질을 보장하지 못하게 된 지금 상황에서 여당과 야당이 한목소리로 '경제 민주화'를 한국이 가야 할 '새로운 자본주의'의 길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유럽식 보편적 복지는커녕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기초 생활 복지조차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체제 안정을 위해서 교육, 의료, 보육 그리고 노후 생활에 대한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 시급하다. 또 새로운 세대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비정규직의 고용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 이런 일은 돈으로만이 아니라 구조 개혁으로 가능하기에 재정만을 우려하는 주장은 의미가 없다. 소수 재벌이 지배하는 불공정한 시장 구조와 세력화된 대기업 노조가 지배하는 양극화된 노동 구조를 개혁해서 중소기업과 창업 기업, 그리고 새로운 세대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이 시점에서 세계경제의 위기가 '자본주의의 실패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실패'라고 규정한 미국 버클리대 로버트 라이시 교수의 주장은 시사점이 있다. 자본주의란 더 많은 것을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기능을 할 뿐이고, 그런 시장에 어떤 영역을 맡길 것이며 시장을 통해 만들어 낸 부(富)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정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시장이 만들어 낸 성장의 결과로 오히려 더욱 불균형적이고 불공정한 자본주의 체제를 만들어 낸 것은 민주주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우리나라가 '새로운 자본주의'를 모색하는 시점에서 귀담아들을 대목이다.

경제 민주화라는 한국적인 '새로운 자본주의'를 만드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몫이며, 이는 바로 국민의 몫이다. 다음 정부의 경제 민주화 과제는 시장을 공정한 경쟁 체제로 만들고 성장의 결실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데에 역점을 두는 것이다. 체제 안정을 위한 고용과 복지 확대에 필요한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재계와 노동계 모두 기득권을 포기하게 하는 재벌 개혁과 노동 개혁을 함께 추진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도 해결해야 한다. 한국적 '새로운 자본주의'를 만드는 역할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는 이제 국민의 선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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