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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2012. 3. 17. 09:39

권순우·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입력 : 2012.03.17 03:05 조선일보

세계 경제 숨고르기? 재정통합 없는 화폐통합 유럽, 반쪽통합 극복해야
美, 유럽보다 여유있지만 재정 긴축 미룰 수 없어
日, 재정부실 최악 세입원 확대가 시급

권순우·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
가쁜 숨을 몰아쉬던 세계경제가 다시 숨 고르기에 들어섰다. 하지만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어서 위기는 언제라도 재연될 수 있다. 재정 위기의 진앙지가 될 수 있는 유럽과 미국, 일본 등의 상황을 들여다보자.

먼저 유럽 지역은 위기감이 수그러들고는 있지만 여전히 뇌관이 제거되지 않은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재정 통합 없이 통화 통합만을 이룬 반쪽짜리 통합 유로 체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 모순은 건드릴 엄두를 못 내고 구제금융이라는 미봉책으로 변죽만 울리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진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유럽 역내 불균형(internal imbalance)'을 야기하는 지금의 구조적 모순 상황을 방치해서는 유로 체제가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다는 것은 확실히 깨닫게 되었고, 문제 해결을 위한 진일보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EU 25개 회원국이 이전보다 훨씬 엄격한 건전성 규제 내용을 담고 있는 신재정협약에 서명했다.

이런 시도들이 성공을 거둔다면 유럽 재정 위기는 유로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을지 진흙탕이 돼버릴지는 유럽 국가의 개혁 의지에 달려 있다.

미국의 상황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괜찮은 편이다. 지난 3년간 유로존과 일본은 마이너스 성장을 한 반면 미국은 소폭이나마 플러스 성장을 했다. 향후 성장 전망도 미국이 그중 나아 보인다. 경제성장률이 높으면 세금을 많이 걷어 재정을 건전하게 만들 수 있다.

또 하나 미국의 강점은 세계경제에서 기축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 미국의 신용 등급이 강등됐을 때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일반적으로 국가신용 등급이 떨어지면 그 나라 국채 금리는 올라야 정상인데 당시 미국 국채 금리는 오히려 떨어지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미국의 신용 등급 강등 소식이 국제금융시장을 불안하게 만들면서 안전 자산에 대한 수요가 늘었는데 이때 대표적인 안전 자산인 미국 국채 수요도 덩달아 늘어났기 때문이다. 미국 국채에 대한 국제금융시장의 평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국가 재정 상황으로만 따지면 미국은 남유럽 국가 못지않게 부실하다. 그런데도 기축국의 이점 때문에 미국의 국채 금리는 이들의 국채 금리보다 훨씬 낮게 유지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의 대응은 유럽보다 여유로워 보인다. 대내외적 압력으로 오바마 정부는 2조달러 이상의 재정 지출 감축 계획을 수립했지만 실행 의지는 뜨뜻미지근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여유로울 수는 없다. 지금처럼 국가 부채가 늘어나게 내버려 두면 추가적인 신용 등급 강등을 피할 수 없고, 이 경우 미국 국채를 매개로 대외 불균형을 지탱해주던 '달러 리사이클링(dollar recycling)' 구조가 급격하게 무너질 수 있는 만큼 미국도 재정 긴축을 더 이상 뒤로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가장 우려되는 곳은 일본이다. 일본의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200%를 넘어 그리스보다 높다. 향후 전망은 더 암울하다. 고령화로 사회보장비가 급증해 정부 세출은 빠르게 증가하는 데 반해 마이너스 성장으로 세수는 오히려 줄어 재정 적자가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다. 그런데도 재정 적자를 줄이려는 의지는 빈약하다. 소비세 인상 필요성이 계속 제기되고 있지만 지난 5년 동안 총리가 6명 바뀔 정도로 정치적 리더십이 결여되어 있는 상황이라 정치권이 이를 관철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재정 부실이 최악인데도 일본 국채 금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런 현상은 일본만의 특수한 구조 탓이 크다. 일본 정부는 빚더미에 올라 있지만 일본 국민들은 부자다. 일본 국민들은 1500조엔에 달하는 금융자산을 상당 부분 예금이나 보험, 연금의 형태로 저축하고 있고, 이를 수탁한 금융기관들은 이 자금의 상당 부분을 일본 국채에 투자한다. 국민들이 국채를 열심히 사들이는 구조로, 일본 국채의 90% 이상을 자국민이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대규모 국채가 발행됐지만 국내에서 국채 수요가 왕성한 덕분에 국채 금리는 낮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구조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재정 적자 확대로 국채 발행이 급증하는 데 반해, 성장 정체로 예금과 보험은 정체 상태여서 국채 수요의 자금원이 고갈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태로 간다면 저금리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이는 일본에서도 재정 위기가 현실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에 남은 시간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정리하면 유럽, 미국, 일본 어느 곳 할 것 없이 여전히 잠재적 위기 발생 인자를 내포하고 있다. 위기 발생의 뇌관을 제거하려면 유럽은 재정 통합의 지혜가 필요하고, 미국은 대외 불균형 완화가 필요하며, 일본은 세입원 확대가 시급하다. 지금까지 미봉책으로 버텨왔다고 한다면 지금부터는 근본적으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진정한 의지를 요구받는 시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