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사

Blue 2012. 4. 28. 10:35

 

조선일보

입력 : 2012.04.28 00:07

모든 것에 값 매기면 공동체정신은 힘잃어
시장 가치에 매몰돼 새치기도 사고파는 현대사회는 건강한가

[테마 읽기 시장 正義]

주류는 도전받고 상식은 뒤집힌다. 두 책은 부지불식간 당연하게 생각했던 삶의 질서와 생각의 관성에 제동을 건다. 마이클 샌델은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상투적인 비판을 넘어 '좋은 삶'에 대한 고전적 물음으로 이끈다. 대니얼 돌링의 책은 현대인의 의식 한가운데 똬리 튼 5가지 부당한 사고 경향을 해부한다. 손쉬운 해법은 없다. 다만 문제에 대한 인식이 해결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 지음|안기순 옮김|와이즈베리
336쪽|1만6000원

“얼마면 돼?”

드라마는 세상을 담는다. 2000년 가을 한국이었다. 극 중에서 돈은 사랑마저 사버릴 기세였다. 대체 돈으로 안 되는 게 뭔데?

2012년 신간에서 샌델 교수는 “우리 사회가 시장을 품은 게 아니라 아예 ‘시장사회’가 돼버린 것 아닌가” 묻는다. 도를 넘어버린 듯한 시장만능주의. 그것이 우리 공동체에 필요한 덕성을 밑동에서부터 갉아먹는 것은 아닌가, 다시 한 번 지상(紙上) 강의를 펼친다.

◇범람하는 상업화 물결

그의 불안에는 이유가 있다. 어딜 가나 ‘시장적 접근’이다. 여가활동·임신·출산부터 건강·교육·환경·국가안보 문제까지. 초창기 야구장은 빈부 구분 없이 함께 즐기고 어울리는 곳이었다. 하지만 요즘 뉴욕 양키스 구장 박스석은 260달러, 시야가 가리는 외야석은 12달러다. 스타 선수들 사인은 물론, 작년 양키스 유격수 데릭 지터가 3000번째 안타를 기록하던 날엔 그가 밟은 구장 흙까지 팔렸다.

상업화는 예외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2005년 미국 유타주의 30세 여성은 1만달러를 받고 자기 이마에 온라인카지노 웹사이트 주소를 영구 문신으로 새겼다. 2011년 콜로라도주의 한 교육청은 성적표에도 광고를 허용했다. 중국에는 대리 사과(謝過)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선물도 현금과 같은 상품권이 인기다. 상품권은 다시 인터넷에서 거래된다. 생명보험마저 가족을 위한 안정망에서 죽음을 담보로 한 투자상품으로 전락했다.

돈은 새치기도 떳떳하게 만든다. 공항은 우등 고객에게 출입국 심사를 간소화해 준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45달러만 내면 보안검색대와 엘리베이터 줄 앞쪽에 세워준다. 병원에서도 돈을 더 내면 더 빨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인기다. 줄 서기 대행회사도 성황이다.

◇비용-편익의 ‘제국주의 경제학’

정책 결정에도 경제적 효용 논리가 앞선다. 오바마도 3년여 임기 동안 연설문에서 ‘인센티브’란 단어를 29번이나 썼다. 댈러스의 한 초등학교는 학생이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2달러를 줬다. 2006년 미 의회는 교사 인센티브 기금까지 만들었다. 비만 치료에 예산 5%를 쓰는 영국 국립보건원은 체중을 줄여 2년간 유지하는 사람에게 최대 425파운드를 준다. 국가들도 온실가스 배출권을 사고판다. 자유시장론의 근거는 명료하다. 모든 재화·서비스는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자율적으로 해결될 때 최선의 결과를 낳는다는 것. 하지만 과연 그럴까?

◇값을 매겨서는 안 될 것들

저자의 반론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공정성의 문제. 자유 거래는 능력의 평등이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 시장에서는 경제적 약자가 불리한 거래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위험이 있다. 가령, 중국이 한 자녀 정책을 펴면서 위반자에게 벌금을 물리는 것은 부자에게만 출산권을 주는 결과를 낳는다.

둘째는 가치의 타락. 고상한 것도 상품화하면 본래 가치가 변질되는 수가 있다. 시장은 모든 것을 사고파는 상품(goods)으로 볼 뿐, 좋은(good) 선택인지 나쁜 선택인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시장 자체가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재화의 분배 역할에 그치지 않고 교환되는 재화에 대한 어떤 태도를 드러내고 부추긴다. 아이에게 돈을 줘서 책을 읽히면 독서량은 높일지 몰라도 독서를 그 자체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 수단으로 여기게 한다. 외국인 용병을 쓰면 국방에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공동체 내 시민정신이 퇴색하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어떤 것이 좋은 삶인가를 물어야

그러면 시장주의에 반기를 들어야 할까? 아니다. 저자도 시장의 효용을 인정한다. 다만 그것이 무소불위의 힘으로 자리 잡으면서 시민의 덕성과 공공 정신이 위협받게 된 지경을 걱정한다. “이타주의·관용·결속·시민정신은 운동하면 발달하고 더욱 강해지는 근육에 가깝다. 시장 지향 사회의 결함 중 하나는 이러한 미덕이 쇠약해지게 방치하는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목록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현실에서는 선을 긋기가 애매한 것들이 많다고 시인한다. 다만 저자는 어떤 재화나 서비스의 경우 값으로 매기려 들 때엔 불편함이 느껴지고, 그것은 바로 공공성과 덕목이 존재한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그 미덕을 일깨우고 공론을 촉발하는 것이 저자의 역할임을 자임한다. 전작 ‘정의란 무엇인가’와 마찬가지로 이번 책도 답이 아닌 되물음이다. 그 물음은 ‘어떤 것이 살 만한 삶인가’에 대한 숙의를 부른다. 저자의 화려한 변론이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와 개인의 권리를 우선하는 자유주의를 넘어 공동체주의로 비상하는 지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자본주의나 시장주의 때리기에 편승한 상투적인 비판서를 넘어선다. 오히려‘무엇이 좋은 삶인가’를 두고 끝없이 반문했던 고전철학의 길로 인도하는 입문서에 근접한다.

 

 

'샌델앓이' 한국, 정작 샌델은 판권 가격 올려

 

입력 : 2012.04.28 00:03

 

작년 국립중앙도서관 대출 순위 1·2위가 하루키의 소설 '1Q84'(문학동네) 제1권과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였다. 2009년 미국에서 나온 '정의란 무엇인가'는 2010년 국내에 번역되면서 120만부(세계 최고)가 팔렸다. 미국 아마존닷컴에서는 베스트 순위에도 못 올랐지만 교보문고 집계 최장기 기록인 24주 연속 종합 베스트 선두였다. 또 교보 개점 이후 인문서로서는 처음으로 연간 베스트 1위도 차지했다. 국내 인기를 반영해 이번 책은 한·미·영 동시 출간됐다. 신작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역설한다. 하지만 정작 이 책의 국내 번역 판권을 두고 높은 값을 불러 놀라게 했다고 한다. 한국은 샌델을 사랑하지만, 그는 한국인의 지갑을 더 사랑하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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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義'담론은 공염불… 까놓고 말해보자 '不義'

 

허윤희 기자

입력 : 2012.04.28 00:06 조선일보

사회 불평등은 不義가 낳은 질병
'난 달라' 엘리트주의… '넌 안돼' 배제·편견 탐욕과 절망이 원인

불의란 무엇인가

대니얼 돌링 지음|배현 옮김|21세기북스
496쪽|2만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 이후 한국은 적어도 2년간은 '정의'라는 키워드로 움직였다. 그렇다면 이런 책은 어떤가. "정의(正義)라는 기치는 허울 좋은 이름일 뿐이며 세상은 여전히 정의보다는 불의(不義)가 가득하다"고 직설적으로 내뱉고 "다섯 가지 거짓말이 사회 불평등을 지속시키고 있다"고 까발리는 책. 신간 '불의란 무엇인가'는 다섯 가지 거짓말을 하나씩 파헤치면서 전 세계적으로 불의가 어떻게 전파됐는지를 보여준다. ①엘리트주의는 효율적이고 ②배제는 필수적이며 ③편견은 자연스럽고 ④탐욕은 좋은 것 ⑤절망은 불가피하다는 거짓말이다.

엘리트주의부터 살펴보자. 권력자들은 교육적 분리를 자연스럽게 형성하기 위해 엘리트주의를 지향한다. 모든 이를 능력에 따라 줄지어 늘어 세우고, 소수의 사람만이 나머지를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다고 부추기는 것. 저자는 "엘리트주의는 이미 많이 가진 자에게 더 많은 자격을 부여하는 불의"라면서 "늘어나는 불평등을 변명하기 위해 타인의 능력에 '부적합'이라는 딱지를 자주 붙이게 된 것"이라 말한다.

그다음 배제(排除). 2차 세계대전 후 서구 국가들은 국민에게 개인적 소비나 사회보장을 위한 자원을 제공했다. 처음엔 궁핍 철폐를 목표로 삼았으나 점차 국가적 관심은 배제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부자들에게 낮은 세율을 부과하고, 극빈자를 위한 사회보장 혜택을 줄여 빈부 간 소득 격차를 벌렸다. 결국 배제를 통해 부자와 빈자가 서로 다르게 보이도록 해서 많은 이들이 의욕을 잃고 절망에 빠지게 됐다는 것이다.

일종의 편견인 차별(差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도 불의를 떠받치는 요인. 권력자들은 막대한 재산을 세습하기 위해 자녀들이 좁은 범위 안에서 배우자를 선택하도록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인종·계층적 차별은 당연한 것처럼 형성된다. 불평등한 국가일수록 결혼으로 인종과 계층이 섞이는 비율도 떨어졌다. 이제 막 부유한 국가의 기로에 선 나라에선 더 노골적이다. 브라질에서는 경찰이 총을 쏜 용의자들 중 열에 아홉은 흑인인 반면, 대학에 간 흑인의 수는 백인의 5분의 1이다.

심지어 권력자들은 탐욕도 부추긴다.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유명인의 풍족한 삶을 자주 접하게 되는 대중은 끊임없이 소비욕구에 시달린다. 유명인의 삶을 보면서 그 모습을 따라 하게 되고 허황된 욕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려가 두려워할 것은 탐욕의 대상의 아니라, 탐욕이 좋은 것이라고 말하는 권력자들이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마지막으로 절망은 불가피한 것일까. 경제 발전으로 삶의 수준은 나아졌지만 한편으로는 우울증이 급증했다. 흔히 '부자병'이라고 부르는 정신 질환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기업의 폭리와 경쟁 패러다임의 강화가 불러온 결과다. 경제 불평등이 건강상의 불평등까지 초래한 것. 사람들은 불안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생활 속에서 살고 있다.

불의를 떠받치는 이 다섯 가지 토대는 서로 맞물려 있다. 엘리트주의가 배제를 낳고 배제는 편견을 키우며, 편견이 탐욕을 강화하고 탐욕은 절망을 초래한다. "불의가 강하게 지속되는 곳은 우리 마음속이다. 허용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속에, 우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방식 속에, 스스로는 그렇게 이용당하기를 원치 않지만 타인을 그렇게 이용할 수는 있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방식 속에 불의는 있다."(408쪽)

안타깝지만 불평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불평등이 불의 뒤에 숨어 있는 질병임을 알아차리고, 그 질병이 만드는 불의와 그 안에 얽힌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해결의 첫 단계라고 저자는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