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Blue 2013. 5. 9. 16:23

양동휴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입력 : 2013.05.08 23:09 조선일보

근대적 대기업 독점자본이라며 자본주의의 枯死 예상한 레닌, 혁명 합리화 위한 선동에 불과
대기업은 시장을 통한 것보다 자원 배분에 있어서 효율적 '오해'로 규제하면 사회적 손해


	양동휴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양동휴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세상의 지식 수준이 지금보다 백 년쯤 덜했을 적에,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마르크스의 역사 발전 단계설에 입각하여 '자본주의 마지막 단계'를 주장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독점 단계에 이른다. 산업자본이 금융자본과 결합된다. 자본축적은 진행되지만 국내 투자 기회가 늘지 않는다. 자본이 상대적으로 넘치고 이윤율은 떨어진다. 더 높은 수익을 찾아 해외 투자를 시도한다. 1870년대 이후 국제무역보다 중요한 대대적 자본수출이 진행될 때 자본가 독점이 전 세계를 분할한다.이른바 '자본주의 마지막 단계로서 제국주의론'이다.

정말로 케케묵은 '옛날이야기'다. 당시 자본주의는 고사(枯死) 단계가 아니라 꽃피우는 시기였다. 러시아 혁명 합리화를 위해, 정적 나로드니키와 논쟁하기 위해 레닌이 지어낸 정치 선동일 뿐, 엉터리 통계에 역사적 사실과도 너무나 들어맞지 않는 문제투성이다. 19세기 내내 미국에 유입된 유럽 자본의 예에서 보듯, 미국 제국은 자본이 오히려 모자랐다. 20세기 초 일본도 그랬다. 영국은 가장 먼저 산업자본주의에 돌입했지만 자본 집중은 미국·독일보다 늦었다. 19세기 말 미국과 독일에서 근대적 대기업, 즉 독점자본이 형성될 때 압도적 자본수출국 영국에는 대기업이 나타나지 않았다. 전형적인 제국주의를 추구한 영국에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은 분리되어 있었고(소위 금산 분리), 국내 투자의 주류는 소규모 가족 자본 방식이었다. 미국은 뉴딜 금융개혁 때까지, 독일은 지금까지도 금산 일체라 말해도 좋을 정도다.

대기업이란 여러 소단위 사업체로 구성되고 피라미드 형태의 경영자 그룹이 운영하는 기업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대기업은 기술이 진보하고 시장이 커지면서 소단위 단일 기업이 시장을 통해 자원을 배분하는 것보다 대기업 내 자원 배분 방식이 더 효율적이 되는 시점에 등장했다. 19세기 후반 인구 증가, 도시화 진전, 국민소득 증가와 함께 시장 규모가 대단히 커졌다. 때마침 시작된 중화학공업은 거대한 설비 투자가 필요하므로 대규모 자본이 동원되어야 했다. '규모의 경제' 실현을 위해 이들은 애초에 독점 대기업으로 출발했다. 즉 중소기업에서 발전한 산물이 아니었다. 이 시기에 기계, 화학, 전기, 석유, 자동차 부문에서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할 기술혁신이 일어났다. 예컨대 파이프라인 기술이 발달하여 대형 정유공장을 세울 수 있었다. 또한 1873년에 대불황이 닥쳐 기업 간 자유경쟁보다 기업의 수직, 수평적 결합을 통해 산업 조직의 독과점화 속도를 높였다.

미국에서 대기업은 교통, 통신, 대량분배, 대량생산, 이어 대량생산과 대량분배의 결합 즉, 제조업과 유통 부문이 결합하는 순으로 일어났다. 독일도 19세기 후반 시장 확대와 함께 철도, 전신 부문 기업 규모가 급속히 커졌다. 때마침 통일이 이루어지고, 도시 인구가 영국보다 적은 독일 인구 구성 특성상, 독일은 교통, 통신 시설 확충에 따라 국내시장이 확대되는 정도가 미국만큼은 아니었어도 영국보다는 컸다. 또한 독일 시장은 처음부터 유럽 전역이었으므로 시장 확대가 기업 규모와 운영에 미친 영향도 영국보다 컸다. 독일은 자본시장 발달이 늦어, 철도 건설 등에 소요될 대규모 자본조달을 위해 신용은행을 만들었다. 일반 상업은행, 개발은행, 미국식 투자은행 등의 역할을 동시에 한 이 신용은행은 독일형 종합은행으로 발전하면서 독일식 기업지배구조의 역사적 연원이 되었다. 출발부터 세계시장을 상대로 한 독일 대기업은 앞선 영·미 기업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했으므로, 국내에서는 기업끼리 경쟁을 회피하는 카르텔이 합법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독일 국민 전체가 공유했다.

영국은 일찍부터 국내시장이 잘 발달하여, 제조업이 커지더라도 유통 부문에 진출할 여지가 별로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기업 대형화도 제조업체가 주도하는 수직적 통합 없이 제조업 부문 내에서 이루어졌다. 기본적으로 영국은 국내시장이 이미 도시화하고 밀집된 형태였다. 해외시장은 너무 멀었다. 그런 만큼 기업 대형화가 제한되고 이에 소요될 자금 규모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산업혁명 초기 때부터 해오던 대로, 필요하면 사내 유보 이윤을 재투자하거나 시중 은행의 단기 융자금으로 충당하는 정도였다.

일반 독자를 위해 근대적 대기업을, 마르크스식 용어로는 독점자본을 몇 자로 설명하기가 간단한 일은 아니다. 산업에 따라 벤처 창업이나 기업 분할, 구조 조정이 더 바람직한 경우도 있고, 우리나라의 특수성도 있겠지만 대기업에 대한 요즘 세간의 오해는 참으로 안타깝다. 오해에서 비롯된 규제는 불필요한 소모일 뿐이다. 국민 모두에게도 너무나 큰 손해다.
간과한 부분이 너무 많으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