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츠지 데츠로와 풍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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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읽을거리

2018. 4. 16.

유라시아 농경사 권1


기고 4

와츠지 데츠로和辻哲郞풍토 

        -풍토론의 가능성을 열며          쿠라타 타카시鞍田崇






풍토는 이 시리즈 <유라시아 농경사> 전체를 꿰뚫는 핵심어의 하나이다. 광대한 유라시아 대륙과 그 주변의 각지에서는 역사적으로 다양한 문화가 생성되어 전개되었는데, 그것은 또 기후와 지형 같은 자연조건과의 관련 안에서 자연히 그 성격을 형성해 온 것이기도 하다. 풍토란 우선 그처럼 다양한 문화의 성립에 관련된 자연조건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풍토라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먼저 떠올리는 건 철학자 와츠지 데츠로(1889-1960)의 주저 <풍토>(1935)일 것이다. 이 책에서 와츠지는 문화 생성의 외적 제약이 되는 단순한 자연조건인 풍토가 아니라, 자연환경과 인간활동의 상관성을 명시하는 풍토라는 독자적 시점을 제기한다. 와츠지는 사회와 개인, 공간과 시간, 신체와 정신 같은 인간 존재의 이중성에 주목하여 이들 두 항목의 어느 쪽에 서 있는 게 아니라 쌍방을 연결하는 이중성을 이중성으로 떠맡는 '사이(間)' 혹은 '관계()'란 의미에서 인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나타낸 독자의 윤리학을 수립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和辻 1934). 그의 풍토 개념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바로 그러한 '사이'가 되는 것을 지시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시리즈는 와츠지의 풍토론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의론에서는 표면화되지 않았던 생업문화, 특히 농경과 그 역사가 풍토와 어떻게 관련된 것인지를 요즘의 지구환경문제도 응시하면서 그려본 것인데, 다른 면에서 각 권의 제목에 '계절풍' '사막' '목장' 같은 와츠지의 풍토론 용어를 채용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연과 인간의 관련성을 비교문화론적인 시점에서 눈여겨 본 그의 시선을 실마리로 삼는다. 따라서 시리즈의 시작에 해당하는 이 책에서 와츠지가 말한 풍토란 어떠한 것인지 새삼스럽게 확인함과 함께, 지금 풍토를 문제 삼는 의의와 그 가능성에 대하여 약간 검토해 두는 건 쓸데없지 않을 것이다.


와츠지의 원풍경原風景과 풍토론  

와츠지로 말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그의 온화한 풍모이다. 특히 만년의 용모이다. 만년의 와츠지 데츠오를 찍은 사진은 몇 장 있는데, 그중에서 유명한 건 타누마 타케요시田沼武能가 촬영한 서재에서 서성거리는 와츠지의 사진일 것이다. 수북이 쌓인 도서의 그림자 너머로 겨우 어깨를 웅크리고 가만히 카메라를 응시하는 노인이 그곳에 있다. 그 시선이 참으로 온화하여 어딘지 천진난만할 정도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드러운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 온화한 풍모는 아무리 봐도 온화한 하리마播磨 출신의 사람다운 데가 있다. 더구나 도시민보다는 교외의 마을 사람다운 목눌한 멋이 있다. 와츠지 데츠로의 풍모는 하리마의 농촌 풍토에서 배양된 그의 자기 이해를 반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앞에서 와츠지의 의론에서 생업문화, 특히 농경에 관한 기술이 표면화하지 않았다고 기술했지만, 이것은 약간 졸속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분명히 <풍토>에서는 농경을 시작으로 하는 생업문화는 주제로 논하지 않는다. 그의 직접적 관심은 예술과 종교의 풍토성을 해명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와츠지는 농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다. 반슈播州 히메지姬路의 교외에 위치한 농촌, 옛 니부노仁豊野 마을에서 태어난 그에게 차라리 농경이야말로 가장 가까운 노동활동이었음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가장 만년에 저술한 <자서전의 시행(自叙伝の試み)>(1961)에서는 근대 일본에서 본격적인 산업혁명의 파도가 밀려오기 직전, 1887-1906년(메이지 20년대부터 30년대) 지방 가정의 정경 -즉 차 덖는 일부터 베짜기까지 일상생활에 필요한 의식주 대부분의 용품을 직접 제조하여 마련하던 과거의 지방 가정의 모습이 참으로 선명하게 서술되어 있는데, 그곳에는 농경에 관한 기술도 빈번하게 나온다. 예를 들면, 어린 와츠지의 눈에 비친 이런 광경이 기록되어 있다.

아이인 나의 기억에는 모내기가 끝나기까지는 마을사람들이 별로 괴로워 보이지 않았다. 아이에게 노동의 괴로움을 뚜렷하게 보인 건 모를 내고 1-2주 뒤에 시작하는 논의 김매기 노동이었다. 그것은 7월 중반부터 8월 상순에 걸쳐서 여름의 삼복 시기로, 그 기간에 심은 모의 뿌리 주변의 흙을 뒤집어서 잡초가 번성하는 걸 방지한다. 이 김매기를 3번쯤 반복하는 사이 벼는 맹렬한 기세로 자라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겨우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경작자들은 땡볕 아래의 논 안을 기어다니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그것을 풀섶의 후끈한 열기를 뿜는 논의 옆에서 보고만 있지 못하고, 역시 마을 의사의 아들로서 이 노동으로 생기는 급병의 현상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것은 더위, 즉 일사병의 여러 가지 형태였던 것 같은데, 대개는 밤중에 명렬한 복통 등을 일으키고 너무 급하면 의사를 부르러 왔다. 논의 김을 매는 계절에는 매일 밤 한 명이나 두 명의 급병인이 발생했다. 그러한 관계로부터 나에게는 농경 노동 가운데 논의 김매기가 가장 맹렬한 노동이라는 인상이 남았다. (와츠지 데츠로 <자서전의 시행>)

와츠지의 생가는 '경작자'가 아니라 마을에 유일한 의사의 집이었다. 그 의미에서 농작업을 경험한 그의 시선은 결국 방관자의 그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환자의 대부분이 농가였던 '마을 의사'의 아들이었다면, 농업이 정말로 자연과 대치하는 인간활동이란 것을 일상적으로 깊이 느끼지 않았을까. 성인들의 가혹한 농경 노동을 지켜본 어린 와츠지의 긴장감은 '풀섶의 후끈한 열기를 뿜는'이란 문장 안에도 남아 있다.

<자서전의 시행>에서 적고 있는 니노부의 일상은 철학자 와츠지 데츠로의 원풍경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가부키와 아야츠리조우루리(操浄瑠璃)>를 시작한 뒤 그의 저작에는 니노부에서 보낸 어린 나날의 실제 체험에 근거한다고 생각되는 주제와 에피소드가 때때로 얼굴을 내민다. <풍토>도 또한 그렇다. 예를 들면, 앞에 인용한 것 같은 일본 농작업의 가혹한 '김매기'에 대해서는 <풍토>의 안에서도 유럽의 목장 같은 풍토의 특성을 일본의 풍토 그것과 비교하며 다음처럼 기록한다.

이처럼 (유럽에서) 여름의 건조함과 겨울의 습윤함은 잡초를 몰아내 온땅을 목장답게 한다. 이것은 농업 노동의 성격을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농업 노동의 핵심을 이루는 건 '김매기'이다. 잡초의 제거이다. 이것을 게을리하면 경지는 금세 황무지로 변한다. 그뿐만 아니라 김매기는 특히 '논의 김매기'란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일본에서 가장 괴로운 시기 -따라서 일본의 주택 양식을 결정하는 시기, 즉 폭염이 가장 심한 삼복 무렵에 꼭 그때를 번성기로 삼는 꿋꿋한 잡초와 싸운다는 걸 의미한다. 이 싸움을 게을리하는 건 농업 노동을 내버려두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마침 이 잡초와의 싸움이 필요하지 않다. 토지는 한번 개간되면 언제까지나 고분고분한 토지로 인간을 따른다. 틈을 보아 스스로 황무지로 전화되는 일이 없다. 그래서 농업 노동에서는 자연과의 싸움이란 계기가 빠져 있다.

'김매기'를 잡초와의 '싸움'이라 하고, '일본 농업 노동의 핵심'이라 하는 와츠지의 기술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 사실을 전한다. 그렇지만 이 조금 단언적인 기술의 배경에 풀섶의 후끈한 열기로 가득한 여름의 니노부의 논두렁에서 어린 그가 숨을 죽이고 응시하던 광경이 있다는 것이 명확하다. 

와츠지의 <풍토>가 이 책을 집필하기 직전 유럽에 유학할 때의 견문에 기반하여 생생한 기술로 가득하다는 것이 이 책을 펴서 읽으면 곧바로 눈에 들어온다. 그렇지만 위의 두 가지 인용에서도 명확하듯이, 그 시선의 근저에는 유아기부터 소년기에 걸쳐서 그가 목격한 일본 농촌의 기억이 원풍경처럼 가로놓여 있다. 분명히 와츠지는 <풍토>에서 농경을 주제로 논하지 않았지만 유럽이든, '사막'이라 불리는 건조와 반건조지대이든 각각의 지역과 그 문화적 특성의 비교검토는 자신의 원풍경에 근거한 농경문화라는 시점을 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농경문화론으로서 풍토론은

<풍토>의 권두에서 와츠지는 "인간 존재의 구조 계기로서 풍토성을 밝히는 일"을 이 책의 목적으로 하고, 그 구상의 배경으로서 베를린에 유학하며 우연히 만난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1927)에 의해 촉발되었다고 든다. 즉 <존재와 시간>이 인간의 '주체적 존재 구조'로서 시간성을 논하면서도 공간성의 문제가 완전히 다루어지지 않는 것에 불복한 와츠지는 <존재와 시간>의 부족함을 보충하는 풍토성이란 개념에 착목한 것이다. 사상사적으로는 이후에 레비 스트로스가 <야생의 사고>(1962)로 갔듯이, 시간에서 공간으로 좌표를 전환하는 것을 재빨리 시도했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中村 1989).

그렇지만 이러한 점으로는 와츠지의 풍토론을 오로지 추상적인 철학적 의론으로 가득찬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실제 <풍토>의 제1장 '풍토의 기초 이론'에서는 하이데거도 관여하는 당시 더없이 융성했던 현상학에서 의식의 지향성(intentionality)에 관한 분석을 근거로 한 이론적 고찰이 전개되며, 말년의 대저 <윤리학>의 하권(1949)에서 <풍토>의 골자를 정리하고 재론했을 때의 의론도 또한 형식적, 윤리적인 느낌이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와츠지의 저작을 손에 넣은 독자는 곧 깨닫는 바인데, 그러한 철학적 의론에서조차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때때로 통속적이란 생각이 들 만큼 알기 쉽다. 이 알기 쉬움이 무엇보다도 와츠지 저작의 매력인데(와츠지는 '일본어와 철학의 문제'(1935)에 한 문장을 남겨, 번역어로 질질 끌 것이 아니라 일상의 일본어로 철학하는 일의 가능성을 늘 추구했다), 그것은 의론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구체적 사례에 의한 것이다. 그 하나로 앞에 지적했듯이 농경문화에 관한 사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와츠지의 의론이 생업인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했다는 것에 대하여, 이미 시마다 요시히토嶋田義仁의 명쾌한 의론이 있다(嶋田 2000). 시마다는 와츠지가 말한 풍토의 유형 가운데 하나인 '계절풍'을 '더위와 습기의 결합'으로 특징짓고, 그 선에서 일본적 풍토의 유형이라기보다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의 열대 계절풍을 의식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다음처럼 서술한다.

와츠지는 무슨 이유로 일본적 풍토를 열대 계절풍의 그것과 동일하다 보았을까? 그것은 '와츠지의 계절풍이란 것은 순수한 기후학적 개념이 아니라, 인간이 생활을 영위하는 '논'과 뗄 수 없이 결합된 인간 존재의 주체적 표현이 되는 풍토 개념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시마다 요시히토 '풍토 사상의 가능성 -일본적인 근원적 반성-')

농경문화의 시점에서 다시 의론을 전개하면 똑같은 계절풍이라도, 예를 들어 인도에 대해서는 같은 사례로 논할 수는 없으며, 거꾸로 '사막'과 목장을 같은 맥류 농경권으로 자리매김할 수도 없을 것이다(이 책의 서론 및 대담도 참고할 것). 그러나 어느 쪽이든 농경문화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와츠지의 풍토론은 지리학과 민속학은 물론, 농학과 민족식물학, 게다가 환경고고학과 연결되며 그 역사적 의의가 판명된다. 시마다는 야나기다 타쿠니오柳田國男와 오리쿠치 시노부折口信夫 등에게서 발단하는 '벼농사 문화론', 우에야마 슌페이上山春平와 나카오 사스케中尾佐助, 사사키 타카아키佐々木高明 등에 의한 '조엽수림 문화론', 또한 이에 호응하는 형태로 제기된 '너도밤나무, 졸참나무숲 문화론', 야스다 요시노리安田喜憲와 우메하라 다케시梅原猛에 의한 '숲의 문화'론 등 일본의 일련의 풍토론적 문화론을 개관하고 그 전개에 와츠지의 '계절풍 문화론'을 자리매김한다.

와츠지가 고향의 선배 야나기다에게 개인적으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나는 상세하게 조사하지 못했는데, 와츠지의 <풍토>는 야나기다의 벼농사 문화론을 근거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벼농사라는 건 풍토 그것이라 말하기보다도 어느 풍토에 입각한 농업기술이며 생업기술이다. 벼농사에 대응하는 풍토가 존재한다. 와츠지는 그것을 '계절풍'으로 인식하고, 다시 세계사적 시야 안에 넣어 '사막'과 '목장'을 함께 풍토의 세 유형으로 다시 파악했다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의 논문)

시마다에 의하면, 이러한 와츠지의 계절풍 문화론의 공헌은 영역에 한정되어 오로지 일본의 사정으로 시종일관한 벼농사 문화론을 환골탈태시키고, 풍토론을 비교문화론적 의론의 장으로 전환시킨 점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면에서, 철학자인 그의 의론에서는 취약했던 '자연과학적 기초'를 근거로 하여 그 뒤 조엽수림 문화론 이후의 풍토론에 의해 새로운 전개가 가능해진 것이라 하겠다.

이처럼 개괄하는 시마다가 제기한 시점은 자칫하면 와츠지의 철학적 고찰에 질질 끌려 그 구체적 내실에 대해서 좀처럼 명로한 의론을 제기할 수 없었던 기존의 해석에 대해, 와츠지만이 아니라 풍토론 그것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명쾌한 자리매김을 가져왔다. 시마다는 또 최종적으로 개인에게 귀착하는 정신의 자유를 중시하는 나머지, 걸핏하면 풍토론을 단순히 환경결정론으로 멀리하려는 서양 근대사상에 대하여 평평하여 균질한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거주 환경에 응하여 공간의 이해가 중층적으로 전개된 결과 자연히 관심이 '자기 이외로' 향해 온 일본의 풍토론적 발상의 의의를 위상적으로 재구성하려 시도한다. 그리고 새로이 '산이 많은 나라의 풍토론'을 제기한다. 그 시점과 문제 의식은 이 시리즈에서 풍토를 문제로 삼는 데에도 시사적이라 해도 좋다. 

그렇지만 정말로 위상적인 의론으로 귀착하는 것에 의하여 시마다의 의론은 뜻밖에도 풍토론의 한계를 드러낸다고도 생각한다. 그 한계는 또한 농경과의 관련에서 본 풍토론이란 자리매김에 잠재해 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래에서 그점에 대하여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지금 풍토를 문제로 삼는 것의 의의와 가능성에 대하여 간단히 고찰하겠다.


풍토론의 가능성

언젠가 오사카에서 교토로 돌아오는 전차 안에서 창으로 보이는 교외의 동네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과연 이곳에 풍토가 있다고 할 수 있는지 생각한 적이 있다. 형형색색의 네온이 반짝이고, 콘크리트 건물이 겹겹이 무질서하게 이어지며, 지면은 아스팔트로 덮이고, 하늘에는 전선이 종횡으로 내달리고 있다. 특별히 오사카 근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의 어디에나 있는 풍경이다.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풍경일지도 모른다.

<풍토>에서 와츠지도 지적하고 있듯이, 풍토는 옛날에는 또 수토水土라고도 하여 자연의 모습을 방불케 하는 단어이다. 가지각색 인간의 생업도 또한 그곳에 뿌리를 내린다. 인간 문화와 관련된 자연이라 해도 좋을지 모른다. 마을의 옆으로 개울이 흐르고, 바람이 지나가며, 기름진 들이 펼쳐진다. 이것이 풍토의 올바른 인상일지 어떤지는 차치하고, 위에서 묘사한 것 같은 현대의 우리에게 매우 친근한 풍경에서는 이미 사라져 버렸지만 이 단어에서는 이야기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앞에서 와츠지의 '원풍경'에 대하여 지적했는데, 아직도 풍토론을 받아들이려는 시도 안에는 때때로 어딘가 목가적이기까지 한 전원 풍경으로 풍토의 상을 전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미 그러한 풍경을 원풍경으로 가지고 있지 않은 현대의 우리에게 풍토론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도대체 참으로 저 어수선한 현대 교외의 길거리에 풍토적 현상은 없는 것일까?

예를 들어, 풍토와 같이 인간 활동과의 관계성에 기반한 자연을 표현하는 '마을'과 '마을 산'이라면 그들은 분명히 도시에서 괴리된 지역을 지시하는 장소적 한정을 수반한 단어이며, 생태계 전체에 걸친 인위적 관리를 전제로 하는 그 실태에서 보면 현대의 교외에는 이미 예전 같은 마을 산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과연 풍토라는 현상은 그러한 파악 방식으로 충분히 보아 온 것일까?

기존의 풍토론이 어느 쪽이냐 하면 도시보다 전원이나 농촌 같은 '시골'의 대상을 가장 자신있어 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시마다는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문화연구의 대부분이 벼농사 문화에 대한 고려를 빠뜨리고 있으며, 최근의 풍토론 재평가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했던 프랑스의 지리학자 오귀스텡 베르크Augustin Berque가 예외적으로 벼농사 문화에 주목하고 있다는 걸 지적하고 평가하는데,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풍토론은 역시 시골에 조명을 비추는 데 주목하는 제약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과연 풍토론은 이러한, 말하자면 장소적 한정과 한계의 근원에 머무는 것일까?    

노마 하루오野間晴雄가 지적하듯이 문제는 단순히 장소적 한정과 한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풍토론에는 '역동적인 경제관계'에 관한 의론이 결정적으로 빠져 있다는 점에 있다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野間 2005). 지금과 같은 세계화의 진전을 고려하면, 농촌이든 도시든 경제문제를 빼놓은 채로는 충분한 의론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건 명확하다. 그렇지만 다시 물음을 거듭하면, 기존의 풍토론에 경제적 시점을 보완하면 그것으로 충분히 의론을 만드는 것일까?

도대체 와츠지가 열었던 비교문화론적 관점을 다루었던 풍토론의 가능성은 장소적 한정은 처음부터 굳이 말하자면 표층적인 자연과의 관계조차도 뛰어넘는 곳에 있던 건 아닐까? 그 범위 안에서, 교외는 물론 도시의 한복판에도 풍토는 있다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 측면이 실은 이 단어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와츠지의 <풍토>는 부제에 '인간학의 고찰'이라 하듯이 단순히 자연조건의 열거만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자신을 객체화하고, '자기 인식의 전형'이 되는 풍토를 밝히는 것이며, 단순히 객관적 대상으로 기상과 환경과는 다른 새로운 자연의 관점을 제기하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원초적인 자연을 무시하고 인간화하며 왜곡된 자연상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경험에 근거한 근본적인 자연과의 관계를 밝히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점은 일상생활과 자연의 관계이다. 그 의미에서 건축가 렌조 피아노Renzo Piano가 자연의 반대점에 있는 인위적 산물인 건축에 대하여 말한 다음의 이야기는 시사적이다. 

건축이란 진짜 자연에 쌓아 놓는 제2의 자연이다. 건축을 직업으로 삼는 자가 환경에 대해 말할 때에는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렌조 피아노 <항해일지>)   

          
만약 우리에게 친근하다는 범위에서 도시의 건축 공간도 또한 '자연'이라 부른다면, 여기에도 또 풍토는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농경문화로 상징되는 시골 지역을 논하는 그것이 문제인 건 아니다. 그곳에서 적출된 의론을 어떻게 현대의 우리 일상생활의 문제와 접속시킬 것인가? -그러한 문제의식을 놓치지 않는 것이 지금 무엇보다도 풍토론에서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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