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터에 밀려난 소의 가치를 재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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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농업 전반

2019. 6. 19.

무슨 맥락인지는 모르겠으나, 이해진 씨가 트랙터-농업 노동력의 관계를 예로 들어 기업에게 과도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건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데 그게 적절한 예시가 아닌 것 같다. 
https://news.v.daum.net/v/20190618212400002


농업 노동력은 트랙터와의 경쟁에서 밀려 일자리를 잃은 게 아니라, 농업-제조업의 구도 안에서 제조업이 번성하며 그쪽으로 노동력을 빼앗긴 것 아닌가? 트랙터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잃었다고 할 수 있는 건 이전에 주요한 축력을 제공하던 "소"가 아닐까? (물론 미국에선 주로 말이겠다.)


이전엔 중요한 일꾼으로 인정을 받아 잘 관리되던 소는 트랙터라는 새로운 동력원이 등장하며 고깃덩어리로서 그 가치가 재발견된다. 이를 "소의 재발견"이라 명명해도 좋을 것 같다. 이후 소는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고깃덩어리=돈으로 취급되게 된다. 소가 닭처럼 빠르고 효율적으로 성장했다면 그만큼의 부가가치를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소는 닭에 비해 엄청나게 느리게 성장하고, 훨씬 많은 사료를 필요로 하며, 그에 따라 생산비가 높다. 그렇다. 그만큼 소의 고기는 비싼 가격이 책정되어 유통되는 것이다. 그러니 소비자의 입장에서 닭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입해 먹는 고기이지만, 소는 큰맘 먹고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사 먹을 수 있는 사치성 식료품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인간이 단백질을 공급받는 근원은 여러 가지가 있다. 크게는 식물성과 동물성이 있고, 또 동물성 안에는 소, 돼지, 닭, 우유, 달걀 등으로 세분된다. 이렇게 다양한 단백질 공급원에서 인간은 생존에 필수적인 영양을 취한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 인간의 소고기에 대한 열망은 더 싸고 빠르게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게 되었다. 대규모 산업형 축산이 그것이다. 집에서 몇 마리의 소를 돌보며 키워 내다팔던 과거와 달리 100마리는 우습게 사육하는 환경으로 바뀌었다. 인간은 소의 살을 더 잘, 빨리 찌우기 위해 농후사료를 최적의 시기에 가장 적당한 양을 공급하는 수단을 강구해내기까지 했다. 그로 인해 너른 농경지는 인간의 식량작물이 아니라 가축을 위한 사료작물을 재배하는 공간으로 전환되었고, 이제 인간은 식량 생산을 위해 자연과 맞서는 게 아니라 가축과 다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사료의 거의 전량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한국은 그런 상황은 아니겠다. 한국의 농경지는 부동산 개발의 광풍에 콘크리트로 덮여 사라진다.)


살을 찌우기 위해 공급되는 농후사료의 비중이 증가하며 소는 메탄가스를 더 많이 방출하기 시작했다. 메탄가스가 생성되는 건 소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농후사료의 섭취량이 증가한 건 인위적인 일이었다. 되새김질을 하는 소는 과거 주로 풀에 의지하여 살아갈 때보다 더 많은 양의 메탄가스를 방출하게 되었는데, 이는 온실가스의 주범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인간의 소고기에 대한 열망이 뜻하지 않게 커다란 환경문제의 한 원인이 되어, 이제는 인간의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우리는 과거처럼 아주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소고기를 먹으며 축하할 수 있을까? 그건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다시는 소를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키우지 못하는 상황이 닥치면 모를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한번 고기 맛을 본 인간은 큰 충격이나 깨달음이 있지 않는 한 그걸 끊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고기에 대한 열망이 어찌나 큰지 우리는 대체 육류란 것도 인공적으로 생산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소고기 생산 방식에 변화를 주는 일은 어떨까? 어느 정도 생산비용이 증가해도 좀 더 환경 문제를 고려하여 그에 더 나은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그건 그럭저럭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인다. 나는 이제 산책을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