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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힌 자의 열린 언어-이진우의 그림과 시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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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의 이것저것◀/이진우의빵이야기

2020. 11. 2.

갇힌 자의 열린 언어 -이진우의 그림과 시를 보고

1991년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이수호

 

 

1.

7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는 '감옥살이'가 보편화되었다. '징역' '감방' 혹은 '빵'이란 말로 자연스럽게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별을 단다'하여 역설적 권위를 부여 받기도 한다. 전도된 가치관의 한 양태이다.

 

60년대 군사독재가 시작되어 정석화되기 시작한 이 가치전도의 의식구조체계는 모든 부문에서 독특한 모습을 통해 나타났다. 학문과 예술도 마찬가지였다. 동시대 같은 지역에서 하나에 대한 평가는 극단화되었으며 중간이 존재할 근거와 현실을 잃어버렸다. 여기서 그것의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러한 현실을 인정하면서 말문을 열어보고 싶을 뿐이다.

 

감옥도 마찬가지다. 감옥의 구조와 현실이 이러한 우리사회의 모습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일반수와 정치수라는 대응기재가 그러하고 경찰에 연행되면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재판을 받고 구치소나 교도소의 문을 나가는 순간까지 이 부조화는 계속된다. 그 한편에 어떻게 보면 가장 무0?0워야 할 곳에서 이진우는 그의 지나온 30여년의 짧지 않은 삶가운데 가장 큰 자부심을 느끼며 당당할수 있는 곳이 '징역'이고 그는 지금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징역'은 '징역'이다. 그것이 편한 '징역'이라는 현실이다. 그의 표현처럼(스케치처럼)'야이- 이 자식들아 징역에서 잠이 오냐/ 야- 이 자식들아 징역에서 밥이 넘어가냐'라는 현실인식이 '징역'을 총체적으로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진우의 그림과 시(글)는 혼재된 가치의 어느 한편에 섬으로 스스로를 돋보이게 하거나 혹은 위로받지 않으려는 의미가 있고 강점이 있다.

 

그는 '잠도 안오는', '밥도 안 넘어가는' 징역의 가장 관념적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소화해내며 그 현실을 가장 소박하고 솔직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그의 그림이나 시는 자주.민주.통일의 상위개념으로 외화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고 그의 그림이나 시가 그가 그렇게도 많이 묶였던 붉은 오랏줄로 묶여 있지도 않다. 그것은 그가 언제나 달갑게 현실을 감싸쥐고 있으며 그것을 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그의 그림 '공안검찰 분쇄와 박노해동지 사형구형 철회를 위한 단식결의대회'(54쪽뒤)에서 자연스럽게 한 손으로 철창을 부여잡고 한 팔은 철창 밖으로 나와 철창을 감싸 안으며 손나팔을 만든 구도나 그의 시 '면회가 끝나 돌아 오는길에'의 '우리들의 입맞춤/ 유리창도 철망도 가로막지 못하고'의 표현 속에 보이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에 무릎끓지 않고 그것을 무조건 거부하며 돌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다 싸안으며 극복해 나가는 유연성과 성숙이 오히려 모든 것을 편안하게 해 주고 있다.

 

그의 그림에서 일관되게 관철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현실을 감싸안음'이다. 혼거방에서의 여러 생활들과 혼거방이란 구조자체가 보여주는 '징역'의 모습을 가장 애정어린 눈으로 솔직하게 바라봄으로 오히려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머금게 하는 것은 그의 투철한 '생활'과 '삶'의 정신일 것이다.

 

예술이 '삶'이나 '생활'과 유리됨으로 모든 사람들의 일상과 따로 있음을 그의 사실적 열린 눈은 그것을 밝게 드러냄으로 예술을 우리의 생활속으로 삶속으로 끌어 들이는데 성공하고 있다. 아니 우리의 삶 속에 생활속에 언제나 그렇게 함께 있는 예술을 그대로 떠나지 않게 붙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들은 모두 생활이다. 징역살이에서 경험할수 있는 일반적 사실들을 흥분하지 않고 차근차근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서울구치소'라는 큰 덩어리 자체를 자기 눈으로 바라보려는 넓은 시야도 있지만 '면회'라든지 구치소에서의 '밤'이라든지 '별' '편지' '검취' '재판' 등 모두 징역에서는 너무나 일상적인 삶들이다. 그의 그림은 더욱 그러하다. 징역살이의 모습들이 제약된 도구(건전지의 흑연이나 검정색연필)이지만 그의 탁월한 미술가로서의 구도를 통해 잘 표현되고 있다. 그의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한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낄 정도인 것은 그만큼 그의 눈이 뜨거운 현실에 밀착해 있기 때문이다.

 

2.

광의의 의미의 '언어'란 사물의 자기표현의 수단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 질 수도 있다. 인간의 언어란 문자를 포함한 인간이 자기 표현을 위해 동원하는 모든 수단을 말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말, 우리의 행동, 우리의 그림,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언어이다.

 

그중에서도 예술적 언어란 그 언어를 공동 향유함으로 감동을 불러 일으키게 하고 그 감동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넓은 의미의 아름다운(진실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의미에서 이진우는 그림과 시의 두가지 예술적 언어를 갖춘 행복한 사나이다. 그는 그림을 통해 시를 쓰고 있고 시를 통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 또는 그 둘이 정합됨으로 더 큰 협조를 이루기도 한다. p39 뒤쪽의 그림과 시 '밤에 못자고 이렇게 낮에 잔다, 그리고 또 밤에는 못잔다'는 징역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어 돋보이고 있다. 특히 그 그림의 표현 각도를 통해 우리는 이진우 자신이 팬티만 입고 관물대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즐거움을 통해 깊은 감동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으며 금방 씁쓸해지며 가슴이 답답해 오는 심리적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44쪽 뒷면 그림과 '일요일-지겨운 무료-할일 없어도 고역이다' 나 69쪽 뒷면 그림과 '우리는 더욱 커다랗게 하나이다'나 94쪽 뒷면 그림의 '내뜻대로 일어선다'와 같은 작품의 그림과 시와 그리고 이진우 자신이 함께하는 집체적 작품으로 새로운 감동을 우리에게 준다.

 

예술이란 우리가 가끔 걸치는 겉치레 옷이 아니다. 우리가 늘상 입는 생활복이어야 한다. 그림이 부잣집 거실을 장식하는 조형물이거나 시가 시집이라는 인쇄의 틀속에 갖힌 언어이어서도 안된다. 그것들은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우리의 삶과 함께 살아 숨쉬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진우의 시와 그림은 맑은 강물에서 힘차게 헤엄치는 살아있는 물고기들이다. 힘찬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은어떼 들이다. 그래서 그의 언어 속에는 싱싱한 물내음, 바람내음, 흙내음이 있다. 그것이 이진우의 생명이다. 그의 예술이다. 그의 예술적 언어는 시의 문자나 그림으로만 표현되지 않는다. 그의 징역살이의 전과정을 통해서 온몸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가 느닷없이 외치는 듯한 묘한 부르짖음이나 옆방에 있는 정윤서에 대한 시비성 몸짓들이 다 절묘한 예술적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그것은 그의 예술혼이 생활속에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징역이라는 큰 화폭에 혹은 큰 원고지에 온몸으로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있다. 시의 삶과 그림의 삶을 통해 우리의 징역이라는 현실을 시적인 세계로 변용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은 현실에 대한 애정이요, 진실에 대한 각성이요, 삶에 대한 진지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진우에게 닫힌 우리 모두에게 요구할수 밖에 없다. 더욱더 철저한 더욱더 진실한 더욱더 아름다운 더욱더 치열한 예술적 변용을 그의 작품에서 요구해야 한다.

 

가령 < 어느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 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

-정희성의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전문

 

이런 시가 우리에게 주는 감동을 생각하며 이진우는 그의 작품이 더욱 발전된 예술적 구조를 갖추기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임옥상의 '보리밭'이 주는 예술적 감동의 본질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새로운 경지의 이진우의 세계를 추구하기를 우리는 요구해야 한다. 생활과 밀착되어 있는 그의 삶 자체인 그의 시와 그림의 세계를 상대적으로 비교하기에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예술의 획득이란 점에서 현재 그는 그림이 훨씬 돋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어떻든 그의 작품세계가 (시가 되었든 그림이 되었든) 더욱더 놀라운 예술혼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의 시야가 더욱 심화되고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그는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주변을 살펴야 할 것이고, 피부로 현실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심장의 뜨거운 피로 현실을 데워야 할 것이다. 그의 세계는 감옥에 갇힌 징역살이에서는 안된다. 그의 세계관은 열린 세계속의 자유혼이어야 한다. 뺑기통에서 삶의 본질과 우주를 보는 생활예술가로서의 참 삶의 영위자로서의 가장 솔직한 한 인간으로서의 밝은 눈을 그는 가져야 할 것이다.

 

그의 닫힌 감옥은 오히려 이 모든 것을 열어줄 것이다라는데 우리는 의심하지 않는다.

 

( 위의 글은 제가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일 때 (1991년) 그렸던 그림과 시들을 전교조 사건으로 들어오신 이수호 선생님께 평을 부탁하여 그 당시에 받아놓은 글입니다. 같은 사동에 계셨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글부탁도 하고 특히 영치품-빵, 과자, 음료수 등등-을 즐겨 빼앗아 먹고 또 심심하여 좀 쑤시면 노래도 시켜댔으니 지금 생각해도 그저 미안할 따름입니다. 선생님! 그때 저 때문에 더 수고 많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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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서울 전태일기념관에서 있었던 노동미술제 포럼에서 이수호동지를 만났다.

세상에나 전태일기념관 이사장이셨다. 

마구마구 반가운 마음을 수다라도 떨어줘야 하는데 바로 포럼 시작되서 

더이상 이야기는 하지 못해 아쉽아쉽하였다. 

인사말인가 격려사를 하시면서 올만에 만난 빵동지를 언급하셨다.

하하하~~ 서울구치소, 안양교도소 동기 이수호동지!! 
하하하~~ 여전히 나보고 소란스럽다고 하네. 
결혼식 주례를 부탁했는데  결혼식 날이 전교조 전국집회가 있는 날이라서 못하시게 되었는데
역시 지금 생각해도 아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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