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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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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가의글

2009. 5. 31.

묵상의 시간

일년 전, 갑작스런 형부의 죽음 앞에 우리 형제들은 얼마나 당황하고 애통해 했는지 모른다. 어느덧 1주기를 맞아 여동생과 함께 언니를 위로하러 가자는 약속을 했다. 대전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언니도 여느 부부들처럼 티격태격해 가며 살았던 형부와의 결혼생활이었지만 요즘 들어 부쩍 형부가 보고싶다고 울먹였다.

열심히 기도하는 묵상의 날들로 이어진 생활인지라 기일이 되면 성경말씀 읽고 찬송하며 주기도문으로 마치려고 했던 뜻과는 달리 시집 쪽의 눈치를 살피느라 재래의 유교 풍습으로 마련한, 상차림에서 언니의 고뇌를 엿볼 수 있었다.

지난해 초상을 치를 때 성도님 여러분이 오셔서 기도를 하는데 시집 쪽의 여러 명이 되는 시누이들이 "예수쟁이들만 집안에 끌어놓았다."고 마루바닥을 치며 통곡하던 모습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술을 몇 순배 올리고 절을 하고 차례를 지냈는데 그대로 마치기에는 미진한 것 같았는지 언니는 다시 성경구절을 읽었다. 첫 기일이라 시갓집의 기분을 거슬리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지만 아무래도 언니와 아이들의 뜻대로 지내지 못한 것이 섭섭한 것 같았다.

형부 생전에 이웃들로부터 들었던 많은 덕담을 얘기하며 60세에도 미치지 못한 생명밖에 주시지 않은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이 일순 들기도 했다.

요즘 읽고 있는 어느 선생님의 '신앙 간증' 책을 보며 내 마음에 구주救主를 영접한 세월은 몇 년이 흘렀건만 교회조차 건성건성 다녔던 나의 믿음 행위에 심한 부끄러움이 일었다.

책의 저자처럼 나 역시 한때는 이론적으로 생태학적으로 성경구절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고 형부처럼 선량한 사람이 일찍 생을 마감하는 현실의 상황과 의문투성이의 성경구절이 난해하기만 했다. 그럴 때마다 내 신앙은 사상누각沙上樓閣처럼 흔들거렸고 장막 속에 가려진 사물의 허상을 보는 것만큼이나 애매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실체를 보듯 마음속에 하나님의 음성을 몇 번이나 느꼈다는 그 분의 믿음 증거에 내 마음은 묵상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었다.

침통해 하는 언니를 보면서 자랄 때 우리 동생들은 언니 덕을 많이 보았던 기억을 떠 올렸다. 언니는 어머니보다 더 자상한 마음으로 학교 갈 때 식사며 옷이며 도시락을 챙겨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생계를 위해 바쁘셨던 어머니를 대신해 언니가 살림을 도맡아 우리를 보살펴 준 것을 생각하면 그 은혜에 어떤 보답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서 딴 감으로 홍시를 만들어 한 상자씩 나누어주고 큰 조카는 기어이 역까지 나와 차표까지 끊어주는 마음씀씀이에 눈물이 날만큼 언니가 고마웠다.

충분한 보답을 해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항상 무엇이든 챙겨주는 언니의 손길은 내가 언니를 생각하는 정보다 더 후하고 덤을 얹어 한아름 안겨주는 것이어서 도저히 따라 갈 수 없다.

혈육이라는 것, 가족의 굴레는 얼마나 무섭고 끈질긴 것인지 모른다. 그러기에 잘못이 있더라도 이해해 줘야 한다. 독립을 한다 하드라도 가족으로부터 미움을 가지고 떠난다면 그건 진정한 독립이 아닐 것이다.

옛날 언니가 막 결혼을 하고 형부를 따라 서울로 갔을 때이다. 그때는 형부가 취직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한 신혼살림인지라 형편이 궁색할 수밖에 없었다. 언니를 보내 놓고 몇 달이 지나니 언니가 보고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여동생과 같이 주소를 들고 찾아갔는데 60년대의 서울도 사대문안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스산한 허허벌판이었다.

논밭이 있는 곳, 어느 모퉁이에선가 두세집 있는 판잣집에서 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정든 고향길을 떠난 향수와 경제적인 어려움이 겹쳐서 고생을 한 탓인지 언니는 살이 많이 빠지고 무척 수척해 있었다.

우리는 언니를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우리 언니 이런 고생시키려고 결혼했느냐면서 형부를 질책했고 언니 손을 붙잡고 집으로 내려가자고 떼를 썼던 기억이 난다.

혈육의 정으로 뭉쳐진 동기간의 우애는 야윈 언니 모습에서 도저히 형부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에사 언니와 더 좋은 노후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일찍 간 형부를 생각하면 처제들에게 심한 모욕과 원망에 찬 말을 듣고 괴로워 했을 형부 심정이 어떠했을까 생각되고 왜 그런 말을 했던가 싶어 새삼 후회스러워진다.

우리는 함부로 남을 멸시해서도, 모함해서도 안됨을 알고 있다. 사람의 운명이란 어떤 형태로 달라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를 타고 차창너머 눈앞에 펼쳐진 자연을 보니 태초太初 부터 항상 말없이 제자리에 서 있는 대자연의 변함없는 모습과는 달리 고작 몇십년 수명의 한계를 가진 인간의 모습은 얼마나 나약한지 …

논밭이며 가옥이며 길이며 어떤 구조물이건 인위적으로 사람의 손길이 닿는 것에는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는다. 헌데 자연적으로 생성된 산들이며 하늘이며 우주의 공간 속에 꽉 차 있는 알 수 없는 운기를 느꼈을 때엔 이 어찌 창조자의 뜻이 있다 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감동이 이는 것이다. 이 지구상에서 무에서 유로 되는 어떤 것도 결코 보지 못하매 온 우주와 그 많은 생명체들, 그 사랑은 "어디에 연유하고 있을까 ! " 경외심마저 이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 또한 창조자의 주관이라는 대 우주의 원칙에서 우리가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누구에겐가 가졌던 분노도 원망도 사그라질 수 있었다.

형부가 가신지 일년이 된 이제야 형부의 죽음을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소에도 형부에게 다정한 말 자주 드리지 못했던 처제의 무심함이 그 순간 한이 되어 내리고 있었다.

삶에서 끊임없이 향기를 풍길 수 있는 인격체가 되고 완숙한 경지의 사람이 되기까지는 얼마나 큰 극기가 요구되는지 모르겠다. 나는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나 자신은 과연 무엇을 했으며 얼마나 성숙한 인격체였나 … "고 반문해 볼 때가 있다. 한 때는 자기교만과 도취에 빠져 남의 말, 남편 말을 건성으로 받아넘기고 무시할 때도 있었다.

이제 나의 존재가 실로 모든 면에서 얼마나 미미하며 인격은 또한 얼마나 빈약한가를 많이 깨닫는다.

겸손해지기 위한 묵상

침묵하기 위한 묵상

가족과 혈연의 사랑을 위한 묵상

이제 내 생활에서 묵상의 시간을 위한 기도를 올릴까 싶다.

언니가 우리에게 베푸는 사랑에 버금가는 따뜻한 마음을 영혼이 가난한 누군가에게 나누어주리라 묵상해 본다. 요즘같이 살벌한 시대에 대문을 잠그지 않고 사는 언니 집에는 무시로 손님이 드나들며 얘기를 나누고 어려운 일 하소연을 한다.

어느 소설의 주인공 「파레아나」처럼 아무리 괴롭고 슬픈 일을 당해도 그것을 극복하고 모두 기쁨으로 전환시켜 남에게 전달하는 성품의 언니는 분명 파레아나이다.

세상에 누구보다 겸손하고 소탈하며 거짓없이 살아가는 언니의 모습을 하나님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해 보며 언니를 닮는 삶을 살리라 또 묵상해 본다. <1997. 1. 크리스천 아카데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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