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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첫날의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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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가의글

2009. 5. 31.

신년 첫날의 표정

무인년 첫날, 새벽에 잠이 깨어 창문을 연다. 새로운 한 해의 상스러운 징조를 예고하듯 눈이 소복이 내렸다. 지난 한 해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바쁜 1년을 보낸 것 같다. 연초 목사인 사위가 개척교회를 세워 걱정을 했었고 5월엔 장남의 결혼식도 있었고 가을엔 막내의 일본 유학도 있어 영욕靈肉이 한껏 바쁜 해이기도 했다.

간밤 송구영신의 행사로 교회에서 자정 촛불예배를 보고 성도들 각 가정마다 합당한 말씀의 성구 구절을 목사님으로부터 받아 액자에 넣었다.

우리 가정에서 받은 말씀은 신명기 41절의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의 열조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는 말씀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성구를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리라 다짐해 본다. 새해 첫날인데도 왠지 신명이 나지 않는다. 집안이 텅 비어 썰렁하기도 하지만 아직 늦잠의 미련 때문에 뒤척이는 남편의 모습에서 명절이란 기분이 조금 덜해지는 듯 하다. 음력설을 쐬기에 별식을 차리는 것은 아니지만 아들과 며느리가 일찍 와서 아침상이나 같이 차려 먹었으면 했다. 하지만 간 밤 교회에서 헤어진 시각이 새벽 2시쯤이니 일찍 오지 않아도 이해가 되는 분위기였다.

아이들이 어릴 때가 정말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설빔 하나씩 장만해 주면 좋아서 기뻐하던 모습이며 조금 분주하고 가사일 힘들었던 내 처지였어도 식구들 웃음꽃 피우며 식탁에 둘러앉아 맛있게 음식 먹던 옛날이 어느덧 꿈같이 흘러가 버렸다.

창문을 열고 사르락이며 내리는 눈발을 보며 다소 의기소침해진 기분이 되었다. 남편과 이렇게 둘이서 살다 더 나이 들어 급작스럽게 블행한 일이라도 당한다면 하는 불길한 생각이 회색빛 날씨만큼이나 내 마음을 어둡게 했다.

요즘은 전체 노인의 반 이상이 노인들끼리 사는 단독세대이며 배우자 없이 혼자 사는 경우도 꽤나 많다는 소식이다. 전통한국사회에서 행하던 관습대로 노인들이 죽음을 맞게 되면 안방으로 옮기고 온 가족이 임종을 지켜보며 기다렸던 행복한 임종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 살고 있다.

죽음의 조건이 달라진 요즘엔 절망의 무게와 상관없이 죽음을 스스로 준비해야 할 때인지도 모르겠다. 죽음은 결국 혼자서 직면해야 하는 절대적인 고통일 수밖에 없다. 우울한 기분이 비약하여 불길한 생각까지 하게 됐던 것은 너무 조용한 집안 분위기 탓이리라.

한편생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많은 체험과 경험을 거친다. 20대에 생각했던 싱그럽고 무한한 행복만이 펼쳐질 것만 같던 밝은 미래가 30대가 되면서 조금은 퇴색되고 세상살이가 꿈꾸었던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체념이 서서히 들기 시작한다.

40대에 들어서서 감당해야 할 아이들의 교육비 몫에 다른 문제들은 뒷전으로 물러나야 할 시점을 지나 50대로 들어서니 아이들의 결혼문제가 대두되는 시간이 다가온다. 한시름 놓고 60대에 이르러 여유를 가지고자 하나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 인생 유전행로이다.

결혼이란 동화속의 결말처럼 행복한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소한 감정들과 삶의 틈바구니 속에 짜여진 모자이크 같은 생에서 결코 빠져 나올 수 없는 인간이 아닌가.

"따르릉 … "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정신을 차려 수화기를 드니 세배 드리러 오겠다는 며느리의 밝은 음성이 조금이나마 기분을 전환시켜 준다. 이제 자식들 전화나 기다리고 있는 중늙은이로 변한 세월에 나자신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연초 연례행사중 가장 먼저 하는 안부전화를 시집쪽 대소가에 쭉 돌린다. 큰 시누님, 작은 시누님, 서방님댁 등에 "멀리 떨어져 살아 자주 찾아 뵙지는 못하나 집안식구들의 건강과 평안을 염려하는 안부를 전하다 보면 사랑과 정이 담긴 형제애를 느끼게 된다.

아들이 결혼해서 분가한 뒤부턴 독립된 개체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아버지쪽이나 어머니쪽 또 처가쪽 어느 친척분들에게도 새해 아침에는 전화상으로나마 인사를 하라는 당부를 했더니 벌써 아침부터 집집마다 문안인사 드렸다는 며느리의 말에 한결 마음이 뿌듯해 왔다. 또 일본에 있는 막내에게도 전화가 왔다.

그래야지. 자신들의 젊은 기분에 도취되어 자기 존재의 뿌리를 모르면 안되겠지 ! 어린애라는 시각으로만 보아왔던 부모의 눈에 이제 어른으로서의 면모를 지켜간다는 안도감이 나를 기쁘게 했다.

늦은 아침을 먹고 아들과 며느리의 권유에 따라 점심은 수원에 있는 맛좋기로 소문난 갈비집으로 바람도 쏘일 겸 가기로 했다. IMF시대라고 움츠리는 요즈음의 경기불황에 갈비집 가는 것이 망설여져 사양을 했으나 새해 첫날 모처럼 가족끼리의 나들이인데 어떠냐는 아들의 성화에 흔쾌히 승낙을 하고 출발했다. 딸네 집에 들러 합세해 가며 마음까지 얼어붙어 설렁한 이 때 식당인들 손님들이 있겠나 하는 생각으로 갔는데 의외로 가족친지들과 함께 식사하는 가족모임으로 식당 안은 가득 메워져 있었다.

메주를 쑤어 적당한 크기로 만들어 벽에다 켜켜이 걸어 놓아 말리는 모습이 퍽 정겨운 식당이었다. 시간의 정체성이 필요한 이 때 왠지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메주를 직접 만들어 본지가 까마득한 세월 저 너머이다. 시어머님이 살아 계실 때는 된장도 고추장도 직접 담아 먹었기에 시래기국을 끓여도 구수한 된장맛이 입맛을 돋구었고 어머니 손으로 주물러 주신 나물무침도 향기가 나는 듯 맛이 있었다.

장 담그는 일조차 잊어버린 요즘엔 그저 슈퍼나 백화점에서 사다 먹는 편리함과 안이한 생활에 젖어 게으름을 피우고 보니 전통 관습마저 뒷전으로 미뤄버린 나의 나태함이 메주를 보는 순간 되살아 나 며느리 보기가 민망스러웠다.

옛날로 돌아가자. 모두가 절약하자. 다시 나라를 일으키자고 하지만 그 동안 세류世流에 휩쓸려 씀씀이가 헤퍼진 속물근성으로 꽉찬 나부터가 반성해야 될 시점인 것 같았다.

무절제한 생활을 한 건 아니나 더 절약할 수 있는 요소가 있을 것 같아 살펴보는 요즘이다. 마시는 커피조차 전량수입에 의존하는지라 되도록 마시지 말까 생각해 본다.

"어머니 무슨 생각하세요 ? " 라며 많이 먹길 권하는 아이들의 효심이 고마워서 아침에 가졌던 썰렁했던 기분도 물리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점심을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 마지막엔 딸집으로 가서 과일 파티를 하고서야 일어서니 하루해가 꼬박 다 지나고 있었다. 가족과의 모임만큼 즐겁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어디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매사에 자신감이 없어지는 나에게 아이들은 큰 힘이 되어 주고 있다.

금년엔 우리 가정에 주신 성구말씀 따라 하나님이 주신 규례와 법도를 최대한 잘 지켜 준행할까 한다. 또 여태껏 실행치 못했던 성경말씀을 모두 독파하리라 결심해 보며 하루를 마감한다.

<1998. 1. 기독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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