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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카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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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가의글

2009. 5. 31.

나의 생각 나의 철학

아직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외삼촌과 이모님의 좋은 글이 있으니 좀 잘못 쓴다 해도 덮혀질게다.


선과 악


벌써 이십년도 지난 것 같다. 대학 갓 입학 했을 때 난 종교에 대하여 무척 관심이 많았다. 기독교는 논리가 맞지 않았다. 전지전능한 신이라는 말에 모순이 느껴졌다.(☞ 1) 아무튼 난 기독교의 유일신에 대한 거부감과 인간의 논리로 이해되지 않는 것들 때문에 기독교를 오랫 동안 가까이 했지만 신봉하지는 않았다. 불교에 대한 교리는 어렵기도 어렵지만 역시 계(system)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만 중시, 식물보다는 동물을 중시, 무생물 보다는 생물을 중시하는 부분에 대하여 뭔가가 부족한 듯 하다. (☞ 2)
삼법인;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라는 멋진 사상이 있지만 역시 인간의 관점이다.  

또한 인간의 감정, 감성에 대한 내용들에 대하여 설명한 종교는 없었다. 물론 내 무지의 소산이겠지만 찾아 볼 수가 없어서 기존의 종교를 가지고는 내 삶의 근본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소위 말하는 나쁜 놈들 남의 물건을 빼앗고 훔치고 하는 자들도 때로는 아름답게 비춰지고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또한 다가올 미래가 악인데도 지금 현재 선을 행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하는 의문에는 나 스스로가 답할 수 없었다.

예술의 세계에서는 선과 악이 없다는 사실을 깨닿고는 선과 악이라는 이원적인 세계관을 아우르는 "순수"라는 개념을 생각했다. 순수라는 것은 그 자체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그렇지만 불완전한 순수는 악도 될 수 있고 선도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순수라는 것은 진실한 감정이 모여서 된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그 것을 토대로 하여 여러가지 상황에 맞도록 해석해 가면서 내 삶의 지표로 삼고 있다.


행복과 불행에 대하여

인간이 판단하건 데 다른 개체를 죽이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나쁜 일이다. 그렇지만 신의 관점에 있어서도 과연 같을까? 불교에서는 살아 있는 생명체에 대하여는 말하고는 있지만 지금 우리가 무생물이라고 부르고 있는 돌에게도 그런 자비의 감정을 느껴야 되는가? 채소는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닌가? 가이아 이론에 따르면 무생물과 생물체가 결합하여 한 계를 이룬다고 한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가? 적어도 우리가 우리의 삶을 결정할 수는 없지만 인류 모두, 아니 전 은하계를 통털어도 똑같은 삶의 형태를 갖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시공의 세계를 합하게 되면 거의 불가능한 수치이다.

내 존재가 스러져 가는 것에 대한 생각 - 아직도 현재의 생 이후의 것은 모르지만 후생이 있던 없던 신의 관점에서 보면 교통사고가 나서 먼저 죽든, 나중에 죽든 그 생은 누구의 것과도 같지 않기 때문에 그 것 자체만으로 의미를 가져야 된다. 우리의 사회가 만든 규범이라는 것에 대한 속박과 굴레의 틀 속에서 스스로의 감정을 속박하는 것은 나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그건 해탈에서 더욱 멀어 지는 것으로 생각 된다. 오로지 내 감정을 얼마만큼이나 순수하게 만들어 가식적인 행동이 아니라 생각과 행동을 일치 시켜가는 과정이야 말로 우리가 삶을 영위해 나가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한다.이 것을 행복이라고 부르자.

그러면 상대적으로 불행할 지라도 스스로는 지극히 행복할 수가 있으며 존재에 대한 모든 의문을 해결할 수 있다. 결국 행복과 불행은 인간이 판단하는 것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환경에 따라 수단이 달라질 수는 있지만 본질적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가 행복하다.그리고 불행하다.


비록 다른 이에게는 불행하게 보일 지라도 그 것은 강요된 감정이며 규범의 굴레이다.

비록 다른 이에게는 행복하게 보일 지라도 그 것은 강요된 감정이며 규범의 굴레이다.

해서 난 가장 순수한 감정이야 말로 최고의 지성으로 생각한다. 그 것은 지적인 사유도 필요 없으며 깨달음도 필요 없다.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의 길을 찾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from 82.7.1


그러면 기존의 도덕은 왜 영위하는가? 오랫동안 습관화 되어 왔기 때문에 그리 행동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편하기 때문에 ,, 유교의 종심소욕 불요구

☞ 1 전능에 대한 반박 --> 하나님은 누구도 들 수 없는 큰 돌을 만들 수 있는가? 1) 만들 수 없다면 --> 전능하지 못하다 2) 만들 수 있다면 --> 하나님은 자신은 들 수 가 있는가? ㄱ) 자신이 들수 있다면 -- 누구도 들수 없는 돌이 아님 (그런 돌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전능하지 못함) ㄴ) 자신이 들 수 없다면 -- 자신이 전능하지 못하다는 의미임. 이 것은 물론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우스개 소리이지만 

 

창세기에서 시작되는 금단의 열매를 먹었다는 이유로 추방을 명하는 기독교의 편협한 신은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적어도 전지전능을 말하려면 관대,너그러움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어야 된다.


☞ 2 가이아 이론 : 원래는 지구가 생명을 갖고 있는 것 처럼 행동한다라는 이론에서 출발하여 무생물과 생물이 합하여 계를 구성한다는 이론으로 공기,물,..등 무생물 역시 생물만큼 중요하다는 이론으로 생명은 무생물 없이는 영위 할 수 없다. 생물과 무생물의 구분이 없이 똑 같이 소중하며 똑 같이 의미가 있다(있을 것이라는)는 이론으로 불교에서 얘기되지 않는 무생물에 대한 중요성을 포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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