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람들 이야기/삼국지와 영웅 이야기 2

수미니 2007. 10. 22. 00:13

  

  


후한 말기 조조가 혼란한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선택하여 차근차근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중국 각지에서 조조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서 고심하고 있는 호걸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행동은 조조만큼 영리하지 못했다. 이들은 스스로의 야만성과 어리석음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자신의 장래를 스스로 망치고 있었다.  자신이 잘못된 길로 가면서도 무슨 길을 가는지 알지 못했다는 말이다. 지켜내는 것 말고는 별다른 능력이 없었던 다른 인간들은 차지하고서라도, 일찌기 조조와 경쟁관계에 있었던 원소와 원술, 나아가 거의 중국대륙을 다 차지할 뻔 했던 동탁 같은 인간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굴러온 복덩어리를 제발로 차버린 넘들.... 비단 사회나 조직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올바른 목표설정과 정확한 상황판단, 그리고 이에 따르는 시의적절한 실행이 필요하겠지만, 지도자에게 있어 이런 능력은 필수적인 것이다. 게다가 지도자 동지들의 거동은 엄청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럼 그들의 행동을 한번 살펴보자.....               


뭐 자기가 힘이 좀 있다싶으면 이런 식으로 세상을 내려 보면서, 떡 주무르듯 맘대로 가지고 놀아보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황제 자리다.  그게 그리 좋은건가?  하긴, 요즘 우리나라도 대통령되고 싶은 사람 무지 많더라...... 우리도 잘 골라야 되는데.....  그래야 우리 같은 보통 국민들 생각해주면서 정치하지....


 

 

다시한번 말하지만 서기 190년에서 200년에 이르는 혼란기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드러낼 기회가 있었음에도 조조 한사람만이 그 기회를 움켜 잡았고, 그래서 조조 정도가 난세의 영웅이라 불릴만하였다.  특히나 일찌기 강대한 세력을 지니고 있었던 동탁이나 원소 원술 등은 스스로가 범한 정치적 판단 착오로 인해 스스로의 목을 죄게 된다. 그런데 이 정치적 판단 착오란 주로 한나라 황제에 대한 것이었다.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비록 프랑스의 루이 16세가 '짐은 곧 국가다.'라는 슬로건으로 절대왕권을 완성시켰다고 하지만. 사실 아시아에 있어서 고대의 국왕은 곧 국가였다. 특히나 중국에 있어서 황제의 권위는 천자라고 하는 이름으로도 알수 있듯이 신성 불가침한 국가의 상징이었던 것이었다. 물론 이런 황제들에 대해 처음부터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고 나서는 일들이 있기도 했지만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다. 있다면 국가가 만들어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틀이 다져지지 않았던 경우이거나 국가가 오랜세월 부패하고 사회 시스템이 쇠약해져서 이미 황제가 황제가 아님을 모든 백성들이 잘 알고 있는 경우였다.

 

             옛날에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 있어서 황제에 대한 충성은 바로 국가에 대한 충성이었고, 그것이 신하의 충성도를 가늠하는 잣대였다. 그런 면에서, 훗날 조조의 둘째아들 조비가 한나라로 부터 선양을 받았고, 이런 이유들때문에 조조가 간신 혹은 역적으로 불리게 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앞서 말한 기간동안 조조의 태도는 역적의 그것이 아니었다.  행위로만 본다면 적어도 동탁이나 원술 정도는 되야 역적이라 할만하다. 동탁부터 이야기하자..... 동탁은 현직에 있는 황제에 대해 야만적인 폭압을 행사했는데 그것은 바로 폐위이다.  동탁이 수도 낙양에 진주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날..... 갑자기 황제를 바꿔야겠다고 말한다.  이유는 ..... 동탁 말대로 하자면 어린 황제 유변은 멍청하고 유약한 반면, 진류왕 유협은 성군의 자질을 갖고 있다는 거다.(堯圖之表)..... 사실 이말이 전혀 근거없는 말은 아니었다고 그런다. 삼국지 동탁전 배송지 주는 전략典略과 헌제기獻帝記 등의 책을 인용해서 다음과 같은 상황을 이야기한다. 동탁이 낙양에 진주할 무렵 낙양은 이미 혼란에 빠져 있었다. 대장군 하진은 이미 내시들에게 살해당했고, 열네살 먹은 소년황제 유변과 아홉살먹은 동생 진류왕 유협은 민간에 흘러들어갔다가 천신만고끝에 낙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동탁은 병사들을 거느리고 황제를 맞았다. 근데 이런 모습을 보고 황제 유변은 징징짜고 난리를 치면서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는 거다. 그래서 진류왕 유협에게 물으니 또박또박 분명하게 대답해댔으니..... "동탁은 이걸 보고 크게 기뻐하면서, 황제를 바꿔야 하는거 아냐? 하고 생각했단다.(卓大喜, 乃有廢立之意)"  그치만 이런거 가지고 황제를 바꿔야한다면, 황제 수시로 바꿔야 한다. 정말 동탁이 의도하는 바가 아니라는 말이다.


동탁은 일찌감치 하진이나 그 이전의 권신들처럼 허수아비 황제를 등에 업고 정권을 장악한 뒤에, 결국 황제의 자리를 빼앗는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거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만약 말야... 동탁에게 허수아비 황제가 필요했다면 유변을 그대로 남겨야지 유협으로 바꾸는게 말이되? 이건 말야.... 아마도 잠시 동탁이 멍청한 황제 보니까 답답해서 바꾸고 싶었을 거야! ' 라는 식의 반론 말이다....... 그렇긴 하다....  동탁 이 넘처럼 무식하고 용감해서..... 한 때 기분에 따라 못할 짓이 없는 넘이다. 속된 말로 지 꼴리는 대로 한다고... 바꾸고 싶으니 그냥 바꾼거 일수도 있다. 그런데 말이다.... 동탁이 무식한 서북 변방의 군벌이었으니 더더욱 그런거다......  


황제를 바꾸려고 했을 때, 동탁 입장에선 이렇게 생각했을 거다.  ‘수도에 입성해서 권력 잡았다고는 하지만 이 동네에서 나 알아주는 놈 하나 없다. 게다가 무식하고 무시무시한 놈이라고 소문 나있는데.... 이 상황을 역전시켜야 정권이 안정된다.  이 넘들 몽땅 나한테 굽실거리게 할 방법이 없을까? 그런데 상류층들 하나하나 끌어들여서 말로 구슬리기엔 시간도 아깝고, 다른 넘이 끼어들 여지도 있다..... 게다가 내가 그딴 잘난 척 하는 서울 넘들 한테 굽신거리기는 싫다.  그리고 그래봐야 이 서울 넘들은 날 알아주지도 않을 거다.  그러면?..... 내가 황제도 맘대로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보여주면 지들이 ㅆㅂ 어쩔꺼야! 그래 답은 힘에서 나오는거야 그렇지!.... ' 

 

이렇게 보면 동탁은 용감하니까 황제를 자기 맘대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이긴 하지만 멍청해서 그렇게 바꾼건 아니라는 말이다.  이미 자신이 대적해야할 상대방의 심리를 읽고 있었고, 이들을 철저하게 굴복시키기 위해(그 넘들이 겉으로 굽실거리고 맘속으로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런 무식한듯한 행동을  일부러 한 것이다.  동탁의 이런 대응은 상대를 파악한 후에 가장 빨리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동탁이 이런 생각을 해낸 것에는 나름대로 원인이 있다.  수도 낙양에 사는 인간들이 교양 있고 충성스러운 척 하면서도, 막상 눈앞에 권력이나 무력의 위협이 있으면 더 쉽게 굴북한다는 것을 알았던 거다.(속 알머리 없으신 두환 아저씨, 친구들 시켜서 탱크 몰고나오게 하시더니 초스피드로 대통령되시고, 이어서 관계나 언론계, 그리고 학계에 계시던 수많은 넘들이 전직 장군님한테 아부하면서 장관하고 국회의원하신 일들이 생각이 난다. 한참 잠잠하더니 그때 장군님 뒤치닥거리 하시던 인간들 중에서도 다시 쪽팔림을 무릅쓰고 국회의원 하시겠다고 나오려는 분들도 계신것 같더라.... 하긴 잠시 쉬지도 않으시고 꾸준히 하고 계신 분들도 있다.)


삼국지 동탁전 배송지 주의 구주춘추九州春秋에서는 동탁이 처음 낙양에 들어올 때 병력은 삼천에 불과했다고 한다. 동탁 이 넘 야만적이고 무식해도 동시에 교활하고 권모술수에 능한 인간이다.  잔머리하나는 잘 돌아간다는 거다. 아시다시피 무식함이랑 영리함이랑은 서로 상관관계가 없다. 자신의 군사적 역량을 수도의 지도층에 보여주기 위해서 자신의 부하들에게 매일 밤 평민인척 옷 갈아입고 살그머니 수도를 빠져나갔다가, 낮에 북치고, 장구 치면서 다시 들어오라고 그랬다. 이러기를 몇일 동안 계속하였으니... 수도에 있는 사람들 모두 동탁의 군대가 수 만명은 되는 줄로 착각하게 되었다.  결국 정권은 자연스레 동탁에게 넘어갔고, 문무백관들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이정도면 동탁이 멍청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동탁은 자신의 사기극이 성공한 것을 보고 의기양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서울 넘들 진짜 멍청하고 겁 많네!' 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만 잘 이용하면 '내 지위를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고, 영영 이 넘들을 내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과 함께.....  그리고 찾아낸 방법이 황제를 바꾸는 거다.  앞서도 말했다시피 황제는 곧 국가나 다름없는 권위를 가진 자리인데,  그걸 좌지우지하는 인간은 지극히 숭고한 동탁 자신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거기다  황제 유변을 폐위시키면, 개네 엄마 하태후도 정치판에서 제거할 수 있다. 왜냐고? 이번에 내세울 유협의 생모 왕미인이 일찌기 하태후에 의해 독살당했으니, 유협이 황제가 되면 수렴청정하고 있는 하태후 제거에도 명분이 생기고........ㅎㅎㅎ 이러고 나면 황제의 뒤를 지켜줄 사람도 없게 된다. '이렇게 하면 위신도 세우고 꼴사나운 아줌마도 제거하고 일거양득, 일석이조......... 도랑치고, 가재잡고! 나 너무 똑똑해!'  라고 생각한 거다. 결국 동탁은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실천한다.          


그런데 동탁이 잘못 판단한게 있었다.  문제는 수도에 사는 겁쟁이 지도층 인사들이 아니었다.  우리나라도 이승만의 자유당 정부는 4.19로 무너졌고, 전두환 아저씨(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분께서 군인으로만 살으셨다면, 정말 멋진 군인이었을거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 군인출신은 정치 못하냐구? 그거 아니다. 내말은 전두환 장군이 훗날 현실 정치에 참여하려 했던 것 자체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과정을 통해서 실권을 잡았고, 또 군대에 몸담고 있을 때랑 똑같은 사고방식으로 정적들을 상대했으며, 그 때문에 적군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했다는게 문제라는 말이다.)가 여러 사람들 위협하고 꼬셔서 만든 민정당도 87년 6월 항쟁과 친구라고 믿었던 노태우 아저씨의 위대한 결단(혹은 밀실 정치야합?)에 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아직도 민정당의 후광을 보고 있는 분들도 아주 많이 계시긴 하지만...)    다시 말해, 너무나 큰 상대인 온 국민을 적으로 돌려버린 거다. 이 거대한 상대는 언뜻 보기에는 힘없고 어리석어보이지만 그들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른다거나 정말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던가하는 중요한 때가 오면 그들은 본래의 힘을 발휘한다.   결국 동탁은 국민의 적이며   "천하가 더불어 토벌해야할 대상, 전국민이 함께 격퇴해야할 대상(天下共討之, 全國共誅之)"이 되어버린다.             


황제를 맘대로 바꿨다고 온 국민이 반항하고 나섰다는 건 국가와 천자가 일치한다는 사고가 당시 백성들의 맘속에 뿌리깊이 박혀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황제를 바꾼다는 것은 정권의 존립자체를 위협할 만큼 큰 위험을 안고 있는 도박이다. 근데 앞서도 말했다시피 도박은 상황을 잘 파악하고 그에 맞게 행동해야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잘못하면 믿는 도끼로 자기 발등을 내리치는 거다.  이런 비슷한 발상을 한 넘이 얼마 전에도 있었다. 때는 유협의 아버지 영제 때이다. 광화光和 7년(서기 184년), 기주자사冀州刺史 왕분王芬은 지방호족들과 결탁하여 영제를 폐위시키고 대신 합비후合肥侯(이 합비후가 누구였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여튼 황실 종친이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를 황제 자리에 앉히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이 일에 참여했던 넘 가운데 앞서 살펴본 조조의 오랜 친구 허유가 있었다. 그리고 이 넘은 조조를 찾아와 상의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조는 이 제의를 단칼에 잘랐다. 삼국지 무제기의 배송지 주에서는 위서魏書에 기록된 조조의 말을 인용한다.   조조는  "웃기지들 마시라!  황제를 폐위한다는 거... 천하에 제일 못되먹은 불길한 일이야!(廢立之事, 天下之至不祥也.)"라고 말했다.  덧붙여서  '옛날 성현들이 그런 일을 한 경우도 있긴 했지...  근데 그건 천자가 포악하여 온 국민이 분노할 때, 수많은 사전 검토를 한 뒤에 실행했다.  거기다 한나라 초기 일곱 제후가 연합해서 반란(기원전 154년에 발생했던 七國之亂. 때는 무제의 아버지 景帝 시기, 중앙정부의 중앙집권화 정책에 반발한 지방제후들이 일으킨 반란이다. 이 반란에 참가한 제후들은 모두 유씨 일족이었다.)을 일으켰을 때, 그 넘들 세력은 지금 니네 보다 훨씬 더 컸지만 실패로 끝나더라..... 니들 실력이 그때 제후들만큼이나 된다고 생각하니?' 라고 말했다.       


한초漢初 칠국지란七國之亂...... 이때의 七國 諸侯 연합군은 한때 중앙정부의 존망을 위협할 만큼 강대했고, 그 때문에 경제景帝는 그들의 최초 요구조건을 들어주려했을 정도였지만, 결국 제후들 각각의 욕심과 단일화되지 못했던 지휘체제 등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쳐 실패로 돌아갔다. 

  

 

 

 

조조의 말을 정리하자면, 황제를 어떻게 하겠다는 식의 일은 쉽게 행동할 일이 아니라는 거다. 후한 왕조가 비록 실정에 실정을 거듭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건 군주가 의도한 일은 아니고, 군주의 나약함이 권신들과 내시들의 발호를 조장했다는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직접적인 토벌 내지는 반란을 일으킬 만큼 중대 사안이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일거다. 하물며 황제가 국가라는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고대에는 말이다. 근데 허유는 조조의 충고를 듣지 않고 계속 이 일을 추진하다 음모가 폭로되었는데, 허유는 도망치고 주동자 왕분은 자살하는 것으로 일이 마무리 되었다. 물론 동탁이 왕분 정도의 실력밖에 없었던 것도 아니고, 상황과 조건이 달랐다고 볼 수도 있다. 동탁은 결국 의도대로 황제를 바꿨다. 하지만 동탁의 최후는 이 일이 발단이 되었던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일로 인해 반 동탁 연합군이 결성되었고(비록 실패했다고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왕윤과 여포에게 살해당하게 되었던 것이다.(이 일도 동탁의 지나친 자신감, 혹은 조심성 없음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동탁이 낙양에 입성하여 권력을 성공적으로 장악한 뒤(여기까진 그래도 어느 정도 참아 줄만 하다.  나름 결단성이 있는 행동이었고.... 난리를 수습한다는 명분도 있었으니까.)에, 자신의 욕망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면 어땠을까? 차근히 사람들을 포섭하고, 하나하나 그럴만한 상황을 만들어갔다면, 지방 세력들의 독립이나 백성들의 심리적 저항은 많이 줄어들었을지도 모르고,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이 넘은 최고의 여포나 화웅 등을 포함한 최강의 전투력은 물론이고, 실권까지 잡고 있었으니 필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이 넘은 그 시간을 너무 지루하다고 생각했을런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런지도......한마디로 동탁은 교활했지만 성질이 너무 급했고, 자신의 힘을 너무 과신하고 있었으며,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동탁이 황제를 폐위시키는 것을 보고, 덩달아 간덩어리가 배밖으로 삐져나온 사람이 또 하나 생겼다.  이 넘도 동탁처럼 얼마 전에 일어난 왕분의 일로부터 역사적 교훈을 얻지 못한 넘이다.  바로 아까 말했던 관동 연합군의 맹주 원소다.  그럼 원소는 어떤 식으로 일을 처리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