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람들 이야기/삼국지와 영웅 이야기 2

수미니 2007. 11. 14. 17:47

 

 

 

 

원술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건안 2년(서기 197년), 그와는 멀리 떨어져 있던 조조는 이미 이전의 조조가 아니었다.   바로 일년전 조조는 어린 황제 헌제를 자신의 근거지인 허현許縣으로 모셔왔으니.... 지금의 조조는 "천자를 받들어 모시면서 말안듣는 작자들을 부려먹는(奉天子以令不臣)"  혹은 "천자를 옆에 끼고 제후들을 부려먹는(挾天子以令諸侯)" 위치에 선 정계의 초거물이 된것이다. 천자를 데려와 그 힘을 이용하기로한 결정은 조조의 발전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고, 원소를 비롯한 유표, 손책 등의 경쟁자들은 커다란 기회를 놓쳐버리는 모양이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누가 뭐라고 해도 한나라 왕조의 관리자는 조조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되면 원소나 원술, 그리고 기타 제후들 모두가 조조를 통해 전달되는 황제의 말을 듣지 않기가 곤란해진다.(황제의 명령을 사칭하고 있지만, 명분상 조조의 말을 듣지 않으면 대외적으로 반역자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황제가 곧 국가인 시대에, 조조를 통해 전해지는 황제의 명을 거부하는 것은 곧 국가 권력에 대항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정도의 위치에 올라선 조조의 귀에 원술이 자립해서 스스로 제위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결국 조조는 국가의 분열을 초래한 원술의 행동을 무력으로 징벌하기로 결정한다.  원술 아저씨에게 조조가 '직접 토벌해온다(乃自征之)'이 소리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후한서 원술전에서는 "원술이 그 소리를 듣고 겁나게 놀랐고(術聞大駭)... 듣자마자 바로 도망쳐 회수를 건넜다.(卽走渡淮)" 라고 말했다. 옥새하나 믿고 천명을 받았다고 생각했던 원술이 급격한 상황변화에 혼비백산하여 도망갔던 것이다.  원술이 승상으로 임명했던 서중응舒仲應은 그가 도망치는 것을 보고는 군량을 탈탈 털어서 그 지방의 난민들에게 분배해줘버렸다.  원술이 그 이야기를 듣고서는 서씨 아저씨를 불러서 물었다. 'ㅆ ㅂ 왜 그랬어? 니맘대로 하기야?' 라고...... 서씨 아저씨는 '대장님! 어차피 우리야 죽은 목숨들 아닌가여?  죽기전에 내 목숨 담보로 불쌍한 백성들 먹을거 좀 나눠줬어여. 뭐 안될거 있어여?' 라고 답하고...   원술은 그 소리를 듣고 쓴웃음을 지으면서 'ㅆㅂ 그렇게 아저씨가 백성들한테 나눠주면, 당신만 칭찬할꺼 아냐.  웬간하면 칭찬은 같이 듣는게 조차나?'라고 했다고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 보면 원술도 이때 쯤 해서는 이미 자신의 실패를 확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도 스스로 제위에 오르고 나라를 세울 만큼 원술 일파의 기본 역량이 탄탄했었던 것인지, 원술은 그 후로도 세력을 근근히 유지하면서 2년씩이나 저항하였다.

 

건안 4년(서기 199년) 여름, 결국  어디에도 발붙일 곳 없어진 원술은 황제 놀이를 이제 그만 끝내려고 한다. 그리고는 전국옥새를 (이복)형 원소에게 주려고 맘먹었다.  ......'어쨋거나 같은 원가네 형제가 아닌가?'......   그런데 때마침(?) 이때의 원소는 한참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복동생 도와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원소도 원술이랑 비슷한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래서 '형제는 용감(?)했다'는 건지.......   원소는 얼마전(건안 원년 - 서기 196년) 백마장군 공손찬을 역경易京에서 격파하고 그 잔존 세력들을 모조리 흡수하였으니, 군사적 역량만을 따진다면 당대 최강의 세력이 되어있었다.  그 때문인지 원소의 야심도 덩달아 자라나게 되었는데, 원소가 좀 모자랐던게 이런 부분이다.  즉, 무슨 생각이나 목표가 있으면 맘속에 담아두고 그걸 실행할 준비를 차근하게 해나가야 하는데, 원소는 생각을 그대로 남들, 특히나 경쟁자들이 뻔히 알아볼 수 있게 행동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소가 하는 짓거리를 한번 살펴보면....... 황제에 대해서 그다지 공경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해서, 공물도 조금 바치고  무례하게 행동하기 시작한다.(貢御希慢)    여기까진 그래도 무지 맘좋은 넘이거나 무능한 넘이 황제자리에 있다면 봐줄 수 도 있을 거 같다.  하지만 라이벌들은 이런 것도 못봐준다. 

 

그런데 원소도 원술이랑 마찬가지로 간이 배밖으로 나왔다.  원술이랑 똑같이 황제가 되고 싶었던 거고, 그걸 밖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래서 남몰래 심복들 가운데 경포耿苞라는 작자를 시켜서 공개적으로 자신에게 보고하도록 한 내용이 웃기는(?) 거였다. 그 내용이란게 '적덕赤德이 이미 다했기에 황천黃天이 이를 잇게 된다는 이야기다.  앞서도 이야기한적 있듯이 전국시대 이래로 유행하던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의하면, 왕조의 교체 역시 봄  여름  늦여름  가을  겨울과 마찬가지로 순환하는 것이며, 각각의 왕조는 고유의 색갈을 가지고 있는데, 동한 왕조를 상징하는 색이 붉은색이고, 이를 이어갈 원袁가네 왕조를 상징하는 색이 노란색이라고 무작정 우기기 시작한 거다.  황건적들이 하던 이야기랑 정말 똑같은 수준이다. 황건적의 난때 하던 이야기와는 한漢 왕조를 지칭하는 색깔만 조금 다를 뿐.....(이는 동한 왕조를 서한 왕조와 서로 동일한 왕조로 보는가, 아니면 서로 다른 왕조로 보가 하는 시각의 차이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웃기는 소리 같지만, 고대를 살아가고 있던 사람들에겐 매우 커다란 의미가 있는 이야기였다.  옛날 사람들은 천자, 다시말해 황제의 자리는 하늘이 직접 점지해주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하늘이..... 뭐랄까 조짐 같은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이런게 다 사기였다. 중국 한나라 때 이런게 특히나 유행했다. 남몰래 조각이나 책같은 거 만들어서 땅에 묻어두고...... 그걸 공개적으로 지가 다시 파내고 하는 짓거리...)  미리 사람들이 알아서 행동하도록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런 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지금 사람들보다 유언비어에 혹할 가능성이 훨씬 많았던 거고, 그래서 정권을 가진 쪽에서는 사소한 일이나 소문에 나온 일까지 반역죄로 몰아서 목을 자르는 일이 흔하게 발생했던 것이다.

 

하긴 고대도 아니고 현대의 우리나라에서도 때때로 유언비어가 큰 힘을 발휘하곤 한다.  정치판에서...  증권가에서... 연예가에서....  그런데 이런 유언비어들이 만들어지는 계기는 고대와 마찬가지이다.   모두가 개인 혹은 집단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 소문을 통해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으려고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안봐도 뻔하다! 이건 우리 사회가 그만큼 투명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이득을 얻기 쉽고, 그렇게라도 이익이 발생하면 그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이런 현상들이 반복된다는 말이다.   그만큼 우리는 현상을 눈에 불을 켜고 살펴보고, 다시 한번 꼼꼼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그래야 그 속에 있는 진실을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더 중요한건.....  일이 끝났다고 하더라도 책임질건 좀 지는 사회가 되야 한다는 거다.  나중에 책임 안져도 되니 아무렇게나 말하고, 나중에 책임질 일이 없으니 부정을 저지르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부패지수가 우리나라 경제규모 혹은 사회 수준과 비교할 때 지나치게 높다는 거 다들 아실거다.  이거다 우리 책임이다.  우리가 죄지은 사람이나 기업 너무쉽게 용서하고,  죄지어도 좋은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고....... 이러니 몇몇 나쁜 넘들은 뒤로 챙기고, 앞으로 딴소리하고, 또 봐주고.........   이러면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리가 없고 얼마 못가 망하는게 당연하다.

 

어째든 원소도 원술과 비슷한 방식으로 대권경쟁에 뛰어들었다.  거짓으로 천명天命을 만들어내고 싶었던 거다. (원소가 멍청하다지만, 이 방법은 원술과 굳이 비교하면 무척 교활한 방법이다.  지가 책임질 일도 없고.... 책임은 졸따구가 몽땅...... 그에 비해 원술은 지가 직접 나섰으니 책임도 지가 져야지...)   그런데 원소 주위의 사람들은 경포가 공개적으로 원소에게 보고하는 것을 보고는, (원소의 진심도 몰라주고) '경포가 요사스런 말로 사람들을 속이려한다.'고 분노했다. 일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자 원소는 유일한 증인인 경포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억울한 경포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책임져야 될 넘은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거다.   우리 정치판도 돈쓴 넘은 떵떵거리고 그 자리에 있고, 심부름한 넘은 감옥에..... 

 

 이런 생각을 가진 원소였으니, 원술이 죽을 때가 다되서 황제의 상징(전국옥새)을 자신에게 넘기려한다는 소식을 듣자 속으로는 기뻐서 어쩔줄 몰랐다.  그런데 원술이 형아랑 만나서 보물 덩어리 전해주려고 올라가는데 조조가 떡하니 그 앞을 가로막는다. 조조의 동네가 원술과 원소의 사이에 있었던 거다. 조조는 유비(이때만 해도 유비 청년은 조조 아저씨 따까리 노릇하고 있었다.)를 시켜서 북상하는 원술을 공격하게 하였는데, 원술의 군대는 하비下邳(지금의 중국 江蘇省 睢寧縣)에서 유비에게 작살나고, 말머리를 돌려 다시 남쪽으로 도망갔다.  원술은 수춘壽春(지금 중국의 安徽省 壽縣)에 거의 다다랐을 때 병으로 쓰러졌고, 결국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물론 자기 혼자 인정한 황제지만) 황제의 죽음치고는 너무나도 덧없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게 된 거다.   게다가 이 아저씨가 죽을 때는 양식도 없어 병구완도 한번 제대로 못해봤다고 그러니..... ‘인생 참 덧없구나!’ 했을 거다.

 

삼국지 원술전의 배송지 주注에서는 오서吳書를 인용하여 원술의 죽음을 묘사하고 있다.  때는 음력 6월 한여름에 병영에 남은 식량이라고는 보리껍데기 서른말이 전부였단다.  주방장(아님 취사반장이었나?)이 의리가 있었는지 이 상황에서도 도망가지 않고 그걸로 죽을 끓여다 원술에게 대령했다. 근데 원술 아저씨 나서부터 지금까지 호의호식만 해왔는데..... 지금 병든 몸으로 이런 거친 음식을 먹으려니.... 삼킬 수도 없다.  어찌나 더운지 식욕도 없고..... 그래서 주방장한테  '시원한 꿀물 한잔 주삼!'  하고 부탁했지만..... 주방장은 '이거라도 드시던가! 아님 말던가!...  꿀물은 ㅈㄹ... 머글거도 없는데, 시방 어디서 꿀물을  찾아여?' 라고 대답한다.  원술 한숨만 쉬다가 '내가 어쩌다 이런 꼬라지가 �을꼬!' 하면서 한말도 넘게 피를 토하고 죽었단다.

 

사실 이때의 원술은 황제가 될만한 능력도 자격도 없는 인간이었다.  삼국지에서는 원술이 군대를 일으킬 때에  "사치가 심하고 음탕해서 시도때도 없이 세금을 걷었고, 이때문에 백성들이 괴로워서 환장했다.(奢淫肆欲, 征斂無度, 百姓苦之)"라고 적었고,  후한서에서도 "법령과 제도를 정비해서 사람들 잘살게 하기는 커녕, 되려 백성들한테서 노략질해서 재물을 모으고 지혼자 호의호식하면서 지냈다. (不修法度, 以爲資, 奢姿無厭)" 라고 그랬다.  이걸 보면 원술 이넘이 황제를 해서도 안되고, 할 수도 없는 인간이란걸 알 수 있다. 근데 이런 애가 스스로 황제가 되었으니..... 그 밑에 있는 졸개들이랑 백성들 살림살이가 어땠을까....... 안봐도 비디오다.  원소가 황제(황제라 그래도 될라나 몰라?)의 자리에 오른 후, 그가 통치하고 있던 회남淮南 지방에 살던 사람들은 먹을게 없어서 서로를 잡아먹을 지경(江淮間相食殆盡)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지는 맨날 호의호식하고  졸개들이나 백성들은 굶어 죽고 얼어 죽고.... 이런 나라가 안망하면 이상한 거다. 

 

하지만, 원술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거, 그 원인을 순전히 원술 개인 한 넘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도 좀 지나친 생각일거다.  물론 그게 가장 큰 이유였을 수도 있지만......... 사실 세상일이라는게 한가지 원인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지는 않는 거 같다.  게다가 원술도 젊은 시절에는 한가닥(?) 한다고 소문났었다.  삼국지에서는 원술이 "젊어서부터 의협심으로 유명했다.(少以俠氣聞)"고 그랬고, 후한서에서는 원술이 "효렴으로 천거되어 낭중을 지냈고, 여러 내직과 외직을 역임했다.(擧孝廉, 除郎中, 歷職內外)"라고 했으니, 젊은 시절 나름대로 인재라고 불릴 정도의 인간이었던것 같기도 하다. 근데 이랬던(?) 인간이 우짜다 또 이딴(?) 인간으로 변절했을까?  사실 이런 경우는 우리나라에서 지금도 종종 볼 수 있다.  젊은 시절,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던 양반들 권력을 맛본 후에는 그것만을 추구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때때로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지금껏 쌓아온 모든 것을 내던지는 경우도 있다.  혼자서 입바른 소리할 때, 없었던 권력의 달콤함을 맛보면 헤어나기가 힘든 모양이다.  근데 그런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따위보다 훨씬 권력이 큰 황제라면 어떨까?  눈이 이렇게 해서 뒤집어지는 거다. 그래서 권력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해버릴 수도 있다는 거다.  말년의 조조도 황제자리에만 오르지 않았을 뿐 이들과 비슷한 길을 걸었고, 또 그 때문에 훗날 두고두고 욕을 먹는 거다.

 

이렇게 권력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도 재미있다.  똑같은 일을 해도 그에 대한 평가는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는 말이다.  '모난 돌이 먼저 정에 맞는다'는 말은 정치판에서도 알맞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  어디 동탁이나 원술,  그리고 원소 같은 넘들 말고는 황제하고 싶은 인간이 없었을까만....... 하여간, 이 넘들이 저지른 두가지 커다란 실수는 라이벌들을 무시한 것과, 너무나도 쉽게 먼저 나서버린 거다.   먼저 나섰다는 거 자체가 잠재적 라이벌들을 무시했다는 이야기도 되고,  때를 알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될 거다.

  

자신이 사회전체를 좌지우지할 결정적 권력을 잡기 전에는 자신의 야욕을 드러내서는 안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동탁은 쉽게 그것을 완성할 수 있었지만,  지방 세력들을 완벽하게 장학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의 욕심을 드러내버렸고, 원소나 원술은 그보다도 못하면서 자신의 헛된 욕망을 남들에게 알려버렸다.  그에 비해 조조는 죽을 때까지 황제를 받들었는데(물론 말년에는 권력에 집착했지만, 황제의 자리를 뺏으려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유비와 손권이라는 라이벌들이 각지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만약 그때 조조가 황제를 자칭하고 나섰다면, 조씨네 정권의 멸망은 더욱 빨리 왔을지도 모른다. 조조와 조비 2대에 걸친 오랜 시간 동안의 사전작업이 위나라 정권 창업에 꼭 필요한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었고, 조조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은 황제가 되는 것이 아님을 자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들과 비교해서 나중에 나선 조비나 유비, 그리고 손권 같은 넘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이들과는 달랐다.  물론 한나라가 조씨네에 의해 멸망했다는 명분론이 가장 큰 작용을 했겠지만........   하여간 약아빠진 조조는 승상자리에 앉아서 나라를 맘대로 찜쪄 먹고 있었으면서도, 황제를 형식적으로나마 떠받들었고, 유비나 손권도 겉으로 대놓고  '나 황제 할래!'  하고 나서지 않고, 조조의 중앙정부를 받들면서 뒤로는 칼을 갈았던 거다.  남들한테 안들키게......... 

     

   

.... 쌈도 잘하고, 그림처럼 멋있게 생기고, 폼이나 잡고.... 근데 이렇게 멋있다고 장군 되는 거 아니다. 그리고 그래선 안된다.  총 잘 쏜다고 장군 시킬 수 없다는 말이다. 쌈만 잘하는 넘은 행동대장 밖에 못한다. 그리고 태왕사신기나 대조영에 나오는 주인공 같은 지도자는 없다.  지도자라고 어떻게 모든 방면에 완벽한 인간일 수 있겠나?  다만 지도자로서 필요한건 상황을 올바로 판단하고 쫄다구들 잘 부리고, 전술을 잘 이해하고.... 바로 이런게 필요한 거다. 그리고 이런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명장이었다.  나폴레옹 생각해보면 쉽다. 이 인간 겉보기는 완전 꽝이었다. 땅딸보에다 똥배.... 근데 이분은 전쟁에 관한 모든 데이터를 머릿속에 넣고 있었단다.  게다가 수하에 있는 장병들 아끼고, 잘통솔하고.... 뭐 이런 사람이 장군이 되어야 하는 거고, 그래야 군대가 승리할 수 있다.  꼴에 지가 총잘쏜다고 쌈잘한다고 나서는 사람이 전군을 통솔하게 되는게 더 위험하다. 옛날로 치면 화살, 지금으로 치면 총알 대포 이런거는 쌈 아무리 잘해도 못막고 못피하는 거다. 잘못했다가 이런거에라도 맞으면 그냥 군대가 헤매게 되는 거다.  책임자는 용감해야 하는게 아니라 침착하고 정확해야 하는 거다.  같은 이유로 여러 사람들이 유비를 우습게 알기도 하지만, 그래도 유비를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건, 이 양반이 도망가야 할 땐 도망가 주었고, 배신해야할 땐 배신해주었으며, 동시에 아랫사람들을 훌륭하게 부리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에서는 명분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커다란 작용을 한다.  전쟁을 해도 구실이 있어야 한다.(사실 전쟁도 외교의 일환이다.)   물론 힘이 아주 쎈 나라가 전쟁을 하고 싶을 때는 구실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약한 나라들은 찍소리도 못하고 힘쎈 나라 편에 붙는다.  어째든 정치하는 사람들은 속으로 바라는 게 있더라도 정직하게 그걸 드러내지는 않는다. 잘못했다간 상대방이 공격할 빌미가 되기 때문이다.  조조는 이런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는 편이었고, 비슷한 연령대에는 적수가 될 만한 사람이 없는 정치고수였던 거다.  그럼 조조의 행로를 다시 한번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