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전 이야기/주역 이야기

수미니 2007. 11. 20. 18:39

 

 

 

   1. 주역은 본래 점치는 서적이었다.(2)

 

 

주역이 비록 점치는 책이라고는 하지만, 문화사의 측면에서는 본다면 이 책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점도 다 똑같은 점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떻게 다르냐면.......  바로 앞에서는 거북점과 시초점이 고대의 대표적인 점치는 방법이었고, 주역은 시초점 계열임을 알려드린 바 있따. 그런데....

 

시초점(筮法)과 거북점(卜法)을 비교해보면, 양자가 모두 점치는 방법이라는 측면에서는 동일하지만 서로 다른 부분 역시 존재한다.

 

첫째, 거북점(龜卜)에서 근거로 삼는 상象, 즉 거북껍질의 균열 형태(卜兆)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무늬이므로 논리적 구조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시초로 점을 칠 때(占筮) 근거가 되는 괘상卦象은 기우奇偶 두 획( ― 과  --), 즉 음효와 양효의 배열 및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음양 두가지를 수로 연역해 갈 수 있는 것이다. 다시말해, 2의 세제곱은 8이며,  2의 육제곱은 64와 같은 수학적 연역법칙에 기반을 두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팔괘와 육십사괘는 다시 네 쌍의 대립면과 32쌍의 대립면으로 나누어져서 서로 대칭이 되면서 동시에 서로 전화轉化(여기서 전화란 상대의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것이다.)하는 것이다. 다시말하자면, 어떤 효爻가 변해서 상반되는 효爻가 되기도 하는데, 마치 지괘설之卦說에서 하나의 괘卦가 다른 괘卦로 전화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서법의 괘상에는 논리적 사고와 논리적 구조가 갖춰져 있는 것이다.

 

둘째 거북점(卜法)에서 거북 껍질의 균열을 얻어내고자 할 때에는 구멍을 뚫어 불에 굽는 방법을 쓰는데, 이것은 다만 우연성에 기대는 것일 뿐이다. 그렇지만 시초점(筮法)은 시초蓍草 줄기의 숫자로 괘상을 추산해내는 것이며, 추산의 과정 역시 일정한 순서가 있어서 그 법칙을 지켜야만 하기 때문에 숫자와 뽑아낸 괘상 사이에는 논리적 필연성이 존재한다.

 

셋째, 거북점(卜法) 가운데 복사卜辭는 소위 천신天神이 계시해주었다는 것을 기록했다고 하지만 사실상 점치는 사람의 신비적 직관에서 도출된 것이다.  그렇지만 시초점(筮法)은 주역의 괘효상과 괘효사에서 기술하고 있는 조항에서 그 근거를 찾기 때문에 논리적 사유를 유추해내는 요소가 있다.

 

넷째, 복사卜辭 가운데 길흉화복에 관한 판단은 “도움을 받는다.(受佑)”라거나 혹은 “도움을 받지 못한다.(不受佑)”와 같이 길흉의 한계가 분명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주역의 괘효사에서는 길흉의 판단과 관련해서  “후회(悔)”, “안타까움(吝)”, “근심(咎)”, “근심이 없음(无咎)” 등의 말을 덧붙여서, 시초점을 쳐서 얻은 괘卦가 비록 불길하다고 하더라도, 점치는 사람의 자기반성과 경계를 통해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고, 흉凶이 길吉로 변할 수 있음을 표시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괘효사 가운데 많은 구절이 권고와 경계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것은 고대인들이 가진 삶의 지향과 경험적 교훈을 반영한 것이다. 게다가 몇몇 구절은 시가詩歌에 가까워서 시경詩經의 시구에 비견될 만하다.

 

이상의 네 가지는 주역이 고대에 점칠 때 사용되었던 전적이면서도, 인간의 노력과 지혜를 강조하는 것으로, 하늘(天)의 계시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며, 고대 인들의 이성적 사유의 발달에서 비롯된 산물임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비록 시초점이 고대의 미신 가운데 하나로 치부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런 방식으로 점을 쳐서 길흉을 판단하는 행위는 분명 일종의 문명적 창조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주역이라는 책은 비록 신비 문화의 겉옷을 걸치고 있지만 고대인들이 곤경이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러한 불운에서 벗어나고자했던 우환의식이나 삶의 지혜를 구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서법筮法의 설시蓍는 말 그대로하면 시초 줄기를 셈하는 것이지만, 훗날 편의를 위해 이런 대나무 가지로 바뀌었다....... 앞서 설명했던 점치는 과정을.... 본래는 시초 줄기로 했지만, 요즘(이것도 옛날부터...)은 이런 댓가지로 한다는 거다. 어쨋거나 이런게 과학적일 수도 없고, 이걸로 친 점이 들어맞을 수도 없자나..... 안그래?   

 

 

 

 

주역의 구조에 관해 말하자면, 그 속에는 상象, 수數, 사辭, 의義 네 가지 관념을 포함하고 있다. 그 중 상象은 음양의 효상을 지칭하는 것이며, 수數는 구九와 육六의 수數를 말하는 것이다. 또 사辭는 괘효사 문구를 가리키는 것이며, 의義는 괘상과 괘효사의 함의 즉 괘효사가 지닌 진정한 의미를 지칭한다. 이 네 가지 관념은 주역 안에서 하나로 결합되어 있는데, 이 관념들은 후대인들이 세계를 관찰하고 해석하는데 중요한 범주를 제공하였다.  결국,  주역이라는 전적은 이성적 사유의 내용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마침내 중국철학과 중국 전통 사유방식의 선구가 되었다고 평가된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서법筮法과 주역이 이성적 사유의 산물로서 거북점(龜卜) 같은 미신과는 다른 것이라면,주역으로 점치는 것이 영험한것일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문제를 풀기위한 관건은 주역을 근거로 해서 점치는 것이 논리적 추리의 규율에 부합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있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서법이 비록 유비 추리적인 사유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고는 하지만,시초를 셈해서 얻은 괘상과 점치는 일의 관계가 때때로 비슷해보이기는 하지만 결코 동일한 종류가 아니기에 유비 추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병이 언제쯤 나을 것인가를 점친다고 가정하고,서법筮法으로 얻은 괘상卦象이 곤괘坤卦라 하자. 곤괘의 괘효사에서는 질병과 관련된 말을 어디에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점술가는 묻는 사건과 도출된 괘상, 양자兩者를 억지로 동일한 부류라고 보고추론해나갈 것이다. 이런식의 추리과정을 통해 얻은 결론은 그저 견강부회하여 연상해낸 것이지 결코 논리적 필연성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법 혹은 주역점 역시 사람들에게 일종의 정신적 위안을 줄뿐, 결코 길흉의 결과를 예측해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 이래 유가 학자들은 점술占術을 믿지 않았는데,예를 들어 순자荀子가  “역易을 잘 이해한 사람은 점치지 않는다.(荀子, 大略 : 善爲易者不占)”라고 말한 것은,주역을 사람의 정신적 경계를 고취시키는 일종의 수단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할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주역으로 점치는 이론을 일종의 과학적 예측학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

 

 

앞서 보여드린 하도河圖를 등에 프린팅하고 황하黃河에서 나온 용마龍馬와 더불어 낙수洛水에서 나온 이 거북이는 등에 낙서洛書(낙서 같아서 낙서라 그랬나? ㅎㅎㅎ)를 프린팅하고 나왔단다. 이런거 다 송나라때 시작된 뻥인데, 나중에는 진짜 역사로 믿어버리고, 뭐 주나라 무왕이 이놈을 건져냈다느니 하는 전설이 나돌게 된다.  아직도 사실이라고 우기는 분 많이 계시다. 근데 그게 사실이면 왜, 선진시대 책이나 사마천이 지은 사기에 안나오던 이야기가 송나라 이후에야 나오냐구........    

 

 

 

주역의 판본에 대해 말하자면,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13종의 대표적인 유가경전에대한 공식적, 대표적 주석) 가운데 주역정의周易正義에서는 위진魏晉 시기의 학자 왕필王弼이 주석한 전본傳本을 텍스트로 하고 있고,또한 이것이 현재에도 통용되고 있다.

 

그런데 1973년 중국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 부근 마왕퇴馬王堆의 한묘漢墓(이 무덤의 연대는 전한前漢 초기로 인정되고 있으며, 여기서는 노자老子를 비롯한 여러가지 고대전적이 발견되어 선진先秦 시기 학술연구에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다.  백서본 주역의 64괘 배열은 현재 통행되고 있는 주역과는 다르며, 한대 초기의 괘기역학卦氣易學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 추정되고 있다.)에서 출토된 백서帛書주역에서는 육십사괘의 배열 순서가 왕필의 전본과 일치하지 않는다. 즉, 왕필본에서는 건乾,곤坤 괘卦에서 시작해서 기제旣濟, 미제未濟 괘로 끝나지만, 한묘에서 출토된 백서본은 건乾,비否 괘로 시작해서 익益 괘로 끝맺고 있다. 그렇지만 백서본의 괘효상에 덧붙여진 괘효사는 몇가지 글자를 제외하고는 통행되고 있는 왕필의 판본과 동일하며 큰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한나라 초기에 이미 동일하지 않은 여러가지 주역 전본傳本들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어떤 판본이 비교적 원시적인 주역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는 지금으로서는 결론내리기 어렵다.

 

아래 그림이 한나라때 만들어진 묘에서 나왔다는 비단에 쓰인 주역 쪼가리다. 종이도 없을 때라 대나무 쪼가리나 이런 비단 쪼가리에다 책을 베껴썼단다.  그러니 책 한권 가지고 있는 건 엄청 귀한 물건 가지고 있는거고, 지식이나 문화는 일부 권력층 혹은 부유층의 전유물일 수 밖에 없었던 거다.  그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백성들은 대부분 글도 모르는 문화소외 계층들 이었다. 그러니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건지 한번 생각해봐야 되지 않으려나 싶다.  사회는 항상 발전해가고 있다. 사실 옛날이 좋았어 하는 말 나는 그다지 믿지 않는다. 지금 있는 문제는 옛날에도 다 있었다.......   

 

 

 

그런데 진晉나라 두예杜預(삼국시대 위나라의 무장이기도 하다.)의 좌전집해후서左傳集解後序와 진서晉書 동석전東晳傳의 기록에 의하면, 진晉 태강太康 2년 급현汲縣의 위魏(전국 7웅 가운데 한 나라) 양왕襄王 무덤에서 출토된 죽간들 가운데 주역 상하편이 있었고  "지금의 판본과 꼭 들어 맞았다.(與今正同)"라고 적혀있다. 이때 진대晉代 사람들이 지금의 판본(今本)이라고 한 것은 바로 왕필의 전본을 말하는 것이다. 이 기록은 현재 통용되고 있는 주역이 일찍이 전국시기에 이미 유행하고 있었음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괘의 배열순서가 서로 다른 것은 64 괘의 상호관계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 전해지는 한漢나라 경방京房의 역전易傳에서 볼 수 있는 괘서卦序(괘의 순서)는 건乾, 진震으로 시작해서 동인同人, 귀매歸妹로 끝나는데, 이는 한묘에서 출토된 백서본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불일치가 주역의 내용과 성질에는 영향을 미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어서는 주역을 처음으로 학문적으로 해석한 역전易傳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용어, 인물 해설

 

 

.........................백서帛書 주역周易: 1973년 중국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 13호 한묘漢墓에서 출토된 비단에 예서隸書로 쓰여진 주역을 가리킨다.  한漢 문제文帝 초기(기원전 180 - 기원전 170년 경)에 기록된 것으로 여겨진다. 마왕퇴백서정리소조馬王堆漢墓帛書整理小組에 의해 1984년 문물文物 第3期에 그 내용이 발표되었다. 모두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 번째 부분은 '경문經文'으로 64괘의 괘효사卦爻辭를 포함하고 있지만 괘卦의 순서가 현재의 통행본과는 전혀다른 체계를 갖고 있다. 두 번째는 '64괘권후일서64卦卷後佚書’라고 불리는 부분으로 지금까지 전해지지 않았던 것인데, 그 내용은 공자와 제자들이 괘효사의 의미를 토론한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 부분은 계사전인데, 통행본과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통행본 계사의 ‘대연지수大衍之數’장章은 백서본에서 빠져있으며, 그 밖에 통행본 계사 하편下篇 4장章의 내용 가운데 백서본에서 빠져 있는 부분은 64卦卷後佚書에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백서본 계사와 통행본 계사는 이런 점 이외에도 문구 역시 많은 차이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