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전 이야기/주역 이야기

수미니 2007. 11. 25. 00:52

 

 

 

   3.역학과 고대 학술

 

 

한대漢代부터 유가 경학이 확립되면서 역경은 대표적 유가경전으로 받들어졌으며, 일단의 경학가經學家(고대 선진시기의 저작, 특히나 유가의 경전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경학가 혹은 경학자라고 부른다.)들이 전문적으로 주역경전周易經傳(여기서의 주역경전은 역경 경문과 역전을 통틀어서 부르는 이름이다. 이 경전經典이 아니다. 한대에는 이미 역전을 공자가 지었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에, 이 시기의 학자들은 역전의 연구방향을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을 연구하여 주석을 쓰거나, 그 속에 있는 의리를 밝혀내기 시작하였으며, 이로써 역학易學이 형성되었다.

 

 좋아하는 사람 무지 많고, 싫어하는 사람도 무지 많은 고대 문화의 대표자 공자님이시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성인이라고 외치면서 신격화하시는 분들은 이해 못하지만 인간으로서는 존경스런 분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를 잘못 선전하는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의 거룩하신 모습이 전도轉倒되는 것 처럼, 공자님 이분을 등에 업고 사회, 문화적 권력을 휘두르려 했던 상류층 귀족들 때문에 공자님이 싫어진 사람들도 많이 있을거다. 그치만 그런거 모두 공자님께서 잘못하신건 아니다.............  어쨋거나 고대인들은 이 양반이 한 일은 무조건 신성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공자가 역전을 지었다는 뻥 만으로도, 역전의 권위는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 "성인이 하는 말은 모두 참이다. 공자님은 성인이다. 그러니 공자님이 지으신 역전의 이야기도 모두 참이다."  이건 논리학에서 배우는 아주 기초적인 오류 논증의 한가지이다. 거기다 역전은 공자님께서 지은게 아닌데........ 

 

 

 

역학은 경학사經學史 가운데서도 비교적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漢나라 이래의 경학가들이 주역의에 대해 내놓은 각종 해석들과 주석들은 모두가 역학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서 역학은 네 단계를 거치는데, 곧 한대역학漢代易學과 진당역학晉唐易學, 그리고 송명역학宋明易學과 청대역학淸代易學이 그것이다. 근대와 현대인들의 주역 경전經傳(이때 경전은 역경易經과 함께 역전易傳, 즉 십익十翼을 함께 말하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고대 유가학자들에게 있어서 역경과 역전은 모두 성인聖人이 지은 경經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역경보다는, 역전의 내용이 역학의 주된 연구대상이 된다.)에 대한 연구는 당대역학當代易學이라 부를 수 있다. 역학은 경經과 전傳, 특히 역전의 역풀이 원칙(解經原則)에 대해 한걸음 더 나아간 해설을 하고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네 시기의 역학은 당시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철학적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다음과 같은 시대적 특징을 선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먼저, 한대 역학에서는 당시의 천문기상학天文氣象學 및 천인감응사조天人感應思潮(자연현상과 인간의 행위 사이에는 필연적, 논리적 연관성이 있다는 생각)와 결합하여, 역풀이에 괘기설卦氣說(64괘와 24절기를 결합시킨 역학이론이다.)을 주로 사용하였고, 진당晉唐 역학에서는 위진현학魏晉玄學(현학玄學은 도가사상道家思想의 새로운 형태라 볼 수도 있지만, 유가적 가치관을 상당부분 긍정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정통 도가사상과는 차이가 있다.)과 결합된 귀무천유貴无賤有(무無로 대표되는 본체를 귀중하게 생각하고, 유有로 대표되는 현상을 하찮게 생각하는 이론)를 선양하였다.  또 송명역학宋明易學은 다시 유가儒家의 도덕적 형이상학 이론체계인 도학道學과 결합하여 리학理學과 심학心學 그리고 기학氣學 등 세 학파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였으며, 청대역학淸代易學은 다시 동시대의 한학漢學(고증과 한대 경학을 중시하는 학풍)과 결합해서 주역 경전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도 문자와 훈고訓古 그리고 고증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역대의 역학저술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서, 범위를 사고전서四庫全書에 한정시킨다고 하더라도 390부部, 2371권券이나 되기 때문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게할 정도이다.

 

역대의 역학은 역경과 역전에 대한 해석이 동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많은 유파를 형성하게 되었는데, 비교적 크게 영향을 미쳤던 것은 상수학파와 의리학파이다. 역전에서는 상사상응지리象辭相應之理(앞서 이야기 하였다.)를 밝히고자 하였기 때문에 취상설取象說과 취의설取義說을 제기하였다. 취상取象은 예를 들어서 건乾(괘卦 이름)은 천天, 곤坤은 지地, 리離는 화火, 감坎은 수水라고 하는 것처럼, 팔괘의 괘상卦象과 그것이 상징한다고 하는 사물의 상象을 통해서 괘효사를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취의取義는 예를 들어 건乾은 강剛, 곤坤은 순順, 리離는 려麗, 감坎은 험險이라고 하는 것처럼, 팔괘의 명칭이 가지는 의미를 취해서 괘효사를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취상설과 취의설에 대해서는 역전을 전문으로 이야기하는 시간에 더욱 자세히 설명하겠다.)  설괘전에서는 두 가지를 모두 이야기하고 있다.

 

상전象傳에서 괘사를 해석하는 부분, 곧 대상大象에서는 취상설을 주로 채택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건乾은 천체天體이기 때문에 “하늘의 운행이 굳세다.(天行健)”로 건괘乾卦의 괘의卦義를 해석하고 있다. 그렇지만 단전彖傳에서는 건원乾元 혹은 건도乾道를 강건한 덕행이라고 하면서 이를 건괘乾卦의 괘의卦義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마침내 하늘을 통할한다.(乃統天)”라고 말하였다. 사실 이러한 해석상의 차이는 어떤 개념의 내포와 외연이 동일하지 않은 것에서 기인하였다. 다시말해 취의설에서는 괘명이 가지는 내포를 중시하고 있지만, 취상설에서는 그 외연을 더욱 중시하고 있는 것인데, 양자가 각각 근거로 삼고 있는 바가 서로 달랐기 때문에, 훗날 역학의 양대 유파를 형성하였고 오랜 세월 동안 논쟁이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역학사를 살펴보면 상수학파와 의리학파, 그 누구를 막론하고 괘효상과 괘효사 사이에는 필연적 관계(象辭相應之理)가 있다고 생각하였고, 이를 해석하여 정통하게 되는 것을 자신의임무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다시 비복설飛伏說이나 납갑설納甲說, 오행설五行說, 괘변설卦變說, 호체설互體說, 일효위주설一爻爲主說, 수시취의설隨時取義說, 착종설錯綜說, 비례인신설比例引伸說 등과 같은 수많은 역풀이 원칙을 각각 내놓게 되었다. 요컨대 모두가 역전에서 제시하고 있는 역풀이 원칙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를 보충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는 또한 주역 경전이 경학사상 주소注疏(경문을 주석하는 것은 注라고 하고, 注를 주석하는 것을 疏라고 한다.)가 가장 많았던 주된 원인이 되었다. 상수학파는 송대에 이르러 하도河圖나 낙서洛書, 그리고 태극도太極圖, 선천도先天圖, 후천도後天圖, 혹은 괘변도卦變圖 등의 여러가지 도식을 만들어 내면서 다시 역도학易圖學을 형성하였는데, 그 특징은 각종 도식圖式으로 역리易理를 해석하고, 나아가 세계를 해석하는데 있었다. 이런 역도학은 명대明代에 이르러 가장 유행하였는데, 사실 역경이나 역전에서는 본래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이건 선천팔괘방위도와 후천팔괘방위도를 겹쳐놓은 그림이다. 내부에 있는 작은 팔괘 배열이 선천팔괘방위도이고 바깥에 있는 큰 팔괘 배열이 후천팔괘 방위도이다. 이 도식들은 소옹이 내놓은 것이다. 물론 중앙의 태극문양은 빼고....

 

 

고대의 역학자와 철학자들은 주역 경전을 해석하면서 왕왕 당시의 철학사상이나 사회, 정치, 윤리관, 그리고 과학이나 종교 문예등의 지식과 이론을 이용하고 있었기 대문에 역학은 한편으로 고대사회의 문화와 학술의 구심점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의 철학이나 정치학, 윤리학, 종교, 특히나 도교와 자연과학, 문학, 미학, 사학 등은 모두 주역 경전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고, 모두 역학의 각종 역풀이 원리를 끌어서 자신의 이론을 입론하는 근거로 삼았다. 그 중에서도 역학이 철학과 자연과학의 발전에 미친 영향은 지대한 것이었다. 철학의 측면에서 보자면, 역대 역학에서 발전시킨 태극개념은 중국철학의 우주론과 본체론의 이론적 지주가 되었다. 사실 중국철학 가운데 형이상학적 전통은 역경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완성된 것이다. 역전의 상반相反이나 상성相成 원칙은 형식논리사유나 변증사유辯證思維, 직관사유直觀思維, 형상사유形象思維 등의 사유방식을 포함하고 있었고, 역대역학의 해석을 통해서 중요한 발전을 거듭하였다.

 

자연과학의 측면에서 보면, 역대 역학에서 발전시켰던 음양오행관은 한왕조漢王朝 이래로 고대 자연과학의 이론기초가 되었으며, 고대 천문기상학이나 물리학, 화학, 그리고 한의학 등에 대해 깊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원명元明이후 상수역학의 발전은 한의학에 있어서 의역파醫易派를 탄생시켰는데, 그들의 인체 기능에 대한 연구는 매우 독특한 것이다. 명말의 저명한 과학자 방이지方以智의 학문적 성과는 역학에 사상적 바탕을 두고 있다. 이밖에도 주역 경전이 수數를 중시하고 있기 때문에(주역이 본래 수를 통해 괘를 완성하기 때문에, 수를 중시한다.), 수학자들은 역학의 원리를 인용해서 수학의 원리나 연산과 관련된 공식을 해석하기도 하였다. 또 송대의 상수역학자 소옹邵雍의 선천괘서도는 이진법 사유의 맹아를 포함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청대의 위대한 수학자 초순焦循의 수학적 성과 역시 그의 역학적인 소양과는 뗄래야 뗄수 없는 것이다.

 

결국 역경에서 역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다시 역학에 이르기 까지의 발전과정은 그 이론 사유의 형식과 내용을 살펴볼 때  점차 점서占筮의 내용을 벗어나 더욱 높은 수준의 사고를 하게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역학이 인류 문화에 기여한 부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