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업장소멸 방법 - 역경, 불행, 슬픔, 좌절, 고통, 두렵고 힘든 삶에서 벗어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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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법상스님의 목탁소리

2021. 4. 8.

 

 

두렵고 초조하며 힘든 삶에서 벗어나는 방법

 

우리는 늘 싫어하는 것

하기 싫은 일과는 담을 쌓으며 살아 왔다.

 

될 수 있으면 그것들은 안 하면서

그것들을 피할 수 있다면 최대한 피해 가면서

그야말로 불행이 쫓아올까 싶어 노심초사하며

끊임없이 도망치는 도망자의 삶을 살아 왔다.

 

좋은 것은 더 가지려고 애쓰며 살고

싫은 것은 피하려고 거부하려고 애쓰면서 살아왔다.

 

싫은 것에서는 도망치려 애쓰고

좋은 것은 쫓아가려 애쓰는 삶

도망자가 되거나 추격자가 되는

이 두 가지 삶만을 쫓아온 것이다.

 

이것이 바로 투쟁의 삶이고

우리의 삶이 전쟁터가 되는 이유다.

 

이런 삶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일까.

물론 벗어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이런 삶을 살게 되는 이유는

바로 아상 때문이다.

아상이 가진 분별과 차별심 때문이다.

 

아상이 곧 나라는 생각 때문에

아상은 언제나 나를 돕느라 그런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는 끝까지 아상을 신뢰한다.

 

그러면 이제 아상에 속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건 너무나 간단하다.

 

아상이 하는 일에 힘을 실어 주지 않고

아상을 신뢰 하지 말고

아상을 거스르면 된다.

 

원하는 것 사랑하는 것

, 명예, 권력, 재산

아상이 쫓는 것에 대한 중요도를

떨어뜨리면 된다.

 

물론 좋은 경계가 올 때

그것을 거부하라는 말은 아니다.

 

좋은 일이 생긴다면 마땅히 좋아하고 누리면 된다.

거기에서 벗어날 이유는 없다.

 

다만 거기에 미친 듯이 올인 하지는 말라.

심각하게 중요도를 부여하지는 말라.

그저 담연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싫은 경계 역경이 올 때

그것을 거부하지 말라.

 

싫은 경계를 미워하고 두려워하고

벗어나려 하고 도망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아상의 행동이니

아상에 힘을 주지 않으려면

아상과 거꾸로 가면 된다.

 

역경, 불행, 슬픔, 좌절, 고통이 올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좋고 나쁜 것을 다 받아들이는 것은

아상이 아니다.

그것은 참된 근원의 작용이다.

 

바로 이 지점이

삶의 근원적인 전환과 변혁과 각성이 일어나는 분기점이다.

 

이 단순한 차이는 사실 진리의 전부다.

이 단순한 받아들임

무분별, 무간택, 무차별을 실천하겠다고

용기를 내어 피하지 않은 채 두 눈 똑똑히 뜨고

그 양변의 경계를 다 분별없이 받아들일 때

 

그때 가능성의 장으로부터

무량수 무량광의 상상할 수 없는

우주적인 힘과 지혜와 자비가 깨어난다.

 

본래 주어져 있던

그러나 잠시 잊고 있던

그 모든 힘의 근원이 비로소 깨어난다.

 

삶의 대전환이 시작된다.

완벽한 삶의 반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업장소멸 이란 바로 이 순간에 찾아온다.

이 순간의 업장소멸은 그야말로 수미산이 무너지듯

한꺼번에 무한히 큰 규모로 일어난다.

 

매번 좋아하고 원하고 바라는 것들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역경, 불행, 좌절, 싫어하는 것들을 통해

얻고 배울 수 있는 엄청난 공부의 가능성

업장소멸의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 버리기만 해 왔던 것이다.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우주 법계는 당신을 위한 완벽하고도 정확한 깨어남과

성숙과 자각을 위해 신비롭게 완벽한 삶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주는 언제나 그래 왔다.

다만 내가 그 우주적인 협조를 받기를 깨려왔던 것일 뿐

아상의 계획에 동조하는 대신

우주법계의 근원적인 계획에 순응하라.

 

생각이라는 아상이 끊임없이 올라오면서

당신을 아상 아래 무릎 꿇도록 지속적으로 방해하겠지만

그 방해 작전의 농간에 속지 않을 수 있다.

단순하게 분별없이 삶을 통째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진리를 어렵게 생각지 말라.

수행을 어렵게 생각지 말라.

 

신심명에서는 이것을 지도무난 유혐간택 이라고 했다.

도는 어렵지 않으니 분별 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도이며 진리의 시작이자 끝이다.

 

수행은 어렵지 않다.

다만 분별하지 말고 완전히 받아들이면 된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심지어 마음 속에서 생각 하나가 일어나든

어떤 사람이 말을 걸어오든

음식을 먹을 때든

 

순식간에 좋거나 싫다는 분별이 올라오고

그 분별에 이끌리는 순간

 

좋은 것은 쫓고

싫은 것에서는 도망치고자 하는

아상의 속임수가 시작될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고 대비하면 된다.

 

무언가 경계가 다가오면

분명히 경계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이 차별 없이 받아들이는 공부를

하루에도 수십번 수백번 반복해 보라.

 

아니, 매 순간 활짝 열고 깨어있는 정신으로

매 순간 들어오는 모든 경계를 받아들여 보라.

 

하루, 3, 일주일, 21일 만이라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놓치면 놓치는 대로 다시 시작하면서

꾸준히 마음을 관찰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시작해 보라.

 

삶 자체가 생명력을 가지고

깨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한

힘의 움직임을 감지하게 될 것이다.

 

미세한 마음의 좋거나 나쁜 생각을 발견하고

그 분별을 넘어서서 고스란히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공부

이것이 당신이 해야 할 공부의 전부임을 잊지 말라.

 

이것 말고 더 할 것이 남았나?

없다.

여기에 팔만사천의 모든 법문이 다 담겨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