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범스님_ 용서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라! [큰스님께 듣는 깨달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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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종범스님_법문

2021. 4. 19.

 

 

 

자기 속에 일어나는 지옥을 다 들어가 봐야 해요.

내가 무슨 일을 했지?”

들여다보고

 

자기가 잘한 것만 자꾸 드러내서 자랑하지 말고

그것은 자기 속에 있는 도솔천궁이거든요.

 

그런데 무간지옥이 있어요.

그것에 깊이 들어가서 마주봐야 해요.

, 내가 얼마 정도 나이에 무슨 일을 했고, 어느 정도 나이에 무슨 일을 했는데

그때는 그럴 수 있었지. 그게 나다.“

그런데 그것만 한 게 아니다, 이거예요. 다른 거 좋은 것도 있다 이거죠.

 

그래서 자기가 잘못하고 자기에게 감추고 싶었던 것을

전부 자기가 끌어안아서

그걸 자기 자신이 이해를 하고

~ 녹여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자기 지옥에서 통과하는 거예요.

 

자기 지옥에서 통과를 하지 못하면

한 쪽으로만 한 쪽으로만 치우쳐서

나쁘다고 하는 것에서는 자기는 감추고 다른 사람은 공격해요.

은폐 공격이 계속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 잘한 그거 애들이 안 믿는 거 알아요.

애들이 먼저 알아요.

엄마는 말이야, 어느 때 뭘 했고, 어느 때 뭘했지.

엄마도 잘못한 거 있으면서 잘못한 건 싹 감추고 잘한 것만 지금 내세운다.

그거 알아요.

 

아버지가 나는 뭘 했다 뭘 했다 그러는데

할머니한테 너희 아버지가 젊을 때 어쨌다는 소리까지 들었거든, 벌써.

아버지 그 무간지옥을 다 알고 있는데

자신이 이야기할 때는 도솔천궁만 이야기하니까 가짜라는 거 다 알거든요.

 

그러니까 한쪽으로는 자꾸 은폐를 해요.

한쪽으로는 자꾸 자랑을 해요.

이게 인간이거든요.

 

그걸 또 다른 사람이 먼저 알아요.

저 친구가 잘못한 거는 다 숨기고 잘하는 것만 내세운다.

그러지 말고 자기가 잘못한 거 다 받아들여서

자기를 용서하고 자기를 이해하고

자기를 다 감싸 안아서 그것까지 사랑해라.

 

그때는 몰라서 그랬고, 경험이 없어서 그랬고

잘하려고 그랬고.

그런데 잘한 것도 있다.

 

그러니까 이게 뭐 굉장히 잘난 것도 아니고 못난 것도 아니고

잘하고 잘못한 거 딱 비교해보면 제로거든요.

제로섬이에요.

 

나를 다 용서하고 이해하다 보면

며느리도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고

영감도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고

아들도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고

이게 인간성이에요.

 

자꾸 뭐. 내세우는 사람은 자기 잘못한 건 감춰요.

자기 잘못을 감추는 사람만이 남의 잘못을 공격합니다.

자기 잘못을 다 감싸 안고 이해하고 용서하면요

남의 잘못 절대로 공격하지 않아요.

공감하세요?^^

 

1. 자기 지옥에서 벗어나라. (자기 지옥 통과하기)

2. 남의 잘못 이해하기.

 

이래야 이 사회가 너그러워져요.

자기 잘못을 다 통과를 해야 해요.

그게 인과거든요.

 

인과는

나쁜 일을 하면 그게 오래가잖아요.

좋은 일을 해도 그게 오래가요.

한번 좋을 일을 하면 그 좋은 일 한 투자가 평생 즐거움을 받는 거예요.

 

좋을 일 하는 것처럼 자기 인생에게 어마어마한 투자가 없어요.

그리고 나쁜 일을 하면 그 하는 순간은 잠시인데 이게 평생 가거든요.

 

나쁜 거 하는 것처럼 자기 인생을 망치는 게 없는 거예요.

이걸 알아야 해요. 인과라는 것을.

 

나쁜 일은 순간인데 그게 평생 나를 괴롭히는 거예요.

좋은 일은 순간인데 그게 평생 나를 즐겁게 만들어요.

 

그런데 이 마음이 점점 깊어지고 깊어지면

이게 좋은 일이든지 나쁜 일이든지 하나의 영혼 현상이기 때문에

고명신, 그거 하나밖에 없어요.

고명.

 

선과 악이 근본은

다 본래 밝은 영혼이 자기 업으로 얻어지는 자득 현상이거든요.

본래 밝은 영혼이 없으면 나쁜 일도 못하고 좋은 일도 못 해요.

 

나쁜 일 하는 영혼도 홀로 밝은 거고

좋은 일 하는 영혼도 홀로 밝은 건데

그것이 인연이 좋은 쪽으로 가면 선업이 되고,

인연이 나쁜 쪽으로 가면 악업이 되거든요.

 

그러면 악업은 늘 괴로움이 따르고

선업은 늘 즐거움이 따르는 것에요.

 

그런데 선업을 자꾸 짓다 보면 나중에 지혜를 짓는 쪽으로 발전하게 돼요.

지혜를 지으면 선과 악을 자기가 자제할 수 있어요.

 

도인들이라고 다 악을 안 짓는 게 아니에요.

왜그러냐하면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줘야 하는데

()하는 건 두 가지에요.

 

()라는 건 범어가 마이뜨리에요. 마이뜨리. 준다는 소리에요.

한자로 번역할 때, 준다는 줄 여, 즐거울 락, 여락이라고 번역해요.

그걸 한자로는 자()라고 하거든요.

 

()는 까루나인데

까루나는 괴로움에서 꺼내준다는 소리예요.

그걸 발고라고 그럽니다. 뽑을 발, 괴로울 고.

고통에 빠진 사람을 건져 줄 때, 그게 비()에요. 그게 까루나에요.

 

그리고 자()는 마이뜨리인데 그건 즐거움을 주는 것.

고통에서 건졌으면 즐거움을 줘야 할 거 아니에요.

지옥에서 나왔으면 해탈 그 복락을 얻으면 이게 자비에요.

 

지옥에서도 건져주고

그 해탈의 즐거움도 얻게 하고

이게 발고여락(拔苦與樂)이거든요.

 

이런 좋은 업을 짓는 것이

지옥에서 나오는 것이 되고 또 해탈락을 얻는 것이 되니까

그게 정말 좋은 거죠.

 

인생은

좋은 인연을 짓는게 그게

정말로 자기 인생을 기쁘게 하는 거거든요.

 

그러면 나쁜 일을 하면 왜 나쁜 일을 했느냐?

자기 감정에 복받쳐서 그랬거든요.

자기 감정에 복받쳐서..

그래서 나쁜 짓 하는 거예요.

 

나쁜 짓한 자기 자신을 다 용서하고 이해해야 해요.

내가 무서워서, 내가 억울해서 그랬다.”

 

어떤 사람이 무력감이 와요. 무력감.

하기 싫어. 아무것도 하기 싫어.

그런데 나중에는 화가 나.

이 무력과 분노가 똑같은 거거든요.

아무것도 하기 싫은 그 밑에는 분노가 있어요.

그 분노가 그냥 폭발하면 되는데, 폭발을 못하니까 하기 싫은 거예요.

이게 문제거든요.

 

그럼 왜 그러냐 그러니까

시어머니가 미운데, 이걸 쫓아낼 수도 없고, 뜯어고칠 수도 없고,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어.

그래서 그냥 맥이 풀리고 의욕이 안 생기고, 무력해져요.

 

그러면 어떡해야 해요, 이걸.

이게 자비심이에요. 자비심.

 

시어머니 저 물건이 왜 저렇게 할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그분의 업보가 있거든요.

그걸 이해를 해야 해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그분의 업보가 있는 거예요.

, 저렇게 할 때는 저렇게 할 만한 그 분의 사연이 있다. 그 분의 인생이 있다.

그걸 알아서 이해를 해야 해요.

 

그런데 결국은 며느리가 이기거든요.

인생 후배가 되어서 시어머니는 먼저 죽어요. 반드시 먼저 죽어요.

 

남편하고 안 맞는 게 더 문제이지, 시어머니하고 안 맞는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건 우리 어머니가 가르쳐 준 거예요. ㅎㅎ

, 이 자비심이 여기서 나와야 해요.

 

시어머니가 며느리한테 지나치게 하는 것은

그분에게 그럴만한 원인이 있는 거죠.

그분의 자기 문제인 거예요. 자기 문제, 자기 감정 문제거든요.

자기 감정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며느리한테 계속 나쁜 짓 하는 거예요.

그러면 시어머니를 이해를 해야 하죠.

원망하고 막 그냥.. 복수하려고 그러고, 그래서 안 되니까 자기가 자기 몸 망치고

이게 잘못 가는 거거든요.

 

자비심,

저렇게 되니까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여야죠.

그분을 이해만 해도 나한테서 그분에게 향한 공기가 벌써 달라져요.

그러면 공기를 딱 느끼고 시어머니 아무리 이상한 시어머니라도 슬슬 풀리기 시작하거든요.

그래서 이 자비심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요.

 

그리고 육아에서는 어질 인, 인성, 인덕, 어질 인, 큰 덕.

어질다는 개념이 막막하잖아요.

옥편에 찾아보면 종자 인, 이렇게 되어있어요. 씨앗이에요. 종자.

그래서 한약방에서는 종자를 표현할 때, 어질 인자를 쓰거든요.

살구 씨, 살구나무 행, 어질 인, 행인이라고 써요. 씨앗.

 

사람에게 인간 씨앗이 있어요.

인간을 돕고 인간을 공경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하는 인간 씨앗이 있는데

인성 종자가 있다 이 말이오.

 

그 인성 종자를 잘 키워내면 좋은 사람 되는 거예요.

인성 종자를 가지고는 있는데 이걸 잘못 키워내면

원망한다든지, 분노한다든지, 자기 감정에 빠져서 스스로 죄악을 만든다든지 이렇게 되면

다른 사람도 괴롭히고 나도 괴롭히고, 이렇게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 자기에게 있는 인성, 또 자기에게 있는 자비.

이것을 자꾸 드러내는 방법이 수련도 하고 기도도 하고 이런 거거든요.

 

그 본래 나와 만날 수 있는 그 인연이 바로 이런 거예요.

좋은 말씀도 듣고, 자기를 돌아보고.

 

우선 자기하고 만나야 해요.

자기를 피하지 말고.

자기 조우, 자기와 조우하라. 만나라.

 

그럼 나는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엄마는 네 나이 때, 아빠는 네 나이 때, 이따위 소리 다 걷어치우고

내가 어릴 때부터 뭔 짓을 했나?

그러면 자기가 지옥으로 들어가거든요.

그거 다 용서하고 다 이해하면 거기서 나오게 돼요.

자기 지옥 탈출하기.

자기 지옥 통과하기.

 

그걸 왜 내가 한 건데 왜 내가 이해를 못하고 그래요?

자기를 이렇게 다 이해하고 용서하고 보면

아들도 용서하게 되고 아버지도 용서하게 되고 다 이해하게 되고 그래요.

 

자성청정, 인과역연 이런 거 해서

하여튼 좋은 인연을 많이 짓는게, 내가 두고두고 스스로 즐거움을 받는 일이에요.

 

즐거움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쾌락과 희열이 있는데

 

쾌락은 다른 데서 얻는 즐거움이에요.

좋은 음식을 먹는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난다, 가고 싶은 데를 간다.

이게 다 다른 외부에서 오는 즐거움이거든요.

사람과 물질과 환경에서 오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것은 받을 때 뿐이에요.

받고 나면 그게 그렇게 즐거운 기억으로 남지 않고 더 좋은 걸 또 찾게 되요.

그래서 쾌락은 점점 단위가 높아져야 해요.

쾌락은 받아도 받아도 그게 끝까지 가는 게 아니라

항상 허무하고 항상 새로운 걸 찾는 거거든요.

여기서 머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 뭐냐?

자기가 진정으로 노력해서 얻어진 기쁨은

이것은 다른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거거든요.

주체적인 즐거움이에요.

종속적인 즐거움이 아니고요.

쾌락은 종속적인 거거든요.

 

그래서 이것은 희열이라고 그럽니다.

기쁠 희, 기쁠 열, 희열.

이건 자기 노력으로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기쁨이니까

이건 엄청나게 오래가고 엄청나게 무게가 커요, 희열.

 

1시간 동안 기도를 했다.

그 기도 하고 나면 희열이 있어요.

내가 좋은 일 했다. 좋은 일하고 나면 희열이 있어요.

그건 쾌락과 비교할 수 없는 거예요.

희열의 경험은 생각할수록 항상 즐거워요.

그런데 쾌락적인 경험은 그게 즐겁지 않아요.

 

그래서 좋은 일을 하는 것은 누구 주는 게 아니에요.

나의 희열을 내가 만드는 거고요

나의 희열을 내가 오래오래 간직하는 거거든요.

 

그리고 이 정신세계는

깊이 들어갈수록 오묘하고 넓어서

점점점 더 새로운 기쁨이 있는 거예요.

 

새색시가 있었는데요, 시집온 지 얼마 안 됐는데

그 분이 어떤 스님한테 마음공부 하는 법을 알았어요.

그래서 불교가 뭐하는 거냐 했더니 그 선방에 다니는 스님이니까

비구니스님이라고 하더라고.

절에 가서 뭐 하냐고 그러니까

절에서는 내가 나를 찾는 공부를 한다.

그 내가 나를 어떻게 찾냐? 그러니까

나는 보고 듣고 생각하고 움직이고 이것이 난데

사람들은 이걸 모른다.

그래서 내 몸에서 보는 놈, 듣는 놈, 생각하는 놈, 움직이는 놈,

그것을 찾는 게 그게 도 닦는 거고, 그걸 하는 거다.

 

그걸 하면 어떻게 되냐?

거기에 어마어마한 즐거움이 있는데 그건 말로 할 수 없다.

그걸 딱 믿은 거예요. 새색시도 참 고지식 했었나 봐, 그 말을 믿었어요.

 

그래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이놈이 뭔가?

보름 만에 깨달음이 왔어요.

깨달음이 왔는데 그 깨달음이 뭐냐하면

이 몸이 다 허공과 같구나. 허공신을 깨달은 거예요.

 

이것을 내가 누구한테 가서 점검을 받아야겠다.

큰스님이라고 유명한 분을 찾아갔어요.

 

이 몸이 환하게 허공처럼 공함을 깨달았다.

벌써 알거든요. 그 경지가 있어요.

그러냐고.

그럼 이 몸이 공이니까 이 자리에서 옷을 벗을 수 있느냐?

뭐라고 했겠어요?

그럼 이 자리에서 옷을 벗을 수 있느냐?

옷 안 벗으면 못 깨달은 거 아니오.

, 벗고 말고요, 그냥 훌훌 다 벗은 거에요.

 

큰스님이 벌써 저 자가 남자처럼 욕했겠죠.

저 놈이 틀림없이 그렇게 할 거다.

이래서 딱 가지고 있는 주장자, 몽둥이를 딱 숨기고 있었어요.

 

그래서 옷을 벗자마자 그냥 그 힘이 셌어요. 그 노인스님이.

그냥 후려 때렸어요.

어마어마하게 아픈 거예요.

거기서 정신이 확 돌아온 거예요.

, 이거 가지고 되는 게 아니구나.

그래서 막 옷을 주워입고

아 이거 앞으로 어떻게 공부를 하면 됩니까? 이래서

다시 공부를 해서 아주 비구니계의 훌륭하게 됐다고 하는 유명한 이야기거든요.

 

그러니까 그 아픈거, 그거 인과에요.

또 허공, 우리 몸 그대로 허공이에요.

 

그런데 홀로 밝은 것은 몸덩어리도 아니고, 허공도 아닌 것에요.

허공도 아니고 몸둥이도 아니고

그래서 역력고명(歷歷孤明)이라고 그러거든요.

분명하게 홀로 밝은 고명신이란 말이에요. 자성신.

그게 나에요.

 

그건 불에 들어가도 썩지도 않고, 나이 많아도 늙지도 않고

어디 옮겨도 장소도 아니고, 시분방분도 없고

항상 홀로 밝고 홀로 자제한 그거거든요.

 

그럼 그렇게 가려면 나쁜 인연에 발목이 잡히면 안 돼요.

나쁜 인연에서 탈출해야 해요.

그걸 극복하고 통과해야 해요.

그러려면 옛날의 잘못은 다 스스로 용서하고 스스로 참회하고 스스로 이해하고,

새로운 좋은 이연을 자꾸 지어요.

 

기도도 하고 법문도 듣고

하여튼 자비심을 자꾸 살려서 드러내면

그게 남한테 좋은 일 하는 게 아니라

내 인생을 아주 즐겁게 하고, 지혜롭게 하고 편안하게 하는 거거든요.

 

오늘 법문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