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 1673회] 보왕삼매론 중에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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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즉문즉설(2021)

2021. 5. 11.

 

 

보왕삼매론 마지막 말씀이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된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왜 그런지 알 것 같으면서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거나 그저 명쾌한 답변이, 명쾌한..

어떻게 명쾌하게 답변을 해.

아는 대로 하지. ㅎㅎ

 

선생님과 제자가 서로 신뢰하고 같이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제자가, 여자 제자라고 치고 한번 얘기해 보자.

울면서 뛰쳐나가면서

선생님이 나를 성추행 했다, 이렇게 얘기한다 이 말이오.

선생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겠어?

 

그럼 이걸 만약에 밝히면 어떤 일이 되겠어?

밝히면 이 학생이 나쁜 학생이 되잖아, 그지?

그러면 이 선생님이 아이를 정말 사랑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어?

자기가 비난을 받고 말아야 하겠어?

이걸 밝혀서 아이의 인생을 망쳐야 하겠어?

 

이런 문제에서는 밝힌다고 반드시 좋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런 얘기에요.

그럴 때는 이 성추행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아무도 모르잖아,

두 사람밖에 모르니까 그걸 주제 삼으면 안 되고

아무튼 나로 인해서 아이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내 잘못이라는 거요.

아이가 어떤 이유로든 아이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나에게도 문제가 있으니까

그거는 좀 더 지켜보자.

 

아이의 말을 아이가 좀 진정할 때까지 지켜보자.

이렇게 해서 아이의 해명을 필요로 하는 얘기겠죠.

이런 경우도 있고.

 

사람 둘이 싸우는데, 다투는데 보면

이 사람도 억울하다고 그러고, 저 사람도 억울하다는 게 대부분이잖아요.

양쪽 얘기를 들어봐요.

이 사람이 억울하다고 밝히면 다른 사람이 억울해지는 거요.

그러면 이 사람 입장에서는 자기를 변명하려고 밝히려고 하면

또 이 사람이 억울해지는 거요.

그래서 원수가 원수를 갖는 것처럼 반복된다, 이런 얘기에요. 반복된다.

 

이거는 사회적인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억울한 게 있으면 밝혀야 하잖아.

그러나 그것으로써 우리의 마음의 괴로움이 끝이 안 난다는 거요.

이게 반복되기 때문에.

원수를 갚으면 사회적으로는 좋잖아요.

그러나 원한은 원한을 낳아서 되풀이된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

꼭 그것을 밝혀서 상대가 잘못했다는 것을 밝힌다고 해서

우리의 심리적인 평화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인욕이라는 게 필요한 거예요.

그런 비난을 감내하면서 이걸 종결시킬 수 있다.

 

상대가 잘했고 내가 잘못했다. 이 상태면

나만 인내하면 종결이 되어 버려요.

그런데 내가 밝혀서 상대가 잘못했다고 되면

그 사람은 또 그걸 밝히려고 계속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수행의 핵심은 윤회를 끊는 거거든요.

이게 반복되는 것을 종결시키는 거요.

열반이라고.

 

그런 측면에서 얘기하기 때문에

이것은 수행적으로 굉장히 깊은 얘기에요.

세속에서 그냥 일반 논리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거는 맞습니다.

여러분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겠죠.

저도 20대 때는 이게 이해가 안 됐어요.

보왕삼매로 9개까지는 그래도 뭐, 다 못따라 해도 이해가 되는데,

이건 이해가 안 되었어.

 

고문당하고 뭐하고 억울한 거, 이거 밝혀야 한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이것을 나이가 들고 더 인생을 겪어보고 많~~~은 사례를 모아보면

그것이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억울한 걸 다 덮어두라가 아니라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말할 수가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는 그것을 덮고 넘어가야 할 경우도 굉장히 많다.

 

지금 남북관계도 한일관계도 국내 정치도

계속 서로 억울하다고 서로 밝히니까 끝이 안 나잖아. 끝이.

그래서 서로를 해친다. 이거야.

 

적정한 선에서 우리가 덮을 줄도 알고

또 밝히기도 해야 하고, 덮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 데서 윤회가 끝이 나려면

덮을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거기는 보살이라고 하는

왜 자식이 범죄를 저질렀는데, 부모가 이런 얘기 신문에도 나잖아요.

자식이 돈을 가지려고 부모를 죽였잖아요.

부모 돈을 훔치다 걸려서 부모를 죽이고 도망을 갔는데

그 증거를 남겨놨어요.

그럼 이게 밝혀지면 자식이 감옥에 가잖아,

그러니까 그 어머니가 죽으면서 그 증거를 자기가 입에 넣고 죽었다.

그래서 자식이 잡히지 않도록. 이런 얘기.

 

못 들어봤나? 그런 얘기?

그건 실제로 있던 사건으로도 여러 번 나왔는데.

이런 게 뭘 말하냐 하면

그게 자식을 사랑할 때, 그냥 무조건 감싼다는 게 아니라

이런 자비심이 있으면 이런 일도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이기고 지는, 늘 복수하고 이기고 지는

이런 관점에는 굉장히 어려운 것은 맞습니다만

윤회의 고리를 끊는다 하는 측면에서 볼 때

그러니까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원수를 원수로 갚지 마라.

원한을 원한으로 갚지 말라는 거와 같은 이야기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