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어주는스님] 잠 못 드는 사람에게 밤은 길고 (1)l개미에게 시주한 꿀l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_정목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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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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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제가 있는 암자는

바닥 면적이 20평 정도 되는 작은 암자입니다.

그러나 좁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와야 하는 이곳이

제겐 결코 작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창밖으로 북한산 보현봉이 한눈에 들어오고

흘러내리는 인왕산 자락이 펼쳐놓은 천연의 숲을 후원인 양 쓰고 있는 제 방 또한

비록 두 평밖에 안 되지만

방 안 가득 달빛을 들여놓을 수 있어 좋습니다.

 

눈 오는 날이면 멀리서

마치 히말라야처럼 펼쳐지는 북한산의 설경을 보기 위해

저는 종종 망원경을 눈에 대곤 합니다.

망원경을 눈에 대고 그렇게 히말라야를 상상하며

추억에 젖곤 하지요.

 

몇 해 전 티베트의 포탈라궁에 갔을 때

해발 3,800미터에 들어앉은 궁전 꼭대기에서

어린 달라이 라마가 망원경으로 라싸 시가지를 내려다보곤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환생한 법왕으로 선발되어

부모 품을 떠나야 했던 어린 달라이 라마가

또래 친구도 없는 넓은 궁전에서 얼마나 고독했을지...

 

산동네에서도 가장 꼭대기 집인 선다암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으로는

오래된 대추나무와 후박나무, 모과나무 등이 눈길을 끕니다.

 

가을에 조롱조롱 달리는 대추나 모과 열매도 보기 좋지만

나무 못지않게 나무를 찾아오는 새들 또한

경쾌한 몸놀림과 아름다운 소리로 시선을 끕니다

 

재재재재, 삐리릭 삐리릭,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이야기에 빠져

멀리서 누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줄도 모르는 새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묵은 곡식을 한 움큼 집어 담장 위에 뿌려 놓습니다.

 

그러나 새들은 쉽게 담장 위로 내려앉지 않고

빙빙 돌기만 합니다.

앉을 듯하다가 눈치를 보고, 앉을 듯하다가 눈치를 보는 소심함.

 

새들이 그렇게 의심이 많은 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어느새 우리는 새들에게까지 인심을 잃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주변을 빙빙 돌거나

멀찌감치 앉아서 큰소리로 짹짹거릴 뿐

가까이 접근하지 않는 새들.

 

친구도 불러보고 가족들도 데려오고 하여

새들이 일으키는 소동으로

암자는 갑자기 적막에서 벗어납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얽힌 추억이

삶에서 큰 몫을 차지하듯 절집에 있어 보면

노스님에 대한 추억이 큰 자리를 차지합니다.

 

저 또한 나무나 새, 하잖게 여겨지는 벌레 하나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노스님들에게서 배웠습니다.

 

사미니 시절 어느 날,

저녁 예불을 마치고 나와보니

그날따라 유난히 긴 개미 떼의 행렬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개미들이 한꺼번에 열을 지어 가는 모습은 본 일이 없었기에

넋을 잃고 보니

그들은 먹을 것을 끌고 어디론가 열심히 운반하는 중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자기 몸집의 몇 배나 되는 큰 빵 조각을

비틀거리며 옮기고 있는 개미를 발견하는 순간

장난기가 발동해 빵 조각을 빼앗아버렸습니다.

 

갑자기 물고가던 빵 조각을 빼앗겨버린 개미는

제자리를 뱅뱅 돌며 먹이를 찾다가

나중엔 거의 미칠 것 같아 하는 눈치였습니다.

 

안절부절못하는 개미가 재미있어 킥킥거리며 즐거워하는 제게

호통을 친 건 노스님이었습니다.

"어서 그 개미의 먹이를 도로 돌려줘라.

비록 미물이라도 느낌이 있고 감정이 있거늘

힘이 센 자가 약자를 놀리고 괴롭히면 과보(果報)를 받는다.

힘 있는 자가 힘을 갖춘 이유는 약한 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이 나아가는 길을 막으면 네가 나아가는 길도 막히고

그들의 먹이를 빼앗으면 네 것도 빼앗긴다.

모든 생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

힘 있는 자가 약자를 보호하고 보살펴야 한다.

인간에겐 장난일지 모르지만

말 못 하는 미물에겐 생사를 가르는 일이 되는 것이니

법복을 입은 자가 남을 괴롭히는 장난을 해서는 안 된다.

내 방에 가면 벽장에 꿀병이 있으니

그 개미에게 사과하는 뜻으로 개미집 앞에 꿀 한 숟가락을 떠 주거라"

 

그날 노스님 말씀에 감동받은 저는 진심으로

개미에게 사과했습니다.

꿀 한 숟가락을 시주한 그날 이후

모든 사물과 생명을 바라보는 내 마음에 큰 변화가 생겼지요.

 

어쩌다 새가 발가락을 다쳐 절룩거리거나,

강아지가 다쳐서 피를 흘리거나 하는 모습을 볼 때

가슴 깊은 곳에서 슬픔이 밀려오고,

내 몸이 저리고 아파옵니다.

 

약 한번 못 쓰고, 병원도 못 가는 미물들의 아픔이야말로

고통 중의 고통입니다.

가뭄에 꽃과 나무 잎사귀들이 타들어 가는 것을 볼 때도

마음이 아픕니다.

 

잔인한 인간의 욕심 때문에 말 한마디 못 하고 죽어가는 야생동물을 보면

그들의 고통이 뼛속을 뚫고 들어와 종일 입맛도 없고 잠도 오지 않습니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날

개미들은 어디로 피신했는지

새들은 어디서 비를 피하는지

집 없는 고양이들은 어느 바위틈을 의지하고 있는지

 

말 못 하는 미물들이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는 날이 언제나 오게 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