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범스님_ '마음공부' 깨닫고 하면 정말 쉽다 [큰 스님께 듣는 깨달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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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종범스님_법문

2021. 8. 2.

 

 

 

 

마음공부하는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하니까 힘든데

깨닫고 하면 아주 쉬워요.

 

무슨 생각이 턱 일어난다,

그러면 깨닫지 못한 사람은 일어나는데로 쫓아갑니다.

화가 나면 화나는데로 화를 내고

 

깨달을 사람은

일어날 때 거기서 탁 멈추는 거예요.

그걸 일래라고 그래요. 한번 온다.

두 번 오지 않는다.

 

미운 생각이 턱 일어난단 말이에요, 그게 오는 거예요.

일어날 때 멈추어 버려요.

그게 일래과입니다.

한번 갔다 오는 거예요.

 

가는 건 뭐요?

저거 좋다하고 간 거죠.

그러면 돌아올 거 아니에요, 거기서 멈추는 거예요.

 

과거에 무슨 일이 턱 생각나는 거죠.

과거에 갔던 건 돌아온 거 아니에요.

그럼 거기서 탁 멈추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마음공부에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

일래라는 게요, 일래라는 게 중요한 문제인데

 

/전념이 기념에 후념이 즉지라.

_앞생각이 생각을 턱 일으키면 뒷생각이 곧 그쳐 버린다./

 

그게 앞생각을 생각을 일으킨게 그게 온 거예요.

곧 그쳐버려요.

저 사람 밉다이게 온 거거든요.

그럼 미우면 과거 같으면 욕을 한다든지, 뒤에서 막 흠담을 한다든지, 아니면 쫓아가서 싸운다든지, 이런 방법으로 해결한 건데

딱 멈추어 버려요.

내가 공여한 생각을 내는구나.”

기념즉지_ 생각을 일으키는 순간에 곧 그친다. 이거에요. 이게 공부에요.

일으키는 순간에 곧 그쳐 버려요.

그래서 생각이 일어났을 때 곧 해결되어 버리면 아주 효율적이에요.

 

무서운 생각이 일어났다 그러면

그게 오는 거거든요. 그게 일래에요.

곧 그쳐버려요.

, 무서울 게 없다.

왜냐하면 색즉시공이고, 유구개고라_ 구하는 게 있는 건 다 고통이다.

구할 생각이 탁 일어나면 그쳐요. 유구개고니까. 구함이 있는 건 다 괴로운 거니까.

또 보고 듣고 이런 것에 마음이 턱 일어나면 또 그쳐요, 색즉시공이니까.

 

그리고 여기서는 이실무왕래,_ 진실로 갔다 오는 것이 없다.

그러면 누가 그렇게 그치고, 누가 그렇게 색성미촉법에 들지 않는가?

그걸 말하는 건데요,

그친자가 없고, 또 들어간 자가 없다. 이 말인데

왜 그러냐?

무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아.

이미 무아를 깨달았기 때문에 아라한도 아라한이 아니고, 수다원도 수다원이 아니고

사다함이 사다함이 아니다.

그래서 무아, 이걸 아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왜 얻었어도 얻은게 아니라고 그러냐?

얻었다고 하면 아상인상중생상에 집착했다고 그러냐?

그게 무아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알고 보면 전부 아집망상 때문에 화도 나고 욕심도 나고 하는 거거든요.

아집망상 때문에.

무아를 턱 깨달으면 화가 나다가도 딱 난 거 알면

무아니까 그치죠.

또 현상을 보고 욕심이 나다가도 그치죠.

? 색이 공하니까.

 

그래서 색즉시공, 무아무법, 이것에 대한 깨달음이 밝아있으면

과거의 습기로 집착의 습기, 욕심의 습기로 생각이 일어나도

전념이 기망에 망을 일으키매 후념이 즉지라, 뒷생각이 곧 그친다.

 

이 마음공부하는 사람은요

화가 났을 때, 일어나는 순간에 그걸 딱 알아차려서 그쳐버려야 해요.

그게 마음공부에요.

괘씸하다고 어디에 입력해놓고 속에 담아놓고 이건 마음공부가 아니거든요.

생각이 일어났을 때 곧 그치는 거에요.

기념즉지라고요. 그념즉지.

 

생각이 일어났을 때 곧 그쳐야 해요.

그게 마음공부에요.

 

무서운 생각이 일어났다, 무서운 생각이 왜 일어나요?

구하는 마음과 색이 공함을 모르는 마음에서 일어난 거거든요.

색즉시공이니까, 무서울게 하나도 없구요

또 색즉시공이니까 구할게 하나도 없구요.

또 무아무법이니까 억울하고 분할 게 하나도 없는데

아집 습관으로 억울하고 분하고, 과거에 색이 공함을 모르고 살던 습관으로

자꾸 집착을 하고 따라가고 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수다원과만 얻어서는 그게 딱 안 그쳐진다.

그러니까 사다함과에 가서 일어났을 때 그걸 딱 그친다 이거예요.

그게 두 번째 단계입니다.

지혜를 닦아 나가는데 길이 있다 이 소리죠, 있는 게 맞잖아요.

꿈에서 탁 깼을 때 그건 수다원이에요.

그런데 꿈이 아닌 세계가 펼쳐졌는데 꿈에 기억이 남아서 꿈꾼 데 왔다갔다하는 게

그게 일래과, 그게 사다함이죠.

꿈꾸던 버릇이 남아있다.

그 버릇을 그치는 거에요.

 

세 번째는 아나함이죠.

아나함은 名爲不來명위불래 而實無不來이실무불래라.

_이름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로되 진실로 오지 않는 것이 없다.

왜 오지 아니함이 없느냐? 무아니까 그래요. 무아.

무아니까 오지 아니함이 없고

그러면 오지 않는다는 말은 뭐냐?

이것은 구사론식으로 설명하면 저 높은 천상에 올라가서 다시는 하계 욕계

낮은 세계, 욕계세계, 욕망이 지배하는 세계에 안 내려온다, 이렇게 설명하는데

수도하는 세계로 보면요

욕습이 영진이라, 욕습 욕망의 습관이 다한걸 말해요.

그래서 다시는 욕습이 안 일어나요. 그걸 불래라고 그래요.

욕망의 습관이 일어났을 때 그치고 일어났을 때 그치고

분한 마음이 일어났을 때 그치고, 분한 마음이 일어났을 때 그치고 그러면

오래오래 그치다보면, 그 욕심도 분심도 안일어나요. 그걸 불래다, 오지 않는다.

화가 안 나요, 그때는.

화가 났을 때 그치면 그거는 일래고, 사다함이고

화가 아예 안 나면 그건 불래죠. 그게 세 번째 아나함입니다.

보통 우리도 화 안날 때 있잖아요.

일어났을 때 참는 것도 있고요.

화 안 난 상태, 화가 안 나. 아나함이 되면. 웬만큼 얘기 들어도 안 나요.

욕습이 영진이라고 그래요.

욕심의 습관이 영원히 다해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욕계에 태어나지 않는다. 이거죠.

그래서 불래라 그래요.

 

--

그다음에 아라한, 아라한은 뭐라고 설명했나.

아라한은 무쟁삼매라고도 하고요, 또 이욕이라고도 하고요, 또 아란나행도 좋아한다, 이런말도 있어요.

 

그런데 이 아라한을 번역을 할 때 3가지로 번역을 합니다.

첫째는 없을 무, 도둑이라는 적, 무적이라고 번역을 해요.

도둑은 번뇌입니다. 거참,

번뇌를 도둑에 비유했다 이거죠. 거참 재미있어요.

 

도둑이 뭐 하는 존재인가? 나를 손해를 끼치는 존재가 도둑이잖아요.

그러면 나를 손해를 끼치는 게 뭐냐? 나의 번뇌입니다.

나의 번뇌가 나를 괴롭히는 거예요, 나의 욕심이. 나의 분심. 이런 게 나를 괴롭혀요.

나의 어리석음.

 

누구를 원망하리요, 내가 어리석어서 그런데.

그렇잖아요.

노래 뭐, 콩깍지가 씌웠다 그러는데 누가 꽁깍지 덮었나요?

내 스스로 씌웠는데 누구를 원망하리오.

그러니까 나의 어리석음, 나의 욕심, 나의 분심, 나의 분노, 이런 게 나를 괴롭히는데 그게 전부 나의 도둑이다 이 말이오.

그게 탐진치가 다 없다, 그래서 이걸 무적이라고 그래요.

탐진치가 하나도 없이 없어진 상태가 그게 아라한입니다.

그래서 무적이라고 그래요. 번뇌가 없어요. 탐진치가 없어요. 아라한이 되면.

일래, 그런 거 아니에요.

불래, 오지 않는게 아니에요. 영원히 없는 거에요.

 

그리고 두 번째는 불생, 다시는 생사를 받지 않아요.

그래서 부처님이 첫 번째 아라한이 되고 게송을 읊으신게 있는데요

아함경 같은 데서 계속 반복해서 나오는 겁니다.

부처님이 아라한이 첫 번째 되었을 때의 상태를 이야기한 거거든요.

 

아생은 이진이라 나의 생사는 이미 끝났다.

생사가 욕심 때문에 시작이 돼요.

그래서 욕심이 없어지면 생사는 없어지는 거예요.

12연기에서도 무명행이 나오는데, 무명행이 욕심이거든요.

명색이, 거기서부터는 태어나는 거예요.

그런데 무명행이 없어지면 명색이 없어지죠.

그다음은 다 없어지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탐진치가 다 끝나니까 생사가 끝나버린 거예요.

 

그다음에 범행은 이립이라_ 닦아야 할 도는 다 닦았다.

그러면 닦아야 할 도가 다 뭐냐? 탐진치를 닦는 거거든요.

탐진치를 다 깨끗이 없앴다 이거예요.

탐진치를 안 일으키니까 생사가 끝나고 탐진치를 다 깨끗이 정화를 시켰으니까 도를 다 닦은 거고,

 

소작은 이판이라_ 해야 할 바는 이미 다 했다.

삼매와 신통은 다 얻었다 이거에요.

삼매가 여일하게 되요. 아라한 이후에.

그러면 삼매와 신통을 다 얻었기 때문에 해야할 것은 다 했다.

불수후유라_ 다시는 생사를 받지 않는다.

탐진치를 일으켜야 생사를 받는데, 탐진치를 안 일으키니까 생사를 안 받는 거예요.

그걸 아라한이라고 그럽니다. 그걸 불생이다, 이렇게 설명해요.

 

/다시는 생사 가운데서 고통이 있는 몸을 받지 않는다.

이것이 불생이다/

고통이 있는 몸을 왜 받는가? 구하는 욕심 때문에 받았는데요

어머니 아버지 왜 나를 낳았나.

그 어머니 아버지가 낳은 게 아니고 내가 이 세상을 그리워해서 구하려고 하는 그 욕심이 있어서 어머니 아버지 도움을 받아서 나온 거에요.

그걸 모르고. 어머니 아버지가 생제비를 낸 줄 알아요. 절대 생제비로 낸 거 아니에요.

내가 세상에 나와보고자하는 욕심이 있어단 말이에요. 구하는 마음이 있었다.

구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부모의 도움을 받아서 왔다, 이건데

자기업, 자업자득, 자작자수는 꿈에도 모르고

부모님이 나를 낳아서, 그것도 잘 낳지 못하고, 근사한 부모도 아니고, 부모원망하고,

그게 정말로 어리석은 거에요.

그래서 항상 자업자득, 자작자수, 색즉시공, 제상비상, 이걸 턱~ 보고 있으면

번뇌가 안 일어나요.

그걸 못보니까 자꾸 구하는 마음이 생기고 거지서부터 뭐가 따라오는 거죠.

 

아라한이 바로 다시는 생사는 안 받아요.

왜냐? 탐욕을 끊었기 때문에.

그걸 불생이라고 그럽니다.

 

세 번째는 응공이라고 번역을 해요.

공양에 응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응공이 뭐냐? 생사를 벗어났기 때문에 생사에 못벗어난 사람으로부터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다라는 거예요.

생사를 벗어났기 때문에.

그러면 생사를 벗어나지 못한분이 생사를 벗어난 분에게 공양을 올리면

그게 복을 짓는 거예요.

그래서 아라한은 응공, 복전이라고 그래요. 공양에 응하는 복밭이다.

그게 불교입니다.

복전이 되요.

생사를 벗어난 아라한에게 생사를 벗어나지 못한 중생이 공양을 올리면

그게 한없는 복이 되는 거예요.

/아라한은 중생이 복을 심는 복밭이다. 그래서 복전이라고 그래요./

 

공양을 올리면 공양 올리는 사람이 감사하게 여기는 그게 불교에요.

왜냐?

내가 복을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그걸 신심이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요거 아주 중요해요.

자선과 공양은 전혀 달라요.

뭘 베풀 때 자선이냐? 공양이냐?

자선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선행을 베푸는 입장이고

공양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복을 심는 입장이에요.

그런니까 복을 심는 사람이 고마운 마음을 일으키는 게 당연하잖아요.

그게 전혀 틀리니까, 그게 불교의 아주 깊은 뜻입니다.

이건 내가 복을 심는 거지, 내가 어디 다가 누구를 베풀어 주는 게 아니다 이 말이죠.

그런 아주 기본적인 심신. 그게 응공입니다. 공양에 응한다 이거죠.

 

그리고 무쟁이라고 하는 것은 적정, 고요한 것, 번뇌가 안 일어나는 것.

그게 무쟁이죠.

그리고 무쟁삼매라고 하는 것은 번뇌도 안 일어나고 삼매의 장애가 없어요.

색즉시공을 보는덴 전혀 흔들림이 없고, 무아무법을 보는데 전혀 흔들림이 없고

이게 삼매에 대한 장애가 없다고 그래요.

 

그래서 번뇌를 일으키면 그게 장애가 되어서 번뇌장애라고 그러고

삼매에 장애가 되면 그걸 삼매장애라고 그러는데

번뇌장 삼매장 다 안 일어나요.

그걸 무쟁삼매라고 그럽니다. 무쟁삼매.

 

수도로 이 아라한 경지를 설명을 하면

번뇌가 영진해서, 번뇌가 영원히 다 없어져서

여물무쟁이라, 어떤 대상과도 다툼이 없다.

이러한 경지를 아라한이라고 그럽니다, 번뇌가 다 끊어진,

 

다툰다라고 하는 것은 얻을마음이 있을 때 다툼이 있는 건데요

저 사람 왜 저렇게 싸우냐?” 그거 뻔하죠.

서로 자기가 원하는 거 얻으려고 싸우는 거에요.

자기가 원하는 거 서로 얻으려고 그러니까 싸움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얻는게 괴로움이라, 유득이면 개고라.

구하는거나 얻는거나 같잖아요.

얻음이 있는 건 다 괴로움이다. 이걸 턱 아는데 얻으려고 그러겠어요?

그러니까 얻을 마음이 없으니까 싸움이 안 되는 거죠.

그게 무쟁삼매에요.

 

조용해요.

그걸 또 아란야행이라고 그래요. 고요하다, 적정하다는 뜻이에요.

아라한이 되면 생사도 받지 않을뿐 아니라 번뇌가 조금도 일순간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걸 아라한이다 이래요.

 

이걸 도닦는 경지로 떡 보면, 이런데 올라가면

마음에 생멸기복이 없어요. 좋아하는 마음 생겼다가 싫어하는 마음 생겼다가

마음의 생멸이 없어요.

그럼 뭔 마음이 있느냐? 목석이나 허공과 같느냐?

분별사념도 없고, 허공무사도 아니다. 허공과 같이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럼 뭐냐?

본각이 상조라_ 본래 해인삼매와 같은 그런 깨달음, 본각이 항상 비추는 경지가 이 경지다.

허공과 같이 아무 생각도 없는, 그게 아니고

온갖 삿된 생각, 스스로 분별하고, 스스로 갈라놓는 그런 분별사념, 그거 아니고

본각상조에요. 본래 밝은 마음이 항상 비추는 단계가 아라한의 경지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죠.

 

, 이제 여기까지 설명을 드리고요

읽고 마치겠습니다.

오늘은 조금 많으니까, 딱 집중해서 한번만 읽고 마치도록 그리 하겠습니다.

 

9장 일상무상분_ 하나의 상도 상은 없다.

 

수보리 어의운하 수다원 능작시념 아득수다원과부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수다원 명위입류

이무소입 불입색성향미촉법 시명 수다원

수보리 어의운하 사다함 능작시념 아득사다함과부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사다함 명일왕래

이실무왕래 시명사다함

수보리 어의운하 아나함 능작시념 아득아나함과부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아나함 명위불래

이실무불래 시고 명아나함

수보리 어의운하 아라한 능작시념 아득아라한도부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실무유법 명아라한

세존 약아라한 작시념 아득아라한도 즉위착아인중생수자

세존 불설아득무쟁삼매인중 최위제일시 제일이욕아라한

세존 아부작시념 아시이욕아라한

세존 아약작시념 아득아라한도

세존 즉불설 수보리 시요아란나행자 이수

보리 실무소행 이명수보리 시요아란나행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