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난세에 행복하기 ㅡ 에피쿠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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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2021. 12. 7.

 

 

 

 

오늘은 에피쿠로스에 대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뭐, 어려운 시기이죠.

보통 난세에는 사람들이 철학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에피쿠로스가 태어난 BC 4세기도

그리스가 석양에 물든 무렵, 기울어가는 시대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세상에 나아가서 특별히 성취해야 할 일이 별로 마땅치 않을 때

인간은 자기 내면으로 물러나 앉게 되는데요

에피쿠로스도 그런 쪽에 속한다고 하겠습니다.

 

에피쿠로스는 흔히 쾌락주의라고 하고

에피쿠로스의 철학의 주제어는 당연히 쾌락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냥 마음대로 먹고 자고 또 생각나는대로 행한다라고 하는

그런 우리가 생각하는 쾌락은 당연히 아니겠죠.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인생의 최고의 목적으로 제시하면서

2가지를 얘기합니다.

1. 육체적인 고통이 없는 상태라고 정의했습니다.

2. 이게 가장 중요한 것인데, 정신에 동요가 없는 평정한 상태를 쾌락이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 상태를 이름하여 아타락시아라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마치 불교에서 얘기하는 열반의 의미하고도 일맥 상통한다라고 해서 그리스적인 열반,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죠.

 

그래서 에피쿠로스는 이 쾌락이라고 하는 것을 철학하기 위해서 그 도구로

사려 깊음, 깊게 생각함, 이런 어떤 것을 가지고 했는데요

이 깊게 생각할 때에 기준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우리가 쾌락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이름 붙여 볼 수 있는 대상들이

그 쾌락이 지속적인 것인가? 계속 이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순간적인 것인가?

 

그리고 두 번째는 이 쾌락을 위한 행동이 다른 고통을 혹시 낳지는 않는가?

쾌락하자고 했는데 고통을 낳으면 안 되잖아요, 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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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가지 조건을 가지고 깊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고통의 근원을 제거해 갈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첫 번째로 아까 이야기 했던 감각적 쾌락에 탐닉하는 것이라든지, 도덕적 방탕 같은 것은

당연히 쾌락은 순간적이고, 지속되지 못하면서

또 다른 문제, 즉 고통을 낳게 되니까

이것은 제일 먼저 진정한 쾌락에서 제외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걸 제거를 했고요

 

두 번째는 사회적으로 출세한 것, 부귀와 공명에 대한 태도는 당연히 소극적입니다.

그러니까 이 부귀와 공명은 배고픔이나 추위처럼 목숨이 걸려있는 것도 아니어서

자연스럽지 않다.

그리고 필수적이지도 않다.

 

그러면서 인기나 명예는 지속하지를 잘 않고, 그런 것들을 부귀를 지속시키려면
또 다른 많은 고통들을 낳아야 하기 때문에

부귀와 공명도 우리가 추구하는 쾌락의 정의에 맞지 않다.

해서 이것도 제거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적어도 감각적 쾌락에 탐닉하지 않고 부귀공명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중요한 고통의 근원, 2가지를 제거한 것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는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면서 사는데

이것 또한 사례 깊게 생각해보면 옳지 않다라고 하는 것이죠.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 또는 인지의 가장 기초는, 토대는 감각인데

지나간 감각은 기억이 되고, 아직 오지 않은 감각은 상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건 실체가 없다고 보는 것이죠.

 

이것은 많은 철학자들이 주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에피쿠로스는 제대로 사리깊레 생각하면

심지어 늙은이들은 젊어서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굉장히 축복 속에 쌓여서 젊게 살 수 있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오늘을 힘차게 살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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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에피쿠로스가 마지막 고통의 근원이자 가장 중요한 고통의 근원인 죽음이 있습니다.

이 죽음에 대해서 죽음도 제거해야 할 고통의 근원으로 보았는데

죽음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첫 번째는 불멸의 욕망이 있는 거죠.

영원히 죽지 않고 살 수 있다면, 혹은 죽어서도 또 영원히 사는 방법이 있다면

영혼이라든지, 요런 욕망이 하나 있고

 

두 번째는 두려움이 있죠.

죽어서 심판을 받거나 처벌받거나 하는 이런 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해서 우리 인간은

욕망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데

에피쿠로스는 , 이건 죽음은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에피쿠로스는 형이상학적으로 보면 원자론자에 속합니다.

만물의 기초를 우리가 생각하는 원자라고 보는 것이죠.

그리고 원자의 우연한 결합에 의해서 세계와 인간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보는 것이죠.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몸도 있고 정신도 있는데, 심지어는 정신조차도 이 원자들의 결합체이고

이 원자들의 결합체가 정신에서 최초로 나타나는 것이 감각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죠.

 

그래서 살아있다는 것은 감각이 있다는 것이고

죽었다는 것은 이 감각이 해체된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살아있을 때 죽음은 있을 수 없고

우리에게 죽음이 찾아오면 우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삶과 죽음은 서로 전혀 관여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죽는다는 것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고통의 근원 4가지를 이런 식으로 사례 깊은 생각을 통해서 제거한 다음에

이제는 적극적으로 그러면 어떻게 행복을 함량할 것이냐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에피쿠로스는 쾌락주의자이지만

들어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게

행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르게 살아야 한다.

그러니까 정직하고 성실하고 배려해가면서 그렇게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쾌락주의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반드시 고통이 찾아온다.

그래서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러니인데 들어보면 맞는 말 같습니다.

 

두 번째는 고립과 은둔은 안 된다. 우정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학파를 정원학파라고도 하는데

정원에서 친구들이 모여서 우정을 나누면서 먹고 마시고 대화하는 철학적 대화를 하는 이런 모습을 많이 보여줬기 때문에 정원학파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행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정이고

친구들끼리 대화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그리고 세 번째 당연한 것인데, 철학하기가 행복을 완성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중요한 일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철학하기는 여유있는 사람들이 하는 그런 행위가 아니고

누구나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혼의 건강을 돌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하는 것은 의무이다.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피쿠로스는 난세에 세상에서 한걸음 물러서서

고유한 내면의 평정을 위해서 고통을 제거하고 행복을 함량하는 이런 쾌락의 철학을 주장 했습니다.

 

현대문명은 사실 정반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물질적 욕망의 추구를 어떻게 보면 양성화시켜서

오케이, 좋다그 과정에서 노력하고 발전하고 성취하고 성장하는

뭐 이런 것으로 되어있죠.

 

지금 우리하고는 좀 반대쪽에 있지만

에피쿠로스의 진정한 쾌락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한 사려 깊은 생각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굉장히 시사점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