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범스님] 67. 문제는 신심과 결심, 깊은 신심으로 잘 닦으면 무량 공덕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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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종범스님_법문

2022. 1. 4.

 

 

한평생 산다는 게 100년도 못 되는데

불교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겁니다, 대단한 거예요.

해탈의 세계는 항상한 거예요,

무상이 아니고 항상이에요.

또 괴로운 고통이 아니라 락이다 이 말이죠. 즐거운 것이다. 희락이다.

그다음 무아가 아니고 진아, 참나다.

 

그래서 몸은 부정하다 그러거든요.

몸이라는게 온갖 더러움으로 차 있다. 이것은 청정이다.

이게 부처님의 열반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항상하다 보니까 나중에는 무량수, 수명이 한량이 없다.

그런데 보이는 건 무상이거든요.

무상은 뭐냐? 생로병사죠.

항상은 뭐냐? 상락아정이다, 이 말이죠.

한 몸에 생로병사와 상락아정이 동시에 있는 거예요.

이게 불교에요.

 

그래서 오늘날에 와서 중요한 것은

생로병사의 몸을 가지고 상락아정의 세계를 바로 아는 것, 이게 중요해요.

그게 불교를 믿는 큰 성취에요.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생로병사의 육신을 가지고 상락아정의 무량수를 보는 거예요.

그게 극락세계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이

염불 오래 하면 극락세계가 있는 걸 확실히 믿을 수 있냐고.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극락세계가 있는 걸 믿을 수 있는 게 아니라 환히 보인다고.

 

눈앞에서 상락아정을 환희 보는 거, 그게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이란 보는 거예요,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눈앞에 있는 거예요, 그냥 자기 몸에 있는 거예요,

그게 깨달음이에요.

 

깨달음은 정각이고 반야인데, 정각이라는 건 바로 깨닫는다

깨달음이란 뭐냐?

지혜이고, 지혜란 뭐냐? 보는 거예요.

그래서 반야심경에 조견이라고 그랬죠.

반야는 조견하는 거예요, 본다 이거예요.

 

보리, 반야, 이게 깨달음이에요.

보리반야 만이 깨달음이 아니거든요.

보리도 보는 거, 반야도 보는 거.

그럼 뭘 보냐?

그 상락아정의 무량수 무량광, 한량없는 광명, 한량없는 수명을 그냥 환희 보는

그게 깨달음이죠.

 

그런데 우리 몸은 시시각각으로 지금 달라지고 있거든요.

무상이에요.

이 몸이 어디서 생겼느냐?

처음에는 어머니·아버지한테 받은 거고.

오늘 몸은 어제 받은 거예요,

어제 밥 먹고 옷 입고 잠잔 그 힘으로 오늘 지금 지탱하는 거거든요.

내일 몸은 오늘 밥 먹고 옷 입고 잠자는 이건 내일몸이 돼요.

그래서 몸은 시시각각으로 받는 겁니다. 남의 몸이에요, 이게.

그게 무아인 거죠. 무아라는 게 다른 게 아니고.

 

오늘부터 안 받아보세요,

마시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잠도 안 자보세요.

몸은 금방 소멸 되어 버려요.

그래서 수신과 지신, 받는 몸과 아는 몸

그 두 가지 몸이 있는 거예요.

 

아는 몸을 법신이라고 그러는데 그게 보리열반이에요, 아는 몸이.

눈으로 보면 볼 줄 알고, 귀로 들으면 들을 줄 알고, 행동을 하면 행동할 줄 알고

이게 보리열반인데, 그게 아는 몸인데, 그걸 법신이라 그럽니다.

그걸 또 무량수라고 해요, 한량없는 수명이라고.

그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그걸 보는 게 그게 깨달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몸은 맨날 오늘 먹은 거 가지고 내일 살고,

내일 먹은 거 가지고 모래 살고

이 생명이라는 게 물이에요,

생명이라는 게 밥이고요, 생명이라는 게 옷이에요.

옷 없으면 소멸하고, 밥 없으면 소멸하고

또 생명이라는 게 공기입니다. 공기 없으면 소멸해버리잖아요.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공기를 딱 차단 시키면 소멸해 버려요. 생명이라는 게

그래서 생명이 공기에요.

생명이 음식이고, 생명이 의복입니다. 그런게 생명인 거예요,

그래서 무상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이 몸은 뭐냐?

절에 가면 무슨 전, 무슨 전 그러잖아요. 대웅전 관음전하듯이

이게 무상전입니다. 무상한 집이에요.

 

그런데 눈으로 볼 줄 알고, 귀로 들을 줄 아는 이거는 법신이고

아는몸 지신인데, 알 지.

이건 무량수인거에요.

그런데 이 몸은 무량수전인 거예요.

 

그래서 똑같이 한 사람인데

하나는 무상전이고, 하나는 무량수전이다, 이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확실히 보는 그게 깨달음이고, 그게 해탈이고, 그게 불교 믿는 최대의 행복이에요.

그래서 무상전에서 무량수, 무량광을 보는 거예요.

 

그거니까 경허스님, 참선곡이라든지, 오도송이라든지 보면 엄청나거든요.

석가모니 부처님이 8만대장경이 전부 무량수 무량광 보리열반에 노래한 거예요.

그게 반야심경이고, 그게 금강경이고, 그게 법화경 화엄경이고

전부 그게 해탈지견을 말씀하신 겁니다. 해탈지견을.

 

그래서 불교 잘 믿고, 공덕 잘 닦으면

언제 소멸할지 모르는 이 무상한 무상전에서

무상수 무량광 어마어마한 상락아정의 참세계를 보게 돼요.

 

그러니까 절도 하고, 절 한 번 하는데 십원씩 내고, 보시도 하고, 그 허망한 생각 다 버리는 참회도 하고, 공덕도 짓고

그렇게 좋은 인연이 어디 있어요.

, 그걸 누가 이렇게 기획해서 만들었을까?

굉장히 생각이 깊고, 참신한 그런 법회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항상 우리는 만나기는 만났는데 알지를 못해요.

그게 문제에요.

봉인불식이라, 사람을 만났는데 알지 못한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으면 만나도 모르거든요.

자기 어머니라도 오랫동안 떨어져 있으면 모르잖아요.

이산가족들 오랜만에 만나면 서로 모르는 거 많잖아요.

그렇듯이 우리가 이 상락아정의 무량수, 이거 맨날 보는데, 모르는 거예요.

이걸 미혹하다고 그럽니다.

미혹이라는 건 모른다, 이거에요, 깨달음이란 안다 이 말이에요.

만나도 모르는 거예요. 만나도.

 

그래서 이게 어리석은 생각이 미혹인데,

이 어리석은 생각을 맑히면 저절로 환히 보게 되는데

그 맑히는 방법이 선정이고, 정진이고, 참회이고, 예배이고, 공덕을 닦는 거예요.

어리석은 생각을 맑이는 방법이지, 없는 만들어내는 방법은 아니다.

아는 게 중요해요.

우리는 만났는데 모른다, 만났는데.

 

보리열반, 상락아정이 뭐냐?

여러분, 제 모습 보이죠?

그 보이는 게 그게 보리열반이에요.

다 만나는 거예요, 그런데 모르잖아요.

뭐가 모르냐? 보리열반이 보는 거예요.

그건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그러한 의심이 조금도 없이 사라지는 게 그게 성불이거든요.

의심이 아주 중요해요.

모르는 게 참 많아요.

 

내가 어릴 때 보면 재미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재미있는 게 많은데 어릴 때 보면 손님들이 가끔 집에 오시면

애들한테 돈 주잖아요.

그 돈이 조금 오래되면 모이거든요.

그러면 조금 모였다 싶으면 어머니가 빌려 가요.

그것참, 아주 ㅎㅎ 기분이 나빠요.

어머니가 빌려 가면 그러면 안 줘요, , 갚지를 않아요. 빌려 가면.

돈 빌려 가면 갚으라고 그러면 안 갚아.

자꾸 갚으라고 그러면 뭐라고 그러면

너는 내가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그랬는데, 그거는 돈 안 내냐?”

그 소리 들으면 더 기분 나쁜 거예요.

그 돈 빌려주기 전에도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다 했는데

그 돈 갚으라니까 그런 소리 하니까 얼마나 기분 나쁩니까?

그게 납득이 안되고 아주 엄마가 이상해 보이더라고.

 

그런데 그게 어렸을 때, 전혀 모르는 게 있거든요.

뭘 모르느냐 하면 그게 받기는 내가 받았지만, 돈 주인은 어머니라는 걸 모르는 거예요.

그 당시에.

왜 그게 어머니 돈이냐?

어머니가 평소에 그 손님한테 가서 그 집에 가서 아이한테 돈도 주고, 그 집에 뭘 했기 때문에 그 집에서 이쪽에 와서 어머니를 보고 돈을 줬지,

만약 어머니가 안 계시고 나 혼자 길거리에 떠돌아다녔다면 누가 줍니까?

또 미리 돈을 안 줬다 하더라도 그 쪽집에서 와서 나한테 돈 줬으면 어머니가 그쪽 가면 돈을 또 줘야 해요.

어머니가 갚아야 할 돈이고, 어머니가 준 거 받은 돈이에요.

 

그러니까 전부 어머니 돈인 거예요.

그런데 어릴 때는 내가 받았으니까 내 돈인 줄 알지, 어머니 때문에 내가 받았다는 걸 모르는 거예요.

 

이게 눈앞에서 펼쳐지는데 모르는 거예요.

그런데 어머니도 설명을 못해요. 나한테.

, 받기는 네가 받았지만 그전에 그 집에 가서 돈을 줬다.

그래서 내가 준 거 받은 거다, 그러니 내 돈이다

그리고 안 줬어도 내가 그 집에 가면 또 줘야 한다.

내가 지금 임시 꿔서 받은 거다, 갚아야 할 내돈이다.

그러니 아무 소리 하지 마라. 그 돈 주인은 나다.

그러니까 내가 주인인데 내가 썼는데, 네가 억울하게 생각하지 마라.”

이렇게 명쾌하게 설명을 했으면 내가 꼼짝 못 했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설명을 못하고 나중엔 우격다짐으로,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준 거 안 내냐?

이게 말로 안 되니까 힘으로 누른 거거든요.

납득합니까? 안 합니다.

 

그래서 요새 부모 노릇하려면요,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설명 못 하면 아이들이 전혀 말 안 들어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해요.

자동차 운전을 하려 해도 면허증이 있어야 운전하듯이

아이 낳기 전에 면허증 하나씩 받은 다음에 아이를 제대로 양육도 하고 보육도 할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문제는 현실을 바로 보는 거

무량수가 늘 있는데, 무량수를 못 본다는게 문제죠. 무량수.

극락이 있는데 극락이 있는 걸 못본다는 게 문제댜.

그래서 이 몸은 고통전이고 극락전이다, 이 몸은.

 

이 몸에서 극락을 얼마든지 볼 수 있는데 못 보는 거예요.

그러나 극락이 없어진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극락전이에요.

수시로 덥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고통이 따르기도 하고, 고통전이에요.

불교 잘 믿으면 고통전에서 극락전으로 바뀌는 거예요.

그게 불교 믿는 영험이고 공덕 아닙니까.

 

그런데 어릴 때부터 못 본 게 또 하나 있어요.

뭘 못 봤느냐?

돈 얘기인데, 그냥 돈이라면 의례 것 뭐 주면 과자도 주고

옛날에 무슨 내가 바라는 거 다 준다, 그렇게만 알았지, 돈이 뭔지는 전혀 모르거든요.

여러분, 돈이 뭡니까? ?

돈이 뭐죠?

돈은 숫자입니다. 숫자.

돈에 숫자가 빠지면 돈일 수 없어요.

그렇죠?

10, 100, 1000, 5000, 10000, 그 숫자 싹 빼봐요.

어떻게 그게 돈이 통용이 됩니까? 첫째는 숫자에요, 돈이라는 건.

어릴 때 그런 걸 어떻게 알아요 돈이라는 건 숫자다.

 

그러면 숫자는 숫자인데, 내가 그냥 종이에다가 이건 만원이요 쓰면 통하겠습니까?

안 통하죠.

대한민국 한국은행에서 증명하는 숫자라야 돈이에요.

그래서 보면, 한국은행권, 딱 도장이 찍혔지요.

그러니까 그 돈 밑에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공신력이 인정해준다고 하는 세력이 있는데

그걸 아이가 어찌 알겠냐고요.

 

이런 거예요.

그래서 있기는 있는데 못 보는 거죠.

대한민국 한국은행에서 인정하지 않는 숫자가 그게 어떻게 아무리 몇 억 조 원을 쓴들 그게 공신력이 있겠어요. 통용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내가 받았다고 내 돈인 줄 알고, 숫자라면 다 돈인 줄 알면 큰일 나죠.

공신력 없이 만든 돈을 위조지폐라 하지 않습니까?

그런 거 아니에요.

 

그리고 그 돈 속에는 예술도 있어요.

그림도 있고 역사도 있어요. 세종대왕도 있고.

하나 속에 무한한 내용이 있는 거예요, 그게요.

예술도 있고 역사도 있고 또 기술도 있어요. 숫자도 있고.

그런데 우리가 아는 건 숫자뿐이에요.

얼마짜리.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 숫자가 되려면 대한민국이 인정하는 숫자가 되어야 되어야 하는데

이건 모르는 거죠.

달러가 왜 중요해요?

미국에서 인정한다, 이 말 아니에요.

그렇지 않습니까?

미국에서 인정하지 않는 숫자는 달러일 수 없거든요.

그런 배경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렇듯이 우리가 죽는 것만 알고 죽지 않는 건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늘 있는데 모른다. 그걸 어리석음이라고 그러거든요.

 

부처님은 그냥 말 한마디로 해결됐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게 안 된다고.

그래서 자기 어리석음을 자기가 다 녹여야 한다.

그래서 필요 없는 말, 또 설명을 해도 중생에게 도움이 없는 말은 부처님이 말씀하지 않으시고

시절 인연에 따라서 대승불교가 생겨서 반야바라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상락아정, 다 설명을 해주셨는데

그걸 확실히 믿고, 닦으면 되는데요

듣기는 듣는데, 확실히 믿는 마음이 부족해요.

그래서 안 돼요.

 

왜 안 되느냐?

믿음이 확실하면 돼요.

그래서 믿음이 부족해서 안 되지, 달리 안되는 게 아니다.

신만성불이요, 믿음이 충만하면 다 성불하는 거예요, 신만.

 

얼마 전에 어떤 사람이 폐암에 걸려서, 폐암 말기래요.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담배 끊으시오. 담배 안 끊으면 죽습니다.”

그 말 한마디 딱 듣고 그날 딱 끊었데요.

담배 끊는 거 전혀 어려운 게 아니다.

문제는 결심이에요.

 

딱 죽는다. 그 말 한마디에 그냥 끊었어요, 다시는 안 피운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그 어려운 담배를 어찌 끊냐?

어려운 게 아니에요, 결심이에요.

 

아 불교의 깨달음을 누가 믿냐?

의심이죠.

믿음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도하면 성취되냐?

안 되는 거예요.

 

신심이 확실하면 바로 되는 거거든요.

문제는 신심이다. 이런 거죠.

그래서 결심이다.

 

불교 법문 듣고 싶은 신심을 가지고 잘 닦으면

무량공덕이 이루어지니까 그렇게 믿으시고

정진 잘 하시기 바랍니다.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