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ye Sophia] 석가모니가 돼지고기를 즐겼다고?? 그럼 붓다도 지옥에 떨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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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2022. 5. 26.

 

 

얼마 전 합천 해인사에 모 참치회사 사장이 방문해서 고민을 털어놓은 일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회사에서 막대한 양의 참치를 잡아 식용으로 썼는데

그것에 대한 살생의 죄업을 걱정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양질의 먹거리를 제공하기위한 목적이었다고 하지만

불교의 불살생계를 수억만 번 어기게 된 결과를 초래했으니까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불교의 입장에서 이 분은 죄업이 있을까요? 아니면 없을까요?

 

참치회사 사장이 죄가 있다면

식용으로 소와 돼지, 닭을 키우는 곳도 똑같은 죄업을 받게 될 겁니다.

심지어 의학 발전을 위해 흰쥐를 키워 실험에 활용하는 학술, 의료기관 종사자들도

같은 문제에 부닥칠 것입니다.

 

사실 살생을 금하는 계율은 비단 불교만의 독점물은 아닙니다.

특히 자이나교는 개미 한 마리도 죽이지 않기 위해 늘 털이개로 자리를 쓸고

수백 마리의 모기들이 흡혈해도 미동조차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흡혈박쥐가 붙어 피를 쪽쪽 빨아도 그냥 놔둡니다.

손으로 쳐내면 자칫 박쥐가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수행자들이 불살생계를 목숨처럼 지키는 이유는

죄업 때문입니다.

업장 중에 가장 큰 것이 살생의 죄업이고

이것이 쌓이면 수행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되니까요.

 

이렇다 보니 육식도 당연히 금합니다.

고기반찬을 먹는 것도 간접 살생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식용이나 의료를 위해 살생을 하는 분들과

육식을 취하는 분들은 모두 죄업을 받게 될까요?

죄업이 있다면 깨달음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 붓다는 어떻게 처신했을까요?

싯다르타는 공양을 받을 때, 육식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공양을 위해 가축을 잡는 것은 꺼렸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적인 육식은 취했습니다.

 

초기 경전인 디가니까야에 보면

싯다르타가 부드러운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큰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후대로 가면서 불교 내에서도 이런 육식 문화에 논란이 일게 됩니다.

 

특히 능가경을 중심으로한 대승불교 수행자들의 비판이 가열했습니다.

당시 힌두교는 늘 그래왔듯 육식을 하는 불교 수행자들을 조롱했고

이것을 견디다 못한 일부 승려들 사이에서 불살생계를 지지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능가경에서 육식을 이교도의 문화로 치부함으로서

불살생계는 정착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육식을 취한 싯다르타가 이교도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싯다르타와 불제자들의 주장가운데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요?

 

혹자는 이 문제에 대해 시대와 문화의 차이를 들어

양쪽 모두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택합니다.

그런데 육식과 살생에 관한 건 보편적인 명제여서

시대와 문화의 간극이 개입될 여지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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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참치회사의 사장은 죄업이 있을까요?

아니면 없을까요?

 

여기에 대해 일부 선지식인들은

살생을 하면서 그것을 인식하면 죄업이고

그렇지 않으면 죄업이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모르고 사람을 죽이면 죄업이 없는 걸까요?

또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승병을 일으켜 수많은 왜적을 살생한 사명대사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만일 사명대사에게 죄업이 없다면
역으로 자신의 조국, 일본을 위해 조선 사람들을 도륙한 왜구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죄의 판단은 철저히 객관적이어야 하고

그런 이유로 자이나교에서는 살생의 결과만 따집니다.

개미 한 마리를 모르고 죽여도 죄업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불교의 불살생계에는 예외를 둘 수 없고

동기가 아무리 좋아도 참치회사와 도축업자, 그리고 실험용 흰쥐를 기르는 의료기관 모두 헤아릴 수 없는 죄업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자이나교 신도들은

살생에 관계된 일을 절대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농사도 짓지 않습니다.

농사를 짓다 보면 벌레들을 죽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싯다르타는 왜 육식을 취했을까요?

이 점에 대해 오늘날 불교에서는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선도의 견해를 들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선도의 입장에서 보면

살생 역시 무위자연의 일부입니다.

그것을 재미나 취미로 삼는 것이 아니라면 무관하다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 상황을 바꿔 봅시다.

만일 인간보다 월등한 생물이 등장해 인간을 먹이로 삼는다면 어떨까요?

 

그 생물이 인간을 꼬치에 꽂아 불에 구워 먹고

푹 고아서 삼인탕도 만들고

또는 날것으로 인육회도 떠서 먹는다면 어떨까요?

인간의 입장에선 그가 잔인한 악마로 느껴질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살생 자체가 문제이며

다시 자이나교나 대승불교처럼 살생을 금하는 쪽으로 기울어질 게 자명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정답인 것일까요?

답이 속 시원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인간의 주관이 개입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살생은

에너지가 합해지고 정보가 발달하는 현상입니다.

먹이사슬이란 정보가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의 이합집산인 셈이지요.

 

따라서 고기를 먹거나 먹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식을 얼마나 잘 발전시켜

진화에 충실하느냐가 관건이지요.

 

고기를 먹지 않으면서 두뇌 계발, 정보 발전에 소홀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며

고기를 즐겨도 정보 발전에 효율이 있고, 더 나아가 존재의 코드에 다가선다면

이것이 보다 가치 있는 일이 됩니다.

 

이처럼 정보 효율과 에너지 측면에서 접근하면

고기를 먹든 먹지 않든 그런 건 논쟁거리가 안 됩니다.

싯다르타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 조건적 육식을 취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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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점으로 돌아오면

참치회사 회장님은 영양가 좋은 음식을 인간들에게 공급해

가치 창출의 기회를 더 많이 열었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축산업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더군다나 의료용 흰쥐의 경우는

인류의 의학발달과 질병 치료에 큰 기여를 하니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이렇듯 에너지 효율과 정보의 가치에 의해 살생의 죄업은 판단되며

이것이 싯다르타가 온갖 지탄을 무릅쓰고

조건적으로 육식을 취한 이유입니다.

 

당신은 아직도

육식에 대한 선입관을 가지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