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상식 세계사] 러시아 문화, 푸틴 & 샤라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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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역사/역사, 세계사

2022. 6. 16.

 

 

 

러시아 문화 중 가장 두드러지게

발달한 분야는 클래식과 발레입니다.

미하일 글린카, 차이코프스키, 스트라빈스키, 쇼스타코비치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곡가들과 함께 발레도 크게 발전했습니다.

 

특히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인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아 고전주의 음악을 완성시켰으며

러시아 특유의 서민적인 정서를 작품에 잘 담아낸 것으로 유명합니다.

 

러시아의 발레는 황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발전하였고

19세기 들어 뛰어난 작곡가들과 함께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과 같은 대표적인 작품들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키로프 마린스키 발레단과 볼쇼이 발레단은

세계 5대 발레단에 포함되는 러시아의 발레단인데요.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볼쇼이 발레단은

고전 발레기법을 바탕으로 웅장한 규모와 움직임을 선보이며

전 세계적으로도 높은 명성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음악뿐만 아니라 러시아는

수준 높은 근대문학이 꽃핀 곳이기도 합니다.

1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유럽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19세기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러시아 문단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초 천재시인이라 불리는 알렉산드르 푸시킨을 시작으로

니콜라이 고골, 레프 톨스토이,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등은

러시아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문학가들입니다.

 

특히 19세기 중반은 러시아 사실주의 소설의 황금시대로,

이 당시 발표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20세기 세계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예부터 러시아에서는

기온이 영하 40도보다 높으면 겨울이 아니고,

알코올 도수가 40% 보다 낮으면 술이 아니다라고 할 정도로 독한 술을 즐겨 마셨습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술은 단연 보드카인데요.

보드카의 어원은 이라는 뜻의 러시아어에서 나왔다고 하니

러시아인들이 얼마나 보드카를 자주 마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많이 줄긴 했으나

러시아인 한명이 1년에 약 60병 이상의 보드카를 마신다고 합니다.

예부터 러시아 남성들은 점심식사 전에 보드카를 작은 잔에 따라 한잔씩 마시는 습관이 있었는데

식욕을 돋게 하고 소화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러시아는 미국, 중국, 유럽과 함께

선진적인 우주기술을 보유한 국가입니다.

구소련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Sputnik) 1호 발사에 성공했고

1961년 최초로 유인 우주비행에 성공했습니다.

 

19614, 인공위성 보스토크 1호에 탑승하여

우주를 1시간 48분 동안이나 일주한 뒤 지구에 돌아온 유리 가가린은

인류 최초로 우주비행에 성공한 인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우주정거장을 연달아 성공시키면서 우주시대를 연 주역이었습니다.

특히 소유즈(Soyuz)'라 불리는 소련의 유인 우주선은

1960년대 말에 개발되어 현재까지도 가장 안전한 우주선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는 물론 축구도 있지만

소련시절부터 세계 최강을 목표로 전략적인 발전을 거듭해온 아이스하키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러시아의 아이스하키는 캐나다에 이어 세계랭킹 2위를 기록하고 있고

동계올림픽에서도 총 8개의 금메달을 따낼 정도로 실력이 대단합니다.

러시아가 중심이 되어 출범한 유라시아 지역의 최상위 프로 아이스하키리그인 KHL리그는

미국의 NHL 리그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발전된 리그로

정상급의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습니다.

 

아이스하키에 이어 러시아는 리듬체조 강국이기도 합니다.

현재 리듬체조 부분 세계 랭킹 1, 2, 3위가 모두 러시아 선수들이라고 합니다.

 

2000년부터 2016년까지 총 5번의 올림픽에서

러시아 리듬체조선수들이 모두 금메달을 휩쓸었습니다.

이처럼 러시아가 리듬체조에 강한 이유는

러시아인들의 발레와 무용에 대한 자부심과 넘치는 사랑 덕분이라고 합니다.

인형 안에 또 인형, 그 인형 안에 또 작은 인형이 계속 나오는 마트료시카(Matryoshka)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민예품입니다.

인형 안에 크기가 더 작은 인형이 3개에서

많게는 5개까지 반복되어 들어있는 구조인데요.

최초의 마트료시카 인형은

1890, 러시아의 공예가인 세르게이 말루친이 디자인한 것을 나무로 조각한 것이었습니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마트료시카 인형이 동메달을 수상하면서

러시아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마트료시카의 가장 작은 인형은 종종 핀셋으로 집기에도 힘들 정도로

깨알만 한 크기로 제작되는데,

1970년에는 72개짜리 마트료시카 인형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러시아에서 잘 알려진 인물로는

2019년 대통력직을 수행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가장 유명한 여자테니스 선수 중 한 명인 마리야 샤라포바가 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19991231

러시아의 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취임하여

2000, 2004, 2012년에 이어

2018년까지 총 4차례에 걸쳐 대통령에 당선되어 현재까지 러시아 대통령을 역임 중입니다.

 

러시아는 공식적으로

대통령의 3연임을 헌법으로 금하고 있기 때문에

2008년 부총리였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에 취임시키며

자신은 총리로 자리를 옮겼고,

메드베데프의 임기가 끝난 2012년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2018년도 대선에서도 재임에 성공했습니다.

 

나폴레옹보다도 작은 165cm라는 키에도 카리스마가 넘치는 푸틴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 연속 포브스에서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1952, 소련 레닌그라드의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푸틴은

어린 시절, 허름한 공동 주택에서 쥐들과 함께 생활하는 등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푸틴은 어려서부터 어지러운 국가에 이바지하는 일을 선망했고

레닌그라드국립대학 법학부 졸업과 동시에 20대 중반의 나이로

구소련 국가보안위원회인 KGB 요원으로 발탁됩니다.

 

푸틴은 동독의 드레스덴 KGB 지부로 파견 근무를 나가게 되었는데

동독 지부에서 세계의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며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경제력, 기술력 격차를 체험했습니다.

 

소련으로 돌아온 푸틴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부시장을 거치며 경력을 쌓던 중

199945세의 나이로 개혁인사인 보리스 옐친에 의해 총리로 발탁됩니다.

푸틴은 총리로 취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경한 러시아 재건의지를 보였습니다.

 

이에 러시아 국민의 지지가 급상승하였고

차기 대권 주자로서 확실한 입지를 다지게 됩니다.

1년 뒤인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푸틴은 압승을 거두며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푸틴 대통령은 원조 스트롱맨으로 강력한 리더십을 뽐내고 있습니다.

이미 18세에 유도 검은띠를 땄을 정도로 유도를 즐겨하며

사냥과 전투기 조종, 레이싱 등 평소 즐기는 취미생활에서도

그의 개인적인 성향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2000년부터 19년간 강력한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푸틴은

국제적으로 독재자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정적들을 제거하지 않고 다당제를 채택

민주주의 국가임을 표방하고 있지만

이는 대내외적으로 보이기 위함이며,

실제로는 정부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경우

소리 소문 없이 실종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옐친 시절 나락에 빠졌던 러시아 경제를 재건시키고

국가를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푸틴 이전 시기, 러시아 정부는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재벌과 마피아에 대한 견제는 미약했지만

푸틴의 집권 이후 각종 이득을 독점해온 재벌가의 횡포를 막고

마피아들을 쓸어내며 러시아의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다음으로 잘 알려진 인물로는

테니스 요정이라 불리는 마리아 샤라포바(Maria Sharapova)’가 있습니다.

마리아 샤라포바는 2004년부터 최근까지 수차례 여자테니스 랭킹 1위를 차지했었고

여자운동선수 중 오랜기간 동안 수입 1위를 기록했던 선수이기도 합니다.

 

샤라포바의 부모는 샤라포바를 임신할 당시에 체르노빌 외곽에 살고 있었는데

체르노빌 원자력 사고가 발생한 탓에 급하게 시베리아로 이주했고

1987년 그곳에서 샤라포바를 출산합니다.

 

샤라포바가 2살 때, 가족은 소치로 이주했고,

4살 때 부모님의 친구로부터 테니스 라켓을 선물로 받은 것은 계기로

테니스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 당시 여자 테니스선수 랭킹 1위였던 '철의 여왕'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가

샤라포바의 재능을 발견하여 미국행을 권유하고

고민하던 부모님은 샤라포바가 7살 때 플로리다로 데리고 가서

테니스 수업을 받도록 도와줍니다.

 

부모님의 헌신적인 서포트에 힘입어

열심히 테니스에 매진한 그녀는

188cm라는 큰 키에서 나오는 강력한 서브와

열정이 더해져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하게 됩니다.

 

2004, 17살에 윔블던에 출전한 그녀는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던

세레나 윌리엄스를 이기고 우승을 하게 됩니다.

 

어린 나이에 아름다운 외모의 소녀가

세계 최강 세레나를 꺾고

우승을 거머쥔 것은 세계적인 화제가 되어

그녀의 존재는 전 세계로 뻗어나가게 됩니다.

 

이후, 그녀는 수많은 광고와 TV프로그램에 출연하였고

세계 각국에 수많은 팬들을 보유하게 됩니다.

 

200518살 때는 한국의 예능프로그램이었던

무한도전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2007년 어깨부상을 당했고 다음 해 수술을 받은 후로는

한동안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지만

재활 훈련을 통해 부상을 극복하며

2008년 호주 오픈, 2012, 2014년 프랑스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마리아 샤라포바는 경기 도중

공을 쳐낼 때마다 괴성을 지르기로 유명한데

이 때문에 상대선수들이 깜짝 놀라 경기 중 괴성 금지 규정을 만들자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2019년 현재에도 테니스 선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입을 버는 여자 스포츠선수 1위로 랭크되어 있습니다.

 

그 수입의 일부를 체르노빌 원전사고 피해자들을 위한

기금으로 기부하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