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훈TV] 한강 인문지리지 (5) 잠실의 현대사 잠실은 1971년까지 한강의 섬, 잠실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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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역사/최인호TV

2022. 6. 22.

 

 

 

2007년 한강- 탄천 합수부 옆 삼성동으로 이사한 후

첫 한강걷기가 합수부로부터 잠실철교까지 (3.5km)였다.

 

90년대 초반 잠실주공아파트 후배 집에 잠시 살았던 기억을 제외하면

잠실은 낯선 곳이었다.

 

조선시대 왕족과 사대부들의 의복재료인 비단

(일반 백성들은 목화에서 뽑은 실로 만든 무명옷을 주로 입었다)을 생산하는 양잠업에 필수인 뽕나무밭이

국가의 관리 하에 한양성 인근에 가장 넓게 분포하던 곳이라하여 잠실이라고 명명됐다.

 

1970년대부터 잠실은 올림픽경기장과 아파트단지, 택지로 대규모 개발이 이뤄졌는데

대규모 개발 직전에 큰 변화가 있었다.

 

1970년까지 한강의 섬이었던 잠실섬이

1971년 공유수면 매립사업의 결과

더 이상 섬이 아니라 육지의 일부가 되어 강남지역에 편입된 것이다.

 

잠실이 섬이었던 20세기 초반

현재 여의도처럼 잠실섬의 남과 북으로 한강이 갈라져 흘렀다.

 

북쪽 한강을 신천강이라고 불렀고

남쪽 한강을 송파강이라고 불렀다.

잠실섬 동쪽으로 성내천, 서쪽으로 탄천이라는 지류가 흘렀다.

 

신천강은 매우 좁은 샛강이었는데

비가 적게 내리면 잠실섬에서 강북의 한강변까지는 사람이 맨몸으로 건널 정도였다고 한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이후

신천강의 폭이 크게 넓어진 후에야 비로소

배로만 오고 갈 수 있는 온전한 의미의 섬, 잠실섬이 되었다.

 

박정희 정부는 1970년 경부고속도로 완공 이후

강남개발을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1971년 잠실 지역 공유수면 매립사업을 시행했다.

송파강을 메워서 잠실섬과 부리섬을 육지로 만들었다.

 

대신 잠실섬 동북부를 파내어 송파강의 강폭을 넓혀

지금처럼 넓은 폭의 한강을 만들었다.

 

1973년 잠실지구 종합개발계획 사업을 본격 추진하여

잠실아파트와 잠실종합운동장 건설을 시작해

1970년대 후반부터 잠실에 인구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잠실도 옆의 부리도는 88올림픽 주경기장의 부지로 주로 활용되고

잠실 개발로 재벌급으로 성장한 우성건설의 아파트단지와

정신여고가 경기장 옆에 들어섰다.

 

롯데 그룹의 터전인 잠실역 인근의 석촌호수는

옛 송파강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으로 도망갔다가 항복한 인조가

청 태종 앞에서 삼배구고두례의 치욕을 당한 삼전도라는 곳이

송파강의 남쪽 나루터 지역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양반들의 비단 옷감을 만들기 위해

백성들이 피땀 흘려 뽕나무를 대규모로 재배했던 잠실섬이

1970년대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에 휩쓸려

섬에서 육지로 편입된 후

지금은 어마어마한 아파트단지와 롯데타운이 자리한 요지가 되었다.

 

내가 2007년부터 즐겨 찾는 잠실 한강은

옛 모습 그대로가 아닌 사람의 손실로 변형된 한강인 셈이다.

그래도 어쩌랴.

이 아름다운 한강을 어찌 사랑하지 않으리오.

 

 

# 한강걷기 코스: 삼성역_ 잠실철교- 올림픽 공원

삼성역에서 탄천으로 접어든 후

탄천합수부로 간다.

여기서 동쪽으로 둔치길 걸어가면

잠실대교 잠실철교를 만난다.

 

잠실철교 남단에서 성내천 둔치길로 들어서서 2km를 걸어가면

올림픽공원에 도착한다.

올림픽 공원 내부의 백제 유적인 몽촌토성을 한바퀴 돌면 3km

편도만 걸어도 충분한 운동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