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 대승의 가장 바르고 으뜸되는 사상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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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금강경

2013. 1. 1.

출처: 정토회

 

 

안녕하세요. 25페이지 펴주세요. 오늘은 금강경 두 번째 강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1,250명의 제자들과 제다바나 기원정사에서 머무르고 계실 어느 날. 마침 식사 때가 돼서 대중의 선도에 서서 바루를 들고, 사위대성에 들어가서, 차례로 밥 빌기를 마치고, 본래 자리로 돌아오셔서 대중과 둘러앉아서 공양을 드시고, 바루를 씻어 두고 옷도 접어서 놔두고, 발을 씻고, 자리를 펴고 앉으셔서 고요한 명상에 들어가셨을 적에 대중과 함께 있던 장로수보리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무릎을 땅에 대고 두 손을 모아 부처님을 우러러보면서 자신이 깨달은 기쁨의 노래. 부처님의 그 일거수일투족. 그 하나하나에 수행자들을 위하는 그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들에게 바른 법을 일러 주려고 하는, 오직 중생의 요구에 수순하는 부처님의 삶을 보시고 부처님을 찬탄하고 그리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수보리가 맑은 마음이 돼서 밝은 눈을 뜨고 이제야 법의 진리에 들어서 기뻐하는 것을 보시고는 함께 기뻐하시면서 수보리를 칭찬하시고 수보리의 질문에 기꺼이 대답하겠노라.

 

그러자 수보리는 부처님의 말씀을 간절히 들을 그런 마음의 준비가 됐다고 부처님께 고백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대승불교의 가장 중요한 핵심 되는 그런 말씀이 이 수보리의 요청에 의해서 그리고 부처님의 응답에 의해서 이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다. 그래서 제3분을 대승정종분이라고 한다. 대승불교사상에 가장 바르고 으뜸되는 내용이 이 안에 들어있다. 이 말이죠. 대승정종분이다. 대승불교의 가장 으뜸되고 바른 사상을 말하고 있다. 이 말이오.

 

佛告須菩提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하되

諸菩薩摩訶薩 모든 보살마하살이. 보살이라는 것은 보리살타의 약자죠, 깨달음을 이루려고 발심을. 마음을 일으킨 선남자 선여인을 뭐라고 한다? 보살이다. 이렇게 말해. 또 마하살이라는 것은 마하살타의 약자다. 큰 중생이다. 이 말이죠. 보살은 의미를 그대로 세기면 깨달은 중생이다 이런 뜻이고, 마하살은 큰 중생이다. 다 같은 말입니다. 그러니까 보통 중생이 아니고 깨달음을 얻겠다고 마음을 낸 중생, 또는 그 마음을 크게 일으킨 중생. 이것을 우리는 보살, 또 마하살 이렇게 말한단 말이오. 원래대로 정확하게 쓰면 보리살타, 마하살타 이런 말이 되겠죠. 모든 보살 마하살이

 

應如是降伏其心 마땅히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 받아라. 이와 같이 그 마음을 다스려라. 질문은 어떻게 되어 있죠? 어떻게 이 마음을 머무르며 어떻게 이 마음을 항복 받으오리까. 이렇게 질문을 했죠. 마음 가지는 것을 먼저 묻고 항복 받는 것을 뒤에 물었죠?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항복 받는 법을 먼저 지금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 어떻게 마음을 가져야 하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되느냐? 하니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그 마음을 다스리고. 이렇게 그 마음을 가져야 하느니라. 했어. 여기는 지금 마음 다스리는 법. 마음 항복 받는 법에 대해서 나온다. 이 말이오. 여시, 이렇게. 이와 같이. 이렇게 돼 있죠? 그것이 그 이하입니다.

 

所有一切衆生之類 있는바 일체의 중생 무리를. 그러니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중생을. 그대로 직역하면 있는바 일체중생의 무리를 이렇게 되는데. 그냥 쉽게 말하면 모든 중생을 이 말이오. 모든 중생을, 어떤 종류든 상관없이 모든 중생을 이런 얘기요. 그 모든 중생을 하고 그다음에 괄호를 치세요. 양란생부터. 왜냐하면, 모든 중생을 다만 여기서는 예를 들어서 어때요?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이 방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 하고 남자나 여자, 결혼했거나 안 했거나, 불교인이거나 불교인이 아니거나, 정토 법당에 나오는 사람들이거나 안 나오는 사람들이거나, 이런 식으로 그 모든 사람을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서 말한다. 이 말이오.

 

일체중생은 차별이 없느니라. 이렇게 해 놓고 일체중생을 예를 들어서 남자와 여자의 차별도 없고, 부자와 가난 이의 차별도 없고, 양반과 상놈의 차별도 없고, 인종차별, 얼굴이 붉다고 얼굴이 검다고 희다고 누르다고 차별도 없고. 어른이다. 아이다 차별도 없고. 이렇게 죽 설명을 할 수가 있겠죠. 그건 다 앞에 나와 있는 뭐에 대한 설명입니까? 일체중생. 모든 중생에 대한 설명이란 말이오. 그러니까 이 말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죠. 일체중생이라 하니까 일체중생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생각을 못하니까 모든 중생을 말한다. 그걸 예를 들어서 설명한 거에요.

 

있는바 일체중생의 무리를. 즉 모든 중생을 하고 괄호하고 첫 번째가 사생을 들어서 모든 중생을 말하는 게 그 다음 문장이에요. 사생. 이 세상의 모든 중생을 4가지로 나누는 법이 있습니다. 남녀로 나누는 거는 몇 가지로 나누는 거에요? 두 가지로 나누는 거겠죠? 그죠? 양반 상놈도 나누는 거도 두 가지. 여러 가지 나누는 법이 있는데 여기에는 4가지로 나누는데. 태어날 때 어떤 방식으로 태어나느냐? 태어날 때 어떤 방식으로 태어나느냐? 해서 4가지로 나누는 게 있어요. 이게 사생이다. 이 말이오. 사생이라는 말은 첫째가

 

若卵生 난생. 알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알로 태어나는 것은 주로 어떤 게 있어요? 조류 파충류 양서류. 이런 거 대부분 뭐로 태어나요? 알로 태어나죠? 파충류는 알로 태어나는 것도 있고, 새끼로 나오는 것도 있기는 있는데. 그래도 다 알로 태어난다고 기본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난생, 알이 나서 그다음에 새끼를 까 나오는 거를 난생이다.

 

若胎生 태생. 태를 가지고 태어난다. , 새끼가 그냥 나오는 거를 말합니다. 대부분 포유류는 다 뭐요? 태생이죠? 태생.

若濕生 습생. 습생은 여기 있는 모든 벌레를 지칭합니다. 요즘 관점에서 보면 모든 벌레는 뭐로 태어나요? 알로 태어나죠? 그러나 옛날에는 습하면 거기 구더기가 생기고, 습하면 거기 뭐가 나옵니까? 모기가 생기고 이러죠? 그래서 이런 것을 일러서 뭐라 한다? 습생. 요즘 분류법으로 따지면 벌레들을 대부분 지칭한다. 그다음에

 

若化生 화생. 이 화생이라는 것은 암수가 있어서 거기에서 새끼가 나서 태어나는 게 아니고. 그 몸이 둘로 쪼개지고, 넷으로 쪼개지고, 이렇게 분열해서 태어나는 것을 화생이다 이렇게 말해. 이거는 지옥 중생들은 화생이오. 여러분들이 지옥에 가서 죽고 또 태어나고, 죽고 또 태어나고, 죽고 또 태어나고 할 때, 가만히 얘기를 들어보면 지옥에 가서 결혼해서 거기서 어미아비를 두고 태어나고 이런 게 아니고. ! 목을 쳐 죽여버리면 조금 있다가 또 태어난다 이 말이오. ! 처서 죽여버리면 조금 있다가 또 태어난다. 마치 나무를 탁 잘라버리면 다시 뭐가 납니까? 움이 터서 또 나죠? 또 탁 잘라 버리면 움이 또 튀어 나온다. 이 말이오. 이렇게 태어나는 것을 뭐라 한다? 화생 이렇게 말해.

 

반대로 저 높은 천상의 세계에 가도 화생이 있다. 화생. 뭐하고 비슷하냐? 꿈꾸듯이 그렇게 여러 개가 일어나는 거요. 그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데다 굳이 비교한다면? 세포 분열하는 것도 다 화생이다. 아메바가 두 마리 네 마리 하는 것은 그 몸이 그냥 쪼개지죠? 거기에 뭐 새끼가 나는 게 아니란 말이오. 이런 게 화생이다. 꺾꽂이 같은 것도 화생이다.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거나 여기서 말하는 원래 의미는 그런 게 아니라. 저 천상에 어떤 중생들 태어나는 방식, 몸에서 몸이 그냥 화해서 나오기 때문에 이런 것을 화생이다 이렇게 말해. 한마디로 귀신같은 것은 다 화생에 속한단 말이오. 난생태생습생화생 이렇게 넷으로 나눕니다. 그럼 이 네 가지로 나누는 것은 네 가지 안에 모든 게 다 포함이 되니까. 모든 중생을 지칭하는데 그것을 사생으로 말한다.

 

우리가 예불문에서 사생자부하면 4종류에 태어남의 중생들의 자비하신 어버이다. 이렇게 말하는데. 그건 곧 모든 중생의 자비하신 어버이다. 이런 말 합니다. 아시겠어요? 약난생, 약태생, 약습생, 약화생, 알로 태어난 것이나, 태로 태어난 것이나, 습으로 태어난 것이나, 화로 태어난 것이나. 또 다른 분류법이 있어요. 이번에는 이 세상의 중생을 분류하면 일단은 이렇게 몸뚱이 모양을 가지고 있는 물질로 이루어진 이런 몸뚱이 모양을 가지고 있는 게 있고, 귀신같은 것은 몸뚱이가 물질로 이루어져 있어요? 안 있어요? 안 있죠. 이렇게 형상이 없는 게 있단 말이오. 형상 있는 게 있고 형상이 없는 게 있다. 이 말이오. 형상이 있는 것을 뭐라 한다? 유색, 형상이 없는 것을 무색. 그러니까

 

若有色 형상이 있는 것이거나

若無色 형상이 없는 것이거나

다시 말씀드리지만은 모든 사람을 분류할 때, 피부빛깔로 분류하는 거는 인종으로 분류하는 거고, 성별로 분류하는 방법도 있고, 신분으로 분류하는 방법도 있고. 분류법이 여러 가지가 있겠죠. 첫 번째는 태어나는 모습에서 분류하는 것은 4가지 분류법이 있고, 그 다음에 모양이 있느냐? 없느냐? 이게 무색 유색이다. 이 말이오. 모양이 있는 거나 모양이 없는 거나.

 

, 존재는 생각이 있는 게 있고 생각이 없는 게 있다. 소위 정신이 있는 게 있고 정신이 없는 게 있다. 생명은 생명인데 정신적 작용이 있는 게 있고, 정신적 작용이 없는 것도 있다 이 말이오. 그래서

若有想若無想 정신이 있는 것이거나 없는 것이거나

若非有想非無想 생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것. 그런데 우리가 정신이 있느냐 없느냐 할 때는 딱 있는 것, 없는 것, 이렇게만 분류할 수가 없고, 있느냐? 없느냐? 하고. 또 있다고 말할 수도 없고, 또 없다고 말 할 수도 없는 그런 것도 있다. 이 말이오. 쉽게 얘기하면 사람도 정확하게 따져보면 우선 얼핏 따지면 남자와 여자, 이렇게 분류할 수 있죠. 그런데 어떤 거는 이건 남자라고 할 수가 없어.

 

그렇다고 여자라고 할 수도 없어. 이런 것도 있다. 이 말이야. 또 어떤 거는 남자이기도 하고 여자이기도 한 것도 있어요. 다시 말하면 남자의 상징도 없고 여자의 상징도 없는 그런 사람도 간혹 있고, 또 반대로 남자의 상징도 있고 여자의 상징도 있는 양성이 다 없는 것도 있고, 양성이 다 있는 것도 있다. 이 말이오. 제 말뜻 이해하시겠어요? 그럴 때 이것은 남자와 여자라고 두 가지만 나눴을 때는 어느 속에도 포함이 될 수가 없죠. 그러니까 그런 것처럼 생각이 있는 것, 생각이 없는 것을 딱 나눴을 때는 생각이 있는 것도,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것. 그런 것도 있다. 이 말이오. 여러분들 생물과 무생물로 딱 나누면 이건 생물이라고 할 수 없고 무생물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런 게 있어요? 없어요? 있어.

 

또 식물과 동물로 딱 나누면 어떤 거는 식물이라 할 수도 없고, 동물이라고도 할 수 없고 그런 것도 있죠. 자 파충류하고 조류로 딱 나눠질 때 이게 조류라고도 할 수 없고 파충류라고도 할 수 없는 그런 것도 있죠. 역사 속에서 시조새 같은 거는 이쪽으로 보면 파충류고 저쪽으로 보면 조류고. 이렇게 중간에 있는 게 있다 이 말이오. 그러니 딱 둘로만 나눠지는 게 몸뚱이로 따져도 그렇지만 정신적으로도 마찬가지예요. 여자 몸뚱이를 가지고 여자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보통이고, 남자 몸뚱이를 가지고 남자 같은 생각을 내는 게 보통이 평균적인데. 여자 몸뚱이는 돼 있는데 생각이나 이 마음가짐이 남자 같은 마음가짐을 갖는 사람도 간혹 있고, 반대로 남자 몸뚱이인데 여자 같은 마음을 갖는 사람도 있다. 이 말이오. 불법은 이런 게 이미 다 있는 거요.

 

그러니 남자 몸뚱이를 가지고 남자 같은 마음가짐을 갖는 사람, 여자 몸뚱이를 가지고 여자 같은 마음을 갖는 마음이 대부분 보편적이다. 이 말이오. 이럴 때는 여자는 남자를 좋아하고 남자는 여자를 좋아한다. 이 말이오. 그런데 남자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데 그 마음가짐은 그 마음은 여자 같은 마음이다. 그러니 이런 사람은 남자를 좋아한다. 이거야. 남자를 보면 어떤 이성을 보는 것 같은 우리가 예를 들어서 이성을 만났을 때 느끼는 그런 감정이 일어난다.

 

반대로 여자 몸뚱이를 가지고 남자 같은 마음이 있는 사람은 마음이 남자 같으니까 여성을 보면 이성을 보는 거 같은 마음이 일어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나 양극,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 이것이 기본적인 윤리, 도덕으로 딱 정해지니까, 이렇게 중간에 조금 다수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 병신취급을 받게 된다. 요즘은 이런 것들이 사회의 표면에 드러난 게 뭐 있어? 동성연애자. 그러니까 이게 인권적으로 탄압을 받는다. 그래서 동성연애를 합법화해야 된다. 이렇게 문제가 나오는 거죠.

 

그러니까 얼른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다. 이런 얘기에요.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다. 여기서는 생각이 있는 거, 생각이 없는 거, 생각이 있는 것도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 거,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것들을 요기까지 괄호를 하세요. 요건 그냥 무엇을 설명한 거다? 일체중생 지류를 설명한 거에요. 생략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럼 문장이 어떻게 연결된다?

所有一切衆生之類 소유일체중생지류

我皆令入無餘涅槃 아개영입부여열반. 이렇게 되는 거요.

 

자 그 마음을 어떻게 항복 받느냐? 이렇게 항복 받는다 하고. 이렇게, 이렇게 항복 받는다 하는 여시. 이렇게가 무엇으로 연결되느냐? 무엇을 지칭하느냐? 줄을 그으세요. 소유일체중생지류 아개영입무여열반 요렇게 연결이 됩니다. 그 마음을 어떻게 항복 받느냐? 소유일체중생지류 아개영입무여열반. 요기다가 1번 이렇게 쓰세요. 어떻게 항복 받느냐? 이렇게 항복 받는다. 어떻게 다스리느냐? 이렇게 다스린다. 이렇게. 어떻게?

 

我皆令入無餘涅槃 모든 중생을 내가 모두(모두 ), 지금, 무여열반에 들게 한다. 남음이 없는 열반, 완전한 열반에 들게 한다. 이렇게 마음을 내야 한다. 이거야. ~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느냐? 이렇게 다스려야 한다. 이렇게가 뭡니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중생을 내가 다 구제하겠노라 이렇게 마음을 내야 한다. 질문이 뭐요? 어떻게 하면 나의 이 모든 괴로움과 번뇌를 없애고 저 완전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습니까? 이게 원래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보살이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한 것이니까요.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 최상의 깨달음을 얻겠다고 마음을 낸 선남자 선여인을 한마디로 뭐라고 한다? 보살이라고 한단 말이오. 보살이 이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느냐? 이 말은 보살은 무엇을 목표로 합니까? 최상의 깨달음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해. 그러면 이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최상의 깨달음을 얻습니까? 이런 말입니다. 정확하게 질문을 이해하셨어요? 이 마음 어떻게 다스립니까? 할 때 이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 하는 이 목표가 보통 사람이 중생이 제 마음 어이 다스립니까? 이런 질문보다도 더 크다. 이 말이오.

 

보살이 이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 이 말이오. 보살이란 게 뭐냐 하면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한 선남자 선여인을 말한다. 이 말이오. 최상의 깨달음, 완전한 깨달음을 얻겠다고 마음을 턱 낸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이렇게 마음을 내면 뭐가 된다? 보살이 되겠죠. 이런 보살이 그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되느냐? 이 말은 보살이 어떻게 하면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느냐?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할 수가 있느냐? 이 말이오. 보살이 어떻게 하면 이 모든 고뇌와 모든 속박을 차고 나와서 저 해탈의 저 열반의 경지에 도달할 수가 있겠느냐? 이 마음을 도대체 어떻게 다스려야 해탈과 열반을 얻을 수가 있느냐? 이런 질문이란 말이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뭐다? 보살은 그 마음을 이렇게 다스려야 한다. 어떻게? 모든 중생을 지금 모두 다 괴로움이 없는 세계에 들도록 하겠다고 마음을 내야 한다. 일체중생을 다 구제하겠다고 마음을 내야 한다. 이 말이오. 한문을 몰라서 몰랐다고 하지마는 지금 한글로 번역이 됐는데도 이해가 됩니까? 뜻을 알아듣겠어요? 뜻을 알아듣는 사람은 굉장한 사람들이오.

 

왜 그러냐? 이 질문과 대답은 중생의 생각으로 볼 때는 맞지 않는 대답이오. 동문서답이오. 왜 그럴까? 여러분이 지금 괴로워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뜻하는 데로 일이 안돼서 그러죠. 자 왜 괴롭나? 왜 화가 나냐? 왜 짜증이 나냐? 왜 슬프냐? 물어보면 다 그러잖아요. 아이가 공부를 못해서 괴롭다, 남편이 돈을 못 벌어 와서, 남편이 집에 늦게 와서, 남편이 술을 먹어서, 남편이 나를 때려서, 또 시어머니가 잔소리해서, 또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또 친구가 돈 빌려 가서 안 줘서. 이거 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우리에게 있어서 나타나는 그 괴로움이란, 일체의 괴로움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나를 괴롭히는 거요.

 

그래? 안 그래요? 그래. 다른 사람이 나를 괴롭힌다. 이 말이오. 나를 가만 안 놔둔다. 이 말이오. 애가 공부를 딱딱딱 잘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텐데. 요것도 공부를 안 하고 공부하라고 하면 TV보고 이렇게 해서 나를 괴롭히고. 남편도 직장 다니면서 돈 벌어서 집에 착 갖다 주고, 일찍 일찍 들어오고 이러면 아무 문제가 없을 텐데. 안 먹어도 되는 술을 먹지. 또 늦게 들어오지. 또 나 두고도 딴 여자한테 한눈팔지. 직장 생활도 잘 안 하고 직장에서 잘리지.

 

예를 든다면 한심한 짓을 한단 말이오. ~ 노인도 그저 어른으로서 점잖게 안 있고, 집에 와서 이래라, 저래라, 잘했니, 못했니. 맨날 잔소리한다 이거야. 아 친구도 돈 빌려 달라고 그럴 때는 싹싹 빌어서 빌려 줬으면 고마운 줄 알았으면 쓰고 달랑달랑 갔다 갚아야 되겠죠? 이자 착착 쳐서 갔다 갚아야 되는데. , 이게 빌려 가고는 이자도 안주더니 이자 안 주는 것만 해도 다행인데. 원금까지 떼먹고 안 준다 이거요. 아 주식 사면 돈 번다. 그래서 뼈 빠지게 벌은 돈 주식을 샀는데 정부가 경제정책을 잘못 운용하거나 해서 도로 떨어졌다 이 말이오.

 

어제 그제만 해도 오른다고 난리더니 요새 그냥 팍팍 떨어지니 속이 상한다 이거야. 그래 이 괴로움이라는 거는 다른 사람이 나를 못살게 구는 거요. , 친정어머니 같으면은 고생도 많이 하셨고, 앞으로 좀 더 살아도 되는데 죽어버렸단 말이오. 왜 죽느냐 이거야. 아직 내가 죽으라고 얘기를 안 했는데. 죽지 마라. 그랬는데 죽어버린단 말이오. 내가 미워서 죽어도 될 만한 것들도 이 세상에 많은데 그런 건 또 죽어요? 안 죽어요? 안 죽고. 꼭 죽지 말아야 될 만한 사람만 또 빨리빨리 죽는단 말이오. 나를 가만 안 놔두는 거요. 그래서 못살겠다 이거야. 못살겠다. 괴롭다 이거야. 어떻게 하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느냐?

 

그것은 이런 것들이 이 사람들이 나를 안 괴롭혔으면 좋겠다. 제발 나를 좀 가만히 놔 놔라 이 말이오. 왜 나를 못살게 구느냐? 이렇게 지금 생각하고 있어. 그 사람 생각으로 나를 가만 놔둔다. 이 말은 뭐요? 애는 공부를 잘하고, 남편은 돈을 잘 벌고, 일찍일찍 들어오고, 딴 여자 안 쳐다보고, 술도 먹지 말고, 먹더라도 나하고 기분 낼 때만 한잔하고, 모든 게 다 이리 되야 된다. 이거야. 내가 뭐 큰 걸 원하느냐? 내가 여왕이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죠? 나는 소박하게 고거밖에 원하는 게 없다. 이거야. 내가 욕심 많은 게 아니다. 이거야. 그런데 왜 아주 기본적인 거, 소박한 내 요 바람도 성취가 안 되느냐? 이거야. 그러니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계신다니까 내가 가서 한 번 물어봐야 되겠다 이거야.

 

정말 신이 있다면 왜 요런 것도 안 들어 주느냐 이거야. 부처님이 계신다고 그러면 요런 것 정도는 들어줘야 되지 않느냐? 이거야. 어떻게 하면 기도를 어떻게 해야 요 정도는 들어줄 수가 있겠느냐? 그러니 요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다 찾아온다 이거야. 찾아올 때,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느냐? 이거는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이 내가 원하는 데로 이루어지겠느냐? 이런 얘기하고 같은 거요. 여러분들이 아무리 소박하다고 하더라도 그 소박한 꿈이라는 게, 어쨌든 꿈이라는 게 뭐요? 자기가 바라는 게 꿈 아니오? 그죠? 그 꿈이 실현되는 걸 말한다 이거야. 자기가 원하는 게 이루어져야 된다. 이거요.

 

그 원하는 게 이루어진다는 것은 세상이 내 원하는데 기초를 두고, 기준을 두고 어떻게 해야 된다? 바뀌어야 된다. 이거요. 그런데 내 힘으로는 그게 안 된다. 이거야. 그러니 힘세다고 하는, 능력 있다고 하는, 인간보다 힘이 세다고 하는 어떤 신적 존재가 있다고 한다면. 그분을 이거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않겠느냐? 이거 정도로 해 달라 할 때는 맨입으로는 안 되잖아. 그죠? 그러니까 뭘 좀 주기는 줘야 된다. 이거요. 그래서 뭘 갔다 바치는 거요. 다 그래서 나오는 거요. 바칠게 적으면 어떻게 한다? 아양을 많이 떨어야 되고, 바칠게 큰 사람은 아양을 좀 적게 떨어도 된단 말이오.

 

그러니까 돈을 많이 시주한 사람들은 다리 아프게 엎드려 절하는 거를 가능하면 적게 하죠? 큰돈을 탁 내니까. 그런데 큰돈을 내지 못하는 천 원짜리 2천 원짜리 신도는 어때요? 대신 와서 엎드려 절이라도 많이 해야 되잖아요. 가만히 한 번 봐요. 옆에서. 돈을 펑펑 내는 사람들은 다 뭐 돈을 텅텅 내니까, 뒷돈을 팍팍 주니까 일이 쉽게 되죠.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요. 어디 가서 빌 때도 돈이 없는 사람은 매달리고 붙들고 울고, 빌기를 세게 빌고, 돈이 좀 많은 사람은 대신 빌기는 조금밖에 안 빌죠. 인사 정도 하고 봉투에 큰돈을 넣어 턱 주면 된다 이거요.

 

그런데 봉투에 돈을 적게 넣어 주는 사람은,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요 학부형한테. 우리 애 잘 봐주세요. 이럴 때, 한 돈100만 원씩 턱턱 줄 수 있는 사람은 신** 선생한테 굽실거려요? 오히려 큰소리쳐요? 큰소리치지. “아 수고하십니다.” 이러고 턱 준단 말이오. “용돈이나 하세요.” 열어보면 몇백만 원 들어있단 말이오. 그런데 집에서 3만 원 5만 원 봉투에 넣어서 가기 어려운 사람은 3만 원 5만 원 주면서 그저 아이고 이거 이거 몇 푼 안 되는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러면서 주고는 절을 굽신굽신굽신굽신한다. 이 말이오. 절에도 마찬가지요. .

 

자 이렇게 해서 소원성취를 하려고 그런다 이거야. 이게 우리들의 생각이오. 그러니 어떻게 하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납니까? 그러면 이러 이렇게 해라, 그러면 그런 것을 들어 줄 거다. 그런 것이 해결될 거다. 이 말이오. , 내가 지금 해결해야 될 괴로움이 많아요? 적어요? 많아. 내 힘으로 할 수 있어요? 없어요? 다 못해.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해탈과 열반을 위해서는 누가 좀 도와줘야 돼. 누가 내 괴로움을 좀 들고 가 줘야 된다 이거요. 그래서 그걸 좀 해결해 달라. 질문은 이거란 말이오. 그런데 대답은 어떠냐? 알았다. 그러면 내가 네 괴로움을 좀 해결해 줄게. 이렇게 대답이 탁 나와야 얘기가 된다. 이 말이오.

 

그런데 맨입으로 안 되면 뭐뭐뭐 좀 해라. 만 배를 해라든지. 뭐 돈을 얼마를 하라든지. 요렇게 나와야 될 텐데. 요 지금 문제가 그런 정도가 아니고. 조건이 아주 많아. 엄청나. 뭐라고? 이 세상에 있는 일체중생의 괴로움을 네가 다 해결하겠다고 마음을 내라. 아 지금 내 것도 해결 못 해서 해결을 좀 해 주십사 하고 요청을 했더니, 남의 것까지 다 하라는 거요. 그것도 한 두 사람의 한두 가지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모든 괴로움을. 모든 사람의 모든 괴로움을.

 

나의 모든 괴로움도 해결 못 해서 요청을 했는데. 대답은 모든 사람의 모든 괴로움을 해결하겠다고, 그거를 해결해 주겠노라고 마음을 내서 해라. 이런 얘기요. 그러니 질문을 정확하게 알아야 이 대답이 갖는 의미를 알 수가 있어요. 질문하고 관계없는 그냥 모든 사람을 구제해라 이런 얘기가 아니라. 질문은 내가 어떻게 하면 해탈을 합니까? 이게 질문입니다. 이 질문 떼버리고 그냥 네가 일체중생을 구제해라 이렇게 대답이 나온 게 아니고.

 

어떻게 하면 내가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납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그거에 대한 해답으로 주어진 게 모든 사람의 모든 괴로움을 다 해결하겠다고 네가 마음을 내라. 이런 얘기요. 여기서 아는 질문한 사람을 말하는 거요. 보살을 말한다. 이 말이오. 부처님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따옴표 안에 들어가는 거요. 네가 일체중생을 다 구제하겠노라고 마음을 내라 이 말이오. 이게 1번이에요. 그러면 해결이 된다. 이 말이오.

 

 

 

2

그런데 여기에 그렇게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그렇게 해서

而滅度之 정말 모든 사람들의 괴로움을 내가 다 해결해 마쳐 버렸다 이거요. 일체중생을 내가 다 구제했다 이거요. 멸도를 했다. 이거요. 이멸도지. 다 멸도를 했다 이거요.

 

如是滅度無量無數無邊衆生 이 여시 부터가 두 번째 문장이에요. 이와 같이 한량이 없고 헤아릴 수가 없고 그 끝이 없는 중생을. 무량무변무수중생. 중생이라는 것은 그 양이 너무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가 없고, 그 수가 너무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가 없고, 그게 어디까지인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즉 무한히 많다 하는 것을 말한 거에요. 그것을 양으로, 수로, 그 경계로, 따져서 무한하다 하는 것을 무량무수무변중생,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뭐요? 모든 중생 이 말이오. 모든 중생을 멸도. 다 구제해 버렸다. 이 말이오. 다 멸도를 했는데

 

實無衆生得滅 度者 사실은 진짜는 멸도를 얻은 자가 중생이 멸도를 얻은 자가 없다. 이거야. 내가 일체 모든 중생을 다 구제했어. 구제 마쳐버렸다. 이 말이오. 그랬는데도, 진짜로 사실은 한 중생도 구제를 얻은 중생이 없어. 아무도 중생, 실제로는 아무도 구제받은 중생이 없다. 이 말이오. 두 번째 문장이에요. 자 첫 번째 문장은 뭐에요? 어떻게 하면 내가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납니까? 내가 이 중생의 탈을 벗고 부처가 됩니까? 이게 질문이죠.

 

그 질문에 대한 바로 직설적인 답은 네가 일체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면 정말 네가 그런 생각을 낸다면. 그렇게 되고 싶다면. 있는바 일체중생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두 다 열반에 들게 하겠다. 즉 일체중생을 다 구제하겠다고 마음을 내라. 그래서 모든 중생을 다 구제해 마쳐라. 이 말이오. 아시겠습니까? 이게 마음 내는 법이에요. 그렇게 해서 모든 중생이 다 구제가 됐어. 깡그리 하나도 남김없이 다 구제가 됐어. 그럴 때 다 구제가 됐다. 이젠 끝냈습니다. 할 때 잘 살펴보면 사실은 한 중생도 구제를 얻은 바가 없다 이거요. 두 번째 얘기에요.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냐? 왜 그러냐? 왜냐하면, 이 두 번째 문장에 대한 이유입니다.

 

何以故須菩提 왜냐하면 수보리야

若菩薩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만약에 보살이 아상이 있고, 인상이 있고, 중생상이 있고, 수자상이 있으면 이 말이오. , 만약에 보살이 아직도 상을 지니고 있으면 이 말이오. 그 상에는 4종류가 있다는 말이죠?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는데 아직도 상을 가지고 있다면. 즉비보살, 보살이 아니다. 이 말이오. 보살이 아니다. 만약에 보살이 아직도 상을 가지고 있다면 보살이 아니다. 이 말은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났다는 거요? 못 벗어났다는 거요? 못 벗어났다 이거요. 상이 없어야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데.

 

보살이 아직 상을 가지고 있다면 자기가 아직 괴로움에서 못 벗어났다 이 말이오. 그러니 내가 일체중생을 다 구제했다 하면 이미 내가 있고 너가 있고, 구제하는 자가 있고 구제 받는 자가 있고, 이렇게 상이 생겼기 때문에 이것은 보살이 아니다. 보살이 아니라는 말은 사실은 아직은 해탈을 못 했다. 이런 얘기요. 내가 일체중생을 다 구제해 마쳤다고 하더라도 그때 내가 라든지, 너라든지. 구제했다 라든지. 이런 생각까지도 없어야 보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때야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거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있으면 아직도 보살이 아니다. 내가 일체중생 지류를 다 구제했다 하더라도 사실은 하나도 구제된 바가 없다. 하나도 구제된 바가 없다. 이 말은 구제했다는 생각이 있다는 거요? 없다는 거요? 구제했다는 생각이 없어요. 구제했다 하더라도 구제했다는 생각이 있으면 아직도 니르바나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거다. 이런 얘기요. 우선 마음을 어떻게 낼 거냐 하는 게 하나 있고, 그 마음을 내서 실천했을 때, 야 여기에 이르렀구나. 할 때, 그 것에 대한 위험에 대해서 다시 경고하면서 어떻게 해야 보살이라고 할 수가 있느냐? 즉 해탈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 지금 얘기하고 있다 이 말이오. 그럼 문장을 정확하게 아시겠어요?

 

, 이것을 우리가 지난번에 반야심경 공부할 때, 보디사트바, 보살이 뭐냐? 하는 공부를 한 적이 있어요. 보살이라는 말은 보디사트바(깨달은 중생)의 준말이다. 이거요. 보디라는 것은 깨달음이고 사트바라고 하는 것은 중생이다. 그러니까 보살은 깨달은 중생이다라는 이런 뜻이다. 이것을 그림으로 표시를 하면 둥근원에 아주 태양처럼 밝게 빛나는 것을 우리가 보디. , 깨달음, 부처라고 하고. 둥근원이 새까맣고 깜깜해 있는 것을 사트바. 중생이라고 한다. 한쪽에 밝은 태양 같은 보디가 있고, 다른 한쪽에 칠흑 같은 사트바가 있고, 그 사이에 한 원이 있다. 이거야.

 

그럴 때 그 사이에 있는 이 원은 보디 쪽으로 향한 면은 이 밝은 태양의 빛이 비쳐서 역시 밝고, 그게 반사가 돼서 밝고, 또 반대 이 사트바 쪽의 면은 사트바의 어둠이 비춰서 또 어둡다 이거야. 그래서 한 면은 밝고, 한 면은 어두운 이런 존재가 있다면 이런 존재는 보디 + 사트바가 된다 이거야. 그래서 이런 것을 우리가 보디사트바. 즉 보살이라고 한다. 그러면 보살은 깨달은 중생이다. 깨달음과 어둠이, 밝음과 어둠이, 깨달음과 무지가 함께 있다 이런 얘기죠. 그러니까 이 무지의 중생이 부처가 되려고 한 생각을 일으키면 밝음이 거기에 조금 비치게 된다.

 

그러면 그는 보디 사트바가 된다. 그러니까 보디사트바의 원은 바로 한량없이 부처의 세계로 나가서 완전하게 밝아지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중생을 멀리하고, 중생계를 떠나서 부처의 세계로 계속 나아간다. 나아가고 나아가게 되면 밝음이 10에서 20이 되고, 50이 되고, 그다음에 80이 되고, 90이 되고, 99가 되고 99.9가 된다. 그래서 중생의 측면에서 볼 때는 완전한 부처와 같아 보인다. 그러나 부처의 측면에서 보면 아직도 중생의 그림자가 아주 작지만 남아있다. 아무리 아무리 가도 중생의 그림자기 조금은 남아있다.

 

보살이 자기가 지향하는바 가고자 하는 바는 부처의 세계로 가고자 하죠. 이것을 일러서 상구보리다. 그런데 실제로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느 쪽으로 가야 되느냐? 중생을 향해 가야 돼. 중생을 향해 갈 때는 실천의 과제가 뭐요? 중생의 세계를 없애버리는 거요. 그 말은 일체중생을 다 구제한다. 이 말이오. 그래서 중생의 세계를 없애 버리면 어떻게 되느냐? 자기한테 비칠 어둠이 없어지겠죠? 그러니까 바로 뭐한다? 붓다가 완성된다. 부처의 세계에 이르게 된다. 부처라는 것은 하나하나 얻어서 부처가 되는 게 아니다. 이거요. 거기에 덮어씌우고 있는 어둠이 사라지면 어때요? 그냥 부처가 되는 거다.

 

마치 흙에 묻은 구슬이 흙을 닦아내면 본래의 영영한 모습을 나타내는 거지. 흙을 닦으면 흙을 바짝바짝 빛이 나서 구슬이 되는 게 아니다 이 말이오. 이 방안에 어둠이 있는데 불을 탁 켜면 그냥 밝아지는 거다. 그래서 일체중생을 구제하면 뭐가 된다? 자신이 성불하게 된다. 이게 이 질문과 대답하고 똑같습니까? 안 같습니까? 똑같죠. 어떻게 하면 붓다가 될 수가 있느냐? 그래 일체중생을 구제하겠다고 마음을 내서 그 모든 중생을 구제해 마치면 바로 부처가 된다. 부처가 된다는 말은 네 모든 괴로움과 속박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니 깨달음을 얻고 할 일이 없어서 중생을 구제하는 것도 아니고, 중생 구제 먼저 해 놓고 나중에 부처를 이루는 것도 아니고. 바로 붓다를 이루는 거, 부처가 되는 길이 바로 뭐다? 중생을 구제하는 길이다. 선의의 문제도 아니고 좌우의 문제도 아니고 이것은 동시로 함께 하나로 되어있는 거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예불문 같은데 보면 자타 일시성불도. 동시에 함께 성불에 이르게 된다. 이것을 우리의 생활문제로 가져와 보자. 이 말이오. 생활 문제를 가져와서 이제 각자 자신에게 부닥친 문제로 한 번 보자. 이거요.

 

어제 어떤 젊은 처녀가 질문했습니다. 지금 결혼을 하려고 하는데. 결혼해도 좋을지 안 좋을지 모르겠다. 왜 그러냐? 할머니가 지금 계십니다. 많은 연세 드신 할머님이 계시는데 즉, 외할머님이에요. 그런데 그분이 어머니를 자기가 볼 때는 너무 못살게 군다 이거요. 그러니까 어머니 인생이 너무 불행하다 이거요. 자기가 볼 때는 정말 너무 가슴이 아프고 안타깝다 이거요. 할머니가 너무너무 소위 밉다. 증오가 되는 거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고. 나는 절대 결혼을 안 해야지. 결혼해서 저런 부모와 자식 관계가 되는 것은 정말 몸서리쳐지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해서 자기는 결혼을 안 하겠다고 맹세를 했다. 이거야. 그런데 살다 보니까 친구가 생기고 또, 결혼해야 할 지경에 이르게 됐다. 그런데 스님 법문을 들으니 이 결혼이 쥐가 쥐약을 먹는 것과 같지 않으냐? 이런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예를 들면 이런 질문이오. 맞다. 그게 바로 쥐약이다. 그러니까 결혼하면 안 된다. 백발백중이다. 이게 쥐약이다. 이러면 안 먹으면 되죠. 그런데 왜 이게 고민이 될까? 쥐약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이 되는 거죠. , 이게 아닐지도 모른다. 아마 아닐 거야. 이렇게 생각이 드니까 고민이 생기는 거요. 이게 쥐약이다. 이러면 고민이 생길 게 없다. 이 말이오.

 

그러니 쥐약이다. 하면 하나도 두려움도 없고, 아무 일도 없죠. 그냥 그런 친구는 친구고, 그런 조건이 되면 되는 거고, 내 갈 길은 내 갈 길이 있는 거고, 그게 무슨 문제가 돼요. 내가 길을 가면 옆에서 돈 달라는 사람도 있고, 여기 있어도 찾아와서 돈 달라는 사람도 있고, 뭐 해달라는 사람도 있고. 온갖 사람이 다 있어요? 없어요? 있죠. 거기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할 수 없는 일은 못하고 그렇지.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그러니까 가볍게 생각하면 되는데. 바로 아닐지도 모른다. 먹고 싶다. 이 말 아니오. 그죠? 먹고 싶으며 먹으면 되지. 쥐약 생각 안 하면 되겠지. 배 아플 때 배 아프더라도. 그런데 법문은 들었겠다. 보니 아무래도 쥐약일 거 같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론 에이 절대 아닐 거야. 이런 생각도 드니까 질문을 한 거요. 질문 잘했어요. 그러니 쥐약이다. 이렇게 한마디로 끝나는 거요. 결혼하지 마라. 이 말이죠. 그러면 나 같은 이런 업은 결혼 하면 안 되느냐? 이건 조금 틀려요. 결혼하려면, 결혼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결혼을 안 하든지, 결혼하려면 수행을 해야 된다. 괴로움의 씨앗을, 앞으로 잉태할 괴로움의 씨앗을 막아야 된다. 없애야 된다. 그럼 어떻게 기도해야 되느냐? 그건 뭐 한 생각 바꾸면 하루 만에 끝날 수도 있지마는 보통 얘기해서 이럴 경우에는 한 천일은 정진을 해야 된다. 그래야 뭔가 가능성이 있다. 일체 법이 공하니까 하면 된다. 안 된다. 이렇게는 될 수가 없겠지. 어떤 것이든 길은 있다. 이거요. 하겠다면 할 수도 있고.

 

그러니까 업을 그대로 지니고 살려면 그나마 나은 길은 안 하는 게 낫고, 하고 싶으면 업을 바꾸면 되는 거요. 어떻게 기도를 해야 될까? 할머니한테 참회기도를 해야 된다. 할머니가 정말 고마우신 분이고, 이 세상에 할머니 같은 분이 없는 줄 알 때까지. 이게 형식적이 아니고, 마음에서 그렇게 느껴질 때까지 참회를 해야 된다. 그렇게 정말로 이 세상에 둘도 없는 그 할머니라는 생각이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면 비록 다생겁래로 지은 인연의 씨앗이라도 말끔히 없어진다. 누가 잘했다? 내가 잘하고, 제일 문제가 있는 사람이 누구다? 할머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정말 훌륭하신 분이고, , 내가 정말 생각을 잘못했구나. 이게 완전하게 다가온다면 결혼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지금 사귀고 있는 그 남자를 말하는 게 아니라. 어떤 남자하고 결혼해도 상관이 없다. 이거요. 이런 문답이 결혼하려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 그 결혼 안 하는 게 낫다. 이렇게 턱 들으면 여러분들이 오해를 하겠죠? 꼭 그래도 하려면 어떻게 합니까? . 할머니한테 참회기도 하십시오.

 

그러면 아니 이 남자하고 결혼하는데 왜 할머니한테 참회기도를 하느냐? 갑자기 뚱딴지 같이. 이렇게 생각이 들 수가 있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늘 이 마음의 어떤 이치를 잘 몰라서 그러는 거요. 그럼 이 경문에다 비춘다면,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괴롭다? 할머니 때문에 괴롭. 이 말이죠. 할머니만 저래 안 해줬으면 내가 얼마나 좋겠냐? 저런 할머니가 내 인생을 망치고 있다. 이거요. 나를 결혼도 못하도록 결혼에 대해서 진저리를 치도록 나를 만들고 있다. 할머니가 내 인생에 괴로움의 큰 덩어리 가운데 하나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이걸 없애느냐? 부처님의 가르침. 대승 보살의 가르침에 의한다면 어떻게 해야 된다고? 그 할머니의 괴로움을 덜어주려고 마음을 내야 된다. 연세 드신 할머니가 그 분이 살아온 평생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그분이 혼자 살아오고, 그분이 그렇게 자식에게 집착하고 그분이 살은 삶 하나하나를 다 그분의 입장으로 돌아가서 이해한다. 이 말이오. ? 그분을 구제한다는 것은 뭘 말합니까?

 

그분이 바라는 것이 다 이루어지면 그분은 괴로움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분의 괴로움이 없다는 것은 그분이 원하는 게 다 이루어진다. 이 말이오. 그분이 원하는 것을 다 이루어 주려면 그분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 이해를 해야 됩니까? 안 해야 됩니까? 이해를 해야 되겠지. 그분이 원하는 그렇게밖에 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그분의 입장을 다 완전하게 내가 이해를 한단 말이오. 그리고 그 요구에 내가 다 따라 준다. 이 말이오. 그러면 그분은 적어도 그 문제에 있어서는 구제가 됐다. 이런 표현은 그런 뜻이거든요. 그럴 때, 누구 괴로움이 없어지느냐? 나의 괴로움이 없어져 버린다. 이것이 바로 보디사트바의 수행법이다.

 

 

 

 

 

3

이것이 바로 보디사트바의 수행법이다. 남편이 술을 먹고 늦게 들어온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이해할 수가 없죠. 술을 먹으면 건강에 나쁘죠. 돈 버리죠. 또 술 먹고 나면 사람이 여러 가지 실수를 할 위험이 있죠. 또 술 먹고 운전을 하면 요즘 또 벌칙도 크고 생명의 위험도 있죠. 그런데도 술을 먹고 들어온다. 이 말이야. 그리고 술을 먹고 들어오니까 늦게 오게 되죠. 늦게 오게 되니까 애들하고 대화할 시간도 없죠.

 

아이들 생각에는 아빠는 늘 술 먹고 늦게 오는 사람. 이렇게 나쁜 이미지를 주니까. 자식한테까지 존경을 못 받죠. 나하고도 대화할 시간이 없죠. 이런 걸 생각해 보면 저 사람이 왜 저럴까? 술을 먹지 않으면 일찍 들어오죠. 돈 안 들죠. 건강 좋죠. 교통사고 날 위험이 없죠. 애들하고 대화할 시간이 있죠. 애들한테 존경받죠. 나하고도 부부간에 정이 좀 나죠. 이렇게 좋은 길을 뭣 때문에 저분은 안가고 꼭 그 백해무익한 행동만 할까? 이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이해가 안 된다. 이거야. 이해가 안 되면 안 될수록 더욱더 뭐가 납니까? 부화가 터진다. 이 말이오. 그죠?

 

이해가 그래도 좀 되면 몰라도. 도무지 뭐 때문에 저러는지 모르겠다 이거야. 이렇게 생각이 들수록 내 괴로움이 커진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왜 저 짓 하는지. 이런 생각이 들면 들수록 나는 어디에 점점 가까워지고? 성인에 가까워지고. 상대는 점점점점 어디에 가까워진다? 마귀에 가까울수록. 그런데 누가 더 괴로워진다? 내가 더 괴로워진다. 내가 성인에 가까워지고 그는 마귀에 가까워 져서. 나는 100% 옳고 그는 100% 틀렸다 할수록 내가 점점점점 지옥에 가까워지고 있어. 내 삶이. 지옥에 떨어지고 있는 중이오. 내가 옳을수록 내가 지옥에 떨어지고 있는 거요.

 

그러니 나를 구제해 달라고 아우성을 친단 말이오. 이렇게 착한 나를, 이렇게 지옥에 떨어뜨려서 됩니까? 안됩니까? 안되지. 그렇다면 하느님도 불공평하고 부처님도 있으나 마나 한 존재 아니오. 그러니까 내가 기도하면 내 기도는 반드시 성취될 수밖에 없죠. 그것도 안 해주면 그건 뭐 하느님이나 부처님도 나쁜 사람이란 말이오.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게 뜻대로 안 되면 뭐라 그래요? 아이고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이런 말 하죠? 그래 안 그래요? 그렇단 말이오. 그게 원망하는 마음이란 말이오.

 

이랬을 때 어떻게 하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느냐? 이 말은 어떻게 하면 저 어리석은 남편을 고치느냐? 이 말이오. 그 무슨 비법이 없느냐? 제가 돈 100만 원 갔다 드릴 테니까 부처님 비방하나 일러주세요. 49재를 지낼까요? 천도재를 지낼까요? 뭘 어떻게 할까요? 스님 시키는 대로 내 뭐든지 하겠다. 이거야. 이래서 다 이 세상에서 이렇게 하면 된다. 신에게 기도하면 된다. 무슨 비방을 쓰면 된다. 무슨 부적을 하면 된다.

 

그래서 벼락 맞은 대추나무에다 뭐라 써가지고 남편 베개 밑에 넣어놓으면 된다. 지갑 속에 넣어놓으면 된다. 뭐 어떻게 하면 된다. 저떻게 한다. 온갖 비방이 비법이 나오게 되죠. 나아가면 조상묘까지 잘못 써서 그렇다. 이렇게 되는 거요. 옛날 같으면 그렇게 된 거는 작년에 서쪽에 대장군이 있었는데 서쪽에 있는 헛간을 고쳤다 이 말이오. 그래서 그것 때문에 그렇다. 그 담장을 고쳤다. 그것 때문에 그렇다. 자 이럴 때 이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한다면 너가 이 괴로움에서 이 지옥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남편을 구제하라 이거야.

 

남편을 구제한다는 것은 남편을 구제하려면 우선 남편을 이해해야 되요 안 해야 되요? 구제하려면 제일 먼저 남편을 이해해야 되요. 왜 술 먹을까? 왜 술 먹지? 할 때는 이해를 못 하겠다. 여기에서 이제는 왜 먹을까 하는 똑같은 질문 같지마는 이제는 탐구. 마치 애들이 개미를 보고 개미집을 보고 연구하듯이 이제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왜 사과가 밑으로 떨어질까? 이렇게 탐구하듯이 연구를 하기 시작한다. 이거요.

 

그래서 남편을 가만. 자라온 어린 시절도 살펴보고, 회사에서 일어난 일, 친구 사이. 이런 걸 가만히 살펴본다 이거야. 살펴보니까 어릴 때 우선 시골에서 자라면서 부모에게 사랑을 못 받았다 이거야. 친정, 시댁 어머니 아버지가 살기 어려우니까 싸우고 그런 속에서 외롭게 자랐고, 사랑도 못 받고, 구박받고 자랐다. 그래서 늘 가슴 하나가 허전하다 이거야. 그래서 또 학교 다닐 때도 친구들하고 잘 못 어울리고 늘 그렇게 외롭게 자랐다. 이렇게 자라면 어떻게 되느냐? 이성에 눈을 빨리 뜹니다. 아시겠어요? 외로우니까. 누군가가 자기를 약간 좋아하고 위로해 주는 사람 있으면 빠진단 말이오.

 

그런데 이런 사람은 사랑을 갈구하기 때문에, 또 상대가 허전한 사람을 보면 또 연민의 정을 자기 처지하고 견주어서 빨리 알게 됩니다. 그러니 그 사람한테 잘해주죠. 잘해주니까 그 사람도 채워지니까 그 사람도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죠. 그런데 이 분이 그 아픔을 자기 아픔처럼 느껴서 잘해주지마는 근본적으로는 자기 아픔을 채워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그런 사이는 빨리 만나서 금방 좋아지면서도 오래 지속이 못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어떠냐? 자꾸 사람이 바뀌게 되는 거요. 이렇게.

 

자꾸 바뀌게 되면서 어떻게 느끼느냐? 사람에 대해서 불신이 생겨. 남자 같으면 여자는 못 믿겠다. 이런 마음이 생겨. 한편은 갈구하면서 한편은 불신이 생겨. 그 불신이 생기니까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미리 겁을 낸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관계가 더 빨리 끝나죠. 그래서 이렇게 전전하게 되는 거요. 예를 든다면.

 

그러면 남편이 나하고 특별히 불만이 없는데도. 얘기 들어보면 뭐 다른 이유도 별로 없는데도 어떠냐? 자꾸 외박하거나, 다른 여자를 사귀거나 이래요. 그래서 가끔 와서 하시는 분이 아니 한 여자를 정해놓고 사귀어도 괜찮겠는데. 자꾸 여기 집적, 저기 집적, 여기 집적. 그러니 더 미치겠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그런데 사실은 한 여자를 정해놓고 안 사귀기 때문에 가정이 유지가 되죠. 또 어떤 사람은 이래요. 그냥 남자들이 그냥 여자들 사귀는 정도면 내가 이해를 하겠는데. 이 남자는 한 여자를 딱 정해놓고 살림을 차리니 못살겠다. 이런 사람도 있어요? 없어요? 있어. 다 이유를 대는 건 다 다르단 말이오.

 

그러니까 이렇게 했다고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니까. 그런 걸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런 이유들이 다 있다. 이 말이오. 그러면 그러니까 가슴이 늘 허전하니까 그걸 가지고 부인하고 얘기를 해 보니. 부인은 자기요구, 만나기만 하면 애들 문제, 돈 문제, 뭐 자기 생활문제, 불평불만만 한단 말이오. 그런 부인으로서는 연애할 때나 초기에는 자기 허전함이 채워졌는데, 일상생활 속에서는 도저히 안 채워지니까. 부인하고는 얘기할게 없단 말이오. 얘기하면 속이 더 답답하단 말이오. 그럼 자꾸 신경질 내고 하니까. 그렇다고 부인이 뭐 싫은 것도 아니고 이러니까. 늦게 들어가는 게 상책이란 말이오. 늦게 가서 안 부닥쳐야 되니까.

 

그러니까 바깥으로 맴도니까 술을 먹어야 된다. 포장마차. 이래 술을 먹다 보니까. 술 먹는 습관이 들게 된단 말이오. 또 허전하니 술로 먹고 때워야 된단 말이오. 그러니까 그 허전한 마음을 때우는 일은 술이니까. 그 순간에서 보면 술은 약이에요. 그런데다가 또 회사에서의 이런저런 일이 생기고, 장사가 안되고, 돈을 떼이고. 그런 얘기를 다 집에 와서 할 수도 없단 말이오. 또 남자들은 그런 얘기를 여자들한테 다 하는 게 옳은 게 아니다. 이런 생각도 있단 말이오. 별것 없는 사람들이 요즘 남자들 별 볼 일 없잖아. 그죠?

 

그런 주제에 내가 남자네. 이런 건 또 있어요. 아시겠어요? 남자 값은 또 하려고, 딴 데 가서 해야 되는데. 그리고 또 혼자 떡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단 말이오. 이런 데서 그의 방황과 그의 아픔이 있단 말이야. 이걸 만약에 부모가 자식을 보듯이. 부모가 자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힘들어하고, 방황하는 걸 가만히 보면 그런 아들을 이해하고, 좀 달래주고 하면 며느리가 얼마나 예쁘겠어요. 그런데 그런 아들을 박박 긁고, 못되게 굴고. 더욱더 바깥으로 내 쫓고 이런 걸 부모가 보면 며느리가 밉겠죠. 그러니까 내가 볼 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마는 그걸 만약 엄마가 돼서 자식을 가만히 본다 하면, 정말 너무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엄마가 아들을 보듯이 그런 아픔을 가지고 봐라. 누구를? 남편을, 그런 남편을. 그게 바로 그를 뭐하는 거다? 보살피고 그를 구제하는 거다. 그런 입장에서 그를 보면 저녁에 벨을 누르고 늦게 들어오면 마음을 절에 와서 법문을 딱 듣고는 그래 우리 남편 오늘부터 내가 잘 해줘야지. 이렇게 하다가도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얼굴을 탁! 보는 순간 불법이고 뭐고 다 없어지고 성질이 팍 난단 말이오.

 

대문간에는 겨우 참고 맞아들였는데도 늦게 들어온 주제에, 미안하다 하고 방에 가서 자는 게 아니고. 이리 나와 봐~ 이래 불러놓고 술을 먹으면 지 혼자 먹고, 늦게 오려면 지 혼자 늦게 와서 자지. 자는 사람까지 깨워서 또 밤에 잔소리하고 이러쿵저러쿵. 그런데 이런 걸 어떻게 참느냐 이거야. 스님 맨날 그런 소리 하는데, 자기가 여기 와서 내 꼬라지 한 번 당해보지. 그런 소리 할랑가? 이런 생각까지 든단 말이오. 이게 우리들의 삶인데. 그러니 이 보살의 길이라는 것은 그를 정말 이해하게 되면 늦게 들어와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죠?

 

오늘 일찍 들어와서 나하고 잔소리하느니 늦게 들어오는 게 약이고, 그런 나하고 얘기하고 싸우는 거보다는 술 먹고 풀고 오는 게 약이고. 그러니 한 서너너덧 시간 나하고 다투느니 술 한 잔 먹고 늦게 들어오는 게 그 사람한테도 좋고 나한테도 좋은 일이니. 술을 많이 먹고 온 날은 술국 좀 끓여주고, 적당히 먹고 온 날은 양말 벗기고 지압이나 좀 해서 재우고. 또 적게 먹고 온 날은 눈치 봐서 한 상 차려서 좀 더 먹이고. 이렇게 마음을 만약에 낸다. 여러분들이 그게 안 나죠.

 

그렇게 돼 지지를 않겠지. 이렇게 마음을 내서 그를 보살피고. 체했다고 등을 두드려 주고, 토하면 닦아주고, 자는 거 넥타이 벗기고, 옷 벗기고, 발 씻겨 애 재우듯이 그렇게 재워주면. ~ 그날 저녁에 내 마음이 괴롭겠어요? 안 괴롭겠어요? 저 놈 첨지 또 술 먹고 와서 이렇게 생각하고 그걸 갖고 다투고, 그래서 딴 방에 와서 이불 뒤집어 지고 자면. 우선 분해서 잠이 안 오고, 지나간,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이 다 후회가 되고.

 

그러니까 집에 들어온 뒤 한두 시간 싸우느라 괴롭고. 그래서 딴 방에 가서 누워있는데 억울하고 분하고 잠이 안 오고. 이렇게 시간이 흘러간단 말이오. 그런데 그 싸우고, 다투고, 두드려 패고, 뚜드려 맞고, 살림 깨지는 그 시간에 해장국 끓이고, 옷 벗기고, 갖다 주는 게 훨씬 더 실제로 나한테 낫고. 이러고 나서는 딴 방에 가서 자든지, 같이 자든지, 잠도 잘 오고, 분한 생각도 없으니까. 실질적으로 누구에게 이롭다? 나한테 이롭다. 이 말이오. 그런데 이게 이렇게 하면 나만 이롭냐? 남편에게도 좋은 일이오? 나쁜 일이오? 좋은 일이다.

 

여기서 좋은 것이 나는 내가 마음을 바꿨기 때문에 좋은 일이고. 내가 인을 바꿨기 때문에 좋은 일이고. 남편은 어떻게 해서 좋은 일이 생겼다? 연이 바뀌었으니까 자기에게 좋은 일이 생긴 거요. 남편은 자기가 수행해서 좋은 일이 생긴 게 아니고, 환경이 변해 좋은 일이 생겼고. 나는 환경이 바뀌어서 좋은 일이 생긴 게 아니라. 나 자신의 마음가짐이 바뀌어서 좋은 일이 생긴 거요. 두 사람이 다 좋은 일이 생겼지마는 하나는 인이 바뀌어서 좋은 일이 생겼고 하나는 연이 바뀌어서 좋은 일이 생겼단 말이오. 그러니까 둘 다 좋은 일이 생긴 거요.

 

그러니 그렇게 얼마를 지나면 남편은 아내로 받는 스트레스가 없어지겠지. 술을 당장 끊는 것은 아니지마는 그 만큼 덜 먹게 되고. 먹더라도 덜 싸우게 된단 말이오. 그러니까 이것은 실제로 문제가 해결되는 쪽으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게 된다. 이 말이오. 그래서 정성을 다해서 기도하게 된다. 기도하게 된다는 건 뭘 말하느냐? 이렇게 하는 게 뭐다? 수행이고. 이렇게 하는 게 뭐다? 기도다.

 

그런데 이게 현장에 딱 부닥치면 마음이 뒤집어 지니까. 그러니 시간을 정해서 남편이 보살입니다. 남편의 아픈 마음을 제가 잘 이해하겠습니다. 이게 다 제 지은 업입니다. 제가 전생에 진 빚을 이생에 갚으러 왔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딱 돌이켜서 매일 엎드려 절을 하게 되면. 어제저녁에 잘하다가도 한바탕 싸웠으면 다시 마음을 원래 자리로 돌이키는 거고. 이렇게 해서 그 위험한 고비들을 넘긴다. 이 말이오. 그러니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기도에요. 실천이 곧 기도다. 이 말이오.

 

그런데 또 따로 시간을 정해 기도하는 거는 실천이 기도지만은 실천을 바르게 하지 못할 때는 거기에 딱 경기에 끄달려 사로잡혀 생각을 못 돌이키니까. 경계를 떠나서 또 한쪽에서 이렇게 시간을 내서 기도하면 다시 정신을 차리게 된다. 정신을 차리고 또 가서 해보면 또 헷가닥해서 또 정신을 잃게 되면, 또 와서 정신을 차린단 말이오. 그래서 나중에 그 부딪치는 경계 속에서도 정신을 잃지 않으면, 이제 行住坐臥행주좌와 語默動停어묵동정이. 즉 하는 것마다 다 수행이 되는 거다 이 말이오. 수행이라고 이름 붙여 따라 할 것이 없다. 이 말이오.

 

자 이렇게 되니까 이 말씀이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맞다 이거요. 그런데 아이고 어떻게 중생이 그걸 합니까? 그거는 사람이 병이 들고, 가정이 파탄되고 이래서 딱 살펴보니까. 이 아편 중독에 걸려 그래. 그러니 아편을 끊으면 됩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아편을 끊으면 되는 길이 있다. 이 말이오. 그런데 아편을 못 끊겠다 하면 알아도 소용이 없는 거죠. 아편을 끊으면 되는 거요. 이렇게밖에 살 수 없도록 정해진 것은 아니다. 이 말이오. 아시겠어요?

 

오늘날 우리나라가 요렇게 밖에 되는 길이 없고, 여러분 인생이 요렇게 밖에 되는 길이 없다는 아니다. 이 말이오. 다른 길도 얼마든지 있다. 이 말이오. 그런데 현재 여러분들이 요런 생각으로 나라의 정치가 요런 식으로만 가면 요렇게 밖에 갈 수가 없는 거요 그거는. 누굴 탓할 게 없다. 이 말이오. 길을 몰라서 그렇게 간 거는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이제 길을 알았으니까 여러분들이 선택을 해야 된다.

 

요렇게 가려거든 그냥 가세요. 누가 뭐라 그래요. 먹고 싶으면 먹어라. 이거야. 쥐약이라도. 배불리 먹고 죽으라. 이 말이야. 그러나 죽기 싫거든 먹지 마라. 이거야. 배가 좀 고프더라도 좀 참아라. 이거야. 다른 음식이 올 때까지 기다려라. 이거야. 그래 눈앞에 보이는 쉬운 길을 가지 마라 이거야. 조금 수고스럽지만, 저 멀리 가서 쓰레기통이라도 좀 뒤져라. 이 말이오. 이렇게 삶을 바꾸어 나가야 되는데. 바로 여기에 그런 말씀을 하고 있다 이 말이오. 그럼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

 

我皆令入無餘涅槃 내가 모두 지금 남음이 없는 열반. , 모든 괴로움을 내가 다 소멸시키겠다. 이 말이오. 그런데 이렇게 해서 남편이 좋아졌다. 이 말이오. 첫째 이렇게 마음을 탁 내면 술 먹는 남편, 늦게 들어오는 남편, 뭐 이 여자 저 여자 찍접찍접하는 남편, 정말 지옥같이 하루도 못 살 거 같더니. 마음을 탁 바꾸면 그런 현실은 두고라도 편안해집니까? 안해집니까? 편안해 져. 왜 그럴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어떤 사람은 내 남편도 아니고 내 자식도 아닌데도 이런 사람, 술 먹고 길거리에서 행패 피우고, 길거리에 자고, 쓰러져 있는 유랑민들. 이런 사람 모아서 따뜻이 감싸는 사람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죠. 내 자식도 아닌데도 정신박약아가 돼서 온갖 고생한 사람 모아서 보살피는 사람 있어요? 없어요? 있지. 그런 일이 참 여러분들이 생각할 때는 스님 당신이 한 번 내 입장이 돼서 한번 해 보세요. 이러지마는.

 

이 세상에는 그런 성인이라는 이름 말고도, 자기 남편도 아니고 자기 자식도 아닌데도 그런 사람을 모아서. 여러분 남편보다 여러분 자식보다 더한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도 모아서 보살피는 사람이 있어요? 없어요? 있단 말이오. 한두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을 말이오. 그런데 여러 명도 아니고 한 명, 남도 아니고 내 자식이나 내 남편인데 왜 못해 그거를. 이렇게 생각하면 아주 쉬운 일이란 말이오. 그런 일도 안 하고 뭐하겠다는 거요? 그저 눈만 뜨면 지 심보대로 세상을 한번 해 보겠다 이거지. 해보지 그러면. 그러니 이렇게 딱 마음을 먹으며 그냥 놔 놓고도 나한테 금방 내 괴로움이 없어져.

 

내가 100% 옳으면 옳을수록 내가 지옥에 간다는 걸 알아야 되요. 아이고 생각이 서로 다르구나. 이렇게 반반씩 받아들이면 내가 인간계에 사는 거고, 아이고 내가 어리석어서 생각을 잘못했구나. 아이고 당신 옳습니다. 이렇게 내면 나는 이미 천상에 가 있어. 내가 괴로울 일이 없어져 버려. 이렇게 해서 시간이 흘러가면, 첫째 내가 딱 금방 좋아져요. 그 여러분들 절에 와서 법문 듣고 뭘 하면 어때요? 뭐 오늘 집에 가서 못할 값에 지금 법문 듣고 있는 동안은, 남편이고 뭐고 별일 없을 거 같죠? 지금 괜찮잖아.

 

왜 괜찮을까? 꽁하든 게 지금 풀어져서 그래. 그렇게 탁 보면 어때요? 도로 꽁해지니까 괴로운 거요. 법당에는 되고 집에 가서는 안 되는 게 아니고, 법당에는 마음을 내려놓고, 집에 가서는 다시 자기식으로 잡으니까 안되는 거요. 그런데 그게 어느 정도 되면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거요. 저는 그런 남편을 두고도 영원히 사랑하고 살아라. 내가 지금 이런 얘기 하는 게 아니오. 질문 자체가 누가 해탈하고 싶다? 내가 해탈하고 싶다니까 내가 어떻게 해탈하느냐? 이 얘기를 지금 부처님이 하는 거지.

 

남 얘기하는 게 지금 아니에요. 우리가 언제 당신들 남편 봤다고, 당신 남편을 위해 줄 마음을 왜 내겠어? 눈앞에 와서 괴롭다고 하는 사람을 위해서 일러주는 얘기지. 상대를 위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란 말이오. 찾아와서 내 앞에서 괴로워하는 그 처녀를 위해서 내가 얘기를 하지. 왜 내가 보지도 못한 할머니를 위해서 내가 왜 그런 얘기를 하겠어요. 내 눈앞에 있는 것도 다 처리를 못 하는데. 여러분들 생각할 때는, 아이고 스님이 우리 남편을 위해서 내보고 또 희생하라고 그러는구나.

 

그러면서 돌아가면서 또 뭐래요? 아이고 중이라도 남자는 남자 편이네. 이러고 돌아가는 거요. 그런 게 아니에요. 이렇게 하면 여러분들 첫째 좋아져요. 그런데 시간이 조금 경과되면 그 몇 십 년간 잔소리해도 안 고쳐지던 남편의 생활태도가 조금씩 바뀝니다. 그걸 바뀔 때 여러분들이 놀라는 거요. ~ 정말 기적이 일어나는 거 같애. 어째 이런 일이 이렇게 되는 거요. 그러니까 스님이 처음 얘기할 때는 억울해하고. 자기심정을 몰라준다. 스님이 얘기도 듣지도 않고, 몇 마디 탁 꺼내니까 말 자르고 이래라 이러니까. 지가 뭐 안다고?

 

그래서 기도문 주면 내 하고 안 맞습니다. 딴 거주세요.” 이래요. 여러 명이 같이 받으면 딴 사람하고 바뀐 거 같은데요.” 그래서 처음에는 억울하고 분하고 아예 기분 나빠 안 오는 사람이 있고, 그래도 생각 조금 바꿔서 그걸 따라 해보다가 현실에선 절에서는 맞는 거 같은데 현실에서 해보니 도저히 이건 맞지 않는 얘기야. 이래서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이 있어. 어쨌든 이런 사람 중에 실제로 해서 마음이 좋아지니까. 아 눈물 흘리면서 불법이 정말 위대하구나. 첫째 자기가 좋아지니까. 조금 더 경과하면 바로 상대가 변하는 것을 느끼는 순간은 기적이 일어나는 것 같단 말이오. 너무너무 좋아요.

 

그러면 스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그래. 자기 좋은 정도는 스님께 까지 인사드릴 거는 없는데. 남편이 변하는 걸 볼 때는 자식이 변하는 걸 볼 때는 부모가 변하는 걸 볼 때는 이거야말로 기적이죠. 그러니까 스님한테 찾아와서. 처음에는 자기가 괴로우니까 나를 죽기 살기로 만나자 했다가. 요번에는 스님을 만나 고맙다 인사하고 돈이라도 좀 드리려고 또 죽기 살기로 만나자 그러는 거요. 만나서 너무너무 좋아하죠. 왜 좋으냐를 내가 딱 물어봅니다. 그런데 이유가 다 그래. 남편이 변하는 걸 내가 좋아해. 스님 그 평생 안 변할 거 같은 우리 남편이 요즘 바꿨어요.

 

~ 스님 덕이라 그래. 그러면 제가 말하죠. 보살님 기도나 하세요. 내가 이래. 기도 하고 있어요. 이래. 기도 똑바로 하세요. 아이고 스님, 원래 스님이 써주기를 나한테 108배 하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300배 해요. 기도 안 한다. 아이고 스님 참 이상하시다. 좀 잘하면 칭찬도 좀 해 줘요. 스님은 내 이렇게 무슨 심보라고 자꾸 잘하는 사람을 보고 못 한다고 자꾸 그러냐고 이렇게 얘기하거든요. 기도 열심히 한다 이거야. 재미가 나서 요샌 물불 안 가리고 하는 거요. 그런데 왜 기도 안 한다고 그럴까? 이걸 생각해야 되.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기뻐서 못사는데.

 

그래서 스님한테 돈도 갖다 드리고, 먹을 것도 사 드리고, 세상이 새로운 거 같아서 기분이 이렇게 좋아하면 칭찬도 해주고 이래야 되는데. 그런데 또 심보가 중이 더러워서 또 기도 안 한다 이래. 기도하라는 것보다 더 하는데 말이야. 그런데 조금 지나면 또 괴로움이 시작되죠? 왜 그럴까? 남편이 변하는 거로 좋아한다는 것은 또 원래로 돌아갔다는 얘기에요. 또 뭘 하는 거다? 상대를 처음에는 바꾸려다가 안 바뀌어져서 괴로웠는데. 이제는 상대가 바뀌는 것 보고 즐거워한다는 것은 이 원래대로 돌아간 것의 옛날 생각의 중생심에 의한 기쁨이란 말이오. 그 기쁨이. 제 말 이해하시겠어요?

 

그러니까 그 변하는 거에 대한 생각이 일순간에 기뻐하는 순간에 이미 생각이 딱 바꿔서 그 변하는 걸 보고 좋아한단 말이오. 조금만 내가기도 더 하면 더 빨리 변하겠다. 아시겠어요. 그래서 기도를 더 열심히 하는 거요. 조금 만 더 내가 잘하면 더 빨리 변하겠다. 빨리 변하겠다. 더 잘되겠다. 그때는 이미 벌써 처음에 왔을 때 기도하는 심보로 다시 돌아가 버렸단 말이오. 그래서 내가 기도를 안 한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절하는 걸 보고 얘기하는 게 아니란 말이오. 그게 그 뒷 문장이란 말이오. 이렇게 해서 남편이 좋아졌다 하더라도.

 

즉 중생을 구제해 마쳤다 하더라도 내가 중생을 구제했다. ~ 내가 이러니 남편이 저렇게 변하구나. 이렇게 하면 다시 기대를 걸게 되고. 그 기대를 성취시키기 위해서 내가 더 열심히 하게 되면 바라는 마음이 더 커지고, 그러면 그걸 못 따라오는 남편을 보면 실망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또 마음에서 분별심이 생기고. 아이고 저놈의 첨지는 안 돼. 되는 것 같더니 역시 도로아미타불이야. 이러면서 또 상대를 탓하게 된단 말이오.

 

실로는 한 중생도 멸도를 얻은 자가 없다. 이 말이야. 그건 내가 해서 변한 게 아니에요. 그건 그 사람 인생이 그렇게 변했어. 그건 그렇게 변해도 되고, 그렇게 안 변해도 되고, 그건 누구 인생이다? 그 사람 인생이야. 변했다고 좋은 거고 안 변했다고 나쁘다 이 생각을 버려야 된다 이 말이오. 평생 안 변하고 그대로 있어도 상관이 없고, 변해도 상관이 없고. 변했다고 더 좋다 이렇게 생각하지 마라. 이 말이오. 그러면 또 덜 변하는 모습을 보면 또 괴로움이 생긴다.

 

그런데 여러분들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는 그렇게 편하지마는 남편은 그냥 놔 놓으면 술 먹고 빨리 죽으면 안 되잖아요. 이렇게 남편 걱정하는 거 같은데. 절대 인생은 남을 걱정할 수가 없는 게 우리 중생이다. 이거 생각해야 되요. 여러분들이 남을 걱정한다는데 이건 거짓말이에요. 남편이 죽으면 다 붙들고 먼저 간 남편을 슬퍼하는 거 같은데, 다 거짓말이라니까. 붙들고 뭐라 그런다 그랬어요? 아이고 여보 당신 죽고 나는 어이 사노? 저 자식들 데리고 어떻게 사노? 이런단 말이오.

 

누구 걱정하고 있다. 지금? 죽은 사람 걱정 안 하고 살 자기 걱정하고. 아이 걱정하는 게 아니라 아이 데리고 살 자기 걱정을 하는 거란 말이오. 인생은 그래. 그러니까 남편걱정 한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오산이에요. 그게 다 자기 걱정인 줄 알아야 돼. 자기 걱정이 없으면 인생은 그냥 좋아지는 거요. 남편이 변하는 거는 그 사람 알아서 변할 거니까. 그 몫을 그 사람의 몫으로 돌려야 돼. 그걸 내가 구제하는 걸로 생각하면 안 돼. 이미 내가 하는 것은 이미 여기에 바라는 마음이 있고, 그것은 곧 바라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이미 괴로움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다는 거요.

 

그러니까 조금 있으면 찾아오죠. 그런데 이 두 번째 고비를 주로 못 넘깁니다. 그래도 첫 번째 고비는 그래도 어지간하게 공부를 해서 넘기는데. 이 두 번째 고비에 딱 걸린단 말이오. 선방에서 공부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공부하다가 탁해서 막 세상이 훤하게 보이니, 업식이 맑아지면서, 상대의 전생 후생이 보이는 것 같고,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니 다 공부 다했다. 이러고 하면 원래 속에 있던 자기의 그 욕구, 그 잘나고 싶은 거 하고 딱 결합을 해서 깨달았다. 내가 부처다. 이러고 나온단 말이오.

 

이런 잠꼬대는 정말 병 고치기가 어렵다. 이 말이오. 그래 이 서두에 이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어도 부처님의 삶이 어떤지를 보여줬죠. 그러니 이런 저런 얘기를 할 때, 그냥 가만히 듣고 있지마는. 이미 잠을 깬 사람은 어떤 잠꼬대를 한다 해서. 그게 잠꼬대인지 잠꼬대가 아닌지 구별하기 어려운 게 아니란 말이오. 사람이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있고. 아시겠어요?

 

그냥 이런저런 야~ 내 신발이 어디 갔냐? 내 밥 왜 안주느냐? 이런 얘길 갖고. 아이고 지도 몇 개 없는데 지거 찾네. 이런 식의 얘기는 옳지가 않아. 그게 동산이 아니지만 세상 사람 따라 동산이란 부르는 거요. 그런 걸 갖고 검증하는 게 아니란 말이오. 딱 보면 그게 아직 꿈 깬 소리인지, 꿈꾸는 소리인지 알 수가 있다 이 말이오. 속일 수가 없어요.

 

자 아개영입 무여열반 이멸도지. , 일체중생을 구제하라. , 타인의 아픔을 내가 돌아가서 그것을 구제하려고 마음을 내라. 이게 보살의 첫 출발입니다. 화엄경에 보살이 열 개의 단계로 올라가는데 제일 첫 번째가 대비심. 아파하는 마음을 내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도 딱 이거와 일치하는 거요. 아시겠어요? 대비심으로 출발하는 거요. 이렇게 해서 올라가는 거요. 그런데 맨 마지막에 화작한단 말이오. 나라 하는 게 없고, 그저 중생의 요구 따라 몸을 나툴 뿐이란 말이오. 내가 너를 이라는 게 없단 말이오. 그냥 인연을 따라서 그냥 나툰단 말이오. 물이 본래 자기 모양이 없기 때문에 그릇의 모양 따라 그냥 모양을 나투 듯이.

 

如是滅度無量無數無邊衆生

實無衆生得滅 度者

사실은 한 중생도 구제를 얻은 바가 없다. 그 말은 내가 중생을 구제했다. 이런 생각을 가지면 안 된다. 이 말이죠. 그런 생각을 갖는 건 곳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다. 그런 생각을 가지면 곧 또 괴로움에 빠지게 된다. 그러니 우리가 지난번에 어제 그저께 원효대사 얘기를 했었지 않았습니까? 그죠? 그러니까 원효대사가 바로 그 불쌍한 중생을 구제를 해야 되는데 그 불쌍한 중생도 외면하고 분별심을 내 놓고는 그런 유창하게 중생구제니 중생구제니 해 놓고는 막상 중생을 눈앞에 보니까 도망을 갔죠.

 

그러니까 다시 마음을 내서. 정말 눈앞에 있는 중생을 현실적으로 구제하려는 마음을 내라. 그건 뭐요 앞에 1번이겠죠? 그죠? 1번이란 말이오. 그런데 그 방울 스님을 만나서 깨달은 세계는 뭐요? 중생이 본래 중생이 아니라는 거지. 그게 다 내가 일으킨 망념이죠. 내가 중생이라고 모양 지어놓고, 또 중생을 뭐 한다? 중생을 구제한다고 하는 거죠. 실로는 여기 한 중생도 구제한 바가 없다는 거는 그는 본래 중생이 아니에요. 중생이 아니니까 구제할 것도 없죠.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지 마라. 이 말이 아니라. 중생을 구제하되. 바로 내가 중생을 구제한다. 이런 생각이 없어야 된다 이거야. 배고픈 사람이 와서 밥을 먹을 때 아이고 불쌍하다. 내가 니 밥줄 게. 먹고 배불르래이. 아이고.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다. 당연히 배고픈 사람은 밥을 먹어야 하는 거요. 그러니까 자기 밥 자기가 먹는 거지. 내가 그를 보살핀 것도 아니다. 마침 그 밥이 나도 모르게 내 옆에 있어서 줬다. 이렇게 봐야 한다. 이 말이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여시멸도무량무수무변중생 실무중생득멸도자다.

 

何以故須菩提 왜 그러냐? 수보리야

若菩薩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만약에 보살이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으면

則非菩薩 보살이 아니다. 그러니까 상이 있어야 된다는 거에요. 없어야 된다는 거에요? 없어야 돼. 없애는 게 좋다. 없애야 된다 이런 게 아니라. 실제는 상이 일어나지가 않는 거요. 여러분들이 수행을 하면서도 또 없앤다는 상을 하나 만들고, 자꾸 상을 그리기 때문에 늘 극단에 치우치게 된다. 그래 여기서 경계하는 거요.

 

첫째는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마음을 내야 하며, 그렇게 해서 행동을 하게 되면 누구의 괴로움이 없어진다? 나의 괴로움이 없어지죠? 그다음에 세월이 흐르다 보면 상대편이 좋아지게 눈에 보여요 안 보여요? 좋아질 때 이걸 내가 잘해서 저 사람이 변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 그 사람도 아~ 저 사람도 수행해서 아~ 저 사람도 자기 인생을 변화시켜 나가는 거구나. 고마워요? 안 고마워요? 참 고맙다. 이런 생각을 해야 되.

 

~ 저 사람도 수행하시는 거구나. ~ 요거는 내가 지금 좋은 건, 내가 공부해서 되는 거고. 저 사람 지금 잘 되는 거는, 좋아진 거는 내 덕에 좋아지는 거다. 요렇게 생각하면 안 된단 말이오. 남의 인생에 간섭하면 안 된다. 그건 그 사람의 인생이다. 그래서 상대가 변한 걸 보고 그저 오직 감사하는 마음만 내게 되면 좋은데. 내 덕이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반드시 괴로움의 씨앗이 생겨서 또 괴로움의 과보가 열리게 된다.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이거야.

 

보살이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다. 즉 해탈할 수가 없다. 아시겠습니까? 여기서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대해서는 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이 전체 경문은 이걸 설명하는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죠. 아시겠어요? 그러나 요 말이 무슨 말이냐 하는 것은 조금의 지식적이거나, 논리적인 설명이 필요한 건 남지마는.

 

그러나 이 경문 전체로 봐서는 그런 어떤 내다 하는 상이 있으면 바로 괴로움이 또 생긴다. 이렇게만 이해하시면 되기 때문에 이 문장 자체는 그렇게 중요한 요지가 아니다. 이 말이오. 그러나 요것은 다음 시간에 또 필요하니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오늘 가서 공부를 다시 하셔야 됩니다. 아는 것과 뭐가? 알고, 믿고, 행해야 되겠죠. ~ 이렇구나 하고 알면, 바로 믿음이 생기고 그럼 오늘 해 봐야 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