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 대승의 가장 바르고 으뜸되는 사상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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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금강경

2013. 1. 8.

출처: 정토회

 

안녕하세요. 금강경 3번째 강의 시간입니다. 금강경 제3 대승정종분 펴 주시기 바랍니다. 대승의 가장 바르고 으뜸 되는 가르침이다. 최상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수행자는 즉, 완전한 자유와 완전한 행복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느냐? 있는 바 일체중생의 그 갖가지 괴로움을 내가 다 해결해 주겠노라. 모든 중생을 내가 다 구제하겠노라. 이렇게 마음을 내고, 그렇게 실천을 해야 한다. 모든 중생의 괴로움을 내가 다 구제를 하려면 그 중생의 괴로움에 대해서 그 원인에 대해서 낱낱이 다 알아야 된다.

 

즉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하는 그 상대편의 마음을 낱낱이 다 이해하고 그 사람입장이 돼서 그것을 다 편안케 해 주려고 하면 어느덧 나의 괴로움이 다 사라져 버린다. 나의 괴로움이 사라지니 첫째 내가 좋고, 그의 괴로움을 덜어주니 그가 좋다. 내가 좋은 것은 대승 보살의 길을 따라 수행을 했기 때문에 내가 편안해진 거고, 그가 좋아진 것은 중생이 자기 원하는 데로 되기 때문에 그가 좋아졌다.

 

비유를 들어서 말하면 두 사람이 서로 깡통을 뒤집어쓰고 살게 된다. 서로가 사랑한다고 껴안아도 깡통이 부딪치고, 밉다고 부딪쳐도 또 깡통 소리가 난다 이거야. 내가 먼저 뒤집어쓴 깡통을 벗어 버리게 되면 내가 훤하게 밝아서 좋다. 내가 다 보이니 눈 어두운 그를, 깡통을 뒤집어 쓴 그를 만나서 부딪칠 일이 없다. 나는 그와 만이, 안 부딪치는 게 아니고. 모든 사람과 부딪치지 않게 된다. 그러나 그는 나와 만이 부딪치지 않게 된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내가 아상을 깨뜨렸을 때, 내가 좋아지는 것 하고 그로 인해서 그가 좋아지는 것 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다. 이 말이오. 그러니 수행을 통해서 관념의 벽을 허물고, 지혜의 눈을 열은 사람하고, 그 보살의 덕에 편안해지는 중생의 그 얻은바 공덕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일단 내가 좋아지고 그도 좋아진다. 그럴 때 그가 좋아지는 모습을 보고, 그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면 즉, 나로 인해서 저 사람이 좋아지는 거구나 이런 생각을 내게 되면은 곧 그것은 또 문제의 원인을 상대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괴로워진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첫 번째는 중생을 교화하겠다고 마음을 낸다 하는 것은 보살의 수행법을 말하는 거고. 다시 내가 일체중생을 다 구제해 마쳤다 하더라도 실로는 한 중생도 구제를 얻은 바가 없다는 것은 내가 중생을 구제했다 하는 이런 생각을 내게 되면 이미 이것은 깨달음이 아니다. 다만 내가 눈을 떠서 그와 부딪치지 않았지. 내가 그를 위해서 내가 피해줬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러니까 금강경 후반부에 가면 보살은 복을 짓되 복을 받지 아니한다. 왜냐하면, 복을 탐착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가 나와요.

 

왜냐하면, 보살은 아상인상중생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느니라. 보살이 아니라는 말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런 얘기죠. 오늘은 이 아상인상중생상에 대해서 조금 더 집중적으로 공부해 보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첫째 이 상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데요. (모양 )자죠. (모양 )자죠. 불교에서는 이 상을 참 많이 씁니다. 상이 있다. 상을 없애야 한다. 이런 여러 말을 쓰게 되는데. 이제까지 우리가 배웠던 이 상자가 하나 있었어요. 諸行無常제행무상 할 때 상자를 썼죠. 그런데 그때 상자는 (항상 할 )자입니다. 영원하다. 이런 의미의 상자란 말이오.

 

그러니까 이 세상의 존재는 영원하지가 않다.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한다. 이런 의미로 무상이란 말을 썼단 말이오. 항상 함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 나오는 상자는 (항상 할 )자가 아니고 (모양 )자입니다. (모양 ). 이 모양이라는 게 뭐냐? 자 여기 컵이 있다. 여기 컵이 있습니다. 또는 물 잔이 있다. 이럴 때 이렇게 물을 담을 수 있도록 생긴 이 그릇의 모양이 뭐다? 우리가 말하는 상이다. 아시겠어요? 물 잔이다. 하면 여러분들이 벌써 어떻게 생긴 그릇인지가 딱 떠오릅니까? 안 떠오릅니까? 떠오르죠? 그게 상이다 이거야. 모양이다.

 

그러면 이러한 그릇을 어떤 용도에 쓸 거냐 하는 용도는 또 별도로 있어요. 그래서 아함경의 즉 소승교리로 말하면 물 잔이다. 할 때는 두 가지가 결합이 돼 있다. 하나는 이러한 존재의 모양, 즉 물질, 물질을 말한다. 이 물질을 색이라고 말하고. 그 물질의 사용용도. 그것을 이름이라고 말해서 명이라 그래요. 그래서 물 잔이다. 할 때는 두 가지가 겸해있다고 그랬죠. 색과 명이. 그래서 명색이다. 이렇게 말한단 말이오. 더 크게 말하면 인식의 대상이라는 차원에서는 그냥 한마디로는 색이다. 이렇게 말하지마는, 분류하면 거기서는 그러한 물질적 존재를 색이라 하고. 그것의 용도를 명이라 이래서 명색 이렇게 나눈단 말이오.

 

그럼 이러한 용도도 항상 하는 게 아니고 늘 바뀌죠. 또 이러한 모양도 항상 하는 것이 아니라 바뀌죠. 또 이러한 용도도 경우에 따라서 다른 용도로 쓰이기 때문에 항상 이런 용도로 써야 한다고 하는 그런 실체가 없고, 이런 모양도 항상 이런 모양으로 있다고 할 만한 것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무상과 무아를 말했다. 이것을 대승불교에서는 한마디로 공이다.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통은 용도에 대해서 집착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명이 공하다. 이런 의미로 공을 많이 씁니다. 다시 말하면 물 잔이 텅 비어있을 때는 물을 담으면 물 잔이 되고, 술을 담으면 술잔이 되고, 커피를 담으면 커피 잔이 되고, 주스를 담으면 주스 잔이 되고, 밥을 담으면 밥그릇이 되고, 국을 담으면 국그릇이 된다. 이럴 때 비어있다면 뭐든지 담을 수 있겠죠. 즉 이 그릇은 공하기 때문에 인연을 따라서 무엇이든지 될 수가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한다. 이 말이오.

 

법성게의 비유를 빌리면, 말씀을 빌리면 불수자성수연성이다. 스스로의 성품을 지키지 아니하고 인연을 따라서 이루어진다. 이럴 때는 명이 공함을 말하는 거다. 또 우리가 오온이 모두 공하다 할 때 색이 공한 것도 설명했었죠. 그러니까 이것이 물리적인 변화, 화학적인 변화. 핵 변화. 이런 여러 가지 물질적인 현상을 설명하기도 하고. 또 그런 것들을 옛날 말로는 이 물질세계. 우주는 성주괴공한다. 이래서 그 물질적인 어떤 실체도 없고. 항상 함도 없다. 그래서 제행이 무상이고, 제법이 무아다. 그렇게 말하기도 하고. 또 대승에서는 공이다. 이렇게 말을 했단 말이오.

 

그런데 이제 이 대승의 사상이 점점 깊어지면서 어떤 이런 존재를 3가지 관점에서 보는 게 있습니다. __용 이다. 그러니까 금이다 하면 금, 그 자체가 체입니다. 그러나 그 금은 여러 모양으로 만들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여러 모양으로 만들 수 있죠. 그럴 때 그 모양을 뭐라고 한다? 상이다. 이렇게 말한다. 그 다음에 그러한 모양은 또 여러 용도로 쓸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쓸 수가 있죠? 그걸 용이라 그런다. 그래서 체상용의 도리로도 설명하기도 한다.

 

아무튼, 여기서 상이다 할 때는 그것은 모양을 말합니다. 소승교리로 말하면 색을 말하고, 그다음에 두 번째 이상이다. 할 때는 이런 인식의 대상인 물질적인 어떤 모양만을 말하는 게 아니고. 우리들의 고정관념, 고정관념을 다 모양이다. (모양 상)자를 쓰는 거요. 즉 이것은 더럽다. 이것은 깨끗하다. 이것은 선이다. 이것은 악이다. 하는 것은 다 한 생각을 일으켜서 선이라고 한 생각을 일으켜서 선이라고 모양을 탁 지어 버리는 거요.

 

이것은 어떤 형상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들의 어떤 관념이란 말이오. 뱀을 보고 징그럽다. 돼지보고 욕심 많다. 소보고 어리석다. 이런 것은 실제로 그 존재가 그런 게 아니죠. 우리는 그렇게 한 생각을 일으켜서 그 고정관념을 만든단 말이오. 그 고정관념을 만들어 놓고는 마치 그 물질이 정말, 그 존재가 정말 그런 양 착각을 한다 이거야. 다시 말하면 색깔이 있는 안경을 끼고 벽을 보고는 그 색깔에 의해서 그 벽 색깔을 자기가 보는데도. 그 벽 색깔이 정말 푸르든지 누루든지 그런 줄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상이다 할 때는 이렇게 한 생각을 일으켜서 무엇이라고 정하고 그것을 항상 하는 걸로 착각할 때. 그걸 우리가 모양을 짓고 그 모양에 집착한다. 그러니까 그것이 항상 하는 실체가 있다. 그 모양에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니 집착이 일어나겠죠. 그 모양이 사실은 헛깨비 같고, 꿈 같은 줄을 탁 깨버리면 거기 집착을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안 하겠죠. 선하다 하면 그 정말 선한 그 어떤 요소가 있다고 생각을 한단 말이오. 그게 바로 실체가 있단 말이오. 그러니까 거기다가 집착을 하게 되는 거요.

 

그다음에 우리가 이거 하고 비슷한 용어가 또 뭐 있느냐? 一切有爲法일체유의법이다. 또는 有無유무를 말할 때 유다 하는 유 자를 많이 쓰죠? 이럴 때 유도 사실은 이 모양 상 자가 대체될 때가 있다. 같은 개념으로 쓰인다. 그런데 모양이 없다고 하는 하나의 고정관념을 갖게 되면 그것 또한 뭐가 될까? 모양이 되겠죠. 전에 말씀드린 대로 동산이다 서산이다 하는데, 동산도 아니고 서산도 아니고 그것은 비동비서산이다. 이렇게 정답을 만들면 이것도 또 하나의 상이 된다.

 

그러니까 상이라고 하는 것은 물질적인 모양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한 생각을 일으켜서 내는 고정관념, 요즘 쉬운 말로 하면 고정관념이라고 해야 되겠죠. 그런 고정관념은 다 뭐에 속한다? 여기에 금강경에서 나오는 이 상에 속합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상은 즉 아의 개념이다. 원시불교로 따지면 뭐의 개념이다? 아의 개념이거나 또는 항상 할 상의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모양이 없다 할 때 무상이라고 쓰는 말은 다른 용어로 말하면 공이라는 용어가 되고. 소승 교리로 말하면 무상과 무아의 개념이 된다. 이 말이오. 이해하겠습니까?

 

여기서 만약에 보살이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다. 이 말은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다는 것은 곧 제법이 공하다는 것을 아는 거요? 모르는 거요? 모른다는 얘기가 되니까. 이것은 보살이라고 할 수가 없죠. 제법이 공한 줄을 모르니까. 괴로움이 생기겠어요? 안 생기겠어요? 생기고. 또 속박도 생겨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보살이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다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말하느냐?

 

내가 중생을 구제했다. 내가 너를 구제했다 할 때는 이미 나라고 하는 고정불변하는 상을 취하고, 너라고 하는 하나의 상을 만들고. 또 구제하는 자가 있다는 하나의 상을 만들고, 구제받을 대상이 있다는 또 하나의 상을 만들고, 또 구제해야 된다고 하는 또 하나의 상을 만들기 때문에 갖가지 상이 벌어진다. 자 그래서 이렇게 상을 갖게 되면 그것은 보살이 아니다. 상이 허망한 줄을 알고, 상이 없는 줄을 알아야 보살인데. 바로 상을 갖고 있다는 것은 실체가 있다는 말이고. 영원한 것이 있다는 말이 된다. 순간적으로 이런 착각을 일으키게 되는 거요. ~ 그럼 여기서 그냥 상이다 하면 되는데 왜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이렇게 4가지, 4. 4가지 상으로 분류를 했느냐?

 

사실은 그냥 4가지로 굳이 분류를 안 해도 됩니다. 모든 상. 이러면 되죠. 제상. 모든 상은 다 허망하다. 이렇게 말해도 되는데. 그 상이라는 것이 형편에 따라서 이런저런 모양이 있다. 이런 얘기요. 아시겠어요? 모든 사람, 이렇게 하면 되는데. 그 모든 사람을 분류하면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아이도 있고, 어른도 있고. 이렇게 분류를 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아상은 없는데 중생상은 있다든지. 중생상은 없는데 아상은 있다든지. 이런 얘기가 아니에요. 상을 가지고 있다. 모든 상은 다 허망하죠. 그 상을 갖고 있게 되면 보살이 될 수가 없다. 이런데 그 상을 우리가 보면 어떤 상은 없으니까. ~ 저 사람 깨달았나 보다 이렇게 하지마는, 그는 또 다른 상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반야심경 할 때 공부를 했잖아요. 부처님께서 저 높은 산에 올라가거라 했을 때는 걸림 없이 모든 것을 다 있는 그대로 보라 이런 말이죠? 사실은 이 골짜기에 가려있어서 제대로 못 보고. 그 속에서 갖가지 착각을 일으켰으니까. 그러나 그 높은 곳에 올라갔지마는 사실은 더 높은 곳에 올라가서 사면이 다 확 트이게 봐야 되는데. 중간 봉우리에 올라가서 여기가 부처님이 가리킨 산의 봉우리다. 이렇게 할 때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모양을 짓고 거기에 집착하는 게 되겠죠. 이걸 우리가 뭐라 그래요? 법상이다. 이러죠.

 

자기가 내가 옳다. 내가 최고다. 이러면 아상이라 하지마는, 법이 최고다. 법이 옳다. 무조건 법대로 돼야 된다. 이러면 이건 법상이다. 이렇게 말한다. 이 말이오. 자 그래서 아상은 없지만은 법상이 있다. 이렇게 말은 하지마는 상이 있기는 마찬가지죠. 그러니까 범부 중생의 입장에서 볼 때는 아상이 없고, 법상이 있으면 아상 때문에 생긴 갖가지 괴로움은 없어지죠. 그러나 법상 때문에 있는 괴로움은 또 남게 되지. 그러나 대승의 입장에서 볼 때는 괴로움이 남아있다는 차원에서는 마찬가지죠. 그러니까 이걸 별로 중요시하지 않는다. 이 말이오. 아상이든, 법상이든, 이건 없어지면 굉장히 좋고. 저건 좀 남아 있으면 괜찮다 이런 얘기가 아니란 말이오. (23:23)

 

여기서 이렇게 나눴는데. 여기는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대해서는 해설하는 방법이 다 조금씩 다르다. 즉 아상이 뭘 지칭하느냐? 중생상이 뭘 지칭하느냐? 여기에 대해서는 조금씩 사전적 해석이 서로 다르다 이 말이오. 그러나 제가 오늘 말씀을 드리는 거는 이것이 우리의 생활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고, 또 이것이 옛 가르침에도 맞고. 이것이 오늘 날 어떤 과학적인, 소위 말해서 여러 불교 이외의 다른 학문의 변화하고도 연관했을 때도 수긍이 갈 수 있는 그런 쪽으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아상이다 하는 이 아상은 내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다. 그럼 내다 또는 나다 할 때 무엇으로 나를 삼습니까? 바로 오온으로 나를 삼는다. 오온이라는 것은 이 몸뚱이하고 이 마음을 가지고 나로 삼는다. 이 몸뚱이가 색이고 그다음에 우리가 마음이다 또는 생각이다 정신이다 하지마는 그건 분류하면 수상행식이 되겠죠. 이 오온의 가합상으로, 이 오온이 쌓여있는 이것으로 나를 삼는다. 이걸 아상이라 그래요. 다시 말하면 여러분들이 몸뚱이를 나로 삼아서 어떤 반응을 일으키면 이것은 뭐에 사로잡혀있다? 아상에 사로잡혀 있다. 이렇게 말한단 말이오.

 

이 아상을 기초로 해서 나의 것이다 하는 것이 있어요. 이건 내 꺼다. 이건 내 옷이다. 이건 내 연필이다. 이건 내 방이다. 이건 내 집이다. 이런 것을 또 아상에 속합니다. 또 원시불교로 따지면 내다 이 몸뚱이와 이 마음을 가지고 내다 하는 이 집착을 아라 그러고. 그다음에 이걸 기초로 해서 내 꺼다 하는 거를 我所아소다. 이렇게 말해요. 옛날에 공부 했었죠? 我所아소, 내 꺼다. 그다음에 자신이 일으킨 견해. 이러면 좋겠다. 저러면 좋겠다는 그 견해를 자기로 삼아서 그것을 고집하는 것을 我執아집이다. 이렇게 말해. , 나다, 나의 것이다, 나의 생각이 옳다. 내가 옳다. 나다, 나의 것이다, 내가 옳다. 내가 옳다는 말은 뭐가 옳다는 거요? 나의 견해가 옳다. 이 말이오.

 

이 세 가지를 한문으로는 , 我所아소, 我執아집 이렇게 말해. 이것은 다 근본은 뭐를 기초로 하고 있다? 아를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아상이라 할 때는 이 세 가지를 다 통틀어서 뭐라고 한다? 아상이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나다, 나의 것이다, 나의 견해가 옳다. 이것을 아상이라고 말한다. 이 아상을 갖게 되면 부부지간에도 싸우겠어요? 안 싸우겠어요? 싸우게 되겠죠. 이건 나고 이건 너다. 이 말이오. 그죠? 그다음에 이건 내 것이고 이건 네 것이다. 이건 내 의견이 옳고, 너는 틀렸다. 이거요. 그 요즘 부부간에 다 싸우는 게 뭣 때문에 싸운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아상 때문에 싸운다. 아상 때문에.

 

옛날 사람하고 요즘 사람하고 비교해보면 누가 아상이 더 강할까요? 요즘 사람이 아상이 더 강합니다. 그러니까 부부지간에도 화해가 안 되고, 부모자식간에도 화해가 안 되는 거요. 더 심하게 가면요, 더 심하게 가면, 나다 하는 것도. 또 이 안에서 이 몸과 마음 안에서 또 나다 하는 것을 별도로 하나 따로 만들어 놓고, 따로 하나 만들어 놓고 이 몸뚱이나 이 말하는 거나 행동을 내려다보면서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게 뭐냐? 내가 내 맘에 안 드는 거요. 자기가 못마땅한 거요. 자기가 못마땅하다? ~ 난 왜 이럴까? 내가 못마땅하다. 이 말은 못마땅하게 여기는 나 따로 있고 못마땅한 나 따로 있어요. 이걸 뭐다?

 

자기 분열이라 그래. 아를 또 나눠서 자기 분열현상이라 그래. 자기 분열현상이 일어나면 남을 갖고 괴로워하는 게 아니라 자기를 두고 또 괴로워하는 거요. 이걸 아상이다. 이렇게 말해. ~ 몸과 마음, 또는 정신과 육체, 또는 오온의 가합상. 여러 가지 말을 할 수 있겠죠? 쉽게 말하면 여러분들이 지금 갖고있는 육신으로, 육신과 관계되는 이 정신으로 나를 삼는 거요. 이것이 나다 이거야. 그래서 이건 내 옷이고, 이건 내 생각이고, 이런 것들을 아상이다 이래. 그런데 사실은 니가 누고?” 이렇게 물어봐요. “나는 내다.” 이러죠. “니가 정말 누고?” 이러면. “법륜입니다.” “그게 니 이름이지 너냐?” “그게 왜 내 아니냐?”

 

그럼 니 이름 바꿔도 네가 변하느냐? 그대로냐?”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면 다만 네 이름이지 그게 어디 너냐?” “~ 내 이름이구나.” “그럼 또 넌 누구냐?” “몸뚱입니다.” 그럼 몸뚱이라는 건 6개월만 지나면 부속품이 100% 다 바뀌어 버립니다. 아시겠습니까? 우리가 먹은 음식이 지금의 세포를 구성해서 이 몸뚱이를 이루고. 현재 이루고 있던 거는 다 없어져 버려요. 그러면 네 몸뚱이가 변했으면 6개월 후에 변했으면 너 아니지 않느냐?” “몸뚱이가 너냐?” 이거야. “지금 숨 딱 떨어지면 시신인데 네가 시신이냐?” “아닙니다.” “그럼 니는 누구냐?” “생각입니다”. “야 이놈아 생각은 시시때때로 바뀌는데 어느 게 너냐?”

 

이렇게 자꾸자꾸자꾸 따져 들어가면 나다 하긴 하는데 뭘 갖고 나다 하는지 잘 몰라. 그러니 잘 살펴보면 나랄 게 없어. 나다 하는 것은 한 생각이 어리석게 일어나서 그걸 모양을 짓고 딱 집착해 있는 거요. 그러니까 아라고 하는 모양을 짓고 있는 거지. 아라고 하는 게 실제로 없다. ~ 인상이다. 인상. 인상이라는 건 사람이다 하는 상이다. 이 말이오. 사람이다. 이 사람이다 하는 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되겠느냐? 이것은 나와 너로 구분 짓는, 즉 무리 짓는 생각이오. 무리를 지어서 나다 하는 생각입니다. 즉 우리가족 할 때. 우리가족 하고 다른 가족하고 다툴 때는 어제저녁에 술 먹고 늦게 들어왔다고 남편하고 나하고 싸운 거는 아상에 사로잡혀 그렇다. 이 말이오.

 

그런데 오늘 이웃집에 돈 빌려 준거 받을 때는 나하고 남편이 한패가 됩니까? 안 됩니까? 한패가 되죠. 나하고 남편 사이에 아무런 재산상의 니꺼 내 것도 없고. 견해에도 니꺼 내께 없고. 몸뚱이도 마치 몸이 둘이지 마음이 하나같이 일심이 딱 됩니다. 우리 한단 말이오. 우리. 이렇게 이 우리라고 하는 어떤 그룹을 자기라고 생각하는 게 인상이에요. 그런데 이 그룹 짓는 마음은 제일 적은 게 가족 단위에요. 2, 3, 4, 5명 이렇게 가죠. 조금 더 넘어가면 우리 최씨, 우리 김씨. 씨족과 일가친척까지 우리 친척, 이래서 마을 안에서도 김씨네 박씨네 이렇게 친척끼리 대립해서 싸웁니까? 안 싸웁니까? 싸우죠.

 

조금 더 가면 우리 동네. 동네로 그룹 지어서 이웃동네하고 이해관계를 다투게 되죠. 더 나아가면 경상도 전라도. 이런 식으로 다투게 된다. 또 학벌로 우리 학교 우리 동문이다. 이런 식으로 그룹을 짓죠. 더 넓혀 가면 우리 사회 같으면, 남한이다 북한이다. 이러죠. 그러니까 자~ 한번 보세요. 나다 너다 할 때는 나 아닌 너는 죽든지 살든지 관심이 없어요. 두 부부가 서로 싸울 때는. 자기에게 딱! 사로잡히면 상대편은 죽어도 그만인 것처럼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 가족 이렇게 잡힐 때는 저쪽 편은 죽어도 상관없어요. 우리 자식은. ~ 나다 너다 할 때는 상대가 손가락이 떨어지든지는 어떻게 하든지는 관심이 없고, 내 몸에 가시 박힌 것만 관심이 있겠죠?

 

그런데 우리 자식 할 때는 내 자식 손끝에 가시 박힌 거는 관심이 있지만 남의 자식은 못이 박혀도 관심이 없다. 이 말이오. 그런데 경상도 전라도 이렇게 편을 가를 때는 경상도 사람이 직장에서 하나 떨어지거나, 국회의원이 뭐하나 뭐가 잘못되면 경상도 사람 차별했다고 난리 나죠? 또 전라도 사람이 그랬다면 난리가 나지 않습니까? 그죠? 그러니까 광주사태 때 전라도 사람이 군인들한테 그만큼 죽어도 전라도 사람들은 난리가 나고 이럴 수가 있느냐? 하는데, 경상도 사람들은 또 뭐라 그래요? 데모를 하니 그리되지. 이리 생각한단 말이오. 국가에 반대하면 반역이지. 예를 들면 이렇게 생각한단 말이오.

 

남편이 다른 집에 어려운데 가서 도와주고 그다음에 치료비를 내 주거나 이렇게 오면, 아내가 어디 갔다 왔느냐? 돈 어디 썼냐? 그러니까. 이러이러한 데 썼다 하니까. 당신이 왜 쓸데없이 거기 가서 왜 돈 쓰냐? 거기 가서 뭐 하러 일 해주냐? 그렇게 돈이 많고 할 일이 없으면 내 옷이나 사주지. 나하고 얘기할 시간이 없다면서 거기 가서 남 위로해 줄 시간은 있어? 이럴 경우가 많이 있어요? 없어요? 있죠. 그게 뭐냐? 인상이란 말이오. 인상. 우리라고 하는 울타리를 치고 나머지를 빼낸단 말이오. 이게 큰, 가장 작은 게 인상 중에는 가족이고, 점점점점 커져서 남북으로 커지고.

 

그다음에 우리 민족. 우리 민족. 우리 민족 해서 앞으로 천지가 어떻게 개벽이 되면 한국이 반도가 중심이 되고, 일본은 물에 가라앉고, 중국은 지진이 나서 어떻게 되고. 그러니까 일본 사람이라. 일본사람은 물에 다 가라앉아도 되고, 일본사람은 다 죽어도 속이 시원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요. 이게 뭐냐? 이것도 인상이다. 이거야. 우리 민족, 우리 민족.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래서 우리가 인도에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서 학교를 세우고 뭘 하면 다 사람들이 이렇게 묻거든요? 왜 우리나라도 어려운 사람 많은데 거기 가서 도와주느냐? 이렇게 물어요. 두 번째는 학교 짓는데 한글 가르치는 학교입니까? 아니요. 이러면.

 

거 왜 한글도 안 가르치면서 인도어 가르치는 거 뭣 때문에 합니까? 또 거기서 절 짓습니까? 아니요. 아니 불자가 돈 낸 걸 갖고 절을 지어야지 인도는 절도 없다는데 왜 딴짓하느냐? 이런 게 다 인상이에요. 아시겠어요? 우리 거다. 우리 거. 제가 며칠 전에 어떤 토론회에 나갔어요. 토론회요. 거기서 북한에 대한 실정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그다음에 거기에 대해서 도와줘야 된다는 얘기를 하고 우리가 어떻게 돕고 있다고 얘기를 했더니. 그 질문하는 사람이 아주 사회저명 저명인사는 아니지만, 사회 고위 공직자에 속해요. 중요한 국가 기구에 있는 사람들이, 거 강의 대상이 그래요.

 

자기가 세 가지 질문하겠다는 중에 질문 한 가지가 뭐냐? 스님은 지금 우리나라에 결식아동이 몇 명인지, 그들을 위해서 당신 뭘 했는지 얘기를 해보라. 그것도 안 하면서 당신은 왜 북한을 왜 돕느냐? 이거요. 예를 들면 이런 질문 자체가 뭐요? 어떻게 보면 충분히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질문이죠. 그러나 이것을 우리가 크게 인간의 삶에서 본다면 우리나라에서 지금 어렵다 하는 것은 굶어 죽는 사람에 비해서는 어려운 게 아니다. 나라라는 생각을 뛰어넘어서 보면 여기서 못산다 하는 것은 저기서 굶어 죽는 사람에 비해서는 100배도 더 잘 산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단 말이오. 시급한 것으로 따지면 저기는 며칠 만에 죽고 이쪽은 사는데 지장이 없다. 이거야. (39:18)

 

그리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다 사람은 인상이 있으니까. 내 나라, 내 민족, 내 아이, 이런 데는 우리나라 정도 되면 애들이 굶주린다 하면 결국 죽기 전에 정부가 관심을 갖겠어요? 안 갖겠어요? 관심을 갖겠죠? 또 여러분들이 이웃에 그런 일들이 있으면 다 관심을 가져요? 안 가져요? 갖지. 그런데 저 보이지 않는 데서는 사람이 관심을 갖기가 어렵죠. 그러니 역할 분담이 필요하단 말이오. 이런 일은 가만히 보니까 여기도 굶어 죽는 사람이 있다. 그럼 당연히 해야 되겠죠. 그러나 여기 일은 할 사람도 많이 있고, 열악한 점도 낫다. 그러면 여기는 아무도 돌보는 사람도 없고. 그 상황이 급하다 하면 우리는 아~ 나는 여러 가지 일 중에 이쪽 일을 해야 되겠다. 이렇게 역할분담이란 게 있단 말이오. 그런데 그런 식으로 해서 몰아가죠.

 

이런 것들이 바로 나쁘다 좋다 이런 얘기가 아니에요. 그 사람 나쁜 사람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안 돼요. 그 순간에 뭐에 사로잡혀 있다? 인상에 사로잡혀 있다. 인상. 인상이 뭔지 이해하시겠어요? 더 나아가면 사람고기를 먹으면 안 되도 다른 고기를 먹으면 된다. 그러니까 사람이다. 이거요. 사람. 그러니까 사람은 죽이면 안 되고, 사람은 사람고기를 먹으면 안 되지마는 다른 짐승을 죽이고 다른 고기를 먹어도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 어떤 종교의 성경에 보면 그런 얘기 나오죠. 뭐라고? 사람이 다른 동물은 다 먹고 쓰고 하도록 권리가 주어져 있다. 여기까지가 뭐냐? 인상이다. 이해하시겠습니까?

 

~ 그러니까 사람을 자기 개인을 넘어서서 그룹을 지어서 우리라는 울타리를 지어서 그 밖과 안을 구분 짓는 것을 뭐라고 한다? 인상이다. 이렇게 말해요. 내 가족, 내 가족 아닌 사람 이렇게 짓거나. 우리 경상도, 너그 이렇게 짓거나. 우리나라, 우리나라 사람 아닌 거 이렇게 짓거나, 사람, 사람 아닌 것 이렇게 분류할 때까지를 인상이다. 그러니까 상이라는 것은 이 세상을 무엇인가 선을 그어서 모양을 짓는 거에요. 예를 들어서 밀가루가 있으면 그 가운데 툭 하나를 잘라서 뭘 만든다. 이 말이오. 잘라내서 만드는데 자기의 몸뚱이 요거 하나만 이 세계로부터 딱! 분리시켜서 뭐라고 하는 것을 뭐라고 한다? 아상이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그다음에 몇 개 그룹을 지어서 그 울타리 안과 밖으로 나누는 것을 뭐라고 한다? 인상인데. 가장 작은 울타리가 두 사람. 자기와 자기 애인이든, 자기와 자기 부모든, 이렇게 해서 가족단위부터 가장 크게는 인류, 우리 인류. 인류. 이러죠. 그래서 이 세상에 가만히 보세요. 다른 건 다 진화를 했다. 이래도 수긍을 하면서 사람은 진화했다 하는 건 수긍하기가 어렵죠. 사람은 그러면 사람의 가치가 뭐에요? 떨어진다. 사람은 뭔가 다르다. 이렇게 생각을 자꾸 한단 말이오. 사람은 다른 동물과 뭔가 달라야 되요. 같으면 그건 뭔가 인간을 모독하는 거 같애. 이 상은 참 많습니다. 남자끼리 모아서 남자는 여자보다 낫다. 이거도 뭐에요? 상이겠죠?

 

또 피부빛깔로 백인은 아주 우월한 존재고 나머지는 열등한 존재다. 유색인종이다. 이렇게 분류를 한다든지. 그다음에 양반은 우월한 존재고 상놈, 양반상놈으로 나눈다든지. 부자는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 부자 되고, 가난한 놈들은 전생에 나쁜 짓을 많이 해서 가난하게 됐다. 남자는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 남자가 되고. 여자는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 여자 몸을 받아 애도 낳고, 이 세상에 와서 남자한테 구박도 받고, 뭐 한다더라. 이런 식으로 한다든지. 또 여자는 뭔가 부정하고 모자라고 나쁘다 하니까 그 나쁜 이유를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다 그러든지. 하느님 말을 안 듣고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남자를 꼬셔서 따먹게 했다.

 

그러니까 뭔가 여자는 좀 문제가 있다. 그래서 애기 낳는 고통을 주고, 죽어라 하고 땅 파고 일해야 먹고 사는 고통을 줬다. 뭐 이런 식의 옛날 얘기들이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느냐? 이미 여성은 무엇인가 부정한 존재다. 이런 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상을 갖고 있는데, 왜 그런 상이 있느냐를 상이 헛건데. 허상을 지어놓고 그 상에 대해서 뭔가 이유를 대야 된다 말이오. 거기서 온갖 이론이 나오게 된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그러니까 가문의 자기 가문만 중요하면 가족사, 씨족사에서는 아주 중간에 중흥시켰다 그러잖아요. 중흥조라 그러죠. 자기 시조의 몇 대조가 중흥조라 그러잖아, 그죠.

 

그러니까 우리가 남의 나라를 침범해서 영토를 넓히면 우리 민족이 볼 때는 어때요? 굉장한 영웅이고, 다른 민족이 볼 때는 이를 가는 사람이 되겠죠. 이런 식으로 그 인상은 그 그룹 안에서는 이익이지만은 그 그룹 밖에서 볼 때는 전혀 다른 평가를 받게 되는 거요. 그래 우리가 인류의 스승이다. 이런 사람 중에도 다른 동물이 볼 때는 어떻겠어요? 엄청나게 고통을 준 그런 사람도 있을까? 없을까? 있죠. 그래서 우리가 보통 말할 때, 성인이다. 인류의 스승이다 하는 사람은 보통 뭘 뛰어넘어요? 민족을 뛰어넘죠? 보통 우리는 아무리 뛰어넘어도 뭘 못 뛰어넘습니까? 민족과 나라를 못 뛰어넘을 때가 굉장히 많잖아. 그죠?

 

그런데 그 민족과 나라를 뛰어넘으면 성인이 되죠. 그 성인이 되면 다른 민족도 그 사람 받아들이겠어요? 안 받아들이겠어요? 받아들이지. 그러니까 성인들은 제 민족 안에서는 환영을 못 받습니다. 제 민족의 이해만 생각해야 되는데 그 밖에까지 이익을 같이 생각하니까. 이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환영을 받기 어렵죠. 그러니까 예수가 유대인들로부터는 유대인들은 유대인만 세상에 제일 낫고, 그것만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았다 이러니까. 유대교들은 그냥 있어요? 없어요? 그냥 있죠. 그러나 바로 유대인이 아닌 선한 사마리아인. 이런 말 들어보셨죠? 그러니까 그 인종 밖의, 그 민족 밖의 사람도 선한 것이 중요하다.

 

또 창녀보고 죄 있다고 돌멩이 던지니까 예수가 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이런 것들은 다 그것의 울타리를 벗어나고 있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다른 민족이나 다른 계급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받아들일 수가 있게 되는 거요. 그러니까 힌두교나 이런 민족주의 종교가 그 나라 안에서는 꽉 잡는데 그 나라 밖으로는 못 나가죠? 그러니까 이제 예를 들면 기독교라든지 불교 같은 것도 인도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죠? 그러니까 중국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고, 한국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정작 자기 나라에서는 어때요? 배척을 받을 수가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애국 활동을 하려면 나라 전체가 애국자라는데, 그 가문에서는 부모 속 썩이고 온갖 것 해서 역적이 된 사람이 있죠? 가문 안에서는. 마찬가지예에요. 그러니까 사회정의를 위해서 민주화 투쟁을 한 젊은 사람들 중에는 부모가 볼 때 인종 말자 같이 생각하는 사람도 있단 말이오. ~ 그래 논밭 팔아서 대학 보내놓으니까 집안은 외면하고 대모나 하고 감옥이나 가고 이렇게 된단 말이오. 그러니까 오늘날도 남북을 통일하려면 남한에 있는 사람이 북한사람의 심정도 이해하고 그 이익도 대변해 주는 마음을 가져야 서로가 화합이 되겠죠. 그러니까 우리가 북한의 입장과 심정을 함께 껴안는 생각을 하면 남한에서는 맞아 죽게 되는 거요.

 

그러면 한국사람이 세계화되는 추세에서 한국을 뛰어넘어서 전 지구상에 있는 어려운 사람까지 생각하면 한국 내에서는 환영을 못 받겠지? ? 그 이익중심으로 사람이 생각하니까.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남편이나 여러분들의 아내나, 여러분들의 자식이 훌륭한 사람이 되기가 틀렸어요. ? 여러분들이 집안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그 바깥의 이익을 생각하고 돌아오면 집에서 환영을 받을 수가 없어. 남자치고 바깥에서 좋은 친구로 소리 듣는 사람치고 마누라한테 좋은 남편 소리 듣기가 어렵단 말이오. 그저 종 땅! 치면, 땡 하면 집에 가고. 자기 마누라만 생각하면 친구들 사이에서는 다 욕 얻어먹죠. 다 욕 얻어먹는단 말이오.

 

여러분들이 절에 와서 온갖 것 봉사면 집의 남편한테 욕 얻어먹죠? 할일 없나? 왜 거기 가서 그 짓 하느냐? 이렇게 된단 말이오. 그런데 절에선 다 뭐라 그래요? 아이고 보살님 훌륭하시다고 이래. 여러분들이 만약에 돈이 있어 절에다 100만 원 200만 원 보시를 했다. 그러면 집에서는 물론이고 일가친척이 들으면 뭐라 그럴까? 거기 갖다 줄 돈 있으면 나나 주지. 이렇게 생각한단 말이오. 이게 다 우리가 지금 어떤 상에 이렇게 사로잡혀 있다. 그러니까 훌륭한 지도자다 하는 것도 다 그 울타리 안에서의 얘기에요.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말한 인류에서의 성인이라 하는 것도 사람의 울타리 안에서 모든 사람을 생각하면 이제 사람들이 성인이다. 이렇게 말한다 이거요.

 

그런데 사람의 울타리 밖에까지 생각해서 다른 생명, 동물이라든지 다른 생명까지 다 생각해서 얘기하면 이번엔 사람들로부터 환영받기가 좀 어려워. 그러니까 부처님은 살인하지 마라. 그랬어요? 살생하지 마라 그랬어요? 예 그래서 여러분들이 기독교하고 불교하고 똑같다 생각하는데 전혀 틀립니다. 기독교의 5가지 계율에는 살인하지 마라. 이렇게 돼 있어. 그런데 불교에서는 뭐라고 한다? 살생하지 마라. 기독교에서는 원래 도둑질하지 말라 이렇게 돼 있는데, 불교에서는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갖지 마라. 이것도 사실 차이가 엄청납니다. 자 그 인상을 넘어서면 어떠냐?

 

많은 생명들을 다 같이 보는 거요. 거 왜 이러냐? 나만 생각하지만 나 혼자 존재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죠? 부모와 형제와 이 사회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서 내가 존재하죠. 내가 입는 이 옷도, 내가 끼는 안경도 수많은 사람의 노고에 의해서 만들어진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모든 사람의 은혜를 생각할 줄 알 때 뭐를 벗어날 수 있다? 아상을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사람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소위 노동가치설 하면 노동, 이 상품의 가치가 이게 100원이다 하면 100원이 왜 생기느냐? 요걸 만드는데 사람이 얼마나 요기다 노동을 들였느냐? 이것만 가지고 계산하는 거. 이게 다 인상에 사로잡혀서 나온 얘기란 말이오.

 

사실은 이러한 물질이 생성되려면 수도 없는 다른 생명들이 작용을 하고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단 말이오. 식물이 있어야 동물이 있고, 그 작은 세균과 지렁이와 온갖 것들의 노고에 의해서 그 생명의 작용에 의해서 오늘 사람이 그 위에 있는 거란 말이오.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모르고 자기에 사로잡혀서 자기 삶을 있게 한 아내와 자식과 부모와 형제를 고통스럽게 하고 죽이는 것이 패륜아죠. 그것처럼 자기를 있게 한 이웃을 다, 자기를 있게 한 이 세상 사람들을 다 적으로 돌리는 거. 그게 우리가 결국은 자기의 죽음으로 간단 말이오. 그런데 사람만 중심으로 생각하지. 사람밖에 있는 수많은 생명들이 사람과 분리될 수가 없어.

 

역사적으로 진화로 따져도 어디부터 사람이다. 이렇게 사람만 종자가 따로 있은 것도 아니고. 현재 존재하는 이 삶을 봐도 모든 게 다 연결되어 있어. 그런데 아무데다 금을 싹 그어서 요 안에 것만 중요하고, 요 밖에 거는 필요 없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이 인상이 무너져야 되. 그래서 모든 생명들, 모든 생명들을 한 울타리로 탁! 봐야 된다 이거야. 오늘날 환경 문제도 다 뭣 때문에 생긴 거다? 인상 때문에 생긴 거요. 가정의 불화는 아상 때문에 생긴 거고. 오늘날 사회적인 제 갈등들, 이런. 전쟁, 불화, 이런 것들은 그룹그룹 패를 지어 서로 이익을 쟁취하는 인상 때문에 생긴 거다.( 54:57)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겨우 요즘 눈을 떠가지고 생명, 생명, 생명의 가치관, 생명이 어쩌구 이런 말 많이 씁니까? 안 씁니까? 쓰죠? 이럴 때 이 생명이라는 말 속에 물이나 공기나 돌멩이나 흙은 빠져요? 안 빠져요? 빠져. 소나, 말이나, 개나, 이런 것부터 해서 야생동물, 야생식물. 생명이라는 어떤 울타리를 떡쳐놓고, 그 밖에 거는 함부로 해도 돼. 산을 깨부수거나, 돌을 깨거나, 예를 든다면 뭐 물을 더럽히거나. 물속에 사는 생명이 죽으면 문제지. 물 자체는 문제로 안 삼는단 말이야. 공기 이런 거. 이게 뭐냐? 중생상이다. 생명 가진 것은 중요하고 생명 가지지 않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사실은 이 생명 가진 것들이 생명 갖지 않은 것들과 분리가 될 수 있어요? 없어요? 분리 될 수가 없어. 이 수많은 생명이 다 생명 아닌 것이라고 우리가 분리하는 그 땅으로부터 그 공기로부터 그 물로부터 이게 다 생겨나는 거란 말이오. 오늘날 환경파괴는 바로 이 생명을 중심에 놓고, 사람을 중심에 놓고. 보는 거와 생명을 중심에 놓고, 생명 없는 것들에 대한 파괴. 이것이 오늘날 환경문제의 큰 요인이다. ~ 다른 동물을 죽이고, 살림을 다 파괴하고 하는 거 이런 것들은 이런 작용은 소위 말해서 인상과 관계가 있지마는. 여러분들이 지금 물을 더럽히고, 공기를 더럽히고, 오존층을 파괴하고. 이런 것들은 다 생명에 대한 관점이 지금 잘못돼있어요.

 

그래서 겨우 민족신앙, 그저 아상과 인상에 사로잡혀 있는 그 수준에서 겨우 세계적인 종교, 그것을 뛰어넘었다고 세계적인 종교라고 하는 이런 몇 가지 종교들이. 요즘 생명이 어쩌니, 생명관이니 해서 겨우 넓혀봐야 사람에서 어디까지로? 원숭이나, 소나, 개나 뭐 여기까지밖에 안 넘어갑니다. 그러니까 이 철학 자체가 이 상을, 상을 떠나서 있는 게, 일체의 세계를 하나로 보는 게 아니고. 뭔가 상을 지어놓고 보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중생상이다 하는 것은 울타리를 딱 쳐놓고 거기 소나 개는 들어올 수 있는데. 돌멩이는 들어온다? 안 들어온다? 안 들어와. 이렇게 구분 짓는 거다.

 

오늘날 환경 파괴는 다 이런 중생의 무지로부터 생기는 거다. 인상에 사로잡힌 사람이 자기 마누라 두들겨 패고. 자기 부모 학대하고 한 게 지한테 이익인 것처럼, 어리석은 생각이 결국은 자기를 파괴하는 거와 같이. 아상에 사로잡힌 사람이 그러죠. 인상에 사로잡힌 사람이 자기 집안, 자기 가족, 자기 민족만 생각하고. 다른 민족, 다른 가족, 다른 지방 사람은 없는 게 나은 것처럼 생각해서 갖가지 갈등을 일으키는데. 요즘은 우리가 유럽연합 같은데 보세요. 저그 민족만 잘났다고 하다가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죠?

 

. 서로가 돕는다 해서 연합체를 구성하잖아요. 요즘 환경문제가 제기되면서 사람들이 이 자연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죠. 이렇게 의식의 폭이 넓어지는 거요. 그런데 수자상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이렇게 의식의 폭이 완전히 넓어졌다 하더라도. 존재, 돌멩이든, 물이든, 공기든 이런 건 존재합니까? 안 합니까? 존재하죠. 이 존재하는 것들만을 중심으로 해서 사고방식을 해요. 그 이 존재하는 이 모든 것들은 다 어떻게 됩니까? 성주괴공하고, 생로병사 하죠. 그러니까 이건 생기면 반드시 뭐하게 됩니까? 사라지게 되죠. 이 생기면 사라져야 되니까 사라지고 싶어요? 안 사라지고 싶어요? 안 사라지고 싶죠.

 

그러니까 목숨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또는 목숨이 있다 이 말은. 이거는 태어나면 반드시 죽어야 하고, 생겨나면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이게 무얼 중심으로 해서 관찰한 거냐? 존재를 중심으로 해서 관찰했다. 존재라는 게 뭐냐? 인식이 되는 걸 중심으로 한다. 육근을 통해서 인식되는 걸 중심으로 한다. 그래서 여기에서 유무를 나누죠. 있고 없음을 나누고. 우리가 있는 것이 왜 있느냐? 뭐가 사라졌다 버리면 없다 하고, 또 생겨나면 없는 데서.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이런 말 많이 쓰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다.

 

여러분들이 초를 태우면 없어진 것 같지마는 사실은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그대로 있어요. 그러니 이 세상에 참모습은 있고 없는 것을 떠나 있습니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야. 다만 우리에게 인식되면 있다.’ 이러고, 인식이 안 되면 없다.’ 이러죠. 그러니까 하나의 형상이 우리 눈에 인식됐다가, 우리의 육근 경계에서 인식됐다가. 또 인식이 안 됐다가. 인식됐다가 인식이 안 됐다가 하면 있다. 없다가 되고 생기고 사라진다. 이런 견해가 생긴단 말이오.

 

그걸 양쪽을 다 통틀어서 보면 그것은 있고 없는 것도 아니고, 생기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수자상이 딱 없어져 버리면 존재 비존재의 논쟁이 사라지니까. 여기는 생멸도 없는 세계고, 유무도 없는 세계다. 거기가 뭐다? 완전한 깨달음의 세계다. ~ 그러니까 우리가 범위를 적게 치든, 많이 치든 경계를 딱 치게 되면 뭐가 된다? 상이 지어지는 거다. 그러니까 그 상을 지은 것은 상을 짓게 되면 그것은 반드시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 존재는 그렇게 될 수가 없기 때문에.

 

자 여기서는 보살이 상을 짓게 되면 모양을 짓게 되면 곧 보살이 아니다. 이렇게 한마디로 얘기할 수 있습니다. 굳이 네 개로 나눌 필요가 없죠? 여기서는 어떤 상이던 이 말이에요. 그게 뭐 아상이든, 인상이든, 중생상이든, 수자상이든. 어떤 상이든 상을 갖게 되면 그것은 보살이 아니다 이런 얘기에요. 자 여기서 우리가 사상이라는 것이 뭐라는 것을 공부하다 보니까. 이것이 마치 중요한 과제 같지마는 정종분에서의 요지는 이 상을 설명하는 데 있는 게 아니에요. 아시겠어요?

 

~ 일체중생을 구제하겠다고 마음을 내고 그렇게 실천하는 게 첫째고. 그럴 때 내가 너를 구제한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이것은 해탈의 길에서 멀어지게 된다. 이럴 때 이미 내가 하면 이미 아상이 생기고. 너를 하면 벌써 인상이 생기고. 중생을 구제한다 하면 벌써 중생상이 생기는 거다. 이거요. 자 그러면 이 상이 없다 하는 것은. 이게 상을 딱~ 여의게 되면 일체가 다 뭐요? 나와 한몸이죠. 부인과 자식과 부모도 다 나와 분리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죠. 이것만 분리 안 되는 게 아니라 뭐도 분리 안 된다? 이 세상 사람 모든 사람도 분리가 안 되죠. 다 연관 맺어져 있다.

 

사람만 이래요? 역시 모든 식물과 동물도 다 연관되어 있죠. 그럼 이 생물만 그래요? 아니다. 우리가 소위 이름 짓는 무생물이라고 이름 짓는 것까지 다 연관이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가 괜히 선을 떡 그어서 이쪽 것은 생물, 저쪽 것은 무생물. 선을 떡 그어서 이쪽 건 사람, 저쪽 건 사람 아니고. 선을 떡 그어서 이건 나, 이건 내가 아니고. 이렇게 해서 상이 지어진 거지 존재 자체는 금을 그을 수가 없다. 편의상 우리가 그렇게 해서 이름 부를 수는 있지마는 상을 지을 수가 없는 거다.

 

그리고 존재 비존재다 이렇게 둘로 나누어져 있는 게 아니다 이거요. 이것은 오늘날 과학이 발달하면서 이것은 다 실제로 보여주고 있는 거다. 그러니 일체의 세계는 다만 그렇게 존재하고 있을 뿐이요. 존재 비존재를 떠나서 존재하고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데. 이건 말의 사용이죠. 그다음에 그런 것들은 다 그냥 그 모양으로 다 완전한 겁니다. 가을에 낙엽이 떨어지는 거는 떨어지는 데로 완전한 모습이고, 싹이 돋는 것은 싹이 돋는 대로 완전한 모습이에요. 새가 벌레를 쪼아먹는 것은 그것대로 완전한 모습에 속한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다 분별을 일으켜서 이거를 분리해서 하나하나 이 생명을 별개로 보니까 여기에 갖가지 갈등이 생기는 거요.

그러니 우리가 원효대사의 얘기에서 내가 중생 상을 지어서, 중생이라고 상을 지어놓고 또 중생을 구제한다 하는 상을 하게 되죠. 본래 중생이 아닌 줄을 알게 되면 구제할 것도 없게 되죠. 여러분들은 구제할 게 없다. 이러면 아무것도 안 하고 놀아야 되겠네요. 이렇게 생각해요. 그건 또 놀아야 된다는 상을 또 지으니까 그런 거요. 그러니 이것이 내 꺼다 하고, 저건 니 꺼다 하고 상을 지으니까 내 것에 집착하고 이러죠. 그런데 내 것도 아니고 니 것도 아니고 누구 것도 아니다 하고 상이 딱 떨어지면 그러면 다 줘버려야 됩니까? 주고 안 주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거야.

 

그러니까 필요에 의해서 그냥 쓰여질 뿐이다. 이 세계는 인연을 따라서 그렇게 움직이는 거에요. 자 그러면 한 가지 옛날 얘기를 한번 해 볼게요. 경전에 이런 얘기가 있어요. 옛날에 어떤 나라에 임금이 정치를 잘해서 백성들이 잘 살았어요. 그런데 임금의 딸로 태어난 공주는 아버지 덕에 잘 살았단 말이야. 옛날에 여자들은 사람취급을 못 받았다고 내가 맨날 얘기했죠? 옛날에는. 사람이 아니에요. 남편에 붙어서, 아버지에 붙어서, 또는 자식에게 붙어서 대우를 받는 거란 말이오. 여러분들 대통령 옷은 대우 받아요? 안 받아요? 받지. 대통령이 키우는 개는 대우 받아요? 안 받아요? 받지. 사람보다 대우 더 잘 받는단 말이오.

 

그런데 그 개 때문에 그런 게 아니고, 그 옷 때문에 차 때문에 그런 게 아니고, 그 대통령이라는 사람으로 인해서 그렇게 주어지는 거란 말이오. 그러니까 누구 덕이다? 대통령 덕이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잖아. 그죠? 그런 것처럼 이 공주는 자기가 뭐 잘나서가 아니라 아버지를 잘 둔 죄로. 아버지한테 붙어서, 그래서 세상 사람들로부터도 부러움을 사고 있단 말이오. 그래 아버지가 어느 날, 공주보고 얘야.” “.” “너는 어떤 이유로 이렇게 세상 사람들로부터 좋은 대우를 받고, 이렇게 잘 먹고, 잘 살고, 편안하게 사는 거 같으냐? 이게 누구 덕이냐?” 이렇게 물었어.

 

그러면 사람들이 다 말하기를 정답이 뭐요? 아바마마 덕입니다. 이래야 된단 말이오. 특히 임금이 물었는데. 아무리 부모자식 간이지만. 그런데 내 덕이오.” 이랬어. 그래 임금이 딸이지만 기분이 나빠? 좋아? 나쁘단 말이오. 또 물었어요. “역시 내 덕이오.” 이래. 또 물었어. 내 덕이오.” 이래. 임금이 화가 났어. 네 덕인이지 아닌지 한 번 깨쳐봐라. 잘라 버렸단 말이오. 부녀간의 선을 잘라버렸어. 잘라서 성 밖으로 내 쫓아서 지나가는 거지하고 부부인연을 맺게 했어. 거지한테 명해서 너 이 공주하고 살아라. 너 만약에 같이 안 살면 너는 그날로 죽여버린다. 그리고 부부로 턱 맺어줬어.

 

그래도 네 덕이냐 이 말이죠. 그래도 네 덕이냐? 그래 이제 거지하고 부부가 됐는데. 거지가 생각할 때는 그 당시의 윤리도덕으로는 공주 옷깃의 손만 닿아도 천민은 칼로 갖고 죽여버린단 말이오. 그래도 죄가 안 된단 말이오. 그런데 어떻게 공주를 아내로 맞이할 수가 있어요? 그건 불가능한 일이죠. 그래 공주한테 엎드려서 좀 제발 봐 달라고. 궁중으로 제발 돌아가라 이거야. 당신 때문에 내 죽게 생겼다 이거야. ~ 공주를 아내로 안 받아 들이면 왕명에 의해서 죽게 되고. 공주 몸에 손을 대게 되면 천민이 귀족에게 몸에 손을 뎄으니 이것은 윤리 도덕상으로 이거는 죽게 되는 거란 말이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단 말이오.

 

그런데 공주가 이건 아바마마의 명이니까. 난 이제 더 이상 공주가 아니다 이 거지. 아버지로부터 떨어져 나왔으니까. 임금이 옷을 쓰레기통에 버려버리면 임금 옷이에요? 아니에요? 아니란 말이오. 그냥 쓰레기지. 그래도 이 거지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거요 난 당신하고 가까이할 수 없고 부부가 될 수 없다. 이 거야. 아무리 같다고 얘기를 해도 이미 나는 아니라고 얘기를 해도 안 되는 거요. 그러면 너 결국은 나를 버리게 되면 왕명에 의해서 죽게 되는데 죽을래? 이러니까. 죽기는 싫단 말이오. 그래도. 그래서 타협점을 본 거요. 일단은 형식적으로는 뭐로 돼서 살자? 죽으니까. 부부가 돼서 살자. 이렇게 타협점을 봤어.

 

그래 공주가 이거지 아내가 됐어. 그래서 거지보고 네 고향이 어디냐? 당신 고향이 어디요? 하고 이 공주는 깍듯이 이 남편으로서 예우했는데. 자기 고향 모른다는 거요. 그래도 잘 생각해 보라고. 모른다는 거 그래도 생각해 보라고. 자꾸 얘기하니까. 아주 어릴 때 기억이 나서 어디 어디서 내가 살 은거 같다고. 그래서 그 거지의 고향을 찾아갔어요. 찾아가서 보니까 이 거지가 아마 23살 되는 모양인데, 20년 전에 그 동네 아주 부잣집 아들이었어. 그런데 그 집에 마치 수십 명의 강도 떼가 와서 사람을 다 죽이고, 집을 불 질러 버리고. 그렇게 해서 다 가족이 전멸해 버렸어.

 

그래서 마을 사람들한테 물어보니까 그 집터에는 잡초만 콱~ 우거져 있는 거요. 그런데 그 집 아들이 하나 안 죽고 그 난리 통에 살긴 살았는데. 이것도 누가 가서 키우는 것도 재산이 남았거나 먼 친척이 있거나 할 때 누가 데려다 키워서 나중에 보상이라도 받지. 완전히 전멸해 버렸는데 누가 갔다 키우겠어. 그래서 떠돌이 됐다는 얘기만 들은 거요. 동네 사람한테 확인해 보니. 그래서 알아봤더니 이 거지가 종자는 아주 좋은 종자에 쉽게 얘기하면 부잣집 아들이오. 신분도 높은 사람이오. 그래 공주가 폐가가 된데 가만히 가서 주위를 둘러봤어.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 온갖 것이 불이 타서 쓰러져 있고 쌓여 있는 속에 창고 자리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죠? 창고 자리가. 창고자리를 떡 찾아서 남편보고 여기 파보라고 그랬어. (01:13:11)

 

아무 연장도 없으니까 부인이 이웃 동네 가서 연장을 얻어다가 남편보고 파 보라. 거길 파니까 그 보물창고 자리를 찾아낸 거요. 그랬더니 그 안에 엄청난 보배가 들어있었던 거에요. 그래 그걸 가지고 팔아서, 이 그걸 찾아서, 누구 거요? 지금? 이게 공주 거요? 거지 거요? ? 이게 공주 거요? 거지 거요? 공주가 찾았으니 공주 거 아니오? 그런데 거지는 공주가 찾았으니 이 공주 거라고 생각하는 거요. 아이 당신이 찾았으니 당신이 알아서 하세요. 이래. 이건 당신 거라고. 나는 이건, 당신 부모가 남긴 거라고. 이렇게 해서 그걸 팔아서 집을 크게 대궐같이 짓고, 옷도 좋은 거 입고, 이렇게 딱 해서 사니. 이 거지가 뭐가 됐어요?

 

그냥 그대로 왕같이 돼서 산단 말이오. 그래 임금이 딸이 제가 잘못했습니다. 모든 게 다 아버지 덕입니다. 이렇게 하고 올 줄 알고 한 달을 기다고, 두 달을 기다리고, 1년을 기다리고. 2년을 기다리고. 속은 타고 궁금해 죽겠는데 안 오는 거요. . 그래서 사람을 시켜서 좀 찾아보라 그랬어. 하도 답답하니까. 찾아봤더니 대궐같이 지어 놓고 산다는 거요.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직접 가봤어. 가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궁전처럼 지어놓고 그렇게 두 부부가 살고 있는 거요. 그래서 이 왕이 그때야 자기가 잘못했다고. 네 복인 줄, 네 복인데 내 복인 줄 착각했구나. 그래 화해를 했는데.

 

이 얘기는 무엇에 대한 비유냐 이거야. 이 거지가 바로 중생에 대한 비유에요. 이 공주는 보살이란 말이오. 그러니까 이 거지가 뭔가 노력을 해서 부자가 되는 게 아니고. 거지는 비록 거지 행색을 하고 있어도 뭐다? 부자다. 이 말이오. ? 이미 자기가 물려받을 보물창고를 땅속에 묻어 있어도 부자다. 그러니 이 거지가 그 자기 꺼, 본래 자기 꺼라 이거야. 그 본래 자기 거를 찾아서 이렇게 부유하게 사는 건 뭐냐? 중생이 중생중생 하지마는 지금 중생 놀음을 하고 있지. 본래는 뭐다? 부처다 이거야. 그러니 이것은 보살이 이 중생을 부처로 만들어 준거냐? 다 지 모습을 그냥 찾아낸 거요? 자기 모습을 찾아냈다.

 

보살이 뭐 재산을 준 게 아니다 이거야. 보살은 다만 중생이 자기 모습을 잃고 헤맬 때 자기 본래 모습을 찾도록 도와주는 거니까. 다시 말하면 보살은 그 어떤 재물도 이 공주 재물이 아니다. 이런 비유로서 나와 있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여기서 지금 조금 여러분들이 이해를 못 할 거 같아서 지금 얘기로, 경전에 나와 있는 얘기를 하는 거요. 그러니 이 사람을 거지를 부자가 되도록 했다 이 말이에요. 그의 마음이 되고 그의 편이 돼서 그가 부자가 되도록 하니, 공주도 덩달아 부자가 됐어? 안됐어? 부자가 됐지. 그럼 이 부자를 만들어 준 게 공주가 한 거요? 자기, 그 거지, 남편의 자기 몫이요? 자기 몫이란 말이오. 그게 공주께 아니다. 이 말이오.

 

그와 같이 여러분들은 지금 한 생각 어리석은데 사로잡혀서 지금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지마는, 이게 마치 꿈 깨듯이 깨고 나면 여러분들이 다 그대로 부처다 이거야. 지금 부처는 부처인데 부처로서의 뭘 못하고 있다? 역할을, 작용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이 말이오. 상이라는 것을 얘기하면 여러분들은 지금 무슨 상? 나는 중생이다 하는 상에 사로잡혀 있어요. 그래서 거지보고 아무리 부처라고, 이 공주가 와서 자기하고 평등하다고 얘기해도 들어요? 안 들어요? 안 듣지. 자기는 거지다 하는 상에 사로잡혀. 그래서 부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보고 너희들이 다 그대로 부처다 해도 귀에 안 들어와. 거지로서 이웃집 다니면서 밥 한 끼 얻어먹는 거 그게 중요하지. 자기 본래 재산 찾으려는 생각은 없다. 이 말이야.

 

그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고 찾다가 굶어 죽으면 어떻게 하나? 지금 그 걱정만 하고 있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는 종노릇을 오래 하다 보면, 거지 노릇을 오래 하다 보면 자기가 본래 거지인 줄 알고. 거지로서의 일은 그저 밥 한 끼 얻어먹는 게 인생의 목표가 된다. 오늘 우리가 맨 여기서 지지고 볶고 의식주에 사로잡혀 사는 거는, 거지가 밥 한 끼 얻어먹는 거로 행복으로 삼고 사는 것과 같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며칠 밥 얻어먹으러 못 다니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서 그 자기 보물을 찾아내야 된다.

 

~ 상에 관계되는 얘기니까. 한 가지를 더 하게 되면요. 또 이런 얘기가 있어요. 옛날에 큰스님이 도를 이루시고 이렇게 많은 분들에게 법문을 하니, 모든 사람이 다 존경을 하고 따랐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구름 떼처럼 와서 묻고, 또 나중엔 큰스님이다. 이래서 형상에 집착해서 오는 사람도 많이 있죠. 이러니까 이건 도저히 번다 해서 못살겠어. 그래서 없어져 버렸어. 그래서 저기 낙동강 가에 가서 나룻배 젓는 사람이 있죠? 뱃사공이 돼서 나룻배를 젓고 있었어. 이쪽에서 절로 가자 하면 사람 건너 주고, 뱃삯이나 받아서 편안하게 먹고 살고, 손님 없으면 하루 종일 낮잠이나 자고. 갈대밭에서.

 

그런데 스승이 없어졌으니까 제자들이 스승을 찾아온 천하를 찾았는데 찾을 수가 없어. 왜냐하면, 어느 절에 있으면 어느 절이든지 찾아가서 찾겠는데. 머리를 기르고 변복을 하고는 뱃사공을 하고 있으니 찾을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없단 말이야. 그렇게 몇 년을 찾다가 그 제자 중의 한 명이 낙동강을 건너다가. 그 뱃사공이 어디서 본 사람 같단 말이야. 그 스승이란 생각은 들 리가 없죠. ? 스승은 그런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상상을 안 하니까. 어디서 본듯하다. 참 처음 보는 사람인데, 내 여기 처음 왔는데 웬일인가. 이렇게 해서 출발해서 끝날 때까지 본듯하다는 그 의심만 하고 갔단 말이오. 배에서 딱 내리면서 그때야 생각이 탁 든 거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딱 엎드려서 스승님 이게 웬일입니까? 그렇게 절을 하고 웬일이냐고 하면서 사람들이 기다리니까. 절로 돌아갑시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턱 보니까 이미 벌써 스승이 머리가 떡 길러 있단 말이오. 그래서 아이 스님은 머리는 왜 길렀습니까? 그러니까 스승님이 하는 말이 도가 머리털에 있느냐?” 이놈아. 이러는 거요. 이 뭐요? 상에 집착한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우리 스승은 이런 모습이다 하는 생각을 갖고 스승을 찾으니 스승이 찾아질 이가 없죠. 그리고 또 스승을 찾아도 그렇게 상을 갖고 논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어떤 게 고승이냐? 어떤 게 도사냐? 이런 게 다 상을 가지고 있단 말이오. 아시겠습니까?

 

그래서 뭘 먹는 걸 기준으로 삼든지. 자는 걸 기준으로 삼든지. 옷을 기준으로 삼든지. 이래서 무슨 기준을 떡 삼아서, 그 안에 들어오면 괜찮고. 그 밖에 나가면 이건 안됐다. 이거야. 그래 상을 갖고 있다 이 말이오. 이게 다 상이에요. 우리가 상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이런 글자 속에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남편이 하는 말 가만히 들어보면 스님 하는 하는 말 하고 똑같은 말 할 때가 있어요? 없어요? 있지. 말만 가만히 듣고 자기에 견주어서 보면 거기 부처님 같은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도, 남편 하는 말은 무슨 말을 해도 돼도 안 했다 이렇게 생각하고. 스님 하는 말은 어떤 말을 해도 다 맞는 거 같고. 이래도 안 된다. 이 말이오.

 

상을 버려야 우리가 공부가 진척된다.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서 스님 법문도 귀에 안 들어오는 사람도 상이고, 자기 생각 버렸다 하면서도 또 스님이라는 또 법문이라는 상을 하나 지어서 그것만 옳고, 딴 건 다 틀렸다. 이렇게 상을 지어도 안 된다 이거야. 그 여러분들 중에는 불법을 모르고 늘 무당집에나 다니고, 예를 든다면, 복이나 빌러 다니고 이렇게 헤매다가 말이오. 다 이렇게 스님 법문 듣고 이게 불법이구나 하고 여러분들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단 말이오. 그런데 이렇게 턱! 깨달았는데 깨달았다 하는 상에 빠져. 이게 정법이구나 하고 또 상에 딱 빠지면 어떠냐?

 

그러면 우리 시어머니 그 무당 같은 절에 다니는데 그건 불법이 아니다. 내 친구 교회 다니는데 그건 어리석은 자다. 이렇게 상을 지어서 이번에는 또 정법이라는 이름으로 또 시어머니하고 다투게 되고, 친구하고 또 다투게 된다. 이 말이야. 아시겠습니까? 그럼 이게 상을 여읜 게 아니다. 상을 여읜 사람이라면 전에는 그런 미신이니 샤머니즘이니 해서 그걸 이해를 못 해 왜 저런 쓸데없는 짓을 하나 했는데. 상을 딱 여읜 사람은 그게 옳다 그르다를 넘어서서 그 사람이 그렇게 하는 심정을 이해하게 되고. 그것이 때론 문화적일 때는 좋다 나쁘다 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런 데서 우리가 이해의 폭을 넓혀야 된다 이거야.

 

아직도 싸워서 이기고 지는 걸로 보면 안 된다. 이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자기 생각이 옳다고 고집해서 싸우다가 힘에 밀리고. 그러니까 시어머니한테는 나이로 밀리고, 남편한테는 여자라고 밀리고, 이래서 힘을 발휘를 못하고 불만을 갖고 있다 절에 와서 스님 법문을 딱 들어보니 자기 생각하고 부처님 생각하고 똑같단 말이오. 그러니까 이제는 남편한테 뭐로? 내 생각이라고 안 그러고 부처님 생각이라고. 이걸 간판을 갖고 또 다투게 된단 말이오. 이런 경우가 많아요. 사실은. 뭔가를 끌어 온단 말이오. 그냥 있는 그대로 아~ 이거는 현실 속에서 이러이러한 것은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토론을 안 하고. 꼭 이.. 이길라고.

 

그런데 자기는 힘이 없으니까. 옛날 얘기, 법조문을 대던지, 윤리 도덕을 끌어들이든지, 스님 법문을 끌어들이든지, 부처님 경전을 갖고 오던지. 이런 걸 근거로 삼아서 자기가 옳다는 주장을 하려고 한단 말이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일찍이 말했잖아요? 진리라는 것은 과거로부터 전승되어 내려오는 윤리나 도덕이나 관습이나 습관이나 경전이나 문헌으로 검증할 수가 없다. 그런 걸 다 내려놓고 봐야 됩니다. ~ 상이라는 것은 이렇게 우리가 상을 여읜다 하면서 또 다른 사람이 뭔가 고집하면 뭔가 또 주장하게 되면 야~ 너 상에 집착했다. 상 내려놔라 했는데 왜 상에 집착하오? 이래서 또 상을 없애야 된다는 상에 또 빠져서. 이렇게 해서 다투는 사람이 또 있다.

 

그러니까 상을 여의었다 하는 것은 어떤 상도 여의어야 된다 이 말이오. 어떤 상도 여의어야 된다. 어떤 상도 여읜다. 이 말은 모든 것들을 다 있는 그대로 본다. 다른 종교도 있는 그대로 봐요. 여러분은 늘 옳다 그르다 시비를 삼기 때문에 이게 오르느냐 저게 오르느냐? 이런 관점에 보기 때문에 끌려가거나, 안 그러면 경계를 지어서 폐쇄되거나 이렇단 말이오. 화단에 꽃들이 자기 꽃 예쁘게 피고도 옆에 꽃 핀 것도 봐 줄 수가 있죠. 그런데 우리는 늘 이기고 지는 관점에서만 본단 말이오. 그러니까 뭘 알아야 되고. 안 먹어야 되고, 나쁘고 자꾸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요. 그렇게 되므로 해서 내가 괴롭고 남도 괴로운 거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공부를 오늘부터 했으면 아시겠어요? 오늘부터 상을 딱 내려놓으란 말이에요. 상을 짓지 않으면 이 상이라는 것은 자기가 일으킨 한 생각으로 지은 거고, 거기에 집착을 하는 거란 말이오. 이걸 딱 내려놓게 되면 이젠 그냥 볼 수가 있어요. 남편이 화를 내면 왜 여보 화를 내느냐? 부처님 경전에 말하기를 화를 내지 말라고 그랬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단 말이오. 화를 내면 아~ 저 사람이 지금 뭔가 자기 뜻대로 안 돼서 저러나 라든지. 내가 뭘 잘못해서 저러나? 라든지. 내가 뭘 잘못했다 이 말은 나로 인해서 오해가 생겼느냐 이런 말이지. 내가 뭐 죄를 지었다. 이런 뜻이 아니에요.

 

이렇게 해서 상대를 이해하라 이 말이야. 상대를 이해면 화내는 사람을 보고도, 욕심내는 사람을 보고도 상대를 이해하면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된다. 그러니까 기독교인이 와서 막 열심히 전교를 하면 여러분들도 어디 가서 북한 돕기를 하든지, 뭘 하든지, 열심히 전교하거나 팸플릿을 나눠주는데 안 받아주고 쉭~ 가버리는 사람 좀 민망할 때가 많죠? 그러니까 그런 사람 생각해서 어때요? 아이고 저것도 밥 먹고 뭘 좋은 일 한번 해 보느라 열심히 왔는데 시간이 없으면 어떻게 한다? 사양하면 되고. 시간이 없는데도 할 수 없이 붙어 있는 것도 괴로움이죠. 그렇게 할 거까지는 없죠.

 

시간이 없으면 뭐라 한다? 없다고 얘기를 하고. 아이고 고맙습니다만 시간이 제가 없으니까 이렇게 얘기하면 되고. 시간이 또 있고 할 일이 없으면 뭐한다? 들어주면 되잖아 그죠? 들어주면 그 사람한테도 좋고. 나도 또 혹시나 하나 새로운 걸 배울 수 있을지. 얘기하다 보면 옳으니 그르니 논쟁할 필요가 없고. 그냥 가만히 들어만 줘도 그 사람은 또 그 사람대로 한 사람 전교했나 보다 해서 기뻐한단 말이오. 남 기쁜 거를 굳이 배 아파할 필요가 없단 말이오. 그럴 때 누가 더 크게 사람이 더 오래가느냐? 그렇게 여유가 있는 사람이 오래가게 된다. 그래 말을 많이 하다 보면 허점이 생겨요? 안 생겨요? 생기지.

 

꼭 집어서 애 먹이려고 얘기하지 말고. 그냥 내가 봐서 허점이 좀 보이면 질문 하는 척 하고 얘기도 해 주고. 또 그게 내가 보기에 더 낫다 싶으면 다녀도 되지. 교회 다니면 안 될 이유가 있어요? 없어요? 없잖아. 좋아 보이면 다녀 보면 되죠. 일체가 유심소조라. 다 마음이 짓는 바인데. 그것도 다 마음에서 생긴 거요. 안 생긴 거요? 다 생긴 거요. 그래서 우리가 같이 어떻게 하면 이 깨달음의 길로 나갈 거냐? 불교의 형식이 필요하면 형식을 지키고, 문화가 필요하면 문화를 지키고, 문화가 장애가 되면 문화도 버리고, 형식이 장애가 되면 형식도 버리고 우리는 오직 그 밝은 깨달음의 지혜로 나가야 된단 말이오.

 

내 말씀드렸지마는 일체중생 안에 기독교인도 포함이 돼요? 안 돼요? 포함되지. 굿하는 무당도 포함이 돼요? 안 돼요? 된단 말이오. 살인하고 감옥에 있는 사람도 포함이 돼요? 안 돼요? 포함이 된단 말이오. 북한 사람도 포함이 돼요 안 돼요? 되요. 일본 사람도 포함이 돼요? 안 돼요? 된단 말이오. 그러니까 일단 사고를 크게 가지셔야 되요. 그런 입장에서 우리가 또 인연을 따라서 이루어진다 했으니까 그 인연 그 인연에서는 순간순간 옳고 그른 게 생겨요? 안 생겨요? 생기지. 그러나 그것이 영원하게 옳은 것도 아니고, 그 상황에 따라 생기는 거란 말이오. 밥은 몇 그릇 먹어야 되느냐? 정할 수가 없단 말이야.

 

그러나 그 인연에서는 한 그릇 지 양껏 먹어야 될 때도 있고, 그런 양이 있지마는 형편이 반 그릇밖에 못 먹을 때도 있고. 그 반 그릇마저도 남 줘야 될 때도 있고. 살다 보면 그렇단 말이오. 그 인연 인연을 따라서 우리가 일어나는 거란 말이오. 일본 사람을 비판해야 될 때도 있고. 또 그 사람 의견을 수용해 줘야 될 때도 있고. 함께 가야 할 일도 있고 이래. 우리가 이 과거에 대해서 너무 집착을 하면 남편이 옛날에 네가 나한테 했는데 어했는데 이래 너무 생각하면 현재와 미래를 다치는 것처럼. 그리고 또 과거에 뭐를 너무 잊어버리고 아무것도 없이 하면 또 미래에 대해서 여러 가지 실수를 행하게 되죠.

 

그러니까 한일관계도 옛날에 과거의 역사는 역사대로 알되. 상처는 치유해야 된다. 상처를 가지고 대응하면 친구가 될 수가 없어. 기독교인들이 하는 여러 가지 태도를 우리가 알아야 되요? 몰라야 되요? 알아야 되. 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하는지 잘 알아야 되. 그러나 그 사람들도 과거에 그랬다 하더라도 앞으로 변할 수가 있어요? 없어요? 있어. 그러니까 늘 열린 마음으로 지켜보고 함께 가야 되. 그 사람들이 자기 한계를 못 벗어나는 걸 보고 불쌍한 마음을 내서 도와줘야지. 그걸 갖고 서로 시비를 하게 되면 어떠냐? 결국은 남편이 이러니까 나도 안 싸울 수가 없다.

 

이렇게 가면 결국은 나중에 보면 남편을 닮아 가게 되고. 우리도 자꾸 시비하는 기독교인들 자꾸 이렇게 하나하나 대응하다 보면 우리도 모르게 나중에 닮아가서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을 하게 된다 이거야. 북한이 어떻게 하든 우리가 좀 더 넓은 입장에서 대응하면 되는데. 그 하나하나 다 하다 보면 우리도 모르게 같은 방식으로 닮아 가게 된다. 이 말이오. 그걸 우리가 잘 살펴야 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수행하는 이 개인의 삶이 수행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우리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그리고 우리 민족의 문제, 인류의 문제, 닥친 문제. 다 그대로 적용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