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 바로 믿기가 희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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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금강경

2013. 1. 24.

출처: 정토회

 

안녕하세요. 40페이지 펴 주세요. . 오늘은 금강경 6번째 강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6 正信希有分 정신이라는 것은 바른 믿음을 말합니다. 바르게 믿기란 정말 희유한 일이다. 드문 일이다. 이런 얘기요. 바르게 믿는다는 것. 바로 믿기가 참으로 희유하다. 바로 믿는 것은 참으로 거룩한 일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어떻게 하면 이 모든 괴로움에서 완전하게 벗어날 수 있습니까? 이렇게 물었더니 부처님께서 다른 사람의 괴로움을 다 네가 구해주어라. 이래요. 그래서 모든 중생의 괴로움을 네가 다 구해줬다 하더라도 실로는 한 중생도 구제를 받은 바가 없다 이거요. , 네가 일체중생을 다 구제하겠다고 마음을 내어 구제활동을 하더라도 내가 중생을 구제한다. 이런 생각을 하지 마라.

 

이 수보리가 마음속에서 의심이 든 거요. 내가 중생을 구제할 바가 없다면 구제한 바가 없다면 보살은 어떻게 복을 짓는가? 그래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너는 유위의 행으로 짓는 유루복만 복인 줄 아는 거구나. 함이 없는 무위의 행에 의해서 지어지는 무루의 복이 한량없음을 알지 못하는가? 이거요. 그래서 무주상보시의 공덕이 한량없음을 말한다. 그때 수보리는 또 의심이 듭니다. 보살이 복을 받지 아니한다면 그러면 저 부처님의 거룩하신 3280종 호 저 거룩한 몸매는 도대체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가?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 3280종호를 가진 이 몸의 모양이 부처냐? 그래 수보리가 크게 깨닫고 아니 옵니다.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코에 냄새 맛보는 것, 혀로 맛보는 것, 손으로 만져지는 것, 생각으로 알음알이를 할 수 있는 것, 그것으로는 여래를 볼 수가 없다. 바로 모든 모양 지어진 것 속에는 실체가 없다는 것, 제법이 다 공하다는 것. 모든 것이 다 꿈같고 아지랑이 같고 환상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된다. 수보리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눈이 확 트였다. 이제까지 내가 깨달았다. 알았다 하는 것은 참으로 꿈속에서 깨달은 거고, 오늘에 이르러야 정말 꿈에서 깨인 것 같은 그런 소식이구나. 그런데 또한 걱정됐어요.

 

나는 20년 동안이나 거룩하신 부처님 모시고 수행정진을 해서 오늘 이렇게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었지마는. 저 미래에 업장이 두텁고 부처님도 아니 계시는 그런 세상에서 이런 말씀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있겠느냐? 이거야. 그랬더니 부처님께서 거기에 대해서 대답을 하신다. 정말 이런 가르침, 일체 모양 지어진 것이 다 허망하다. 그 허망한 줄을 알게 되면 바로 일체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실체가 없고 영원한 것이 없고. 그러기 때문에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할 바가 없고 의지할 바가 없다. 집착할 바가 없고 의지할 바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되고 이 우주의 주인이 된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생각해 왔던 일반적인 삶의 길과는 너무나 다르다. 그러니 누가 이런 말씀을 듣고 쉽게 믿는 마음을 낼 수가 있느냐? 이런 걱정을 수보리가 하게 되는 거요.

 

須菩提白佛言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을 여쭈되. 수보리가 부처님께 질문한다. 이거요. 말씀을 드리는데.

世尊頗有衆生 세존이시여, 어떤 중생이 있어서

得聞如是言說章句 이와 같은 언설, 말씀과. 장구, 문장과 글귀를 듣고

生實信不 실다운 믿음, 진실한 믿음을 낼 수 있겠습니까? 낼 수가 있다는 거요? 낼 수가 없다는 거요? 낼 수가 없다. 이 말이죠?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이렇게 묻지마는 자기 생각에는 도저히 이게 정말 믿는 마음을 내기가 어렵다. 이렇게 해서 질문을 한 거요.

 

佛告須菩提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하되

莫作是說 그런 말 하지 마라. 그따위 말하지 마라.

如來滅後後五百歲 여래가 열반에 든 후. 여래 멸후에요. 여래가 열반에 든 후, 오백세, 후 오백세가 지난 뒤에. 오백 년이 지난 후에.

有持戒修福者 계를 지니고 복을 닦는 자가 있으면.

於此章句能生信心 이 문장과 글귀에 능생신심. 능히 믿는 마음을 내어

以此爲實 이것으로 실다움으로 삼으리라 이 말이오.

 

수보리는 지금 부처님이 계시고 또 이렇게 신심이 돈독한 많은 제자들이 있는데. 이 상태에도 부처님의 말씀을 바로 듣고, 바로 깨닫지 못하고. 달을 가리키면 손가락을 쳐다보고 이렇게 몇십 년을 헤맸는데. 하물며 저 미래세에 부처님도 아니 계시는 그런 오탁악세 업장이 두텁디두터운 그런 중생들이 어떻게 이런 말씀을 듣고, 이런 글귀를 만나서 그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깨닫고, 그것을 믿을 수가 있느냐? 그건 사실은 불가능한 거 아닙니까? 아무리 부처님 말씀이 좋다 하더라도 이 중생이 받아들여 믿기가 불가능 한 일 아니냐? 이거야? 너무 엄청난 소식이다. 이거요. 이렇게 걱정 어린 생각으로 부처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부처님께서는 간단하게 말하는 거요.

 

수보리야 그런 생각하지 마라. 그런 말 하지 마라. 여래가 열반에 드신 후, 저 오백 년 뒤에 태어난 중생이라도 여기서 후오백세. 저 오백 년 뒤에 태어난 중생이라도 이 말은 최악의 경우, 오탁악세, 가장 나쁜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라도 이런 얘기에요. 그런 사회에서도 계를 지니고 복을 닦는 자가 있다면 즉 바르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자가 있다면 이 말이에요. 이 문장과 글귀를 만나게 되면. 곧 믿는 마음을 내어서 그것으로 실다움으로 삼는다. 그것으로 자신의 양식으로 삼아서 깨달음에 이를 것이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수보리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고 세월이 저 뒤로 가면 정법이 흐려지고, 사법이 판을 치고, 중생은 업장이 두터워지고. 그래서 이 좋은 말씀도 그 어리석은 중생한테는 아무 도움이 안 되지 않겠느냐? 그러나 부처님의 생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지금이나 나중이나 시간에 구애가 없고, 업장이 두텁다 얕다 하지마는 거기도 구애받음이 없고, 진실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나 다 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게 되면은 금방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다. ~ 그렇지. 그렇구나! 하고 금방 받아들여서 자신의 양식으로 삼는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통상적인 세월이 흘러가면 말세라느니, 중생의 업장이 두텁다느니 하는 이런 것들을 인정해요? 안 해요? 안한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보통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고 세월이 자꾸자꾸 자꾸자꾸 흘러가면 이 불법이 점점점점점점 쇠퇴해진다.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불법이 점점점점 쇠퇴해져서 바른 법이 이 세상에서 발붙일 때가 없는 그런 세계를 뭐라 하냐? 오탁악세라고 한단 말이오. 온갖 것이 다 탁해지고 이래서 마치 흙탕물이 흘러가듯이 그렇게 된다 이거요. 그것을 다섯 가지로 분류합니다. 다섯 가지로. 이 제일 첫 번째가 뭐냐? 부처님이 살고 계시던 당시 세계. 또 부처님이 살았던 당시와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고 오백 년 까지는 부처님의 바른 법이 늘 유지가 된다는 거요. 이 시대를 해탈견고시대다. 해탈의 시대다 이렇게 말해요.

 

이 시대에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 부처님 당시에는 애기가 죽었다고 우는 아줌마도, 똥 푸는 니다이도, 바보 주리반특도, 살인자 앙굴리말라도, 창녀 연화생녀도 부처님 말씀 듣고 깨달았어요? 못 깨달았어요? 깨달았죠. 그런 것처럼 부처님의 말씀을 들으면 거의대다수가 깨달아. 말씀을 딱 들으면 바로 자기모순을 이 꿈 깨듯이 탁 깨버린다. 이 말이오. 이런 시기를 뭐라 그러냐? 해탈견고의 시대라 그래. 부처님 당시로부터 오백 년까지는 그런 시기다 이거요.

 

두 번째는 이 해탈견고의 시대가 지나면 부처님이 열반에 들고 오백 년부터 천 년 사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탁 바로 깨치지는 못하지마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 가르침대로 실천은 한다 이거요. 즉 명상하고 관법을 익히고 참선을 하고 이렇게 직접 정진을 한다. 이 말이오. 즉 선정을 닦는다. 이 말이오. 그렇게 직접 수행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마는 깨닫는 사람은 드물다. 이 말이오. 이 시기를 선정견고의 시대. 선정의 시대라 그래요, 그 가르침대로 수행하는 사람은 많다. 이제 법문을 들으면 다 아이고 나도 그래 봐야 되겠다. 이래 다 수행을 한다. 이 말이오. 그런데 깨닫는 사람은 드물다.

 

다시 오백 년이 지나면 불멸 후 천 년부터 천오백 년 사이가 되면,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데 참 재미있다. ~ 부처님 말씀을 들으면서 법문을 들으면서 야~ 참 좋다. ~ 참 좋다. ~ 하면서 이렇게 듣기를 아주 좋아한다. 이거야. 즉 경전을 읽기를 좋아하고 법문 듣기를 좋아하는데 수행은 하려고 안 해. 수행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어. 법문 듣기는 아주 좋아하는데. 그것을 실천해 옮기는 것은 잘 안 하려 그래. 그러니 깨닫기는 더더욱 어렵겠죠.

 

그다음에 또 오백 년이 지나서 천오백 년에서 이천 년 사이가 되면 어떻게 되느냐? ~ 부처님이 거룩하다고 부처님계시는 절 짓자 하면 돈을 내서 절을 크게 짓고. 불상 조성하자면 크게 조성하고, 탑 세우자고 하면 돈 내서 탑 세우고. 이렇게 불사를 하기를 좋아하는데. 법문만 하면 앉아서 꾸뻑꾸뻑 졸아. 법문은 듣기 싫어. 그러니 부처님 가르침대로 수행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고, 그러니 깨닫는 사람은 아예 나오기가 어렵다 이거야.

 

다시 오백 년이 지나면 어떻게 되느냐? 싸우기를 좋아해. 절을 짓기는커녕 있는 절을 놔 놓고 서로 뺏으려고 싸우고. 공부하라고 경전을 주면 이 경전이 옳다. 저 경전이 옳다. 이게 최고다. 저게 최고다. 그걸로 갖고 싸우고. 수행하라. 그러면 이 수행법이 옳다. 저 수행법이 옳다. 그걸 가지고 또 싸우고. 이게 진짜 깨달음이다. 아니야. 그건 못 깨달은 거다. 이게 진짜 깨달음이다. 깨달음 가지고도 싸우고. 뭐든지 소재만 되면 뭐가 된다? 투쟁의 대상이 돼. 그러니까 해탈이 그거 진짜냐? 이게 진짜다. 저게 진짜다. 해탈의 내용 가지고도 다투고. 선정 방법 가지고도 다투고. 절 갖고도 싸우고. 그러니까 뭐든지. 다툼이 된다 이거야. 이것이 투쟁 견고시대다. (20:19)

 

오늘은 어디쯤 될 거 같아요? 해탈 견고시대 같죠? 아니오? 어디 시대? 투쟁견고시대 같아? ~ 이렇게 해서 처음에 뭐라 그랬어요? 법문을 탁 들으면 깨닫는 해탈견고의 시대. 법문을 딱 들으면 금방 따라서 수행은 하지마는 그러나 해탈은 잘 안 돼. 선정견고의대. 그다음에 법문을 듣기를 즐겨하는데 실천은 안 할라 그래. 그것이 다문견고의 시대. 부처님을 그리워하고 좋아해서 탑 세우고 절 짓고 불사하기는 좋아하는데 법문 시간에는 졸고 경전도 안 읽고. 그러니까 실천은 더더욱 안 하겠죠? 이런 시대를 뭐라고? 탑사견고의 시대. 그다음에 마지막 시대는 뭐든지 싸우는 시대에요. 절 짓는 것도 아니고, 지어놓은 절도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고. 경전도 서로 옳다고 이게 옳다. 저게 옳다 다투고. 선정 방법 가지고도 다투고. 해탈의 내용 가지고도 다투고. 여기는 뭘 줘도 다툼의 대상이 된다. 패를 가르고 다투게 된다.

 

~ 이렇게 해서 불법이 어떻게 된다점점점점점점 쇠퇴해 진다. 그래서 말법시대에 가면 부처님의 가사를 걸치고 머리를 깎고 부처님의 제자를 흉내 낸 갖가지 마구니들이 절 집안에 우글우글해서. 결국은 사자가 자기 몸속에서 나온 벌레에 의해서 쓰러지듯이. 결국은 이렇게 해서 불법이 멸해간다. 이런 얘기가 있단 말이오. 누가 바깥에서 망하게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불법이 자체로 훼손돼 버린다. 이거요,

 

그런데 부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뭐냐? 바로 후 오백세. 이 오백이 다섯 번 있죠? 맨 마지막 시대. 다시 말하면 최악의 시대. 오탁악세. 이 투쟁견고의 시대에 태어난 중생이라고 하더라도 바르게 살려고 하는 계를 지니고 복을 닦는 자가 있다면 이 말씀을 들으면 바로 믿는 마음을 내서 옳거니하고 자신의 양식으로 삼아 버린다 이거야. 그러니 무슨 선법시대니 말법시대니 나눌 필요가 있다는 거요? 없다는 거요? 없다는 거요. 제법이 공한데 무슨 선법 말법이 있어요?

 

여기서 후오백세를 해석을 할 때 이렇게 보편적으로 해석하면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이천 년 후, 이렇게 되겠죠? 이렇게 싸우는 시대. 이렇게 되고. 또 이 후오백세를 그냥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오백 년. 이렇게 해석을 해도 된다. 이거야.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다섯 오백년 중에 마지막 오백 년이냐? 그냥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오백 년이냐? 이 후 오백 세를 어떻게 해석할 거냐는 것은 차이가 있다. 이거야. ? 대승 불교가 언제 일어났어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고 오백 년 후에 일어났죠?

 

그러니까 자신들이 살던 시대를 대승불교인들은 무슨 시대라고 봤다? 말법 시대라고 본 거요. 제 말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어요?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이 이미 어긋나서 정법이 소멸됐다. 이 말이오. 그리고 각 부파들이 서로 싸웠어요? 안 싸웠어요? 싸웠단 말이오. 바로 이런 시대라 하더라도. 스님이 아니라 하더라도. 누구나 바르게 살려는 사람이 있으면 여기 비구가 이런 말이 없잖아. 그죠? 제가 신자든 누구든 상관이 있어요? 없어요? 없어. 바르게 살려고 하는 법을 구하는 자가 있다면 누구나 다 깨달을 수 있다. 이러게 썼기 때문에. 우리가 이 역사적인 유추를 해 보면 오히려 불멸 후 글자 고대로 오백 년 이렇게 해석하는 게 좋을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불멸 후 오백 년이냐? 불멸 후 이천 오백 년이냐 하는 것은 여기서는 중요한 게 아니고. 이후 오백 년이 뜻하는 내용이 뭐에요? 바로 말법 시대다. 부처님이 바른 법이 훼손돼서 그 내용이 왜곡돼서. 많은 불교를 믿는 신자들이나 스님들마저도 법의 바른 가르침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세속적인 가치, 삿된 사상에 물들어서 바른 법을 외면하는 그런 시대. 이런 의미에요. 아시겠어요? 이게 연대적으로 몇 년이냐? 몇 년이냐? 이거보다는.

 

그럼 왜 이것을 오백 년 단위로 끊어가지고 이천오백 년이라고 말했을까? 그건 어떤 시대의 사람들은 다 사람들이라도 다 자기가 살던 시대가 무슨 시대 같애요? 말법 시대 같죠? 그죠? 그러니까 해석을 할 때 우리가 고려시대에 불교가 얼마나 타락했습니까? 그죠? 그 시대 사람들은 불멸 후 자기들이 태어난 시대가 한 이천 년 되잖아 그죠? 그러니까 그때가 말법시대란 말이오. 그러니 이것을 우리가 여기서 핵심은 오백 년이냐? 이천오백 년이냐? 또는 천 년씩 나눠가지고 오천 년이냐?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부처님의 바른 법이 무너진 시대 이런 개념이란 말이오.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이제 이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이 그 훼손돼 가는 가정은 그래요. 처음에는 바르게 듣고 그렇게 설법을 듣고 바로 이치를 깨닫고 하던 시대에서. 조금 더 지나면 좀 형식화되면 이제는 선정을 닦는다고 여러 가지 애는 쓰는데 마음의 눈이 열리지 않다가. 또 시간이 더 지나가면 그저 공부만 하지 실천을 하지 않는 시대. 그래 깨닫기는 더더욱 어렵죠. 더 나아가면 온갖 문화 사업만 하지 그 내용을 알려고 하지 않는. 더 나아가면 그런 불사도 안 하고. 있는 절도 팔아먹고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고 두르려 부스고 이런 시대로 가게 된다. 이것은 법이 훼손 돼가는 하나의 과정이죠.

 

이렇게 된 시대에 법이 망하느냐? 아니다. 이 말이오. 여기에 다시 또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불교가 어떻게 된다고? 또 새롭게 일어난다. 이 말이오. 그러니 여기서 이런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핵심은 뭐에요? 유지계수복자. 이게 핵심이죠. 계를 지니고 복을 닦는 자가 있으면. 계를 지니고 복을 닦는 자가 있으면. 그럼 여러분들이 지금 계를 지니고 복을 닦는 자가 있느냐? 이 말이오. 계를 지니고 복을 닦는다. 여기서는 유지계수복자. 즉 계를 지니고 수복. 복을 닦는다 이런데.

 

다른 말로 하면 뭐가 될까요? 지악수선. 악을 멈추고 선을 닦는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단 말이오. 止惡修善지악수선이다. 그러니까 오탁악세가 되면 인간이 위대한 성인이 되기는커녕, 위대한 수행자가 되기는커녕, 보통 수준의 사람도 안 됩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죠. 오늘날은 스님들마저도 수행승으로서의 도력이 높은 스님이 되기는커녕, 보통 사람이 갖는 윤리도덕의식도 없다. 그러니 뭐가 되겠느냐? 이렇게 한탄하는 사람이 있죠. 그러니까 오늘 날 이 시대에 사는 사람은 수행자라고 이름 붙인. 또는 성직자라고 이름 붙인 종교인마저도 옛날 선량한 서민들보다도 더 사고방식이나 행동거지가 더 허물어져 있다 이거야. 그러니 일반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말이야.

 

그러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정직해야 됩니다. 정직하다는 거는 뭐냐 그러면. 인연의 법칙을 알고 인연의 법칙을 믿고 거기 따라야 되는 사람들이다. 복을 지어야 복을 받고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고,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그렇게 삽니까? 아니죠? 지은 거는 없이 받기만 하려 그러죠? 자기는 남 욕하고 칭찬 들으려 그러죠? 이게 어리석은 범부다. 이런 범부들이 사는 세계를 뭐라 그러냐? 허황된 생각을 갖고 산다. 이게 어리석은 범부다. 이런 어리석은 범부들이 사는 세계가 뭐냐? 오탁악세다. 말법 시대다. 이 말이오. 인과를 안 믿어. 허황된 생각을 가지고 산다.

 

이런 시대에 그 허황된 생각을 버리고. 바로 남에게 손해가 될 만한 일은 하지 않고, 남에게 이익이 될 만한 일은 부지런히 찾아서 한다. 이 말이오. 남에게 손해가 되고, 남을 괴롭히고, 남을 가슴 아프게 할 만한 일은 하지 않아. 이게 뭐냐? 지악, 악을 멈춘다. 이 말이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뭐 저 길거리 가는 남은 고사하고. 가장 가까이 있는 자기 남편이나 자기 아내, 자기 자식이나 자기 부모한테도 한마디도 안 지죠? 져요? 안 져요? 안 져. 그 아픈 소리를 해서 보복을 하죠. 딱 그 자리에서 못 받아 주면 밤에 잠이 안 온단 말이오. 그죠?

 

그런데 그런 악행을 멈춘다. 그를 가슴 아프게 하는 행위. 그를 어리석게 하는 행위. 그를 고통스럽게 하는 행위. 그를 슬프게 하는 행위. 그를 손해 끼치는 행위. 그런 것들은 하지 않는다. 내 남편에게도, 내 아내에게도, 내 자식에게도, 나아가서는 이웃이게도, 나아가서는 다른 지역 사람에게도, 더 나아가서는 다른 나라 사람에게도. 이렇게 남에게 고통을 주는 행을 하지 않는다. 남에게 고통을 주는 행을 우리가 악이라 그래. 지악. 악을 멈춘다. 이 말이오. 이게 뭐다? 계율을 지킨다. 이런 얘기요.

 

~ 생명 가진 자는 다 살고자 하죠? 죽이려면 괴로워요? 안 괴로워요? 괴롭죠. 그러니까 살생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다 자기 재물을 잃어버리거나 도둑맞기 싫어하죠? 그것을 잃어버리거나 도둑맞으면 괴로워하죠? 그러니까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는다. 또 부녀자들은 자기가 원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부터 강제로 성폭행을 당하려고 하지 않죠? 그러니 바로 삿된 음행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다 남에게 속고 싶어요? 속기 싫어요? 속고 싶지 않죠? 그러니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맑은 정신을 갖고 살고 싶어요? 흐리멍텅하게 살고 싶어요? 맑은 정신을 가지고 살고 싶죠? 그러니까 술 먹지 않는다. 이게 계를 지니는 거란 말이오.

 

세상이 다 살생하고, 도둑질하고, 사음하고, 거짓말하고, 술 먹고. 이게 세상의 보편적인 생활이 되는 게 오탁악세란 말이오. 요즘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죠. ~ 내 살라 하면 안 죽이고 어떻게 사노? 너무 당연하단 말이오. 밟고 올라가야지 그럼 어떻게 하노? 안 그러면 내가 밟히는데. 요즘 도둑질 안 하고 어떻게 살아요? 공무원이고, 정치인이고, 기업이고. 뭐 십 원짜리 백 원에 팔고, 백 원짜리 만 원에 팔고 해야 장사를 잘하는 거죠? 도둑질 안 하고 어떻게 사느냐 이거야. 요새 자기 남편이나 자기 아내 빼놓고 애인 한두 명 안 데리고 있는 게 병신이라 그러잖아. 여기 병신 많아요?

 

그럴 만큼 결혼하기 전에, 연애하는 거 보통이고. 그거? 뭐 그거 못하는 게 바보 아니냐? 이럴 정도로 이 계율도 어긋났단 말이오. 거짓말? 거짓말 안 하고 어떻게 살아요. 입 뻥끗하면 다 거짓말이죠? 정치인들 대통령, 한 나라 대통령 되는 사람이 선거 공략할 때 벌써 들으면서 다 90%는 뭐라고 듣는다? 거짓말한다고 듣고. 국회의원들 와서 뭐 해주겠다. 할 때 듣는 사람들 다 참말이고 들어? 거짓말이라고 들어? 거짓말이라고 들어. 요즘은 아이러브유 이래도 슈어 이러죠. 진짜냐 이러죠. 그것도 안 믿어.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그거 진짜냐? 이거부터 먼저 물어보죠.

 

이게 뭐요? 거짓말 안 하고 못사는 시대란 말이오. 요즘 같은 사회에 담배 피우고 술 먹고 마약 안 하고 살 수가 없죠? 제정신으로 어떻게 살아요? 요즘 같은데. 그죠? 우리나라 아직 마약 같은 게 조금 적지만은 우리가 유럽이나 미국 같은데 보세요. 마약이 보편화 돼 있어요? 안 돼 있어요? 되었어요. 이게, 이게 계율을 지키는 게 불가능해요. 이게 정상적인 사회라면 이거 지킬 것도 없어야 돼. 너무나 당연한 건데 얼마나 사회가 혼란스러워졌느냐? 이거 다섯 개 지키기가, 이 다섯 개 지키면 세상 못 살 거 같애. 그거 다 지키면 세상을 삽니까? 이럴 만큼 지금 세상이 가치관이 혼란스러워졌다. 이거야. 세상이 다 그래 가더라도. 누구라도? 나만이라도 아시겠어요? 나는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으로 살지 않겠다.

 

생명 가진 것을 사랑하고,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은 갖지 않고, 청정하게 살며, 진실을 말하고 맑은 정신으로 살아가겠다. 이게 계를 지키는 거요. 복을 닦는다. 이랬어. 복을 닦는 건 뭐요? 죽이기는커녕 뭐 한다? 죽어가는 생명을 뭐한다? 살려준다. 방생하는 거죠. 배고픈 중생에게는 먹을 것을 주고, 아픈 중생에겐 약을 줘서 살리고,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가르치고. 이게 방생이란 말이오. 도둑질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보시를 한다. 베푼다 이거야. 이게 복을 짓는 거다. 삿된 음행을 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몸을 스스로 청정히 한다 이거야. 몸과 마음을. 거짓말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진실을 늘 말해서 사람들을 깨우친다 이거야.

 

술 먹고 방탕하지 않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맑은 정신을 가지고 바른 문화를 창조해 나간다 이거야. 이게 복을 닦는 자다 이거야. 계를 지니고 복을 닦는다. 어떤 시대에? 오탁악세에. 이게 만약에 선법의 시대라면 이런 거는 누구나 다 하는 일이오? 안 하는 일이오? 하는 일이오. 이게 정상적인 사회면요 이거는 보통 사람이 하는 일이에요.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렇게 해야 되. 그런데 이게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면 다 사람모양은 하고 있지마는 사람의 삶을 사람의 마음가짐을 갖고 있지 않다.

 

탐진치 3독에 물들어서 지옥아귀축생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다 삼악도에 떨어져 있다 이런 얘기요. 그럴 때 바로 이러한 물결, 탁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만이라도 바르게 살려고 하는. 또 더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까지도 이 탁류로부터 건져 내려고 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이런 법문을 못 만나서 그저 계를 지니고 복을 닦는 게 최고인 줄 알고 살지. 이런 법문을 탁 만나게 되면 단박에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 버린다. (39:47)

 

그건 뭐와 같으냐? 봄이 되면, 즉 날씨가 따뜻해지고 비가 촉촉이 내리면, 사흘 중순을 넘어가면, 대지로부터 나무로부터 온갖 잎이 다 피어나죠? 바닥에 있는 갖가지 씨앗으로부터 싹이 터 오른단 말이오. 그런데 사월이 됐는데도 날씨는 아직도 찬바람이 쌩쌩 날 정도로 춥다는 말이오. 비는 오지 않아서 땅은 건조하다. 이 말이오. 그래서 나야 할 싹들이 하나도 못나고 있다 이 말이오. 그럴 때에도 그런 조건에서도 땅속으로부터 조그마한 새싹이 하나 텄다. 이거야.

 

그러면 겉모양만 보면 조그마하지마는 사실 밑의 뿌리를 캐보면 이건 어떻게 돼 있는 거요? 그냥 씨앗이 하나일까? 아니겠죠? 밑에 보이지 않는 것에 엄청나게 큰 뿌리가 있기 때문에 날씨가 추워도 또 비가 안 와도 그 밑에 있는 큰 뿌리로부터 힘을 받아서 싹을 틔워 올라온다. 이 말이오. 그런데 이런 건조하고 기온이 낮은 조건에서도 싹을 틔워 올리는 나무가 있다면. 여기에 만약에 비가 팍~ 쏟아지고 날씨가 탁~ 풀려 버린다면 이거는 잘 자라겠어요? 안 자라겠어요? 금방 자라 버린다 이거요.

 

마치 여기 이런 말법시대에, 오탁악세에, 그것은 마치 4월인데도 날은 춥고 가문거와 같다 이 거요. 보통 시대가 아니라 그런 시대란 말이오. 그런 시대에 계를 지니고 복을 닦는 자가 있다는 것은 그런 기후 악조건 속에서도 작은 싹을 틔운 것과 같다 이거요. 그런데 여기에 부처님의 말씀이 제법이 공한 이치가 주어진다면 그건 마치 날이 풀리고 비가 쏟아지는 것과 같다 이거야. 그러면 이 싹은 단박에 커져 버린다. 제 말 이해하시겠어요?

 

그러니 겉으로 드러난 싹은 참 날씨 좋고. 즉 따뜻하고 비 왔을 때 작은 씨앗으로 난 싹하고 겉으로 보기엔 어때요? 비슷하지마는 이게 조건이 다른 데서 올라온 거기 때문에. 즉 누구나 다 선행을 하고 악행을 멈추는 그런 시대에 태어나게 되면 여러분들 다 따라서 그렇게 합니까? 안 합니까? 따라서 그렇게 하죠. 남이 좋은 일 하니까 자기도 따라서 그렇게 하는 시대는 이런 법문을 들어도 금방 깨닫기가 어렵지마는.

 

남이 다 나쁜 방향으로 살아갈 때도 그걸 거슬러서 조그마한 선행이라도 한다 그러면. 그것은 굉장한 창조성이 있다 이 말이오. 아시겠습니까? 즉 주체성이 있다 이 말이오. 붓다라는 것은 완전한 주체를 회복한 거죠. 자기가 주인이니까. 인생의 주인이요. 우주의 주인이란 말이오. 그러니 그 밑뿌리를 캐보면 이 엄청난 뿌리를 가지고 있는 거요. 그걸 여기서 설명하고 있는 거요.

 

當知是人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不於一佛二佛三四五佛而種善根 한 부처님, 두 부처님, 세 부처님, 네 부처님, 다섯 부처님에게 성근의 종자를 심은 것만이 아니라. 아니 불자가 제일 앞에 와 있죠? 그죠? 전체를 부정해 버린단 말이오. 이 사람은 한 부처님, 두 부처님, 세 부처님, 네 부처님, 다섯 부처님에게만 공양을 올리고 좋은 성근을 심은 게 아니고

 

已於無量千萬佛所種諸善根 한량이 없는 천만 부처님 처소에서 모든 선근의 종자를 심은 사람이다. 이 말이오. 이 사람은. 이런 오탁악세에서 휩쓸리지 않고 계를 지니고 복을 닦는 자가 있다면 이 사람은 겉으로 드러난 것은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지마는, 이 사람은 사실은 한 두 부처님, 네다섯 부처님에게만 공양을 올리고, 성근을 심은 게 아니고. 한량없는 천만부처님에게 다 성근의 종자를 심은 사람이다. 그러기 때문에

 

聞是章句乃至一念生淨信者 이 문장과 글귀를 들으면 바로 일념에 바로 한 생각에 깨끗한 믿음을 낸다. 이런 얘기요. 여기서 이 문장과 글귀, 이 문장과 글귀라는 말이 계속 나오는데. 이 문장과 글귀가 무슨 얘기요? 지금. 이 문장과 글귀가 무슨 문장이오?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이라 약견제상비상 이면 즉견여래라 하는 문장이란 말이오.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이라 하는 것을 다른 말로 뭐라 그랬어요?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이렇단 말이오.

 

須菩提 如來悉知悉見 是諸衆生得如 是無量福德 수보리야, 여래께서는 다 알고 다 보나니. 실다이 알고 실다이 보나니. 이 모든 중생이 이와 같이 한량없는 복덕을 얻으리라는 것을. , 수보리야 여래는 이 모든 중생이 한량없는 복덕을 얻으리라는 것을 다 알고 있고, 다 보고 있다 이 말이오. 이 모든 중생이 할 때 이 모든 중생은 어떤 중생이오? 어떤 중생이 한량없는 복덕을 얻을 거라는 거요? 유지계수복자를 말하는 거요. 아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오늘날과 같은 이런 세상에서도 생명을 죽이지 않고,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갖지 않고, 삿된 음행을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술 먹고 방탕하지 않고. 나아가서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고, 가난한 이를 돕고, 그 몸을 몸과 마음을 스스로 청정히 하고, 진실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파하며, 바른 문화 바른 생활태도를 창조해 나간다면 이런 중생은 그 얻는 공덕이 한량이 없다 이거요. 그것을 부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시고 다 보고 계신다. 이런 얘기요.

 

그런데도 우리는 좋은 일은 눈곱만큼 해 놓고 어떻게 한다? 굉장히 많이 한 것처럼 선전하고. 그죠? 좋은 일은 눈곱만큼 하면서 남 볼 때만 후닥닥하죠. 그런데 그렇게 안 해도 누가 다 알고 계신다고? 부처님께서 다 보고 다 알고 계신다. 이 말이오. 나쁜 짓은 어때요? 태산만큼 해 놓고 시치미 딱 떼고서는 손톱만큼 했다. 이렇게 말하죠. 또 나쁜 짓은 사람 안 볼 때 후닥닥 해치워버리고. 사람 보면 아무것도 안 한 것처럼 시치미 뚝 떼고. 그래서 세상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자기를 속일 수가 없고, 부처님은 속일 수가 없다. 그것도 다 부처님이 알고 부처님이 보고 계신다. 어디 갈 거라는 걸? 지옥 갈 거라는 거를. 그런데 나 같으면 그런 거 보고 고소해 하겠지마는 부처님은 고소해 하지는 않고 어떻게 한다? 불쌍해하죠? 그래도 건져 주려고 한다. 이 말이오. 저는 그런 거 보면 아이고 거 잘됐다. 아마 이렇게 생각할 거요.”

 

何以故 하이고 어찌한 까닭이요.

是諸衆生 이 모든 중생이

無復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이 모든 중생을 할 때 이 모든 중생은 유지계수복자죠? 계를 지니고 복을 닦는 자를 말하죠? 이 계를 지니고 복을 닦는 모든 중생은 사실은 아상도 없고 인상도 없고 중생상도 없고 수자상도 없느니라. 이 말이오. 즉 그는 나라느니, 너라느니, 중생이라느니, 존재라느니 하는 이런 어떤 상을 갖고 있지 않다.

無法相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만 없는 게 아니라 이게 법이다.’ 하는 그런 상도 갖는다? 안 갖는다? 안 갖는다. 이거요.

亦無非法相 또한 법이 아니다.’ 라는 상도 내지 않는다. 이 말이오.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만 있을 뿐만 아니라 이게 법이다. 이건 법 아니다. 이런 상도 짓지 않는다. 법이라는 상도 법 아니라는 상도 짓지 않는다.

 

何以故 어찌한 까닭이요

是諸衆生 이 모든 중생이

若心取相 만약에 마음에 어떤 상이라도 취하게 되면 이 말이오. 마음속에. 어떤 상이라도 취하게 되면 곧

則爲着我人衆生壽者 곧 아와 인과 중생과 수자상, 즉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뭐한 거라? 집착한 것이 된다. 이 말이오.

若取法相則着我人衆生壽者 법이라고 하는 상을 취해도 약취법상, ‘이게 법이다.’라고 하는 상을 취하더라도. 곧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한 것이 된다.

 

何以故 어찌한 까닭이요

若取非法相卽着我人衆生壽者 만약에 ‘]법 아니라는 상을 취하더라도 또 곧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하게 되는 거다. 그러니까 이 말은 결국 한마디로 뭘 말하고자 하는 거요? 어떤 상도 지어서는 안 된다 이 말이오. 나라는 상만 지어서도 안 되는 게 아니라. 너라는 상도 지어서도 안 되고. 나도 니도 없다 하는 상도 지어서도 안 되고. 있다는 상도 지어서도 안 되고. 없다는 상도 지어서도 안 되고. 있는 것도 없는 것 도 아니라는 상도 지어서도 안 된다. 어떤 상도 지어서는 안 된다 이거요. 어떤 상도 지으면 바로 뭐가 된다? 아인중생수자에 집착하는 게 된다.

 

자 그러면 비유를 들었던 것을 다시 돌아가서 봅시다. 산이 하나 있다. 그 산에 동쪽에 사는 사람들은 서산이라 부르고 서쪽에 사는 사람들은 동산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그곳에서 태어나서 평생을 그곳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건 틀림없는 동산이며 틀림없는 서산이다. 이랬을 때 서로 동산이다 서산이다 하는 것이 아상이다 이 말이오. 아시겠습니까? 그래서 이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착한 중생을 보고 그게 잘못됐다. 상을 깨뜨려라. 상을 깨뜨리려면 그 동네에서 나와야 된단 말이오. 그 동네에서 나와 보니 그것은 동산도 아니고 서산도 아니더라. 비동비서더라 이 말이오. 이걸 뭐라 한다? 법이라고 한단 말이오.

 

그런데 이 산은 비동비서산이다. 동산도 아니고 서산도 아닌 상이다. 이러면 이건 뭐가 된다? 이게 법이라고 하는 상을 취하는 게 된단 말이오. 이게 법이다 하는 상을 취하게 된다. 그러면 그 산은 비동비서산이에요아니다. 그럼 이 산은 비동비서산도 아니고. 즉 동산도 아니다. 서산도 아니다. 비동비서산도 아니다. 이러면 이게 정답이냐? 그것도 아니다. 그 산은 그 어떤 상을 취하면 안 된다.

 

동산이라 해도 맞지 않고, 서산이라 해도 맞지 않고, 비동비서산이라 해도 맞지 않다. 그러기 때문에 또한 어떠냐? 동산이라 해도 맞고, 서산이라 해도 맞고, 비동비서라 해도 맞을 수가 있다. 동쪽에 가면 서산이요. 서쪽에 가면 동산이오. 동쪽 서쪽을 떠나면 동산도 아니고 서산도 아니오. 남쪽에 가면 북산이오. 북쪽에 가면 남산이 되고, 남쪽과 북쪽을 떠나게 되면 남산도 아니고 북산도 아닌 게 된다.

 

그래서 무유정법이라. 이것이 법이라고 정할 것이 없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그러니까 법이라 하는 상을 취해도 곧 아상인상중생상에 집착하는 게 되고. 법 아니다 하는 상을 취하게 돼도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취하는 게 된다. 서울 가는 길을 인천사람은 동이요. 춘천사람은 서요, 수원사람은 북이다. 그런데 인천사람이 가는 방향인 동쪽을 행해 서울은 동쪽으로 가야 된다 하면 이것도 오류를 범하게 된다. 북쪽으로 가야 된다. 서쪽으로 가야 된다. 그렇지가 않다. 서울 가는 길은 정해져 있지가 않다. 무유정법이다.

 

그러면 서울 가는 길은 없는 거구나. 이게 비법상이란 말이오. 서울 가는 길은 없구나. 법이라는 게 없구나. 이것도 옳지가 않단 말이오. 서울 가는 길은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인연을 따라서 서울 가는 길이 생겨나죠? 그럼 아무렇게나 가면 서울 가네. 이렇게 말해도 옳지가 않다. 아무렇게나 해서는 서울 갈 수가 없단 말이오. 그러니 서울 가는 길은 정해져 있지 않지마는 인연을 따라서 인천사람에게는 동이 되고 춘천사람에게는 서가 되고 수원사람에겐 북이 된다. 이게 어려운 거요? 쉬운 거요? 쉽죠?

 

그런데 조금 전에도 제가 mbc 방송에 갔는데. 질문자가 그래요. 스님 불법은 너무너무 어렵습니다.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다른 종교는 탁탁탁탁탁탁 순서가 있어서 쉬운데. 불교는 너무 어렵습니다. 이래 얘기해요. 불교가 어려운 게 아니에요. 불교가 복잡한 게 아니에요. 자기 머리통이 복잡하지. ? 서울 가는 길은 동쪽이다. 한참 올라가면 이 단계는 북쪽이다. 삼 단계는 서쪽이다. 이러면. ~ 단계단계단계로 참 잘 가르쳐 준다. 그렇게 생각하지마는 그거는 기분은 좋을지 모르지만 맞어? 안 맞어? 안 맞어.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중요시하지 않는다. 이 말이오. 성경은 탁~ 펴면 첫째. 창세기가 나오고 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순서대로 착착착착 나오는데. 절에는 그런 얘기 있습니까? 이래요. 안 만들어졌는데 그런 얘기를 뭐 하러 해?

 

그러니 자기 생각이 복잡하지 세상은 하나도 복잡하지 않아. 서울 가는 길을 모르니 자기가 어디 놓여 있는지를 모르니 방황하지. 딱 내려다 본 사람은 서울 가는 길은 너무 쉬워. 아시겠어요? 하늘에서 딱 내려다보면 인천사람이 물으면 동쪽으로 가라. 수원사람이 물으면 북쪽으로 가라. 의정부 사람이 물으면 남쪽으로 가라. 그저 거울에 물건이 오면 비취듯이 척척척척 답이 나온단 말이오. 답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어. 불법은 이렇게 쉬운 거요. 그래야 이치에 맞잖아. 그런데 서울은 동쪽만 가면 된다. 죽어라고 동쪽으로만 가면 서울 간다. 그건 안 맞잖아요.

 

여기서 이렇게 언어를 이렇게도 쓰고 저렇게도 쓴 것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 우리가 생각을 일으켜서 어떤 상을 고정관념으로 만들면 안 된다. 이 말이오. 아시겠습니까? 고정관념을 지으면 안 된다. 상을 짓지 마라. 이 말이오. 어떤 상이든지 좋고 나쁘고 아니다. 이 말이오. 좋든 나쁘든 상을 지으면 부처님 법이다. 라는 상을 지어도 뭐가 된다? 이미 그것은 아인중생수자에 착한 거라서 그건 이미 어긋나 버린다. 이런 얘기요. 그러면 전체 문맥을 쉽게 알겠어요? 한 번 더 봅니다.

 

아니고 시제중생이 이 모든 중생이.

무부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라. 아상도 없고 인상도 없고 중생상도 없고 수자상도 없어서, 없으며.

무법상역무비법상이니라. 법이라고 하는 상도 없고. 법 아니라고 하는 상도 없느니라. 누가 그렇다는 거요? 말법시대에도 계를 지니고 복을 닦는 자가 있다면 그는 이미 상을 떠났다 이 말이죠. 그럼 모든 상을 떠났기 때문에 부처님의 법문을 탁 듣자마자 바로 깨달음을 얻는다. 또는 계를 지니고 복을 닦는 자가 있는데. 이 사람 아직 상을 못 벗어났죠? 그런데 부처님께서 법문하신다면 어떤 법문?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이라 하는 법문을 탁 듣자마자 일체의 상을 탁 버려버렸단 말이오. 그러니 그는 어떻게 됐다? 이것으로 실다움을 싸안고 진실한 믿음을 내고 실다움을 삼았다. 이 말이죠? 그러니 그가 얻는 공덕은 한량없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집안에서 남편하고 갈등을 일으키고, 애기 때문에 지금 걱정을 하고, 또 사업하는 사람은 종업원하고 갈등을 하고, 뭐 여러 골치 아파서 사니 못사니. 사니 못사니 해서 지옥 같은데.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이라. 무릇 형상 있는 것은 다 허망하다. 잘했니 잘못했니 옳으니 그르니 하는 것은 다 내가 마음이 일으킨 생각이 지어낸 하나의 관념에 불과하구나.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고 더러운 것도 없고, 선도 없고 악도 없다는. 제법이 공하다 하는 것을 깨닫게 되면. 일순간에 그냥 꿈 깨듯이 괴로움이 사라져 버린단 말이오.

 

바로 그때 그 중생은 이 말이오. 아상도 없고 인상도 없고 중생상도 없으며 수자상도 없으며. 법이라는 상도 없고 법아니라는 상도 없다. 이 말이오. 왜 그러냐 하면 이 중생들이 마음에 무슨 상이든 상을 취하게 되면 이미 아인중생수자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것이 법이라는 상을 취해도 아인중생수자에 사로잡히게 되고, 법 아니라는 상을 취해도 아인중생수자에 사로잡히게 된다.

 

是故 이런 까닭으로

不應取法 마땅히 법도 취하지 마라. 마땅히 법을 취하지 말며

不應取非法 법 아닌 것도 취하지 마라. 이것이 법이다라고도 단정하지도 말고, 이것이 법아니라고도 단정하지 마라. ‘이것만이 법이다.’라고 단정하지 말고, ‘이건 법이 아니다,’라고도 단정을 하지 마라 이 말이오. ‘나는 잘했고 너는 틀렸다.’ 이렇게도 단정하지도 말고. 그러면 네가 잘했고 내가 틀렸다.’ 이렇게도 단정하지 마라. 이 거야.

以是義故 이런 뜻이 있는 까닭으로. 이런 뜻으로

如來常說 여래께서 항상 말씀하셨다. 항상 말씀하셨어.

 

汝等比丘 너희 비구들아.

知我說法 내가 설한 법을 알아라. 너희 비구들아. 내가 설한 법을 알아라. 내가 설한 법이 뭐요?

如筏喩者 뗏목의 비유를. 뗏목에 비유를 든 것과 같다고. 내가 설한 법이 뗏목에 비유를 든 것과 같다고 너희들은 알아라 이 말이오. 부처님은 자신이 설한 법을 뗏목에다 비유했어요. 강을 건너는데 아무래도 강을 건널 수가 없어. 강을 오르락내리락, 오르락내리락, 오르락내리락해서 들어가서 걸으려니 푹 빠지고. 헤엄을 치려니 거기까지 못 닿고.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는데. 마침 뗏목이 한 척 있었어. 배가 한 척 있었다 이 말이오. 그래서 그걸 타고 젖고 건너갔다 이 말이오. 고마워요? 안 고마워요? 고맙죠.

 

뗏목이 없었으면 내가 어떻게 건너올 수 있었겠냐 이거요. 너무너무 고맙다 이거야. 그러니 은혜를 알아야 되겠죠. 은혜를 잊으면 안 되잖아. 사람이 은혜를 알면 은혜를 갚아야지. 그래 은혜를 갚는다고 뗏목을 짊어지고 가면 지혜로운 사람이오? 어리석은 사람이오?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것처럼 인천사람이 서울을 갈 때는 동쪽 방향으로 가지마는 서울에 도착했거든 동쪽을 버려야 돼? 안 버려야 돼? 버려야 돼. 거기서 계속 동쪽으로 가면 어떻게 돼요? 서울을 지나가 버린다. 이 말이오.

 

그러니 서울을 갈 때는 가는 길이 동도 있고, 서도 있고, 남도 있고, 북도 있지마는. 서울에 도달하면 동도 없고, 서도 없고, 남도 없고, 북도 없다. 이 말이오. 그러니 우리가 인연을 따라서 갖가지 수행의 길이 있지마는 그러나 깨달음에 들어서면 그 수행의 갖가지 방법들은 고집할 게 못 된다 이거야. 그러니 뗏목과 같다 이거요. 그러니까 부처님의 법마저도 깨달음에 도달하거든 어떻게 해라? 놓아라. 집착하지 마라. 이거야. (01:07:35)

 

法尙應捨 법도 응당히 버려야 된다. 거기에 도달하게 되면 그 도달한 그 부처님 법. 즉 나를 운반해 준 그 뗏목마저도 놓아 버려야 되는데 하물며

何況非法 법 아닌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말이오. 부처님 법도 놓아 버려야 하는데. 하물며 부처님 법도 아닌 부모니, 자식이니, 형제니, 돈이지, 재물이니, 명예니, 욕망이니. 이런 것은 말할 것도 이런 얘기요.

 

~ 그래서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법은 우리를 저 니르바나의 세계로 인도해 주는 뗏목과 같고 배와 같다. 그러면 버려라 하니까 건너기도 전에 버려버려? 아니겠죠. 건널 때는 어떻게 하고 건넌다? 의지하고, 타고 건넌다. 건넌 뒤에는 버린다. 그러니까 부처님의 계율은 수행할 때는 철저하게 지키고. 깨달음의 길에 도달하면 그걸 붙들고 있다고 계를 지키는 게 아니다 이거야. 그것을 우리는 지팡이와 같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건강한 사람은 지팡이가 필요합니까? 없습니까? 필요 없죠? 그냥 걸어 다니면 돼.

 

그런데 다리를 다쳐서 쩔뚝이게 될 때는 지팡이가 있어야 돼. 지팡이가 있는 게 나아요? 없는 게 나아요? 있는 게 나아. 그러니까 지팡이에 의지해서 걷게 된다. 그러다 다리가 다 낳으면 지팡이는 버려야 되요? 계속 집고 다녀야 되요? 버려야 되요? 버려야죠. 다 나았는데도 계속 지팡이를 계속 집고 다닌다. ? 고마우니까. 너 없었으면 내가 어떻게 이렇게 나았겠느냐? 그래서 계속 집고 다니면 사람들의 뭐라 그래요? 저 다리 병신 이런단 말이에요. 병신이라 그런단 말이에요. 그러니 병이 났을 때는 의지를 하고. 병이 나으면 버린다. 약도 마찬가지죠. 병이 났을 때는 어떻게 하고? 먹고. 병이 나았는데도 계속 먹어요? 아니에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공부를 할 때 아직도 어리석어서 깨우치지 못했을 때는 스승에게 의지하고. 스승에게 복종하면서 자기의 아상을 내려놓고, 자기의 아상을 깨뜨리고, 그래서 니르바나의 경지로 간다. 그러면 스스로 그러한 경지에 도달했을 때는 바로 스승에게도 의지해서는 안 된다. 고마움은 있지마는 계속 업고 다니면 안 된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자기가 도달해야 될 자리는 바로 자기가 주인이 되는 자리다. 누구도 그 자리는 대신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이 말이오.

 

바로 자기 발로 걸어야 하고, 자기 눈으로 봐야 한다. 자기가 눈이 어두울 때는 다른 사람의 눈을 빌리고. 자기가 다리를 다쳤을 때는 지팡이를 의지해서 하지마는. 궁극적인 목적은 영원히 그렇게 살라 그래요? 궁극적인 목적은 자기가 걷고 자기가 보려고 그래요? 자기가 걷고 자기가 보면 된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처음에 절에 왔을 때는 스님에게 물어볼 것도 많고, 스님에게 도움받을 것도 많고. 자식 문제, 남편문제 갖가지 조언을 얻을게 많지마는. 열흘을 다니고, 한 달을 다니고, 일 년을 다니고, 이년을 다니고 하면. 물을 것도 없어지고 도움받을 것도 없어져야 돼. 다 자기가 알아서 처리 할 수 있어야 돼.

 

그러면 어디로 가야 되느냐? 그 은혜는 어떻게 갚는 거냐? 그건 스승에게 갚는 게 아니에요. 부처님에게 갚는 게 아니다. 이 말이오. 바로 다른 사람에게. 아직도 눈 먼 사람. 아직도 절뚝거리는 사람. 아직도 병든 사람에게 그 공덕이 베풀어 져야 한다. 이걸 뭐라 그러느냐? 회향한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무슨 얘기인지 아시겠어요? 일체중생에게 회향한다.

 

그러니까 부처님한테 와서 뭘 잘하려고 할 필요가 없어요. ? 부처님은 이미 구족하신데 뭐가 부족해서 얻으려고 그러겠어요? 부처님은 아무것도 얻을 바가 없단 말이에요. 여러분들이 괜히 얻고 싶으니까 아양 떠는 거죠. 아양 안 떨어도 여러분들이 부족하면 그분께서는 주시죠. ? 주시는 것을 원으로 세우신 분이니까.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중생을 구제하는 일을 하면 부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느냐? 부처님 앞에 와서 알랑방귀 끼는 것보다 중생에게 나아가는 걸 부처님은 더욱더 좋아하신다. ? 부처님의 하시고자 하는 일이 그 일이니까. 그거를 대신해서 해 주니 얼마나 좋아하시겠어요? 그죠? 그러니까 뒤를 팍팍 밀어준단 말이오.

 

그래서 우리가 계속 부처님의 좋은 말씀을 듣고 부처님의 은혜를 입으면서도 죽을 때까지 부처님한테 매달려서 이거 해 주세요 저거 해 주세요.”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 주세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에요? 여러분들 죽을 때까지 해달라는 소리만 하고 죽잖아. 이게 죽을 때까지 지팡이 짚고 다니는 사람이에요. 지팡이 빨리 벗어 던져야 돼. 그러니까 부처님한테 해 달라 하는 게 지팡이 짚고 다니는 거 의지하는 거란 말이오. 처음에는 하도 답답해 의지했다 하더라도 불법을 알고 깨닫고는 홀로 서야 된다. 홀로 서는 게 아니라. 남의 지팡이가 되 줘야 된다. 남의 의지처가 되. 중생의 의지처가 돼 줘야 해.

 

그래서 부처님께 이리 말해야 된다. 앞으로의 기도는 이래야 되. “부처님 가만히 계십시오. 이제 제가 다 컸으니까 제가 대신하겠습니다. 제가 하다가 하다가 안 되는 일이 있으면 그때 부처님께서 하시고. 뭐 이 정도 일감이야 제가 다 처리할게요.” 이렇게 해야 될 거 아니오. 자식도 크면 부모님한테 이렇게 말해야 되요 안 돼요? 말해야 되지. 그런데 요즘 자식들은 부모가 80이 됐는데도 아직도 그거 쳐다보고 있어요. 어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쳐다보고 있어. 죽은 뒤에 베개 밑에 뭐 들었나? 그것까지 쳐다보고 있어요. 이러니 이게 안 되죠.

 

나이가 스무 살이 넘으면 이제는 부모를 봉양하려고 생각해야지. 부모한테 얻으려고 하면 안 된다. 절에도 마찬가지예요. 젊은 스님들은 노스님을 봉양하려고 그래야죠? 그런데 노스님이 70이 되고 80이 되고 90되도, 노스님 그늘에 뭘 얻어먹으려고. 그런 사람들도 참 많아요. 잘못된 생각이에요. 스승에게 도움을 청해서는 안 된다. 스승이 우리에게 도와주는 건 뭘 도와준다? 깨우치고 가르침을 도와주고. 경책하는 게 도와주는 거다. 나머지는 알아서 해야 되는 거요.

 

그런데도 여러분들이 뭘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처음에 자기가 잘살다가 공연히 물어가지고 도움을 얻고는 나중에 시간이 흘러가면 안 물으면 아무것도 결정을 못 해. 시간이 경과되면 연탄불 가는 것까지 물어봐야 돼. 물어보는 거 좋아하면 나중에 그렇게 돼요. 한 번 물어보고 끝나야 돼. 한 번 물어보고 그걸 답을 얻으면 그걸로 딱~ 인생이 끝나야 되는데. 몇 번씩 물어보잖아.

 

여러분들 여기 보면 각해보살님 뵐 때도 한 번 딱 물어보면 그다음 인생이 다 끝이 나야 되는데. 조금 있다 가서 또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그러면 그게 좋은 약았지마는. 그 태도 때문에 그것이 도리어 독이 된다. 이 말이오. 한 번 물어봤으면 그걸로 해답을 찾아야 되고. 그걸 끝장을 봐야 된단 말이오. 그런데 하기는 싫고. 그죠? 자꾸 물어서 해결하려고 그래. 지식은 물어봐도 괜찮죠? 그러나 화두는 물어본다고 되는 게 아니란 말이오. 수행은 묻는다고 되는 게 아니란 말이오. 그걸 꾸준히 실천해서 증득을 해야지. 그리고 다만 점검받을 때 필요하지. 뭘 자꾸 물을 게 있겠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점치러 다니는 사람은 연연히 물으러 가야죠. 또 연연히 물으러만 가요? 월월이 물으러 가야 되고. 나날이 물으러 가야 되잖아. 그죠? 그게 병이다. 이거야. . 그러니까 여자분들은 늘 남자한테 물어서 사니까 남자가 죽어버리면 어이 살고 걱정이 된단 말이오. 제가 아는 분 중에 이런 분이 계세요. 남자가 너무 부인을 사랑해요. 회사 끝나면 집에 금방 들어와요. 절대 딴 사람 만나고 친구도 안 만나. ? 부인이 너무 좋으니까. 집에 오면 일도 거들어 주고, 직장도 다니던 거 못 다니게 하고. 다 옛날에 연탄 땔 때 연탄까지도 남편이 주문해 다 넣어주고.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말할 때 ~ 저런 남편하고 하루만이라도 살았으면 좋겠다. 하루만이라도 살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할 만큼 잘했다 이거요.

 

그런데 그 남편이 40 한두 살인가 과로로 직장에서 탁 쓰러져 그냥 죽어버렸어요. 요즘 말하면 순직을 한 거죠. 그런데 이 부인이 원래는 똑똑한 사람이었는데. 그런 남편하고 한 20년 살도 보니까. 아무것도 할 줄을 모르는 거요. 어떻게 해야 될지. 그리고 또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소개해 줘도 사귈 수가 없어. ? 남편하고 비교되니까. 그러니 그런 남편이 이 여자를 행복하게 한 거요? 평생 속박하고 있는 거요? 평생 속박하고 있는 거요. 죽은 뒤에 귀신이 됐어도 남의 손 못 데게 하는 거죠. ? 뭐가 방해해도 본인이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요. 그러니 그런 게 좋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

 

자기가 장사해서 자기가 남편 벌어 먹이던 사람은 남편 죽으면 어때요? 더 좋은 일 생기지. 그러니 봐. 여러분들은 보호받는 게 좋은 줄 아는데. 그렇지가 않다 이거요. 보호받는 게 좋은 게 아니에요.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요. 내가 남을 보살피는 게 주인이고. 내가 남을 사랑해 주는 게 주인이에요. 사랑받는 거, 보호받는 거는 애완용 동물이다. 애완용 동물은 주인이 있을 때는 귀여움을 받지마는. 주인 없어지면 그냥 똥개보다도 더 못해. 그러니 이게 생각을 좀 바꿔야 되요.

 

그래서 제가 요즘은 차를 안 타지만 전에는 신도님들 차를 타거든요. 그러면 남편이 착실한 사람들은 부인이 운전을 잘 못 해요. 시내만 겨우 다녀. ? 고속도로나 어디 가면 다 해주니까.

그런데 그게 참 좋은 거 같지마는. 그럼 자기 혼자는 아무 데도 못가. 시장이나 왔다 갔다 하지. 스님이 딱 탔다, 그러면 좀 다르죠. 남편이 타면 남편이 어떻게 합니까? 문도 열어주고, 태워다 주고, 정비도 남편이 하고, 체인도 남편이 감아주고. 다 그러잖아. 그죠? 스님이 딱 타면 어떻게 해야 되나. 자기가 다 해야 되지. 자기가 이쪽으로 와서 문 열어 나 태우고, 자기가 가고, 체인도 눈 오면 누가 감아야 된다? 자기가 감고. 자기가 지도 보고. 자기가 찾아가. 스님 모셔다 주고.

 

그러니까 남편에게 비하면 스님이 나쁜 사람이잖아. 그죠? 그런데 한 두세 달만 타고 다니면 서울 시내 지리가 모르는 데가 없고, 고속도로 못 타는 데가 없고 그래. 그러니까 고속도로에서는 80km 주행하지 말라 하니까 80km 딱 놓고 이렇게 다녀. 그러면 사고 더나요. 연습을 한 130 140씩 팍 팍 달리는 연습을 딱 해서. 그다음에 80km씩 조용히 달려야 뭘 한다? 사고를 막을 수가 있다 이 말이오. 제 말뜻 알겠어요? 그래야 위급할 때는 휙~ 무슨 대응을 하지.

 

네 트럭 뒤에 똥구머리에 이렇게 운전대만 딱 잡고 덜덜덜덜 떨고만 있으면 사고가 나는 거요. 그러니까 일단은 해 놓고 해 놓고 그다음에 지켜야 된단 말이오. 연습을 딱 해 놓고 그다음에. 그러니까 140이든 160이든 달릴 수 있는 능히 힘을 길러놓고 이제 얼마를 달린다? 80km만 딱 달리면 걱정이 없단 말이오. 그러니까 법규를 지키지 마라가 아니라 법규를 지키되 배우기는 배워놓고 거기에 법규를 지켜야 한다. 그래야 응급한 상황, 긴급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다가 있다.

 

그런데 그건 겁이 나서 못하잖아. 그죠? 빈도로, 도로가 비었거나 딴 데 가서 연습을 좀 해야 되는데. 그런데 스님은 떡 타면 연습하시오.” 이래요. “아이고 안 됩니다.” “스님 탔으니까 죽지는 않을 거야. 한번 해 봐.” 그래요. 그러니까 제가 생각할 때는 자립심을 키워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아이들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들 아이들에게 과잉보호를 하니까 애들이 자립심이 없어지는 거요.

 

그러니까 일도 시키고. 뭐도 하고. 하다 보면 다리가 부러질 때도 있고 손가락 다칠 때도 있고 그러죠. 자전거를 배우려면 넘어지면서 무릎 깨는 걸 각오 안 하고 어떻게 배웁니까? ~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여러분들을 주인 되게 하는 거다. 그런데 왜 이 대명천지에 21C에 접어드는 시대에 태어나서 그렇게 종 되는 것을 좋아하세요? 아직도 이조 500년 동안 종으로 살아온 게 부족해서 종 좀 더 돼서 살고 싶어요? 이제 주인으로 살아가는 시대다.

 

이 상에 집착하는 거에 대해서 하나 더 말씀을 드릴게요. 옛날에 어떤 스님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지극정성으로 용맹정진을 한번 해 보겠다고 이렇게 결심을 하고 천일기도에 들어갔어요. 보통 우리가 기도한다. 이러면 4분 정근을 많이 하거든요. 4분 정근이라 하면 하루에 4번 한다. 이 말이오. 정진을.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 먹기 전까지. 아침 먹고 점심 먹기 전까지. 점심 먹고 저녁 먹기 전까지. 저녁 먹고 자기 전까지. 이렇게 하루에 4번씩. 두 시간씩 하면 8시간, 3시간씩 하면 12시간. 이렇게 되겠죠.

 

그러면 혼자서 산속에 가서 기도하는 사람이 수행하는 사람이 산에 가서 나무해서 불 때야지. 물 길어 와야지. 또 양식 동네 가서 얻어와 가지고 해 먹어야지. 이렇게 하려면 하루에 두 시간씩 4분 정근해도 눈코 뜰 새가 없단 말이오. 잠잘 여가가 없어. 해 주는 밥 먹고 가만히 앉아서야 하루에 열 몇 시간이라도 할 수 있지만. 천 일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한다고 딱 정진을 했어. 그래 거의 천일이 다가오는 마지막 회향 때가 다 돼가는데. 그해 너무 많이 눈이 와서. 이 마을에 내려가서 양식 얻으러 다니기가 어려워서. 그냥 있었단 말이야.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러다 보니까 나무도 다 떨어져 버리고. 그러니까 눈이 와서 땔감도 못하잖아. 땔감도 없어지고 양식도 떨어졌어. 도저히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단 말이오. 그래서 마을에 내려온 거요. 마을로 내려와서 몇십 리를 내려왔죠. 내려와서는 양식을 좀 얻고 장작이라도 한 짐 지고 올라가서 눈이 좀 녹을 때까지 버티려고 내려왔는데. 다시 또 폭설이 와 버렸어요. 그러니까 올라갈 수가 없는 거요. 그러니 이게 걱정이죠. 십년공부 도로 아미타불이라더니. 3년간 천 일간 하루도 안 빠지고 부처님께 공양을 탁 정성을 들여 예불을 드렸는데. 아 이거 막판에 와서 양식 얻으러 왔다가 돌아갈 수가 없으니. 큰일이란 말이오.

 

그래도 뭐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하루 지나고 이틀 지나고 사흘 지나고 나흘 지나고 닷새 지나고 이렇게 된 거요. 사람들이 말리지만 뿌리치고 올라갔단 말이오. 갖가지 고생을 해서 떡 올라가서 지게를 바쳐놓고 보니까. ~ 자기 방에 신발이 하나 놓여 있는 거요. 짚신이. 그걸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한 거요. 왜냐하면, 올라올 때 신발자국이 없었거든요. 그러면 이 사람은 자기 내려감과 동시에 올라왔단 얘기 아니오. 그죠? 그러면 절에는 나무라고 하나 없고, 양식이라고 한 톨 없었으니 이 사람 분명 굶어 죽었단 말이오. 굶어 얼어 죽었죠.

 

그러니 자기가 조금만 더 일찍 왔으면 사람을 살릴 수 있었는데. 내 안 죽으려고 머뭇머뭇하다가 사람을 죽였으니. 천일기도가 영험이 있기는커녕 사람을 죽였으니 재앙만 따르게 했단 말이오. 가슴이 철렁해서 후회되는 마음으로 문을 탁 열어 봤단 말이오. 꽁꽁 얼어 죽어 있어야 될 사람이 방이 후꾼후꾼 하게 열이 나는데. ~ 코를 골고 자고 있단 말이오. 그러니까 문을 탁 닫고 나와서는 이게 무슨 일일까? 나무라고는 자기가 살은 집이니까. 삼 년을 살은 집이니까 하나도 없었단 말이오.

 

그래 이상하다. 이래 생각하고 일단은 부처님이 어떻게 돼 있느냐? 삼 년간 지극정성으로 하루에 4번씩 기도하던 부처님이 어떻게 됐나 싶어서 법당에 쫓아갔단 말이오. 가서 탁 절을 하고 일어나서 보니까. 부처님이 안 계시는 거요. 삼존불을 모셔 놨는데 부처님이 한 분이 안 계셔. 딱 보는 순간 머리에 이 자식이딱 생각이 난 거요. “이 중놈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쫓아간 거요. 멱살을 잡고 야 이놈아. 네가 그래도 명색이 부처님 전에 출가한 중이 돼서. 어떻게 부처님을 불에 땔 수가 있느냐고.” 그러니까.

 

옛날엔 다 나무를 깎아 부처님을 조성했잖아 그죠? 이 중이 땔 게 없으니까 나무를 갔다가 부처님 한 분 모셔다가 떼버렸단 말이오. 그래 부처님을 불에 땔 수가 있느냐? 이거야. 중이 돼서. 그래 멱살을 잡고 막 씩씩거리면서 두들겨 패고 난리가 났다. 그랬더니 이 자던 나그네가 ~ 스님. 조금만 조금만 손 좀 놔 보세요.” 급한 일이 있다는 거요. “네가 뭐가 급하냐?” 아니요. 조금만 놔보라는 거요. 급하게 하나 찾을 게 있다는 거요. 하도 사정을 하니까 뭔가 싶어서 놔 줬어. 놔 줬더니만 쫓아 부엌으로 가더니. 부지깽이를 쥐고는 부엌 아궁이를 뒤져 쌌는 거요.

 

그래서 ~ 이놈아 또 무슨 미친 짓 하느냐?” 이렇게 방문을 열고 부엌을 쳐다 보면서 그랬단 말이오. 그랬더니 그 나그네가 사리 찾는다. 이런단 말이오. 부처님을 불에 땠으니 사리가 나오겠어요? 안 나오겠어요? 석삼 여덟 말이 나와야지. 사리 찾는다 이러니까. 이 기도하던 스님이 그놈의 자식. ~ 목불에 무슨 사리가 있느냐?” 이랬단 말이오. 사리 찾는다 하니까 목불에 무슨 사리가 있느냐? 이러니까 그 나그네가 ~ 그럼 마저 갔다가 떼야 되겠네.” 이랬단 말이오. 그럴 때 탁 깨달았어.

 

그래 이게 모순이죠. 부처님을 불에 땠다고 난리다가. 사리 찾는다 하는 그 한마디에 목불에 무슨 사리가 있느냐 이 말이 무슨 말이에요? 그게 무슨 부처냐? 나무토막이지. 이 말이죠. 맞아요? 그러니 자기가 지금 부처님을 불에 땠다고 난리 법석을 피우다가. 금방 또 하는 말이 목불에 무슨 사리가 있느냐 이랬단 말이오. 그게 무슨 부처냐 나무토막이지 이런단 말이죠. 그러니까 그 나그네가 당연히 나무토막이면 거기 모셔놓고 절 할 필요가 있어요? 없어요? 없지. 그럼 마저 갔다가 때자 이거요. 그럴 때 자기모순을 봤다. 이거야. 그때 확 깨달은 거요.

 

그러니까 깨달음이라는 것은 이런 모순, 자기 속에 있는 모순, 이게 전도 몽상이란 말이오. 이 모순이 깨지는 거란 말이오. 그런데 우리는 이 모순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가 한편 나무토막이라고 한편 부처라고 하는데. 그게 정 반대라는 걸 자기가 전혀 몰라요. 자기 속에 있는 모순이 전혀 안 보인다 이거요. 여러분들이 남편에게 대하는 태도나, 자식한테 대하는 태도가 상대편이 볼 때는 완전 얼토당토 안는 거요. 어느 땐 이랬다가, 어느 땐 저랬다가. 본인한테 물어보면 보인은 이것도 똑바르고, 저것도 똑바르고 그랬다. 그래.

 

여러분들 남편이 하는 행동 보면 그러죠? ~ 어떤 때는 이래 말하고, 어떤 때는 저래 말하고. 그래서 본인한테 물어봐라. 양쪽 다 맞지. 잘 해봐요. 남편이 뭐라 그러는가. “이게 또 미쳤나? 뭣할라 그래?” 이러죠. 그래 또 알았다.” 그러면 관심 안 가지면 이게 또 삐졌나? 왜 나한테 말 안 하노?” 이러죠. 또 관심 가지면 어때요? 이런단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중생 세계에선 이래도 문제가 되고 저래도 문제가 되니까. 여러분들 늘 하는 얘기가 어떻게 하란 말이냐? 그죠?

 

이러자 그래도 싫다. 저러자 그래도 싫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아이들 가르칠 때 그러죠? 공부 안 하니까 그럼 직장 가라. 직장도 안가겠다. 그럼 공부해라. 공부도 안 하겠다. 도대체 이 애를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렇게 생각한단 말이오. 그러니까 자기 속에선 이 전도몽상에 가려져 있으면 자기 속에선 아무 모순이 없어요. 그런데 담장 밖에서 보면 바깥사람이 보면 모순투성이에요. 앞뒤가 안 맞는 짓을 한단 말이오. 그러니까 왜 저리 앞뒤 안 맞는 짓을 하느냐? 미쳐서 그런 거요. 미치면 앞뒤가 맞는지 안 맞는지 모르잖아. 그죠?

 

부부 싸움 할 때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싸움할 때는 한 대라도 더 때리고, 한 대라도 더 까불이고, 한 번이라도 욕을 더 해줘야 이기는 거고. 속이 시원한 일이지. 말이라도 하나 밑지거나 뭐라도 하나 밑지면 어때요? 분해서 못살죠. 그런데 담장 밖에서 보는 사람은 어때요? 저래 도 저래 한 대 더 때려봐야 자기 마누라 때리고, 저렇게 한 번 욕도 많이 해야 제 남편 욕하고. 아무 쓸데 없는 짓이라는 거를 밖에서 보면 다 보이는데. 막상 부딪친 당사자는 그게 안 보인단 말이오. 이게 모순이란 말이오. 이 미망에 가렸다. 아시겠습니까? 보이는 게 없다. 이게 무명, 무지란 말이오.

 

그러니 어떤 상이든 상을 짓고 거기에 집착하면 뭐가 된다? 뵈는 게 없어진단 말이오. 전도 몽상이 일어난단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상이 상 아닌 줄을 알아야 돼. 거기 실체가 없는 줄, 그것이 헛것인 줄 알아야 된다. 어떤 상도 취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이 경전에서 하고자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바른 믿음은 정말로 희유한 일이다. 드문 일이다. 그러나 진실 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즉시 받아들여지게 된다.

 

절에 오래 다녔다고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어제까지 교회 다녔다가도 우연히 지나가다가 법문을 듣고도 바른 믿음을 내는 사람이 있고, 절에 30년을 다녀도 까막눈인 사람도 있다 이 말이오. 차이가 뭐냐? 제가 네~ 말씀드렸잖아요. 하늘에서 비는 늘 온다. 이 말이오. 다 제 그릇만큼 물을 받게 되는데. 바가지 거꾸로 쥔 사람만 어떻게 한다? 한 방울도 못 받는다. 여러분들이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타인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그런 마음의 문이 열린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늘 소귀에 경 읽기가 된다 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