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얻을 바도 없고 설할 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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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금강경

2013. 2. 6.

출처: 정토회

  

안녕하세요. 48페이지 펴주세요. 금강경 제7째 시간이 되겠습니다. 7 무득무설분.

 

無得無說分 얻을 바도 없고 설할 바도 없다. 깨달음도 얻는다 할 것도 없고 법을 설한다 할 것도 없다 이런 얘기요. 5분에서 수보리가 거룩한 부처님의 형상을 보고 보살이 복덕을 지어서 그 과보를 받지 않는다면 어떻게 저렇게 거룩한 부처님의 상호가 있을 수 있느냐? 이렇게 생각했을 때 부처님께서 이 몸의 모양이 부처냐? 이렇게 해서 형상에 집착하는 것을 깨뜨렸습니다. 모든 형상이 있는 것은 다 허망하다. 모든 법은 다 공하다.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 여래지 이것이 부처다라고 할 그 어떤 것이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또 6분에서는 부처님께서 법이다 할 것도 없다. 이것이 법이다. 이것은 법이 아니다. 할 것도 없다 이렇게 말을 하니까 부처라 할 것도 없고, 법이라 할 것도 없다면 그럼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최상의 깨달음을 얻으셨고 어떻게 수많은 법을 설하셨는가? 이런 의심이 마음속에서 일어났다. 거기에 대해서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을 하고 있다.

 

須菩提於意云何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는가.

如來得阿多羅三三菩提耶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느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번역하면 무상정등각 또는 무상정변지라 그랬죠? 쉽게 말하면 최고의 깨달음, 최상의 깨달음. 최고의 진리. 이렇게 말 할 수가 있겠습니다.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느냐? 이거야. 여래가 이것이 최상의 깨달음이다라고 하는 어떤 정해진 법이 있고 그 법을 여래가 얻었느냐? 이 말이에요.

 

如來有所說法耶 여래께서 이것이 법이다. 할 것이 있어서 그런 법을 설했느냐? 이 말이오.

법을 설한 바가 있느냐? 즉 수보리가 그런 의심을 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바로 되물으셨다. 그러자 수보리가 금방 자신이 또 망상을 피운다. 또 한 생각에 사로잡혔구나 하는 것을 금방 깨닫고

須菩提言 수보리 말하되.

如我解佛所說義 부처님의 설하신바 그 뜻을 내가 알기로는. 누가? 수보리가 알기로는

 

無有定法名阿多羅三三菩提 정한 법이 이것이 법이다라고 그런 정한 법이 있음이 없음을 그 이름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하며. 이것이 법이다 할 것이 없다 하는 그것을 이름하여 뭐라고 한다? 최상의 깨달음이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이것이 최상의 깨달음이다라고 이름 할 그 어떤 정해진 법도 없다.

亦無有定法如來可說 이것이 법이다라고 설할, 여래가 설할 그 어떤 정해진 법도 없다.

 

수보리언 수보리가 말하되

여아해불소설의 제가 부처님의 설하신바 그 뜻을 이해하기로는.

무유정법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

역무유정법여래가설 이랬어요. 고대로 직역하면 이것이 법이다라고 할 정한 법이 있지 않다 이 말이오. 없다. 이 말이죠? 그런 법이 없다. 없음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이름 하며. 또한, 이것이 법이다라고 정해진 그런 법이 없음을 여래가 가히 설한다. 그것을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하면 이것이 최상의 깨달음이다라고 할 어떤 정해진 법도 없으며 이것이 내가 설하는 법이다라고 정할 그 어떤 법도 없다.

 

何以故 어찌한 까닭이냐

如來所說法 여래가 설한바 법이, 여래가 설하는 법은

皆不可取不可說非法非非法 가히 취할 수 없으며, 가히 말할 수 없으며, 법도 아니며, 법 아닌 것도 아니니.

所以者何一切賢聖皆以無爲法而有差別 모든 현인과 성인이 모두 이 무위법으로써 흔적이 없는, 함이 없는 이 법으로서, 갖가지 차별이 있다. 이렇게 돼 있어요.

 

~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수보리 어의운하오. 수보리야: 너의 뜻이 어떠하냐?

여래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야: 부처님께서 최상의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을 얻었느냐?

여래 유소설법야: 여래께서 법을 설하신 바가 있느냐?

 

수보리언: 수보리가 말하되.

여아해불소설의: 제가 부처님의 설하신바 그 뜻을 이해하기로는

무유정법 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 이것이 최상의 깨달음이라고 할, 이름 할 그 어떤 정해진 법도 없으며

역무유정법 여래가설: 또한 여래가 가히 설할만한 정해진 법도 없다.

 

하이고: 어찌한 까닭이냐?

여래소설법: 여래가 설하신바 그 법은

개불가취 불가설 비법 비비법: 모두 다 가히 취할 수 없고, 가히 설할 수 없고, 법도 아니며 법 아닌 것도 아님이니

소이자하 일체현성 개이무위법 이유차별: 이런 연유로 일체 현상은 모두 함이 없는 이 무위법으로서 갖가지 차별이 있게 된 것이다. 뜻이 전달이 잘 안 돼요?

 

~ 비유를 들어서 한 번 볼게요. 여기 거울이 있습니다. 맑은 거울이 있다. 거울 앞에는 수많은 물체들이 오고 갑니다. 그럴 때 마다 거울은 그 물체를 비춰주죠? 즉 그림을 그린다 이거야. 컵이 오면 컵을 그리고, 사람이 오면 사람을 그리고, 갖가지 모양을 그리게 된다. 이럴 때 이 거울은 물건을 얼마나 그릴 수가 있느냐? 얼마나 많은 그림을 그릴 수가 있느냐? 한량없는 많은 그림을 그릴 수가 있다고 말 할 수도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거울은 한 그림도 그리지 않는다. 이렇게 말 할 수도 있고. 물체가 오면 비추고 가면 사라지게 된다. 거울은 어떤 물체가 와도 다 비춰준다. 그러나 거울 그 자체는 한 물건도 그리지를 않습니다.

 

여래가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음이냐? 이렇게 말하는 것은 여래는 나라고 하는 이것이 나다 하는 것이 사라져 버렸다 이거야. 즉 거울과 같다 이거야. 그러기 때문에 어떤 것이 그 앞에 오든지 오는 대로 비춘다. 중생의 근기 따라 갖가지 방편을 설하신다. 이것이 법이다라고 정해진 것이 있어서 너는 요게 맞고, 너는 요게 맞고, 너는 요게 맞고, 너는 요게 맞고, 너는 요게 맞고. 요렇게 하나씩 법을 설하는 게 아니에요. 중생의 병을 치료하는 약 처방이 만 가지가 있는데. 부처님께서 만 가지를 다 통달하셔서 중생의 병 따라 처방을 하나씩 주느냐? 아니다. 부처님은 정해진 아무런 처방도 갖고 계시지 않는다.

 

다만 중생의 병 따라 그때그때 처방이 나온다. 이것이 저 사람에게 맞는 처방이다. 이렇게 정해져 있지가 않다. 그 사람의 병 따라 처방이 나오는 거다. 이것이 법이다. 이것이 처방이다. 이렇게 정해진 법이 없다. 이것을 뭐라고 한다? 무유정법이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다시 비유를 들어서 말을 하면, 늘 하는 얘기에요. 서울을 우리가 최상의 서울을 최상의 깨달음.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라고 말하고, 우리가 각각이 지방에 살고 있다. 이것이 중생의 처지다 이거야. 인천사람이 서울 가는 길을 물으면 동으로 가라 하고, 수원 사람이 서울 가는 길을 물으면 북으로 가라 하고, 춘천 사람이 서울 가는 길을 물으면 서로 가라 그런다. 이 말이오. 바로 이 동으로 가라, 북으로 가라, 서로 가라가 바로 부처님의 설법이다.

 

서울로 가는 길이 어떤 방향이라고 정해져 있어서 그 법을 부처님께서 깨달으셨느냐? 서울은 어느 쪽으로 간다하는 그 길이 있고. 그 길을 부처님께서 찾으셨느냐? 아니다 이거야.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바는 바로 서울과 그리고 사람들의 각 사는 지역을 통틀어서 저 허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듯이 그렇게 훤히 내려다보고 있다. 반야심경 표현대로 하면 조견이다. 확 비춰본다 이거요. 비춰보니 서울 가는 길이 어느 쪽 길이다 이렇게 정해져 있지가 않아. 서울 가는 길은 공해. 그것은 정해져 있지가 않아.

 

그런데 인천사람은 동으로 가고 춘천사람은 서로 간다. 그것은 중생의 근기 따라 그때그때 서울 가는 방향이 정해진다. 최상의 깨달음이라는 것은 뭐냐? 동쪽으로 간다. 서쪽으로 간다. 이게 아니다 이거야. 최상의 깨달음이라는 것은 이 세계를 환하게 봐 버리는 거다. 어떤 것이 서울 가는 길이다 하는 어떤 것을 깨달은 게 아니다. 이거야. 서울 가는 길은 정할 수가 없다. 그 정할 수가 없다는 말은 서울 가는 길이 없다는 말도 아니고, 아무렇게나 가도 서울 간다는 얘기도 아니다.

 

그것을 금강경에서는 이름 하여 뭐라고 한다? 무유정법이라 한다. 이 정해져 있지 않는 이 법을 이름 하여 뭐라고 한다? 최상의 깨달음이라고 말한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말한다. 또 다른 말로는 최상의 깨달음. 서울 가는 가장 바른길이라고 하는 그런 정해진 길은 없다. 인연을 따라서 인연을 따라서 동이다, 서다, 북이다. 이렇게 인연을 따라서 갖가지 법이 생겨난다.

 

그러니까 맨 마지막에

一切賢聖 모든 현인과 성인은

皆以無爲法 모두 이 차별이 없는 함이 없는 이 법. 무유정법으로부터

而有差別 갖가지 차별법이 나온다. 동이다 서다 동북이다 동남이다 서남이다 서북이다. 이런 갖가지 법이 나오게 된다. 그러니 여래가 법을 설한다 하지마는 가히 설할 게 없다. 이거야. 다만 중생의 근기 따라 거울에 물건이 비추듯이 그냥 설해지는 거죠. 그러니 중생의 근기 따라 중생의 번뇌가 한량이 없으니 부처님의 설법 또한 한량이 없죠.

 

그러나 사실은 부처님께서 법을 설한다 하지마는 그것은 중생이 부처의 거울에 비췄을 때 그냥 비춰진 모습일 뿐이지 거울이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다 이거야. 사람들이 길을 물으면 부처님이 동북이다. 서다. 너는 동이다. 너는 북이다. 할 때 부처님이 갖가지 법을 갖고 계셔서 갖가지 법을 설해 주는 게 아니다. 중생이 서 있는 위치 따라 자동적으로 방향이 나오는 거다 이거야. 그러니까 부처님께서는 한 법도 설한바가 없다. 부처님은 한 법도 설한 바가 없지만은 한량없는 많은 법을 설하고 있고, 한량없는 많은 법을 설했지마는 진실로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다. 여기서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다는 것은 이것이 법이다라고 어떤 정해진 법 그런 것은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다 이거야. 어려운 거 같지마는 자세히 살펴보면 이것이 맞죠. 이게 세상의 있는 그대로의 이치에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냥 말 할 수 없어요. 여러분들이 수행은 어떻게 합니까? 그렇게 말 할 수가 없다 이거야. 물어보죠. 뭐 때문에 수행하려 그러냐? 뭣 때문에 그 일을 하려고 그러냐? 그에 따라서 그가 하는 일이 때로는 옳을 수도 있고, 때로는 그를 수도 있어. 그냥 하는 그 행위 자체를 가지고는 옳다 그르다 할 수가 없단 말이오. 제가 지금 동쪽으로 가라는데 옳습니까? 이러면 옳은지 그른지 알 수가 없어. 그건 옳은 것도 아니고 그른 것도 아니야.

 

제가 서울 가는데 지금 동쪽으로 가는 게 맞습니까? 이러면 그 사람이 서 있는 위치를 보니까 인천에 있다. 오 그래 그러면 돼. 춘천에 있으면 야~ 동쪽으로 가면 안 돼. 서쪽으로 가. 이렇게 말한다 이거야. 여기서 금강경에서 제일 중요한 하나의 단어. 무유정법이다. 이것이 법이다라고 할 만한 그런 법은 없다. 이러니까 이것은 대승의 다른 용어를 말하면 뭐요? 법도 공하는 거요? 안 공하다는 거요? 공하다. 공무아. 법에도 실체가 없다. 법공. 법도 공하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아쇼카 숲이 아쇼카 나무로 이루어진 큰 숲을 만났어요.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그 가운데서 아쇼카 나무 가지를 하나 딱 꺾어가지고는 아난존자에게 물었어요. 아난아. 이 나뭇가지에 나뭇잎이 많으냐? 적으냐? 했어. . 매우 많습니다. 이랬어. 아쇼카 잎이 길죽길죽한게 많이 달렸단 말이오. 그러면 내 손에 쥔 아쇼카 나뭇잎하고 저 숲에 있는 아쇼카 나뭇잎하고 어느 게 더 많으냐? 아이고 부처님 물론 저 숲이 헤아릴 수 없이 훨씬 더 많죠. 이랬어.

 

그렇다 아난다여. 내가 여태까지 너희들에게 설한 법은 내 손에 있는 아쇼카나무가지에 달린 잎과 같다면 내가 너희에게 설하지 않은 법은 저 아쇼카 숲에 있는 나뭇잎만큼 된다. 그러니까 부처님이 84천 법문을 설했지만은 그것은 부처님이 설할 수 있는 법에 비해서는 어때요? 아주 조금에 불과하다 이런 얘기요. 뭘 말하느냐? 부처님의 설할 수 있는 법에 비유해서 설한 법이 너무 작으니까. 왜 작을까? 그렇게. 아무리 거울에 물건이 만개가 비춰가지고 많이 비췄다 해도 앞으로 이 거울에 비출 가능성이 있는 것에 비하면 그건 아주 작은 거죠.

 

거울에는 무수한 물건이 비칠 수가 있다. 왜냐? 거울은 한 그림도 그리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러니까 부처님은 수많은 법을 앞으로도 더 설할 수가 있어요? 없어요? 있어. 그러면 설할 법이 어떤 게 정해져 있어요? 아니에요. 중생의 근기 따라 법이 설해진다. 부처님 당시에는 인천사람 수원사람 춘천사람밖에 없어서 동으로 가라, 북으로 가라, 서로 가라만 얘기를 했는데. 지금은 의정부에도 사람이 살아서 물으러 오면 뭐라고 할까? 남으로 가라고 설하실 거다. 그러니 부처님은 한량없는 법을 설했다 해도 맞고 한 법도 설한 법이 없다 해도 맞다 이거야. 정 반댄데 그게 같은 말이에요.

 

~ 이런 말이 있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 다른 한 문장은 그는 많은 말을 했다. 정 반대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많은 말을 했다. 이래도 말이 됩니까? 안됩니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많은 말을 했다. 의미 전달이 되요 안 돼요? 되죠. 다시 말하면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마는 그의 몸에서 곳곳에서 풍기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많은 것을 느꼈다면 그는 많은 말을 했다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정 반대되는 것도 연결하면 함께 또 의미가 전달이 돼요.

 

부처님은 한 법도 설하지 않으셨다. 부처님은 한량없는 많은 법을 설했다. 이것도 연결되는 거요. 거울은 한 그림도 그리지 않았다. 그러나 거울은 수많은 그림을 그렸다. 반대로 거울은 수많은 그림을 그렸지마는 사실은 거울은 한 그림도 그린 바가 없다. 부처님은 중생의 근기 따라 84천 법문을 하셨지마는 사실은 부처님은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다. 왜 그럴까? 무유정법이기 때문에 그렇다. 법이 공하기 때문에 그렇다.

 

옛날에 어떤 조사스님이 계시는데, 이 금강경을 탁 공부한, 금강경을 엄청나게 읽고 공부를 많이 한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물었어요. 이 지금 수행자는 글자를 잘 모르는 사람인데, 많은 사람에게 법을 설한다 하니까 이 금강경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이해가 안 된다. 이 말이오. 그는 사이비 아닌가? 싶어서 찾아와서 물었다 이거야. 선사한테.

 

당신은 어떤 법으로 다른 사람을 가르칩니까? 이렇게 물었단 말이오. 어떤 법으로 가르치느냐 이거야. 당신 무엇으로 남을 가르치느냐 이거야. 그러니까 그 선사가 저는 어떤 법으로도 남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랬어. 나는 어떤 법으로도 남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붕 떴단 말이오. 그 사람은 많은 사람을 가르치는데. 그 가르친다는 소기를 듣고 이게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가르치나 해서 물었단 말이오. 당신은 어떤 법으로 사람들을 가르칩니까? 하니까 나는 어떤 법으로도 사람들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래.

 

이 사람으로서는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단 말이오. 그래 멍해 있으니 선사가 물었어. 당신은 어떤 법으로 사람을 가르칩니까? 그러니까. 저는 금강경으로 사람들을 가르칩니다. 이래. 그래서 이 선사가 금강경은 누가 설한 겁니까이래. 그래 이 사람이 바보 같은 놈. 금강경을 누가 설한지 모르다니 말이야. 의아하지마는 그래도 대답을 했죠. . 금강경은 부처님께서 설하셨습니다. 그래 선사가 또 물어. 금강경에 보면 부처님께서는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다. 그랬는데 누가 이 법을 설했습니까? 이렇게 묻는 거요. 그래 이 사람이 앞뒤가 꽉 막혀버렸어.

 

~ 부처님이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다고 그랬는데 부처님이 법을 설했다 하면 금강경의 내용에 위배가 되죠. 그래 안 그래요? 그러지. 그럼 부처님께서 이 금강경을 안 설했다 하려니까 분명히 이 경 제일 서두에 부처님이 설했다고 나와 있어요? 안 설했다고 나와 있어요? 설했다고 나와 있지. 그러니까 금강경을 부처님이 안 설했다 함은 부처님을 저기 뭐야 금강경을 비난하는 게 되죠. 금강경을 욕하는 거 아니오. 금강경은 부처님이 설한 게 아니야 이러면 금강경을 비난하는 게 되죠.

 

부처님께서 금강경을 설했어. 이러면 누구를 비난하는 게 됩니까? 부처님을 비난하는 게 됩니다. ? 부처님은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다. 그랬단 말이야. 그러니까 콱 막혀 버렸단 말이야. 이래도 못하고 저래도 못하고. 이래도 대답 못하고 저래도 대답 못한단 말이야. 이게 선에서 책만 보고 하는 사람에게 던지는 질문이란 말이야. 이 앞뒤가 꽉 막히죠. 아는 거란 늘 이런 거란 말이오. 뭘 안다 하는 거는. 그러니 책을 덮어놓고 이 도리를 터득해야 되겠죠. 이 도리를 터득해야 된다. 그 속에 모순이 있다 이 말이오. 어제 말씀드린 데로 부처님을 불에 땠다고 난리다가 금방 자기 입으로 뭐라 그래요. 그게 어디 부처냐? 나무토막이지 이런단 말이오. 그런데 깨닫기 전에는 그 말이 두 가지 모순인 것을 알 수가 없어. 이렇게 질문을 탁 안 던지면 아무 문제가 이제까지 없었는데 이렇게 탁 뒤집어서 질문을 던지니까 자기가 생각해도 할 말이 없다. 이 말이야.

 

도대체 이게 뭘까? 부처님은 한 법도 설한 바 없다 그러니 부처님께서 금강경을 설했다 하면 부처님을 비방하는 게 되고. 금강경은 부처님께서 설한 게 아니다 하면 금강경을 비난하는 게 된단 말이오. 그러니까 입이 딱 벌어져 안 다물어진단 말이오. 거기로부터 공부가 시작된다 이 말이오. 그 뭐하고 같으냐? 서울 가는 길은 정해져 있지 않다 이러면 우리는 어떤 생각이 드느냐? 서울 가는 길은 없다 이렇게 생각이 든다. 없는 게 아니야 정해져 있지 않다니까. 정해져 있지 않다니까? ~ 그럼 아무렇게나 가도 된다는 얘깁니까이렇게 생각이 자꾸 미친다. 이 말이오.

 

우리가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보면 그냥 정해진 법이 없다. 이러면 법이 없다는 얘기인가? 정해진 법이 없을 뿐이지 법이 수많이 많다는 것인가? 이러게 생각이 자꾸 미친단 말이오. 그러나 서울 가는 길이 정해져 있지 않다. 할 때는 보세요. 서울 가는 길이 없다는 뜻이에요? 아니죠. 아무렇게나 가도 서울 간다는 얘기에요? 아니죠. 수많은 길이 서울 가는 수많은 길이 있죠? 그러나 거기에 수많은 길이 있다 해서 아무렇게나 서울 가는 게 아니란 말이오. 그러니까 정해져 있지 않다. 공하다 하는 것은 없다는 얘기도 아니고.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얘기도 아니란 말이오. 인연을 따라서 법이 정해지죠. 그러나 법이 정해진다 해서 거기에 이것이 법이다라고 할 만한 고정된 법은 없다 이거야.

 

여러분들은 누군가? 이거야. 누구라고 할 수가 없어. ? 여러분들은 인연을 따라서 어머니를 만나면 딸이라고 불리고, 남편을 만나면 아내라고 불리고, 자식을 만나면 어머니라고 불리고. 절에 오면 보살이라 불리고, 전철을 타면 승객이라 불리고, 물건을 사러 가면 손님이라 불리고. 수도 없이 불린다 이거야. 몇 가지로 불릴까? 한량없이 불릴 수가 있겠죠. 이렇게 인연을 따라서 나타나는 거요. 그러면 나는 그 모든 것이냐? 모든 것이라고 할 것이 없어. 나라고 할 만한 게 없기 때문에. 이렇게 인연을 따라서 나타나는 거다.

 

그것을 법성게에서는 뭐라고 한다고요? 불수자성수연성. 스스로의 성품을 지키지 아니한다. 이 말이 모든 법은 공하다. 자성이 없다. 무아다. 이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수연성. 인연을 따라 이루어진다. 인연을 따라서 갖가지 법이 드러난다. 한량없는 법이 드러났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실체가 없고 영원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 아무것도 없느냐? 아니다 이거야. 텅 비었다 하는 것은 거기로부터 갖가지 법이 일어날 수가 있다. 이거야. 그래서 맨 마지막에 뭐라 그랬어요? 개이무위법 이유차별이다. (35:55)

 

옛날에 어떤 스님이 열심히 기도했는데. 이 관세음보살을 열심히 찾았는데. 한 번도 관음의 진신을 친견하지 못했어요. 즉 관세음보살님을 만나본 적이 없다 이거야. 그래서 낙산사 가서 말이야. 동해 낙산사 아시죠? 고 밑에 가면 홍련암 있죠? 거기가 뭐요? 관음의 진신이 있다는데 아니요. 거기 가서 3년을 기도했어. 소원이 관음의 진신을 친견하는 거요. 그렇게 열심히 기도했는데 3년 기도가 거의 끝날 무렵. 관세음을 부르고 있는 중에 비몽사몽간에 무슨 소리가 들렸어. 저 금강산 밑에 어디를 가면 관음의 진신을 친견할 수 있다.

 

얼마나 기뻤겠어요. ~ 드디어 기도에 응답이 있구나. 이래서 바랑을 짊어지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고생고생을 해서 도달했다. 이 말이오. 그래 그 얘기한 어떤 지역에 도달해서 동굴이 하나 있는데 안에 들어가서 불러보니 아무도 없단 말이야. 그래 계속 사람을 부르니까 어떤 영감이 하나 나타났어. 그래서 물었어. 제가 관음의 진신을 친견하러 왔는데 관음의 진신이 어디 있습니까? 그 영감이 니깟놈이 무슨 그따위 신심으로 관음의 진신을 친견 하냐고 가라는 거요.

 

아니라고 나는 출가해서 10년간 계율 청정히 지키고 공부를 해 왔는데. 이번에 천일동안 관음의 진신을 친견하기 위해서 지극정성으로 기도했더니 여기 가면 친견할 수 있다. 그래 왔다는 거요. 글쎄다. 너 같은 신심 그 보잘것없는 신심 갖고 관음의 진신을 친견할 수 있을까? 마 가지. 아닙니다. 전 꼭 친견할 거라고. 그러면 여기서 저 산을 몇 개 넘고 어느 골자기를 넘고 그 위로 올라가면 어떤 영감이 하나 있을 텐데. 거기 가서 물어보라는 거요. 그래 또 물을 건너고 고개를 넘고 해서 또 그 깊은 산 속 찾아갔어.

 

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조그마한 움막 같은 게 하나 있어요. 드디어 찾았다. 하고는 땀을 뻑뻑 흘리면서 숨을 몰아쉬면서 계시오. 계시오. 하니까 누구세요? 하고 나오는데. 아주 아리따운 처녀가 나오는 거요. 깜짝 놀란 거요. 이 깊은 산 속에서. 그래 자기는 관음의 진신을 친견하러 여기까지 찾아왔지만 웬 처녀가 오두막집에서 혼자서 딱 나오니까. 이 젊은 중이 놀랐단 말이오. 그래 자기가 이러이러한 노인을 만나러 왔다. 그러니까. 그 처녀가 아~ 그러세요? 저희 아버님이시니까. 지금 나무하러 가셨으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는 거요.

 

그래서 찾긴 찾았구나 하고 있으니까. 땀은 흐르고 목은 마르고 그러니까. 물 좀 달라고 그러니까. 그 처녀가 물을 떠서 이 스님한테 줬어. 그래 그걸 받아먹으려 받으려는데. 갑자기 누가 벽력같은 소리를 지르면서 작대기를 갖고 대갈통을 때리는 거요. 이 불안당 같은 놈이 어디 젊은 아녀자를 희롱하느냐 이러면서 막 두드려 패는 거요. 얼마나 억울해요. 물 얻어먹었죠. 언제 희롱한 적 있느냐고. 요즘 말하면 희롱했다 추행했다. 이러고 두드려 패니까.

 

아니라고 변명을 하려니까. 입 뻥끗할 때마다 두드려 패는 거요. 굉장히 중요합니다. 맞으면서 아니라고 하려고 하는데 두드려 팬단 말이오. 변명하려면 두드려 팬단 말이오. 그래서 실컷 두드려 맞고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실컷 맞고도 또 거꾸로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이랬단 말이오. 그러니까 그만 두드려 패는 거요. 그래 왜 왔느냐? 그래 관음의 진신을 친견하러 왔다는 거요. 그러니까 또 작대기를 갖고 또 두드려 패는 거요. 이런 불안당 같은 놈이 네깟놈이 무슨 관음의 진신을 친견 하느냐고. 당장 가라고 두드려 패는 거요.

 

그래 막 손이야 발이야 닮도록 빌었어. 어르신이 보기에 제가 신심이 부족한 거 같지만 전 정말 친견하고 싶기 때문에. 어르신이 시키는 건 내가 뭐든지 할 테니까 좀 가르쳐 달라는 거요. 그러니 너 정말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러니까. . 죽으라면 죽겠습니다. 뭐든지 하겠습니다. 그래? 이러더니 그러면 여장을 풀어라. 그러는 거요. 그래 이제 살았다 싶어서. 이제야 내 소원이 성취됐구나 하는데. 영감이 불러서 나갔더니. 너 내 딸하고 결혼해라 이러는 거요. 이 산속에 사니까 혼자 있어서 시집도 못 가고 지금까지 있었는데. 마침 잘됐다. 네가 왔으니까 둘이 결혼해라 이러는 거요. 이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요.

 

아니 10몇 년을 출가 정진해서 정진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결혼하라니 이 산속까지 와가지고. 그래서 어르신 그건 안 된다고. 절대로 그것만은 안 되다고. 다른 건 내 시키는 대로 다 하지만 그것만은 안 된다는 거요. 그러니까 작대기로 또 두드려 패는 거요. 이놈의 자식 한 입으로 두 말 한다고 또 두드려 패는 거요. 조금 전에 야, 이놈아. 니 뭐든지 다 한다고 그랬지 않았냐고. 아이고 제가 뭐든지 다 한다는 것은 관음의 진신을 친견하기 위해서 내가 어떤 고통이라도 이겨내겠다는 얘기지. 결혼하겠다는 얘기는 아니라는 거요.

 

, 이놈아 니, 내 시키는 대로 다 한다고 그랬지 않았냐? 이거야. 뭐든지 시키십시오. 하겠다 이거야. 너 이놈아. 한 입으로 그러게 두말하기냐고. 너 뭐든지 다 한다고 그래놓고는 결혼하라니까 왜 안하냐는 거요. 아이 그건 내가 중이니까 할 수가 없다는 거요. 그거 빼놓고 다른 건 다 하겠다는 거요. 그래서 니 깟놈의 거짓말쟁이 같은 건 놔 놓을 필요가 없다. 이런 건 패 죽여야 된다고. 두드려 패고 가라는 거요. 그래 이제 양단에 걸린 거요. 관음의 진신을 친견하려면 결혼을 해야 되고. 결혼을 안 하려면 결혼 안 하고 계율을 청정히 지키려면 친견 못하고 가야 된단 말이오. 그 이거를 진퇴양난이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그래서 결심을 한 거요. 관음의 진신을 내가 그렇게 친견하려고 했으니. 여기까지 와서 물러설 수는 없다고. 결혼하겠다고. 이렇게 해서 그 딸하고 세워놓고 영감이 찬물 한 그릇 떠 놓고 너희들은 오늘부터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백년해로해라 하고. 탁 그 십 년 몇 년을 지켜온 그 계율이 그냥 일분도 안돼서 깨져버린 거요. 얼마나 허무하겠어요. 얼마나 많은 처녀들이 집에서 또 권유하고 했는데도 다 뿌리치고 여기까지 왔는데. 관음의 진신을 친견하러 왔다가 친견은커녕 계율만 파하고 죽도 밥도 안 돼 버렸어. 그래도 관음의 진신을 친견하게 해 준다니까 그걸 위안을 삼고 있었어.

 

그래 이제 신혼 방을 차려서 자라는데 잠이 오겠어요? 안 오겠어요? 잠이 안 오죠. 자기가 여지까지 살아온 과거의 그 기도하던 걸 생각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는 거요. 어쩌다 내가 이꼬라지가 됐나 싶은 게. 그래 멍하니 앉아 있으니 부인이 하는 말이. 여보,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이미 결혼식까지 해 버렸는데. 지나간 거 후회하면 뭐하냐 이거야. 여기 와서 편히 잠이나 주무시라는 거요. 그 얘기를 가만히 보니 그래.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지금 뭐 걱정해봐야 뭐하겠어? 안만 옛날 얘기해봐야. 이미 차 지나간 뒤에 손들기지. 에라 모르겠다 싶어 요 밑에 들어와서 잔단 말이오.

 

이왕지 결혼을 했으니 어떻게 됐어요? 거 뭐 계율은 이미 깨진 거고 하니까. 부부의 정이라도 나눠야 될 거 아니오. 그래서 여자를 껴안으니까. 여자가 자꾸 몸을 빼는 거요. 껴안으니까 또 몸을 빼고, 껴안으니까 또 몸을 빼고, 껴안으니까 또 몸을 빼고, 이렇게 이불 밑에서 밤새도록 밀고 당기고 싸움이 벌어진 거요. 그러면서 이 스님은 몸에 열이 확 달아오른 거요. 그러고 하는 중에. 그래서 완전히 어떤 성적인 그런 욕망이 머리끝까지 달아올라서 불덩어리가 돼 있는 그런 찰나에. 자꾸 빼고 당이고, 빼고 당기고, 손이 점점점점 가슴으로 해서 점점 내려가서 아랫도리 가서 딱 닿았는데 벌떡 일어나 버렸단 말이오. 아이~ 여자가 여자가 아닌 거요. 곤녀라 그러죠. 그래 앉아서 한숨을 푹~ 쉬는 거요.

 

? 결혼까지 해서 파계까지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또 여자도 아니오. 그러니 이게 인생이 뭐가 되는 거요? 신세 완전히 버린 거 아니오. 그래 낙담을 탁하고 있단 말이오. 그래 부인이 또 위로했어. 여보여보, 이왕지 이렇게 된 거 어떻게 하느냐고. 내가 당신을 속이려고 그런 것도 아니고, 내 몸이 이런 걸 어떡하느냐고. 그렇게 부인이 따뜻하게 달래주니 또 그것도 엎질러진 물인데 어떡해. 물리지도 못하고. 그래서 살게 됐어. 그런데 영감이 일을 엄청나게 시키는 거요. 도저히 견뎌내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시키고 그 나무를 지고 저 30리 길에 마을에 가서 팔아서, 그걸 양식을 사 와서 먹여 살리는데.

 

관음의 진신을 친견하기는커녕, 계율은 파하고, 그다음에 그렇다고 부부의 정도 못 나누고, 죽도 밥도 안 되고 뼈 빠지게 일만 하고, 그러니까 이 두 부녀를 먹여 살리는 완전히 종이야. 머슴이야. 그렇게 참았는 이유는 오직 관음의 진신을 친견하기 위해서. 이 과정에서 몇 번의 아까처럼 그런 고비들이 있었는데. 그걸 어쨌든 이 부인의 얘기를 듣고 또 뉘우치고 뉘우치고 해서 그렇게 해서 넘어갔어. 일년지나 갈려고 했는데. 일 년만 더 기다려 본다 하고 또 일 년 지나고, 이년 지나고 갈려다가 삼 년만 해서 그때는 완전히 갈려니까 부인이 또 뭐라 그래서 참아서 삼 년까지가 됐는데.

 

이 사람이 결심을 딱 했어. 이번에 삼 년이 되도 안 가르쳐 주면 이제는 가는 수밖에 없겠다. 이렇게 딱 결심을 했어. 아무리 말려봐라. 부인 아니라 영감 아니라, 뭐라고 꼬셔도 이제는 나 다시는 안 속는다. 이 많이 속았으면 됐지. 딱 결심을 해서 삼 년이 딱 돼서 아무 소식이 없기에 인사를 하고 가겠다고 그랬단 말이오. 자기는 또 잡으면 잡을 거에 대비해 갖가지 결심을 하고 갔는데. 아 그러냐고 잘 가라고 이러는 거요. 하나도 안 잡는 거요. 부인도 아무렇지도 않게 잘 가라고 그러는 거요.

 

그러니까 마음이 억수로 섭섭한 거요. 사람이 이럴 수가 있느냐 이거야. 삼 년이나 같이 살았는데. 섭섭한 마음 하나 안 내고 그냥 나뭇가지 바람 지나가듯이 그냥 지나가는 거요. 결국은 내려오면서 자기는 정이 들어서 그 참 고통도 겪었지마는 어느덧 정이 들어서 돌아보고 돌아봤는데 아무 그런 뭐 반기는 것도 없고 환송도 없고. 그래 쓸쓸한 가슴을 안고 내려왔어. 내려와서 그 입구에서 만난 노인을 만난 거요. 그래 노인이 하는 말이 관음의 진신은 잘 친견을 했는가? 이래.

 

그러니 관음의 진신을 친견하기는커녕, 계만 파하고, 뚜드려만 맞고, 일만 뼈 빠지게 하고, 세월만 보내고, 죽도 밥도 안 되고 신세만 조졌다. 이거야. 그래 불평을 했어. 그랬더니 그 영감이 주장자를 갖고 대가리 통을 딱 때리면서 이 멍청한 놈, 너 같은 놈은 눈이 있어야 볼 줄도 모르고, 귀가 있어야 들을 줄도 모르는 놈, 너 같은 놈은 죽는 게 낫다. 네가 살면 뭐하냐고. 야 이놈아 네가 3년 동안이나 관음의 진신하고 같이 살면서도 관음의 진신을 못 봤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는 거요. 아이 그 얘기를 들으니까 정신이 번쩍 든 거요.

 

그럼 그 영감은 누구냐? 그 영감이 문수보살이라는 거요. 그럼 당신은? 나는 보현보살이다. 그러고 휙 가버리는 거요. 그래서 이 스님이 또 기어 올라갔어. 기어 올라가 봤더니 아무것도 없는 거요. 흔적이 없는 거요. 그래서 딱 이렇게 실망을 해서 앉아 있으니. 자기 부인이 저 아래 냇가에서 빨래하고 있어. 얼마나 반가워. 막 달음질을 쳐 냇가에 갔더니. 또 없어져 버렸어. 파랑새가 돼서 펄펄펄펄 날아가는 거요. 그래서 그 파랑새를 따라서 절벽을 절벽을절벽을절벽을 기어 올라가니까. 파랑새가 어떤 굴속으로 쑥~ 들어가는데.

 

거기를 올라가 보니까 조그마한 동굴에 불상이 딱 모셔져 있는데 보니까 관세음보살상이오. 보니까 자기 부인하고 얼굴이 똑 같애. 그리고 옆에 보니까 거기 일기책이 있어. 그 일기책을 이렇게 넘겨보니까. 신라시대에 보덕이라고 한 스님이 관음기도를 하면서 관음의 진신을 친견하려고 간절한 기도 발원을 하고 해 놓은 그런 글이 쓰여 있는 거요. 그런데 이 스님은 고려시대 때 얘기거든요. 5백 년 뒤에 다시 태어나서 온 거요. 여기를.

 

그래서 이 신라시대 때 그 스님 이름이 보덕이오 보덕. 그래서 이 이런 내용이 들어있는 게 보덕각시전이에요. 보덕각시전인데 이게 보덕암이에요. 금강산에 가면 지금도 이게 있습니다. 절벽이 있기 때문에 굴이 기둥을, 옛날에 외기둥을 세워 그 위에다가 절벽하고 이래 연결시켜 집을 지어 놓은 거요. 금강산 가면 이거 꼭 봐야 돼.

 

이게 뭘 말합니까? 자기는 관세음보살이다. 하면 관세음보살은 이런 사람이다 하는 자기상을 그려놓고 찾았죠? 그러니까 관세음보살이 나타나도 그건 관세음보살이 아니죠. 그러니까 이 상을 깨뜨리는 과정에서 벌써 많이 깨뜨려 주잖아. 그죠? 뭐든지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 그래놓고. 죽으라면 죽겠다 그래놓고. 결혼하라니까 안 하겠다. 자기를 고집하죠. 그래서 왜 안 하려 그러냐? 나는 계율을 지켜야 되기 때문에 안 하겠다. 이렇게 우겼단 말이오. 그래서 계율을 지키라고 뭘 만들어 줬다? 부인을 고녀로 만들어 줬죠?

 

그러니까 탁 손을 대 보고 벌떡 일어나서 춤을 덩실덩실 추면서 야~ 결혼도 하고 계율도 지키고 팔자 피었구나. 이래 생각해야 되는데. 결혼한 거에 또 그전에는 계 지킨다는데 집착을 해서 결혼을 거부했다가, 이번엔 결혼했다는 거에 집착해서 여자가 여자기술을 못 한다는 거에 신세 한탄을 했단 말이오. 이게 그 내용 중에 중간에 계속 그런 게 나옵니다. 이런 모순이. 그런데 그 부인이 그럴 때마다 위로해서 깨우칠 기회를 줘도 이 중은 도대체 깨우치는 거 하고는 거리가 먼 거요. 이게 집착이죠. 이쪽으로 가라 하면 저쪽에 가서 탁 붙고, 이쪽으로 가라 하면 이쪽에 가서 탁 붙고. 그러니까 놔버려야 하는데 놓지를 못한다.

 

~ 이런 얘기들도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무유정법이 뭐냐? 이거야. 이것이 법이라고 정해져 있는 게 아니에요. 그것은 법이 없다는 것도 아니고, 함부로 해도 된다는 얘기도 아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중생의 이익을 따라 즉, 중생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 인연을 따라서 갖가지 몸을 나퉈서 중생을 구제한다. 이 얘기는 아마 우리 모두에게 해당될 거요. 그죠? 어머니가 없으면 어머니가 없다고 울고, 있으면 있다고 잔소리한다고 시비하고, 처녀 때 혼자 살 때는 결혼할 대상 없다고 찡찡대다가, 결혼해놓고는 못살겠다고 징징대고, 또 애기 없다고 징징대다가 낳아 놓으면 원수 낳아 놨다고 징징대고. 늘 그러죠. 집에 있을 때는 저 산에 어디 가서 좀 했으면 좋겠다 하고, 산에 가면 또 파리 모기 때문에 못살겠다고 집에 가야 되겠다고 그러고. 늘 그래요 우리는, 혼자 있으면 혼자 있어서 좋고, 둘이 있으면 둘이 있어서 좋고, 산에 가면 산이 좋고, 집에 오면 집이 좋아야 된단 말이오.

 

제가 옛날에 봉암사 부목으로 있을 때 거기 장작 패고, 밭매고 불 때고 이러고 있으면 신도님들이 차를 탁 몰고 오지 않습니까? 오시면 저는 그때 딱 목표가 뭐냐 하면요. 이 돈을 현금을 내가 안 가지고 있는다. 그리고 때아닌 때에 먹지 않는다. 이렇게 결심을 하고 공부를 하는데. 내 공부를 위해서 말이오. 왜냐하면, 도회지에 살면 돈이 호주머니에 없으면 늘 불안하죠. 그리고 또 도회지 살면 뭐 커피 마시고 뭐 마시고 중간중간에 과일 먹고 자꾸 군것질하게 됩니까? 안 합니까? 하죠. 알게 모르게 한단 말이오. 그래서 딱 정해진 밥만 먹고 그다음에 일체 돈 없이 산속에 사니까 가능하죠. 그때.

 

그렇게 하려고 하고 있는데, 오셔가지고는 아이고 처사님은 좋겠다. 좋겠다. 이렇게 경치 좋고 공기 좋은데. 극락이 따로 있나? 여기가 극락이지.” 이래요. 그러면 자기 집은 뭐라는 애기요? 봉암사를 극락이다 하는 사람들은 자기 집은 지옥이다. 서울은 지옥이다. 부산은 지옥이다. 이런 얘기란 말이오. 사실은. 그런 얘기하는 거 보면 아~ 저 사람은 집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겠구나. 안단 말이오. 그리고 또 뭐 쥬스다, 담배다, 또 돈이다. 이런 걸 안 받겠다는데 받으라고 굳이 갔다 넣어 준단 말이오.

 

그럴 때 제가 참 느꼈죠. ~ 이게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게 다 누구 생각이다? 자기 생각이다. 그걸 불쌍히 여기는 거는 참 따뜻한 마음이고 좋지마는 그것이 상대가 헤아려져서 도움이 필요로 한 걸 도와주는 게 아니고 필요 없다는데 막 억지로 준단 말이오. 그러니 우리가 다 좋은 생각마저도 뭐다? 자기상이다. 그러니까 보살이 화작을 한다는 것은 인연을 따라서 필요에 의해서 쓰이는 거지. 우리는 어떠냐 하면. 전부 자기 식대로 해요.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얻는 것도 자기 식이고. 주는 것도 자기 식이란 말이오. 여러분이 남편에게 늘 얻으려고만 할 거요. 또 여러분은 줄 때도 자기 식으로 줘요. 그래서 애들이 싫다는데도 자꾸 줘서 애들이 엄마 때문에 못살겠다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가출을 하죠. 안 줘서 가출하는 게 아니오. 너무 줘서 못살겠다고. 그러니까 이게 자기식이다. 이게 다 상이다. 이 상을 벗어나게 되면 필요에 의해서 우리가 쓰일 수가 있다.

 

~ 그래서 우리는 마치 물이 본래 모양이 없으니까. 그릇 따라 모양이 정해지듯이. 본래 정한 바가 없기 때문에 인연을 따라 나투 게 되죠. 그런데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해놓고 있기 때문에, 즉 상을 지어놓고 있기 때문에 인연을 따라 나툴 수가 없어. 고집하게 된다 이거야. 그 형상을 고집하게 된다. ~ 그럼 무유정법이 뭔지 이해하시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