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_법륜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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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금강경

2013. 3. 31.

출처: 정토회

 

안녕하십니까? 80페이지 펴 주십시오. 14

離相寂滅分 상을 떠나 고요함에 이른다.

爾時 須菩提 聞說是經 深解義趣 이때에 수보리 이 경 설하심을 듣고 그 뜻과 취지를 깊이 이해하고

涕淚悲泣 而白佛言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면서 부처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希有世尊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佛說如是甚深經典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매우 깊은 경전을 설하심을

我從昔來 所得慧眼 未曾得聞如是之經 제가 예로부터 얻은 그 지혜로도 아직 까지 한 번도 이와 같은 경전을 얻어 듣지 못했습니다. 부처님께 출가해서 제자가 된 이래로 저는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 얻은 모든 지혜로도 오늘 같은 이런 경전을 얻어 들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런 얘기에요.

 

世尊 若復有人 得聞是經 세존이시여 만약에 다시 어떤 사람이 있어서

信心淸淨 卽生實相 이경을 얻어 듣고 청정하게 믿는 마음을 내면 실상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 말은 실상을 깨달을 것입니다. 이 말이오. 이 경을 듣고 깨끗한 믿음을 내어 실상을 깨달으면

當知是人 成就第一希有功德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제일의 거룩한 공덕을 성취한 사람입니다. 쉽게 말하면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이 경 설하심을 듣고 깨끗한 믿음을 내어 바른 믿음을 내어 곧 진실을 깨닫게 되면 실상을 깨닫게 되면 이 사람은 제일 희유한 제일 거룩한 최고로 가는 그런 공덕을 성취 하게 된다. 이 말이오.

 

世尊 是實相者 則是非相 세존이시여, 이 실상이라고 하는 것도 곧 상이 아닐새

是故 如來 說名實相 이런 까닭으로 여래께서 실상이라 이름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경을 듣고 바른 믿음을 내게 되면 실상을 깨닫게 된다. 이런 얘기인데. 실상이라는 게 뭐죠? 실상이라는 게 뭐요? 여러분들이 꿈속에서 도둑놈에게 쫓긴다. 그러면 그 꿈속에서는 도둑놈에서 쫓기는 게 현실 같죠? 사실 같죠? 그러나 깨보면 어때요?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사실 같았는데 깨어보니 그것이 사실이 아니었단 말이오.

 

그러면 깨어난 뒤에는 그걸 뭐라 그러냐? 아이고 꿈이었구나. 이런단 말이오. 그것이 사실인 줄 알았을 때는 즉 사실이 아닌데 사실인 줄 알았을 때는 그 도둑놈에게 쫓겨서 두려움과 공포와 괴로움을 느꼈다. 그런데 눈을 뜨고 보니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사실이 아니다. 진실이 아니다. 실상이 아니다. 즉 허상이다 이거요. 그러니 허상을 허상인줄 알게 되면 괴로움이 사라져 버립니다. ~ 허상이구나. 그게 꿈이구나 하면 더 이상 도망 갈 일도 없고 괴로워할 일도 없고 두려워할 일도 없어지죠.

 

그러니 허상을 허상인줄 깨닫는 것을 이름하여 뭐라 한다? 실상을 깨달았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허상을 허상인줄 모르는 것을 우리가 허상이라고 말하고, 허상을 허상인줄 아는 것을 실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실상이라고 말하면 허상을 떠난 실상이 별도 있다. 이 세계는 허상이 있고, 실상이 있어서 허상을 거두어 내면 그 아래 실상이라고 하는 상이 별도로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어떠냐? 실상이라 하는 또 하나의 상을 짓게 된다 이 말이오. 그래서 실상을 깨닫게 된다. 실상을 깨닫게 되면 어떠냐? 모든 괴로움이 사라진다 이 말이오.

 

그런데 이 때 실상이라고 하니까 실상이라고 하는 상이 또 별도로 있는 줄을 또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 실상이라고 하는 것은 상이라고 할 것이 아닐 세. 상이 아니다. 실상은 상이 아니다 이 말이오. 이걸 잘 이해하셔야 되요. 실상은 상이 아니오. 어떤 상이 아니란 말이오. 어떤 상을 여의는 게 실상이지. 실상이라고 하는 상은 없다 이 말이오. 상을 지으면 이미 그건 뭐다? 허상이다. 이거요. 그러니 이 실상이라고 하는 것은 상이 아니다. 이 말이오. 이런 까닭으로 여래께서 실상이라고 이름하나이다.

 

아까 어떤 거사님이 말이오. 법회 끝나고 거사님들만 저 방에서 오전 강의 끝나고 둘러앉아서 한 한 시간 반쯤 얘기를 했어요.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얘기했나 봐요. 그런데 거사님들이 참 다 좋아하세요. 자기는 불교라 이러면 이상한 종교라고만 생각했는데 불교가 이런 종교인 줄 처음 알았다. 개인택시 운전 하시는 분도 운전하다 놔 놓고 오셨고, 뭐 여러 사람이 오셨어요. 그런데 한 거사님이 이런 얘기를 해요. 아상을 깨뜨린다라는 거 그건 참 어려운 일 같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이 세상에 돌아봐도 스님이든 누구든 아상 깨뜨리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거 같아요. 그러니 그거를 우리가 어떻게 깨뜨립니까? ~ 그건 불가능한 일이오. 그래.

 

그 말이 일리가 또 있는 얘기에요. 그런데 법문은 그렇게 들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들으면 죽을 때까지 법을 쉽게 말하면 자기의 것으로 못한다 이거요. 자기가 이건 나다. 이건 내 꺼다. 내가 옳다. 뭔가 이런 걸 딱 움켜쥐고 있으니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괴롭고 하다가, 그걸 탁 내려놓으니까. 아이고 그 사람 그럴 수도 있겠구나. 아상을 내려 놔야지 하는 게 아상을 내려놓는 게 아니고. 아이고 그 사람 그럴 수도 있겠다. 이렇게 생각할 때 아상이 뭐가 된다? 내려놔 지는 거요. 제 말 이해하시겠어요?

 

아이고~ 물건에 무슨 네게 내게 있겠나. 다 사람 생각이지. 요렇게 탁~ 한 생각 돌이킬 때 그때는 뭐가 없다? 아상이 없다. 고 순간에는. 고렇게 생각을 탁 바꾸게 되면 그 들끓던 분노가 가라앉게 되죠. 그러면 확실히 괴로움이 없어집니까? 안 없어집니까? 없어진다 이 말이오. 그게 짧은 시간이지만은. 그러니까 고런 걸 처음 해보면서 아~ 이게 아상이 깨지면 아상이 사라지면 아집이 놓여나게 되면 괴로움이 사라지구나. 요렇게 딱 체험을 하게 되면 그 시간을 늘리고, 그 강도를 더 누구려 뜨리면 어때요? 점점점점 자기인생이 넓어진다 이 말이오.

 

그런데 아상을 없애야 된다 하는 또 하나의 뭘 만든다? 상을 만든다. 아상을 없애야 된다 하는 상을 하나 만들어서 잣대를 딱 쥐고 천하로 돌아다니면서. 이 중은 아상이 있나 없나 한 번 보자. 한번 사흘 살아보니 어때? 에이 니도 아상이 많다. 저 중은 어떠노? 에이고~ 니도 아상이 많다. 이 중은 어떠노? 에이고~ 니도 아상이 많다. 천하에 현재는 중중에 아상을 깬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대한민국에 도인은 없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누가 인생이 좌절하게 된다? 자기 인생이 좌절하게 되고, 자기 인생이 괴롭게 된다.

 

제 말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늘 그렇게 생각한다 이거요. 법문을 듣고 아~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받아들이면, 정말 내 인생에 큰 복이 되겠구나. ~ 인생을 그렇게 살면 참 지혜롭게 살겠구나. 이렇게 해야 기쁨이 생기는데. 그걸 타인에게 적용하지 마라 하는 것은 타인이게 적용하는 것 자체가 이미 뭐가 된다? 그러면 상이 된다. 법을 남에게 적용하게 되면 이미 뭐가 된다? 법상이 된다. 왜 법을 남에게 적용하면 다툼이 일어나냐? 왜 법대로 안 하느냐? 왜 수행을 안 하느냐? 니는 왜 아직도 아상을 못 버리느냐?

 

이래서 아상을 버려라 하는 상을 하나 쥐고 천하를 다니면서 천하 중생하고 다 뭐한다? 다툰다 이 말이오. 왜 그러냐? 이미 법이라고 하는 상, 또는 아상을 버려야 한다는 상을 쥐고 다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 부처님이 이 경에서 고구정녕이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중생이 아상하면 또 아상이라고 하는 상이 있다고 생각하고. 아상을 버려라 하면 아상을 버려라하는 상을 또 꽉 쥐고 잡고. 아상을 남에게 적용하지 마라 하면 남에게 적용하지 마라는 상을 또 콱 잡습니다. 그건 무슨 얘기요?

 

다른 사람이 나 보고 자네 수행이 안됐네. 이러면 야~ 임마. 스님이 뭐라 그랬어? 야 임마 남한테 적용하지 마라 그랬지. 또 이런단 말이오. 그러니 이게 끝이 없는 거요. 끝이 없어. 그러니 이 얘기가 끝이 안 나는 거요. 한마디 하고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이라 이러고 끝내면 될 텐데. 중생이 버려라 하면 버리는 상을 만들고, 없다 하면 없는 상을 만들고, 있다 하면 있는 상을 만들고. 그렇다 이 말이오. 그래서 일체제상을 떠나야 된다. 어떤 상도 지으면 안 된다. 지금 이런 얘기를 하시려고 그러는 거다 이 말이오.

 

또 한 거사님. 질문이 이 거사님들하고 대화를 가만, 질의응답을 하면 공부가 훨씬 잘됩니다. 사실은요. 이렇게 일방적으로 얘기하는 것보다. ? 일방적으로 얘기하면 자기 식대로 듣거든요. 질문하는 걸 가만히 보면 법문을 죽어라 하고 두 시간했는데도 질문을 들어보면 어때요? 아이고 법문 뭐 하려 들었냐? 이런 생각이 내가 두 시간 무슨 얘기를 했기에 저 사람이 저런 질문을 하냐? 이런 생각이 들만큼 또 딴 얘기를 한단 말이오. 그래 이 분은 뭐냐 하면. 스님 말씀을 딱 들으면 지당하다 이거야. 스님 말씀이 인생이 꿈같다 하는 거는 자기가 생각해도 정말 그렇다 이거야.

 

? 지나간 인생을 가만히 살펴보면 정말 꿈같다 이거야. 아무리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이미 지나간 걸 가만 보면 사실 꿈같고 별 가치가 없다. 그런데 현실을 탁 보면 현실에 딱 부딪칠 때는 하나도 꿈같은 게 없다 이거야. 다 하나도 버리면 안 되고 다 그렇다 이거야. 그러니 아무리 꿈같다 한 들 어떻게 이게 되느냐? 이거야. 현실에선 아니지 않느냐 이거야. 그래서 스님이 맨 뒤에 가면 인생이 꿈같은 거다 하는 마지막 사구게를 어떻게 해석할까? 지금 고 때만 기다리고 있다는 거요. 그런데 그때 기다리려고 그랬는데 오늘 물을 시간이 있어 물었다는 거요. //

 

그런데 이렇게 인생을 살아야 됩니다. 현실에서는 정말 현실 같고, 이건 정말 귀한 거 같고 꼭 해야 될 거 같고 이렇게 생각한 것도 시간을 지나놓고 보면 별 가치가 없고, 그럴 필요가 없고 꿈같다 이 말이오. 그러니 현실에 탁 일이 일어났을 때 아~ 이건 지금 정말 이대로 해야 될 거 같지만 이것 또한 세월을 흘러 놓고 보면 역시 꿈같을 것이다. 이렇게 사물을 봐야 된단 말이오. 지나놓고 보니 꿈같지만은 현실에 딱 꾸면 꿈이 아니야 이렇게 사물을 보는 게 아니고. 지금 인생은 꼭 현실 같지만은 이것 또한 지나놓고 보면 뭐 같다? 꿈같다. 천지차이에요.

 

지나놓고 보니 다 꿈같은데 현실에 탁 오면 꿈같은 게 하나도 없어. 이렇게 보는 거 하고, 현실에서는 꿈같은 것이 하나도 없지만은 이것 또한 지나놓고 보면 다 사실은 꿈같은 거야. 이렇게 보는 거하고 차이가 뭐겠어요? 지나놓고 보면 꿈같은데 현실에는 꿈같은 게 하나도 없어. 이거는 좌절을 가져 옵니다. 아시겠어요? 안 된다는 결론을 내게 된다 이거야. 그런데 현실은 정말 변함없는 그대로 같은데 그것마저도 지나놓고 보니 뭐 같더라? 꿈과 같더라. 이것을 깨닫게 되면 현실에서 문제가 탁 부딪혀서 현실로 다가올 때도 어떤 생각이 들까? ~ 지금은 이렇게 이게 틀림없는 거 같지만 이것 또한 지나놓고 보면 어떨 거 같다? 꿈같을 거야. 이렇게 되면 여기에 대한 집착이 변해지겠죠. 그렇게 해서 하나하나 깨쳐 나가는 거란 말이오.

 

그러니까 늘 사고방식이 부정적이 돼서 안 되는 쪽으로만 계속 생각하는 거요. 그렇게 겨우 한다는 게 아이고 세상은 너무 복잡해요. 아이고~ 불교는 너무 복잡해 머리가 아파요 이래. 불경이 복잡한 것도 아니고, 세상이 복잡한 것도 아니고, 지 머리통이 복잡해요. 세상은 하나도 복잡 안 해. 부처님 말씀도 하나도 복잡 안 해. 자기 머리통이 복잡한 거요. 세상은 하나도 어렵지 않습니다. 세상을 자기가 이해가 안 되니 뭐라고 한다? 어렵다고 말하는 거란 말이오. 세상이 어떻게 어려웠다 쉬웠다 하겠어요. 세상은 그대로란 말이오.

 

이해가 되면 아~ 쉽다. 이러고, 안되고 이러면 어렵다 그러고. 다 자기에게 있어. 그러니 똑같은 경전을 들어도 이 부정적 사고방식을 하는 사람은 경전을 듣고도 꿈같다고 하면서도 안 되는 쪽으로 적용을 한다 이거야. 현명한 사람은 들으면 되는 쪽으로 적용을 한다 이거야. 제가 옛날에 어릴 때 전에 한 번 얘기했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저기 울산에 가면요. 제 국민학교같이 나왔던 내 옆집에 있는 친구가 거기 택시기사 불자택시기사회의 회장을 해요. 회장을. 국민학교밖에 안 나왔어요. 그런데 어~ 가가지고 도시에 가서 열심히 해서 불자택시회장을 하는데.

 

그래 이제 한 30년 멀리 떨어져서 살다가 자기도 불자택시회 회장하고, 스님얘기도 방송에도 나오고 하니까. 울산에 법회 오면 자기가 좀 모시겠다. 이래서 연락이 됐어. 그래 자기 집에 가서 밥도 한끼 사겠다고 해서 자기 집에 가서 밥도 먹고. 내가 옛날에 추어탕 좋아하고 삼 좋아한다고 그런 거, 시골음식을 다 차려 놔 놨다. 그래 밥을 먹으면서 나하고 여기 우리 행자님들 몇하고 같이 갔단 말이오. 그러니까 스님에 대해서 자기가 국민 학교 때 스님 밑구녕까지 다 알잖아. 그죠? 그러니까 온갖 얘기 다 할 거 아니오.

 

지금이야 법륜스님이다 하지만 국민 학교 때야 뭐 그냥 옛날 빨가벗고 놀던 그 시절 얘기니까. 그러니 얘기를 꺼내 자기가 스님이 자랑스럽다고 자기 나름대로 하는 얘기가. ~ 스님 말이야. 구슬치기 억수로 잘했데이. 이러면서. 구슬치기 잘해서 단지에다 이렇게 몇 단지로 따놨는데. 그거 요새 다 어이했노? 이래. 제가 그 얘기를 들으면서 약간 부끄러웠다 이 말이오. 부끄러웠다. 자기는 스님이 그런 것도 잘했다 그런 걸 자랑스럽게 얘기할 때 나는 좀 부끄러웠다 이 말이오. 왜 부끄러웠을까?

 

그러니까 고 때는, 고 나이 때는 구슬치기를 잘하는 게 굉장한 재주였단 말이오. 그리고 그것을 따다가 단지에다가 열 개도 아니고 백 개도 아니고 천 개도 아니고 이렇게 모으는 거는 엄청난 재산이었다. 그리고 그걸 한 50개나 100개나 잃고 오면 밤에 잠이 안 왔단 말이야. 고 때는. 그걸 가지고 다 아이들의 우열이 정해질 만큼 그렇게 중요한 문제였단 말이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지금 돌아보니 그 구슬이 어디 갔느냐? 나도 모르겠다 이거야. 구슬을 팔았으면 그게 돈이 얼마 될 거며, 거 어이 했는지. 그게 있으면 또 그게 무슨 가치가 있으며, 또 없어진들 언제 없어졌는지 나도 기억도 전혀 안 난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그때는 엄청난 가치였는데 지금 돌아보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거다.

 

그러니 그때 그것을 잘해가지고 많이 따서 저축해서 아주 잘나갔다 하지만은 지금 내가 돌아보면 그 얘기를 들으면 부끄럽다. 이거야. ? 지금 나 같으면 그걸 따도 어때? 나눠줬겠죠. 그럼 이 친구가 야~ 스님 말이야. 그때부터 틀렸다 야~. 그걸 따긴 땄는데 집에 갈 때 열 개씩 딱 나눠줬다 이러면 내가 얼마나 자랑스럽겠어. 그러면 이 자서전에도 어때요? 기록할 만한 내용이 되겠지. 그런데 자서전에 따가지고 단지에 꼬불쳐 놨다. 거 별 아름답지 못한 얘기잖아. 그렇단 말이오.

 

그럴 때 그것을 부끄러워할 것만 아니라, 그럴 때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또 지금 어떤 것으로 구슬을 삼아서 어떤 것으로 재산을 삼아서 나는 또 고이 간직하고 있으며. 남에게 나눠주지도 안하고 그걸 갖고 다투고 그걸 잃어버렸다고 밤에 와서 잠을 못 드는 일은 어떤 것일까? 분명히 그때는 그것이 아주 소중했던 것이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이거야. 그때 아이들이 나를 보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지금도 자랑스럽다고 얘기를 꺼내지만은 내가 볼 때는 지금 봤을 때 그것은 하나도 자랑스러운 게 못 된다.

 

그러면 나는 지금의 내 입장에서 또 어때요? 그때의 구슬처럼 나는 나의 재산을 삼고 나의 자랑으로 삼고하는 것들이 또 있을 거다 이거요. 내 또 나이 들어 70이 되거나 80이 돼서 눈을 감을 때가 됐을 때. 내 나이 40때나 50때 때 내가한 행동을 보고. 또 아이고 사람들은 잘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할지 몰라도 어쩌면 또 부끄러운 것이 있을 수 있을 거다. 그것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그런 것을 볼 때 현재의 자기를 돌아보는 힘이 된다. 그러면 나는 지금 무엇인가, 지금 나에게 구슬이 있다면 집착을 하겠어? 안 하겠어? 안 하겠지. 그러나 지금도 그때의 구슬과 똑같은 것이 나에게는 분명히 있을 거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가운데 그런 게 있을 꺼다.

 

또 세월이 흘러 돌아보면 어때요? 부끄러워할 것이 있을 거다. 그것을 지금 어릴 때를 돌아보면서 지금을 살펴서 지금 그것을 나누어 주고, 지금 그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지금 그런 것들로 인해서 잠못는 것을 하지 않는다면 바로 그 옛날에 저질렀던 그 일이 도리어 지금 나에게 큰 재산이 된다. 그때 작은 구슬에 집착한 거니까. 인생에 그렇게 큰 흠은 안 되지만은. 지금 내가 이 나이에 이런 위치에서 그 구슬같이 집착했던 어떤 것들은 다시 내가 세월이 흘러서 보면 인생의 큰 짐이 될 거도 있을 거다. 이렇게 돌아보는 게 중요하다 이 말이오.

 

그러니 부처님께서 늘 하시잖아요. 우리는 화살을 맞지 않으면 좋지만은. 그러나 제1의 화살을 맞았거든 제 이의 화살은 맞지 마라 이거야. 한 번 그런 것들을 깨우쳤거든 다음부터는 그런 일을 저지르지 마라. 이게 현명한 자다. 그런데 우리들은 제1의 화살이 제 이의 화살을 유발하고, 2의 화살이 제3의 화살을 유발한다. 친구에서 돈을 빌려줘서 떼었거든 그거로 끝내라 이거야. 그거로 인해서 잠 못 들어 원한사고, 친구 잃고, 부부싸움 하고, 동창회 말썽 일으키고 온갖 것들의 부작용이 그 이후에 계속된다. 이게 어리석다 이거야. 어리석었을 때 어리석은 줄을 깨닫게 되면 그걸로 끝난다 이거야.

 

어리석었을 때 어리석은 줄을 모르게 되면 어떠냐? 그것이 끝도 없이 계속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늘 이렇게 상에 집착하니 부처님께서 뭐라고?

是實相者 則是非相 是故 如來 說名實相 수보리야 실상이라 하니 또 실상이라고 하는 상을 네가 만들면 안 된다 이 말이죠. 실상이라는 것은 상이 아니라 이런 까닭으로 여래께서 실상이라 이름한다 이 말이오.

 

世尊 我今得聞如是經典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얻어 듣는다. ? 이와 같은 경전을. 제가 지금 이와 같은 경전을 얻어 듣고

信解受持 不足爲難 _믿고 해_이해하고 수_받아 지닌다 이 말이죠. 믿고 이해하고 받아 지니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가 않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수보리는 원래 총명한 사람이죠. 또 부처님께 출가해서 20년이나 수행정진을 지금 했다 이 말이오. 그런 수보리도 이 일체 상을 떠나는 그런 가르침을. 다시 말하면 붓다라고하는 상도 지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그 그것을 오늘에야 깊이 깨달았다 이거요.

 

그러면서 스스로 고백하기를 제가 과거에 얻어듣고 깨쳤다고 하는 그 모든 것들로도 오늘의 이 깨달음에 비추어 본다면 그것은 마치 반딧불 같은 거다. 그렇지만은 이 말이오. 그렇지만은 그래도 부처님이 계시고, 저는 부처님 당대에, 그리고 20년이나 수행하는 제가. 또 해공제일이라는 제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오늘 이와 같은 것을 깨닫기는 그래도 어렵지 않다 이 말이오. 가능한 일이다 이 말이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저 미래세에 부처님도 아니 계시는 세상에, 오탁악세에, 갖가지 욕망에 사로잡힌 그 중생들이 이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얻겠느냐? 이 경전을 얻어 듣고 믿고, 의지하고 믿고, 이해하고 받아 지닐 수가 있겠느냐 하는 이런 우려가 생겼다. 의심이 생긴다.

 

그러나 앞에서 이미 6분에서 부처님이 그런 얘기를 하니까. 그런 소리 하라 그랬어? 하지 마라 그랬어? 하지 마라 그랬지. 무슨 그런 소리 하느냐? 말세가 어디 있고 선세가 어디 있냐? 한 생각 돌이키면 부처의 세계가 되고, 한 생각 어리석으면 어때요? 말법 중생이 되는 거지. 이미 부처님께서 이렇게 한 번 질타를 하신 적이 있단 말이오. 그러니 만약에 말세에도 이런 가르침을 듣고 깨닫는 중생이 있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희유한 사람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거요. 그 말은 그만큼 깨닫기가 어렵지 않겠느냐? 이런 얘기를 하는 거요. 앞에서도 그런 얘기가 나왔죠? 부처님께서 뭐에요? 그런 사람은 일불, 이불, 삼사오불, 부처님께만 공양을 올린 게 아니고 그죠? 무량천만불소에 공양을 올리고 수행정진을 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 가르침을 들으면 단박에 청정한 믿음을 내리라. 6분에 그런 얘기가 나오죠. //

 

若當來世後五百歲 其有衆生得聞是經 信解受持 제가 이 경을 듣고 믿고 이해하고 받아 지니기는 그렇게 어렵지 아니하려니와 만약에 저 내세 오백 년 후에 어떤 중생이 있어서 이 경을 얻어 듣고, 믿고 이해하고 받아 지니면

是人 則爲第一希有 何以故 이 사람은 곧 제일 거룩한 것입니다. 어찌한 까닭이냐

此人 無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 그는 아상도 없고 인상도 없고 중생상도 없고 수자상도 없는 사람이니

所以者何 我相 卽是非相 人相 衆生相壽者相 卽是非相 그는 아상도 없고 인상 중생상 수자상도 상이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아상이라 하지만은 아상이라 할 상도 없고 인상중생상수자상이라고 하지만은 역시 거기에도 상이 없다.

 

~ 어떤 사람이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서 화내고 짜증내면 뭐라고 그래요? 야 이놈아 니가 지금 아상을 갖고 있느니라. 아상을 버려라. 이렇게 이름하지. 그에게 아상이라고 하는 어떤 상이 있느냐? 그렇지가 않다. 아상이라고 하는 상이 있다면 그는 아상을 버릴 수가 없다. 그가 그 산을 보고 동산이다 하고 고함을 지대면 그러면 그 산은 정말 동산이냐? 이거야. 그렇지가 않다. 이름하여 우리가 상에 집착했다. 이렇게 말하지. 상이라고 할 것도 없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아상아상하지만은 아상이라 할 상도 없고 인상중생상수자상이라고 하지만은 거기에도 또한 상이라고 할 것이 없다.

 

이 세상에 그 어떤 것으로도 뭐를 지으면 안 된다? 상을 지으면 안 된다. 그래서

何以故 離一切諸相 일체의 모든 상을 떠나면, 일체의 모든 상이라는 것은 어떤 상도 용납이 안 된다 이 말이야. 일체의 모든 상을 떠나야

則名諸佛 곧 모든 부처라 이름한다. 이 말이오. 그러니 앞으로 우리가 돌아가서 반야심경 배울 때 한 번 돌아가 봅시다. 오온이 모두 공 하다는 것을 조견, 깨달으면 조견오온 개공하면. 그러니까 모든 것이 공 하다는 것은 상이 있다는 거요 상이 없다는 거요? 상이 없다는 거죠. 상 없음을 안거죠. 조견오온 개공하면 도 일체고액이니라.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느니라. 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뭐요? 부처가 되느니라. 이 말이죠.

 

또 뒤에 가면 원리전도몽상구경열반. 전도몽상. 뒤집어진 잘못된 생각이 뭐에요? 상을 짓는 게 잘못된 뒤집어진 생각이죠? 상을 떠나게 되면 원리제상이다. 원리전도몽상 하게 되면 뒤집어진 잘못된 생각을 떠나게 되면 즉, 모든 상을 떠나게 되면 구경열반이다. 마침내 열반에 이르게 된다 이 말이 뭐요? 곧 부처를 이룬다. 이런 말 하고도 같겠죠? 부처를 본다. 다시 앞으로 금강경으로 돌아오면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이다. 모든 형상이 다 허망한 줄을 알게 되면 곧 부처를 본다 이 말이오. 그걸 한 번 더 되풀이 한 게 약견제상비상이면 모든 상이 상아닌줄을 알게 되면. 뭐요? 즉견여래다. 여래를 본다. 즉 부처를 이룬다 이 말이죠?

 

여기선 뭐요? 離一切諸相리일체제상 則名諸佛즉명제불이다. 모든 상을 떠나게 되면 그 이름을 부처라고 한다. 이 말이오. 다 같은 뜻입니다. 그러니까 꿈을 탁 깨면서 뭐고? 아이고 꿈이구나 이 말이오. 그 꿈속에서 만난 것은 상이죠. 그런데 꿈을 딱 깨고 보니 그건 뭐요? 허상이다 이 말이오. 상이 아니란 말이오. 아이고 꿈이구나. 상을 상 아닌 줄을 알게 되니 뭐 한다? 모든 괴로움은 사라진다. 이런 얘기요.

 

佛告須菩提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시되

如是如是 그러하고 그러하다. 네가 말한 그대로다. 아이고 똑똑다. 이 말이오.

若復有人 得聞是經 만약에 다시 어떤 사람이 있어서 이 경을 얻어 듣고,

不驚不怖不畏 當知是人 甚爲希有 (놀랑 경)놀라지 않고 (겁낼 포)겁내지 않고 (두려울 외)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이 경의 말씀을 듣고 놀라지 않고 겁내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매우 희유한 사람이다.

 

그러니 수보리는 이 경 설하심을 듣고 어떻게 하면? 信解受持신해수지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제일 희유한 사람이다. 이렇게 말했죠. ~ 그 말씀을 듣고 청정하게 믿고 바르게 이해하고 받아 지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제 일로 희유한 자이다. 최고로 공덕이 있는 자이다 이 말이오. 그랬더니 부처님께서 그렇고 그렇다. 그렇고 그렇다 하시면서 부처님은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뭐라고 한 술 더 떴다? 야 이놈아. 신해수지는 못할 지라도 뭐만 해도? 거부반응만 안 일으켜도. 아시겠어요? 법문 듣고 에이그~ 이렇게 거부반응만 안 일으켜도 뭐다? 희유한 공덕을 쌓은 자다.

 

그런데 사실은 같은 말이에요. 믿음이 없으면 자연적으로 무슨 반응이 일어난다? 거부반응이 일어나. 어떤 거부반응이 일어날까? ~ 제법이 공하다 하면 아까 그 거사처럼 그러면 내가 지금 남편을 미워했는데 스님 말씀대로 하면 남편을 미워할 것도 없고 미워해서도 안 된다면 그럼 내가 지난 20년 동안 미워했는데 그 미워할 일이 없다면 앞으로 무슨 일 할꼬? 걱정된 사람 많아요. 밥 먹고 내~ 미워하고 살았는데. 미워할 사람이 없어진다면 뭘 해야 될지 모르는 사람이 많단 말이오.

 

또 저런 사람을 그냥 놔두면 세상이 어떻게 되나 이거야. ~ 지난번에도 얘기하니, 제가 이렇게 말했죠. ~ 성폭행이라고 하는 것도 잘 살펴봐라. 그 사람이 나를 폭행한 거냐? 내가 폭행을 만든 거냐? 이랬더니 그 사람이 나를 폭행했죠. 사랑하는 사람하고 키스를 하면 사랑을 받은 거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하고 키스를 하면 성추행을 당한 건데. 내 마음이 어떠냐에 따라서 똑같이 키스를 해도 사랑을 받기도 하고 성추행을 당하기도 하는데. 내가 만드냐? 그 사람이 한 거냐? 그랬더니 질문이 그리 되면 세상남자가 다 그 짓 하면 어떻게 하느냐 이거야. 걱정이 되죠. 두렵단 말이오. 그럼 큰 일 나잖아요.

 

지하철이나 아무데서나 길가다가 잡고 키스를 하면 큰일 나잖아요. 걱정도 팔자요. 어떤 남자가 당신 같은 여자보고 그렇게 해줄 남자가 누가 있다고? 왜 밥 먹고 왜 그렇게 할 일 없는 짓을 할까? 가끔가다 미친 사람이나 그러지. 이런 게 다 뭐요? ,,외에 속합니다. 아시겠어요? 그리 되면 세상이 어떻게 됩니까? 옳고 그른 게 없으면 그럼 세상 지 맘대로 해도 된다는 얘기 아니오? 칼로 가 팍 찔러 죽여 버려도 죄 없는 거요? 이런 식으로 되죠. 아이고 아이에게는 너무 집착하지 마시오 이러면. 그냥 내버려 두란 얘기에요? 학교 안가도 놔둘까요? 집 나가도 놔둘까요? 이런 식으로 자꾸 생각하지.

 

이게 뭐냐? 그러면 세상이 금방 망할 거다. 그러면 안 된다 이 말이오. 부처님 말씀이니까 반발하기는 어려우니까. 현실을 들어서 이렇게 거부를 하는 거요. 사실은 이것이 두려워하고 겁내고 놀라는 거요. 실제로 두려움 다 그렇잖아. 마음이 그죠? 마음이 다 그렇게 된단 말이오. 아이고 그리 되면 이 어이되노? 이 세상이 발칵 뒤집어지는 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자기 인생도 못사는 게 세상걱정은 참 많이 해요. 왜 웃어? 세상걱정은 또 그렇게 많이 하면서도 세상을 위해서는 눈곱만큼도 하려고 안하고 자기 이익만 챙기면서 말이야.

 

그러니 그 가르침을 자기를 탁 들어보면 야~ 그러면 정말 내가 해방이 될 수 있구나. 그러면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가 있구나. 아이고 뭐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다면 내 몸을 누가 만진다고 해서 내가 더러워지는 거 아니네. 그럼 옛날에 누가 내가 어릴 때 누가 날 만져서 나는 늘 몸이 더러워 졌다고 생각했더니. 이 쓸데없는 생각이잖아. 이렇게 해서 자기가 탁 바로 해방이 될 수 있는데. 그런데 자기를 향해 안 받아 들이고, 그럼 그 자식은 그러면 어떻게 벌을 안주고 놔둬야 되? 이런 생각부터 먼저 한단 말이오.

 

~ 그러니 이렇게 거부반응만 안 일으켜도 이 말이에요. 이걸 듣고 아~ 그럴 듯하다. ~ 그럼 좋겠구나. ~ 그러면 되겠네. 머리가 이리 돌아가야 되는데. 그럼 어떻게 되노? 그럼 세상이 큰 일 나잖아. 중 저놈의 시키 지가 가서 한 번 해 보라 그러지. 그런 소리 하는가? 이런 생각이 자꾸 머리에서 돌아간다 이 말이오. 돌아가는 사람 많지? 그리고 또 여기서는 되는데 집에 가서는 안 되는데. 집에 가서는 집에 가서 걱정해야지. 여기서부터, 여기서 되면 아~ 집에서는 안 되더니 법문 듣는 지금은 되요? 안 돼요? 된다. ~ 지금은 되구나. ~ 지금이 된다는데 기뻐야 돼. 집에 가서 안 될 때는 다시 가서 거기서 되는데 왜 여기선 안 될까? 이렇게 생각해야 된단 말이야.

 

여기서 앉아서 벌써 여기서는 되도 집에 가선 안 될 거야 이래. 될 거야 하고 가도 안 될 확률이 높은데, 안될 거야 하고 갔는데 될 이가 있겠어? 나는 안 될 거야 이렇게 끊임없이 암시를 주고 최면을 걸어가는데 어떻게 되겠어? 이게 부정적 사고란 말이야. 매사에 안 돼. 안 돼. 나는 안 돼. 세상 안 될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거요. 이래서 환경을 위해서 어떻게 하자 어떻게 하자 하면 아이고 내 혼자 한다고 그게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지구상 사람들이 다 그런데 그 한두 명 한다고 되요? 한두 명 절약한다고 되요? 나 혼자 차 천천히 몬다고 되요? 이런 생각이란 말이오. 모든 사람이 다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안 되는 거요. 모든 사람이 다 아~ 나부터 하자. 이렇게 생각하면 금방 되죠.

 

그러니 자기가 어떻게 할 거냐를 생각하지 않고 늘 남 걱정을 해. 왜 그럴까? 보살이라서 그렇다. 왜 웃어? 보살이라 그러니 좀 찔려요?

불고수보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하되 그러하고 그러하도다. 만약에 다시 어떤 사람이 있어서 이 경 설하심을 듣고 놀라지 아니하고 겁내지 아니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당지시인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매우 희유한 사람 거룩한 사람이다 이 말이오.

 

何以故 어찌한 까닭이오.

須菩提 如來說第一波羅蜜 卽非波羅蜜 是名波羅蜜 수보리야 여래가 제일바라밀을 말씀하심은 곧 제일바라밀이라 할 것이 아닐 세. 그 이름이 제일바라밀이니라. 경을 읽을 때 이럴 때 경을 하나하나 해석을 하면 문자에 매어 해석하는 사람은 좀 당혹스러워요. 그냥 넘어가면 괜찮은데. 그게 무슨 말이오? 놀라지 않고, 겁내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제일 희유함이다 이랬으면 우리가 생각 할 때는 뒤에 논법이 어떻게 돼야 되요? 이 사람은 심히 희유한 사람이다 이랬으니까. 희유하다고 하는 것은 희유할 것이 없을 새 그 이름이 희유하다 이러면 말이 되는데.

 

갑자기 무슨 말이 튀어나왔어요? 제일 바라밀, 비제일 바라밀. 시명 제일 바라밀 이러니까. 이 앞에 있는 제일바라밀이라는 얘기도 없었는데 갑자기 제일바라밀은 제일바라밀이 아니고 그 이름이 제일바라밀이다. 이러니까 글자 하나하나 따져서 하는 사람한테는 이게 도대체 뚱딴지 같이 왜 갑자기 튀어나왔나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 앞 문장을 보세요. 수보리는 지금 신혜수지하는 사람에게 뭐가 있다? 공덕이 한량없다. 이렇게 말했죠. 그러니 부처님은 거기서 한 번 더 나가서 두려워하지 않고 겁내지 않고 놀라지만 안 해도 어떻다? 그 공덕이 한량없다고 말한단 말이오.

 

그러니까 두 개가 같이 딱 문짝이 돼서 이 글이 나간단 말이오. 그러니까 앞에 뭐라 그랬어요? 신혜수지하는 사람은 어떻게 한다? 제일 희유한 사람이다 이 말이죠. 제일 바라밀을 뭐한 사람이다? 성취한 사람이다. 이렇게 돼 있으니. 여기도 똑같이 계속 글을 쓴다면 지금 생략돼서 그런데. 놀라지만 안 해도 어떤 사람이다? 제일 바라밀을 성취한 사람이다. 요렇게 쓰여져야 된단 말이에요. 그래 놓고 그 제일 바라밀에도 또 상을 낼까 싶어서 제일 바라밀이라 하니까. 또 요게 제일바라밀이다하는 상을 지으면 안 된다 이 말이오. 제일 바라밀이라 할 때도 제일바라밀이라는 어떤 실체, 어떤 상을 지어서는 안 된다. 어떤 실체가 있어서가 아니다. 이 말이오. 그 이름이 제일바라밀이다. 이런 얘기에요. //

 

그러니 어떤 것에도 상을 지어서는 안 되고 어떤 것에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하니까 늘 우리는 오온으로 이루어진 이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이것에 대한 집착이 떠날 수가 없죠. 그러니까 수보리가 마음속으로 의심을 하되 이 몸에도 그러면 실체가 이 몸과 마음, 나에게도 실체가 없는 거냐? 여기도 집착 할 바가 못 되느냐?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부처님께서 당연히 그렇다 이 말이죠.

 

須菩提 忍辱波羅蜜 如來說非忍辱波羅蜜 是名忍辱波羅蜜 그래서 부처님께서 수보리야. 인욕바라밀이라는게 뭐요? 인욕이라는 게 참는 거 아니오. 그죠? 참아서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 인욕바라밀인데. 참아서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은 참을 것이 있어서 참는 거 갖고는 안 된다. 참을 것이 없어서 그 이름이 인욕바라밀이다. 참을 것이 없어야 진정으로 참는 것으로 해서 바라밀의 세계, 괴로움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참을 것이 있으면 바로 참는 것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괴로움이다 이 말이오. 참는다는 것은. 그것을 부처님이 자기의 경우에 빗대서 다시 설명을 하고 있어요.

 

何以故 須菩提 어찌한 까닭이냐 수보리야

如我昔爲歌利王 割截身體 我於爾時無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 내가 옛적에 가리왕으로부터 (베일 할)(잘릴 절) 베이고 잘린다. 뭐가? 신체를. 이 몸은 신체를 베이고 잘렸을 때도 내가 그때에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었더니라.

何以故 我於往昔節節支解時 왜냐하면 내가 그 옛날에 사지가 다 절절, 전부 마디마디 잘렸을 때에

若有 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만약에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었다면

應生嗔恨 마땅히 (성낼 진) 성내고 원한을 품었을 거다. 그런데 부처님은 과거에 원한을 품었어요? 안 품었어요? 원한을 하나도 안 품었어. 그것은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須菩提 又念 過去於五百世 作忍辱仙人 수보리야, 과거 오백세. 할 때 이때 세 자는 틀립니다. 이거는 생을 말하는 거요. 이 세 자를 쓸 때는 생을 말하는 거요. 앞에 세 자를 쓸 때는 년을 말하는 거요. 후 오백세 할 때 세 자는 오백 년을 말하고 여기서 오백세 할 때 세 자는 오백 생을 말하는 거요. 내가 과거 오백생동안에 오백 생을 생각해 본다. 돌이켜 볼 때 인욕선인을 지었다. 인욕선인으로 있을 때

 

於爾所世 無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 그 생에 아상도 없고, 인상도 없고, 중생상도 없고, 수자상도 없었느니라. 부처님이 과거 생에 이 보살행을 행하실 때 한 보통 오백 생이라 그러거든요? 몇 개 남아있다 그랬어요? 547개의 기록이 남아있다 그랬잖아요. 오백 생 동안 오백 생을 거듭해 가면서 보살행을 행할 때. 그때 갖가지 자기를 희생하고 봉사했기 때문에 그걸 그 때의 보살의 행을 인욕선인이라 그라. 부처님이 과거에 인욕선인으로 있을 때 이 말은 보살행을 행하실 때에 이 말이에요. 그때 우리가 아는 것만 해도 벌써 자~ 비둘기에게 자기 몸을 비어준적도 있죠. 사슴으로 태어나서 애기 밴 사슴을 살리려고 자기가 대신 죽으러 간적도 있죠. 이렇게 여러 얘기가 있는데 여기 가리왕 얘기도 그 하나에요.

 

이 가리왕 얘기는 뭐냐 하면 부처님이 과거생에 수행자로 있을 때 말이오. 숲 속에서 탁 앉아서 늘~ 이렇게 정진을 하고 있는데. 마침 그 나라왕이 가리왕인데. 가리왕이 궁녀들을 거느리고 그 숲에 수행하는 그 숲에 사냥을 나왔어요. 그래서 말달리고 활 쏘고 하면서 짐승들을 많이 잡아 구워서 맛있게 술하고 해서 탁 실컷 먹고는. ~ 봄날에 따뜻한데 배는 부르겠다. 한잔 먹었겠다 하니까 잠이 솔솔 올 거 아니오. 그러니까 나무 밑에서 잠을 잤단 말이오. 궁녀라는 것은 늘 임금 옆에 시녀라는 것은 붙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죠? 늘 대기해 있어야 된단 말이오.

 

그런데 임금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자니까 지루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지루 하단 말이오. 또 누가 궁에서처럼 감독하는 사람도 없고. 그러니까 전부 임금 옆에서 자는 거 지켜보고 있다가 계속 코를 골고 자니까 자연적 지루하니까 날은 따뜻하고 좋으니까 이 자연으로 눈이 돌아갔단 말이오. 그래서 그 풀밭에 보니까 예쁜 꽃들도 많이 펴있고 그 다음에 나물들도 많이 나 있단 말이오. 그러니까 하나하나 임금 곁을 떠나서 꽃도 꺾고 나물도 캐고 이렇게 해서 그 주위를 자꾸자꾸 멀어졌어요. 그런 걸 하다 보니까. 저쪽 조금만 더 나아가니까 어떤 수행자가 탁 선정에 들어있었단 말이오.

 

그러니까 이 여자들이 인도에서는 수행자들을 늘 존경하지 않습니까? 그죠? 수행자를 보면 참 재수가 좋다. 우리가 말하면 그렇단 말이오. 그러니까 그 수행자한테 뭔가 공양을 올리고 싶단 말이오. 그러니까 부처님이 공양을 받았으니까 그 남은 음식을 가져가서 수행자한테 뭔가 공양을 올리고 싶단 말이오. 그래서 남은 음식을 가져가서 수행자한테 공양을 올리고 절을 했단 말이오. 그러니까 부처님이 공양을 받았으니까 설법을 해 줬단 말이오. 그러니 궁녀들도 살면서 고민이 있을 거 아니오. 그러니까 인생에 대해서 조용히 얘기를 해주니 정말 궁 안에서 듣고 보도 못하는데 정말 감로수와 같은 그런 법문을 듣고서는 전부 넋이 빠진 것처럼 이렇게 듣고 있었단 말이오. 집중이 되가지고. 그런데 그러다 보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몰랐단 말이오.

 

그런데 임금이 몇 시간 지나 눈을 떡 떴어. 눈을 떠서 보니까 자기 주위에 아무도 없는 거요. 임금은 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지만은 사실은 이 세상에서 제일 어린 사람이 임금이에요. 임금은 늘 눈만 뜨면 주위에서 어린애 돌보듯이 사람들이 돌봐준단 말이오. 그래서 어린애는 자다가 눈을 딱 떠서 둘러보고 아무도 없으면 울어요 안 울어요? 울죠. 엄마하고 운다. 임금이 딱 그래. 임금이 자기가 눈이 딱 떠서 어디 딱 봤을 때 주위에 사람이 없으면 어때요? 벌써 불안해 집니다. 이 높은 사람들 이거 좋은 거 아니에요, 아시겠어요? 불안해 진단 말이오.

 

그러니 임금이 불안한 거요. 늘 주위에, 자기 주위에 사람이 에워싸고 있어야 심리적으로 안정을 하는데 불안한 거요. 아무도 없는 거요. 그러니까 화가 난 거죠. 처음에는 불안하다가 이것들 어디 갔나? 날 두고. 이것들 뭐 이런 게 다 있어. 성질이 딱 났단 말이오. 그래서 살펴봤는데도 없으니까 한편은 화가 나고 한 편은 두려움이 생기는 거요. 그래서 칼을 빼서 쥐고 혹시나 싶어서 칼을 빼서 주위를 살폈단 말이오. 그래 살펴보니까 저 끝에 궁녀들이 또로로록 모여 있단 말이오. 그래서 가 봤단 말이오. 가니까 아니 어떤 수행자가 나무 밑에 앉아있는데 거기 모두 넋을 뺀 사람처럼 혼 빠진 사람처럼 앉아 있단 말이오.

 

그러니까 이 임금이 화가 탁 난거요. 그래 가서는 당장 수행자한테 칼을 드러내놓고 야 이놈아. 왜 남의 여자를 뺏어 가느냐 이거야. 임금이 볼 때는 그런 거죠. 남의 여자를 뺏어갔다. 수행자가 그것도 딴 사람도 아니고 누가? 수행자가 되가지고 어떻게 남의 여자를 뺏어 가느냐 이거야. 그러면서 칼을 빼서 죽일 듯이 설쳤단 말이오. 그래 수행자가 대왕이시여. 나는 여자를 뺏어간 적이 없습니다. 이미 나는 있는 처자도 다 버리고 있는 재물도 버리고 수행하러 왔소. 여자를 뺏어가다니 이게 무슨 말이오? 그렇지가 않다 이거야. 그러니까 임금이 이 자식이 거짓말 하는 거 봐라. 너 이렇게 뺏어 가 놓고 왜 안 뺏어갔다 그러냐? 그래서 난 뺏어 간 게 아니다. 다만 법을 설했지. 당신 여자를 뺏어간 게 아니다 이거야.

 

나는 우리 사람이 나다 내 것이다. 내가 옳다. 이런 고집을 하게 되면 인생이 탐진치삼독에 물들게 되고 그리되면 인생이 괴롭다 이 거요. 그래서 나라고 하는 것을 놔 버리게 되면 그게 인생이 행복해 진다는 것을 지금 얘기하고 있었지. 나는 아무 욕심을 내서 여인을 가까이 한 적도 없다. 그러니까 임금이 뭐라고? 내게 없다고? 내가 없다고? 무슨 그런 헛소리를 하고 자빠졌냐 이거야. 그러면서 칼을 탁 들어서 그 수행자 팔을 탁 치면서 야~ 이시끼야. 이거 니 팔 아니야? 이랬어. 니꺼 맞지. 이게 니께 아니라고? 그러니까 내 거라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칼로 팔을 탁 잘라버렸어. 자식 이래도? 이쪽 팔은 내 거라 것은 본래 없습니다. 그것도 탁 잘라버렸어.

 

칼을 눈에 대고 이래도? 항복하라고 이런 거죠. 그래서 뭐가 됐다? 할절신체가 된 거요. 그래서 온몸을 뭐해 버렸다? 난도질을 해 버렸다 이 말이오. 사건이 이래 생긴 거요. 그랬을 때 수행자는 아무런 임금에 대한 뭐가 없었다? 원한이 없었다. 나 같았으면 이게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정말. 그러면서 일어나가지고 돌멩이든 뭐든 쥐고 하든지, 맞아 죽으면서 이를 빡빡 갈면서 너 두고 보자. 다음 생에 이렇게 해서 다음 생에 아들로 태어나서 왕위찬탈을 해서 복수를 해야 되지. 그런데 거기 아무런 성냄도 원한도 없었다. 왜 그러냐? 나다. 사람이다. 중생이다. 수좌다 하는 그 어떤 상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

 

만약에 내가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렇게 온 몸이 마디마디 잘렸을 때 나는 마땅히 성을 내고 원한을 가졌을 거다. 그러나 내가 저 과거 500세를 돌아볼 때 인욕성인으로 있을 때 나는 아상도 없고, 인상도 없고, 중생상도 없고, 수자상도 없었느니라. 이렇게 얘기하는 거요. 그러니까 아까 어떤 거사님 그러더라. 아따 칼로 갖고 찌르는데 성질안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까 아상 버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오. 그렇다고 또 칼 갖고 나한테 달려들지 마라.

 

是故 須菩提 菩薩 應離一切相 이런 까닭으로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일체의 상을 떠나서

發阿多羅三三菩提心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하나니, 아뇩다라삼먐삼보리심을 내나니.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눈에 보이는 모양과 빛깔에 집착하여 마음을 내지 말며 소리와 향기와 맛과 감촉과 법에 집착하여 마음을 내지 말지니,

應生無所住心 응당히 마음에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이 말이오.

 

若心有住 만약에 마음에 머문 바가 있으면

則爲非住 그것은 참으로 머무른 바가 아니다. 여기서 앞에 있는 논법하고 같은 게 아닙니다. 만약에 마음에 무엇인가 머물러야 된다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머무르면 그것은 진정한 머무름, 진정한 고요함이 아니다. 참 머무름이 아니다. 그런 뜻으로 즉위비주다. 이 말이오.

 

是故 이런 까닭으로

佛說菩薩心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살은

不應住色 布施 마음이 색에 집착하여 보시를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보살은 일체 그 어디에도 집착하여 마음을 내지도 말고, 집착하여 뭐도 하지 마라? 보시도 하지 마라. 이 말이지. 그러니까 마음내지 마라, 보시하지 마라 가 초점이에요? 아니죠? 마음을 내되 집착해서 마음을 내지 말며, 또 보시를 하되 집착해서 보시를 하지 마라.

 

須菩提 菩薩 爲利益一切衆生 수보리야, 보살은 일체중생을 이익 게 하기 위하여

應如是布施 응당히 이와 같이 보시하느니라. 그러니까 일체 중생을 이익 되게 하기 위해서 일체중생을 이익 되도록 하는 보시의 행위가 뭐다? 무주상 보시다. 이 말이에요. //

 

~ 그렇게 해서 다시 앞으로 인욕바라밀하고 무주상보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간단하게 보충설명을 하면요. 그러니 참을 것이 있다 하는 것은 내가 옳다 이런 이 말이요. 내가 옳다 하는 생각을 갖고 있으니까 화가 나죠? 화가 나지만은 어떻게 한다? 참는다. 그러니까 참을 것이 있다는 것은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거나, 미움이 나거나, 욕심이 나거나, 욕구가 일어난다는 얘기죠. 나는데. 나면 내버려야 되는데 나는 것을 참는다. 그러니까 참는데는 늘 뭐가 있습니까? 한도가 있다. 참는데도 한도가 있다. 한도는 늘 첫째는 횟수로 한도가 정해지죠. 한 번 두 번까지는 봐주지만, 니 세 번째만 되어 봐라. 용서 못 한다 이렇게 되고. 양으로도 고 정도는 봐 주지만은 더 이상은 안 된다. 이렇게 뭔가 정해 놓고 우리는 참는다.

 

그러니까 참는 거는 늘 폭팔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옳다는 생각을 놔 버리게 되면 제법이 공한 줄을 알게 되면 옳고 그름이 없으니까. 너하고 나하고 생각이 다를 뿐이지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게 아니다. 그러니까 거기에는 참을 일이 없어진다. 참을 일이 없어지니까 그것은 지속이 되죠. 오래 참을 수 있다 이 말이오. 다른 말로 하면. 그러기 때문에 참을 것이 없는 것이 진정한 참음이다고 말한다. 그래서 인욕바라밀이 인욕바라밀이 아니라 그 이름이 인욕바라밀이다. 인욕바라밀이라니까 참는 거를 인욕바라밀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는 화를 벌컥벌컥 잘 내는데. 또 세상을 살다 보면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욕심을 내고, 지 하고 싶은 데로 다 하고 못살잖아. 그죠? 많이 참죠. 우리가. 많이 참으면 화를 참으면 화병이 되고, 욕심을 참으면 뭐요? 욕구 불만이 된단 말이오. 그죠? 사랑을 참으면 사랑고파증에 걸린단 말이오. 그러니까 이것이 바라는데 뜻대로 안되면 참아도 병이 됩니다. 참아도. 오히려 벌컥벌컥 내는 것보다도 때로는 더 못 할 때도 있다. 그것이 너무 병이 돼서 정신적인 질환까지 되면 정신과에 가면 뭐라 그래요? 하고 싶은 데로 해 버리세요. 까짓 것. 화나거든 팍팍 내버리고, 욕하고 싶거든 팍팍해버리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팍팍해 버려라. 이렇게 가르친다 말이오.

 

그래서 도덕도 무너지고 정신과에 가서 치료 좀 받다 보면 어때요? 사람이 좀 이상해지죠. 옆에서 보면, 함부로 하는 것같이 그렇게 느껴지는데. ? 그것이 억눌려서 병이 돼 있기 때문에 그렇단 말이오. 그것을 터뜨려서 일단 병부터 먼저 치료하고 나서 다시 질서를 잡아 줘야 된다. ? 이 질서가 강압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에게 이미 병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단 말이오. 그러니까 이렇게 화를 벌컥벌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세상에 큰일이지만은. 그렇게 욕구를 절제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데로 해서 감옥도 가고 비난도 받고 갖가지가 일어나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가장 나쁜 일이고. 그렇다고 참으면 어떠냐? 참으면 지나놓고 보면 참고 지나놓고 보니. 에이고~ 거 지나놓고 보니 에이고~ 거 쓸데없는 짓. 참길 잘했다. 화냈으면 괜히 지나놓고 보면 창피할거를. 이렇게 되는 거는 참은 게 뭐가 됩니까? 약이 되요. 똥은 참으면 약이 된단 말이오. 그런데 참는 게 쌓여서 터지면 그건 뭐가 된다? 약이 되는 게 아니라 독이 된다 이거요. 그래서 오줌은 참으면 뭐 된다 그래요? 독 된다 그러죠. 오줌은 참으면 안 돼. 빨리빨리 누러 가야지. 그 예를 들어서 그래요. 똥은 참으면 약 되고 오줌은 참으면 병 된다. 이런 말이 있듯이. 참는 것 중에도 참아서 그것이 약이 되는 게 아니고, 참았는데 돌이켜보니까 에이고 지나놓고 보니까 쓸데없는 거였더라. 이렇게 될 때는 참는 게 약이 된단 말이오.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흘러놓고 봐도 더욱더 약이 오른단 말이오. 그때 막 화를 팍~ 내 줘야 되는데, 못 내준 게 두고두고 가슴에 더 쌓인단 말이오. 이런 거는 참으면 참을수록 독이 된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는 어떻게 치료를 해야 되느냐? 일차적 치료는 풀어주는 수밖에 없다. 풀어주는 방법이 뭐요? 욕하면 안 된다. 뭐하면 안 된다. 뭐하면 안 된다. 남자 얼굴 쳐다봐도 안 된다. 뭐하면 안 된다. 온갖 것들에 된다 안 된다, 된다 안 된다, 된다 안 된다에 우리가 지금 걸려가지고 속박 받고 살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수련을 할 때 또는 치료를 할 때 그걸 풀어줘 버려. 키스하고 싶으면 해라. 껴안고 싶으면 껴안아라. 욕하고 싶으면 해버려라. 발로 가 차버리고 싶으면 차라. 사먹고 싶으면 먹어라. 이렇게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한 번 해 봐라. 그렇게 하면 큰일이라도 날 거 같지만 그렇게 해도 세상엔 아무 일이 사실은 없다. 이거야.

 

그렇게 해서 아무 일이 없는 줄 알고 그러면 그렇게 해도 되느냐? 아니다. 거기서부터 다시 질서를 잡아야 된다. 그러니 그것은 부분적 치료책이다. 그게 다 치료책이 아니다. 다른 거를 넘어 갈 수가 없다. ? 이게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서 또 그건 아니고 이러면 저 사람이 또 나를 어떻게 얽어매려고 그런다. 또 나를 어떻게 하려고 그런다.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래서 찾아왔는데 이렇게 해서 어쩌구저쩌구 해서 이혼을 하겠다. 이런 얘기를 한단 말이오. 그럼 제가 뭐라 그래요? 이 사람은 틀림없이 어디를 가도 이혼을 하지 마라 소리를 들었어? 하라 소리를 들었어? 하지 마라 소리만 들었기 때문에 스님한테 와서 물으면서도 또 이혼하지 마라 그러면 어이구 세상은 다 똑같다.

 

이렇게 거기에 정답을 만들어서 이 중도 또 정답을 얘기할거다. 이럴 때는 바로 말발이 먹혀요 안 먹혀요? 안 먹혀요. 그럴 때는 내가 사정없이 뭐라 그래요? 딱 듣고 해버려요. 그러죠. 그러면 말릴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가 해버려 이 사람이 미쳤나? 그런 남자하고 살게. 내가 이렇게 탁 밀어 버리면 본인이 멍해서 아니 이혼해도 됩니까? 그럼 되지. 안될 일이 뭐 있어? 이래. 이런 것은 이혼해도 된다. 안된 다를 얘기하는 게 아니란 말이오. 이혼하지 마라 할 때도 이혼하지 마라는 얘기가 아니고. 이혼하라 할 때도 이혼하라는 얘기가 아니란 말이오. 이혼하지 마라 이렇게 말할 때는 이혼 할 수준이 못 된다. 이혼 하겠다. 이혼 하겠다. 하지만은 오늘 내가 그래 이혼해라 하고 가 봤자. 집에 가서 이혼 할 수준이 못되고.

 

사실은 스님이 하지마 라고 말려줬으면 이런 심리적인 근거를 갖고 있거나. 또는 자기는 하겠다고 생각하지만은 이 사람은 이혼을 하면 후회할 수밖에 없다. ? 이혼을 하는 이유를 이것저것 대고 있지만은 스님이 들어보니 이거는 자기 문제다. 남편문제가 아니고. 아내문제가 아니고 자기 문제란 말이오. 자기 눈이 횟가닥 뒤집어 씌워가지고 온갖 핑계를 상대편에게 대지만은 사실은 그거는 자기 문제다. 자기 문제를 갖고 이렇게 문제를 풀었을 때는 이혼을 하고 나서는 상대에게 핑계 돌릴게 없어지고 돌아보면 그땐 다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된다 이거야. 그러면 후회하게 된다.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똑같은 문제가 또 발생한다. 그러니 이것은 치료가 안 되죠. 그러니 그것은 이혼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병부터 치료하라고 얘기 한다 이 말이오.

 

그러면 열이면 아홉은 아이고 똑같은 소리 또 한다 이렇게 받아들인단 말이오. 그게 아니란 말이오. 이혼하라 이러면 사람들이 옆에서 다 그래요. 여기 어디 보살님은 딱 봐서 묻는데 그 자리에서 이혼해 버리라 했지. 옆에서 다 가족이 데려온 사람은 무슨 말을 할 거를 거의 스님에게 100% 믿었다. 이 여자분을, 자기 언니를 잘 타일러서 스님이 집에 돌아가도록 해 줄 거라고 거의 믿고 딱 왔는데. 내가 그런 남자하고 살 필요가 뭐가 있냐? 집에 가지마. 그래 안 보내 버린 사람도 있어. 그러니까 나중에 나한테 와서 항의를 해요. 그렇게 남의 살림을 그래 파괴를 하면 되느냐고. 나보고.

 

그런데 그 사람은 장부라서 같이 안 살아도 능히 상관이 없을 만한 수준의 사람이에요. 그러면 그만 두지 뭘, 뭐가 답답다고 거기 붙어살아. 어떻게 생각해요? 남자들이 들으면 기분 나쁠지는 모르지만. 뭣 때문에 고생하면서 붙어 사냐 이거요. 관둬버리지. 애기가 어리면 애기 때문에 걱정이지. 애기도 다 컸더라고. 관둬요 관둬. 뭣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 거기 붙어 사냐고? 그렇게 해서 떨어져서 그거는 돌려보내면 설명해서 돌려보내도 또 돌아가면 똑같은 일이 또 벌어진단 말이오. 왜냐하면 남자가 예를 들면 여자에 대해서 약간의 의처증을 갖고 있거나. 이런 데는 여자가 어지간히 준비되지 않으면 가서 해결 할 수가 없단 말이오. 이럴 때는 확실히 떨어져서 아예 안 살든지. 확실히 떨어져서 자기를 어떻게 했어? 완전하게 치유해서 가면 괜찮단 말이오. 그러면 상대가 어떻든 상관이 없으니까.

 

~ 그래서 참을 것이 있는 것이 해결이 참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다 이 말이야. 그렇다고 지 성질대로 하는 걸 해결책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에요. 여기서 忍辱波羅蜜 如來說非忍辱波羅蜜 是名忍辱波羅蜜 그러니까 부처님이 과거 오백생동안 인욕행을 했는데 사실은 부처님은 참았어요? 안 참았어요? 참은 게 없다 이거야. 몸을 割截身體할절신체 할 때도 참지를 않았어. 그러면 부처님께서는 아프심이 없으셨겠느냐? 아픈 거야 있죠. 왜 없겠어요. 여기서 통증이 없었느니라. 이런 말이 있는 게 아니죠. 뭐가 없었다. 그래? 원한이 없었다. 성내고 한을 맺지 않았다. 한을 맺지 않았다. 그를 미워하지 않았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 남편이 술 먹고 와서 때리면 맞은 아픔도 있지만은 미움이 있다 이 말이오. 잠못드는 것은 맞아서 아픈 게 아니라 미운 거란 말이오. 그런데 미움이 없다 이 말이에요. 때려서 이얏! 하니까 신경이 탁 멈춰 안 아팠다. 이런 얘기가 아니다. 이 말이에요. 여기서도 아무런 괴로움이 없었느니라. 이런 말도 여기 써 놓지 않았죠? 뭐라고 써놨죠? 성내지 않고 한을 품지 않았다. 이렇게 말한 거란 말이오.

 

그런데 여러분들도 지금 남을 갖다 이렇게 마디마디 베이고, 베고 자르는 거 잘 해요? 안 해요? 하지. 여러분들 닭을 잡거나 생선을 잡으면 다 해요 안 해요? 하지. 사다가 대가리 탁 자르고, 눈깔 확 빼고, 껍질 확 벗기고, 살 떠내고 탁탁탁탁 잘라서 자르고 그러잖아. 그런데 우리도 얼마나 다른 생명을 마디마디 자르고 베이고 합니까? 그러면서 여러분들은 이런 고를 안받을 거라고 생각하면 어리석다 이거야. 받아야 돼. 받는 게 정상 아니에요. 그게 인연의 과보가 맞지. 그러니 그런 과보를 만약에 기피 한다면 자기 몸이 난도질을 당했을 때도 한을 품지 능히 않을 수가 있습니다. 내가 수천 생명을 그렇게 마디마디 난도질 한 거를 자기가 거울 보듯이 환하게 본다면 자기 몸이 그렇게 당한다고 원한을 품지는 않는단 말이오. 통증은 있지만은. 그런데 우리는 자기가 그렇게 한 거는 생각하지 않고. 남이 한 거만 갖고 한을 품고 이런단 말이오.

 

그 다음에 뒤에 중생을 이익 되게 한다. 이거. 여러분들 남에게 뭔가를 도움을 얻을 때 도움을 얻으면 좋습니까? 안 좋습니까? 좋지. 한번 얻고 두 번 얻고 세 번 얻고 ...열 번 얻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좋은 것만 있습니까? 그 사람에게 가기가 조금 꺼려집니까? 잘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 누구에게 돈을 계속 얻거나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계속 무슨 도움을 받았을 때 그 사람 앞에 가면 조금 위축이 됩니까? 안됩니까? 위축이 되죠. 돈도 매번 처음에는 가서 받고 인사하고 고맙다고 인사하는 재미가 있지만은. 그걸 매달 한다 그러면 온라인으로 안보고 받고 싶어요? 가서 인사하고 받고 싶어요? //

 

안보고 받고 싶어요. 왜 그럴까? 이 받는다는 것은 자기를 종속되게 만들기 때문에 사실은 한번 두 번 세 번해서 좋은 거 같지만은 그것은 받는 자에게도 고통입니다. 이거 잘 살펴봐야 되요. 주는 사람도 한 번 주면 몰라도 두 번, 세 번, 다섯 번, 열 번, 줄려면 귀찮아요? 안 귀찮아요? 귀찮지. 그러니까 우리가 준다 하는 생각을 갖고 줄 때는 주는 자에게도 고통이고. 준다 하는 생각을 갖고 주는 사람에게 특히 여러분들이 도움을 받았을 때. 그 사람이 나를 도와줬다고 늘 폼을 지고 생색을 낼수록 받는 게 힘들어요? 안 힘들어요? 힘들어요. 형편만 되면 다시는 안 받고 싶어. 도움 안 받고 싶단 말이오. 그러니 우리가 이와 같이 상을 갖고 보시를 하는 것은 나에게도 보시하는 자에게도 도움이 안 되지만은. 보시 받는 자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이거요.

 

그러니 우리가 아무런 집착함이 행하는 보시는 보시하는 자에게만 공덕이 되는 게 아니라. 보시 받는 자를 참으로 이익 되게 하고 자유롭게 한다. 보시 받는 자에 마음을 위축되게 하지 않는다. 이 말이오. 그래 우리가 우리는 모양을 짓고 또 도와주고, 도와줬다고 또 바라는 마음이 있고. 그러니까 도움을 주고 도와줬다는 어떤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 나를 괴롭힌다고 내가 내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상을 짓지 않고 보시를 한다는 것은 도움을 받겠다는 즉 어떤 기대하는 마음이 없다 하더라도 상을 짓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원효대사가 방울 스님을 도와준 거는 방울 스님 도와주면 큰 공덕이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은 안 했죠. 그러니까 그것이 나에게 어떤 괴로움을 유발하는 거는 아니란 말이오.

 

그러나 잘 살펴보면 방울스님은 불쌍한 사람이에요? 아니에요? 아니지. 불쌍한 사람이 아닌데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일으켜서 모양을 지어놓고. 그거를 구제해 주겠다고 갖가지 거기다 자비를 베풀었단 말이오. 그런데 사실은 어때요? 사실은 그는 불쌍한 사람이 아니오. 그러니 상에 집착하는 것은 이러한 보살행마저도 허상이다 이거야. 꿈속에 남을 돕는 것과 같은 거다. 그러니 상을 여의야 그럼 상을 여의어 버리면 방울스님은 부처니까 방울 스님은 아무런 불쌍한 사람이 아니니까. 나는 그럼 할 일이 아무것도 없겠네요. 그렇지 않다. 방울스님이 매일 뭐 하러 왔어요? 밥을 얻으러 왔으니 밥을 줄뿐이오. 불쌍해서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보살행을 하기 위해서 주는 것도 아니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배 고픈 자에게는 밥을, 추운 자에게는 옷을, 그냥 줄뿐이다. 준다는 거 아니죠? 필요에 의해서 쓰여지는 것뿐이다. 이것이 보살이 화작이란 말이오. 여기는 뭐 한다 하는 게 없단 말이오. 기대하는 마음뿐만 아니라. 여기는 한다 하는 게 없단 말이오. 내가 한다 하는 게 없단 말이오. ? 중생이랄 것이 없다는 거요. 방울 스님에게 내가 갖가지를 할 건 있죠. 그러나 방울 스님 뭐는 아니다? 중생은 아니오. 방울스님이 중생이라 생각하고 중생을 구제하려면 중생이 한량이 없겠지마는. 깨닫고 보니 방울스님은 뭐가 아니다? 중생이 아니에요. 그러니 중생을 위해서 한없이 보살행을 한다 하더라도 사실은 중생이 본래 없는 거요. 구제할 중생이 없다 이 말이오.

 

그러니 저 많은 중생을 어떻게 구제할꼬 하는 것은 또한 기후에 불과하다. 한량없는 중생을 다 구제하라 하니까. 아이고 부처되려고 하는데 저거 다 구하고 언제 되노. 끝도 없겠네. 우리 이리 생각하죠. ~ 중생을 이익 되게 하기 위해서 바로 이와 같이 보시를 행하라. 그것이 뭐다? 무주상보시를 하라. 다시 말하면 집착함이 그 마음을 내고, 집착함이 없이 행하고, 이렇게 하라 이 말이오.

 

如來說一切諸相 여래가 설하는 일체 상이라고 하는 것은

卽是非相 상이라고 할 것이 없다. 그 어떤 것도 상이라 할 것은 없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又說一切衆生 卽非衆生 그러니 중생중생 하지만은 중생이라 할 것도 없다. 이것이 중생이다 할 중생의 상이 없다 이 말이오. 그러니 북한 동포가 굶어 죽는다 하니까. 그걸 눈으로 보고 어때요? 눈물이 나죠. 눈물이 나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행동을 해야 되겠죠. 있는 돈 없는 돈, 재산 없는 재산,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동원해서 다만 그들을 도와야 된다 이 말이오. 그런데 굶어 죽기는 굶어 죽고, 나는 능력은 없고, 생각만 하니 뭐 한다? 눈물만 나고, 밥 먹어도 목이 메이고 그러다 몸 져 누워있다 이러면, 아이고 보살마음을 냈다. 이래? 아니다 미친놈이다. 뭐냐? 이게 상에 사로잡혔다 이거야. 상에 사로잡힌 거다.

 

그러니 중생이 중생 아닌 줄을 알아야 돼. 정말 중요한 얘기요. 이건 보살행을 하겠다고 마음을 낸 사람에게 지금 보살행을 하는 데 지친 사람은 왜 지치게 되느냐? 보살행을 하는데 왜 지치게 되느냐? 내가 뭘 한다 하니까 지치게 된단 말이오. 내가 할 것이 없는 줄을 알아야 돼. 해도 한 게 아닌 줄을 알면 지칠 일이 없단 말이오. 거울이 수천 개의 물건을 비춘다. 거울은 지치는 게 없다 이 말이오. 거울은 자기가 물건을 그리는 게 아니란 말이오. 물건이 와서 비치는 거지. 그러니 언제 다 하노?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다만 할 뿐이다. 다만 할 뿐이다 이러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러면 되든지. 말든지. 뭐 그냥 지 만족으로 하는 거네요. 그런 뜻이 아니다 이거야.

 

그 결과를 갖고 한탄하지 않는다. 결과는 하는 양만큼 결과가 나타나는 거지. 그러니까 다만 하면서 반성을 하면서 최선을 다 할 뿐이지. 그 결과를 갖고 좌절하지 않는다. 좌절은 뭣 때문에 생기냐? 욕심 때문에 생겼다. 모든 것의 좌절은 욕심 때문에 생깁니다. 왜 그럴까? 내가 한 것은 100만큼 효과가 날 수 밖에 없는, 지은 인연이 100이라서 과보가 100이 올 건데. 자기가 인연은 100을 지어놓고 1000이 올 거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100밖에 안 나타나니 좌절을 하게 된다. 이건 뭐냐? 욕심 때문에 그렇다. 자기가 하면 모든 일이 다 될 줄 착각하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천하 중생을 다 먹여 살리겠다는 원을 세우는 건 좋다 이거야. 그래서 내 원을 키워서 천하 중생이 다 배고프지 않는 세상이 될 때까지 내 이 원도 끝나지 않으리라. 좋다 이거야. 그러니까 그건 좌절이 없죠.

 

그런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굶어 죽는 중생이 있는 걸 보고. 아이고 해도해도 안 되구나. 이놈의 중생이 끝이 없구나. 이건 뭘 말하냐? 이것은 구제한다 하는 상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이런 절망과 좌절이 생긴다. 이 절망과 좌절이 생기는 보살에게 지금 이 말을 하는 거요. 구제하겠다는 생각도 없는 사람보고 지금 하는 얘기가 아니야. 여기 앉아 있는 사람에게 별 해당이 안 될지도 모른다 이 말이오. 여러분들이 딱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나? ~ 내가 이 좋은 일을 하면서 수행을 하면서도 왜 항상 가슴이 답답하고 좌절해서 갈 때 이 얘기를 듣고 눈이 딱 뜨이면서 아~ 내가 또 여기에 사로잡혔구나. 이렇게 탁 깨달아야 되는데.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이니까. 들으면서 어때요? ~ 중생이 없다 그러네. 그러니까 뭐, 하이고 중생이 많다 그래가지고 나도 보살행을 해야 되나. 걱정을 했더니 없다니까 할 일이 없구나. 이렇게 또 받아들인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그 앞에 한 행위를 앞에 이렇게 마음을 내라. 그 마음을 따라서 수보리가 또 염려를 하고 염려를 따라서 깨우침을 주고 그 깨우침에 따라서 염려를 하고. 이렇게 따라가면서 법을 설하고 있는 거요. 그러니까 앞에서부터 여러분들이 죽~ 따라와야 된단 말이오. 그 가르침에. 따라와야 여기서 탁 터지는데. 중간에 오다 따라오다 놔 버렸단 말이오. 놔 버리고 가만 앉아 있다가 걱정을 많이 했는데 걱정이 없어졌다니까. 아무튼 걱정이 없어졌다니 다행이오. 이래 없어지나 저래 없어지나 걱정이 없어지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 이렇게 되니까 중생이 중생이 아니다 하니까. 수보리가 눈이 버쩍 떠 진 거요. 사실은 이제까지 답답했단 말이오. 저 중생을 다 구제해야 내가 뭐 된다니까? 부처가 된다니까 부처되기는 틀렸구나. 이런 생각이 들긴 들었단 말이오. 그런데 중생중생 하지만은 중생이랄 것이 본래 없다 했더니 여기서 탁 트였단 말이오. 그런데 이 말을 참 믿기가 어렵죠. 그래서 부처님이 뭐라 그래요?

 

須菩提 如來 是眞語者 實語者 如語者不狂語者 不異語者 부처님은 절대로 참말만 하는 사람이고, 사실만 말하는 사람이고, 같은 말 하는 사람이지. 사기치고 거짓말 하는 사람 아니다. 이렇게 해서 미치광이 말을 하지 아니하며 다른 말을 하지 않는 자다. 이렇게 다시 한 번 확인을 시켜준다 이거요. 이걸 반야심경에서는 딱 줄여서 뭐라고 나와요? 진실불허. .. 합해서 진실, 뒤에 불광불의 이거를 불허. 헛된 말을 하지 않는다 이래서 진실한 말을 하며 헛된말이 아니다. 진실하여 헛됨이 없다 이래서 진실불허 이렇게 썼지만. 여기서는 眞語者 實語者 如語者不狂語者 不異語者니라 이랬어.

 

須菩提 如來所得法 此法 無實無虛 수보리야 여래가 얻은 바 이 법은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다. 그러니 불교 공부를 여러분들이 잘해가지고 깨달았다 하는 수준에 이르면 어떻게 되냐? ~ 이것은 삿된 법이고 이것은 참된 법이고 이것은 바른 법이고 이것은 그른 법이고. 이것은 깨들은 거고 이것은 못 깨달은 거고. 이것은 번뇌고 이거는 보리고. 요거는 생사고 헤매는 거고 이거는 니르바나에 이르는 거다. 요게 마지막 병이에요. 아시겠어요? 그래서 여래가 여기서 뭐라 한다? 그런 상도 두 가지 모양을 그리면 안 된다 이 말이오. 제법원융무이상. 모든 법은 둥글고 두루 하여 두 가지 모양이 없다. 그런 모양도 그리면 안 된다. 그러니까 실다움도 헛됨도 없다. 이 깨달음의 세계는 이것은 실다운 거고, 이것은 헛된 거고. 헛된 거를 버리고 실다움에 도달하는 게 불법이 아니다 이 말이오.

 

우리는 늘 이 세상을 두 가지고 나누게 된다. 생이 있고 사가 있다. 생을 좋아하고 사는 두려워한다. 이거요. 그래서 생사고에 빠진다 이 말이오. 그러니 생이 생이 아니고 사가 사가 아님을 알아서 생사가 둘이 아님을 안다. 생사가 둘이 아님을 아니 어때요? 생사의 고에서 벗어 난다. 생사의 고에서 벗어나는 거를 뭐라 한다? 열반의 세계라고 한다. ~ 그러니 중생은 생사의 세계에 빠지고 보살은 열반의 세계에 이르구나. 그러니 또 뭐라 한다? 생사의 세계와 열반의 세계가 둘이 아니다. 그러면 둘이 아닌 게 도다. 또 이렇게 상을 지으면 어때요? 둘이 벌어지는 거 보고 다 또 뭐 한다? 시비한다 이 말이오. 그러니 어떤 상도 짓지 마라. 이거요. 참도 아니고 거짓도 아니다 이 말이오. 이 법에는 참이니 거짓이니 하는 게 없다. 참이니 거짓이니 하는 것도 다 우리들 마음이 일으키는 거다.

 

須菩提 若菩薩 心住於法 而行布施 수보리야, 만약에 보살이 마음이 저 법에 저 대상에 집착해서 보시를 행하면

如人 入闇 則無所見 어떤 사람이 어두운 데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앞에 (같을 여)자에요. 여인이라니까 여자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若菩薩 心不住法 而行布施 만약에 보살이 마음이 저 법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보시를 행하면

如人 有目 日光 明照 見種種色 사람이 눈이 있고 햇볕이 밝게 비치어 가지가지 색깔을 보는 것과 같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형상에 집착해서 마음을 일으키거나 행동을 하게 되면 그것은 마치 깜깜한데 들어가서 아무것도 안보여 헤매는 것과 같고. 집착 없이 마음을 일으키거나 보시를 행하게 되는 거는 어떠냐? 그것은 마치 햇빛이 쫙 내리비치는 속에 눈 있는 자가 온갖 것들을 가지가지를 다 보는 것과 같다. 훤하게 보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무주상 보시의 공덕이 무위행의 그 복이 얼마나 크냐 하는 것을 비유를 들어서 말한다.

 

須菩提 當來之世 수보리야 응당히 저 내세에

若有善男子善女人어떤 남자나 어떤 여인이 있어서

能於此經 능히 이 경을

受持讀誦 받아 지녀 읽고 외우면

則爲如來以佛智慧 곧 여래께서 부처님의 지혜로

悉知是人 悉見是人 실다이 다 이 사람을 보며, 실다이 이 사람을 안다. 이 말이야. 이 사람을 다 알며 이 사람을 다 보나니

皆得成就無量無邊功德 이 사람이 어떻게 하는 것을 다 보고도 안다는 거요? 한량이 없고, 그 끝이 없는 그런 공덕. 그러니까 무한한 공덕을 성취하리라. 이 말이죠. 그러니까 무한한 공덕을 모두 성취하리라 하는 것을 부처님께서 다 알고 다 본다. 뭐로? 부처님의 지혜로. 이 말이오. 여래께서 부처님의 지혜로 이 사람이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리라 하는 것을 다 보고 계시고 다 알고 계신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 이렇게 일체의 상을 떠나야 뭐다? 니르바나에 이른다. 부처의 세계에 이르게 된다. 이런 얘기요. ~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