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_법륜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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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금강경

2013. 4. 7.

출처: 정토회

  

안녕하세요. 89페이지 펴주세요? 15 지경공덕분.

持經功德分 이 경을 지니는 공덕에 대한 얘기입니다. 이 경을 수지 독송하게 되면 얼마나 큰 공덕이 있느냐? 이 공덕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이 내용상으로는 이미 앞 14분에서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죠? 일체 상을 떠나야 여래라 이름한다. 부처라 이름한다. 보살은 응무소주이생기심이어야 한다. 보살은 무주상보시를 해야 한다. 중생중생하지만은 중생이라 할 것도 없다. 여래의 법은 실다움도 없고 허함도 없다. 이렇게 일체상을 떠나야 적멸에 이를 수가 있다. 이렇게 어느 정도 내용상으로는 정리를 하면서 이와 같은 경전을 수지독송하는 공덕이 얼마나 크냐? 에 대해서 지금 얘기하고 있습니다.

 

須菩提 善男子善女人 初日分 以恒河沙等身 布施 수보리야 만약에 어떤 남자나 어떤 여자가 있어서. 초일분이라는 건요. 하루를 세 등분 했을 때. 그 하나를 초일분이라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용어로는 오전 중에 이렇게 이해하시면 되요. 오전 중에 오후에 저녁에 이렇게. 오전 중에 갠지스 강의 모래알 수만큼 그 몸을 던져서 보시를 하고.

 

中日分 復以恒河沙等身 布施 오후에 또 다시 갠지스 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이 그 몸을 보시하고

後日分 亦以恒河沙等身 布施 저녁나절에 또다시 갠지스 강의 모래알 수와 같은 몸으로 보시를 행한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몸을 한 번 던져서 보시를 해도 그 공덕이 한량이 없는데. 하물며 그 몸을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처럼 많이 보시를 한다면 그 공덕이 한량이 없겠죠. 그런데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처럼 많이 보시를 하는 거를 오전 나절에 그 만큼 하고 또 오후 나절에도 그 만큼하고 또 저녁나절에도 또 그 만큼하고 하루에도 갠지스상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몸을 던져서 보시하는 거를 3배나 하는데. 그런 거를 하루 하고 마치는 게 아니라.

 

如是無量 百千萬億劫 以身布施 이와 같이 한량이 없는, 한량이 없는 백 천 만 억 겁 동안 그 몸으로 보시를 한다. 그러니까 얼마나 많이 몸을 던져서 보시를 했나 하는 것을 우리들에게 확실하게 이해시켜주기 위해서 이렇게 셈을 곱하고 곱하고 곱하고 곱하고 곱하고 이렇게 또 계산하도록 했단 말이오.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나오겠죠? . 몸을 몇 번 던져서 보시를 했나? 이러면 일단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 X 3 X 365X 일 겁이 몇 년이냐에 따라 다르겠죠? 일 겁을 만약에 1억년이다 하면 곱하기 1. 그죠? 거기다 곱하기 얼마여야 된다? 100곱하기 천 곱하기 만 곱하기 억, 곱하기 무량, 무량은 얼만지 잘 모르죠? 이렇게 하면 몸을 몇 번 던져서 보시를 했는지 수학적으로는 컴퓨터 두드리면 금방 나와요. 계산기 딱 두드리면 그죠? 그러면 얼마 곱하기 10의 동글뱅이가 몇 개 붙는다? 50개 붙으면 50, 100개 붙으면 100, 이렇게 계산이 나오겠죠. 이렇게 한량없는 보시를 행한다 이 말이죠. 그렇게 하여도

 

若復有人 만약에 다시 어떤 사람이

聞此經典 이 경 설하심을 듣고

信心不逆 믿는 마음에 거역하지만 않아도. 그러니까 이 경을 얻어듣고 에이~ 되도 안했. 뭐 쓸데없는 소리. 아이고 그러면 세상이 어이 되라고? 이렇게 이게 거부하는 마음이에요. 이렇게 거부만 하지 않아도. 불역. 믿어서 거부만 하지 않아도

其福勝彼 저 복보다 더 크다. 앞에 한량없는 몸을 던져서 보시한 것보다 공덕이 더 크다 이거야. 그런데

何況書寫受持讀誦 하물며, 즉 마음에 거역하지만 않아도 거부하지만 않아도 저 복보다 더 큰데. 하물며 서사(쓰고 배 끼고) 고대로 배끼는 거. 복사 이러죠. 서는 자기가 쓰는 거고, 금강경을 쓰는 걸 말한다면 사는 고대로 배끼는 걸 말해요. 서사하고. 그걸 받아 지녀서 읽고 외우기까지 하면 말할 것도 없다 이 말이오. 그런 것만 해도 뭐한데 그런데 거기서 또 뭐까지 한다?

 

爲人解說 남을 위하여 해설해 주면 그 복이 얼마만 하겠느냐? 그건 상상도 못 한다 이런 얘기요.

須菩提 以要言之 수보리야, 요점을 중요한 것만 말한다면

是經 有不可思議不可稱量無邊功德 이 경은 그러니까 아예 그냥 한마디로 딱 요점으로 말한다면 이 경의, 이 경을 수지 독송하는 그 공덕은 도저히 그 뜻을 헤아릴 수가 없다 이거야. 그 얼마라고 이렇게 뭘 갠지스강의 모래 알 수만큼 얼마 해서, 조 무량 한량없고 이렇게 한다 해도 그건 어쨌든 머리로 헤아리는 거 아니오. 그죠? 그건 헤아릴 수가 없고, 그 공덕이 얼마다. 양이 얼마 정도 된다고 이렇게 이름 붙일 수가 없고. 무변, 도대체 그 공덕의 끝을 변을 생각할 수가 없다. 그 변이 없는 그런 공덕이 있다. 앞에 유자가 붙어있죠. 그런 공덕이 있다. 이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는 그 공덕, 즉 금강경의 가르침을 깨닫는 그 공덕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 말이오.

 

그런데 이걸 그냥 책 하나 구해서 죽~ 하루에 7번씩 읽으면 된다. 이런 뜻이 아니라고 제가 수도 없이 얘기 했죠? 어떻게 해야 된다고?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인줄을 알아야 된다. 모든 상을 떠나야 여래를 본다. 마음을 내되 그 어디에도 집착해서 마음을 내서는 안 되고 보시를 행할 때도 그 어디에도 집착해서 보시를 하면 아니 된다. 한량없는 중생을 구하되 중생을 구한다는 생각을 내서도 아니 된다. 하는 이런 뜻이란 말이오. 그 어떤 상도 부처라는 상도, 보살이라는 상도, 불법이라는 상도 지어서는 아니 된다. 그 법은 옳으니 그러니 하는 게 없다. 붓다의 법은 옳다 그르다 하는 그 양쪽을 다 떠나야 된다. 그래서 여래의 법은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다.

 

이런 것들을 깨달아서 마치 꿈을 깨듯이 확연히 눈을 떠서 눈 있는 자가 이 세상에 가지가지 빛깔과 모양을 훤하게 종종색색이 다 보는 것과 같이 그렇게 훤해지게 된단 말이오. 이 금강경을 수지독송하게 되면, 수지독송이라는 의미가 그런 뜻이에요. 그러니 그 사람이 얻는 공덕은 그 어떤 유루복으로 형상에 집착한 그 공덕으로는 어떤 비유로도 그것하고는 비교될 수가 없다.

如來爲發大乘者說 爲發最上乘者說 이것은 여래가 대승을 발한 크게 마음을 내서 일체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하는 그런 대승을 발한 자를 위하여 연설을 하는 거며. 가장 높은 법을 얻겠다고 마음을 발한 자를 위해서 이 법을 설하는 거다 이거야.

 

그러니까 정말 값나가는 물건을 얻겠다는 사람에게 금이나 다이야몬드를 주는 거지. 그냥 적당한 거 찾는 사람한테는 은이나 동이나 잡석을 준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정말 이것은 최상승을 발한 자, 대승을 발한 자를 위하여 이와 같이 설한다. 일체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큰 뜻을 낸 사람에게 중생 중생하지만은 중생이라 할 실체가 없느니라. 이런 말을 해 주지. 중생 구하겠다고 생각도 없는 사람한테 중생이라는 게 실체가 없느니라. 이런 말을 해 주지도 않는다 이 말이오.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습니까? . 보살행을 하겠다고, 보살행을 하겠다고 발심을 해서 스스로 천민의 신분이 돼서 와서 그렇게 애를 쓰고 있으니 방울스님이 가서 스스로 자기가 뭐가 돼서 불쌍한 중생이 돼서 원효의 뭐를 받는다? 도움을 받는다 이 말이오. 갖가지로 도움을 받고서는 나중에 도움 받을 게 없는 줄을 턱 한 마디해서 보여준다 이 말이오.

 

원효가 분황사에 앉아 그런 마음도 안 낼 때 가서 그렇게 할까? 안 한다 이거야. 아시겠어요? 뭔가 애를 쓰고 있으니까 그 앞에 나타나서 그런 깨우침을 준다 이 말이오. 최상승 발한 자를 위하여 대승을 발한 자를 위하여 이렇게 지금 범소유상이 개시허망한 줄을 얘기해주는 거지. 그런 저 산꼭대기 올라가려고 생각도 안하고 밑바닥에 있는 중생보고 저 산꼭대기는 꼭대기가 아니다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단 말이오. 산꼭대기 그래도 올라가려고 애를 써서 중턱에 중간봉우리에 서가지고 이게 꼭대기다 하고 큰소리치니까. 야 이놈아 이게 꼭대기가 아니고 저게 꼭대기다 이렇게 말해주는 거지. 밑바닥에 앉아 있는 사람보고. “야 임마 저 중간 봉우리 있지. 저건 꼭대기 아니야.” 저기 가면 안 돼. 이런 말 할 필요가 없다. 이거야.

 

若有人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서

能受持讀誦 廣爲人說 능히 이 금강경을 수지 독송하고 널리 사람을 위하여 연설하여 연설하여 주면. 사람을 위하여 그 법을 설해주면

如來悉知是人 悉見是人 부처님께서는 여래께서는 다 알고 있다 이 말이야. 이 사람을 다 알고 있고, 이 사람을 다 보고 있단 말이오. 이 사람이 어떻게 될 거라는 거를.

皆得成就不可量不可稱 無有邊不可思議功德 그 량을 도저히 측량할 수가 없고, 거 뭐라고 이름 붙일 수가 없고, 끝이 없고, 그 뜻을 헤아릴 수가 없는 그런 공덕을 성취, 그런 공덕을 성취하여 모두 얻으리라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다 보고 있고 다 알고 있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금강경을 듣고 깨우치면 그게 뭐 하는 게 된다 그랬어요? 수지 독송하는 게 된다 이 말이오. 또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수지 독송을 하면 제가 헛소리를 하는 게 아니고 뭐 하는 게 된다? 광위인설하는 게 된다 이 말이오. 그러면 우리들이 함께 얻는 그 공덕은 헤아릴 수가 없다. 그것은 우리들의 사량분별로는 도대체 얼마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고 측량할 수도 없고 끝이 없다 이 말이야. 그런 공덕을 다 지금 얻고 있구나 하는 거를 부처님께서는 다 보고 계시고 다 알고 계신다 이 말이오. 그러고 있는 줄 알았는데 한량없는 공덕을 다 얻고 있는 줄 알았는데 엉뚱하게 주먹만한 복을 달라고 또 질문을 하면 어때요? ? 그래 주죠 뭐. ~

 

如是人等 이와 같은 사람 등은 즉, 이렇게 한량없는 공덕을 쌓는 사람, 즉 수지독송한 사람 등은

則爲荷擔如來阿多羅三三菩提 이 하감이라는 거는 어깨에 둘러매다 이런 뜻이에요. 어깨에 둘러매다 이런 뜻이니까.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자신의 어깨에 둘러맨 것과 같다 이러니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자기 것으로 했다 이 말이죠. 이 사람은 여래의 그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최상의 깨달음을 곧 얻었다 이런 말이다 이런 말이요. 어깨에 둘러맸다. 짐봇다리를 어깨에 둘러 맨 것은 아니겠죠? 그러니까 남의 양떼를 세는 것처럼 멀리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완전히 자기 것으로 했다. 얻었다 이 말이죠. 체험을 했다.

 

何以故 須菩提 어찌한 까닭이냐 수보리야

若樂小法者 작은 법을 즐기는 자는, 만약에 작은 법을 즐기는 자가 있다. 이 작은 법이라는 것은 뭘까? 그냥 조그마한 것을 구하는 자.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소승을 말합니다. 소승법을 즐기는 자는

着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내다 하는 견해와, 사람이다 하는 견해와, 중생이다 하는 견해와, 수자다 하는 견해에 사로잡혀서 집착해서 사로잡혀서

 

則於此經 不能聽受讀誦 爲人解說 이 경을 능히 수지 청 듣지도 앞에 불자가 붙어서 전부 부정해 버렸어요. 능히 뭐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받아 지니지도 못하고, 외우고, 읽고 외우지도 못하며 남을 위하여 해설해 줄 수도 없다. 그러니까 듣고 받아 지녀 읽고 외우고 남을 위하여 해설해 주는 것을 하지 못한다. 불능이라는 말이 뭐요? 절대로 할 수가 없다 이 말이오. 수학에 불능이라는 거 알아요? 부정, 불능 이런 게 있잖아 그죠? 불능이라는 말은 절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을 말한다.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이 거요. //

 

須菩提 在在處處 若有此經 수보리야, 곳곳마다 있는 곳곳마다. 수보리야 이 경이 있는 곳마다 이 말이오. 곳곳마다 이 경이 있는 곳에 이런 얘기요. 수보리야 곳곳마다 이 경이 있는 곳에는

一切世間天人阿修羅所應供 일체 세간에 하늘의 신들과 모든 인간들과 아수라 등이 응당히 공양하는 바다. 다 받들어 모신다 이 말이오. 공양하는 바이니

養當知此處 則爲是塔 마땅히 알아라. 이 곳은 곧 탑과 같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탑과 같다. 이 말이오. 그래서

皆應恭敬作禮圍繞 以諸華香 而散其處 모두 다 마땅히 응당히 공경한다 이 말이오. 다시 말하면 이 경이 있는 곳은 부처님의 탑이 있는 곳과 같다. 이랬는데. 부처님의 탑이 있는 곳에 사람들의 행동이 어떠냐 하면 첫째 거기 가서 무릎을 딱 꿇고 두 손을 모아 쳐다보면서 공경하죠.

 

자기를 낮추고 상대를 우러러 보는 것을 공경이라 그래. 공경을 한 뒤엔 다시 엎드려 뭘 합니까? 절을 하죠. 그게 장래란 말이오. 엎드려 절을 한단 말이오. 주위를 돌면서. 그러니까 원래 부처님 그 처소에 갈 때는 여러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오른쪽 어깨를 착 들어 올리고. 편단우견하고 말이에요. 딱 올리고 자리에 일어나서는 세 바퀴를 먼저 돕니다. 이게 위요란 말이오. 세 바퀴를 돌고는 앞에 착 앉아서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 우슬착지하고, 합장공경을 하고 우러러 보면서 함장공경 이렇게 해서 말을 한단 말이오. 그러니까 절을 하고 말이에요. 절을 하고. 그러니까 작례위요, 주위를 돌면서 뭐라고? 예를 다 하고.

 

그러니까 그 다음에 모든 향과 꽃으로 화향이니까 꽃과 향으로 모든 꽃과 향으로 이곳에 뿌린다 이 말이오. 아시겠습니까? 이렇게 하는 곳이다. 이것은 바로 앞에 나와 있는 소응공양 한다. 공양을 어떻게 하느냐를 다시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한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부처님 탑에 가면 우선 꽃을 가져가거나 향을 가져가죠. 향을 꽂고 꽃을 올리죠. 그런데 인도 사람들은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 꽃을 앞에 갖다 놓는 경우도 있지만 꽃을 이렇게 뿌립니다. 제가 가면 꽃을 한 송이 따서 손에 갖다 주는 사람도 있고, 꽃 한 송이를 두 송이를, 안 그러면 꽃잎을 따서 이렇게 손에 쥐고 와서 손 벌리라 그러고 거기다 턱 놓고는 무릎에다 턱 갖다 놓기도 하고. 지금도 그래요.

 

학교 짓는데 가면. 스님이 자기들 학교 지어 줘서 고맙다고 환영을 할 때 애들이 길에 죽~ 서서. 그 다음에 목걸이를 꽃목걸이를 가지고 걸어줍니다. 우리는 한 사람에게 하나씩 걸어주잖아. 그죠? 그런데 거기는 열 개고 20개고 각자 자기가 가지고 와서 다 걸어요. 목이 부러지도록. 처음엔 저는 그거를 적응을 못해서 그런 것을 조금 거부하는 게 있잖아요. 약간 결벽증이 있어. 그죠? 그런 거 못하도록 했는데. 그것도 사실은 거부할 게 아니더라고. 왜냐하면 그 들의 문화란 말이오. 그들이 어떤 자기가 좋은 것을 형식적으로 하는 게 아니고. 저는 그것이 약간 형식화 된 거 같아서 그런 거를 불교에서는 꽃, 목에 걸고 그런 거 못하게 하잖아요. 그죠?

 

그래서 거부했는데 그게 그 사람들의 문화라. 다른데 가 봐도 다 그래. 스리랑카 가면 더 심해요. 그러니까 꽃을 갖다가 목에 걸어주고. 그 다음에 앞에 꽃을 쥐고 뿌려. 가면서. 이거는 저기 델리에 가면 국경일 날 보면 꽃을 손으로 뿌리는 정도가 아니고. 비행기를 갖고 공중에서 생화를 막 뿌려요. 그래서 하늘에서 내리는데. 우리는 보통 색종이를 가지고 하잖아 그죠? 운동선수들 들어오면 뿌리는데. 색종이 갖고 하는 거, 주어 보니까 전부 생화야. 생화를 막 뿌려. 그렇게 뿌리니 임금이 꽃을 싹 다 가져 가가지고 선해동자가 꽃 구할 때가 없었다. 그런 얘기도 조금 처음엔 이해가 안됐는데. 그 사람들 하는 거 보면 아이고 요즘도 그런데 옛날엔 그러고도 남았겠다. 이런 게 이해가 된단 말이오. 그러니까 문화가 서로 다르단 말이오.

 

그래서 한문 번역할 때도 룸비니동산이다. 제다동산이다. 이러면 산이 요렇게 조그마하게 동그란 언덕 같은 게 있고, 거기 이렇게 나무가 심어져 있고 꼭대기 가면 정자도 하나 있고. 이래야 뭐라 그래요? 동산이다. 이러잖아요. 그런데 그거는 중국이나 한국식이고. 인도에는 그냥 숲을 한문으로 번역할 때 뭐라고 번역한다? 동산이라고 번역해 놓으니 머릿속에서 그 놈의 동 때문에 산이라는 것 때문에 그냥 숲이다 이러면 우리는 산세가 많은 데니까 숲이다 하는 개념이 잘 없잖아요. 숲이 좀 우거진 데는 약간 언덕이 묵직한데 그런데 모여 있잖아요. 지대가 약간 높은데.

 

그런데 인도는 완전히 편편한 무슨 불도우저로 밀어 놓은 것처럼 운동장처럼 평평한데 동산을 만들려면 흙을 져다 부어가서 그렇게 만들어야 된단 말이오. 그런데 가보면 약간 높은 데가 있어요. 그건 왜 그러냐 하면 옛날 절이 다 허물어져서 건물이 허물어져 이게 흙이 돼서 지대가 좀 높단 말이오. 전부다 평평하단 말이오. 그러니 숲을 동산이라고 번역하니까 룸비니 동산이다. 룸비니에 가면 꽃피고 새운다. 이러니까. ~ 어떨 거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그냥 밀림을 말하는 거란 말이오. 그런 것들이 번역상에서 늘 차이가 생기게 되죠. 문화의 차이란 말이오. 문화의 차이.

 

그러니 탑이 있으면 이렇게 가서 처음에 가서 뭐 한다? 향을 뿌리고 여기 이산기처라는 말을 내가 하려는 거요. 아시겠어요? 왜 뿌리냐?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 사람들은 꽃을 뿌리고 향을 뿌리고 우리 왜 뭐 할 때 물 뿌리잖아. 그죠? 그런 것처럼 뿌리고. 물 뿌린다니까 여러분들도 기억나십니까? 옛날에 우리 시골에서 당수나무 아시죠? 나무에 제를 지내거나 집에 이 연초에 이 안택하죠. 집이 일 년에 편안 하라고 봉사나 그렇지 않으면 무당 데려다가 한식 알아요? 그런 거 할 때 보면 우선 마당을 깨끗이 쓸고 전부 물을 뿌리죠. 물을 뿌리고 산에 가서 빨간 흙을 퍼와서 황토 흙을 골목에 오는데 신이 오는 거를 예비하는 거란 말이오. 저 골목 저쪽 끝부터 조금씩 나아가 마당에도 다 뿌린단 말이오. 이게 신성하게 하는 거란 말이오. 그런 것처럼 뿌리는 게 있어요. 우리도. 물도 다 뿌리고 그런단 말이오.

 

그런 것처럼 여기서는 뭘 뿌린다고? 과 꽃으로 다 뿌린단 말이오. 그리고 또 세 바퀴 돌고, 탑돌이 유래가 그렇죠? 거기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을 한다. 그건 최대의 경의를 표하는 거죠. 주로 어디에 가서 그렇게 합니까? 부처님 탑에 가 그렇게 한단 말이오. 부처님 탑은 부처님의 진신 사리가 있는 곳이니까. 곧 부처님이 계시는 곳과 똑같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한단 말이오. 그런데 이 경이 있는 곳은 바로 부처님 탑이 있는 곳과 같다 이런 얘기에요. 수보리야. 만약에 이 경이 있는 곳이라면 일체세간의 신들과 인간과 수라가 마땅히 공양을 올리는 바이니 마땅히 알아라. 이곳은 곧 탑과 같느니라. 공경하고 절을 하고, 주위를 돌고, 향을 곳곳에 향과 꽃을 곳곳에 뿌리는 그런 거를 모두 다 응당히 한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 이 경이 있는 곳만 해도 이렇게 존중을 받는데. 하물며 이 경을 수지독송하고 위타인설하는 그 공덕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여기서 서사, 수지독송이란 말이 생겨놓으니까. 야 그래서 공덕을 쌓으려고 옛날 사람이 뭐했다? 사경이 나온 거요. 이것을 배껴 쓰는 게 한량없는 공덕이 있다. 이래서 사경이 나왔단 말이오. 그러니 여기서 다 배껴 쓰고 수지 독송하고 위타인설한다는 거는 그냥 형식적으로 보면 안 되고. 그것이 쓴다. 배 낀다. 받는다. 지닌다. 남을 위해서 연설한다는 것을 다 어떻게 해야 된다? 범소유상이 개시허망한 줄을 체득해야 된다 이 말이오. 그러면 쓰면서도 다 그걸 염두에 두고 쓰면. 그게 쓰는 것과 내용이 일치하겠죠?

 

복 준다니까 금물 사다가 종이 글에다 글 예쁘게 쓰는데만 정신이 없고. 이렇게 내가 힘들여 쓰면 복이 얼마나 돌아올까? 이런 생각하고 쓰면 이건 바로 이미 상에 집착한 거에요? 상에 집착 안한거요? 상에 집착안한 거란 말이오. 이러면 금강경 가르침하고 십만팔천리를 이미 떠나 버렸단 말이오. 그러니까 서사하고 수지하고 독송하고 위인 해설한다는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된다 이 말이오. 위인해설을 하는 공덕이 있다. 그러니까 사람들을 모아놓고 여기 앉아서 한 번 읽으면 한번 위인해설한거고. 두 번 읽으면 두 번 위인해설한거고. 그래서 매일 앉아 내용도 모르게 중얼중얼 외우면 엄청난 공덕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이 말이오. 그 내용을 소화해서 해야 된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 금강경을 읽으면서 한 번 봐요. 그 동안에 부부간에 갈등도 있었고, 자식 때문에 갈등도 있었고, 사업체 때문에 갈등도 있었고. 또 나이 들었다고 늙었다고 또 직장 그만뒀다고 여러 가지 정신적으로 고통이 있었는데. 이 금강경을 가만히 이렇게 법문을 듣고 경을 읽고 공부를 하다 보니. 아이고 다 꿈같은 거. 그거 다 지나놓고 보니 다 별거 아닌 거. 이렇게 생각이 들면서 지금 다 이렇게 눈앞에 닥칠 때는 현실현실현실하지만 지나놓고 보면 어때요? 다 별거 아니죠. 지나놓고 보면 별거 아닌 거를 가만 현재에도 돌이켜보면 지금 이렇게 눈앞에서 보이는 게 별거인거 같지만은 이것도 지나놓고 보면 별거 아닐 거다.

 

이렇게 생각하면 눈앞에 나타난 일에 대해서 그렇게 집착을 안 하게 되고 속상해 안 하게 되고. 사람이 담이 점점 커진단 말이오. “아이고 그거 뭐 시험공부 좀 못했다고 해가 서쪽에서 뜨겠나?” 요렇게 탁 넘어간다 이 말이오. “손가락 하나 부러졌다고 그게 대수겠냐? 치료하면 되지.” 이렇게 넘어가면. 사는데 자꾸 여유가 생긴단 말이오. 아이고 뭘 잊어버렸다 하면 전에 같으면, “야 이놈의 자식아. 그거 얼마 줬는데 그걸 잊어버리냐?” 이러고 친구 줬다 그러면 난리가 나고. “이 바보 같은 게 니가 어떻게 사느냐이러지만은. 줬다 그러면 아이고 잘했다. 네가 벌써부터 보살행을 하구.” 이렇게 탁 넘어가면 매사가 편안해 진다. 어떻게 금강경 들으면서 어떻게 쬐금 나아진 거 있어요? 그럼 그게 한량없는 뭐다? 공덕이다. 그게 한량없는 공덕이다. 공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