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문즉설] 제845회 아들이 대학 가서 놀기만 하니까 화가 치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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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즉문즉설(2013)

2013. 11. 29.

출처 YouTube

 

앞에는 지금 다니시던 절에 다니셔도 되고, 정토회 오시고 싶으면 오셔도 되고, 교회 가시고 싶으면 가셔도 되고. 화두를 이미 타파해버렸는데 뭐가 걸림이 있겠어요? 어디든지 가고 싶은 데로 가면 되요. 이미 화두를 타파해버렸다매요. 그런데 뭐 걱정이에요? 못 했네. 내가 딱 들어보니까. 화두를 타파한 사람이 뭐 그런 거 가지고 걱정이오. 걸림이 없는데. 일체 걸림이 없는데 여기가면 어떻고, 저기가면 어떻고, 다니던 절에 다니면 어떻고, 새로운 절에 가면 어떻고, 교회 가면 어떻고, 안다면 뭐 어떻겠어요. 그리고 그건 걱정할 거 없어요.

 

그런데 그건 공부가 안된 거요. 나와도 괜찮고, 안 나가도 괜찮아야 공부지. 안 나가는 게 더 편하다. 그럼 나가는 게 불편하다는 거 아니오. 뭐 가서 뭐 또 지 맘에 안 드는 게 있었구나. 아이고, 말을 저렇게 고상하게 하지만, 뭐가 마음에 안 들었어요? 다니다가? 그러니까 화두라는 그렇게 하면 안 돼요. 화두라는 건 탁~ 타파가 되면 그냥 아무 걸림이 없어버리는 게 타파된 거요. 지금 얘기하는 거보면 내가 아직 타파를 못했다. 알았어요? 그렇게 생각하시고. 그다음에 정토회 오려면 깨달음장을 해야 되느냐가 아니고, 깨달음장이라는 것은 내가 누군가?’ 하는 것을 확연히 한번 살펴보는 게 깨달음의 장이에요.

 

그러니까 그걸 한번 탁~ 하고 나면 불교에 대해서 신앙으로서 믿음으로서의 불교보다는 법으로서, 진리로서의 불교를 만나게 된다. 그러니까 뭐? 불교니 기독교니 하는 이런 불교가 아니고, 불교 기독교 천주교 이런 거 뭐 종교니 아니니 이런 거 툭~ 떠난 그 위에서서 불법을 보게 되니까 또 자기를 한번 둘러보게 된다. 내가 누군지. 그래서 한번 해보라고 하니까 해야 되는 거는 아니에요. 사람이 너무 할 사람이 많아서 줄을 서 있기 때문에 안오는게 가능하면 좋아요. 그래도 해보겠다면 비집고 들어갈 수는 있다.

 

억지로 오라는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다음에 두 번째는 아들 20살이 넘었죠? 대학교 1학년이면? . 그러면 이제 놔 놓으세요. 지 알아서 살게. 대신에 나도 내 맘대로 해도 돼. 20살이 딱~ 넘으면 아들이 성년이 되거든요. 더 이상 아이로서의 내 아들이 아니요. 내 아들이기는 하지만 독립된 인간이요. 첫째 간섭하면 안 된다. 알았습니까? 두 번째 독립된 인간이니까 더 이상 지원할 필요도 없다. 부모는 지원 안 해도 되니까 좋아요? 안 좋아요? 자식은 부모한테 간섭 안 받아도 되니까? 좋아요? 안 좋아요? 좋지. 자유에요.

 

여기서 부모가 더 해주고 싶으면 이거는 의무가 아니고, 해주고 싶으면 해주는데 자식을 위해서가 아니에요. 자기 해주고 싶으면 해줘요. 말고 싶으면 말고. 이거는 의무도 아니고 법적인 윤리적 도덕적 의무가 아니고, 그냥 스폰서에요. 여러분들은 스님이 자기 자식이 아닌데도 가끔 스폰서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죠. 하는 짓이 예뻐 보이면 지원해줍니까? 남의 자식도 지원해 줘요? 안 해줘요? 해주지. 그러니까 하는 짓이 예뻐 보이면 지원을 해주면 되요. 지금처럼 하는 짓이 미우면 지원 안 해줘도 되요.

 

그다음 자식도 남의 말도 조언을 얻어서 요즘 멘토니 뭐니 해서 남의 말도 듣습니까? 안 듣습니까? 듣는데 제 부모 말 들어보고 괜찮으면 들어야 되요? 들으면 좋아요? 안 들으면 좋아요? 들으면 좋겠지. 그러나 들어야 될 아무런 책임도 의무도 없습니다. 아시겠어요? 뭐라고 하든 듣고 내가 결정을 하는 거요. 부모 말이라고 의무적으로 들어야 할 이유도 없고, 자식이라고 의무적으로 도와줘야 될 책임도 없고. 그게 20살이에요. 으흠. 그러니까 첫째 노는 거 보니 꼴보기 싫어. 간섭을 하고 싶죠? 그죠? 간섭을 안해야 돼. 20살이 넘었기 때문에. 대신 미우면 뭐 안 해줘도 된다? 밥은 끊어도 되요. 집도 문 잠가도 되요. 아시겠어요?

 

그렇게 해서 그거 뭐 지원해주고 싶으면 지원해주면 그건 자기 자유요. 그런 관계에서 인간관계를 맺으면 되요. 하나도 걱정할 거 없잖아. 뭐가 걱정이오? 예뻐 보이면 더 주고, 남도 주는데 못줄 이유가 뭐가 있어요? 보기 싫으면 안줘도 되고. ~ 거기서 뭐가 걱정이오? 한번 물어보세요. 그런 걱정 하지마라니까. 그런 생각을 하지마라니까. 끊어도 되지. 그러니까 용돈을 그냥 예쁜 짓하면 그냥 주고, 그다음에 아르바이트를 집에서 시켜가지고 노동비로 주면 되요. 알았어요?

 

그러니까 무상으로 줄 수도 있고, 스님도 그렇잖아. 법문 시키고 돈 주는 사람도 있고, 그냥 주는 사람도 있고, 먼저 듣고 나중에 보시하는 사람도 있고. 그러니까 자기가 봐서 주고 싶으면 주고, 안 그러면 일시키고 주고 싶으면 주고, 그건 자기가 알아서 하면 돼. 인간관계 잘못 맺으면 부부도 잘못 맺으면 평생 고생하잖아. 그죠? 부모자식도 관계 잘못 맺으면 평생 고생합니다. 자식도 부모 잘못 만나면 40 50이 되도 잔소리 들어야 되고, 부모도 자식 잘못 만나면 자식이 40 50되도 도와줘야 되요.

 

그래서 부모는 허리가 휘고, 등골 다 빠지고, 자식은 부모 억압에 억눌림에 자라지도 못하고. 이게 지금 우리나라 현재 부모자식 관계에요. 이건 대부분 부모가 자식하고 관계를 잘못설정해서 그래요. 그러니까 갓난아기 때는 극진히 보살펴주고, 어릴 때는 모범을 보여주고, 사춘기가 될 때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도록 지켜 봐주고, 성년이 딱~ 되면 정을 끊어야 되요. 그러면 뭐~ 부모는 자식한테 더 이상 자식이라는 부담 안줘도 되고, 무거운 짐 안 져도 되고, 자식은 더 이상 부모 간섭받고 부모한테 억눌림을 안당해도 되고, 그래서 자식은 자식대로 자유롭게 살 수 있고, 부모는 부모대로 자유롭게 짐 내려놓고, 자유롭게 살 수 있고, 얼마나 좋아요.

 

왜 이 좋은 인생을 포기하고, 그저 부모는 자식걱정에 평생을 우울하게 살고, 자식은 부모 잔소리 들어가면서 간섭받아가면서 억눌려서 저항하면서 살고. 왜 이렇게 합니까? 인간관계를. 인간관계를 잘 맺으면 서로에게 이익이고, 인간관계 잘못 맺으면 서로에게 고통이오. 부모도 지금 잘못 맺어놓으면 서로가 고통이잖아요. 그런데 부부는 헤어지고 다시 맺을 수라도 있지만 부모 자식은 끊고 새로 맺을 수도 없잖아. 그지? 그러니까 자연의 원칙대로 맺으면 되요. 그럼 아무 걱정 없어요. 선방에 화두를 타파한 사람이 왜 그거는 타파를 못했어요.

 

그러니까 이제는 옛날하고 틀려. 화두가 뭔지 이런 거를 현실에서 딱, 현실적으로 극복을 해야 돼. 교리는 많이 아는데, 삶에선 해결이 안 된다. 기도는 많이 하는데, 삶은 해결이 안 된다. 화두는 타파했는데 현실의 과제는 타파 못 한다. 이런 문제는 이제는 우리 좀 떠나보내야 되요. 이제는 내 삶의 문제에서 살아있는 내 문제로부터 타파를 해 나가야 돼. 으흠. 인간관계로부터 자유롭고, 돈으로부터도 자유롭고, 명예로부터도 자유롭게, 몸이 병이 나도 자유롭고, 으흠. 그게 공부요. 진짜 그렇게 자기가 행복하고 자유로운 세계로 가야 그게 해탈이고 열반이다. 이런 얘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