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문즉설] 제1013회 성과에 대한 욕심과 압박감

댓글 0

법륜스님/즉문즉설(2014)

2014. 11. 17.

"> 출처 YouTube

 

 

사람이 어떤 뭘 하고 싶다. 잘하고 싶다하는 건 욕심이 아니에요. 그건 두 가지가 섞여요. 하나가 욕심이고 하나가 원인데, 우리가 욕심은 버려라고 하고 원은 크게 세워라. 이런 말 들어봤죠. 그러면 욕심과 원의 차이는 뭐냐? 그것이 안 되었을 때 괴로우면 욕심이오. 안되었을 때 , 이러면 안 되네. 저래볼까?” 하고 다시 도전하면 그거는 원이에요. 자기가 지금 얘기 들어보면 자긴 좀 욕심에 가까운 거 같네. 그러니까 오늘 내가 발표를 했다 이 말이오. 아시겠어요? 그런데 발표의 평가가 안 좋았어. 그래서 기분 나쁘면 그건 욕심이오.

 

발표에 대한 평가가 안 좋은 거를 들으면서 , 내가 이렇게 발표하니까 평가가 나쁘게 나오네. 그럼 다음엔 저렇게 한번 해봐야지.” 이런 생각이 들면 이건 욕심이 아니라 원이에요. 그러니까 자기가 욕심을 내고 있으니까 그렇다. 욕심은 버려라는 거요. 아무 도움이 안 돼. 제가 이번에 미국 가서 신학대학에서 즉문즉설을 했어요. 그런데 사람이 질문을 하는데, 그렇게 묻는 너는 무슨 마음으로 그렇게 묻냐? 이렇게 조금 따졌어요. 아시겠어요? 아까 저기 물을 때 내가 조금 추궁을 하잖아. 그죠?

 

그러니 이게 굉장히 부작용이 났어요. 왜냐하면 이게 다 유명한 사람인데 내가 좀 따졌더니. 그러니까 그 사람 마음 안받아줬다고. 그런데 내가 뒤에 가서 감싸 안아주면서 내 경험을 얘기하면서 이렇게 얘기했더니 그건 또 평가가 또 엄청 나요. 그 평가는 뭐냐? 저 분은 깨달은 사람이다. 이렇게 까지 평가가 나올 정도로 좋아졌어요. 그런데 실제로 내가 볼 때는 전자가 훨씬 더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거요. 전자는 개인에게 도움이 되는 거고, 후자는 듣는 보통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얘기요. 그거는 감동은 있지만, 어떤 전환은 안 일어나요.

 

예를 들면 내가 불쌍한 아이들을 돕고 있는데, 그런데 얘들이 말을 안 들어서 내 힘드는데 이걸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을 말 좀 잘 들을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물었을 때, 예를 들면 내가 그 아이들을 위해서 돕니? 너를 위해서 돕니? 그러면 그 사람은 아이들을 위해서 돕는다 그래. 진짜냐? 네가 너를 위해서 사는 거 아니야? 이런 식으로 좀 추궁을 했더니 기분이 억수로 나빠진 거요. 그런데 그 사람만 나쁜 게 아니라 듣는 사람까지 나빠졌어. 그러면 자기 내면에 우리가 어떤 남을 돕는다는 거는, 돌이켜보면 그건 사실은 자기를 위하는 길이에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런데 그걸 자기가 알아야 내가 남을 도와주는데도 그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아도 내가 웃을 수가 있는 거요. 왜냐하면 저 사람을 위해서 하지 않고 누구를 위해서 했으니까. 나를 위해서 한 거니까. 이렇게 까지 가줘야 우리가 어떤 좋은 일일 기쁘게 하지. 만약에 이게 안 되면 좋은 일 하고 비난 받으면 사람이 배신감을 느끼고 화가 나고 이렇게 된단 말이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내가 좋은 의도를 해도 결과가 좋은 거 아니고, 나쁜 의도로 했다고 결과가 나쁜 것도 아니에요. 그럴 때 그걸 딱 들으면서 물론 사람이라는 거는 좋게 해줬는데도 나쁜 평가가 나면 기분이 약간 나쁠 수 있지만,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평가됨으로 해서 내가 앞으로 서양에서 또는 이런 사람을 상대로 할 때는 어떤 방식으로 해야 되겠느냐?

 

한국에선 어느 정도 신뢰가 있으니까 좀 기분 나쁘다 해도 괜찮지만, 그건 처음 했는데 그렇게 접근하면 안 좋잖아. 그죠? 그러면 먼저 이렇게 이해를 좀 하는 방향에서 신뢰를 얻은 뒤에 그 다음부터 조금 더 깊이 들어가도 된단 말이오. 그러면 방식이 달라져야 돼. 이렇게 그걸 기분나빠하기보다는 아, 그러니까 다음에 할 때는 이렇게 해봐야 되겠다. 또 하면 또 평가가 나쁘게 나오면, , 그러니까 요건 요렇게 해봐야 되겠다. 이렇게 하면 계속 평가가 나빠지는 가운데도 자기는 발전하나? 안하나? 발전하게 되는데, 좋은 평가가 나오면 다음에 뭘 개선할 게 없어지잖아.

 

그러면 발전은 안 되지. 기분만 좋을 뿐이지. 그러니까 원이라는 것은 이렇게 평가가 나쁘게 나왔을 때 그것을 개선의 계기로 삼으면 그건 그 사람의 가진 원이고, 욕심을 내면 좋은 평가가 나쁜 평가가 나오면 기분 나쁘고 괴로워지고 좋은 평가가 나면 좋아지고, 그러면 그 사람에게는 발전은 없어. 그러니까 자기는 자기 실력도 안 되는데 자꾸 좋은 평가만 지금 바라잖아. 자기 실지로 실력 있어? 기분 나쁠지 모르지만 자기 실력 없다는 걸 자기가 알고 시작해야 되고, 자기가 뭘 모른다는 거부터 시작해야 된단 말이야.

 

그래서 자기 모르는 주제에 뭘 거창한 걸 발표할 자기 능력도 안 되는데,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내가 아는 수준에서 솔직하게 평가하고 그 평가를 받아서 다음에 개선해서 또 조금 해보고, 또 평가가 나오면 개선해서하고, 개선하다보면 어느덧 자기는 뭐한다? 조금 더 이렇게 잘하는 사람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거지. 안된다고 상심하라는 거 아니라 자기가 원래 안 되는 수준이잖아. 자꾸 자기가 되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니까네 안 되는 게 문제지, 자긴 처음부터 안 되는 수준인데, 뭘 자기가 되려고 그래?

 

그러니까 사람이 10가지 나쁜 평가를 하면 20가지 안한 것만 해도 다행이다. 10가지 밖에 지적 안 받아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얘기하고, 다음에 8가지 받으면 지난번에 2가지는 그래도 나쁜 점수 덜 받았잖아. 그지? 그러니까 플러스를 받으려고 하지 말고, 지금은 마이너스를 받을 생각을 하고, 마이너스 개수가 줄어드는데 자기의 발전이 있다. 이렇게 봐야지 플러스로 갈 거를 너무 생각하지 마라는 거지. 지금 대학원에 들어간 지가 지금 2개월 밖에 안 되었는데, 자기가 뭘 연구해서 발표하겠어.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임해라.

 

그러나 인간은 내가 이렇게 듣고도 불구하고 너나나나 다 그래도 좀 좋은 평가가 받고 싶은 인간의 본성은 있나? 없나? 있으니까 그게 늘 나쁜 평가 나오면 조금 순간적으로 마음이 움츠려 들기는 하지만, 그러나 , 이러면 나만 손해지. 나쁜 평가가 나쁜 평가가 아니라 그것이 내가 개선할 중요한 기회다.” 이렇게 돌이켜야지. 돌이켜서 또 하고, 돌이켜서 또 하고. 그렇게 하면 괜찮을 거 같은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