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문즉설] 제1017회 남편과 종교가 서로 다른데 아이들의 종교는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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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즉문즉설(2014)

2014.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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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선택하게 놔두세요. 그러데 애들이 크면서 어릴 때는 아마 엄마를 따라서 교회를 갈 거고, 크면 엄마가 성질이 더럽고 잔소리가 많고 이러면, 아이들이 어떠냐하면 엄마에 대한 반발이 교회에 대한 반발까지 되요. 아시겠어요? 시어머니가 절에 열심히 다니는데 며느리에게 못되게 하면 절을 싫어해요. 절하고 아무 관계가 없는데.

 

데리고 다니면 안 되지. 애들이 가겠다 그러면 데리고 가고. 갈래 안 갈래 그럴 때는 안가면 죽여 버릴 거야. 엄마의 협박이 있는데. 그 속에. 그럼 안하면 되지.

 

그런데 문제는 애가 교회가고 절에 가는 게 중요해요? 애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해요? 아니 그러니까 우리 아이가 교회 가냐? 절에 가는 게 중요하냐? 우리 아이가 사람으로서 안정된 사람이 우선 되는 게 더 중요해요?

 

그러니까 남편이 기독교인이라서 같이 교회 가는 것을 즐거워하면 지금 아무문제도 안되는데, 자기하고 남편하고 종교가 다르잖아. 그죠? 그럼 종교가 다를 때 두 사람 사이에는 약간 갈등이 있어도 성인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안 돼요. 그런데 지금 남편이 아이 절에 데리고 가는 거에 대해서 싫어하잖아. 가죠? 싫어하는 걸 가지고, 자기가 그 문제를 갖고 약간 갈등을 일으키고 있잖아요. 그러면 아이가 나빠진다. 이 얘기요.

 

교회 가고 안가고 이게 핵심이 아니고, 남편의 행동에 대해서 엄마가 남편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하면 아이는 어릴 땐 누구나 다 엄마편이에요. 아시겠어요? 그럼 애는 엄마편이기 때문에 엄마가 남편에 대해서 아버지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애들 가슴속에서 아버지에 대해서 부정적인 심리가 깔려요. 지금 자기 아까 얘기 들어 보면 부정적이구마는.

 

그건 자기 생각이고, 남편이 애보고 교회가면 안 된다. 그럴 때 자기가 . 그러세요.” 이렇게 안 되잖아. 자기가 아까 아니라고 그래놓고 왜 그래?

 

아이고, . 애가 교회갈래 할 때, 아빠가 그래 교회 갔다 오너라.” 그러면 문제가 안 되는데, 아빠가 교회 왜 가느냐? 가지마라.” 이렇게 말할 때, 자기가 지금 왜 애들 교회 가는 거 갖고 당신이 간섭 하냐 하고 남편에 대해서 못마땅해 지금 하고 있잖아. 그 건으로. 자기가 아니라고 그러는데, 지금 또 금방 못마땅해 했잖아. 제 말 이해하셨어요? 그런 남편에 대해서 못마땅해요? 못 마땅 안 해요? 애 교회 가려는 걸 못 가게 하는 남편의 말이나 행동이 자기 마음에 들어요? 안 들어요?

 

그러니까 그런 행동이 남편이 못마땅해요? 안 해요? 못마땅해요. 그러니까 자기가 남편에 대해서 못마땅한 게 아이한테 나쁜 영향을 준다. 내 말은. 요지는 이거에요. 남편이 애가 절에 가는 것도 남편이 예를 든다면 절에 가지마라. 고 했을 때, 그런 남편을 자기가 못마땅하게 하면 그것 또한 아이한테 나쁜 영향을 준다. 제 말은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남편이 술을 먹고 왔다. 와서 매일 술 먹고 와서 주정을 하는데, 그거 아내로서 못마땅하잖아. 그죠? 못마땅해서 그거 갖고 울고불고 이러면 아이는 남편을 미워하게 돼. 아빠를. 그런 아빠를.

 

그리고 자기는 절대로 술 안 먹을 거 같아. 그런데 이 아이가 20살 넘어서 사회 나가면 이 아이도 자동으로 지 아버지처럼 술을 먹어요. 그리고 주정을 해요. 그러면 이게 다 우리는 뭐라고 하느냐? “아이고 피는 못 속인다. 지 애비가 그러더니 애도 그렇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아요. 그러니까 만약에 남편이 술을 먹고 와서 주정을 하는데도, 아내가 같이 술을 먹으면서 남편하고 앉아서, “아이고 오늘 한잔 하셨네. 오늘 무슨 일이 있었어요.” 하고 대화를 만약에 하고 있다.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해요? 안 해요? 가능 안 해.

 

원리를 설명하려는 거요. 가능 안 해요. 스님보고 하라 그래도 나도 안 돼. 그런데 그렇게 만약에 한다면 아이는 엄마아빠가 아버지가 술 먹고 들어와도 엄마아빠가 사이좋게 지내고 있기 때문에, 아이는 전혀 나중에 크면 아빠처럼 술주정 하는 게 안 일어난다는 거요. 제 말 이해하시겠어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안 먹고 와도 아이한테 안 일어나지만, 엄마가 거기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안 받아도 아이한테 안 일어난다는 거요. 그러니까 남편이 안 해주면 좋은 일이지만, 남편이 그런 거를 한다 그럴 때, 그럼 애기 엄마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애기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거를 수용해줘야 된다. 누구 때문에. 남편 예뻐서가 아니고, 누구 때문에? 애기를 위해서 엄마는 애기를 보호해야 되니까. 지금 내가 말하는 거는 그런 원리에요. 그러니까 남편이 그런 애 데리고 교회 가는 거에 대해서 수용하고 문제 없어하면 그건 더 좋고, 그런데 남편에 대해서 그렇게 부정적일 때 그 남편을 미워하면 아이한테 나쁜 영향을 준단. 내가 말하는 요지는 이거에요.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 아니 그러니까 자기가 그럼, 이게 현실이잖아. 매일 아침 교회 갈 때마다. 그럼 어떻게 대응하면 될까?

 

자기가 그래야 내일 당장 일요일 되면 거기 대응을 해야 될 거 아니오. 어떻게? 어떻게 하면 될 거 같애? 이렇게까지 얘기했는데도 자기 답을 못 찾아? 자기 어떻게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줘도 좋다면 교회 가는 이유는 아까 아이한테 좋은 영향을 주려고 교회 데리고 간다 그랬잖아. 그런데 그걸 갖고 자기가 갈등을 일으키면 아이한테 나쁜 영향을 준다. 이 말이오. 아이가 자기 아빠를 미워하면 아이는 무의식 세계에서 자존감이 없어져요. 제 말 이해하시겠어요? 그래서 저기도 부모한테 감사 기도하라는 거는, 이게 부모를 미워하면 자기 자존감이 없어진다니까. 무의식세계에서 겉으로 의식은 뭐라고 하든지 간에. 항상 자신감이 없어지고.

 

그래서 중요한 거는 교회가고 안가고 절에 가고 안가고 종교가 같고 다르고가 문제가 아니라, 그런 남편에 대해서 자기가 미워하는 마음을 버려라. 시비하는 마음을 버려라. 이런 얘기요. 그러면 그렇게까지 이해는 됐는데, 그럼 구체적으로 자기가 어떻게 해야 될까? 이 말이오. 아니 마이크 쥐고 자기 생각대로 얘기해봐. 요번 일요일 날 남편이 내가 교회가려니까, “엄마 나도 갈래.” 하고 나오는데, 남편이 . 가지마.” 그거 뭐 하러 가? 이렇게 얘기할 때 자기 어떻게 할래? 애가 알아서 가겠다잖아. 애가 알아서.

 

아빠한테 물어보면 애 가지 마란다잖아.^^ 그러니까 지금 과제를 그럼 답이 없으니까, 과제를 줄 테니까, 그런 남편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면 누구한테 나빠진다고? 아이한테 나빠지는데, 그런 남편을 못마땅하지 않는 생각이 내 속에 들 때, 그런 남편 그렇게 말하는 남편이 충분히 이해가 돼. “아이고, 당신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겠다.” 이럴 때 내가 어떤 행동이 나올까? 자연스럽게. 그걸 연구를 해서 자기가 한번 해봐요. 그러니까 애를 교회 데리고 가는 거 안 되는 게 핵심이 아니에요. 자기가 그런 남편을 부정적으로 안보는 자세가 어떤 거냐? 하는 거요. 부정적으로 안보면서 데려가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안 데려가도 그러면 아빠 말 듣고 집에 있어라. 이렇게 말하고도 가면서 에이고 저놈의 첨지 저거. 그냥.” 이런 다면 그거는 나쁜 영향을 준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애가 가고 안 가고는 여기 핵심이 아니에요. 그런 남편을 내가 수용할 수 있느냐? 이게 핵심이오. 그러니까 오늘부터 교회 다녀도 하나님 부르면서 자기 절 할 수 없는가? 절하면 안 되나? 하느님한테 절하는 것도 우상숭배가? 하나님한테 절하는 건 괜찮잖아. 그죠?

 

하나님한테 절하면서 성경에는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을 두고 뭐라고 그랬어요?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이랬죠. 그런데 남편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수준은 아니잖아. , 교회 못 가게 한 거 밖에 없잖아. 그지? 그거 용서하기가 쉬워요? 예수님에 비하면 자긴 쉬워요? 안 쉬워요? 훨씬 쉽죠? . 그러니까 자기가 남편에 대해서. 그런데 예수님의 그 뒷말이 뭐냐 하면, “주여, 저들을 용서 하소서하는데, 뒷말이 있어.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 이렇게 되어있어.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사형집행인이에요.

 

그 사람들은 뭐, 예수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법에 의해서 뭐다? 사형방식이 십자가에 못 박는 거니까 그거 했을 뿐이에요. 그 사람들은 공무원처럼 매일 하는 일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그들을 예수님께선 온전하게 이해했기 때문에, 그들을 원망하지는 않았단 말이에요. 그러듯이 남편이 애를 나쁘게 하려는 의도가 있거나, 아내를 괴롭힐 의도가 있는 게 아니고, 남편은 그냥 자기식대로 한 거요. 자기 생각대로. 무슨 말인지 그건 이해가 되죠? 그걸 온전하게 이해했을 때, 남편에 대해서 내가 어떤 마음을 내어야 되겠냐?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하느님, 저런 남편의 마음을 제가 충분히 이해합니다. 우리 남편 사랑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세요. 남편이 여기 왔어요? 어디 있어요? ~ 마이크 남편한테 줘 봐요.

 

이해가 되네. 아까 나도 벽하고 얘기하는 거 같았어요. 그런데 부인한테 그렇게 얘기했는데, 엄마 따라 애들이 교회 가는 게 뭐가 그렇게 못마땅해? 괜찮아. 솔직하게 얘기해. 자기가 볼 때 기독교인이 좀 트러블이 생기는 종교다. 마이크 다시 부인한테 줘봐. 남편의 마음이 애 나쁘게 하려고 그런 거요? 이해는 되요? 이해가 되면 그런 남편에 대해서 이해가 되면 어쨌든 그런 말을 하는 거에 미워질 이유는 없잖아. 아이를 자기 나름대로 걱정해서 저런단 말이오. 그죠? 그러니까, “아 우리 남편이 그렇게 말할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니까 남편이 애들한테 윽박질러서 안 좋은 게 아니고, 그런 남편을 자기가 미워해서 애들한테 안 좋다니까. 내말 이해는 하셨어요? . 그러면 아내가 이렇게 좀 생각이 바뀌면 애들 교회 좀 보내주세요.^^ 그러니까 교회 꼭 보내주라고 정할 필요는 없지만, 자기가 아이들이 좀 편향이 안 되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자기 바램은 우리가 충분히 이해되니까, 교회 다니면서도 다 100% 편향 되는 거는 아니에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이제는 조금 더 우리가 다문화 다종교 속에 살기 때문에 이렇게 자기 신앙은 지키되 약간 이렇게 좀 편협 되거나, 이런 것들은 조금 이렇게 함께 공존하는 쪽으로 생각을 좀 바꾸어 줘야 되요. 안 그러면 저런 자기가 불교를 고집해서가 아니라, 경험상 저런 저항이 일어나거든. 그래서 다양성이랄까, 그런 것들이 수용하는 게 이제 시대적인 과제에요. 제가 지난 지난주에 뉴욕에 있는 맨해튼에 이는 유니온신학대학이라고,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신학대학이 있어요. 거기서 4일간, 기독교 불교의 대화가 있어요.

 

거기서 저희들이 기독교 세계지도자 불교 지도자들이 모여서 6가지 주제를 갖고 토론을 했어요. 하나가 경제사회 양극화. 경제적 불평등에 따른 인간의 고통에 대해서 어떻게 할 거냐? 기독교적인 신앙, 사상, 또는 불교적인 사상에서 이걸 어떻게 볼 거냐? 그다음에 전쟁과 폭력에 대해서 어떻게 볼 거냐? 그다음에 여성문제, 성차별에 대해서, 그리고 인종 차별에 대해서, 그리고 다섯 번째가 환경 문제에 대해서. 여섯 번째가 영성, 기독교에서 영성이라 그러는데 우리말로 하면 마음 다스리기죠. 6가지 주제를 가지고 풀로 그냥 토론을 하고 그랬거든요. 그 주제 속에는 동양인들, 불교인들은 서양으로부터 기독교부터 뭘 배웠냐?

 

기독교인들은 동양으로부터 불교로부터 뭘 배웠냐? 이런 자기 인생에서 배운 그런 발표가 있었어요. 저는 서양으로부터 배운 건 저는 과학, 과학이 내가 불교를 기피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는 거, 그다음에 기독교로부터 배우는 거는 사회 실천이었어요. 제가 어릴 때 개인적 신앙에는 불교에 굉장히 만족을 했는데, 80년대 70년대 뭐요? 우리나라가 농촌이 붕괴되면서 농촌의 어려움, 그다음에 도시 노동자들의 어려움. 그리고 도시빈민의 어려움. 그리고 민주화에 대한, 이런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불교는 아무 대책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개인적으로는 신앙에 만족을 했지만, 이 사회적인 현상에 불교가 아무 역할을 못하게 되어서는 청년으로서는 굉장한 일종의 회의와 열등감 같은 걸 가졌어요.

 

그래서 제가 농민 교육하는데, 크리스찬 아카데미 가서 교육을 받고, 기독교의 그런 활동에 대해서 굉장히 감동을 받았는데, 어쨌든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제가 불교를 다시 경전 읽는 방식을 새로 또 봤어요. 불교 안에는 없는가? 그래서 다시 봤더니 불교 안에도 사실 그런 실천적인 모습이 있었어요. 즉 그 전에 내가 고민하기 전에 부처는 신적인 존재였는데, 그 이후에 부처는 한 인간으로서 계급을 타파하고 여성차별을 극복한, 굉장한 사회변화에 그런 실천적인 붓다를 내가 만날 수가 있었거든요.

 

그것이 원래 우리 속에 있었다 하더라도 내가 그걸 발견할 수 있었던 거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도움을 얻어서 내 내부의 다시 그걸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발표를 하면서 또 자기들은 어떻게 했느냐? 이런 교환을 했었는데. 이것은 자기 신앙이 부족하거나 흔들려서가 아니라, 거기서 전체적으로는 어떤 사람은 자기가 기독교에 회의적이었는데, 불교를 만나면서 기독교를 재발견했다. 이런 사람도 발표했었습니다. 그래서 이게 꼭 대립적이거나 적대적인 거는 아니에요. 그런데 그 내용이 어떻든 간에 현상적으로 드러났을 때는 불교는 자기 내면의 세계를 다스리는 거에는 확실히 기독교보다 장점이 있는데, 대신에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사회적인 이 구조적 모순, 부조리. 이런 거에 대한 사회적 실천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기독교는 여러 가지 사회적인 이런 실천적인 프로그램이나 활동들이 많은 건 맞는데, 이게 종교적인, 자기 내면의 화나 분노나 이런 걸 가지고 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요. 그러니까 사회운동과 크게 차이가 없는, 그래서 종교성이 오히려 떨어지는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불교로부터 배워서 이 둘이, 똑같다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일 수가 있다. 이제 이런 토론들을 우리가 함께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 사회에서 이걸 너무 대립적으로 보지 말고, 어차피 우리 인류가 지금 당면하는 문제는 기독교적으로 해답이 안 나옵니다. 불교적으로 만도 해답이 안 나오고. 사회과학적으로 만도 해답이 안 나오고.

 

이제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과거와 달리, 엄청나게 복잡한 문제에요. 인류가 당면한 어떤 새로운 문제, 과거의 어떤 방식으로도 한 가지 방식으론 해결이 안 돼요. 그러면 우리들이 가진 모든 인류역사의 경험, 기독교적인 경험, 불교적 경험, 유교적 경험, 과학적 경험, 이런 걸 다 이젠 나누지 말고, 그걸 전부 다 우리가 동원해서 지금 우리 인류가 당면한 일은 환경문제를 해결해 내어야 되고, 그 다음에 평화문제도 해결해야 되고, 그런데서 두 분이 지금 한집에서 조화를 이루는 거는 아이들에게 둘이 갈등을 일으키면 종교적 갈등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정신분열 현상이 일어나고, 둘이 서로 다른 속에서 조화를 이루면 아이는 둘을 다 경험하기 때문에 어때요? 이 미래 사회에 굉장한 장점을 갖게 되요.

 

그러니까 한국에 살다 외국에 살다가 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도 두 개에요. 아이들이 그 속에서 양쪽 언어를 다 쓰고 양쪽 문화를 다 익힌 장점이 있을 수도 있고, 이것도 잃고 저것도 잃어서 자기 정체성이 없는 아이들이 있어요. 아버지가 외국에 왔다 갔다 함으로 해서. 그래서 이건 반드시 나쁜 게 아니라, 그것이 둘 다 장점이 되려면 두 사람이 조화를 이루면 오히려 장점이 되고, 두 사람이 갈등을 일으키면 정신 분열의 징조가 됩니다. 그래서 심각한 갈등이 되요. 그러니까 자기 아이들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될까? 조화를 이루어야 되겠죠? . 그렇게 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