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강 ~ 一切塵中亦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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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종범스님_법성게

2010.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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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수 많은 구름이 떠 있는데 일어난 거죠. 그런데 그 근본 물의 습성으로 보면 구름이 뜨나 안 뜨나 그대로다. 이게 성으로 보면 그대로고. 법으로 보면 나온 건데. 법은 성을 떠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本來寂본래적이다. 이게 아주 철학적인 세계다. 의상대사가 화엄경을 보고 우주의 원리를 깨친 내용이다.

 

無名無相무명무상. 그러면 그것이 뭐냐? 움직이면서도 근본으로 보면 안 움직인 거고. 안 움직인 거면서도 또 움직인 건데. 그것을 뭐라 그러냐? 無名無相絶一切무명무상절일체라. 뭐라고 이름 지을 수가 없다. 그게 무명이다. 이름 지을 수 없고 모양을 그려낼 수가 없어. 그게 無相무상이다. 이게 붉은것도 아니고 흰것도 아니고. 그림을 그릴 수가 없어. 이름 지을 수 없고 모양을 그릴 수가 없어서 絶一切절일체라. 어떠한 이름이나 어떠한 모양도 딱 들어맞는 게 없어. 일체가 다 끊어졌다. 그려낼 수도 없고 이름 붙일 수가 없다. 이게 絶一切절일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아느냐?

 

證智所知非餘境증지소지비어경이라. 증득한 지혜, 체험된 지혜, 그게 證智증지이다. 깨달은 지혜. 이 깨닫고 삼매에 들면은 생각이 변해서 지혜가 된다. 우리는 생각으로 살아가는데. 공부를 많이 하면 지혜로 살아간다. 생각이라고 하는 건 엉뚱하다. 좋은 사람을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고, 나쁜 사람을 좋게 생각할 수도 있고, 아주 이상하다. 그런데 지혜라고 하는 건 좋은 건 좋게 딱 보인다. 보는 게 지혜이다. 나쁜 건 나쁘게 딱 보이고. 그러니까 이 지혜는 미리 생각하지를 않는다. 생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딱 보는 거다. 그래서 지혜가 있으면 어디를 가든지 아주 자유자제 적제적소에 잘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생각이 앞서면 뭐가 앞에 나타나도 생각 때문에 멍하니 구덩이에 빠지기도 하고 전차에 받치기도 하고 이런다. 이게 생각은 현상을 오히려 가로막는다. 아주 이상하다.

 

현상은 많이 변했는데 그걸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하고. 생각에 빠져있으면 안 맞는다. 금년 대학 입시시험에 문화지체현상이라는게 있었는데. 가령 옛날에 없던 놀이가 전자오락이라든지. 이런 놀이가 많이 개발이 됐는데. 그 놀이를 놀 줄 모르는 사람이 많이 있다. 골프 치는 것도 옛날에 없던 거다. 골프도 못치고. 운전도 못하고. 여러 가지 놀이. 화투를 쳐도 옛날에는 민화투라 그래가지고 간단한데. 요즘은 고스톱도 어느시 고스톱해서 희안하고. 이런 게 많단 말이지. 그게 개발은 됐는데 못 배워서 못하는 것을 보고 뭐라 그러느냐? 이게 문제다. 정답이 뭔가 하면 문화지체현상이다. 문화가 이만큼 개발됐는데 내가 못 따라가서 지체가 되는거요. (더딜 , 막힐 ). 문화遲滯지체현상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남편지체현상이라는게 있는데. 부인은 옛날 할머니 할아버지 때의 부인 모습이 아니고 지금 많이 개발되고 변화되어진 부인하고 사는데. 그 부인에 대한 생각은 옛날 부인을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가지고 변화되어진 부인을 못 따라간다. 그래서 부인들이 뭐라뭐라 하면 까불지 마라 그러고. 또 뭐라뭐라 그러면 손 올라가고. 이런 게 남편지체현상이다. 부인은 저만큼 컸는데 남편이 지체해가지고 못 따라간다. 그런가 하면 자녀지체현상. 자녀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저 만큼 가 있는데. 만날 어릴 때 품에 안고 그 보호하던 그때만 생각해가지고. 이래라 저래라 어째라. 말 안 듣죠. 해 봐야. 일찍 들어와라 한다고 일찍 들어옵니까? 천만의 말씀이지. 그래서 뭘 못 따라 가는 게 있다. 그럼 왜 못 따라 가겠는가? 근본적으로. 생각에 억매여 있고 지혜가 안 나타나서 그런 거에요.

 

그럼 지혜가 있으면 어찌 되는가? 탁 보면은 과거건 생각을 안하고 현재 것을 능동적으로 처리를 하는 게 이게 지혜이다. 그런데 인간은 꼭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릴 때 세월은 이미 가 버렸는데 어릴 때 생각 자꾸 하고 있어요. 이게 아주 지체현상으로서 묘한거다. 생각은 소용없는 거다. 현재에 어떠냐? 그 현재에 알맞게끔 이렇게 하는 거다. 그런데 이런 화엄법성에 대한 내용도 생각을 가지곤 안 보인다. 이렇다 저렇다 아무리 해봐야. 생각을 가지곤 안 보인다. 논리라는 건 뭐냐? 논리라고 하는 건 생각을 정리해 놓은 것이 논리이다. 생각을 정리하면 논리가 된다. 그런데 논리는 진리가 아니다. 진리는 지혜로서 발견되어진 세계가 진리다.

 

논리는 맞는데 현실은 안 맞는 게 그게 차이점이 그거다. 지혜로 보면 보이는데 생각으로 따지니까 이게 들어오지를 않는다. 그래서 논리하고 지혜하고는 다르다. 진리는 지혜로서 깨달아 지는 것이지 생각으로 알아지는 건 아니다하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證智所知非餘境증지소지비어경. 法性圓融無二相법성원융무이를 무엇으로 아느냐? 증득한 지혜. 깨달은 지혜로서 알 수 있는 내용이지. 이게 所知소지다. 證智증지로서 알바요. 알 수 있는 내용이요. 非餘境비어경이라. 다른 방법은 안 통한다. 이게 非餘境비어경이다. 나머지 경계가 아니다. 이 말은 다른 방법으로는 안 통한다 이 말이다.

 

그런데 眞性진성은 甚深심심하야 極微妙극미묘하니 그 法性법성의 내용을 眞性진성이라 그런다. 法性법성을 두 번 쓰기 뭐하니까 眞性진성이라 그랬는데. 法性법성의 참 생명은 심히 깊어서 지극히 미묘하니 不守自性隨緣成불수자성수연성이다. 自性자성을 지키지 아니하고 인연따라 이루어진다. 이게 不守自性隨緣成불수자성수연성인데 이걸 인연법이라 그런다. 불교에서 인연법. 하나의 모습을 지키는 게 아니고 인연 따라서 자꾸 이루어진다. 인연 따라서 이루어지다 보니까

 

一中一切多中一일중일체다중일이요 一卽一切多卽一일즉일체다즉일이다. 그게 不守自性隨緣成불수자성수연성하는 것을 여기서 설명하는거다. 인연따라서 이루어지니까. 하나 속에 一切일체가 있고 또 一切일체 속에 하나가 있다. 이게 多中一다중일이다. 또 하나가 곧 모든 것이고 모든 것이 곧 하나다. 이게 多卽一다즉일이다. 그럼 이게 뭐냐? 의상스님 같은 경우는 10전법에다 비유했는데 一卽一切多卽一일중일체다즉일. 1전자리 동전이 10개가 있다. 10전은 1전을 떠나서 있는 게 아니다. 그렇죠. 1전 없으면 10전이 안되니까. 그것이 바로 10전은 1전속에 있다. 이것이 一中一切일중일체라는 것이다. 1전 없으면 10전이 안되니까. 그래서 10전은 바로 1전 안에 있다. 그리고 또 일전이 없으면 10전이 안 된다. 다중에 10전속에 또 1전이다.

 

인연 따라서 같은 10전이라도 제일 첫 번에 놓여진 순서는 1전이 되고, 두 번째 놓여진 건 2전이 되고, 3번째 놓여진 건 3전이 되고. 마지막에 놓여진 건 제10전이 된다. 같은 1전인데. 같은 1전인데 어떤 건 3전이고 어떤 건 5전이고 어떤 건 왜 10전이냐 이거다. 그걸 隨緣成수연성이라 한다. 인연 따라서 셋째 자리에 놓여지면 3, 다섯째 자리에 놓여지면 5. 거 묘하다. 그게 隨緣成수연성이다. 별거아닌거다. 같은 사람인데 어디에 놓여지느냐에 따라서 남편한테 놓여지면 아내가 되고, 아이들 위에 놓여지면 어머니가 되고, 또 시부모에게 놓여지면 며느리가 되는 거다. 인연 따라서. 2전 위에 놓여지면 3전이요. 9전위에 놓여지면 10전이다. 이게 隨緣成수연성이다. 그런데 어디에 놓여지던지 하나는 전체 속에 하나지 하나 속에 하나가 아니다.

 

또 전체는 하나로 된 전체지 하나를 떠난 전체가 없다. 이것이 화엄경 大方廣대방광이라는 거다. 전체 없는 부분이 없고 부분 없는 전체가 없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다 전체 속에서 한 몫을 한다. 이게 화엄사상이다. 1전이라도 10전속에 1전이다. 자기가 없으면 10전이 안 된다. 그러니까 하나로만 보면 1전인데, 10전을 만드는 1전이다. 이게 一中一切多中一일중일체다중일 一卽一切多卽一일즉일체다즉일이다. 동전 한 잎만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 한 잎에 들어서 10전을 만든다. 이러니까 그 한 잎은 10전 속에 나타난 일전이다. 10전을 만드는 1전으로서 중요한 것이다. 이래가지고 화엄사상은 어디서 무얼 하든지 다 전체 속에 하나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아주 떳떳한 마음으로 큰 몫을 하고 있다.

 

이런 의식을 가지고 살게한다. 이게 화엄사상이다. 이걸 隨緣成수연성이라 한다. 이것이 바로 法性圓融無二법성원융무이라는 것이다. 圓融無二원융무이. 화엄사상을 잘하면 이렇게 어느 경우에든지 자기가 큰 속에 하나의 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이런 자부심을 가지고 떳떳하게 살 수 있는 게 화엄사상이다. 1전 없으면 10전이 어떻게 되나? 그러니까 형상 하나로 보면 나는 1전이지만 나는 10전이다. 이러한 생각을 갖게 하는게 화엄진리다. 圓融無二원융무이다. 아주 중요하다. 하나가 곧 일체요 많은 것이 곧 하나다.

 

더 나아가서는 一微塵中일미진중에 含十方함시방이요. 一切塵中亦如是일체진중역여시라. 一微미진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적은 그 세계를 微塵미진이라 한다. (가늘 , 티끌 ). 티끌 중에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티끌 그걸 微塵미진이라 한다. 그런데 그 微塵미진 속에 온 우주가 다 들었다. 이게 시방을 포함하고 이게 一微塵中含十方일미진중함시방이다. 一切塵中亦如是일체진중역여시라 하면 어떤 특별한 한 티끌만 그런 게 아니라 一切塵中일체진중 모든 티끌속도 다 이와 같다. 이건 뭐냐? 微塵미진이 되는 것도 하나의 인연법으로 微塵미진이 되고, 十方시방이 되는 것도 하나의 인연법으로 되기 때문에 微塵미진을 떠나면 十方시방도 없고 十方시방이 떠나서 微塵미진이 없다. 그래서 하나의 티끌속에 우주가 다 들어있고 우주속에 티끌이 다 들어있다라고 보는 것이 一微塵中含十方일미진중함시방. 이런 사상이다. 一中一切多中一일중일체다중일이라고 하는 것이 다시 더 광범위하게 표현된 그런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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