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학당] 대행스님의 가르침 : “주인공과 하나 되어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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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대행스님 법문

2016. 6. 15.



[홍익학당] 대행스님의 가르침 : “주인공과 하나 되어 살아간다는 것!”

 

주인공 도리가 대행스님 법어집, 이걸 제가 많이 권했어요. 짧고 참 내용이 좋고 싸요. 대게 쌌던 거 같아요. 저는 예전에 이 사이즈 작은 것으로, 글자가 작아요. 이거를 보면 제가 얼마나 열심히 읽었는지 아시겠죠? 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또 보고 또 보고 해서, 저는 어떤 분이든지 진리를 얘기하고 자명한 거를 얘기하는 분은 그분 이론을 제가 완전히 다 소화하지 못하면 또 잠 못 잡니다. 뭐라도 하나 제가 좋은 거 있는데, 제가 못보고 있고, 못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잠이 안 오죠. 그래서 외울 정도로 항상 봐요. 뭐든지. 읽어드릴게요. 이걸 더 현대적으로 얘기해주세요. 같은 맥락입니다.

 

아직 주인공 자리를 알지 못하고 믿음도 약한 사람들에게 한 마디 내가 말하노니, 아주 급한 경우에 그대가 뭔 일이 생겼을 때 주인공한테 주인공, 그대가 한 일이이니 그대가 해결하시오.”하고 관하십시오.’ 관하라는 말이 그러고 딱 맡기고 쉬라는 겁니다. 알아차리고 있으라는 얘깁니다. 멍하니 있으라는 얘기가 아니고 알아차리고. 맡겼으면 걱정 안해야죠. 맡기고 걱정 안하면 그게 참나 자리입니다. 근심 있을 때 모른다하고 딱 버티시면 알아차리고 있으면 그 자리가 참나 자리잖아요. 맡기고 관하라는 게 맡기면 고요해지고 관하면 알아차리기 때문에 적적성성이에요. 참나 자리에요. 이 분은 이렇게 현대적으로 또 불려서 쓰셨어요.

 

지금 내가 있다는 것을 영혼과 불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한마음 주인공밖에 없다고 믿어.’ “내 안에 불성자리가 있다는 것은 그대만이 입증할 수 있지 않소.” 하고 맡기고 관해보라는 거예요. 이미 그 자리가 불성자리죠.

 

그대만이 해결할 수 있다. 거기서 만이 이끌어 줄 수 있다. 되게 하고 안 되게 하는 것은 다 거기하고 믿고 관하십시오.’ 뭔 일이 있을 때마다 이 일은 당신이 해결하시오.”하고 믿고 관하라는 겁니다. 힘든 일이 있건 좋은 일이 있건. 그러면 모든 것을 주인공에게 믿고 관하다 보면, 그때 인과도 무너지고 습도 녹고 참나한테 맡기고 쉴 수 있으면 업력을 초월할 수가 있으니까요.’ “나를 발견하게 되고 일체를 항복받을 수가 있고. 일체가 주인공자리에다가는 일체가 복종합니다.” 에고한테 복종 안 해요. 주인공한테 복종해요. 주인공 자리가 되어서 일체를 경영하시라는 겁니다.

 

주인공은 우체통입니다.’ 더 쉽게 얘기를 해주십니다. 넣고 기다리면 배달되고 답장이 옵니다. 주인공한테 편지 쓰세요. “주인공, 주인공이 알아서 해주세요.”하고 맡기고 쉬어야 되요. 관하고 있으면 아이디어가 답장이 어떻게 오는 줄 아세요. 한 생각이 일어나요. 자명한 한 생각이 나와요. 육바라밀에 맞는 그거 취해서 쓰면 됩니다. 맡기고 받아쓰고. 그런데 에고는 그걸 못해요. 에고가 처리하려고 합니다. 주인공 좀 가만히 있으세요. 내가 하겠습니다. 감당이 안 돼요 사실은. 이미 감당이 안 되고 질려있는데도 내가 하겠다고 고집부리다가 일을 갈 때가서야 그때야 맡겨요. 이게 더 에고가 할 말이 없을 때 맡깁니다. 현명한 사람은 바로 맡겨서 바로 꺼내서 바로 써버린다는 거예요.

 

주인공을 진실하게 믿고 거기에 모든 걸 일임하면 왜 일이 잘 안 풀리겠는가? 그것은 근본자리에서 오는 보이지 않는 힘,’ 무위의 힘이 있어요. 도력이에요. ‘이 도력이 우러나와서 유위의 법, 업력을 어루만져주기 때문이다.’ 다 돌려놓는다 하는 거죠.

 

주인공자리는 본래 움직이지 않지만 나툼의 묘법이 있다.’ 이게 서양철학에서 부동의 동자라고 하죠. 안 움직이는데 주변을 다 움직이게 해요. 그 자리는 텅 비어있는데, 그 자리에서 모든 걸 불리기 때문에 그 자리한테 맡기면 그 자리에서 뭔가 변화를 일으킵니다. 그게 또 에고 뜻에 안 맞아도 에고는 받아들여야 되요. 참나한테 맡기고 참나가 움직이는 데로 에고는 또 따라 서는 겁니다. 이게 그런 믿으면 이루어진다는 거랑 차이가 이거에요. 참나가 하는 대로 빨리빨리 맞추어서 가야 되요. 고집부리지 마시고. 결과가 에고마음에 안 들어도 오케이. 주인공 뜻을 알겠습니다.”하고 따라가라는 거예요. 그러면 끝없이 주인공 뜻대로 우주가 경영되면서 여러분과 주인공이 하나가 된다. 그러면서 어떤 문제도 해결 할 수가 있다는 그런 논리입니다.

 

또한 보실래요? ‘병 들었더라도 병이 주인공에서 나온 것이니 주인공이 고쳐라.” 주인공 당신만이 할 수 있다고 진정으로 믿고 맡길 수 있느냐 이거죠. 못 맡기잖아요. 사실은. 불안해서 어떻게 맡깁니까. 주인공이 어디 있는 줄 모르는데, 그러니까 이게 학당에서 말하는 몰라랑 똑같은 거예요. 병 걸리셨을 때 몰라 하고 쉬어보세요.”라고 하는 거랑, “주인공 알아서 해.” 하고 딱 쉴 수 있으면 똑같이 쉬게 되죠. 그때 관하고 있는 마음이 참나인 거예요. 사실은. 주인공인 거예요. 그 관하는 힘이 커지면 초연해지고 변화가 일어나요. 벌써. 몸과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요. 그 힘을 가지고 그리고 자명한 생각이 나와요. 그 힘 받아쓰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는 거죠. 현상계를 잘 살 수 있냐는 거죠. 이게 기독교랑 똑같다. 이런 얘기 합니다.

 

기독교에서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와라. 내게로 와서 짐을 벗어놓고 쉬라. 하듯이 주인공한테 몽땅 벗어버리면 마음으로 짓고 마음으로 받는 그 창살 없는 감옥에서 저절로 풀려납니다.’ 요런 말들 좋죠. 제가 초창기에 대행스님, 이 책 보내드리면서 좀 많이 보시라고 했었어요. 학당얘기는 좀 딱딱하고 학술적으로 들리실 수도 있어서, 또 이렇게 여성 수행자가 해놓은 말씀이 좀 더 편하게 와 닿으실 거 같아서 제가 많이 권해드린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좀 생각이 나서 읽어드립니다.

 

주인공에 넣고 쉰다는 거는 나의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실은요, 기독교 같으면 아버지하면 본래 자리로 돌아가야 되요. 그런데 뭐가 문제냐? 에고가 자꾸 뭐라고 떠들고 있다는 게 문제에요. 에고가 쉬어야 되는데. 그런데 사실은 여기는요, 기도는 반대합니다. 맡기라고 하는 거지. 그런데 사실 기도도 상관없어요. 무슨 말 하시든지, 그 기도를 하고 나서 진짜 쉴 수 있는가가 문제에요. “아버지 이 병을 고쳐주실 거로 믿습니다.” 하고 기도하고 나와서 계속 걱정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전혀 안 믿고 있다는 얘기거든요. 뭔 얘긴지 아시겠죠? “아버지 믿습니다.”하고 돌아서 나오면서 , 진짜 아버지가 듣기나 하셨을까? 안 고쳐주면 어쩌지이게 아니라 아버지, 이 병 고쳐줄 양반도 아버지고, 아버지한테 모든 걸 맡깁니다.”하고 탁 쉴 수 있냐는 거예요. 그 뒤에 평안이 안 오고 안식이 안 오면 가짜 기도입니다. 에고가 그냥 힘드니까 막 주절이 떠들어 본거에요. 이해되시죠? 우체통에 제대로 전달이 안 되었다고요. 그래서 진짜는 맡기고 쉬는 거다.’ 하는 겁니다.

 

자 또 하나 읽어드릴게요. 다 같은 얘기에요. 보세요. ‘이 뭐꼬, 하지 말고화두선에 대한 얘깁니다. ‘이 뭐꼬하지 말고 맡기면 바로 선이거든요. ‘이 뭐꼬 하지 말고 꿀꺽 집어 삼키라는 말입니다. 그냥 나를 잊게 한 주인공에게 턱 맡겨놓고 가십시오.’ ‘이 뭐꼬할 새도 없다는 게 이 대행스님 입장이에요. 그냥 주인공, 네가 알아서 해.” 그냥 가라는 겁니다. ‘이 뭐꼬하고 주인공 어디 있노하고 찾아다니지 마라는 거예요. 맡기면 이미 주인공이라는 요거 이해 못하시면 이게 하나의 기도가 되요. “주인공, 주인공, 주인공께 맡깁니다.”하면서 기도를 해요. 그러니까 이게 잘못되면 기독교랑 똑같습니다. 기독교도 원래 그러라고 한 얘기에요. 아버지하고 다 맡기라고 하는 얘긴데, 안 맡기면 그게 기복이 되죠. 주인공도 똑같아요. 주인공한테 맡기라는 게 또 기복이 됩니다. 그럼. “주인공, 왜 안 들어주세요.” 이렇게. 에고가 자꾸 뭔가 궁시렁 거리면 기도가 되어 버려요. 일반적인 기복이 되요.

 

자 이거 화두도 그냥 일반은 머리 싸매고 하는 화두 말고, 그냥 주인공한테 맡기면 그게 이미 화두선이라고 보신 거예요. 그러니까 지나보면 굳은 날도 있고 맑은 날도 있듯이 마음에도 변화가 무쌍합니다. 그런 마음을 화두라든가 어느 한 곳에 억지로 붙들어 두려고 하는 거는한쪽은 오매일여 안하면 죽는다고 하는데 이쪽은 그걸 붙잡겠다는 발상부터가 잘못되었다는 거예요. 마음을. ‘그거는 구름을 메어두려는 것처럼 어려운 일입니다.’ 참 어리석은 일이라는 거죠. ‘공은 그렇게 해서 체현할 수 없습니다. 그저 마음의 본성을 의심 없이 직시하기만 하면 됩니다.’ 다 똑같죠. 경허, 만공이 한 말이 뭡니까? 한 생각 올라올 때 그 생각 일어난 자리를 직시하고 그냥 살아가면 되요. “주인공하고 그냥 살아가면 된다는 겁니다.

 

그대로 공은 체현됩니다.’ 그러면 날이 굳든 개었든, 생각이 일어났건 많건, 번뇌가 있건 없건 버릴 것도 아니게 돼 버려요. ‘참나만 알면. 변함없이 여여할 겁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내면에서 솟는 의정도 아니고,’ 솔직히 당신이 궁금한 것도 아니잖아요. 이 뭐꼬가. 화두선 하러 가면요, 템플스테이 하러 가면 이겁니다. 자기 고민을 쉬고 싶으니까 다른 고민을 하나 준 거 밖에 안 돼요. ‘왜 뜰 앞에 잣나무라고 했는고?’ 솔직히 궁금하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하는 동안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왜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되는지에 대해서. 왜 했는고? 왜 뜰 앞에 잣나무라 했는고? 이 얘기에요.

 

솔직히 자신의 내면에서 솟은, 그게 의심이 아니라는 말이에요. 그리고 남이 준 화두를 들고 쥐어짜고 있으니 어느 때 맑은 하늘을 볼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마음자리가 곧 화두입니다.’ 이 분이 훨씬 수준 높잖아요. 그런데 비구니라고 무시당했습니다. 조계종에서. 이 분이 제가 봐도 견성을 해도 훨씬 더 했는데, 이해되시죠? 남의 말 대충 짜깁기 한 양반들이 득세하고 이 분은요, 이단으로 많이 몰았어요. “왜 주인공 얘기만 하느냐? 왜 부처님 얘기 안하느냐?” 자꾸 몰고 그랬습니다. 황당하죠? 알고 나면 황당한 얘긴데.

 

앉으나 서나 말하거나 걸을 때나 먹을 때나 누울 때도또 이 말을 들으면 또 여러분 아이쿠 이제 또 뭔가 시작되었구나. 동정일여나 오매일여나 하지 마시고 그냥 우리말로 열라 열심히 하라에요. 열나 열심히 하세요. 뭘요? ‘주인공의 선이 끊어지지 않게원래 그렇게 되어있어요. 주인공이 어디 가지 않기 때문에. ‘주인공 자리는 일체 함이 없는 가운데 삼라만상과 더불어 나로 하여금 같이 살며 같이 쓰게 합니다.’ 한 생각 일어나는 것도 주인공이 하는 거고, 번뇌도 주인공이 하는 거고, 하니까 주인공이 끊어지지 않는 거지, 고정된 화두를 그렇게 하라는 게 아니에요. 다르시죠?

 

그러므로 일체 근본은 하나이며 극하고 주인공입니다. 주인공은 나의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태양의 주인공 천지의 주인공, 만물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러므로 삼계의 모든 중생이 다 돌고 돕니다.’ 다 같이 한 주인공자리에서. ‘한군데 마음을 모아 일심으로 가다보면 마침내 그게 화산이 되어 터질 때가옵니다. 이게 마음공부 비결입니다.’ 뭔 일이 있든지 주인공, 그대가 했지. 그대한테 맡겨이 짓하고 다녀보라는 겁니다. 터지죠. 똑같죠? “몰라하시는 거랑 똑같아요. 그래서 주인공 얘기 오래 들으시고도 주인공 모르는 분들이 몰라하다가 주인공 찾는 분 많아요. “몰라하고는 , 이게 주인공이네요.” 그 주인공이죠. “몰라하고 맡겼기 때문에 여러분 찾으신 거예요. 맡기고 쉬었기 때문에. 그리고 관했기 때문에.

 

탐욕 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 즉시 자기 본래면목 주인공에게 탐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맡겨보세요.’ 탐욕이 날 때 그거 억지로 막으려고 하지 말고 몰라해보시는 거 하고 똑같아요. “주인공이 알아서 이 문제 처리해.” 하고 맡기고 한번 쉬어보세요. 화나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탐진치, 다 적용해 보세요. ‘그냥 그대로 가라앉게 될 것이니, 그렇게 자꾸 하다보면 삼독심이삼독의 마음이 스스로 정화되면서 청정보리심이 나타날 것입니다. 맡기면 좋은 게 올라오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주인공한테 우체통에다 그 쓰라고 하는 것, 그 얘기죠? 어렵지 않으시죠?

 

우리들은 각자 자기 주처중심이 되는 주인공 자리를 갖고 다니고 있으니 얼마나 편리합니까? 길을 걷거나 잠을 자거나 변소가거나 항상 내가 있는 곳에서 부처가 있으니까, 나 있는 곳에 부처 있는 거예요. 부처를 안고 다니는데 뭘 밖으로 왜 찾습니까? 극락을 왜 찾습니까? ‘주인공해도 좋고 주님해도 좋아요. 기독교도 다 인정하는 겁니다. ‘이거 자기가 자기 부르는 소리니까요. 너만이 이끌어 줄 수 있어. 오늘 하루 종일 다녀도 사고 없이 다니게 할 수 있어. 오늘 회사에서 회의하는데 모든 것이 잘 되게끔 할 수 있는 건 너 밖에 없어하고 이렇게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자기 마음을 지켜보면서 다 맡기면서 살아보시라.’

 

이렇게 항상 자기 주처, 주처라고 하고 중심봉이라고도 하세요. ‘중심봉, 주인공, 주처에다가 모든 거를 너만이 우리 가정 화목하게 할 수 있고, 너만이 저 사람이 밝은 지혜로 살게 할 수 있어.’ 남편분이 마음에 안 드실 때 이렇게. 주인공만이 저 양반 정신 차리게 할 수 있어. 이렇게 맡겨보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렇게 관하면서 부드럽게 말해주고 부드럽게 행동하면서 마음의 주장자,’ 똑같은 얘기죠? ‘놓치지 않고 산다면,’ 이혼으로 질문이 나와서 이렇게 얘기하셨나보네요. ‘이혼을 한다. 안한다 하기 전에 스스로 지혜의 묘용이 안에서 밝아질 거다.’ 학당 같으면 모른다하시고 버티시다가 자명할 때 움직이세요.” 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이해되시죠? 이런 지혜의 보고들이 단돈 몇 천원에 팝니다. 좋은 세상이에요.

 

이런 거 보시고, . 이런 거 그냥 글로 즐기지 마시고 이 매뉴얼대로 여러분 주인공이 쓰이는지 확인해 보세요. 내 주인공이 이렇게 좋은 물건인지 모르신다니까요. 밖에서 이렇게 설명을 해줘야. “설마, 내 안에 그런 게 있을라고?” 안 믿어요. 몇 번을 얘기해도 안 믿다가, 안 믿다가, 만나고 처음 진짜 믿음이 견고해집니다. 그래도 아직 믿음의 단계에요. 믿음이 확신해지기는 해요. 뭔 얘기하는지는 알아요. 그러다가 그 물건을 자유자재로 쓰게 되면 일주보살이 됩니다. 별거 아니죠? 그러다가 그러다 쓰다가 노련해지면 일지도 되고 되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까지만 가시면 된단 말입니다. 학당으로 치면 팔급에서 일급까지만 갑시다. 그 다음 일단 이단은 따놓은 당산이에요. 일급까지만 가시면, 착실하게 공부해서.

 

제가 얘기하는 일급의 모습이 있죠?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5분 안에 몰라 출동하고, 그러니까 바로 몰라 출동한다는 게 대행스님 식으로는 주인공한테 바로 맡기고. 거기서 관하고 자명한 생각 따라. 주인공 뜻대로 문제 해결하는 능력이 생긴다는 거예요. 육바라밀분석해서 문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야 일급입니다. 솜씨가 떨어져도 이 능력만이라도 갖추어지면 이미 여러분 견성 단단히 하시는 거예요. 그 다음 문제는 육바라밀 잘하기만 하면 되잖아요. 그거는 그렇게 사시다가 보면 자연히 실력 느는 거 아닙니까? 중요한 부분이 참나 처음 만났느냐와 참나 안에서 안식을 얻으셨는지, 요게 학당에서 팔급 칠급의 체험, 첫 체험은 팔급이고, 이게 다져지면 칠급이죠. 팔급 칠급의 경지와 일급의 경지의 중요성입니다.

 

요정도 까지만 가서 인재만 배양되어서, 우리나라에서 일주보살이 막 찍어내듯이 나오는 거 아닙니까? 학당에서? 학당은 다른 거안해도요. 이 나라 정치경제 뭐, 다른 거 못 도와드려도 이 일주보살만 계속 배출하면요, 우리나란 정화되게 되어있어요. 그리고 우리나라만 바뀔까요? 우리나라 바뀌고 나면 세계가 들썩하게 되어있어요. 그게 다 어디서 시작이에요? 우리 참나자리에서. 참나 귀한 줄 아셔야 됩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까지 얘기 드린 거는, 옛날 어른이 참나 이렇게 귀한 줄 알고 닦았는데, 학당에서 참나 체험해도 하다가 황홀한 거나 더 없나하고 에고의 마음으로 자꾸 찾다보면 별 물건 아니네.” 하고 멈추실까봐, 옛날 어른들의 그 이런 상품 평을 소개해드리는 거예요. 이렇게 잘 쓰신 분들이 이렇게 잘 쓰셨다고요.

 

여러분들 상품평이 지금 참나 자리 체험하니 고민이 좀 줄기는 하네요. 뭐 이렇게 처리할 문제는 아니라는 거예요. 거기에 생사의 뿌리가 있는 자리인데, 그거를 누구나 캔만큼 얻습니다. 의심한 만큼 답을 얻고. 그래서 그 자리에서 많은 어떤 지혜와 능력 얻으시길 바래서 제가 이 사승관계 가지신 분이시죠? 한 계통이죠? 경허의 제자 하남, 하남의 제자, 또 대행스님. 어려서 여성분이 어려서 힘든 가정에서 지내시다가 대행스님 혼자 밤마다 숲에서, 본래 아버지가 좀 험하게 대하셨나봐요. 그래서 밤에도 막걸리 심부름 시키고 하다가 혼자 앉아서 아빠?” 하면서 자꾸 안으로 대화하다가 아빠? 아빠?” 하다가 아빠라고 부르시게 된 거죠. 참나자리랑 마나서.

 

참나 자리에 기대서 사신 거예요. 그 뒤로. 그러다 방안함 스님 만나서 출가해서 거기에서 또 가르침 얻고, 또 절에 오래 못 있을 형편이 되어서 만행을 하고 다니면서 뭔 일이든지 참나랑 물어서 해결하시는 그 버릇을 익히시다가 아주 평생에 체험으로 증득하신 경지에요. 그러니까 뭔 일이든지 참나와 함께 다 해결되더라는 증언을 한 거예요. 이 분이. 이 증언을 그냥 소홀히 들으시면 안 됩니다. 그래야 여러분 공부가 또 견고해지시고 늘어나실 겁니다. .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