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스님 여시아문 제1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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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대행스님 법문

2016. 6. 21.



  

부산지원으로부터 여러분 불자님들과 더불어 큰 스님 네들을 모시고 이렇게 한자리를 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금 스님 여러분들이 호응을 해주셔서 감사한바가 있지만, 또 여기 이렇게 스님 네들을 뵙고 보니까 너무 기쁘고 너무 황송하고, 또 노스님께서는 아버님과 같기도 합니다. 하여튼 여러분들과 더불어 같이 앉아서 우리가 서로 이렇게 불법을, 아니 불법이라기보다는 세상 이치를 서로 얘기하면서 이렇게 한자리를 하게 된 것을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제가 여러분들한테 한 말씀 할 것은 우리가 불교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한 것이 이라는 그 자체가 무엇인가부터 말씀드려야 되겠습니다. ‘이라는 것은 아주 의미가 깊습니다. 여러 가지로 표현이 되면서 그 뜻이 이 전체를 싸고도 돌고, 우리 모든 생명을 생산해내는데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라는 것을 영원한 생명의 근본을 이라고 하며 또는 라는 것은 우리가 서로 이렇게 이심전심으로서 돌아가는 이 말 자체를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가 그 불교라는 단어가 어느 한 군데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끝없는 이 진리의 표현방편으로 바로 불교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든 가톨릭교든 어느 교를 막론해놓고 불교 아님이 하나도 없습니다. 풀 한포기 하나도, 물 한 그릇도, 흙 한 줌도 역시 모두가 그 생명의 근본이 아닌 것이 없고, 우리가 어떤 종교로든지 내종교 네종교하고, 즉 말하자면 간판을 붙여놓고 내종교라고 하는 것뿐이지, 여러분들이 마음을 그렇게 좁게 가지고 이 항아리 속에서 진드기가 공에 매달려서 살 듯이 우리가 매달려 사는 거를 한번 생각해보고, 한번 마음이 저 지구 바깥을 벗어나서 우주로 한번 마음을 돌려보실 수 있다면, 바로 우리 불교가 개선하고 발전하고 개혁을 하고, 우리는 그래서 앞으로 성스럽게 부처님의 뜻을 그대로 행하면서 실천하면서 실천하면서, 또 모시고 싶습니다.

 

왜냐? 그것은 무슨 법납이 높고 낮고 간에 그 마음입니다. 마음이 서로 해주고, 서로 도와주고, 서로 내가 받들고 그 또한 서로 도와주고 하는 그 마음이 바로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법도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외국에 가면 부처님들이 그렇게 가르쳐주신 그 법도는 어디로 다 가고 역시 스님 네들과 스님 네들이 서로 싸우고, 또는 그 뿐만 아니라 한인회관 그 자체가 서로 팔아먹고 서로 잡혀먹고 서로 한마음으로 뭉치지 않아서, 한국 사람들이 외국에 가서도 비난을 받는 그런 역점이 많은 것을 봤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체계적인 말은 잘 못하지만, 그 뜻은 아마도 조금도 다름이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깝게 있는 물이 없으면 못 사시죠? 물이 없으면 어떻게 생각되십니까? 이번 부산에 그렇게 피해를 보시고 그러면서도 물이 없으면 안 되는 점, 여러분들은 물의 감사함을 느끼고, 또 한 가지는 흙의 감사함을 느끼고, 또는 바람으로 인해서 공기의 감사함을 느끼고, 역시 은 물론이거니와 말입니다. 왜냐하면 또 실천, 실천. 그리고 실행을 하면서 우린 아마 발전할 것입니다. 우리가 불교가 아니다. 불교다. 불교가 아니다. 이렇게 하고 미국에 가니까, 기독교나 가톨릭교나 또 티베트불교, 일본불교, 통일교, 이 모든 종교들이 나서서 내것다. 내거다 하고 네거다 싸우는데 너무도 기가 막혔습니다.

 

오늘 여기 와서 감탄한 것은 여기 부산에 여러 스님네 여러분들이 오히려 스님이라고 하기 보다는 부처님이라고 하는, 우리가 애당초에 생명이 생기기 이전에 우리 지금 현재에 앉아있는 지수화풍에 의해서, 그 흙과 또는 물과 바람이 한데 합치니, 3가지 한데 합쳐서 바로 따뜻한 온기를 줌으로서 생명체가 생기고, 그 생명체가 생김으로서 바로 우리는 이라는 생명이 생기기 이전 이라는 그 자체의 불성을 얻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 4가지가 어째서 3가지가 뭉쳐서 그 한가지로 인해서, 이것도() 역시 3가지가 뭉쳐서 한 가지가 불에 구워졌기 때문에 이 컵이 나온 것입니다.

 

맨 나중에 인간도 진화되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3가지가 그렇게 한데 합쳐서 온 누리에 어떠한 거든지 혹성이 되어서, 그것이 부딪치고 또 깨지고 또 부딪치고 모이고 부딪치고 모이는 그러한 작업이 수없는 광년을 흘러서 우리가 그 미생물의 문제들이 나온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미생물이 수없이 흘러나와도 묘한 것은 그 미생물은 같이 넷이 동업자가 되어서 같이 했지만, 4가지 종류가 나온 것은 어떠했을까요? 낳고 알로 낳고 화로 낳고 습에서 낳고, 1에서 4가지로 화현을 했는데 거기에 묘한 것이 있어요. 물의 성품은 물의 성품대로의 물에서 살게 했고, 바람의 성품은 바람의 성품대로 날아서 살게 했고, 습에서 난 것은 습의 성질이 있기 때문에 바로 숲에서 이 땅에서 살게 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아주 기묘한 자체의 하나는 불입니다. 불의 성질, 그러나 불의 성질은 뜨거운 것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명의 근본, 나기 이전을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불 자체는 모든 것을 포괄하게 되어있고, 또는 모든 게 같이 이끌어 돌아가는 이런 한마음의 이 끝없는 진리, 이것은 누가 생명이 더하고 덜함도 없는 그 소중한 바로 이라는 보배를 우리에게 전부 주어진 것은, 미생물에서부터 우리는 쫓고 쫓기면서 단계단계, 즉 말하자면 미생물의 세계, 또는 곤충의 세계, 동물의 세계, 그 모든 진화된 바로 인간의 밑에 있는 코끼리라든가 모든 소나 말이나 이런 모든, 그 모두가 그때 당시에 그때그때가 있었다 할 때, 우리 인간은 제일 마지막에 인간이 되었다 합니다.

 

인간이 될 때에 그 인간이 되기까지 여러분들은 바로 피고 먹으면서, 쫓기고 쫓기면서, 부딪치면서 여하튼 그 세월을 지나오면서 진화되어서 인간까지 왔다고 한다면, 인간의 이 자체에 만물의 영장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 인간으로서, 바로 우리가 인간으로 그래서 세 번을 태어났다가 바로 세 번을 인간으로서 살아야 인간 됨됨이가 제대로 되었다 해서 바로 부처님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짐승이 인간이 금방 된 사람은 가끔 짐승의 짓을 잘한다 해서, 행동자체에 부드럽지 못하고, 악하고 이러한 문제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한 생각 돌려서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이 우리가 지금 돌아가는 이 시점에 공한 자체를 부처님께서는 바로 색이 공이고 공이 색이니라하셨습니다.

 

그랬는데 아까 말하든 그 자체가 바로 얼마나 묘한지, 아까 얘기했죠? 물에서는 물성질의 성격이 띄고 나왔기 때문에 물에서 살고, 바로 흙에서 살고, 습한 흙에서 살고, 또는 날아다니면서 살고, 우리 불성을 다 가졌지만 우리가 좋고 나쁜 것을 알고 있는 인간이 되었단 말입니다. 인간에게는 다 있지만 좋고 나쁜 것도 알면서 나쁜 것을 하겠지만, 좋고 나쁜 것은 다 압니다. 인간도 차원의 그릇이 있기 때문에 그렇겠죠. 그러나 여러분들의 몸속에 있는 중생들이 바로 여러분들이 생각한 사람, 그렇게 잘 아는 게 아닙니다. 그건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과거에 인연지은 데로 악업 선업을 지은 데로 여러분들은 인연에 따라서 바로 여러분들의 몸도 내가 자작, 내가 잘못되었다 잘되었다 이걸 모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의 마음이 인간의 마음이 바로 자기의 몸에 있는 하와중생을 제도하는 데는 바로 ..나가야 된다. 안에서 나오는 거는 안에서 나오는 대로의 그것은 둘이 아닌 까닭에 바로 그 마음이 한 마음에서 나오고 한 마음에다 놓고 바로 다스려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 모든 마음들, 마음들은 여러분들이 다 적으면 적은대로 크면 큰대로 옳다고 하시겠지만, 그거는 여러분들의 생각이고 나로부터 다 같이 말입니다. 다 여러분들의 생각이지, 그것은 그게 아닙니다. 옳은 게 나도 없고, 그른 게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적으면 적은대로 쓸모고 있고, 크면 큰대로 쓸모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도 쓸모없는 게 없고.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쓰잘 것 없는 허망함 속에 진짜 참 자기가 있으며 참 진실이 있고 실행이 있느니라.

 

그것이 둘이 아닌 까닭에 한 사이가 없이 하고, 또는 하고도 한 사이가 없이 자기가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멋진 마음의 도리를 그대로 아마 스스로서 고정됨이 없이 한발 한발 띄어놓으면서도 짊어지지 않고 가는 그런 도리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그렇게 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지고 다니는 것처럼 놓으면 죽는 것처럼, 이렇게 여러분들은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내가 나오기 이전에 배낭을 짊어지고 악업 선업을 짊어진 체, 마음의 배낭을 짊어지고 나왔습니다. 그러니 과거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짊어지고 나왔으니 말입니다. 미래는 오지 않아서 없다고 했지만, 바로 미래도 여기 있습니다. 정신계로부터 물질계로 나오니까, 정신계와 물질계의 그 깊은 사연들은 삼합이 한데 합쳐져서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현실에 천당이 지옥이니 다 여기에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래서 여러분들은 그렇게 물질세계에서 만이 오십 프로 정신세계를 추구하고 부처님의 본 뜻을 받지 않으시고, 오직 착 욕심, 아만, 아상, 아집, 이 모두를 한꺼번에 짊어진 체 거기서 나온 데로 배낭 속에서 나오는 데로 온통 성질을 내고, 온통 그 별거 아닌 거 가지고도 싸우고, 분통이 일어나고, 또는 병고를 앓고 온통 야단들이지요. 왜 그럴까요? 그 수많은 악업선업들이 나오는 것도 그게 무엇인가? 연계성, 유전성, 세균성, 바로 업보성, 인과성이 수없이 거기에 들어서, 수없이 팥죽 솥에서 팥죽 끓어서 나오듯이 온통 나오는데, 그것이 방울방울이 따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 그 마음 배낭 속에 바로 여러분들이 산 것만큼 행한 것만큼, 바로 자기가 저지른 것만큼 거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누구더러 원망하겠습니까? 바로 자기가 해놓고, 자기가 짊어지고 나왔고, 짊어지고 나왔기 때문에 자기가 거기서 나오는 것을 누구의 탓을 하며 원망을 하며, 바로 이 세상에 내가 짊어지고 나온 탓이지 누구에게 원망을 하겠습니까?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리고, 바로 내가 이 세상 나온 것이 탓이고, 그게 화두고, 내가 어디서 왔는가 하는 것도 직선적으로 직결적으로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 공한 이 자체가 어디서 나왔는가? 두 가지가 있죠. 그걸 점프해서 뛰어넘어서 , 어디서 나온 것을 그냥 이렇게 나왔다는 건 지수화풍을 바탕으로 인해서 내가 생명체가 생겼고, 이렇게 진화되어서 나왔구나. 그랬으니까 그 나온 것은 나온 거로되, 무조건 놓고 가는 것, ‘내가 어디서 왔는가하고, 바로 놓고 가는 것, 맡겨 놓고 가는 것이 두 가지가, 우리 인간 됨됨이야 앞으로 정신계의 지름길이 될 수 있는 그런 길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다 또 붙이고 또 붙인다면 그건 영원히 자기의, 즉 말하자면 참 자기의 그림자도 보지 못할 것이고, 또 맛도 못 볼 것입니다. 그 맛을 알아야 우리가 남한테 그래도 맛을 일러주지 못하는 법인데 하물며 맛을 모르고 내 몸 하나 이끌어가지 못해서야 어찌 불자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물질세계로서의 오십 프로만 가지고 앞으로 정신세계로서의 치닫는 교차로에 놓여있습니다. 지금 천체물리학이나 과학이니 철학이니 지리학이니, 천문학이니 하고 무수히 떠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연구를 할 때, 첫째 이런 게 있죠. 그럼 이거부터 말씀드릴까요? 저 미국의 하버드대학 박사가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교수님들하고 같이 모여 있을 때입니다.

 

스님, 지금 우리는 이 우주에서 외계인에서 그 전파를 타고 우리는 연락이 오지 않을까 해서 아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럼 외계인한테서 전파를 통해서 그것을 체크하려고 그러는데,” 그건 천부당만부당하다고 그랬습니다. 왜냐하면 이 마음으로부터 내가 내 무전전화를 나한테 부터 내 마음속에서부터 놔야, 남한테 무전전화도 오고 무전전화를 받을 수 있지만, 나를 떠나서는 그 통로가 막혔다. 나에게 모든 제각끔 통로가 있으니까, 그 통로로 바로 켜지고, 모든 게 파악이 된다면 문리가 터지고 파악이 된다면 내가 두루 탐험할 것이고, 볼 것이고, 또는 두루 들을 것이고, 찰라 찰라 만날 것이고, 내가 결정지을 것이고, 내가 안팎으로 통신으로 소임으로 할 것이고, 그것이 부처님이라는 그 이름 없는 부처님, 그 자체는 바로 진드기 발 하나, 내 발 아닌 게 없기 때문에 바로 평발이라 했고, 모든 손도 내 손 아님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바로 평손 이라고 했다.

 

어느 고장에 내 손 아님이 없고, 내 손 없는 데가 없고, 내가 없는 자리가 없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바로 그 탓이다. 그러니까 모두 당신네들 마음속에 통로가 되어있으니까, 그 마음 속에 통로를 만약에 안다면, 벽두 없고 벽장도 없고, 이 자기 마음이 창살을 만들어 놓고, 창찰 속에 갇혀있던 자기가, 창살도 없고 감옥에서 턱 튀어나오니, 삼라만상 대천세계를 두루 볼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이것마저도 두루 보는 것도 도가 아니니라고 부처님께서는 말했다. 이런 말을 했어요. 보는 것뿐만 아니라 듣는 것도 도가 아니니라. 또는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도 도가 아니라고 그랬는데, 마음에 들은 것도 도가 아니라고 그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