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스님 여시아문 제3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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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대행스님 법문

2016. 6. 26.


 

 

여러분들은, “저거 무슨 횡설수설, 어쩌니저쩌니 하고 있어.” 이런 생각을 내가 비록 체계 있게 하지 못하고, 말이 서툴러서 말이 못한다 하더라도, 참작해서 잘, 여러분들께서 내거로 만들어서, 내가 진짜 한 걸음 띄어놓을 수 있는 그런 멋쟁이 분들이 되어야 할 것이며, 또는 내가 목마르면 그냥 냉장고 문 열고 그냥 마시지, 내가 이 물을 마셔야 옳을까? 안 마셔야 옳을까? 이러고 마십니까? 목마른데. 똥은 급해죽겠는데 내가 똥을 누어야 옳은가? 안 누어야 옳은가? 계산하고 똥을 눕니까? 이거는 모두가 부처님 법이자, 이것은 우리들의 법이요, 우리들의 법이 없다면 생활이 없다면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석존이 여기 이렇게 여러분들이 석존이라 할지라도, 나는 석존의 고깃덩어리를 믿는 게 아닙니다. 나는 석존을 참 받들고 모시되, 내 가죽 속에, 내 골수 속에 넣고, 참으로 울면 같이 울고, 웃으면 같이 웃고, 죽으면 같이 죽고, 살면 같이 살고, 이럴 수 있는 그 마음이, 첫째 그 마음이 문제입니다. 한 마음 하면, 원 하면, 그 원 자에서 입자가 수만큼 나갑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그거를 뭐라고 그러시는 줄 아십니까? 아무것도 생각을 안 하면 부처요, 한 생각을 했다하면 법신 바로 문수요, 몸을 움직였다하면 보현 화신이니라. 화신 말이에요. 여기 아프면 여기 만졌다가 저기 아프면 저기 만져줬다가 온통 고정된 게 하나도 없으니 보현신이자 화신이죠.

 

생각을 했다하면 법신이자 바로 여러분들의 마음 내는 거와 같습니다. 마음을 내야 움직일 수 있고, 일을 할 수 있고 그렇듯이 말입니다. 동시에 부처 법신 화신이 동시에 돌아가면서 하나이지 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하나도 어떤 거 할 때에 나라고 할 수 없는 게 부처이기 때문에 어떤 것이 없는 것이 부처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여러분들이 계시는 한, 풀 한포기 있는 한, 물 한 모금 있는 한, 전부 부처님이 안 계신 곳이 없습니다.

 

나는 그 전에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니 밤은 늦어지고 춥기는하고 그래서 어느 산골짜기에서 나무를, 옛날에는 나무를 동이동이 매어서 쌓아놨습니다. 저 산 밑에 쌓아놓죠. 겨울에 때려고요, 봄에 때려고 그러려구요. 그런데 동굴 속에 있다가 추우니까 거기를 찾아가려고 가는 중입니다. 지금. 그러다보니까 돌부리에 채어서 발톱 반이 나가 자빠졌습니다. 피가 줄줄줄 흐르면서 아픈데 그거는 걷잡을 수 없이 아파요.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눈물은 줄줄 흐르면서 하는 소리가 , 자리가 딴 자리가 없건만 내 욕심에 따뜻하게 잘 욕심에 가다가 그랬구나.” 그 돌부리도 추상같이 호령을 하면서 자리가 따로 어디 있기에 자리를 찾으러 가느냐고 악을 벽력같이 쳤습니다. 그러하니 돌, 요런 돌덩어리 하나 부처 아닌 게 없고, 법신 아닌 게 없고, 화신 아닌 게 없습디다.

 

그러한데 어찌 제가 잘났다 못났다 이론으로 하겠습니까? 여러분 더 아시리라 믿습니다. 아마 저보다 더 잘 아실 거예요. 예전에 중국에서는 해골을 갖다가 그냥 많이 이렇게 산에다가 관을 갖다놓고 송장을 그냥 갖다 놓으니까 해골이 무더기 무더기 있었죠. 그런데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거기 가시다가 그 해골바가지를 보고 큰 절을 하셨다 하십니다. “사생자부이신 어버이신이데, 큰 절을 해골바가지에다 하시나이까?” 하고 제자들이 물으니, “얘야, 그 소리 말아라. 미생물에서부터 수 억겁 광년을 거치면서 쫓고 쫓기면서 자식이 되었다, 부모가 되었다가, 모였다가 흩어지고, 흩어졌다 다시 모여서 또 자식이 되고 또 부모가 되고, 이렇게 하기를 수 없이 거듭 거듭해 나왔느니라. 그러니 저것이 바로 우리 친척도 될 수 있고, 할머니도 될 수 있고, 할아버지도 될 수 있고, 내 부모가 될 수 있는 해골이니까.”

 

그 뜻을 그 도리를 자세히 깊이 생각하라.” 하시니 그 제자들은 미처 이런 도리를 이렇게 크나큰 도리를 몰랐습니다.”하고 엎드려서 울었답니다. 그와 같이 여러분, 여러분들도 우리가 지금 현재에 그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고 하지만, 여러분들이 죽으면 바로 사대는 흩어져서 4가지로 분류가 되어서 다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그 원점으로 돌아간 이유가 뭘까? 그 원점으로 돌아갔던 것은 다시 생산 처로 투입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다시 그것이 다시 모여서 다시 누구네 집의 자식이 또 됩니다. 구름이 흩어졌다가 또 다시 다른 구름하고 모이듯. 또 그 구름이 흩어지고 다른 구름하고 또 모이듯. 이렇게 말입니다.

 

우리는 바로 한 식구라고, 마음에 배낭을 짊어지고 캠핑 나왔다가, 같이 모여서 살고 같이 놀다가, 한 철을 놀다가 가는 바로 우리 친구들이죠. 그래서 그런데 그렇게 되었으면 또 좋겠는데, 여러분들 잘 생각해 보세요. 은방에 가니까 무쇠 전에는 무쇠가 모여 있고 넝마전에는 넝마들이 모여 있고, 금방에는 금이 모여 있고, 그런데 시장에 가니까 과일도 배는 배대로 놓고, 사과는 사과대로 놨습니다. 일절 다 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이 구름 한데 모였다가 다시 딴 구름하고 모일 때 똑같은 구름끼리 모여요. 그러니까 종지는 종지대로 놓고, 접시는 접시대로 놓고, 대접은 대접대로 놓듯이 그렇게 끼리끼리 누가 모이려고 안 해도 끼리끼리 모이죠.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 거예요.

 

정치인들은 정치인들대로 모이고, 과학자는 과학자대로 모이고, 공업자는 공업자대로 모이고, 상업은 상업대로 모이고 이렇죠? 누가 오란 말 안해도요. 장사를 하려면 시장으로 들어갑디다. 그러니 끼리끼리 모이는 건 자연적이라, 자연으로 말입니다. 여러분들 마음에 차원의 그릇에 따라서 모이게 되어있죠. 그러니 한 가정이 모인다 하는 것도 , 너 이놈아 왜 이러니? 공부를 왜 안하니? 왜 그렇게 이탈을 해서 나가서 안 들어오느냐? 마느냐?”하고 온통 야단을 하고 원망을 하고 욕을 하고, “저 놈의 새끼 나가서 죽지도 않고 뭐 어째이렇게 하거든요. 그런 것 좀 안하셨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여러분들의 자식이라 할지라도 여러분들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의 소유물이 아니라, 바로 인연 따라서 바로 서로 만난 인연들이죠. 그래서 바로 다섯 식구는 다섯 식구, 이렇게 모두 묶어서 같이 살자고 같이 한철 나자고 이렇게 우리 선방에 가서 한 철나듯이 그렇게 사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 뭐가 될 게 있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그런 선방에 가서 한철 나듯이 나는 이런 생활 속에서, 또는 그 그릇대로의 만남이니까 깡통끼리 만났으면 깡통이 소리가 만나면 소리가 나. 그러니 속상하고 그거 뭐 말도 못하죠. 병고에 휘달리고, 우환에 휘달리고, 증오에 휘달리고, 그 배신감 이런 데서 또 휘달리고. 지금 요새 한두 건이 아니죠. 회사에 나가서도 그렇고. 살아나가는 것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잘 생각해서 그런 일에, 나가서 사회에 나가더라도 절대로 남의 탓, 이런 거를 하지 마시고, 남이 미운 짓을 하더라도 아하, 내가 모자랐을 때 나였구나.” 말을 막하면 아하, 내가 모자랐을 때, 내가 말을 막하고 그 전에 몰랐을 때, 그렇게 내 모습이로구나.” 모든 거를 내 몰랐을 때 나로 본다면 크면 큰대로 나로 생각하고, 작으면 작은 대로 나로 생각한다면, 여러분들이 삶에 의해서 정말이지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바로 자유인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우리가 지금 불법이 국한되어 있는 게 아니라고 아까 얘기했듯이 우리는 지구 항아리 속에서, 항아리에 붙어서 사는 우리는 벌레밖에, 고등동물로서의 내려가면서 사생의 뜻이 그렇게 천차만별로 되어있는 그 무리들이, 다 붙어서 사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으로서 벗어나야 할 게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벗어나게 되면 다 줄줄이 붙어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계 평화를 가져오고, 그러려면 우주의 섭리를 알아야 하고, 우주를 평화롭게 하려면 바로 삼천대천세계에 섭리를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도리를 공부함으로서 우리 국가에 역사도, 또는 젊은 청소년들의 그 아주 사랑할 수 있는, 서로가 서로를 알고 할 수 있는 자비의 근원 생물처럼 쏟아질 것이고, 바로 발전을 앞에 둘 것이고,

 

또 경제문제도 우리는 빚을 지지 않을 것이고, 또는 빚뿐만 아니라 우리가 발전을 거듭거듭 할 것이요, 세계 평화를 우리가 아주 참, 멋지게 해나갈 수 있는 그런 여러분의 마음에 의해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얼마나 모자라고 똑똑하기나 하나. 우리가 모자라서 불법을 탄압하고, 우리는 모두 유교만 숭상했기 때문에 우리가 한 번도 무심도리를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고, 또는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그 뜻을 한 번도 안으로 깊이 새겨보지 못해서, 우리는 역사를 어떻게 가져오게 되었습니까?

 

그러니 여러분들이 생각하기에 이 교가 다르다. 저 교가 다르다.’ 이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우리는 한 지구라는 항아리에 붙어서 우리는 한 발짝도 에누리 없이 살아나가고 있구나.’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한번 자기를 돌아다볼 수 있고, 자기를 생각해 볼 수 있고, 자기를 바로 뉘우칠 수 있는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가지시면서, 자기 마음 깊은 속에, 바로 자기 부처가 자기가 가지고 있고, 아까도 얘기했듯이 마음이 움직이면 법신이 되고 몸이 움직이면 화신이 된다는 그 사실을 여러분들은 잘 알면서 우리 생활 속에 부처님은 항상 우리가 있는데, 내가 변소에 있으면 변소에 계시고, 바로 내가 방에 들어가면 방에 계시고, 들에 가면 들에 계시고, 일을 할 때는 일하는데 계시고, 내 우스운 얘기 한마디 하죠.

 

예전에 저 스물 한, 대여섯 되었을 때입니다. 그랬는데 어느 저 지금, 서울에 그 저 백년사라는 데가 있습니다. 그때 가보고 여지것 안 가봤습니다. 그때는 제가 가볼 때는 나한전도 있었고, 거기 대체스님들이 사셨습니다. 그랬는데 거기에 놀러오는 사람이 놀게 하기 위해서 시멘트로 네모 번듯하게 해 놓은 자리가 있고, 저 건너편으로 산소가 보였습니다. 그래서 거기 이렇게 앉았는데, 이따 하는 소리가 날더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 애비가 자식한테로 가면 자식이 하나 그냥 자식이 되고, 자식이 애비한테로 가면 애비 하나가 되어버리는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하고 물었습니다. 내가 그걸 몰라서요, 사흘을 그 이슬을 맞고 있었거든요. 나중에 다리팔이 이렇게 움직이지 않습디다.

 

그러나 죄 없이 그렇게 된 거는 빨리 풀리더군요. 죄가 있이 다리가 비틀어진 거는 더디지만, 죄 없이 그렇게 된 거는 아주 다리가 빨리 풀려요. 그래서 그때 그랬죠. ‘다리를 이렇게 풀리지 않게, 이렇게 아프게 한 것도 너고, 또 다리를 이렇게 꼬게 만들어 놓은 것도 너고, 풀리게 하는 것도 너다.’ 이러고는 그저 움직이기만 했죠. 그랬지만 그때 그게 무슨 까닭이냐고 그래서 글쎄 마음은 죄가 없다는 걸 아예 생각지도 못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를 깨달아가지고도, 깨닫는 거 보다 깨달아가지고 불 아닌 도리를 알게 하는 자기의 작업이 아주 더 어렵다는 거를 느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여러분들이 참, 더 한층 앞으로 편안하게 그냥 살아나가는 데로 다 놓으면 어떻게 살려합니까? 그러거든요.

 

여러분들이 사시는 게 다 주인이 사는 거지, 여러분들 몸뚱이, 산송장이 사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도 산송장도 꼭 있어야만 한다는 점이요. 이 송장 몸뚱이가 없으면요, 허망한 속에서 참나를 찾지 못하거든요. 발견 못해요. 그러니까 열반, 구경경지에 이르지 못한다 이거죠. 그러니까 여기에 모든 것을 다 맡겨놓고, 나는 시자로서 살 수만 있다면 거기다 다 맡겨놓고, 거기서 다 하는 것이니까요. 아프더라도 말입니다. 보세요. 아프더라도 거기다가 다 맡겨놓고 거기서 만이 한 마음속에서 아프게 만든 거니까 한 마음속에서 낫게 해야죠. 그래서 그것이 과거에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카세트란 말입니다. 카세트에 입력이 되어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솔솔 나오는 거니까, 거기다가 어떠한 거든지 다 거기다 맡겨 놓으시면 그것이 바로 재입력 하는 겁니다.

 

그러니 재입력하면 앞서 입력된 게 없어지면서 바로 없어짐으로서의 내 병도 건강해질 수 있고, 바로 내 가환도 없어질 수 있고, 내 불편도 괴로움도 편안하게 아마 쉬어질 겁니다. 예전에 한암스님께서 날더러 삼년만 눈뜨고 푹 쉬어라.” 아 이러신단 말입니다. 그러나 그뿐입니까? “너는 죽어야 너를 본다.” 그래가지고 죽으려고 차 밑에, 새벽같이 밤에 떠나는 차 밑에 몇 번이나 들어간 줄 아십니까? 여섯 번 일곱 번을 들어가도 못 죽었어요. 그러고 보니까 그렇게 죽으라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데서 속지 마시고 여러분들은 그저 여여하게, 그저 더 가려고 하지도 말고, 더 안하려고 하지도 마시고, 여러분들 생활 속에서 그대로 하는 거, 내 주인공, 이 한마음. 이 한마음이라는 건 왜 넣느냐하면 이 하와중생들이 헤아릴 수없이 숫자들이 많거든요. 의식들이.

 

그래서 의식들이 이 도리를 알면 한 생각이, 수 천 마음 그 모습 없는 모습으로도 화할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부처님 법은 그렇게 광대무변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그 부처님 아니심이 없으니 여러분들이 한 생각 차이니까, 한 생각 차이에 여러분들은 중생이고 부처란 말입니다. 부처님, 여러 큰 부처님들께서도, 또 여러 작은 부처님께서도 다 이제는 한 마음으로서 우리가 토론을 했으니. 긋지 마시고 생활을 그렇게 해나가시면서 바로 실험하면서 체험하시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자유인이 되시기를 바라면서 이만 그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