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범스님의 법성게 2. 법계도를 짓게 된 연유와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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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종범스님_법성게

2016. 11. 23.



그럼 이 법성게는 전부 30절이에요. 그러면 한 구절에 7자씩 이니까 30x7=210자입니다. 그럼 한 200여권 되는 대방광불화엄경을 30구 210자로. 노래가사로 만들었다 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노래가 그냥 나온 게 아니라. 원래는 華嚴一乘法界圖화엄일승법계도라고 하는 그림이 있었어요. 華嚴화엄은 바로 부처님과 중생이 다 하나로 조화가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하나라는 一일 자하고 수레라는 乘승 자를 써서 一乘일승이라 그런다. 그럼 一乘일승에 나타나는 法界법계가 있는데 그 法界법계를 그림으로 그린 그림이 있는데. 그것을 華嚴一乘法界圖화엄일승법계도라는 도표가 있습니다.


그 도표를 먼저 그려놓고. 그 도표의 노선에 따라서 詩시를 지은 것이 法性偈법성게입니다. 法性圖법성도에 맞춰서 지은 시가 法性偈법성게에요. 그러니까 法性詩법성시가 되는데, 이 법성에 대한 시는 法性법성에 대한 圖도에서 나왔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그림을 도표로 그렸는데 그 도표에 대한 일종의 설명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그림이고. 그 다음에는 그 그림의 위치에 따라서 이 법성에 대한 이 시를 배열을 시켜가지고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럼 이것을 누가 만들었느냐? 신라신대에 의상대사라는 분이 만들었어요. 의상대사는 신라시대에 서기로 625년에 탄생하셔서, 702년에 열반을 하셔서, 78세를 사셨는데. 이분은 경주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고향이 경주겠죠? 성은 김씨다. 어느 기록에는 박씨라는 말이 있는데, 김씨가 맞다라고 합니다. 신라에는 왕족이 박, 석, 김. 삼성이 있거든요, 박씨, 김씨, 석씨. 삼성이 있는데, 이때는 그 왕성이 박씨에서 김씨로 넘어가는 때에요.


 625년에서 702년 이 사이는 선덕여왕, 진덕여왕 이런 분들이 왕위를 마치고, 김춘추 그 분이 등극을 해서, 태종무열왕이 되거든요. 그래서 박씨에서 김씨로 넘어가는 그런 과정에 있을 때입니다. 이때가. 그리고 이러한 성 이외에 설, 최, 이. 또 삼성이 있다. 설씨, 최씨, 이씨. 이런 것이 신라의 귀족 6성입니다. 박석김 설최이. 이 분들이 그 당시에 상층부 문화를 형성하고 있을 때에요. 그런데 승려들, 스님들은 모두가 박석김설최이 이 분들이에요.


원효스님만 하더라도 설씨고, 대 부분이 김씨 박씨. 자장스님만 하더라도 김씨고, 이런 분들인데, 신라 불교는 완전히 불교가 정치 교육 문화를 인도했던 시대고, 고려불교는 불교 유교가 공존하던 시대고, 조선 불교는 유교가 지배를 하고 불교가 탄압받던 시대고,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의상스님이 어릴 때 출가를 해가지고. 37세 되던 해. 서기로 661년에 당나라로 유학을 갑니다. 당나라로 유학을 가서 668년 44살 때, 7월 15일 날, 그 법성도와 법성게 저술을 완성을 해요. 그래서 의상스님의 스승 되는 지연법사한테 완전히 인정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37세에 중국 가서. 43세에 법성게를 완성을 해요. 그러면 한 7년간, 한 6년간, 6~7년간 공부를 해서 이루어 졌는데, 요즘으로 말하면 한 대학원 공부하고 박사학위 논문처럼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도표를 이렇게 그리고. 거기에 시를 붙이고. 의상스님의 나이 43살 때, 서기로 668년 7월 15일 날. 이것이 중국에서 이루어집니다. 거기다 시를 다 붙이고 이루어져요. 그리고 의상스님은 671년 47세에 우리나라로 돌아와요. 그러니까 37세에 중국 가서 47세에 우리나라로 돌아오니까, 햇수로는 11년이요 만 10년 동안을 중국서 화엄경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영주 부석사를 중심으로 해서 그 많은 일을 하고 그렇게 되죠. 영주 부석사를 언제 지었느냐하면 676년에 창건을 합니다. 그러니까 671년에 귀국해서 676년에 부석사를 짓는데. 그 부석사의 역사는 통도사가 646년에 지었으니까 꼭 30년 후에 창건이 되고 그래요. 그래서 우리나라의 화엄 사찰로서는 영주 부석사가 아주 그 역사가 깊습니다. 676년에 지어진 그런 사찰이죠.


그 후로 화엄 10찰이라고 해서, 화엄을 중심으로 하는 대찰을 10군데 이상을 창건을 해요. 의상대사가. 그래서 해인사라든지 범어사라든지. 여기에 학성스님이 계신 청도 옥천사 같은 곳도 화엄사찰 중에 하나고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교화를 한 대표적인 분이 의상대사에요. 원효스님도 계신데 원효스님은 의상대사보다 나이가 8살 위에요.


의상 대사는 625년에 탄생을 했는데, 원효스님은 617년에 탄생을 했어요. 그러니까 의상보다 원효가 8세 선배입니다. 그런데 이 원효, 의상이 같은 시대에 있었다는 게 굉장한 이 분들에겐 행복입니다. 이렇게 대단한 분들이 서로 같은 시대에 있어야 서로 탁마가 되고, 서로 협력이 되고, 서로 자극을 받아서 굉장하죠. 그래서 의상스님은 참 행복한 분이에요.


중국에는 중국 화엄학을 완성시킨 현수법장이라는 분이 있는데. 현수법장하고 같이 공부를 했는데. 이 분은 언제 태어났느냐 하면 643년에 태어났으니까. 625년에 태어난 의상보다는 18살이 후배입니다. 그런데 이 분은 중국 화엄학의 완성자로 봐요. 그러니까 중국에는 현수법장이 있었고. 한국에는 원효대사가 있었다. 그 당시에 의상이 대단한 고승으로서 화엄학을 우리나라에 넓히고 이것을 신앙화 했어요.


그리고 영주 부석사에 가보면 중국에 있던 선묘아가씨가 용이 되어가지고 우리나라로 따라와서. 선묘아가씨가 의상대사를 사모하다 사모하다 원을 세워가지고 호법용이 됐어요. 법을 지키는 용이 된다. 이래서 따라와서 부석사를 짓도록 자기가 바위가 됐다. 그래서 선녀바위가 지금도 부석사 법당 옆에 가면 있습니다. 그래서 부석이라 이렇게 있어요. 그게 선묘아가씨가 바위 된 겁니다. 참 이상하죠. 신비하죠.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큰 바위가 되나. 바위를 또 가만히 보면 적어도 몇 만 년 전에 생긴 바위인데. 천 몇 백 년 전에 선묘아가씨가 어떻게 저런 바위가 될 수 있었을까? 이게 과학과 신앙의 차이인데요, 그 바위를 지질학적으로나 현재 물질 분석을 해보면은 천 몇 백 년 전에 있었던 바위가 아니고. 상당히 오래 전에 있었던 바위다. 이것이 현대 과학의 지식이에요.


그런데 신앙적으로 화엄삼매, 화엄의 원리에서 보면은 그게 다 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길이 또 있어요. 이것이 바로 불가사의한 또 하나의 세계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두 세계를 다 성취해야 그게 완전한 성취인 것입니다. 이게 바로 大方廣대방광이에요. 大대도 있고, 方방도 있고, 廣광도 있어야 된다. 그 하나하나 지식만 있는 건 方방 하나뿐이에요. 방.


그런데 方방은 밑으로는 大대가 있어야 되고, 또 위로는 廣광이 있어야 되는데, 이게 딱딱 떨어져만 있지, 합쳐서 융화가 될 줄 모르니까 大方廣佛대방광불이 안 되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는 大方廣佛華嚴經대방광불화엄경이다. 이렇게 됐다는 것이 아주 중요하고. 또 의상대사는 그런 선묘아가씨와의 일화, 선묘아가씨와의 설화가 아주 중요하고 재미있고.


그리고 또 일상 수행면에서는 단적으로 보이는 것이 하나 있는데. 평생 수건을 쓰지 않았다. 수건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런 기록이 있어요. 수건을 사용을 안 해요. 목욕을 하거나 세수를 하거나 수건을 안 쓴다. 왜 안 쓰나? 여기에는 큰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데. 내가 수건을 쓰면은 내 몸에 있는 물과 때가 수건으로 옮겨 간다. 그러면 그 옮겨간 때를 또 빨기 위해서 또 때가 또 옮겨간다. 그러면 그 때를 또 하기 위해서 또 옮겨간다. 이게 끝없이 자꾸 펼쳐져 나간다 이 말이죠.


그런데 내 몸에 있는 때를 내 몸에서 그냥 말려 버리면, 다시 옮겨 가지 아니하고 그냥 없어진다. 아, 이런 의미가 있는 거예요. 이게 아주 대단히 재미있어요. 그런데 사람은 자기 괴로움을 없애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괴로움을 줍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또 자기 괴로움을 없애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또 괴로움 주고 괴로움 주고. 이 괴로움이 끝없이 돌아다니는 거에요, 끝없이. 그런데 나에게 있는 괴로움을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고 내 몸에서 싹 없애 버리면 그것으로 끝난단 말이죠. 그런 의미가 있어요.


그 때라는 게 그냥 먼지 몇 개가 아니라, 그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고통, 번민. 이런 것이 있는데, 이걸 다른 사람에게 자꾸 호소하고 전해줘 가지고 또 고통 주고. 그 사람은 그 고통 못 이겨서 또 다른 사람에게 또 주고 또 주고. 이래서 알고 보면요, 몰라 그렇지, 저 강북사람이 뭐 어떻게 만들어 놓은 거에 강남사람이 얻어터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그래요 실제.


그러니까 저 부산 사람이 아주 괴롭게 올라와가지고 운전 잘 못하는 바람에 서울 사람이 얻어터지는 경우도 많고, 이게 알고 보면은 저 강원도 있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고통을 서울 사람이 당하는 게 많고요, 이게 화엄법계에요. 그래서 화엄 법계에서 보면은 ‘북쪽소가 풀을 먹으니까 남쪽 소가 배가 부르다.’ 이런 말이 있어요. 이게 어떻게 보면 신화 같고 허무맹랑한 소리 같은데 그게 사실이에요.


‘남산 기우하니 북산하우라.’ 남산에 구름이 뜨니 북산에서 비가 내린다. 이게 전부 대방광의 그 원리에요. 그런걸 알기 때문에 의상 대사는 내 몸에 있는 물과 때를 수건에 옮기지 않고 내 몸에서 말려버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말라. 이게 참 재미있는 건데요. 이 물 기운이라는 것도 저도 한 번 해 봤는데. 오래가는 게 아니에요. 금방 말라요. 마르는데 그 마르는 동안에 못 참아 가지고 여기저기다 자꾸 발라서 옮기거든요.


의상 대사는 그 만큼 자기 수행에 철저했고. 또 화엄 10찰을 건설할 정도로 교화라든지 교육에 충실했고. 또, 김춘추의 아들이 30대 문무왕 법민이거든요. 그 분이 임금이 되어가지고 신라의 왕성을 아주 굉장히 튼튼하게 쌓으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의상대사가 그것을 하지 말라고 그랬어요. 정치를 잘 하면 초야목에 있더라도, 저 초야에 띠로 지붕을 덮은 그런 초가집에서 정치를 해도 왕성이 튼튼하고. 정치를 잘 못하면 구중궁궐에 있을지라도 나라가 위태롭다.


그러니까 백성을 괴롭히면서 그런 그 왕성을 크게 쌓지 말아라. 이러니까 그 말 한 마디에 왕성을 높이 쌓으려고 하는 계획을 취소해버렸어요. 그 만큼 그 당시 조정에서나 일반 국민들 사이에 존경도가 높았다. 이런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 화엄경에 대한 말씀과 의상대사가 법계도를 짓게 된 그 연유 배경을 잠시 말씀을 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