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즉문즉설 1245회] 왜 아들이 술을 먹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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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즉문즉설(2016)

2016. 12. 19.


 

남편은 사고로 죽고 지금은 26살 아들이 술을 너무 먹는데

술을 먹고 눈을 감는 데가 자기 방이에요.

집에서도 마찬가지구요 집에 오는 도중도 마찬가지고

그러다 보니까 그것이 제가 아들을 임신했을 때 제 마음에서

그 영향으로 이렇게 되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남편 자기 결혼해서 살 때 술 많이 먹었어요? 술 일체 안 먹었어요?

다행이네요. 어떻게 키웠든 잘 키웠든 못 키웠든 20살이 넘으면 아들이 성인이잖아. 그죠? 그런데 아들 네미 이런 말도 쓰지 말고, 성인이오. 성인. 그런데 자기는 지금 심리적으로 한쪽 이성적으로는 지금 아들이고, 어린 아들이고, 마음에서는 어떻다? 남편처럼 의지하고, 이렇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딱 정을 끊어야 되요. 아들을 위해서는. 그래서 아들의 인생에 대해서 간섭을 하면 안 돼요. 미련을 가져도 안 되고. , 그래도 죽어도 뭐, 장례 치러 주면 됩니다. 그렇게 안하면 자기 인생도 잘 못 살고, 아들도 자기 죽을 때까지 아들 걱정하다가 죽어야 되고, 아들하고 정이 안 끊어져요. 그럼 아들이 결혼해서 살기가 힘들어요.

 

되든 안 되든 신경을 꺼야 되요. 그럼 자기가 지금 더 노력한다고 될 거 같아요? 천일 아니라 만일 기도를 해도 안 돼요. 안 된다니까. 괜찮아요. 스무 살이 넘었기 때문에 길에서 자든, 스님이 되든, 신부가 되든, 술을 먹든, 그거는 그의 자유에요. 내 아들이라는 이유로 간섭할 권리가 없어요.

 

안 놔지면 자기 고생하지 뭐. 딴 거는 없어요. 안 놔지면 애는 애 데로 그대로 가고, 자긴 자기대로 그런 아들 둔 자기는 그냥 계속 괴로워 살고, 이거를 너는 네 인생이고, 나는 내 인생이다. 성인이 되었으니까 내할 일 다 했으니 정을 끊으면 아들은 아들의 운명이고, 자기는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가 있지.

 

그러니까 젊은 남자한테 기대지 말고, 남자가 필요하면 새 남자 구해요. 어떤 여자의 남자 될 사람에게 너무 그렇게 붙어있지 말고, 내 남자 될 사람, 남자가 필요하면 내 남자를 구해야 돼. 얼마나 늙은 여자가 싫으면 그러겠어요. 남자를 소개시켜 떼어버리려고 그러지. 그러니까 정을 끊는 게 좋아. 그건 이해는 되요. 그게 끊기가 얼마나 어렵다는 거 이해 못해서 이런 얘기 하는 게 아니고,

 

남편 일찍 죽고, 애 데리고 키워서 애지중지했는데, 걱정되는 거 스님 몰라서 이런 얘기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정에 매여 있으면, 앞으로 죽을 때까지 인생이 괴롭다 이 말이오. 자기도 남편 죽은 애도 아들이 술 먹는 나도, 행복할 권리 있어요. 어린 아이를 위해서는 어미가 희생을 해야 된다. 이건 생태학적이에요.

 

그러나 아들이나 딸이든 누구든, 아이가 성인이 되면, 아이 때문에 희생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요. 내 인생이 소중한 거요. 생물학적으로 보세요. 암탉이 이렇게 있는데 사람이 지나가면 도망을 가요. 이건 뭐냐? 자기의 생명을 자기가 보호하려는 본능이 있다. 이거를 개체보존의 본능이라고 그래요. 개체 보존의 본능이 없으면 생명이 유지될 수가 없어요. 자기 생명을 자기가 지켜내야 되니까.

 

그런데 일단 닭이 병아리를 까면 어떻게 되느냐? 완전히 달라집니다. 사람이 가까이 가면 도망가는 게 아니고 병아리를 날개깃에 숨기고, 깃털을 세워서 꼬꼬꼬꼬 이렇게 덤빕니다. 여기 이기고 지고 이거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냥 목숨을 바쳐서 그냥 싸워요. 그걸 갖다 뭐라고 그러냐? 종족보존의 본능이라고 그래요. 종족보존의 본능은 수컷한테는 없어요. 암컷에게만 있어요.

 

그거는 개체보본의 본능보다 종족보존의 본능이 더 우선합니다. 그런데 요 병아리가 어느 정도 자란털이 빠지고 큰 깃털이 나면 어떠냐? 내가 중병아리를 잡아도 어미가 아무 상관을 안해요. 죽여도 아무 상관을 안 해요. 개체가 독립이 되어서 어미에게 다시 뭐로 돌아왔다? 개체보존의 본능으로 돌아온 거요. 그래서 자연 생태계는 어미가 새끼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새끼가 어미 때문에 무거운 집을 안거나 이런 거 없어요. 원수 법이 없어요. 사람만 그런 거요.

 

여러분들은 어린아이를 버리는 거는 어미의 책임을 못하는 거요. 동물보다 못한 거요. 그런데 이미 독립된 아이에 미련을 갖는 것도 동물보다 못한 거요.

 

그러니까 내가 그 법문을 하는 거는 엄마가 화내고 짜증내면 어린아이한테 굉장히 나쁜 영향을 줘요. 심리적 영향을. 그러니까 젖을 먹이고 좋은 옷을 입히는 거는 딴 사람도 할 수 있어요. 우유먹이고 이런 거는. 그러니까 심리적 안정을 시켜주는 거는 엄마만이 자식한테 할 수 있는 거요.

 

그런데 어미가 애한테 뭘 잘해주면서 오늘 오전에도 얘기하니까 힘겹다고 애한테 짜증을 내고, 고함치고, 화내고 애하고 싸우고, 그건 아이 심리를 억압한단 말이오. 놀라게 만들고. 그러면 이게 크면 어떠냐? 반발을 해요. 그래서 자식한테 맞는 부모가 생기고, 이러거든요. 어떤 거든 사람이 강제성을 가지면 심리가 억압이 되요. 나중에 반드시 반발하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부모가 자식의 심리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특히 어릴 때는 더하다.

 

그러니까 내가 힘들면 청소를 안 해주든지 밥을 안 해주든지 이건 괜찮아요. 그런데 와내고 짜증내고 고함치는 거는 안 된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거꾸로 한다는 거요. 그래서 아이한테 나쁜 영향을 주고, 그 아이는 그때 받은 상처로 평생을 어릴 때의 형성된 까르마 때문에 평생을 힘들게 살아야 된다.

 

아까 저렇게 질문하신 분들도, 어른이 되어서 다 멀쩡한데 어릴 때 받은 그 상처들이 지금의 자기의 삶을 많은 보이지 않는 영향을 주고 있다. 그래서 엄마가 아이를 키울 때는 가능하면 3살 때까지는 자기가 키우고, 아이도 이 세상에 태어난 아기는 쟤 어미로부터 사랑받을 권리가 있으니까 아이의 권리를 존중해 줘라.

 

두 번째 화내고 짜증내고 그러지 마라. 그걸 지금 그렇게 영향을 주지마라는 얘기에요. 이미 자기는 줘 버렸잖아. 이미 지나가버린 일이잖아. 지나가버린 일을 자기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니까.

 

지금은 관계가 없다니까, 자기하고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을 가지고 얘기한다니까. 자기가 지금 애를 낳으려면 그렇게 해라. 이 말이오. 남자가 있구나. 이미 성인이 되면 그게 어떻게 해서 자아가 형성되었든 그 자아는 본인 거다 이 말이오. 그럼 그건 누구만이 컨트롤 할 수 있다? 본인만이 할 수 있는 거요. 그건 누구도 옆에서 해줄 수가 없어.

 

엄마가 어떻게 한다고 아무 도움이 안 돼. 그러니까 엄마는 다만 그런 아이를 보고 내가 애를 보고 막 싸우고, 너 애 성질이 그러냐? 뭐냐? 이럴 때 스님이 얘기하죠. 애하고 싸우지 마라. 그 아이의 심성이 너로 인해서 형성된 거니까, “아이고, 미한 타. 다 내가 부족해서 네가 그렇구나.” 이렇게 받아들이면 그런 아이를 보는 내 마음이 편안하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거요.

 

죄의식을 가지라고 하는 얘기가 아니고, 그러니까 이미 28살이면 자기하고는 어떻게 했든 내가 잘했든 못했든 그건 지나간 일이라니까. 자기는 남편 죽은 뒤에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은 거요. 그게 비록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줘도 그래도 나는 좋은 얘기하지만, 그 아이 밥..자기는 악을 쓰더라도 밥이라도 주고 키웠잖아. 키운 거니까 자기 할 일은 다 한 거요.

 

그러니까 자기가 애한테 충분히 잘 못했다면 애한테 기대를 걸지 마라. 이거야. 그래. 기대를 안거기는? 그럼 기대를 안 걸면 내 수준에서 저 정도만 하는 것도 참 잘한다. 안 죽고 사는 것만 해도 굉장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뭐가 문제가 되는데? 그렇게 자기가 못해서 문제지. 그래도 안 죽어. 걱정하지 마. 죽어도 그만이고 그건 어떻게 할 수 없어.

 

제가 절에 들어와 있으니 편안하게 있는 거 같죠.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들어왔는데 우리 어머니가 죽는다고 난리였어요. 우리 스님한테 와서도, 그래도 고등학교 졸업하면 데려가지 어떻게 고등학교 다니는 애를 데려 가냐고. 요즘 엄마들 같았으면 더 난리였겠죠. 그죠? 그런데 우리 스님이 딱 이렇게 말했어요.

 

보살님, 얘가 어떻게 될지 알아요?”

몰라요.”

난 알아요. 아는 사람이 지도를 해야 되겠어요? 모르는 사람이 지도해야 되겠어요?”

아이고, 아는 사람이 해야죠.” 그런데 우리 어머니가 안 물러나고 얘는 어떻게 되는데요?

얘는 단명해요.”

 

단명 이라는 말 알아요? 일찍 죽는다 이 말이오. 우리 어머니가 너무너무 놀라서 아이고 스님 아들 하세요.” 이러고 가버렸어요. 그런데 우리 어머니가 그게 엄마의 사랑이에요. 아들에 대한 자기의 집착이나 사랑이 극진하지만, 자기한테 있으면 아들이 나쁘고, 절에 있으면 아들이 좋다니까, 자기 아픈 거는 눈물을 삼키고 그냥 돌아가잖아요. 이게 사랑이에요.

 

여기 있는 배운 여자들 같았으면 그렇게 될까? 안 될까? 멱살 잡고 끌고 가겠죠. 그죠? 그래서 또 얼마 있다 죽으면 울고불고 후회하고 난리고. 그래도 그 정읠 어떻게 금방 끊겠어요. 그래서 어떤 데는 찾아와서 스님한테는 할 말이 없으니까, “안 나오면 죽는다.” 안 나오면 죽는다하면 보통 흔들리죠. 안 그래요? “내 죽는 꼴 보고 싶나?” 주로 어머니들 그렇게 말하거든요.

 

너 내 죽는 꼴 봐야 되겠나? 너 꼭 내가 목매 죽든지 약을 먹고 죽든지, 정신 차리겠나.” 이렇게 협박을 하죠. 그럴 때 어떻게 해요? “알아서 하십시오.” ? 어머니는 성인이니까. 성인은 자기 인생을 어떻게 살든지 그건 어머니의 자유죠. 요럴 때보면 독하지. 그런 독한 면이 없으면 어떻게 이렇게 살겠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스님이 요렇게 자근자근하게 얘기하니 좋아 보이지. 그렇지 않습니다. 이따 여기 나가서 한번 보세요. 스님 사진 찍어요. 사인해줘요. 이름 서줘요. 써주는 가 봐라. 안 써주지. ? 내가 그거 다 하면 나도 못 살아요. 나도 살아야 계속 할 거 아니오. 안 그래요? 나도 살아야 되나? 안 살아야 돼. 살아야 돼. 그러기 때문에 요구하는 건 나무라지는 않아요. 그건 그 사람 얘기고, 우리 어미니 생각이고, 우리 아버님 생각이고.

 

우리 아버님은 10년 전에도 돌아가셨는데도, 돌아가시기 몇 년 전까지도 장가가라고 그러다가 안 되니까 이래요. “몰래 애하나 낳아서 갖다 주면 자기가 키우겠다.”는 거요. 그러니까 부모라는 게 이런 거요. 스님이 애를 몰래 낳으면 스님 망쳐요? 좋아져요? 여기 다 비난할 거 아니야. 그런데 우리 아버님은 몰래 하나 낳아 데리고 오라는 거요.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부모라는 거는 오직 이런 정으로. 그런데 나만 이런 거 아니오. 부처님 아버지도 이랬어. 아시겠어요? 모든 사람이 다 부처님 법문 듣고 깨달음을 얻었는데, 석가족 중에 부처님 법문 듣고도 전혀 이치를 못 깨닫는 한 사람이 누구냐? 부처님의 아버지요. 그러니까 그 왕국에서는 제일 위대한 사람이 누구다? 왕이면, 그 분이 제일 먼저 깨달아야 되잖아. 밑에 머리 깎은 종도 법문 듣고 깨달았는데.

 

얼마나 그게 이상해요. 그래서 부처님께 여쭈었어요. 제자가. 물어보기 어렵잖아. 그런데 그걸 물어봤어요. 누가. 그랬더니 부처님이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정반왕에게는 부처님이 아니 계시고 아들만 있다. 이랬어. 그러니까 부처님이 계셔야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깨닫는데, 정반왕은 부처님을 본적이 한 번도 없어요. 누구만 봤다? 아들만 봤어요.

 

그래서 제가 그 글을 읽으면서 나는 항상 궁금한 거 있으면 찾아보는 형이니까, 그래서 제가 경전을 다 정반왕과 관계된 거를 다 찾아봤는데, 정말 그랬어요. 정반왕이 부처님에 대해서 안부를 묻거나 자기 나라에 왔을 때 부처님과 대화할 때 한 번도 도를 부른 적이 없어요. 항상 우리 아들 뭐 먹더나?” “잠은 어떻게 자드나?” 아시겠어요? 늘 먹는 거, 자는 거, 입는 거, 이 걱정만 하고, 어느 정도로 심하냐?

 

부처님이 제자들과 가필라성에 왔는데, 이 부처님이 입고 있는 옷은 시체를 덮어서 갖다 버린 천, 아무도 입지 않는 분소의를 거치고 산단 말이오. 거지 중에도 상거지 아니오. 그리고 목욕도 잘 안하고 그러니까 몰골이 그렇잖아요. 제자들도 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로 치면 모양은 무슨 떼다? 거지무리, 거지 떼요. 정반왕이 그걸 보니 얼마나 가슴이 아파.

 

그래서 부처님보고 문제제기를 했어요. 집에 왕궁에 좋은 잠자리와 좋은 옷과 좋은 음식을 차려놨는데, 왜 왕궁에 와서 안자고 안 먹고 길거리에 남의 집에 얻어먹느냐 이거야. 그러니까 부처님이 이렇게 말했어요. 대왕이시여, 이것은 저의 가문의 전통입니다. 이랬어. 그러니까 정반왕이 우리 석가족 가문에 구걸이 어디 있냐? 이랬더니 출가사문의 전통입니다.”

 

부처님의 석가족에 와도 그 집에 안 들어가셨어요. 자기 집에. 법문만 했지. 그러니까 정반왕이 어느 정도까지 부처님 주위에 있는 사람들 자기 그 사랑하는 태자 아들 주위에 있는 제자들의 몰골이 안 좋다가 자기 석가족들을, 가족들을 다 불러 모아서 아주 인물 장생기고 똑똑한 젊은 남자 30명을 불러서 머리를 싹 깎아버렸어. 그리고 옷을 승복은 승복인데 좋은 옷을 입혀 부처님 옆에 서라고 했어.

 

그럴 정도로 무슨 생각밖에 없다? 오직 아들에 대한 생각밖에 없어. 도는 아예 없고. 그러니까 깨달을 수가 없지. 그러니까 부처님의 법문을 들어야 깨닫는데, 부처님을 못 봤는데 어떻게 깨닫겠어. 그러니까 부모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거는 좋은 마음이라는 건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그게 꼭 자식을 위하는 거는 아니에요. 결과적으로. 내가 만약에 어머니 하자는 데로 아버지 하자는 대로 했으면 오늘 제 길이 없습니다.

 

어머니 하자는 대로 했으면 예수님의 길이 없고, 부모님 하자는 대로 했으면 부처님 길이 없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스무 살 넘은 아들이 내말 안 듣거든 그보다 더 어릴 때 내말 안 들으면 이게 훌륭한 사람이 되려나?” 이렇게 생각하셔야 되요. 아시겠어요? 그래서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 말 안 듣고 이 길을 왔는데, 내나 누구보고 부모 말을 들으라고 말하겠어요. 그러니까 정을 끊으셔야 되요.

 

자기의 자식에 대한 관심은 자식을 망쳐요. 자식이 자립할 수 없게 만들고 있고, 자기도 자식 때문에 죽을 때까지 괴로워하다 죽어야 되요. 그러니까 오늘부터 죽든지 살든지 자기 할 일 다 했으니까 맡겨야 되요. 도움을 요청하면 필요한 거 조금 도와주든지, 여력이 되면.

 

그런 소리 하면 100% 못 끊지. 목숨 걸고 끊겠습니다. 이래도 안 돼. 부모자식 정이라는 거는. 아시겠어요? 왜냐하면 자식도 부모 정을 끊기 어려워요. ? 그 낳아서 키워준 정이 얼마나 깊은데. 부모도 자식 정을 못 끊어요. ? 그 핏덩어리를 만져서 키워놨기 때문에. 그러나 그 정은

 

어릴 때는 부모가 자식을 아끼는 건 사랑이라고 그러고,

청소년 때는 조금 멀어져 주는 게 지켜봐주는 게 사랑이고,

나이 들면 정을 끊어주는 게 뭐다? 사랑이에요.

그 정을 끊는 아픔을 견뎌내야 그게 진정한 부모의 사랑이에요.

지금 정에 끌려가는 건 사랑이 아니에요.

내가 보고 싶은 건 사랑이 아니에요. 정이지.

자식에게 뭐가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해야지.

 

그러니까 아직도 부모가 볼 때, “아이고 저게 길거리가도 저게 죽나? 사나? 저게 어떻게 사나?” 이렇게 걱정하는 애는 엄마가 봐도 한심한 앤데, 그 한심한 애가 직장에 가서 어떻게 제대로 생활을 하겠으며, 그게 어떤 여자의 남편이 될 수 있겠어요? 엄마가 봐도 한심한 애인데. 엄마가 봐도 야, 내 아들 괜찮다 그래도 밖에서 인정을 잘 안 해주는데. 그러니까 정 딱 끊어야 되요. 그건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아들을 위해서 그래요.

 

그래서 어떻게 기도하느냐. 절을 하면서

부처님, 감사합니다.

우리 아들은 잘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해야 되요. 잘 살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하지 말고,

잘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자꾸 기도해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