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 실천적불교사상 제4강 불교는 우리에게 어떤도움이 되는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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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실천적불교사상

2017. 7. 6.


 

...붓다가 되면 완전히 사라진다. 그래서 인생이 행복해지고 자유로워진다. 이것을 열반에 이르르고 해탈을 했다. 이렇게 말해요. 그러니까 부처님가르침을 공부를 하면 어떻게 된다? 해탈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해탈하고 싶지가 않죠. 해탈하고 싶어요? 정말 행복해지고 싶습니까? 그런데 정말 행복해지고 싶고, 정말 자유롭고 싶으면 행복해질 수 있는 길, 자유로워지는 길로 나아가야 될 거 아니오.

 

그런데 이제 우리 생을 가만히 살펴보면 여러분들도 똑같이 그런 생각은 하는데, 여러분들이 지금 가는 길은 쥐가 쥐약을 먹듯이 쥐도 살려고 먹었지 죽으려고 먹은 것은 아니란 말이오. 그런데 결과는 거꾸로 나타나요. 죽게 되요. 여러분들은 다 조금이라도 자유롭게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살기위해서 이렇게 동분서주 애를 쓰는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걱정거리가 많아지고 눈치 볼 일이 많아진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거꾸로 가서 그래요.

 

본래 길이 없으면 참 절망적이지만 길은 있는데 내가 길을 잘못 알아서 거꾸로 갔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거꾸로 간 사실을 모를 때는 헤매지만, “아 내가 길을 잘못 들었구나.” 아는 순간부터 제대로 갈 수가 있어요? 없어요? 있죠. “, 내가 길을 잘못 들었구나.” 이거 아는 것도 큰 깨달음이오.

 

잘못된 것을 잘못된 줄로 아는 것,

이게 바로 바르게 갈수 있는 가장 기초다.

 

그런데 범부 중생은 잘못된 것을

잘못된 줄을 모르는 게 문제요.

잘못된 것을 잘못된 줄을 알아버리면

이미 반은 깨달은 거요.

 

깨닫지 못한 자의 특징이 괴로움이라고 그랬는데, 우리는 지금 괴로운 것을 괴로운 줄도 모르고 살고 있어요.

 

괴롭다 괴롭다하면서도 정작은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이렇게 생각해요.

괴로운 것이 괴로운 줄을 몰라요.

원인은 고사하고 인생이 괴롭다.’라는 이 사실을

모른다 이 말이오. 그런데

괴로움을 괴로움인지 모르니까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거요.

 

그래서 오늘 제가 괴로움이 뭔지를 얘기해 볼 테니까 자기가 여기에 속하는지 안 속하는지 보세요.

첫째 /고통/은 괴로움입니까? 아닙니까? 괴로움이죠. 고통하면 가장 대표적인 게 신체적 고통인데, 신체적 고통은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는 이상은 대부분 뭐로 옵니까? 병고로 온다. 이 병고가 고통입니다.

 

그다음에 남을 /미워한다/ 남을 미워하면 괴롭습니까? 안 괴롭습니까? 괴롭죠. 그래도 내가 막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 사람이 괴로운 줄 알아요. 안 미워하면 내가 마치 손해나는 것 같아. 그런데 미워하면 누가 괴롭다? 내가 괴로워요. 이 미워하는 것이 아주 감기증상처럼 조그맣게 나타난 게 뭐요? 섭섭한 거죠. /섭섭해/ “네가 그럴 수가 있냐?” 이러다가 아니 네가?” 이래서 아주 미워집니다.

 

미워지는 게 점점점점 강화되어 완전히 중증, 치료불능의 상태, 암처럼 치료 불가능할 정도로 가버린 게 뭐요? /증오심/ 이러면 치를 덜덜덜덜 떨고, 그 사람 얘기만 나와도 갑자기 경기를 일으키고 이러죠. 그러니까 일종의 미친 증상까지 가는 거요.

 

그다음에 /성냄/이오. 성냄과. 성내는 것. 화내고 짜증내는 것. 요즘 이거 참 많죠. 소위 뭐라고 그럽니까? /스트레스/라고 그러죠. 이 스트레스를 자꾸 받으면 처음에는 보기 싫다.” 처음에는 아이고, 꼴도 보기 싫다.” 이게 점점점점 중증이 되면 어떻게 됩니까? “죽여 버리고 싶다.” 이렇게 나가요. 그러니까 죽이는 거 하고 보기 싫은 거 하고 다 같은 종류입니다. 아무튼 보기 싫다 이 말이죠. 그게 강도에서 차이에서 나오는 거죠.

 

그러니까 화내는 것, 짜증내는 것. 이거 큰 병이오. 화를 벌컥 한번 내 봐요. 소화도 안 되죠. 화 자꾸 내면 나중에 목이 어때요? 뻣뻣해집니다. 나 여기 보살님들 참고참고 참아서 그 인간 같지도 않은 사람하고 같이 살려니까 어때요? 참고 참아서 목이 뻣뻣해졌다가 나중에 머리가 아프다가 나중에 눈이 침침해 집니다. 이게 다 화병이거든요.

 

우리나라 여자분들 굉장히 많습니다. ? 참고 살아서 화를 참고 살아서 참는 게 뭐라고? 미덕이라고. 천만의 말씀. 화를 참는 게 수행이 아니에요. 화를 참는 게 수행이라면 병을 만드는 게 고통을 주는 게 수행이다. 이런 결론이 나와야 된다. 그러면 화를 내는 게 수행입니까? 화를 내면 그게 새끼를 쳐서 화가 자꾸 더 나지. 화를 한번 내버린다고 화가 안 나는 게 아니란 말이오.

 

화가 나지 않는 세계로 나아가야 수행이지,

화를 참는 것은 수행이 아니에요.

 

화를 참아 봐요 괴로워요? 안 괴로워요? 괴롭잖아. 그러니까 괴로움을 없애는 게 수행이지 괴로움은 수행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지금 공부를 뭔가 잘못하니까 진척이 없는 거요. 공부 잘못한 것은 누구 탓이오? 스님 탓이지 뭐. 제대로 똑바로 안 가르쳐줘서. 선생이 제대로 안 가르쳐줘서 그렇다. 이렇게 되는 거요.

 

그 다음에 또 무슨 과가 있을까요? /고독/과가 있어요. 고독과. 쓸쓸하고, 외롭고, 소외되고 늘 이렇게 많은 사람과 같이 살아도, 길거리가면 사람하고 부딪혀도, 남편이나 아내하고는 한 이불 밑에서 살아도, 너는 너고 나는 나죠. 세상에 나를 알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 내 속에 있는 말 한마디 하나 마음 놓고 할 사람 없어. 이런 게 꽉 쌓여있는 거요. 그러니까 비가 오거나 가을에 낙엽만 져도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합니다. 고독이 쌓여서. 고독과요. 병이오.

 

그런데 세상에서는 이런 것을 아주 좋게 생각하죠.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오. 사랑은 미움의 씨앗이오. 이래서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하지. 미워한다는 것은 좋은 거야.” 이렇게 되는 거요. 병을 병인지 몰라요.

 

/슬픔/과 있죠? 슬픔과. 부모가 죽었다고 슬퍼서 산소에 가서 울고, 제 지낼 때도 울고, 베갯잇이 다 젖도록 밤새도록 엎어져서 울고, 이불 뒤집어쓰고 울고 이러잖아요. 이거 큰 병이오. 밤만 되면 이불 뒤집어쓰고 우는 정도면 이거 완전히 중증이에요.

 

또 어떤 과가 있을 거 같아요? /후회/. “아이고 내가 왜 그렇게 자식으로서 부모한테 잘못했든고남편죽고 난 뒤에 내가 조금만 잘했으면 어땠으면 어땠으면이래서 회한이 가득 차 있어요. 후회하는 거, 후회하면 괴로워요? 안 괴로워요? 괴롭습니다.

 

또 뭐 있을까요? /방황/. 허전하고 공허해서 가만 못 있어. 차 몰고 길거리에 쏘다녀야 되고, 디스코장에 가서 흔들어야 되고, TV를 보고 있어야 되고, 만화라도 봐야 되고. 가만 못 있는 거요. 허전해서. 외로움하고 관계도 있지만, 그런 허전해서 방황하는 것도 있고. 그러나 여기에서는 근원적으로 길을 못 찾아서. 인생의 의미를 못 가지는 거요. “뭐 하러 사나싶고, 나이 40~50 넘어가는 여자분들, 앞에 고독과도 있지만 방황 이런 병이 다 겹칩니다.

 

젊어서 부부 막 싸울 때는 성질내는 과에 속하지만 그때는 너 아니면 못 사나?” 이런 생각이 있단 말이오. 또 애들 키운다고 정신없이 해요. 남편한테 쏟던 정이 제대로 안 먹혀 들면 그것을 어디 쏟습니까? 자식한테 쏟죠. 전부 정을 자식한테 쏟아서 자식만큼은 내 인생이 행복해질 거다. 이렇게 해서 자식한테 쏟았는데 얘들이 중학교쯤 들어가면 엄마를 어떻게 생각해요? 귀찮게 생각하죠. “엄마 간섭하지 마.” 이 한마디가 어떤 때는 가슴에 못이 될 때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해서 주면 남편은 가방 들고 출근하고, 애들도 가방매고 다 학교 가버리고 아무도 없는 빈집에 설거지 거리는 꽉 남아있고 청소할거는 남았는데, 혼자 떡 남아서 있으면 공허하죠. 그때 거울을 가만히 쳐다보면 어떠냐? 언제 생겼는지 여기 주름살이 생겨 있어요. 전에 같으면 까짓것 너 아니면 못 사나?” 이렇게 생각이 들었는데, 이미 40이 넘어 주름살이 지니까 온갖 것에 대한 자신이 없어져버려요. 이제 어디가도 누가 받아줄 사람도 없을 것 같아.

 

이런 공허함이 여러분들이 말하는 갱년기 장애에요. 육체적인 게 아니에요. 정신질환이에요. 그런데 검사를 해봐도 검사가 안 나오니까 육체적 장애라고 그러죠. 그런데 나이 40이 되어서 결혼해서 갓난 애기 낳아 키우는 사람은 40대 갱년기 장애가 올까? 안 올까? 안 옵니다. 애 키운다고 정신이 없어서 40대가 언제 넘어갔는지 몰라요.

 

/아픔/, 보고 싶은 사람 못 봐서 가슴 아프죠. 하고 싶은 일 못해서 가슴 아프고, 늙은 자기 얼굴 보면 젊은 날을 생각해서 가슴 아프고, 예를 들면 이런 현상들이 다 뭐다? 괴로움이다. 이 말이오.

 

여러분들이 괴로움이다 하면 어떤 고통, 이런 것만 괴로움이라는데, 이런 것이 다 통칭해서 괴로움이라고 그래. 속상해서 화내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누가 죽었다고 슬퍼하고, 허전하고 방황하고 고독하고 이런 것들이 다 고다. 이거요. . 그래서 생각해보면 여러분들의 삶이 고의 천지죠. 그래서 뭐라고 그래요? 고해바다다. 해서 인생을 고해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그런데 이것을 잘 이해를 못하니까 인생이 뭐 고고? 재미있는 것이 억수로 많은데.” 그런데 우리가 그 기쁨이라고 하는 것마저도 시간을 지나놓고 돌아보면 다 뭐로 바뀝니까? 그게 다 고로 바뀌어요. “결혼하고 싶어서 안달이어서 괴롭고, 결혼해서 기뻐하지만 그 결혼이 고의 씨앗이 되어서 죽을 때까지 남편이나 아내 때문에 시달리고, 자식 못 낳아서 갖가지로 괴롭다가 자식 낳아놓으면 기쁘지만, 그게 씨앗이 되어 그게 좋은 건줄 알고 키워서 자란 후에 보면 곡식인 줄 알고 노력해서 키워놨는데 나중에 커보면 피다. . 잡초요.

 

그래서 자기 인생의 행복을 남편과 아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살아본 경험의 뒷말이 옛날부터 내려오는 게 뭐요? “이 왠수야.” 하는 것은 두 개 밖에 없습니다. 남편하고 자식하고. 이게 우리 삶의 현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괴로움에 푹 빠져서 괴로워하면서도 괴로움이 뭔지를 모르고 그냥 허우덩대다가 살아가는 거요. 그 순간순간, 달콤함 어떤 맛에 빠져서 살아간다. 이 말이오.

 

이상한 성격을 가진 남편한테 계속 두들겨 맞고, 온갖 고통을 겪고도, 가끔 한번씩 내가 너 아니면 못살아.” 이러면서 위로해주고, 어디 가서 옷 한 벌 사다주고, 반지하나 끼워주고, 그 맛에 이혼하려다가 또 붙어 살고, 이혼하려다가 또 붙어 살고. 이래서 인생 몇 십 년을 흘려보내는 것처럼, 그 달콤한 몇 순간순간에 오는 그런 몇 가지에 맛을 들이고 팔려서 고해의 세상을 그냥 흘러 보내는 거요. 거기서 근원적으로 빠져나올 생각을 못한다. 이거야. 이것을 옛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장난 같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참 묘사를 잘했어요. 이 인생을 어떻게 묘사했느냐?

 

인도에서 제일 무서운 게 뭡니까? 사자? 호랑이? 성난 코끼리입니다. 코끼리가 성이 나면 사자나 호랑이 이것은 아예 상대가 안 됩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을 살해하려고 데바닷타가 했을 때도 성난 코끼리를 부처님 앞으로 몰아붙였거든요. 황야에서 아무 숨을 때 없는 황야에서 성난 코끼리에게 쫓겨 지금 도망을 가요. 한 사람이. 뭔가 여러분들이 쫓겨서 도망을 가요. 죽을둥 살둥 순간순간인데 큰 웅덩이가 하나 나왔어. 그것을 보니까 살았다. 싶었어.

 

그런데 내려갈 길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마침 칡넝쿨이 쭉 달려 있어서 그것을 타고 내려갔어. 그래서 코끼리가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왔다 갔다 하죠. “휴우~” 하고 매달려 있다가 눈을 옆에 쓰윽 돌려보니까 벽에서 코브라가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는 거요. 그러니까 발을 벽에다 못 대고 가운데 매달려서 이러고 있는 거요. 그러면 길은 하나 밖에 없죠. 위에는 코끼리가 있고 옆에는 독사가 있으니까 줄을 타고 내려가서 바닥에 디뎌야 될 거 아니요.

 

그런데 바닥에도 뱀이 우글우글 하는 거요. 그래서 딱 매달려있는데 이 매달려 있다는 것은 괴로움이죠. 그런데 흰쥐하고 검은 쥐가 와서 그 칡넝쿨을 갉아먹는 거요. 그러니 완전히 절망적인 순간이오. 그런데 거기 있는 벌집에서 꿀이 하나 똑 떨어져서, 괴로워서 입을 딱 벌리고 있는데 혓바닥에 똑 떨어졌어. 그 달콤한 맛에 요렇게 깜짝하고 있는 게 인생이래요.

 

지금 여러분들 나름대로 재물이나 자식이나 뭔가 어떤 것에 지금 그 달콤한 맛에 잠시 팔려서 지금 자기 상황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른다. 이거요. 그러니 우리가 깊이 존재의 본질을 관찰하지 않고서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그냥 이렇게 대강 이렇게 해서는 잘 안 된다 이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