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 실천적불교사상 제12강 삼귀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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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실천적불교사상

2017. 7. 20.

 

 

수다원, 예류, 성인의 무리에 나도 예비자로 처음 참석을 했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더 자기 정진을 해나가면 이렇게 한번 화를 벌컥 냈단 말이오. 화를 냈는데 딱 내자마자 "아차 아이고, 내가 또 미쳤구나." 이렇게 자각을 했어. 그런데 다음에 저 사람이 또 그러면 또 한 번 화를 벌컥 내는데, 한 번 더 실수는 하지마는 그 다음 부터는 그 사람이 아무리 그래도 이제는 끌려가지를 않아요. 이런 경지가 된다.

 

아까는 그게 1020번 반복 될 수도 있다고 그랬죠. 그러나 이것은 자기가 자각한 이후에 한 번 더 한다는 얘기에요. 이것을 사다함이다. 이렇게 말해요. 한문으로는 일례라 그래. 일례. 한 번 더 온다. 윤회의 세계에, 옛날식으로 말하면 죽어서 딴 세계에 갔다가 이 세상에 한 번 더 온다. 한 번 더 윤회한다는 말이 한 생각 어리석은 생각을 낸다와 같은 얘기에요.

 

한번 어리석은 생각을 내는 게 생사에 도는 거거든요. 어리석은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생사가 없는데, 어리석은 생각 때문에 생사를 윤회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한 번 더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되는 거요. 그런데 그 다음에는 그것은 딱 끝나. 이것을 사다함, 일례라 그래.

 

거기서 조금 더 나가면 어떠냐? 이 사람이 뭐라고 그래서 내가 화를 벌컥 딱 내다가 "아차" 하고 화를 내기는 냈어요. 냈는데, 내놓고 "아차"하고 탁 자각을 하면, 이것으로 끝이야. 다시는 이런 일은 없어. 그러니까 불환이라고 그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것을 아나함 이렇게 말해. 아나함. 이해하시겠습니까?

 

거기서 더 수행을 해서 어리석음이 싹 사라져버리면 뭐라고 하든지 간에 아예 괴로움이 일어나지 않아. ? 문제가 발생하는 즉시 문제를 소멸시키는 도의 행위가 실천이 바로 즉시 가버리기 때문에 화가 일어나려고 하다가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려. 아예 일어나지 않든지. 그러니까 바깥으로 드러나지를 전혀 않아요. 참아서 안 드러나는 게 아니라, 안 일어나는 경지다. 이것을 아라한 이렇게 말해요. 아라한. 적멸, 다 사라져버리고 고요하다.

 

조금 무서운 용어가 있어요. 살적, 이런 말이 있어요. (죽여버린다 살, 적이라는 적) 괴로움의 적을 완전히 죽여 버렸다. 이런 뜻이오. 응공이라는 말이 있어. 응당히 공양 받을 만하다. 그는 아무런 번뇌가 없기 때문에 어떤 것을 주는 것을 받아먹든지 쓰든지 어떤 행을 하든지 그는 마음에 집착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마치 허공에 새가 날아가고 흔적이 없듯이, 지팡이로 허공을 휘저어도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듯이, 그의 행위에는 아무런 마음에 흔적이 남지 않는다. 즉 무위의 행이 된다. 그래서 일체의 업이 지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누가 주는 것을 받아먹었다고 하더라도 빚이 안 된다. 이 말이오. 그래서 그는 응당히 중생으로 부터 공양 받을 자격이 있다. 높아서 자격이 있다는 뜻이 아니죠. 그래서 응공이라고 보통 많이 번역한다. 응공하면 아라한을 말한다.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이것을 성문의, 성문이라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성문승이라고 말하고, 성문승은 이 4개의 단계가 있다. 이것을 성문4과라 그런다. 이 성문4과는 그러한 경지로 나아가는 사람, 그러한 경지에 이른 사람, 그 다음 경지로 나아가는 사람, 그 다음 경지에 이른 사람. 이렇게 또 다시 둘로 나눠요. 그래서 예류향 예류과, 일래향 일래과, 불환향 불환과, 응공향 응공과. 이렇게 나눌 수가 있겠죠. 그래서 그것을 44.

 

그러면 종류는 다 몇 종류에요? 8종류죠. 8. 이러한 현인과 성인. 8배현성을 현인과 성인들만을 뭐라고 한다? 승보라고 한다. 머리 깎고 스님 되었다가 다 승보냐? 아니다. 요 부류만 뭐라고 한다? 승보라고 한다. 삼보. 별상삼보에서 규정이 그렇다. 별상삼보에는 다시 한 번 정리하면 법신 보신 화신이 불보요, 교리행과가 법보요, 성문 448배현성을 승보라고 한다.

 

그런데 부처님이 아니 계신 세상에 부처님의 육성을 들을 수 없는 우리들이, 그리고 이렇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스승이 없는 이런 시대에 태어난 중생은 그러면 도대체 뭘 의지해서 공부를 할 거냐? 문제죠. 그래서 부처님이 계시지 않지만, 다 마음이니까, "나는 늘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시는 것과 같이 그분과 늘 같이 있는 것처럼 공부를 하겠다." 이렇게 마음을 내세요.

 

그래서 우선 그 분의 모양을 본떠서 돌이나 흙이나 쇠붙이로 조각을 해서 방안에 모셔놓고, 또는 그것이 없으면 종이에다가 그분의 그림을 그려서 모셔놓고, 계시는 것과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생활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부처님 모시고 살면 문안 들여야 되요? 안 드려야 되요? 드려야 되겠지. 아침에 일어나면 부처님 계시는 방에 가서 "부처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하고 문안을 드린단 말이오. 그게 아침예불이오.

 

그 다음에 밥 먹을 때가 되면 탁발을 해 와서 부처님과 둘러앉아 밥을 먹는데, 그러니까 밥을 가져와서 부처님 앞에 딱 놨다가 "드십시오." 하고 저하고는 내려가서 둘러앉아 먹는단 말이오. 저녁에 또 자기 전에도 "부처님 안녕히 주무십시오."하고 또 인사한단 말이오. 그러니까 옆방에 부처님이 계시는 것과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생활을 해요. 이렇게 한다면 사실 부처님 계시는 것이나 다름이 없죠. 조심하고 다 그렇게 한단 말이오.

 

그러니 이때는 비록 나무나 돌이나 흙이나 철로 부처님의 모양을 만들었더라도 그 수행자에게는 부처님과 똑같은 역할을 합니까? 안합니까? 하죠. 비록 그림으로 그려놨다 하더라도 그 수행자에게는 부처님과 똑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럴 때 불상과 탱화, 탱화는 그림이에요. 불상과 탱화를 뭐라고 한다? 불보라고 한다. 이해하시겠습니까? 불상 탱화는 뭐라고? 불보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그런 마음가짐으로 불상과 탱화를 대하면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것이지만, 그게 아니라 조각품, 예술품일 때는 이것은 불보가 아닙니다. 그냥 조각이고 그냥 하나의 작품이지. 그러니까 박물관에 와서 보고 ", 얼굴 잘생겼다. 돌을 어떻게 매끌매끌 하게 깎아서 피부처럼 깎아놨네." 이렇게 보고 다닐 때는 부처님이에요? 조각이에요? 조각이에요.

 

그 다음에 두 번째로 부처님이 살아계시면 그분의 가르침이 있고, 그 가르침의 이치가 있고, 그 다음에 그분의 행이 있고, 그 다음에 증득함이 있지만, 부처님이 계시지 않으니까 그런 게 없죠. 그러니까 그분의 가르침을 종이에 글로 써놓은 것만 내가 만날 수 있잖아, 그죠. 그러니까 그분의 진리에 대한 가르침과 또 그분의 행에 대한 가르침. 이것이 경률이고, 그다음에 그분의 가르침의 이치를 후대의 선지식들이 써놓은 글을 논이라 그래. . 그래서 경률론 3장을 법보라고 한다. 이 말이오.

 

그럼 해인사에 있는 8만대장경은 법보가 된다.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은 그 나무판대기죠. 나무판대기지만 그것이 법보가 된다. ? 거기에 부처님의 경률론 삼장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게 비록 종이지만 법보다 된다.

 

그다음에 출가5중이 승보다. 깨달았는지 안 깨달았는 지는 우리는 모르지만, 아무튼 부처님의 모습을 따라서 고대로 머리도 깎고, 맨발로 다니고, 노란 가사를 입고, 행동도 그렇게 하고 이렇게 그 전통에 따라서 계를 받고 그 계를 지키는 스님들을 승보라고 한다. 그럼 스님들은 어떤 종류가 있느냐?

 

20세 이상 출가한 스님을 비구라 그러고, 20세 이상의 남자 출가한 스님을 비구라고 부르고 20세 이하에 아직 성년이 못된 출가한 남자스님을 사미라 부릅니다. 20세 이상의 여자 출가한 스님을 비구니라고 부르고 20세 이하에 아직 성년이 못된 여자 스님을 사미니라고 불러요. 그러니까 비구 비구니 사미 사미니. 이렇게 있단 말이오.

 

그런데 여기 여자인 종류가 한 종류가 더 있어요. 남자는 결혼해서 살다가 부처님 말씀 듣고 벌떡 잠을 깨어서 그냥 부처님 따라 가버렸어요. 그럼 계를 탁 받으면 비구가 된단 말이오. 그것으로 끝이오. 그런데 여자는 결혼해서 살다가 부처님 법문 듣고 벌떡 일어나 따라갔단 말이오.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는데, 좀 문제가 있단 말이오. 무슨 문제가 있을까?

 

뱃속에 애기가 있을 경우도 있단 말이오. 그럼 애기를 낳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아무 차별은 없습니다.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될 수 있어요. 그러나 애기를 낳게 되면 일단 계를 반납하고 돌아가야 됩니다. 그리고 애기를 일정하게 키워놓고 새로 들어와야 되요. 왜 그럴까? 생명이 가장 소중하기 때문에 그것은 계율을 파한 게 아니고 그런 조건이 되면 반납하고 돌아가야 되요.

 

그러니 이 사람은 깨달음을 얻기 이전에 그것이 이루어진 행동이죠.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 이루어진 행동일 때는 계를 뭐하게 된다? 파한 게 되지만, 이것은 깨달음을 얻기 이전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이것은 계를 파한 것은 아니란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여자의 경우는 출가하고 2년을 기다려야 됩니다. 그럼 출가하고 2년을 승려가 아닌 입장에서 기다리는 게 아니고 승려로 출가하면 승려가 될 수 있는 데, 그것은 비구니도 아니고 사미니도 아니고, 그런 인연의 기간에 사람을 뭐라고 부르냐하면 식차마나 이렇게 불러요.

 

그러니까 분류를 따로 한다는 얘기지 차별을 하거나 안 된다거나 이런 개념이 아니란 말이오. 그냥 마음의 문이 열리면 누구나 다 바로 승려가 될 수가 있으니까. 그러면 승려라고 할 때는 승려의 종류가 몇 종류요? 5종류요, 남자 스님은 2종류고 여자스님은 3종류요. 5종류를 출가 5종이라고 그래. 이 출가 5종만 승보다 이렇게 말해요. 머리 기르는 사람들은 승보에 들어갑니까? 안 들어갑니까? 안 들어갑니다. 왜 안 들어갈까? 이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당연히 깨달음을 얻으면, 뭔가 법문을 듣고 깨면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자르고 버리고 가는 건데, 그 안가고 있다는 것은 뭔가 아직 집착이 남았다는 얘기 아니냐.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깨달은 자라고 할 수가 없다. 요즘은 못 깨닫고 승려된 사람이 많지만 부처님 당시에는 아까말한대로 일정하게 깨달음을 얻고 승려가 됩니다. ? 깨달음을 얻어야 꿈이 탁 깨야 다 버리지. 그런데 요즘은 우체가 가는 사람이 있단 말이오. 남이 하니 슥 따라가거나. 이런 경우가 있지만 옛날에는 그런 경우가 없었어요.

 

그러니까 득도라 그러죠. 스님들이 머리 깎는 그 출가한 해를 가지고 득도한지 얼마 되느냐? 이렇게 말하는데, 도를 얻은 지가 얼마 되느냐? 이 말이거든요. 그런데 원래 출가할 때 눈이 뜨여야 출가를 하기 때문에 그 말이 맞단 말이요. 요즘은 좀 안 맞죠. , 그러면 이러한 삼보, 불상 탱화가 불보이요, 경륜론 3장이 법보요, 출가 5종이 승보다. 하는 요런 삼보개념을 주지3보라 그래. 주지3(머를 주) 이 세상에 부처님의 법이 오래도록 머무르게 하는 삼보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3보는 몇 가지 가 있다고 그랬어요? 동체삼보, 별상삼보, 주지삼보다. 그러니까

동체삼보에서는 내 마음 깨달으면 부처요, 내 마음 고요하면 법이요, 내 마음 청정하면 스님이다.

별상삼보에서는 법신 보신 화신이불보요, 보리 행과가 법보요, 성문현성들이 바로 승보다.

주지삼보에서는 불상탱화는 불보요, 경륜론3장은 법보요, 출가5종은 승보다. 그러니까 주지삼보는 우리가 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대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죠. .

 

, 그래서 다 같이 이 여러 종류에서 얘기하고 있는데, 그냥 불, 할 때는 주로 삼신, 법신, 보신, 화신을 삼신이라고 그래요. 불에는 3가지 몸이 있다. 법신, 보신, 화신이 있다. 그 다음에 법에는 3장이 있다. 경장, 율장, 농장. 이렇게 법에는 3장이 있다. 그 다음에 승에는 3승이 있다. 이런 말이 있어요. 승은 (상가할 때 승, 승려 승) 밑에 있는 삼승할 때 한문은 똑같지만 그 승은 승려 승이 아닙니다. 그때는 탈승. 3가지 탈것이 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이다. 이렇게 3승이 있다.

 

성문승이라는 것은 부처님 당시에 태어나신 분들을 말합니다. 부처님 당시에 태어나신 분들은 부처님 법문을 듣고 우리 아래 경전도 읽었지만, 딱 듣고 마음의 문이 열려버리잖아. 이래서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깨달아서 성인이 된 사람을 성문승이다. 이렇게 말해요. 그런데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고 계시지 않을 때는 그러면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 없느냐? 있다. 이 말이오.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만히 살펴서 하나하나 원리를 가만히 관찰해 들어갑니다. 그래서 법의 실상에 공한 줄을 탁 깨쳐서 해탈하는 사람도 있단 말이오. 이런 사람들을 뭐라고 한다? 연각승이다 이렇게 말해요.

 

그 다음에 이 테라밧다 소승불교에서는 성문승과 연각승만 있습니다. 그런데 대승불교에서는 그 상가를 보살승이라 해서 별도로 규정을 합니다. 성문연각승은 다 스님들이 중심이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보살은 스님이 아니라도 됩니다. 그러면 보살승은 어떤 사람들이냐? 수행방법이 조금틀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