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 실천적불교사상 제18강 오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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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실천적불교사상

2017. 8. 21.


 

그러면 공한데 무슨 **있겠어요, 그죠? 그럼 여기서부터 다시 출발해서 그러면 현실에서 부닥치는 것은 불교에서는 어떻게 봐야 합니까? , 공이라고 봐야죠. “어떤 남자가 와서 갑자기 나를 껴안고 키스를 하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 제행이 다 공이구나."

 

, 그런데 지난번에 여러분께 도표를 하나 준 적이 있었어요. 서울 가는 길을 어디로 갑니까? 이럴 때 뭐라고 그랬어요? 무유정법이다. 서울 가는 길은 정해져있지가 않다. 정해진 법은 없다.

 

그런데 인천사람이 서울은 어디로 갑니까? 동이다. ! 정해진단 말이오. 수원사람이 물으면 북이다. ! 정해진단 말이오. 춘천사람이 물으면 서다하고 딱! 정해진단 말이오. 분명합니까? 안 분명합니까? 아주 분명해요. 이것을 인연을 따라 이루어진다. 이렇게 제가 그때 말씀드렸죠.

 

불수자성수연성

스스로의 성품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연을 따라 이루어진다.

 

죄무성종심기

죄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의 성품이 없지만

어리석은 마음을 따라서 생겨난다.

 

이렇게 인연을 따라서 일어나는 거요. 여러분들이 요만한 밥그릇에 한 그릇 딱 먹으면 적당한 양이에요. 그런데 10명이 있는데 거기에 밥이 10그릇이 들어왔어. ", 한사람이 얼마나 먹으면 됩니까?" 이렇게 질문을 하겠죠. ". 한 그릇씩 드십시오." 한 그릇 먹으면 되죠.

 

사람이 10명이 있는데, 밥이 5그릇 들어왔어. "한사람이 얼마나 먹어야 됩니까?" ". 반 그릇씩 드십시오." 사람이 10명이 있는데 밥이 15그릇 들어왔어. "한사람이 얼마나 먹으면 됩니까?" ". 한 그릇씩만 드십시오." 쉬워요? 어려워요? 처음에 한 그릇씩 먹으라니까 두 번째도 한 그릇 먹어야 되요? 두 번째는 반 그릇 먹으라고 그러니까 15그릇이니까 10명을 15그릇으로 나누면 세 번째는 1.5그릇 먹으면 되겠다. 아니죠.

 

사람이 한 그릇씩 먹을 수 있는 게 육체적으로 적정한 양이라고 할 때, 식량이 충분하면 한 그릇씩 먹어도 된다. 그러나 식량이 반밖에 없을 때는 반 그릇씩 먹어야 된다. 그때 누가 이럽니다. "아니, 반 그릇 먹고 어떻게 삽니까?" 육신을 유지하려면 한 그릇 먹어야 되는데 반 그릇 먹는다는 것은 비과학적이지 않습니까? 생물학적으로 안 맞는 얘기에요." 이렇게 말하면 맞습니까? 안 맞습니다. 반 그릇 먹어야 된다.

 

그러면 15그릇이 들어왔어. 그럼 1.5그릇씩 먹으면 됩니까? 아니에요. 아무리 많이 들어와도 한 그릇이 적당량이 된다. 더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나. 뚱뚱해지든지, 위가 늘어나든지, 힘이 남아돌아 누구를 두드려 패려고 그러든지, 뭔가 부작용이 생긴다.

 

그러니까 딱 구체적으로 정해지면 그때 10명에게 10그릇의 밥이 나왔을 때 한 그릇씩 먹는 게 현실 속에서 나온단 말이오. 이게 선이란 말이오. 5그릇 나왔을 때는 반 그릇씩 막는 게 이름하여 선이다. 옳다. 이렇게 말할 수 있고, 그때 "한 그릇씩 먹어야 됩니다." 이러면 그것은 옳지 않다. 본래 옳고 그른 게 없어. 그러나 그 인연을 따라서는 어때요? 옳고 그른 게 있다. 아주 분명하다.

 

그럼 반 그릇씩 먹는 게 옳다 하더라도 그 조건에서 반 그릇이 옳지 옳으니까 ", 밥이 들어오면 반 그릇씩 먹는 게 수행자는, 즉 적정량이 한 그릇이지만, 딱 참고 반 그릇씩 먹어야 그게 진정한 수행자다." 이렇게 하면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돼. 반 그릇에 집착을 하면 안 된다. 그 이상.. 그것은 그 이면에서 반 그릇이다. 그러니 시비가 본래 없는 가운데 시비가 분명히 일어난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이해는 되세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옳다 그르다 맞다 틀렸다 하는 것,

지금까지 했던 것 다 그냥 버려버리세요.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으로 그냥 길들여져서 그냥 생긴 거란 말이오.

안경과 똑같은 거란 말이오. 안경을 다 벗으세요. 벗고, “, 벽이 하얗구나.” 알았죠?

 

그리고 길가다가 선글라스 가게가 있으면 색깔 좋은 거 각자 알아서 먼저 끼세요. 상관없어. 좋은 것 끼십시오. 세상이 너무 파랗게 보이면 약간 자기 기분에 추워 보인다. 난 따뜻하게 좋다하시는 분은 붉은 것을 끼십시오. 법당에 와서 쳐다보면 법당이 불그스레 보이죠. . 괜찮습니다. 어떤 사람 푸른 거 끼고, 어떤 사람은 누른 거 끼고 다 보면 되요.

 

그러나 이렇게 끼었을 때는 붉으니 푸르니 누르니 해서 싸웁니까? 안 싸웁니까? 안 싸워요. 누가 ", 붉다." 이러면 으흠. 쟤는 붉은 안경을 끼었구나.” 누가 푸르다하면 ", 쟤는 좀 푸른 색깔 선글라스를 좋아하는 거구나." 이게 타인에 대한 이해란 말이오. 틀렸다. 맞다가 아니고 그냥 그에 대한 이해란 말이오.

 

", 저 사람은 저렇게 보구나. 저 사람은 지금 무슨 입장에 처해 있구나." 다툼이 안 일어납니다. 그래서 아까 읽은 글에서도 나왔지만 여러 가지 꽃들이 모여 하나의 화단을 이루듯이 각자의 다양한 것들이 즉, 그의 가치관이나 그의 문화, 그의 종교 이런 것들이 나름대로 다 조화를 이루며 삽니다.

 

사람 만날 때 같은 빛깔, 같은 모양 한 종류의 꽃만 심는 게 아니란 말이오. 종류도 다르고, 빛깔도 다르고, 크기도 다른 꽃들이 모여서 화단을 이룬다. 오늘 우리들의 병폐는 바로 자신이 갖고 있는 빛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가치관, 그것만 옳다고 그러고, 그거 아닌 것은 틀렸다고 그럽니다.

 

우리가 이렇게 다양한 인류가 다양한 경험들을 해왔죠. 그러니까 다른 가치관 다른 문화를 볼 때, "아이고, 병신 같은 것들." 이게 아니라, ", 이 사람들은 이런 가치관을 갖고 살아왔구나." 이렇게 이해한단 말이오. 어떤 문화를 봐도 이해가 되는 거요. 그러니까 무당, 샤머니즘 이렇게 안단 말이오. ", 이 사람들은 이런 문화를 가지고 살아왔구나." 이렇게 이해를 하는 거요.

 

제가 인도에 있을 때 어느 민가에서 천민들 촌에 살면서 민가에 살면서 학교 짓는다고 있었는데 하루는 오니까 방바닥이 흙이었었거든요. 마루도 없이 그냥 흙인데, 바닥도 흙인데, 뭔가 파랗게 바닥에 칠해놓은 거 같아요.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소똥을 막 발라놨어요. 방바닥하고 벽에다 소똥 칠해 놓은 거요. 그래서 "왜 이랬냐?" 그러니까 내가 신이다. 이거야. 자기들 마을에 온, 그래서 신을 모신다고 그렇게 했다는 거요.

 

그러니까 최고의 경의를 표해서 소똥을 칠해놓은 거죠. 그러니까 "아하, 이것이 나에게 가장 표현할 수 있는 존경, 고마움에 대한 표시구나. 나를 진짜 존경을 해서 이 사람들이 이렇게 했구나." 얼마나 눈물 나도록 고맙겠어요. 그런데 "무식한 새끼들. 어디 방바닥에다 소똥을 칠해." 이렇게 될 수도 있죠.

 

그러니 이 불법을 안다는 것은 세계 여행을 해보면 참, 온갖 것들을 접해도 이해가 된단 말이오. 옳다 그르다는 생각을 놔버리니까. 어떤 때는 몸에서 거부반응이 오죠. 몸에 그냥 판단하기 전에 몸에서부터 이렇게 거머리 붙듯이 거부반응이 온단 말이오. ? 가치관에 꽉 사로잡혀 있으니까. 그러나 금방 다른 각도에서 이렇게 이해를 한단 말이오.

 

그래서 유명한 얘기가 있어요. 빔비사라왕이 하루는 자기 부인하고 둘이 높은 궁궐의 누각에서 밑을 내려다보면서 그 봄날의 따뜻함을 즐기고 있었어요. 그때 영토는 인도전체에서 제일 넓죠, 그 영토는 비옥하죠, 갖가지 곡물이 나오죠. 갖가지 보석도 모여들죠. 제일 많은 군대와 제일 많은 전차, 또 코끼리. 옛날에는 코끼리부대가 굉장했어요. 제일 많은 코끼리 부대도 가지고 있죠.

 

집도 왕들의 왕사성이라고 그러죠. 왕중의 왕. 왕들의 집이다. 그럴 정도로 어마어마한 궁궐 안에 살고 있죠. 세계에서 제일 좋은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죠. 세계에서 제일 예쁜 여자는 다 뽑아다가 큰 마누라 작은 마누라 삼고 있죠. 그러니까 이 세계에서 각 분야에서 제일 좋은 것은 다 모여서 그것을 보고 즐겼단 말이오.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런데 이 왕이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세계에서 제일 좋은 것을 다 모아놓은 자신에게 있는 수많은 것 중에, 그래도 그 중에서 그중에서 뭐가 제일 귀할까? 재물일까? 군대일까? 마누라일까? 보석일까? 자식일까? 이거라 그러려니까 저게 문제고 저거라 그러려니까 이게 문제고, 아무리 다 좋으면 뭐해요? 음식 못 먹으면 죽잖아 그죠? 그래서 음식이 제일 좋은 것 같고. 예를 든다면. 다른 거 다 있으면 뭐해요? 군대 없으면 금방 망하잖아. 군대가 제일 소중한 것 같다.

 

그래서 부인한테 물었어요. "이 세상에서 뭐가 가장 소중한 것 같습니까?" 하고 자기 고민을 얘기했어. 위제희이부인이 듣고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같이 생각해 봅시다.” 그래서 며칠 후에 다시 만났어. 부인보고 "어떻게 생각합니까? 부인." 부인이 말을 못하는 거요. "말 좀 해보시오."

 

그러니까 "대왕마마, 용서해주십시오." "얘기해 보라고."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은 제 자신인 것 같습니다." 들으면 끄떡끄떡해지죠. 그런데 그 당시에 그렇게 말하는 것은 곧 죽음이에요. 아내가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소중하냐?" 하면 우리 남편이요.” 이래야지, "내가 제일 소중합니다." 말이 안 되고,

 

백성이 신하가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소중하냐?" 하면 "대왕마마이십니다." 이래야지, "제가 제일 소중합니다." 말이나 되는 얘기요? 말이 안 되는 얘기요.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는 시대였어요. 그 시대는. 그런데도 그러니까 용서를 해라 이거죠. 죽을죄를 지었다 이거죠.

 

그러나 사실은 그들이 진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니까 거짓말을 할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제자신이 제일 소중합니다. 그랬더니 왕이 , 당신이 그렇게 생각해서 저도 그렇게 생각했다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여보, 당신이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합니다. 나 당신 없이 못 살아요.” 이래놓고 진짜 뭐가 제일 중요한데?” “내가이러면 꼴불견이잖아. 그런데 역시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

 

그래서 부처님께 가서 물었다. 자기가 가장 소중하다. 이게 맞는지, 그래서 부처님께 가서 경과를 얘기하고 물었더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 “그래. 내가 제일 소중하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다. 그러니 다른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라.”

 

부처님이 보통 사람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부처님은 못 따라가는 게 이거에요. 자기들이 소중하다까지는 알았는데, 부처님은 다른 사람도 그렇고, 그러니 다른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라. 이렇게 되는 거요.

 

사람의 생각은 어디로나 갈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들의 가치관, 생각, 이런 것은 다 이리 될 수도 있고 저리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디로 가든 자기보다 더 소중한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그와 같이 다른 사람에게도 자기는 더 없이 소중하다. 그러니 자기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 제일 소중한 게 뭐라고요? 자기 자신. , 생명이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강도가 들어와서 칼을 목에 대고 죽이겠다. 이러면 돈 다가져가. 가져가.” 다 가져가도 뭐만 살려 달라? 목숨만 살려 달라.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이렇게 자기 목숨은 소중한 것이다. 이것은 한국 사람만 그래요? 미국 사람도 그래요? 그러니 이것은 모든 인종과 나라, 살아온 환경, 이런 것을 넘어서서 누구나 다 가장 소중한 1번이 뭐다? 생명. 이게 어떤 특정한 관념이에요? 아니지. 생명이다. 이것이 가장 소중하다. 그러니 생명을 해쳐서는 안 된다.

 

, 이의 달사람 있어요? 없어요?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좀 딴지를 걸려고 그래도 가만히 들어보면 딱히 할 말이 별로 없어요. 얼른 보면 엉성해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아주 빈틈없어. 남의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라. 이러면 이의를 달만하죠. 자기가 제일 소중하다. 그럼 다른 사람은요? 이렇게 될 수가 있는데,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저 사람도 그렇다. 그러니 다른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된다.

 

아무리 **하더라도 어떻게 하라? 죽이지는 마라. ? 내가 두드려 놓으면 싫죠. 그죠. 부모는 자식 길들인다고 두드려 패고, 남편은 아내 길들인다고 두드려 패고, 두드려 패야 부드러워지고 좋아진다고 사랑해서 두드려 패고, 그래도 맞는 사람은 싫죠. 다른 거 교육도 다 싫다. 패지만 마라. 이렇게 되잖아. 그죠.

 

그런데 패는 것은 참을 수 있는데, 어떻게는 하지 마라? 죽이지는 마라. 그럼 이거 사람만 그렇다. 사람만 그렇다면 관념이라 할 수 있는데, 다른 짐승은 어떻다? 그러겠죠. 이것은 생명가진 모든 것들이.. 그래서 확대해서 좀 더 넓게 해석하면 땅도 함부로 파서 안 되고, 돌도 함부로 캐서는 안 된다. 아무리 미물이라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 더 넓게 해석하면 그렇게 되고, 좁게 해석하면 어떻게 된다? 가장 좁게 해석하면 자살해서는 안 된다. 이해하시겠습니까? .

 

, 그러면 이런 우리가 살아가야할 아주 중요한 어떤 판단의 기준이 아주 분명해지는 그런 판단의 기준을 부처님께서 딱 이렇게 없는 가운데 지적을 딱 세워서 우리가 지킬 수 있게 이렇게 했단 말이오. 이것을 불교의 가치관, 또는 불교의 어떤 도덕성, 이런 기준이 되는데, 첫 번째가 어떻게 되요?

 

그러니까 저 자식 저거 사상이 빨갛다고 죽여 버려야 돼. 이런 말 하면 되요? 안 돼요. 전혀 안 돼요. 생명이 첫 번째입니다. 그러니까 불교적 가치관에서 보면 사형제도는 폐지되어야 됩니까? 있어야 됩니까? 폐지되어야 돼. 불교적 가치관에서 볼 때 아주 분명합니다.

 

사람을 10명 죽이고, 그 가운데서도 우리 부모까지 죽인 살인자가 물에 떠내려가고, 거기 맞아죽은 그 사람이 물에 떠내려가고, 우리 부모님이 그 사람한테 맞아죽은 시체가 떠내려간다면 불자라면 어느 것부터 먼저 건져야 되요? 그런데 여러분들 그렇게 할까? 그러니 이게 아주 분명한 거요. 헷갈릴 이유가 없어요. 헷갈리면 우리가 뭔가 미망이 쌓이니까, “이럴 때 어떻게 할까?”하고 헷갈리는 거지.

 

, 그래서 이제 불교의 그러한 가치관, 소위 불교에서 말하는 도덕성, 이런 것들을 불교적인 용어로 뭐라고 한다? 계라고 말한다. . 그래 우리가 장자가 부처님 말씀 듣고 눈이 확 봉사가 눈뜨듯이 좋아져서 다 엎드려서 부처님 발에 엎드려서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오듯이 말씀을 드렸잖아요.

 

/위대하셔라 세존이시여. 위대하셔라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심과 같이, 덮힌 것을 벗겨 내심과 같이, 길을 잃고 헤매는 자에게 길을 가르쳐 주심과 같이 어두운 밤에 헤매는 자에게 등불을 켜 비추어주심과 같이. 갖가지 방편으로 바른 법을 깨우쳐주셨습니다. 오늘부터 이 몸과 목숨을 다해서 죽는 날까지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승단에 귀의합니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우러나온 마음으로 그냥 엎드려 절을 했단 말이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선재선재라. 착하고 착하도다 장자여, 삼보에 귀의한 자는 마땅히 5가지를 지켜야 한다.

 

첫째,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해쳐서는 아니 된다.

둘째,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가져서는 아니 된다.

셋째, 삿된 음행을 해서는 아니 된다.

넷째, 거짓말을 해서는 아니 된다.

다섯째, 삿된 소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술을 먹지 말라.)

 

이렇게 5개 딱 얘기를 하니까, 장자가 그 하나하나가 너무 분명하니까 다시 일어나서 절을 하면서 거룩하신 부처님이시여, 이 몸과 목숨을 마칠 때까지 부처님께서 주신 그 5계를 받아 지니겠습니다.” 이렇게 됐단 말이오. 그러니 사람을 99명이나 죽인 앙굴리말라도 계를 지키겠다고 맹세를 했기 때문에 나중에 사람들이 돌로 쳐서 자기를 죽였단 말이오.

 

힘으로 하면 그런 거 몇 백 명이 붙어도 문제가 안 되죠. 그런데 돌로 맞아죽을지언정 그냥 수용을 했단 말이오. 그러니까 그만큼 그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에 이렇게 남이 나를 돌로 때릴 때는 그대가 아니잖아요.” 우리는 지금 그렇게 되잖아요. 뭐든지. 그런데 그렇게 안 되었단 말이오. 분명해져버렸다. 바이샬리의 모든 왕족들을 상대로 몸을 팔아서 기생을 하는 연화색녀가 있었는데, 요즘말로하면 요정마담이 있었다 이 말이오. 전부 고관대작들을 상대로 하는 마담이 있었는데,

 

부처님 법문 듣고 내일아침에 식사초대를 했단 말이오. 그런데 이날 왕족들이 부처님 오신 줄 알고 부처님한테 가서 내일 아침 식사초대를 하니까 거절을 하신단 말이오. 왜 그러냐하니까 선약이 있다는 거요. “아니 우리가 왕족인데 누구하고 먼저 선약이 있냐?” 이거요. 기생 연화색녀가 선약이 있었어요. 그러니 왕족들이 와서 부탁을 해도 부처님이 선약 있다고 변명하지 않는 것은 여래의 위대함이죠.

 

나 같아도 바로 취소하고 대통령이 왔으니까 이렇게 해야지. 그런데 부처님이 선약이 있다고 거절을 하니까 연화색녀한테 찾아간 거요. 10만금을 줄 테니까 선약권을 우리한테 달라. 채면문제다 이거야. 성인이 이 땅에 왔는데 어찌 우리가 노는 기생이 우리보다 먼저 성인을 접대 하느냐? 이거야. 체면문제잖아. 그런데 연화색녀가 뭐라고 그러는 줄 알아요? 기생주제에 10만금이라니요, 당신들이 바이샬리를 다 준다 해도 저는 양보하지 않겠습니다.

 

무슨 똥배장이요 이게. 그러니 설령 형편이 그렇게 되어서 내가 기생노릇을 할지언정, 이 법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흐트러짐이 없는 사람이오. 오늘 불자들이 이런 사람이 몇 명이나 되요. 이런 사람 없잖아요. 그런데 요즘 서양도 조금 틀립니다. 우리는 문화로서의 불교, 가치관도 없고 그냥 절에 가서 밥 얻어먹는 재미로 대충 다니고, 복 비는 재미로 다니니까. 복 누가 더 준다하면 교회 가는 것도 서슴치 않고, 장례식장도 ** 나눠주면 목사가 와주면 그쪽으로 가버리죠.

 

그런데 요즘 서양에서의 불교신자들은 조금 틀립니다. 제가 몇 년 전에 만났던 미국출신 비구니스님인데 우리나라에 수덕사에 와서 공부를 하다 성폭행을 당했어요. 강제로. 그런데 애기가 생겼어. 출가한 비구니 스님도 성폭행 당해 애기가 생겼어. 지워버려야죠. ? 그게 무슨 창피요. 애기 안고 어떻게 비구니를 해.

 

우리 ...대해서 살펴보세요. 딸이 둘인데, 비추어보니 여자야. “에이, 떼어버려라.” 자기 아이도 자기 원하는 바에 안 맞으면 죽여 버리는 것도 보통이죠. 그런데 다른 사람 죽이는 거, 짐승 죽이는 거 얘깃거리가 되겠어요. 지금. 얘깃거리도 안 되지. 결혼을 했는데 형편이 어렵다. 애기 가질 때가. “그럼 지워버려라.” , 연애할 때 결혼도 안했는데 애기 가졌다. 지워버리죠. 나중에 여러분들 낙태 반대하는 것처럼 들으면 안돼요. 실태가 그렇다는 것을 얘기하는 거요. 찬반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하물며 성폭행을 당해서 여러분들이 애기가 있다 해도 어떻습니까? 지워버리겠죠. 하기야 자기애도 지워버리는데 성폭행을 당해서 생긴 애를 어떻게 키우겠어. 그런데 이 비구니 스님은 그렇지 않아요. 내가 인연법을 따라서 인연법이 좋아서 불교신자가 되었는데, 나에게 이러한 인연이 왔으니까 이러한 인연을 받아들이겠다.

 

그래서 와서 절을 하면서 가서 낳아서 어느 정도 키워놓고 돌아오겠다. 그러면 이 생명이 소중해서 이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비구니 옷도 벗어놓고 그 아이를 키우겠다할 때는 그는 속인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이미 보살이에요. 보살이지. 보살이 따로 있는 게 아니잖아요. 내 아이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 생명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자기의 모든 명예마저도 헌신짝처럼 버리고 한 생명을 아끼는 마음으로 돌아갔단 말이오.

 

이게 이런 사람이 한두 명만 있어도 새끼를 치겠어요? 안치겠어요? 새끼를 칩니다. 우린 아무리 많아도 새끼치기는 커녕 조금만 무슨 일이 있으면 어떻게 흔들릴지 모르잖아요.

 

제가 미국에서 만난 한 남자인데, 이 분은 불교신자에요. 그런데 차를 살려고 뉴욕타임지를 보다고 거기 중고자동차 광고를 보고 괜찮다 싶어 전화를 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은 뉴욕에 있고 차를 내놓은 사람은 시카고에 있는 사람이오.

 

다 얘기가 되었는데, 사람이 직접 차를 눈으로 보고 골라도 속는다는데, 완전히 비행기를 2시간이 타고가야 되는 그 거리에 떨어져서 보지도 않고 돈을 먼저 지불하고 차를 ..시키면 그거 어떻게 되겠어요. “당신 종교가 뭐요?” 하고 물어봤어. 그냥. 무턱대고. 그런데 그 사람이 아임 부디스트요.” 그래. “보내.” 왜 그랬을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오계를 받아야 뭐가 된다? 불교신자가 된다. 불자다 하는 소리를 듣고, 불자는 거짓말을 안 하니까. 이렇게 되요? 지금 서로? 안되겠지. 그렇게 안 되죠.

 

그런데 인도에 자이나교도들이 있어요. 자이나교도들을 5계를 지킵니다. 그 당시부터. 철저하게 지키고, 불상생계율을 지켜야 하니까 농사를 지으면 불살생계율을 지킬 수가 없으니까, 이 사람들은 직업마저도 자기 계율을 지킬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해요. 즉 장사밖에 할 수가 없어. 옛날부터. 장사하면 또 거짓말해야 되잖아요 그죠? 장사 하는데 어떻게 거짓말을 안 하고 장사를 하겠어. 사람들이 못 믿을 말 중에 3가지가 장사하는 사람이 이익 없다는 말, 3개중에 하나에 들어가잖아요.

 

그러데 이 사람들은 계율을 지키고 장사를 하니까 다 망하고 없어져야 될 텐데 아니오. 그게 12123년 한세대 보면 손해 날 수 있지만, 지금 여러분도 그렇잖아요. 음식이나 반지나 중요한 거 사고 싶을 때, “그 집에는 틀림없다. 하늘이 두 쪽 나도 그곳은 속이지 않는다. 진짜배기 그대로다.” 이렇게 되면 조금 비싸도 삽니까? 안삽니까? 사죠. 좀 멀어도 가죠. 이게 몇 십 년 신용을 지킨 게 아니고 대대로 2500년을 그냥 신용을 지켜왔다면 굉장하겠지.

 

인도에 교도가 500만이 체 안 됩니다. 인도에 10억 인구 중에 5백만이니까 보이지도 않죠. 인도의 재벌 중에 대부분이 자이나교도들이에요. 혹시 어디 큰 사업 하시는 분들 인도 사람하고 뭘 하면 자이나교도들 만나면요, 절대 육신 안할 뿐만 아니라 육식을 담았던 그릇 냄새도 안 맡으려고 그래요. 그러니까 그런 사람 딱 봐서 자이나교도다 하면 딱 절에 와서 채식해서 주든지 안 그러면 채식식당에 데리고 가서 대접을 해야 돼.

 

그 사람들은 장사를 안 하면 안했지, 계율을 절대 어기고 안합니다. 아예. 그러니 신용이 생겨서 도리어 좋아졌죠.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런 가르침을 받으면 그것을 자기 삶속에서 원칙을 지키고 못 살잖아요. 법사들 듣는 얘기는 듣는 얘기고, 하는 소리로, 그 다음에 내 갈 길은 내 갈 길대로 살고. 어떻게 하는 게 좋다가 아니라 그런 사람이 없는 게 아니다. 옛날 당시에 부처님 제자들이나 불자들은 다 그렇게 살았어요.

 

그러니 그게 확산되어 있죠. 오히려 굉장히 확산력이 없을 것 같은데 그것이 세월이 흘러가면서 엄청난 확산력이 있다. 이 말이오. 요즘 같이 사람 못 믿는데, 그런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도 비싸도 채용하고 싶겠어요? 안 싶겠어요? 싶겠죠. 그렇게 한 세대 두 세대만 지나면 어때요? 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사회의 지도층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고, 사회가 그들의 도덕성에 의해서 지도될 수밖에 없단 말이오.

 

요즘 정치권에서는 수혈한다고 난리죠. 하도 더러워져서 신진세대들을 받아들여서 인물을 교체하고 이러잖아요. 불자들이 요런 사람들이 정치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여러분이나 여러분들 자손세대까지만 몇 십 년만 딱 원칙을 지키고 살면,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모델이 되겠죠. 그럼 결국 그 사람들이 사회의 도덕성의 중심이 된단 말이오. 그런데 그러면 손해난다고 생각하니 이게 문제요. 그게 엄청나게 자기를 이롭게 하는 건데 다 손해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나 혼자 그래서 뭐가 될까? 이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부처님은 혼자 시작했는데 아무튼 큰일 하셨죠.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