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운스님 법성게 4_3. 궁좌실제중도상(보배로운 궁전 안에 중도의 자리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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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철운스님_법성게

2017. 10. 31.



그 다음에는 궁좌실제중도상. 그럽니다. 이 보배로운 궁전에 궁좌실제중도상 그래요. _끝이야. . 구경에. 제일 마지막에 가는 곳이 궁좌실제. 실제_실로 있다는 거죠. 불생불멸하고, 변하지 않고, 실제 있는 중도상의. 중도상이라는 것은 중도의, _책상, 평상 있죠? 우리가 앉아있는 책상이 아니고 평상이겠죠? 중도의 그러한 평상에 앉는다.

 

궁좌실제중도상이라는 것은 궁좌는 마지막에 궁극에는, 실제라는 말은 제법실상이에요. 변하지 않는 부처님의 법성자리입니다. 그러한 법성자리인데 그것을 중도라고 그럽니다. 중도, 법성자리가 또 중도입니다. 그러한 중도의 평상에 앉는다. 좀 어렵죠? 그런데 법성게 배우면 이해가 됩니다. 많이 읽고 공부하고 하다보면 , 중도상이 이런 것이구나.”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궁좌라는 것은 마지막 수행을 해서, 업장이 소멸되어서, 공덕을 많이 닦아서, 궁극적으로 마지막에 좌_앉는다는 뜻이에요. 어떤 자리라는 것보다는 앉는다. 그다음에는 실제_제법실상이라고 그러는데, 실상_실제니까 그래서 법성게에서는 법성자리입니다.

 

또 법성자리인데, 진여자리이고, 법성자리, 불성자리, 우리 중생들의 마음으로 따지면 자성자리, 우리 마음, 큰 법 마음 자성자리, 여기에 이 자리에 가서, 그 자리를 중도 그럽니다. 중도 참 어렵죠? (가운데 중, 길 도) 달리 말하면 팔정도 있죠? 팔정도를 정도가 중도입니다. 팔정도 할 때, 바른 길에 앉는다는 거예요.

 

우리 부처님은 어디에 집착하고 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상을 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상을 떠나야 되요. 부처님이라고 말할 때도 이 일체상 증명제불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모든 상을 떠나야 부처님의 자리이기 때문에 상을 두지 않기 때문에 중도라고 그럽니다. 법성원융무이상에서 무이상. 그러니까 두 가지 상을 두지 않는다. 없앤다. 이게 중도자리입니다.

 

그러니까 중도 자리에 가면 두 가지 상이 없기 때문에, 우리 세상에는 두 가지 상에 의해서 이 세상이 움직이고 돌아갑니다. 어떤 두 가지 상이냐? 대립되는 상이죠. 남녀, 이런 두 가지가 있죠? 또 밤낮이 있죠? 밤낮으로 나눠지는 것, 또 생사 있죠? 나고 죽고 하는 것. 또 일다. 하나와 또 많은 것. 법성게 안에서는 일미진, 일미진과 또 시방세계, 또 일념과 무량겁. 이렇게 상대되는데, 중도자리에서는 이 상대되는 거에서 어느 한곳에 치우지지 않는다. 그럽니다.

 

왜그러냐하면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을 볼 때, 처음에 볼 때는 공한 자리로 봅니다. 공을. 공했다는 거예요. 모든 것이 공에서 시작되었다. 공에서. 공은 없는 데죠. 없는데서 시작했기 때문에, 그 바탕이 공한자리에서 우리가 망념이 홀연히 망념이 일어납니다. 홀연염기, 홀연히 한 생각이 일어났기 때문에 이렇게 일체법에 차별이 생겼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바탕이 공한 데, 홀연히 일어나서 이렇게 현상이 났기 때문에 공한자리지만, 또 뭐가 있는 거고, 뭐가 있다고 그러려고 하니까 또 공한 자리이고, 그래서 색즉시공 공즉시색 그럽니다. 공속에 색이 있고 색속에 공이 있다. 그래서 어느 한 곳에 치우치거나 집착하지 말라. 이래서 중도.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중도는 법성의 원융한 모습이고, 그 다음에 무이상 할 때 두 가직 대립되는 이러한 상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중도를 말할 때는 생멸거래일이단상 이렇게 팔불중도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래서 그런 우리 중도자리에 나아가야 되요. 중도자리에. 그러면 세상을 바라 볼 때 선하고 악하고 이렇게 차별상이 없어집니다. 육도대사님이 그런 얘기를 했잖아요. [불사선 불사악]이라.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바로 중도자리에서 바라보는 거예요. 그래야 중도자리에 앉아야 이 세상을 내가 평등하게 바라봅니다. 중도자리는 평등한 자리에요. 평등. 평정심, 우리가 일상생활에는 평정심이 있잖아요. 평정심. 이렇게 중도자리, 그런 자리에 가서 앉는다.

 

그러니까 이다라니무진보로서 장엄법계실보전 이 보배로운 궁전을 장엄해놨다는 거죠.

그 다음에는 궁좌실제중도상이라는 것은 그 보배로운 궁전 안에 중도의 평상이죠. 중도의 자리. 중도의 자리를 마련했다는 거예요. 보배로운 궁전 안에 중도의 자리를 마련했다. 그래서 중도의 자리는 부처님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을 때를 비유하면 금강보리좌입니다.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49일 동안 꼼짝 않고 금강보리좌에 앉아계셨거든요. 그래서 이 금강 보리좌가 바로 중도자리입니다. 금강보리좌 친견하신 분 있어요? . 그 인도에 가면 부다까야가 있고, 거기가면 큰 대탑이 있습니다. 대탑이 있고 그 옆에 부처님시대부터 있던 큰 보리수나무가 있고, 보리수나무 아래 부처님께서 앉아서 도를 깨치신 금강보리좌가 있습니다. 언제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의 아들이잖아요. 불자들은 한 번씩 친견해야 됩니다.

 

금강보리좌에 가서 그 자리에 앉았다. 마지막에 우리는 금강보리좌에 앉았다. 금강이라는 것은 불괴, 무너지지 않는다. 불변, 변하지 않는다. 부처님의 자리는 무너지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고, 불생불멸_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고 그렇습니다. 그런 자리에 금강보리좌, 보리라는 말은 지혜, 깨달음, 각 이렇게 얘기합니다. 무너지지 않는 지혜를 얻은 자리, 그게 중도입니다.

 

중도는 그래서 비유하기를 공, 공을 가지고 중도다. 이렇게 얘기하기 때문에 이 허공을 우리가 예로 들면 되겠어요. 허공을 아무리 망치로 치거나 칼로 잘라도 잘라지지 않잖아요. 그렇게 이 중도자리가 부처님의 불성자리이고 법성게의 법성자리입니다. 이 자리에 부처님께서 앉으셨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