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1342회] 시어머니가 같은 건물로 이사 오신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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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즉문즉설(2017)

2017. 12. 1.



저는 시댁이랑 감정이 썩 좋지 않은데

시어머니께서 자꾸 저희가 살고 있는 지역으로

이사 오신다고 말씀을 하세요

근데 이사 오셔서 또 같은 건물에서 같이 살자고 하시거든요

물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미리 걱정하는 건 아는데

제가 시댁에 대한 트라우마가 좀 있어서

그게 진짜로 되면 제가 그때 어떻게 대처를 해야 될지 생각을 해 보게 돼요

다른 거는 어느 정도 맞춰서 하겠는데 같이 사는 거는

진짜 할 자신이 없어요.

 

만약에 그렇게 상황이 되면

제가 좀 멘탈을 강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런 상황이 됐을 때 같이 사는 건 정말 못하겠다!’

이렇게 말씀드려도 괜찮을지요?//

 

 

 

한 집에 같이 사는 거?

그것은 남의 거주지역의 권리를 뺏을 자유가 어디 있다고 그런 소리를 하고 있어. 정말 웃기는 여자 분이다. 그 분이 옆집에 이사를 오시던, 어디에 이사 오던 그분의 자유에 속하는 데 그것을 자기가 어떻게 막아? 뭐로 막아?

 

그거야 내가 이사 안가면 되지.

신랑만 보내면 되지. 뭐 걱정이에요. 그거.

대가를 지불해야지. 공짜가 어디 있어. .

 

아니 그것은 자기가 선택을 해야지. 안 따르자. 그러면 자기는 신랑하고 둘이서 뜻이 맞으면 부모한테 밉보이면 투자를 돌려줘야 될 위험이 있고, 안 그러면 자기 부부가 갈라질 위험이 있지. 왜냐하면 남편은 그거 뭐 어려운 일이라고 재정도 지원 받았겠다 엄마하고 옆집에 사는 게 뭐가 어렵나. 왜냐하면 자기는 자기 엄마잖아. 그러니까 그 둘 사이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지. 자기가 고집을 하면.

 

그럼 자기가 경우의 수를 결정을 해서, 이것은 내가 헤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못살 일이다. 이렇게 결정을 하면 강하게. “난 그럼 헤어진다.” 이런 말 먼저 하라는 게 아니라, “안 된다.” 이렇게 딱 세게 나가야 되는 거고, 그때 속으로 뭘 각오해야 된다고? 헤어질 각오까지 하고 그런 한이 있어도 이 문제는 내가 양보할 수가 없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얘기를 하는 거고, 가능하면 둘이 뜻을 맞춰서 안 그랬으면 좋겠다.” 하면 남편이 동의를 하면 재물을 일부 포기하면 되고. 그럼 내가 사는 수준을 낮춰야 되겠지.

 

그러니까 하나는 남편을 포기할 각오를 해야 되고, 그것보다 적은 것은 생활수준을 줄일 각오를 해야 되고, 그럼 생활수준도 유지하고, 남편도 차지하고 살려면 그러면 약간의 불편을 감수를 해야지. 인생이라는 게 그래. 스님을 하려면 내가 아무데나 가서 갈비 뜯고 이러면 되겠나. 안 되겠나. 그러면 안 될 거 아니야. 그럼 그런 불편을 감수해야 된다. 이 말이야.

 

다 내 맘대로 할 수는 없다는 거야. 그럼 나는 시어머니지만, 우리 남편은 쟤 엄마잖아. 그러니까 남편 입장에서는 크게 불편하다고 생각 안할 수도 있고, 또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나하고 살자는 게 아니고 자기 아들하고 가까이 살고 싶다. 이건 모든 엄마들이 바라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그것은 누구도 잘못된 것은 없다. 이 말이야. 다만 내가 불편하니까.

 

그러니까 남편 집안이 좋은 남자를 구하면 이런 문제가 피해갈 수가 없고, 집에서는 내놓은 남자를 잡으면, 집이 가난하거나 집에서 내 놓은 남자를 잡으면 이런 위험이 적고 그래. 다 득실이 있는 거요. 다 만족되는 것은 없어. 그러니까 자기가 그것을 딱 계산해서 어머니하고 살고 싶은 것은 남편이 심정이겠다. 아들하고 살고 싶은 어머니 심정이겠다.

 

그래도 한 집에 안 살자는 것만 해도 참 다행이다. 한 남자 낳아놓고 양쪽에 공유하는 것은 좀 어렵고, 옆집에 놔놓고 왔다 갔다 하는 정도는 봐줘야 된다. 이렇게 자기가 결정을 해야지.

그리고 와서 집에 와서 살림에 이거저것 간섭하는 것을 왜 내 살림에 간섭하나?” 이러지 말고 저그 엄마가 저그 아들집에 와서 간섭하는 거니까, 이렇게 내가 한발 물러나야 돼. “내 집이다.” 이러지 말고. “저그 아들집에 와서 저러시구나.” 이래서 놔놓고 가면 내식대로 고치고, 올 때는 배워주고.

 

마음을 이렇게 탁 바꾸어야 된다는 거야. 그게 싫으면 안녕히 계십시오.” 하는 수밖에 없고, 안 그러면 길은 속 끓이고 살아야 된다. 속 끓이고. 계속 어머니가 가까이 안 왔으면 좋겠다. 간섭 안했으면 좋겠다. 우리 남편이 좀 제대로 중간에서 방어막을 해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나도 못 바꾸는데 어떻게 남을 바꿔. 남을 바꾸려고 우리가 신경을 쓰기 때문에 피곤한 거요.

 

그러니까 안 되는 것을 자꾸 갖고 있으면 힘들다는 거요. 아시겠어요? 남을 바꿀 수 있으면 내가 제일 먼저 아베총리부터 바꾸지. 북한에 김정은이를 바꾸든지. 그러니까 그 욕한다고 해결이 안 된다는 거야. 그럼 저런 것을 두고 이웃에 살아야 되는데, 그럼 어떻게 관계를 맺는 게 나한테 유리하겠느냐. 저런 인간을 그냥 같이, 경사도 사투리로 갈바 가지고 더 해서 전쟁이 나면 부잣집하고 가난한집하고 둘이가 칼부림하면 누가 문제고? 가난한 사람이 다쳐봐야 뭐, 부잣집에 우려먹으면 되지, 우린 다쳐도 가난한 집한테 배상도 못해.

 

그리고 또 재산 있는데 뭣 때문에 다쳐. 좀 주고말지. 그러니까 조건에 따라 선택을 하는 거요. 이것을 적당하게 구슬려서 좀 주고 지내는 게 나한테 유리할지, 저것을 확 그냥 밟아 버리는 게 유리할지, 그래서 두드려 패서 감옥가면 나한테 유리할 게 뭐가 있어. 그러니까 그런 선택을 하는 거요. 인생이라는 게 언제나.

 

그런데 우리가 늘 이렇게 마음으로 시비만 하고, 이렇게 살면 괴로워진다. 이 말이오. 스님의 이 강의의 목표는 괴로움 없이 살 수가 있다. 이게 요지요. 어떤 문제를 해결하라가 아니라 어떤 선택을 하면 어떤 과보가 따른다. 그러니까 돈을 빌렸으면 갚을 각오를 해라. 갚기가 싫으면 빌리지 마라. 이 얘기요.

 

자기가 어떤 선택을, 생활수준이 더 떨어지는 선택을 하기는 싫지. 그런데 남편이 그것을 선택을 안 하려고 그럴 거 아니야. 그럼 남편하고 헤어지는 수밖에 없잖아. 애기는 있어요? 없어요? 그럼 또 자기는 그렇게 헤어진다 치더라도 애들 입장에서는 그런 엄마를 지지할까? 안할까? 그러니까 인생이 일차방정식이니 이차방정식이 아니라니까. 345차 방정식에다가 함수와 상수가 여러 개입되어 있어서 복잡하다니까.

 

그런 것을 잘 수학문제 풀듯이 이렇게 냉정하게 풀어야지, 그것을 감정에 너무 치우치면 문제 해결을 못해. 괴롭게 살아야 돼. 남편하고 먼저 대화를 해야 돼. 자기 마음을 내야 돼. “안 된다.” 이러면 남편이 상심하니까. “여보, 가능하면 아직은 사실은 당신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내가 좀 부담이 된다. 그러니 여보, 당신이 좀 미안하지만 좀 적절하게 500미터 안에 안 오게 어떻게 좀 조처를 좀 취해주라. 노인이 너무 가까이 있으면 맨날 걸어오니까. 좀 취해주라. 이런 노력을 할 필요가 있지.

 

대신에 자기가 남편한테 잘해야 되겠지. 남편한테 시비나 하고 이러면. 지금부터 남편한테 잘해야 돼. 잘해서 항상 밤에 송사를 계속 속삭여야 돼. 속닥속닥해서 남편을 세뇌시켜서 가능하면 두 여자 사이에 중간에 서게 하지 말고, 내 쪽에 확실히 서도록. 저 여자한테 빚은 좀 있지마는 그래도 내 품안에 있는 여자를 생각해서 남편이 적당하게 하고. 이게 일차작업을 하고.

 

자기가 나서면 시어머니하고 사이에 갈등만 생기니까, 두 번째 그런 경우가 그래도 일어날 수가 있잖아. 그지? 일어나면 자기가 탁 집착을 놔버려야 돼. “그래. 니 아들 네가 가져라.” 마음으로 이렇게 팽개치는 게 아니라, 마음을 탁 놓고 집에 오시고 가시고 하는 거에 대해서 그렇게 싫어하는 내색을 하면 내가 피곤해진다니까.

 

손대지 마라.” 이게 피곤하지,

손을 대고 가면 치우는 것은 덜 피곤하다니까.

 

스님이 너무 이성적으로 얘기하는 거 아니냐? 맞아요. 그런데 실제 인생은 이성적으로 안 되지 않느냐? 맞아요. 감정이 더 따르지 않느냐? 맞아요. 그런데 문제는 지금 해결이 안 되는 게, 너무 감정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해결이 안 되지 않느냐. 이거요. 그러니까 사람이 감정적으로 가기가 쉽지마는 감정에 치우치면 화근이 생긴다. 그러니까

 

하고 싶더라도 참을 게 있고,

하기 싫더라도 해야 될 게 있고,

인생이 그렇지 않아요?

 

다 어떻게 지하고 싶은 대로 하고, 하기 싫은 대로 안 하고 살아요. 그렇게 안 돼. 그러니까 인생은 그게 남의 눈치를 보고 자기를 억제하고 산다는 게 아니라, 사는 데는 적절한 얘기가 있는 거요. 다시 말하면

 

우리의 감정을 적절하게 조절을 해줘야 되는데,

강제로 조절하면 심리적 억압이 생기고,

자율적으로 조절하면 절제라고 그래.

자율적으로 조절하면 심리적 억압이 안 일어난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나 혼자 내 남편을 가지면 좋은데,

남편 뒤에는 시어머니란 여자가 있단 말이오.

그러니까 보통 남자도 다 그 뒤에 여자가 하나는 있어요.

그런데 나 혼자 가지려면 안 돼.

그러니까 그 적정한 권리를 어느 정도 인정해야 된다. 이 말이오.

 

아까 잘난 남자는 또 딴 여자가 또 붙을 수가 있는데, 그것은 적절하게 잘해서 정리를 하지마는,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에요. 남자도 또 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서 굉장히 힘들어. 가닥을 못 잡으면. 그래서 늘 스님이 얘기하잖아요.

 

결혼을 하면

은혜 받은 여자는 정을 좀 끊고,

새 여자한테 초점을 맞추고 입장을 정해야

가정이 화목해 진다.

 

안 그러고 양쪽을 다 해결하려고

중립에 서면 안 된다.

그럼 양쪽에 싸움이 일어나는 거요.

입장을 딱 바로 해야 된다.

 

부모의 은혜를

부모에게 다 돌려주는 게 아니고,

그것은 내가 또 자식에게 돌려주는 쪽으로

관점을 잡아줘야

인생이 좀 편안해진다. 인생살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