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부처님 이야기] 7. 마음에 질투가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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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부처님이야기

2018. 4. 26.



안녕하세요.

부처님께서 바라나시성 밖에 녹야원에서 교진녀 등 5비구에서 처음 설법을 하시고, 다음에 야사 등 55인을 교화하셔서 총 60명의 제자들, 아라한들을 두고 전법선언을 하셨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나도 우루벨라 마을에 병장촌으로 가서 교화를 하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바로 본인이 6년간 정진하시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으신 그 우루벨라촌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 우루벨라촌에는 아주 유명한 수행자가 있었습니다. 가섭형제라고 불리는 사람들인데, 제일 큰 형은 나이가 120살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우루벨라촌에 수행처를 두고 산다고 우루벨라가섭, 그리고 그 아래에 나디가섭, 그 아래에 가야가섭. 이렇게 해서 큰형은 500명의 제자를, 둘째는 300명의 제자를, 셋째는 200명의 제자를, 그래서 1천명의 제자를 두고 있었습니다. 물론 다 바라문들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깨달음을 얻으신 것을 가지고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깨달을 수 있는가? 이거에 대한 실험을 옛 자신의 친구들, 그리고 또 수행한 경험이 없었던 일반 청년들, 그들과의 만남 속에서도 이 법이 누구나 다 깨달을 수 있다 하는 것을 확인하시고, 당시에 인도에서 가장 큰 나라인 마가다국의 서울인 왕사성으로 가서 그 나라의 왕인 빈비시라왕을 교화하기 위해서 전법의 길을 떠나셨습니다.

 

원래 부처님께서 수행자로 있을 때, 이 빈비시라왕과의 만남이 있었고, 이 빈비시라왕이 청하기를

만약에 당신이 성도하신다면 반드시 나를 깨우쳐 주십시오.”

이렇게 요청을 했고, 부처님께서 쾌히 승낙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은 약속을 지키시려고 했던 겁니다.

 

그러나 그때 이 빈비시라왕은 이 울갈라 가섭파라고 하는 이 유명한 수행자를 받들고 공양하고 있었기 때문에, 또 그의 명성이 워낙 왕사성에서는 자자했기 때문에 그 우루벨라 스승을 버리고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쉬운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신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이 우루벨라 가섭파를 먼저 교화하시고, 오히려 빈비시라왕을 교화하는 게 더 낫지 않겠냐. 이렇게 우리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우루벨라 가섭은 그 지역에 오랫동안 수행을 한 사람이니까 부처님하고는 그 명성에 있어서는 비교가 안 됩니다.

 

부처님은 그 변두리에서 처음에는 친구 5명과 같이, 나중에는 홀로 정진을 하셨죠. 그러나 이 분은 이미 유명한 그런 분이었기 때문에. 부처님은 이분에 대해서 잘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루벨라 가섭은 부처님을 전혀 모른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서 부처님께서는 옛 자기가 수행하던 그 처소근방에 있는 이들 수행자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일부러 이곳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 처소에 가서 하루 묵기를 청했습니다. 그런데 이 도량에서는 부처님을 거절했어요. 그 이유는 부처님은 종적이 크샤트리아족이지 않습니까. 인도에서는 고귀한 종족인 이 바라문족은 낮은 계급과 함께 생활하지 않습니다. 같은 브라만들끼리만 생활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사문류는 그 당시에서는 좀 낮게 취급을 했단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당신을 거절하는 것은 딴 뜻이 아니라, 이것이 우리들의 규칙이다. 이곳에 당신이 머무를 자리가 없다. 이렇게 거절을 했어.

 

그러자 부처님께서 마침 돌로 쌓아 놓은 웅덩이 같은 것을 보신 거요. 소위 동굴이라고 되어있는 데.

저기는 어떠냐?”

이렇게 얘기를 했을 때, 그들은 또 거절을 했어요. 왜냐하면 그곳에는 아주 무서운 동룡이 있었기 때문에. 킹코브라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당신을 거절하려는 게 아니라, 그곳에 가면 당신의 생명이 위험하다.” 그러니 그곳도 안 된다고 했어요. 그러자 부처님께서

상관없다. 나는 일체를 깨달았기 때문에, 마음의 아무런 번뇌가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어디에도 머물러도 된다.”

 

그래서 우루벨라 가섭은 부처님이 그곳에 머무르는 것에 대해서는

당신이 알아서 해라. 당신이 좋다면 그렇게 하도록 해라.” 이렇게 허락을 한 거요. 그러나 우루벨라 가섭은 마음속으로

 

참 훌륭한 수행자인데, 결국은 죽게 되는구나. 참 안 됐다. 그러나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위험을 알려줬는데도 본인이 그렇게 하겠다니 어떻게 하는가.” 이렇게 아쉬워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뱀이 있는 그 굴로 가셔서 마음을 얼굴 전면에 두고, 호흡을 가다듬으시고, 깊은 명상에 드셨습니다. 그러자 큰 독뱀이 기어 나온 거요. 그러고는 부처님의 몸을 감쌌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아무런 두려움도 번뇌도 없었기 때문에 그 뱀은 부처님의 몸을 한참 감고 있다가 스르르 풀고 굴로 기어들어갔다.

 

/이것은 좀 사실적으로 기록한 거고, 한문으로 변역된 아함경에 보면 이 뱀을 화룡이라 그래. 입에서 불을 뿜는다. 그래서 이 뱀이 부처님을 보자 막 불을 뿜었더니, 부처님께서도 몸에서 광명이 나와서 오히려 그 뱀이 부처님의 광명에 못 이겨서 도망을 갔다. 숨을 곳이 없어서 결국은 부처님 바리때에 들어가게 되었다.

 

막 불꽃이 일어나니까, 우루벨라 가섭이 생각하기에 참 아까운 수행자가 죽게 되는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이튿날 아침에 아주 유유히 부처님께서 잘 잤다고 하면서 나오니, 우루벨라 가섭은 너무너무 놀랐다. 또 많은 제자들도 놀라서 이 분은 범상한 수행자가 아니구나.’ 이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조금 다른 기록이죠. 하나는 그 동룡을 신통으로 잡아서 바리때에 담아서 가지고 나와서 보여줬다. 하나는 좀 사실적이죠. 부처님께서 무념의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뱀은 부처님을 헤치지 않았다. 이건 가능한 얘깁니다.

 

뱀이 보통 나무나 죽은 시체를 건너지갈 때, 나무를 물거나 시체를 물고 지나가지 않죠. 언제나 뱀은 뭔가 자신에게 위협이 느껴지니까 공격을 하는 거죠. 그러니까 뱀이 부처님의 몸을 감쌌을 때도 부처님은 마치 나무처럼 두려움 없이 있었기 때문에 뱀은 그냥 몸을 감고 지나갔던 거요. 그러기 때문에 이튿날 아침에 부처님은 아주 편안한 자세로 잘 쉬고 나오신 거요.

 

그러나 이 우루벨라가섭은 이 수행자가 훌륭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보다는 못하다.’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나이가 많고, 명성이 있고, 여러 가지 신통력이 있고, 많은 제자가 있고, 그러니까 그것이 하나의 기득권이라 그럴까 하나의 관념이 되니까, 진리를 바로 보고 법을 보는데 장애가 되었던 거요.

 

그래 이 분이 부처님께 자기와 제자들 자랑을 했어. 그 강가에 흐르는 물을 보면서

내 제자들은 저 물속에 들어가서 하루 종일 빨대를 입에 물고 물에서 나오지 않고 수행을 한다.” 이렇게 자랑을 했어.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그러시냐고. 하더니 옷을 입은 채로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어. 조금 있으면 나오려니 나오려니 나오려니 했는데도 하루 종일 안 나오는 거요. 그래서 우루벨라 가섭이 배를 타고 시체를 건지러 다니는 그런 조각 그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까 온 수행자가 물속에 가서 죽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부처님께서 유유히 저녁나절에 물에서 나왔다. 그런데 옷이 물에 젖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부처님의 위신력에 감동을 했지만 우루벨라가섭은 그래도 내가 얻은 법에 비해서는 못 하다.’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이러한 소위 신통력이라고 그러는데, 이 신통력을 경전에는 360가지나 견주었다고 그래요. 이것은 뭘 상징합니까? 우루벨라가섭이 교화되기가 그만큼 어려웠다는 걸 말해요. 어떤 모습을 보여줘도 우루벨라가섭은 그래도 나보다는 못하다.’ 이 생각을 놓지 못했던 거요.

 

마침 인도말로 뿌자, 큰 제사의식을 행하는 날이 다가왔어. 이들은 불을 피워서 그 불을 신에게 공양을 올리면서 여러 가지 복을 빌고, 그렇게 되면 승천한다. 하늘나라에 난다. 이런 제사의식을 지냈는데, 그럴 때 이 제사를 지낼 때는

 

나무는 어떤 나무로 어떻게 쌓고, 불은 몇 시에 붙이고, 붙일 때는 어떤 주문을 외우고, 공양을 올릴 때는 어떤 공양을 올리고, 절은 어떻게 하고, 거기에 따라서 죄가 소멸되고 복을 받아서 하늘나라에 난다. 이런 거란 말이오.

 

그런데 그날 아침에 불을 켜려고 하는데, 나뭇가지를 아무리 비벼도 불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 우루벨라가섭이 생각하기를 아마 저 수행자 고타마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이미 벌써 이런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때 부처님이 우루벨라가섭을 찾아갔을 때, 그 제자들이 찾아와서 불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소연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부처님께서 그걸 보시고는

불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 그렇습니다.”

불을 일으키고 싶습니까?” “, 그렇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불이 일으켜졌어요. 그러니 우루벨라가섭은 마음속에 오늘 많은 사람들이 와서 큰 제사의식을 행하는데 무슨 병고가 생길지 알 수가 없는 거요. 다시 말하면 자신의 그 명성에 혹시 위해가 될 수 있는 일이 생길까, 그런 걱정이 생기는 거요.

 

그러니까 마음속에서 , 오늘 하루만이라도 저 수행자가 이곳에 없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일어났던 거요. 그런데 마침 그날 제사를 지내는데, 부처님은 보이지 않고, 그래서 제사를 잘 지냈습니다. 그래 제사가 다 끝난 뒤에 부처님이 나타나셨어.

 

그러니까 우루벨라가섭이 부처님께 자랑을 하는 거요.

오늘 굉장했다. 당신이 있었으면 오늘 굉장한 거 구경했을 거다. 그런데 어디 갔더냐.” 그때 부처님께서 우루벨라가섭 보고,

 

당신은 오늘 내가 이곳에 있기를 원하지 않았지 않는가. 내가 다른 곳에 가기를 원하지 않았던가. 당신은 오늘 무언가 병고가 생길까? 염려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마음을 꿰뚫어보고 말을 하니까, 우루벨라 가섭이 마음이 불안하고 어쩔 줄을 모르는 거요.

 

그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우루벨라가섭이여, 마음속에 질투가 있으면 어떤 도도 성취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얻었다고 하는 그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라한도도 아니고, 그것은 성문사과 어디에도 속하는 성인의 도가 아니다.”

 

그때야 우루벨라가섭은 자기의 밑 마음, 그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근심이 일어나는 그 뿌리가 어디 있는지를 보게 된 거요. 그것을 놔버리니까 마음이 편안해 진 거요. 그때야 그는 진정한 법을, 도를 알게 된 거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부처님께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참회를 했어요.

 

얻지 못한 도를 얻었다하고, 알지 못한 것을 알았다하고, 오히려 성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시기하고 질투한 그 어리석음을 깊이 참회했을 때, 부처님께서 기꺼이 그 참회를 받아주셨습니다.

 

그때 우루벨라 가섭은 부처님께 제자 되기를 청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도리어 우루벨라가섭에게

당신은 세상에서 위대한 스승이다. 당신의 행동은 당신 혼자서 가볍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오. 그러니 심사숙고해 보시오.” 하고 거절했어요.

 

그런데 우루벨라가섭이 또 청했어. 그런데 부처님께서 또 제고해 보라고 했어. 우루벨라가섭이 3번째 청했어요. 그때 부처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 대해서 어떻게 하겠냐?”고 했을 때, 그는 제자들을 불러놓고

 

나는 오늘 이 분을 만나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니 나는 이분을 따라 출가를 하려고 한다. 너희들은 너희들 길을 가거라.” 그렇게 했더니 그들이

 

우리는 지금까지 스승님을 모시고 정진해 왔습니다. 저희들은 이미 이 분이 화룡을 항복받은 그 이후에 여러 이분의 행적을 보고 저희는 이미 이 분에게 귀의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승님 때문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승님께서 기꺼이 이 분을 스승님으로 모신다면 저희들 또한 기꺼이 출가해서 수행자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500명이 다 출가를 해서 사문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불을 섬기든 그 갖가지 제사 도구를 다 강가에 버려버린 거요.

 

그러니까 그 아래 있던 동생이 그런 여러 가지, 제사할 때 입던 옷이라든지, 그런 도구들이 물에 떠내려 오니까, 큰 병고가 생긴 줄 알고, 제자들을 끌고 왔는데, 이미 형님이 머리를 깎고 출가해 있는 모습, 그래서 어떤 일이냐고 물었더니

이 분을 만나 좋은 법을 증득했다. 염려하지 마라.”

 

그래서 형의 권유로 역시 부처님께 법을 청해듣고, 이 분들도 다 부처님의 제자가 됐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갖고 있던 그 의식복이라든지 제구를 다 물에다 던졌어. 그러니까 제일 밑에 있던 가야가섭이 두려워서 나오지를 못했어. 큰 어떤 괴승이 나타나서 이 수행집단을 파멸시켰다고 생각한 거요.

 

그래서 우루벨라가섭이 가야 가섭이 있는 수행처소로 찾아가서 자초지정을 얘기하고, 그들은 부처님과 제자들을 받아들였고, 역시 그들도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다 출가를 했습니다. 이래서 1천명의 제자를 얻게 되었다.

 

1천명의 제자를 두고 그 가야산 아래에서 부처님이 행하신 설법이

너희들은 밖에 있는 불을 껐다. 불을 섬기다가 이제 불을 꺼버렸다. 그러나 아직 마음속에 있는 불은 타고 있다. 탐진치 3독의 불은 타고 있으니, 법을 따라 탐진치 3독의 불을 끄는 수행을 부지런히 하라.”

이렇게 해서 1천명의 제자들을 교화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교훈을 얻을 것은

숫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진리를 깨치기가 더 낫습니다.

 

깨달았다는 생각, 도를 얻었다는 생각,

이 환상에 사로잡히면

정말 진리를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 세상에 제일 큰 거짓말이 뭐요?

도를 얻지 못한 자가 도를 얻었다.’ 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큰 거짓말이다.

 

이 세상 도를 얻는데 장애가 되는 2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안다는 생각에 빠진 사람.

하나는 모른다는 생각에 빠진 사람.

 

안다는 생각에 빠진 사람은

다른 얘기가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모른다는 생각에 빠진 사람도

아이, 몰라.” 이러면서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좋은 법문을 하셨다 하더라도 

들을 귀가 있어야 만이 들립니다

안다병에 걸렸거나 모른다병에 걸린 사람은 

들을 귀가 준비가 안 되었다. 귀를 막고 있어요.

 

마치 비 오는 날, 누구나 다 그릇 따라 물을 받아가지만,

바가지를 거꾸로 쥐고 있는 사람은

하루종일 서 있어도 한 방울의 물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귀를 막고 있는 사람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아무리 많이 오신다고 하더라도 구제받기 힘들다.

 

그러니 우리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시는 것만 기대할 게 아니라

내가 부처님을 알아볼 수 있고

부처님의 법문을 들을 수 있는

눈을 뜨고 귀를 여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

 

그래서 눈이 열리고, 귀가 뚫리면

이 천하만물이 다 부처님으로 보이고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까지도 다 부처님의 법문으로 들린다.

 

이런 것을 명심하셔서, 여러분들이 눈을 열고, 귀를 여는 그런 자세를 가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