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민석의 십장생한국사 - 12회(마지막회) 자랑스런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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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역사/설민석_십장생한국사

2018. 7. 17.



여러분들은 주말이나 휴일을 이용해서 나들이를 가실 때 주로 어디를 가십니까? 강남을 가실 수도 있고, 아니면 삼청동, 이태원, 아니면 잠실. 많은 곳들이 나들이 장소로 손꼽히고 있는데요,

 

, 오늘은 한국사 전문가 설민석과 함께 역사 데이트를 떠나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우리나라 갈 때 참 많거든요. 그런데 조선시대부터 수도였던 서울을 중심으로 같이 나들이를 떠나보도록 해요.

 

, 서울에 있는 *사대문은요, 새로운 유교국가의 탄생을 알리는데서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 근본에는 인의예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를 더하면 믿을 신, 신까지가 들어가거든요.

 

그래서 서울의 중심에 //을 넣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타종식을 하는 11일날, 보신각이 서울의 중심이 되는 거구요,

// 그래서 동대문이 인이 들어갑니다. 흥인지문. 그래서 동대문에 뭐가 있어요? 밀리오레 두타 흥인 시장이 있잖아요. 흥인지문이 되겠구요.

그리고 //는 뭐가 되겠습니까? 서대문이 되겠습니다. 돈의문이구요.

//는요, 남대문이 됩니다. 숭례문이구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는 북대문이 되어야 되는데, 북대문의 이름은 홍지문이 되어야겠죠. 그런데 홍지문이 아니고 숙정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깨달음을 뜻하는 지혜의 이름을 쓸 경우에는 백성들이 너무 똑똑해지지 않겠냐. 그러면 좀 골치 아프다. 라는 의미에서 숙정문으로 지었다라는 설이 있습니다.

결국 서울의 사대문도 이런 유교적 이념이 담겨 있다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 이제 사대문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가운데 매인궁궐 *경복궁이 있죠. 경복궁에는 임금님이 사셨는데요, 경복궁을 중심으로 좌묘우사 그래서 좌측에는 종묘가 있구요, 우측에는 사직단이 있습니다. 방향이 반대라구요? 우리가 보는 방향하고는 반대일 수밖에 없죠. 임금님이 자리하신 것을 기준으로 좌묘 우사가 되는 것이니까요.

 

, 그러면 *종묘는 뭐고? *사직단은 무엇이냐? 고조선의 단군왕건도 하늘에 대한 제사를 지냈죠. 그리고 정치적인 어떤 업무도 받고 그래서 제정일치사회라고 부르는데, 항상 그 시대의 무리장, 군장이나 왕은 하늘에 대한 어떤 기본적인 제사를 지내는 것이 의무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조선시대의 중국의 어떤 아들국가? 마치 속국처럼 좀 외교관계를 맺었었거든요. 조선태종 이후로. 그래서 하늘에 대한 제사는 오로지 중국황제만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나라 임금은 하늘에는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토지신하고 역대 선왕들, 돌아가신 왕들에 대한 제사 정도만 지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역대 돌아가신 선왕들의 이름을 새긴 것을 위패라고 부르는데, 위패를 모신 신주라고 부르죠. 그 신주단지를 모아놓은 곳, 여기를 종묘라고 그래요. 그래서 종묘에 가서 선대왕들한테 제사를 지내는 것이고, 그리고 사직단에 가서 토지신과 곡식신 앞에 또 제사를 지내는 거죠.

 

그래서 드라마를 보면 맨날 신하들이 빈정상하면 뭐라고 그래요?

전하, 종묘사직을 생각하셔야죠.” 이런 얘기 하죠. 거기서 말하는 종묘사직이 바로 이런 예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 이렇게 해서 종묘와 사직을 봤구요,

 

, 이번에는 서울 4대문 안에 있는 5대 궁궐 나들이를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메인궁궐 *경복궁이 되겠습니다.

역시 이름도 정도전이 지었구요, 경복, 복을 누리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 건국과 함께 지어진 정궁이 되겠는데, 이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원래 좀 불이 많이 났어요. 우리나라는 목조건물이잖아요.

 

특히 임진왜란 때에는 이것도 설이 많지만, 선조가 서울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을 가니까 화가 난 공노비들이 노비문서를 불 지르기 위해서 화재를 일으켰다는 설이 지배적이죠. 그래서 그때 타버린 거예요. 그래서 조선시대 전기 적까지만 메인 궁궐이었구요, 조선후기 때에는 좀 황폐화되었던 것이 경복궁이고,

 

요것이 19세기 고종 아버지 대원군 때가서 아름답게 복원되게 됩니다. 그때 공사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대원군은 거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집권한지 10년 만에 물러나게 되고, 거기서 권불 10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 그래서 우리나라에 정궁이었던 경복궁을 봤구요,

 

이번에는 두 번째 *창덕궁을 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성계 아들이었던 태종 이방원 때 만들어진 궁권이 되겠습니다. 굉장히 아름다운 궁궐이었어요. 그래서 임진왜란 이후에는 황폐해진 경복궁보다는 창덕궁이 더 좋다고 그래서 조선시대 후기적의 왕들이 창덕궁에서 기거를 해구요, 그래서 실제 조선왕조 500년 동안 가장 많이 임금님들께서 머무셨던 정궁역할을 했던 것은 경복궁이 아니라 창덕궁이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우냐하면 저도 창덕궁에 봄가을에 답사랄지, 사진 찍으러 많이 갔는데요, 그 해설사분의 말씀에 따르면 눈이 내린 직후의 그 창덕궁의 모습은 죽기 전에 꼭 봐야 되는 버킷리스트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저도 아직 못 봤어요.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로 굉장히 아름다운 비원이라는 후원을 자랑하는 곳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움 궁궐, 창덕궁이 되겠습니다. 꼭 시간 내서 가보시기 바라겠습니다.

 

, 그 다음 궁궐은 바로 *창경궁이 되겠습니다.

지금 한 50대 정도 되시는 분들은 창경궁에서 데이트하신 경험 굉장히 많을 것 같은데요, 여기가 식물원이었고 동물원이었습니다. ,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창경궁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성종 때가 됩니다. 성종은 본인의 어머니뿐만 아니라 궁궐의 큰 어르신 총 3분이 살아계신 거예요. 이분들이 좀 불편하시기도 했을 테고, 그러니까 이 분들을 위해서 궁궐 하나 지어 드려야겠다 해서 이 건물을 따로 배정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궁궐에 여인 어르신들이 기거하던 곳이 창경궁이었는데, 요것이 일제강점기에 들어서서 우리나라의 민족정기를 끊어버리겠다라는 어떤 일본의 행패에 의해서 창경궁도 무참히 훼손되게 됩니다.

 

그래서 거기다가 동물들을 갖다 놓고, 식물을 심어 놓죠. 그래서 벚꽃을 수만 그루를 심어놓았습니다. 그래서 벚꽃놀이의 메인 장소였던 곳이 여기 있는 창경궁이 되겠는데요, 다시 창경궁 복원 사업에 의해서 오늘날은 본래의 모습을 최대한 가까이 되찾고 있습니다.

 

, 그리고 또 하나 *경희궁입니다.

그런데 경희궁은 일제강점기에 산산이 흩어지죠. 오늘날 경희대학교 이름의 근원이 된 곳이 경희궁인데요, 광해군 때 만들어졌거든요. 그런데 건물을 뜯어다가 일본인들이 예쁘니까 하나는 동국대학교에 갖다 놓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동국대학교에 건물이 있어요.

 

그리고 정문을 뜯어다가 신라호텔 정문으로 갖다 쓰고 했는데, 그것은 지금 다시 본 제자리에 와 있습니다. 그래서 장충동 신라호텔 들어가다 보면 문이 하나 있거든요. 그것이 경희궁 문의 복제품이 됩니다. 산산이 흩어졌던 요것이 경희궁이었구요.

 

마지막으로 *덕수궁을 보고 계십니다.

이곳은 세조의 손자였죠. 월산대군이 머무르던 사저였는데요, 조선후기, 임진왜란을 거치고 나서 변변한 건물이 없으니까 광해군 때나 와서 궁궐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그리고 근대사의 대표적인, 우리나라 국권피탈 당할 때, 왕 있잖아요. 고종 순종할 때 고종, 고종 때 와서 덕수궁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데요, 원래 이름은 경운궁이었구요, 덕수궁으로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 이렇게 해서 서울 5대 궁궐과 4대문에 얽힌 얘기를 살펴봤습니다. , 그리고 조금만 눈을 돌리면 우리 주변은 완전 보물천지인데요, 보물 얘기를 한번 해 볼게요.

 

, 여러분들 국보하고 보물의 차이를 아십니까? 요런 거 갖고 친구들하고 많이 싸우죠. 의사 열사, 조냐 종이냐, 대군이냐 군이냐, 국보냐 보물이냐 그러는데,

국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나라에서 지정한 보물, 보물은 그냥 보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정확하게 정리를 해드리면

 

국보는 Only onE입니다. 유일한 것.

동식물로 따지면 멸종위기에 처하기 직전,

유일하게 남아있는 거, 요게 주로 국보(보물들 중 특별히 뛰어난 작품들이 국보로 지정)로 인정하게 되고,

 

보물은 그런 건 아닌데,

그 시대의 위대한 인물이 만들었거나 아니면 오래 되었거나 대표성이 있거나.

이런 것들이 주로 보물(옛 건축물이나 미술품 공예품들 가운데에서 역사적이거나 미술적 가치를 지닌 중요한 문화재)로 지정을 하게 되구요.

 

그런데 유일하게 하나 딱 남아 있더라도 박물관에서 제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들은 국보로 지정 안하는 경우도 많이 있더라는 거 말씀드리고 싶구요,

그럼 국보가 우선이냐? 보물이 우선이냐 그러면 다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국보가 더 유일하니까, only 1이고 또 보물은 NO 1이니까, 글쎄 그것은 알아서 판단하시면 되겠습니다.

 

, 우리나라의 국보 1호가 뭘까요? 우리가 오늘 공부한 것 중에 있는데요. 그렇죠. 남대문입니다. 국보 1호가 *남대문 숭례문이 되구요. 그럼 보물1호는요? , 배운 것 중에 있는데? 동대문입니다. *동대문이 보물 1호가 되겠습니다. , 우리나라의 국보는 317호까지 지정이 되어 있구요, 보물은 1865호까지 지정이 되어있습니다.

 

, 그럼 북한도 국보하고 보물이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북한은 55점의 국보와 53호의 보물이 지정되어있는데요, 우리보다 좀 적죠. 그 이유는 뭐냐하면 자신들의 체제이념과 다른 것들은 많이 배제를 했다라는 거, 그리고 우리는 어떤 궁궐이다. 절이다 그러면 하나하나 보물로 지정하는데, 그들은 묶어서 지정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 보다는 조금 국보나 보물의 지정 수가 좀 적다라는 게 특징이 되구요.

 

우리나라는 여기를 봐도 보물, 저기를 봐도 국보. 너무나 귀중한 것이 많기 때문에 유네스코에서 수많은 국보와 보물들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을 했는데요, , 일단 유네스코 얘기 한번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유네스코 우리 한번 살펴볼게요.

유네스코는 크게 3가지로 어떤 문화의 유산들을 나누어 지정을 하고 있는데요,

 

첫 번째가 뭐냐하면 세계유산이라는 것입니다.

세계유산은 형체가 있는 유형의 유산들을 말하는데, 요걸 또 3가지로 나누게 됩니다.

 

1. 아름다운 자연을 유네스코에서 지정을 해요. 요게 자연유산이고.

2. 인문이죠. 사람이 만든 문화유산,

3. 그것들이 어우러져 있는 복합유산.

다시 요렇게 3개로 나누게 됩니다.

 

두 번째는 형태가 없는 것을 지정을 하거든요.

이것을 인류무형 문화유산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 인류 무형문화유산의 경우는 좀 있다 말씀드리겠지만 아리랑, 농악, 이런 것들이 있죠? 이런 것들이 여기에 속하겠습니다.

 

세 번째는 세계기록 유산이 되겠습니다. 기록물은 따로 빼놨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유산 중에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있는 것은 뭐가 있을까요? 예를 들면 제주도의 용암굴, 문화유산으로서는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 고인돌, 남한산성. 이런 것들이 대표적인 세계유산이 되겠구요.

 

그리고 무형의 문화유산으로서 아리랑, 그리고 김장, 택견, 판소리, 농악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예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세계 기록유산으로서는 새마을운동 기록물과 그리고 5.18 광주 민주운동 관련 기록물들.

그리고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을 장경판전이라고 그러죠. 그것은 세계 유산 중에 문화유산에 등재가 되어 있구요, 거기에 꽂혀있는 팔만대장경은 세계기록유산에 등재가 되어있습니다. 그 외에도 승정원일기, 훈민정훈 해례본 등이 기록유산이 되겠네요.

 

, 이렇게 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살펴봤습니다. 우리는 흔히 보석 그러면 다이아몬드나 금, 이런 것들을 떠올리는데요, 우리 주변에는 그것보다 훨씬 더 귀중하고 소중한 보물들이 지천으로 널려있습니다.

 

해변가에 다이아몬드가 널려있는 데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빛나는 돌이라고 생각하면서 뛰어다니는 어느 전설에 나오는 토인들의 섬처럼, 우리도 세계인이 주목하는 우리의 보물과 국보를, 그것들이 근처에 있는데도 너무 그것을 좀 등한시하고 있지 않았나, 소중함을 잃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조금만 조금만 눈을 높이 들어서

그 보물들의 소중함과 귀중함을 살펴보는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야겠습니다.

 

, 지금까지 십장생 한국사라는 이름으로 12번 국민여러분을 만나왔는데요, 오늘이 마지막 회가 되겠습니다. 작별의 시간이 왔는데요, 뭐 회자정리라고 했지 않습니까. 만나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은 만남의 시작이라고 하는데요,

 

더욱더 발전하고 그리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대한민국 국민여러분들을 찾아뵐 것을 약속드리면서 한국사 전문가 설민석은 여기서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