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의 앵커브리핑] 11.28(수) 거악의 은신처는 어둠이 아니라 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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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역사/손석희앵커브리핑(2018)

2018. 11. 29.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보신탕, 개소주, 토룡탕, 뱀집...

1982년 서울시는 이러한 상호를 가진 식당의 대로변 영업을 금지했습니다.

무허가 간판과 광고물은 물론이고 노점상도 철거 및 금지의 대상이 됐습니다.

 

서울의 봄을 밟고 일어선 새로운 군사정권은 세상을 깨끗이 청소하고자 했습니다.

어렵사리 획득한 올림픽인데 외국인에게 가난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명분하에 상계동을 비롯한 서울 200여 군데 달동네 주민들은 살던 집에서 쫓겨나 거리에서 한뎃잠을 자야 했습니다.

 

도시 정화를 명분으로 부랑인이나 매춘 여성 등을 시설에 입소시켜...

사회악의 일소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박해남 <88 서울올림픽과 시선의 사회정치> 한국현대 생활문화사

 

청소의 대상에는 사람도 포함됐습니다.

사창, 소매치기, 앵벌이, 비렁뱅이, 날치기, 넝마주이, 전과자...

그것은 사회악의 일소라는 명분하에 진행된 부랑인 강제수용, 즉 인간 정화사업이었습니다.

 

노역하는 사람들을 몽둥이 든 남자들이 감시하고 있고 사나운 개 몇 마리가 주위를 지키고 있었다.”

-김용원/당시 울산지청 감사

 

1986년 겨울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한 젊은 검사는 의문을 품었습니다.

 

군인도 아니고 재소자도 아닌데 왜 강제노역을 하고 있는가.

몽둥이와 사나운 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렇게 의문 속에 죽어 나간 사람만 513...

30년 넘는 세월이 지나 그들은 뒤늦은 사과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사과를 들으니 마음이 이상하네.”

탄식에 가까운 말과 함께 눈물을 훔치던 피해자는 말했지만...

오랜 시간을 돌아 그들이 받은 사과는 당시 가해자들이 아닌 가해자의 대리인, 혹은 가해자의 후배들에 의한 사과였지요.

 

사창, 소매치기, 앵벌이, 비렁뱅이, 넝마주이, 전과자...’

청소의 대상은 고작 이러한 약자들이 아니었고 자신들의 빛나는 시대를 이어가기 위해서 타인들의 시간을 어둠으로 몰았던 사람들이 아닌가.

정작 그들은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얼마 전 형제복지원 피해자 한종선 씨에게 인권상을 수여한 단체에서는 수상결정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놀라운 것도 없이

거악의 은신처는 어둠이 아니라 빛입니다.

-‘진실의 힘인권상 심사위원회, 2018626

 

하긴 전 재산 29만 원으로도 그들은 여전히 밝은 빛 속에 있으니...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