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의 앵커브리핑] 12.31(월) '섣달 그믐밤…그 쓸쓸함에 대하여 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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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 역사/손석희앵커브리핑(2018)

2019. 1. 1.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섣달 그믐밤이 되면 쓸쓸해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에 대해 논하라.”

-1616증광회사에서 광해군이 낸 책문 과거시험에서 임금이 출제하는 마지막 문제

 

1616년 갓 마흔을 넘긴 광해군은 선비들에게 책문하였습니다.

섣달 그믐이란... 바로 이즈음 한해의 마지막 밤을 의미하지요.

 

묵은해와 이별하는, 까닭 없이 쓸쓸한 마음은 임금도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 까닭 없는 쓸쓸함이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대 고려전의 천년 된 유물은 인간이 품은 오랜 소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고려 시대 사찰인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안에서 수습된 두루마리 천 조각.

무려 길이 10미터가 넘는 발원문’(신이나 부처에게 소원을 비는 내용을 적은 글)에는 각종 신분을 망라한 천여 명의 이름과 함께 각자의 소망이 적혀있었습니다.

 

두 살배기 어을진이 장수하기를 발원합니다.” 자식의 무병장수를 기원한 부모가 있었고

여자는 남자가 되게 하소서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절절한 소망도 발견됩니다.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

천명의 고려인들이 꿈꾸었던 희망들...

그들의 소망은 모두 이루어졌을까...

 

그리고 여기...

오늘과는 다른 내일을 꿈꾸는 이들이 써 내려간 2018, 오늘의 발원문이 있습니다.

지난 1년간 앵커브리핑의 페이스북에 달린 시청자 여러분이 바라는 세상.

 

내 집 한 채 가질 수 있기를

갑질하지 못하도록 갑을 끌어내리는 을이 됩시다.”

살아남고 싶다. 안전모가 있었으면...”

바위가 깨어지기까지 계란을 놓지 않을 겁니다.”

 

소망은 각자 다르지만 서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천 년 전이나, 4백 년 전이나, 그리고 오늘을 사는 시민들의 길고 긴 발원문 역시...

정치와 권력이 그리고 언론이 주목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섣달 그믐밤의 쓸쓸함에 대하여 논하라.’

임금의 질문에 대한 문인 이명한의 냉정한 답은 이러했습니다.

 

그 까닭은...묵은해의 남은 빛이 아쉬워서...

그러나...

세월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 또한 부질없는 생각일 뿐....

부디 정진하소서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