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모르는 불국사 이야기] 제4화 석가탑에 전해지는이야기

댓글 0

법륜스님/불국사 이야기

2020. 3. 27.



연화교, 칠보교, 안양문

그리고 석가탑에 내려오는 아사달과 아사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왼쪽에 보세요.

왼쪽에도 계단이 있죠.

저거는 연화칠보교입니다.

밑에는 무슨교? 연화교.

위에는? 칠보교.

 

저렇게 해서 들어가는 문의 간판은 안양문이라고 되어 있어요.

안양은 극락을 번역하면 안양이에요.

그래서 서울의 근교에 안양이라는 시 있죠?

그게 원래 극락이라는 뜻입니다.

안양에서 온 사람 있나? ㅎㅎ 극락에서 왔구나 ㅎㅎ

안양문이에요.

 

그러니까 청운교, 백운교를 지나서는 지하문을 지나서 부처의 세계로 가고

이쪽은 연화교, 연화는 연꽃이라는 뜻이에요.

연화교, 칠보교를 지나서 안양문을 지나서 극락세계로 들어갑니다.

 

대부분 그냥 지나가는데, 밑에 이름이 뭐라고? 연화교니까

돌을 자세히 보면 전부 연꽃이 하나씩 새겨져 있어요.

돌에 연꽃이 새겨져 있어요.

그래서 저리로 못 다니게 하는 이유가 자꾸 다니면 닳는다고.

 

원래는 저걸 밟고 올라가야 의미가 있어요.

청운교 백운교를 밟고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야 하고

연화 칠보교를 밟고 극락세계로 가야 하는데

문화재를 지킨다고 해서 이걸 다 막아서 저 밖으로 들어가게 된 거예요.

 

요게(백운교, 청운교, 연화교, 칠보교) 다 국보입니다.

연화칠보교는 국보 22, 청운백운교는 23호 이렇게 되어 있는 거요.

돌이 국보이에요.

둘은 1300년 전 거예요, 전부 다.

그런데 나무는 남아 있는 게 400년 전 거나 아니면 70년 전 거나 이러니까

나무로 된 거는 대웅전이 보물이지 국보는 안 됩니다, 연대가 짧아서.

 

, 이해하셨어요?

옛날에 나이든 사람은 수학여행 오면 계단에 쭉 앉아서 사진도 찍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렇게 못해요.

옛날 사진을 보면 저 난간 저런데 전부 올라가서 새처럼 전부 앉아서 찍은 이런 사진도 옛날에 보면 있습니다.

요즘은 문화재를 중요시해서 그렇게는 못 하게 하고 있습니다.

 

, 그러면 일어나셔서 위로 올라가겠습니다.

 

---

석가탑에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건축기술이 백제가 신라보다 훨씬 우수했나봐요.

그래서 삼국 통일되기 전에도 경주 황룡사 구층탑을 세울 때

백제에서 200, 아비지 등, 200명의 기술자를 모셔와서 황룡사 9층탑을 지었거든요.

 

우리나라에는 이 탑이 없어졌지만, 일본에 가면 그런 비슷한 탑이 있어요.

그래서 그 황룡사구층탑을 만약에 복원한다면 일본탑을 좀 보고 비슷하다고 봐야 되거든요.

 

그러면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은 왜 우리가 일본 탑을 모방하냐?’ 그러는데

일본탑이 아니고 그것도 다 누가 지었다? 백제사람이 가서 지은 거예요.

당시에는 이런 큰 목탑은 백제 기술자가 신라에 와서도 지어주고, 일본에 가서도 지어주고 이렇게 하기 때문에 모양이 거의 다 비슷하다 이렇게 봐도 괜찮아요.

 

그런데 통일신라 시대니까 백제라고 따로 없지 않습니까. 그죠? 다 한 나라니까.

그러나 옛날 백제 땅 사람이다. 이런 얘기에요.

 

기술자가 거기에 아무래도 많이 사니까,

거기서 아사달이라는 가장 뛰어난 석공을 모셔와서 불국사를 짓는데,

이 아사달과 아사녀는 결혼 한지, 신혼을 차린지 얼마 안 되었는데 뽑히게 된 거예요.

돈을 많이 주니까 부인하고 떨어져서 이곳에 와서 3년 계약하고 일을 했는데

 

종교적인 거는 좀 그런 게 있어요.

옛날에는 부정탄다 이런 말 알아요?

그래서 제를 지내거나 뭘 할 때는 여자를 만나면 안 되고, 뭘 해야 하고, 금기 뭘 먹으면 안 되고... 이런 게 있잖아요.

 

정성을 세워서 탑을 세운다고 금기, 여자를 가까이 못하게 했단 말이오.

부인은 따라오지 못하게 했죠. 요즘 같으면 부인이 같이 가는데.

3년을 계약하고 깄는게, 3년을 기다려도 안 오니까 부인이 찾아온 거요.

찾아왔는데, 아직 공사가 안 끝난거예요.

여자를 못 들어오게 하니까 안에 들어갈 수가 없고,

그러니까 밖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언제 끝날지 만나서 얘기를 해봐야 ‘1년 더 기다리라든지...’ 이런 얘기가 있을 거 아니요.

 

그래서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하도 애달프게 기다리니까

거기 있는 사람이

요 밑에 가면 영지라고 하는 못이 있는데, 이 공사가 다 끝나면 못에 그림자가 비친다

그러니까 거기 가서 기다리라고 하는 거요.

 

거기 가서 몇 달을 더 기다렸는데, 드디어 그림자가 비췄는데, 다보탑은 비췄는데 석가탑은 비치지가 않은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지쳐서 그 연못에 빠져서 죽어버렸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거를 다른 데는 또 소설화 해서

못 만나는데, 알고 봤더니 아사달이 공주하고 결혼해서 부마가 된다는 소문을 들었다.

결국은 자살했다. 이런 얘기도 나오곤 하는데,

아무튼 설화니까...

 

공사가 다 끝나고 나오니까 너 부인 와서 저기서 기다린다

그래서 가서 보니까 이미 부인이 신발만 있고 없는 거예요.

그래서 물에 빠져 죽은 줄 알고, 자기 부인을 부르면서 그 바위에다 부인의 얼굴을 새기고 자기도 따라 죽었다.

그래서 연못가에 아직도 불상이 하나 있습니다.

 

연못가에 불상하고 연결시켜서 누가 중요하게 만들었는지,

뭐 이런 얘기가 있어서 불상이 생겼는지 그건 1300년 지나니까 우리가 모르지만,

아무튼 그런 얘기는 우리가 가서 이런 불국사를 보고

아하, 훌륭하다이러지만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뭐가 있다?

피와 땀이 있고 고통이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만리장성 보고 좋아하지만

그 만리장성을 쌓는데 수십만명의 사람이 죽었거든요.

어떤 면에서는 원한의 성이다이렇게도 볼 수 있잖아요.

 

불국사는 종교시설이다 보니까 당시에 그런 강압에 의해서 한 건 아닌 거 같아요.

공사하는 사람도 다 나이아비타불을 부르면서 염불하면서 했다고 하지만,

이런 슬픈 사연들을 보면

큰 공사를 하는 데는 많은 사람의 고통이 있었다.

이런 것도 우리가 함께 생각해야 되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 입구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