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TV 휴심정] BTS...세계의 유행이 한국에서 시작되는 이유 | 탄허스님 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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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TV(휴심정)

2020. 12. 24.

 

 

 

天下無二道천하무이도라고 천하에 도가 둘이 없다

탄허스님은 세상을 다스리는데는 유교가 제일이고

몸을 다스리는데는 도교가 제일이고

마음을 다스리는데는 불교가 제일이고

기독교의 장기는 조직력이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이런 종교평가에 스님은 동의하십니까?//

 

탄허스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최대한 이해하려고 저는 노력을 했죠.

 

유교같은 경우는 치세다 그래요. 세상 다스리는.

유교의 학문에 있는 책들은 7~8 할이 세속 얘기다, 이거죠.

도 닦는 얘기는 2~3할 박에 없고

그다음에 노장같은 얘기는 도 닦는 얘기는 7~8할 정도 되고

세속 얘기가 2~3 할이다.

 

기독교도 세상 사는 얘기가 7~8할이고

도를 닦는 얘기는 2~3할 밖에 없다.

 

그런데 불교는 100% 도 닦는 얘기다.

그런데 성속이 불이하다.

세속과 성의 세계가 나누어지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도 닦는 얘기가 그대로 세상 얘기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하셨거든요.

장기를 말씀하신 거죠. 근본은 같은데.

 

근본은 같은데, 세상 다스리는 건 유교고,

도교 같은 경우는 도교하고 노장하고 구분하세요, 탄허스님은.

노장은 노자 장자의 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의 이상이고요

도교라고 하는 것은 노장처럼 되고자 하는 모든 수행 방법론들이 펼쳐진 게 도교다.

 

예를 들면 한의학도 있고요, 풍수도 있고, 다양한 연단술, 전부 엄청난 양식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 속에서 많은 중국의 과학이 나오기도 하고

이런 것들 전부가 도교인데

 

도교가 그렇게 하다 보니까 몸 다스리는데 굉장히

양생술, 장자의 양생주가 있듯이, 양생의 어떤 발전이 있었다.

그래서 호흡이라든지, 경락이라든지, 이런 거에 대한 연구들이 많지 않았냐.

그래서 치신에는 도교다.

 

그런데 불교는 마음 다스리는 것,

예를 들면 유교의 학문지도무타라, 구기방심이기의라

학문의 도는 다른 게 없다.

구방심, 놓아버린 마음을 다시 찾아오는 거다.

공자가 이런 말씀을 하시니까

 

맹자가 거기 덧붙이죠.

우리 집의 개돼지가 밖에 돌아다니면 찾아 돌아올 줄 아는데

내 마음이 돌아다니면 찾아 돌아올 줄 모른다.

 

구방심이라는 게 공부법이거든요.

이게 위빠사나 아닙니까? 딱 보면 알아야 하는 건데

 

그게 탄허스님 말씀이

유교는 그 자세한 공부 방법에 디테일한 내용이 없다는 거예요.

 

우리 불교가 강점인 건 뭐냐하면

화엄에도 보면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 등각, 묘각 하듯이

그 낱낱의 과정을 구방심해 나가는 과정

주일무적, 하나에 집중해서 마음이 돌아다니지 않는 것을 경이라 그런다. 공경할 경, 유교에서.

이게 아주 멋진 말이거든요.

정이천 선생의 주일무적 지위경은 대단한 말씀이잖아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마음을 하나로 집중할 거냐.

아주 상세한 공부방법이 불교에 있다.

그래서 마음 다스리는 데는 불교가 최고다, 이렇게 얘기했고

 

기독교는 딴 게 없다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최고 장점은 조직력이라는 거예요. 믿음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또 다른 말도 하셨어요. 포교다.

 

우리 불교가 기독교의 포교는 배워야 한다.

뭔가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서로 같이 공부하게 하고, 믿게 하고, 이렇게 하려고 하는 그 적극적인 마음을 우리 불교가 배워야 하는 거다.

 

예를 들면 기독교의 장점이 조직력이고 포교다 하는 게 비하하신 말씀이 아니고

그 장점은 배워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런 측면에서는 우리가 불교에서도 하화중생이라는 측면에서는

굉장히 시기적절한 말씀 아니었냐.

탄허스님의 말씀을 저는 그렇게 이해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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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하고 다양한 종교의 얘기를 해보니까 재미있는 이유가

제가 보기에는 전세계에서 다종교국가는 대한민국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유럽은 한번 기독교이면 거의 쭉 수천년 동안 기독교이고

동남아시아는 한번 불교면 쭉 불교이고

중동은 한번 무슬림이면 계속 무슬림인데

한국은 왕조가 바뀔 때마다 계속 근간이 되는 종교가 콱콱 바뀌었거든요.

 

이런 식으로 바뀌는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거의 드문데

한국만의 독특한 특색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우리는 어떤 종교가 주체가 되기보다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뭘까를 생각하면서

시대에 따라서 주체 주류종교를 변화시켜 온 민족이 아닌가, 이런 생각도 했었거든요.

 

그러면서 조선시대에서는 어떻게 보면 불교를 버리고 유교를 취했던 이유가

고려말에 불교의 타락도 있었다고 하지만

어떻게 보면 불교가 내적인 어떤 수행으로서 의식세계로서는 천상천하의 불교를 당할 종교사상이 없지만

그러다 보니까 너무 내적으로 침잠해 들어가니까 외적인 세상에 치세를 하는데 있어서

오히려 장애가 되지 않느냐.

너무나 은둔, 피하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지 않느냐.

 

이래서 오히려 조선조도 왕가는 실은 심리적으로 불교하고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치세의 도로서 정도전이라는 사람이 불씨잡변, 불교의 폐단을 쓰기도 하면서 불교를 취하기도 하고

 

그리고 유도도 500년 하다 보니까 너무 어떤 이데올로기가 되고

자기들의 기득권화 되어버리고 이러다보니까

구한말에 나라까지 잃는 지경이 되니까

사람들이 어떤 종교를 선택할 때 물론 그때 서세동점의 시대니까

엄청나게 서양제국주의의 힘을 가진 그들이 믿는 종교가 기독교이기도 했고

 

그러면서 근대의 선각자들이 어떻게 민족의 어떤 뭔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어떤 동양적인 것보다는 외적인 물질적인 변화, 이런 것을 꾀할 수 있는 어떤 외력적인 힘.

이런데 어떤 심리상태가 오히려 더 기독교를 선각자들이 취세 선택한 계기가 되지 않는가.

저는 그렇게도 보여지거든요.//

 

, 우리나라가 다이나믹합니다.

탄허스님도 주장하듯이 역학적으로 우리는 방위적으로 간방이다, 그래요.

 

간방은 동북방을 간방이라고 하는데

이 간방의 뜻은 소남이라고 그래요. 젊은 청년.

우리나라는 청년의 나라라는 거죠.

 

청년은 도그마티즘에 빠지는 상황으로 갈 수도 있고,

청년 때는 확 몰리잖아요.

갈 수도 있고, 아니다 싶을 때 과감하게 바꾸기도 하고,

이게 청년의 어떤 다이나믹함이 있다는 것이죠.

 

이게 우리 한국의 심리구조, 한국인의 특성을 설명하는데 굉장히 좋은 거로 활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탄허스님은 간방이라 그러고, 탄허스님 자가 간산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탄허스님의 미래 역학사 상을 간사 사상이라 해야 한다고 얘기했어요. 책에서.

 

그런 것을 보면 뭔가 한국인에게, 온 세계의 유행은 일단 한국을 지나간다.

한국에 와서 유행하지 않은 거는 유행이라고 할 수 없다.

한번은 들어와야 한다는 거예요.

 

전세계의 유명 브랜드가 한국에 한번 들어오는 겁니다.

들어와서 그 안에서 다각화되어서 나타나다가

어느 정도 지나고 났을 때 싹 사라질 건 사라지고 중요한 종지가 남고

핵심이 남으면 거기에 이스트들이 나와요.

 

예를 들면 중국의 주자학보다 말이죠. 우리 퇴계나 율곡 같으면 더 깊이 들어갔어요.

불교도 말이죠, 불교도 중국의 간화선, 한번 끊어졌잖아요.

우린 더 지키고 있단 말이죠.

기독교는 어떻게 말하면 우리나라 장로교는 가장 근본주의적입니다.

 

우리가 뭔가 근본이라고 하는 펀더멘털리즘의 그런 거를 잘 뽑아서 하는 부분이 있지 않느냐.

그래서 오히려 어떻게 보면 빨리 또 새롭게 개혁해야 한다는 그런 요구들도 같이 있지 않느냐.

 

그래서 예전에는 이러한 것들을 우리나라가 좀 못살고 문제가 있을 때는

우리나라 문제의식으로 했는데,

지금 보면 오히려 이것이 장점이 되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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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하고 저도 굉장히 공감이 됩니다.

이런 것을 사람들하고 얘기할 때 쉽게 이해되기가 어려웠는데

서로 말이 잘 통해서.. ㅎㅎ

 

한국에 와서 어떤 종교사상이 장사가 안 된 것이 없다.

어떤 것이 와도 한국에 오면 전부다 잘 된다.

 

그래서 예전에 원불교의 3대 종법사 대산 김대건 종법사한테 제자들이 물어봤대요.

한국 사람들이 변덕이 너무 심하고, 주체성이 없는 거 아니냐.

외국에 무슨 종교만 들어와도 믿으니

이게 한국 사람들이 줏대가 없는 거 아니냐,” 이렇게 물어보니까

 

그분이 그랬다고 그럽니다.

그게 아니라 한국에는 사막 같은 이런 데는 뭘 심어도 안 자라는데

한국인들의 마음 밭은 기름진 곳이기 때문에 뭘 심어도 잘 자라는 것이다.”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그래요.

 

한국에 어떤 전 세계적인 유행이 오면

한국에서 일단 뿌리를 쉽게 내릴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한국인의 독특한 특색인 것 같습니다.//

 

 

제가 그런 얘기 했습니다.

유교나 불교의 특징이, 육당 최남선의 조선불교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삼국불교를 내세워요.

인도불교, 중국불교, 일본불교.

조선불교는 그냥 뭐.. 짜깁기이고 그냥 있었던 거 통합해서 어름하게 한다.

이런식으로 비판하니까

 

육담 최남선 선생님이 뭐라고 했냐하면

인도는 서론적 불교이고, 중국은 각론적 불교, 본론적 불교, 한국은 결론적 불교다.

일본은 유지보수의 불교다.

우리 거를 유지 보수하는 거죠.

 

예를 들면 한국이 그렇게 아무것도 없으면 고려불화는 왜 다 가져갔냐 이거죠.

완성, 예를 들면

아잔타 석굴이나 돈황 석굴 같은 석굴 사원이 쭉 오면

마지막 한국에 오면 결론이 난다는 거예요.

가장 정제된, 청자도 그렇고 불화도 그렇고, 불상도 그렇고, 석탑도 그렇고

이런식이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것을 일본은 우리 것을 많이 가져가서 유지하고 존속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결론적 불교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래서 제가 얼마 전에 SNS에 썼습니다.

유교도 결론적 유교다.

 

왜냐? 퇴계 성학십도, 율곡의 성학집요는

중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유교의 결론, 결정판입니다.

책 한 권으로 유교를 다 요약했어요.

 

퇴계선생이 선조에게 병풍 10장을 선물로 드려요.

내가 올라가서 정치 못 가르쳐주니까 병풍으로 보세요.

병풍 10장에 유교의 핵심이 다 요약이 되어 있어요.

 

그런 식의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뭐든지 다 받아들여야 마지막 결론을 내죠.

각론이 쭉 펼쳐지는 것은 중국이죠.

그러나 그것이 딱 들어오면 다 받아들여서 마지막 핵심을 뽑아내는 결론은 한국에서 하니까

일단 본론은 다 봐야죠.

그래서 그런 다음에 핵심을 뽑아낸다는 겁니다.

 

우리의 어떤 그런 집중력이라고 할까? 한국인의 정신능력이라고 할까?

이런 부분이 우리에게 어떤

그래서 아마 전세계에서 공부는 제일 잘하는 거 아니냐.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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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종교학자가 그런 얘기를 했는데

한 종교만 아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똑같다.

 

이걸 같이 놓고 봐야, 전체를 볼 수 있는데

코끼리 다리만 보고, 눈만 보고, 팔만 보고, 전부 다 코끼리 전체를 봤다고

봉사격으로 이렇게 하는 거니까.

 

우리는 모든 것을 알기 위해서 모든 걸 받아들이는 거죠.

모든 걸 보고 나서 결론을 내리고

굉장히 한국인의 좋은 특성 같습니다.